백두대간 종주기 (05-35 이기령-상월산-백복령)


 

           *정맥구간:이기령-상월산-원방재-백복령

           *산행일자:2005. 12. 4일

           *소재지  :강원 정선/동해

           *산높이  :982.7미터

           *산행코스:백복령-1022봉-원방재-상월산-이기령-임도-부수베리

           *산행시간:11시29분-17시16분(5시간47분)


 

   올 겨울 들어 첫눈이 서울을 찾은 것은 지난달 말일이었습니다.

11월 30일 오후 2시경 북한산의 구파발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한 산형과 커피를 마시며 대학시절 함께 오른 산들을 되새기는 중 오랜 산형과의 오랜만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때마침 첫눈이 내려주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무릎이 아파 산을 오르지 못한다는 그 산형에 오는 일요일 백두대간 종주 차 강원도 산을 오를 계획을 말해주고 내놓고 말은 못했어도 속으로는 기왕이면 흰눈이 소북이 쌓인 산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바랬었는데 그 바램대로 일요일 새벽 집을 나서자 밤새 내린 눈이 땅위에 소복이 내려앉아 올 들어 처음으로 눈이 덮인 산길을 마음껏 밟을 수 있겠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진부에서 벗어난 버스는 눈이 내린 차도를 조심스럽게 달리느라 11시 반이 다되어서 정선의 송계리에서 동해시로 연결되는 42번 국도상의 백복령 고개 마루에 도착했습니다. 차창밖에 비쳐진 시골의 겨울풍경은 여유롭다 못해 썰렁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여름 이 길로 수많은 손님들을 실어 날랐을 관광버스도 눈에 띄지 않았고 내리다 만듯한 눈들이 산과 밭을 듬성듬성 덮고 있었으며 이 고개마루에 오르기 직전 제법 넓은 평원에 자리 잡은 작은 백복령 시가지가 아직은 텅 빈 곳이 많아 그런 느낌이 더해졌습니다.


 

  댓재에서 백복령에 이르는 대간 길은 총 연장 31.5키로로 발걸음이 재지 못한 저는 산악회를 따라 이번까지 세 번으로 나누어 종주를 했습니다. 지난 9월 비온 뒤끝의 짙은 안개를 뚫고 댓재를 출발해 두타산과 청옥산을 거쳐 다다른 연칠성령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했고, 10월에는 이기동에서 이기령으로 올라서 대간 길을 밟기 시작해 갈미봉과 고적대를 지나 연칠성령에 이르는 동안 가을바람이 산자락을 휘감았던 구름을 하늘 높이 내몰아줘 막 시작된 단풍과 절애의 암벽이 함께 빚어낸 절경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감상하고 또 한번 무릉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그새 가을을 넘기고 겨울을 맞아 어제 마지막으로 이기령-백복령구간을 역순으로 뛰어 댓재-백복령의 전 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11시29분 해발 780미터의 백복령을 출발해 이기령으로 향했습니다.

