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서 끝나는가?

 

▶금북정맥 6번째 : 꽃조개고개-여주재까지
▶2005.8.26일 23:50∼27일 22:20

 

★오랜만에
 야간산행을 계획했습니다
노후한 기계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금북을 시작하면서 중단했던 야간산행이

아마도 중독의 도를 넘어 마음속에 병이 되었나 봅니다
끝까지 주간산행으로 마치겠다던 결심이 안흥진에서 꽃조개까지 오고는

기어이 변덕을 부려 밤길을 떠나게 만듭니다
혼자 밤길 나서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그녀의 근심을 뒤로 꽃조개까지 가는 발걸음은

그야말로 꽃 본 나뷔처럼 물 만난 고귀처럼 설레임이 가득합니다

 

★이름만으로도
 정겨움이 물씬 솟아오르는 꽃조개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내려갈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홍성으로 내달렸지만

지금 이 순간은 언제 내가 그랬나 싶습니다
얼른 준비를 마치고 덥석! 안기고 싶은 조급함에 준비하는 손길이 바쁩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도는 제대로인데 밤 산행에 필수인 자세하면서도 감성 넘치는

임채미님의 산행기가 한남금북 것과 바뀌어 있습니다
가기야 하겠지만 어둠 속에서 발 품을 두 배는 더 팔아야 할 것입니다
은근히 기대했던 학당고개나 분골고개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려면 어떠랴, 가는데까지 가자고 마음을 달래며 떠납니다

★밤이슬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지며 신발을 촉촉이 적십니다
내심 이슬들에게 미안함을 금치 못함도 잠시, 아파트단지 뒷산에서

잡목과 덩굴의 무성함으로 금세 황당함에 빠집니다
표시기가 저만큼 보이는데도 그 곳으로 접근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이리저리 들어가려다 되돌아 나오기를 거듭하다 모질게 마음먹고

헤쳐나가기를 반복하며 신성역에 도착하니 20분이면 됨직한 거리를 한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굳게 잠긴 문을 밀어보다 담을 따라 100m 쯤 옆으로 가봐도 끝날 기미가 없습니다
최종선택으로 울타리를 넘기로 합니다
역관사에서 우렁차게 짖어대는 복날을 무사히 넘긴 복 많은 멍멍이 소리를 뒤로

철길을 건너서 잡초 밭을 가로지르니 마을도로가 나옵니다

 

★도로 너머에
 살포시 내려앉은 산자락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발길 흔적은 있는데 표시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른쪽으로 마을도로를 따라 갈 것인지 산자락을 그냥 치고 올라갈 것인지 고민에 휩싸입니다
지도를 보다가 아까 신성역을 찾아올 때 조금 내려왔던 점이 떠올라

오른쪽으로 마을 안길을 따르며 다음 능선을 향합니다
아마도 단잠을 자고 있을 농가 울타리를 끼고 조심스레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텃밭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곳에 반가운 표시기가 보입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가 끝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진짜 술래잡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호젓한 숲과
 인삼밭을 지나고 나서부터 표시기를 보는 횟수가 점점 뜸해집니다
나침반과 지도를 자주 확인하며 방향을 가늠하는 횟수는 점점 잦아집니다
삼각점이 있는 봉을 넘어서 한참을 가도 표시기가 없어 되돌아갑니다
선답자의 산행기가 다시금 아쉬워지는 순간입니다
아까 봉우리를 오르면서 본 표시기가 있는 데까지 가봐도 옆길은 없습니다
의구심을 확신으로 고쳐 잡고 희미한 길을 계속 나아갑니다
그래도 표시기를 달지는 못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이 길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마고개에 닿아서야 안도와 표시기를 달지 못한 후회를 동시에 합니다

 

★곳곳에서
 소를 키우는 축농가가 많아 소 울음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발정 난 암소의 애원에 찬 울음소리는 밤공기를 가르며 멀리까지 들립니다
암소는 님이 그리워 밤이 길고 내게는 가야할 길이 멀기에 긴 밤입니다
개들이 요란스럽게 반기는 아홉굴고개를 지나
그 옛날 독립만세를 애타게 외치던 영령들의 함성이 가득한 생미를 지나
꽃밭굴고개를 건너는데 해님이 연홍색 구름너머로 아침인사를 건넵니다
지표가 대부분 진흙으로 덮인 꽃밭굴고개 부근은 기대와는 달리

꽃은 보이지 않고 길이 온통 진흙탕이어서 이름이 무색합니다
진흙굴고개로 바꿔야 할 지경입니다

 

★신풍고개를
 지나면서 차츰 길 찾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산은 자연과 인간의 영역다툼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곳입니다
내 앞을 가로막은 거친 숲은 사람이 들어오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지키려는 처절한 산의 몸부림입니다
그 곳을 들어가려는 나의 몸부림엔 무모함과 미안함이 함께 배어 있습니다
"미안해요, 그냥 지나가기만 할게요!" 양해를 구해봅니다
"그대에게 상처를 주듯이 그대도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인정합니까? "
불현듯이 산이 묻습니다
"네! 인정하고 말고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입힌 나의 양심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내 몸의 상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낫지만 당신에게 남긴 인간의 흔적은

좀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익히 알기 때문입니다
오서산을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입니다

 

★한삼덩굴이
 무성한 우수고개를 지나 햇살이 뜨거운 물편고개를 지나 스무재에 닿았습니다
새도로를 내면서 다 걷어내지 않은 옛도로 귀퉁이의 멍석만 한 그늘 밑에서 잠시 누웠습니다
시내버스가 지나 갈 때면 그만 마치고 청양으로 가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합니다
조금 남은 물과 먹거리, 끈적거리는 땀과 예전 같지 않은 무릎 등 이런저런 장애요소가

마음을 흔들지만 당장 눈앞의 백월산을 오르고픈 욕심을 누르지는 못합니다
언덕을 넘자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숨이 멎습니다
백월산은 까마득히 구름에 숨어있고
짙푸른 산자락에는 옹기종기 산촌이 정겹습니다
죽림에 둘러싸인 처음 집에서 물을 얻었습니다
"물이 미지해서 어째요.?"고추를 손질하던 할머니의 걱정이 푸근합니다

 

★거대한
 용의 꼬리에서 머리를 향해 가는 듯 백월산을 오르는 길은 꿈틀거립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발길을 끌지만 이미 백월산신령님의 최면에 걸린 몸은

구렁이의 독심술에 걸려든 개구리처럼 허우적거리며 비탈을 기어오릅니다
한 차례 잔 등을 올랐다가 잠시 파도를 타 듯 숨을 고르던 마루금은 가파르게 동쪽으로 치솟다가

목덜미쯤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성태산,문봉산,성주산 줄기로 올라선 길은 다시 동북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비틀대던 걸음을 추스려 비늘을 닮은 바위지대를 좀더 지나니 드디어 백월산신령님이

두 팔 벌려 반겨 주시는 정상입니다
시멘트로 고정시킨 두 개의 대리석과 어지러운 표시기는 오서산 오름길에

왜 그토록 산이 처절하게 저항했는 지를 절감하게 합니다
솔바람이 시원한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잠시 속세를 굽어보며 달콤한 명상을 즐깁니다
지금 내게 부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뉘엿뉘엿
 기우는 해님이 그만 일어서라고 재촉합니다
서운함을 삼키며 공덕재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릅니다
무성한 잡목은 조금 전 정상의 희열에 비하면 감지덕지일 뿐입니다
공덕재를 지나며 본능이 제발 그만 가자고 속삭이지만 못들은 척 무시하고 소나무 간벌지대로 올라갑니다
구봉산 가는 길에 오서산 너머로 붉은 해가 지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서산에 올라 기다리다가 덥석! 가슴으로 받아 안고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이 그린 수묵담채화에 취해 자꾸만 뒤돌아보며 갑니다

 

★해가 지면
 어둠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넌더리가 난 듯
밀물처럼 몰려와 무겁게 대지를 덮어버립니다
빛이 사물을 보이는 것에 의지한 색에 비중을 둔다면
어둠은 마음의 눈으로 느끼는 오온에 몰입하게 합니다
하지만 색즉시공이든 조견오온개공이든 허기에 지친 육신은 어서 빨리 여주재의 구봉휴게소에 가서

맥주 한 모금과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원입니다
구봉산을 지나 걷기 좋은 목장지대 임도를 고마운 마음으로 지나니

거대한 절개지를 내려가야 하는 구시치입니다
구봉휴게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시 쉬었다가 학당고개와 분골고개를 가리라 다짐하며

구시치를 건너 천마봉을 오릅니다

 

★송신탑이
 반기는 천마봉에 오르니 멀리서 자동차소리가 들립니다
처음 내림길에는 표시기가 하나도 없기에 좀더 돌아가니 표시기가 있습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뒤로 돌아 마지막 힘을 내어 쏜살같이 내려갑니다
하지만 더 생각해야 했습니다
아니 내림길이면 섣불리 내려가지 말고 좀더 살펴야 했습니다
거의 다 내려가서 수풀을 벗어나니 자동차 도로가 저 멀리 왼쪽 위로 보입니다
아차! 싶어 지도와 나침반을 놓아보니 천마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냥 도로를 향해 나갈까? 하다가 경솔함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다시 천마봉을 향합니다
지치면 아무래도 판단력이 흐려지나 봅니다
올라가는 길에 왼쪽으로 표시기가 보이기에 무심코 따라 내려가 보니

아까 올라오던 길이어서 또 돌아섭니다
뒤죽박죽 흐느적흐느적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윽고
정상에 다시 올라와 아까 표시기가 없는 길을 한참 가니 낯익은 표시기가 보입니다
아! 1분만 걸어와 보면 될 것을 무려 한 시간을 오르락내리락 한 것입니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아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올라와 보길 잘 했다고 자위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좌측 발 밑 가깝게 도로가 보이는 끝자락에서 내려갈까? 하다가

앞에 보이는 표시기를 따라 좀더 가니 길이 없어지고 잡목이 무성합니다
돌아갈까 하다가 좀더 나아가니 수직의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좌우를 살피니 도저히 내려갈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되돌아 올라가기는 싫어서 옆으로 조심스레 돌아가니 소나무 뿌리가 길게 늘어진 곳이 있습니다
대야산 직벽을 내려가던 기억을 떠올리며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착지하니 황천길을 갔다 온 기분입니다
여주재로 올라가 휴게소를 찾으니 10시가 넘어서인지 불이 꺼져 있습니다
물도 먹거리도 기력도 소진해버린 육신을 어두운 휴게소 앞마당에 누이고
오늘은 여기서 길을 끝내기로 합니다

 

*영혼을 산에 준 자유인/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