잽싸게 들머리로 들어서 넓은 간격의 나무계단을 따라 14분을 걸어 전망처에 올라서자 북쪽 먼발치로 지난 달 오대산의 두로봉 헬기장에서 보았던 대관령의 풍차들이 눈에 들어와 반가웠으나, 바로 건너 석회암 채굴로 동쪽사면이 잘려나간 자병산의 몰골사나운 모습을 보자 개발과 보존의 조화라는 해묵은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낼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새삼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동해시의 푸른 앞바다가 시샘할 만큼 쇠소리가 날 듯한 매섭도록 파란 하늘이 내뿜는 냉기로 귓바퀴가 얼얼해 모자 깃을 내려 양귀를 감싸고 산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2시18분 백복령에서 2.4키로를 올라 원방재를 4.7키로 남겨 놓은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남녘 땅 남단의 달마산을 다녀오느라 귀경 길에 고생을 해 B코스를 택하겠다는 한 분의 도움으로 실로 오랜 만에 산속의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대간 길에 내린 눈은 서울을 떠날 때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쳐 땅바닥을 살짝 덮을 정도여서 준비해온 아이젠과 스패치를 꺼내 차지 않았습니다. 아무려면 백두대간이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밸도 없이 단번에 원 없이 눈밭을 밟도록 해줄 리가 없다 하면서도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일는 것은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전망처에서 무명봉에 이르기 까지 간간이 산죽들이 눈에 띄어 회색의 겨울산하의 황량함을 덜어주었습니다. 무명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면서 왜 불편하기 짝이 없게 둥그런 나무로 그리도 촘촘히 계단을 만들었을까 투정했습니다. 계단을 꽉 채운 흙이 빗물로 소실되어 발 딛기가 영 불편한 그런 계단을 만드는데 돈을 들이는 이유가 산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둥그런 나무대신에 널판 목을 써서 내 딛을 때 발이 심하게 휘는 것을 막아야 옳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12시42분 잡목지대를 거쳐 삼각점이 세워진 987봉에 올라서자 GPS수신을 돕고자 나무를 베어내어 동해에서 불어올라오는 골바람이 가감 없이 전해졌습니다. 백복령-원방재 중간지점인 987봉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새파랬고 이 하늘에 드문드문 떠있는 하얀 구름조각이 새 파란 겨울하늘이 내뿜는 냉기를 덜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시꺼먼 수피의 소나무 밭과 키가 제법 큰 푸른 산죽 길을 지나 다다른 안부에서 돌계단을 밟으며 1022봉까지 가파르게 산을 오른 덕분에 이번 산행에서도 땀을 좀 흘렸습니다. 소나무 밭을 지나 물푸레나무 여러 그루가 서있는 산길을 지나면서 울퉁불퉁한 나무껍질로 무장한 참나무보다 수피가 매끈한 물푸레나무가 더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13시21분 이번산행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1022봉의 넓은 공터에서 짐을 풀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백복령에서 5키로 떨어진 1022봉을 2시간이 채 안되어 올라서느라 한번도 쉬지 않고 내달린 것은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자 발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눈이 내린 뒤끝 특유의 매서운 냉기가 엄습해와 차라리 계속해 걷는 편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드느라 10분 가까이 장갑을 벗고 있었더니 그새 손끝이 아려와 서둘러 배낭을 챙겨 원방재로 출발했습니다. 원방재로 내려서기 얼마 안 되어서 중간에 빠지지 않고 풀코스를 뛰는 A코스 팀의 후미에 합류하자 안심이 됐습니다. 이 산악회를 따라 대간 길을 뛸 때마다 풀코스 완주를 위해 정해진 시간 안에 B코스로 갈리는 지점에 대는 것이 과제여서 저 나름대로 서두릅니다만 산행 중 이것 저 것을 메모하다 보면 항상 후미로 뒤쳐지곤 했습니다. 하늘로 곧게 뻗은 적송들이 나뭇가지를 헤집고 찾아온 햇살을 맞아 그 붉은 수피가 더욱 붉게 빛나 얼마 전에 지나온 소나무들의 칙칙함과 분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14시16분 6.25 때 탈출로로 사용되어 많은 군대가 주둔했다는 해발 730미터의 원방재로 내려섰습니다. 동쪽으로는 동해시 삼흥동으로 탈출할 수 있는 골짜기 사골로 이어지는 길이 나있고 서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부수베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나있어 언제고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탈출이 용이한 곳이고 북서쪽 가까이에 1022봉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을 만날 수 있어 야영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백복령이 7.1키로 밖에 안 되어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이곳에서 머물 이유가 없을 듯 했습니다. 원방재로 내려서자 바로 앞에 절애의 암벽이 상월산을 받쳐주고 있어 이곳에서 10.2키로 떨어진 곳의 고적대가 떠올랐고 단상을 메모하느라 잠시 머무르는 동안 후미를 도맡아 온 일행 몇 분 들이 휑하니 저를 앞질렀습니다.


 

  14시51분 해발 980미터의 상월산 정상에 올라서자 모진 풍상을 이겨내느라 곧게 서지 못하고 휘어져 있는 아름드리 고사목이 이 산의 역사를 증언할 양 이제껏 눕지를 못하고 곧추서 있었습니다. 상월산으로 오르는 대간 길도 경사가 급해 원방재에서 저를 앞지른 한 분을 따라잡느라 숨이 한참 가빴습니다. 북동사면이 절애의 직벽이어서 곳곳에 나무로 방책선을 쳐놓은 길을 힘들게 오른 이 봉우리가 남녘 땅 1,650산을 넘게 오른 김정길님이 상월산임을 알리는 작은 비닐판을 나무에 매달아 놓지 않았다면 얼마 후 지나는 헬기장이 상월산으로 잘못 알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벤취에 올라서 북동쪽을 내려다보자 1022봉에서 동해로 흐르는 물을 담고 있는 초록색의 저수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정상에서 따끈한 커피와 귤을 드느라 잠시 숨을 돌린 후 이기령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 얼마고 내려섰다 상월산 출발 25분 만에 다시 오른 970봉 헬기장에 상월산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자칫 이 봉우리를 상월산으로 오인하기 쉽겠다 싶었습니다.


 

  15시34분 지난 10월에 올랐던 이기령에 도착해 10.1키로의 백복령-이기령 구간 종주를 전부 마쳤습니다. 970봉에서 해발 914미터의 이기령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거리도 1키로 밖에 안 되어 힘든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이번 종주로 31.5키로의 댓재-백복령 대간 길을 세 번에 걸쳐 모두 밟은 셈인데 아침에 댓재를 출발해 이기동으로 하산한다는 여기 이기령에서 인사를 나눈 그분이라면 해가긴 여름에는 충분히 백복령까지 내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동해시의 이기동에서 이기령으로 올라왔지만 이번에는 임도를 따라 이기령에서 정 반대방향으로 정선의 부수베리로 내려갔습니다.


 

  부수베리의 가수교로 내려가는 9.3키로의 임도는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 방향으로 동시에 차가 다녀도 충분한 넓은 길이어서 여름 한 낮이라면 땡볕을 가릴 수 없어 이 길을 걷기가 보통 고역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그나마 이 산을 데웠던 한 낮의 햇살이 소리 없이 스러지고 서녘으로 빠져드는 태양이 온기를 발하지 못해 후미의 일행들과 함께 부지런히 걷고 쉴 새 없이 얘기를 이어가며 살 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에 맞섰습니다.


 

  하산 길에 후미의 한분과 깨어있는 여성에 대해 얘기 나누는 중  떠올린 사람은 1941년 산책 중 실종되어 극적인 삶을 마감한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였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당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케인즈, T.S.엘리어트와 L.디킨슨등과 교유하며 소설“ 델러웨이 부인”, “등대에”등의 작품을 남긴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로 상징되는 영국여성들에 대해 미국여성들은  1960년대 후반에 상영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상당한 콤플렉스를 느껴왔다는데 1950년대 시대상황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나라 여성들에는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얘기를 들어야한다.”는 요절시인 박 인환님의 시처럼 똑똑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가느라 정신질환까지 앓은 버지니아 울프가 차라리 서럽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시16분 9.3키로를 100분 남짓 걸어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부수베리 계곡변의 가수교에 도착했습니다. 6시간 가까이 19.4키로의 산길을 걸으며 추위에 시달려 다 된 국밥을 입안으로 퍼 넣는데도 추워서 어쩔 줄 몰라 한 제게는 찌게 한 그릇이 성찬이었고 이 성찬을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몇 분들이 수녀님처럼 고맙게 보였습니다.


 

  어둠이 짙게 내린 강원도 벽촌을 지나는 귀경 길의 버스 안에서 생일을 맞은 한 분에 아낌없이 축하의 뜻을 전해주는 가슴 훈훈한 추억의 장을 지켜봤기에 아쉬움 없이 졸고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