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4337. 9. 2(목), 대체로 맑음
●제 24 구간 : 도래기재∼화방재(휴식 포함 산행시간:10시간 5분)
●여정 : 도래기재(08:05)∼구룡산(09:55)∼곰넘이재(11:25)∼신선봉(12:00)∼
             깃대배기봉(14:45)∼부소봉(16:00)∼태백산(16:30)∼화방재(18:10)
●홀로 종주기
- 대간 가는 길에
9.1∼3일까지 xx 시험 일정 때문에 다시 논산으로 내려갔었다. 첫째 날에 시험 보기를 신청하여 평가를 모두 끝내었다.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진 일정이었다. 그러면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대간꾼 이기에 대간으로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저녁 20:40분 경에 평가가 끝나고 곧바로 짐을 정리하여 21:30분 경, 논산을 출발한다. 조치원과 증평을 경유하여 충주를 지나간다. 승용차 LP가스를 보충하고 갈까 하다가 풍기까지 가서 보충하려고 충주를 그대로 통과한다.

 죽령을 넘어서 풍기에 들어가니 어느 듯 밤 12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LPG 충전소는 문이 닫혀 있고 차의 연료계는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충주에서 보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영주시내로 차를 몰아간다. 약 2km에 가까운 직선 비행기 활주로로 닦여진 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려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빛이 번쩍한다. 아이쿠 찍혔구나. 속도계를 보니 80km를 넘고 있다. 제한속도 60km에 20km 이상을 초과하였다. 순간 벌점과 범칙금이 떠오른다. 15점에 6만원, 아이고 아까워라, 그 돈이면 우리 아이들 맛있는 것 실컷 사줄 수 있는 돈인데, 활주로에 속도계를 설치해 놓다니 지독한 X들이로구나. 애꿎은 경찰을 원망해 본다.
영주시내를 뺑뺑 돌면서 찾은 충전소에서 연료를 넣고 도래기재 쪽으로 접근하는 길에 내내 아쉬운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카메라를 부수어 버릴까 싶은 생각도 아니 드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제기럴, 방구 낀 놈이 성낸다더니 내가 그짝일세, 하지만 사진 찍히고 기분 나쁘지 않은 넘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사고 나지 말라는 하늘의 보살핌이었다고 애써 위안하며 차를 몰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집으로 오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지난 번 시원하게 씻었던 도래기재 정자에 도착하니 벌써 새벽 3시가 되어있었다. 차에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06:45분, 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들머리로 들어선다. 제법 서늘한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30분 정도를 걸었을까, 첫 번째 만나는 임도로 내려서는데 바로 앞 언덕배기에 아름드리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구룡산 문지기를 서 듯 우뚝 서있다. 어제의 장거리 야간 운전과 적은 수면 탓인지 다리가 조금은 무거운 듯 한데 능선 숲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구룡산의 윤곽이 마치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구룡산 오르는 길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군데군데에서 신선함을 더해준다. 이미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하지만 능선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상쾌하고 시원하다.

  

  헬기장으로 만들어진 구룡산 정상은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고,
북동 쪽 멀리서 태백산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회색 구름 속에서 흐르는 모습이 장엄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고 신비감이 서려있는 듯 하다. 맑은 날 선명하게 보였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남쪽에서 복스럽게 흐르는 시루봉 능선 위로 짙은 구름이 흘러간다.
 태풍 차바는 정녕 올라오고 있는 것인가, 메기에 이어서 우리 나라를 또 한번 할퀴고 지나갈 것인가. 아니기를 기원한다.
   
 
 무려 50분이나 휴식을 하고 구룡산 정상을 내려간다. 고직령과 곰넘이재로 가는 길은 마치 나무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 같다. 싸리나무와 철쭉 등이 엄청나게 우거져서 허리를 굽히고 진행하도록 한다.
  

 곰넘이재부터는 길이 넓어지면서 진행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대간길 초입부터 괴롭혀온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거미줄이 쉴새없이 얼굴에 달라붙어서 억수로 성가시다. 오늘은 앞서 간 대간꾼도 없었나.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오랜만에 보는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어서 다리에 스치는 조릿대 잎사귀의 사각대는 소리가 피로를 조금은 덜어 주는 것 같다. 이런 조릿대 군락은 차돌베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신선봉 꼭데기를 향하여 오르는데 멀리서 정상석인 듯한 것이 보여서 꼭데기인 줄 알고 올라보니 경주 손씨 묘지의 비석이었다. 정상을 향해 계속 직진을 하는데 조금씩 내리막인 듯 하고 왠지 분위기가 어색하며 그 흔하게 보이던 표지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행여나 하여 얼마를 더 가 보지만 계속 북쪽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5분 정도를 진행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서 다시 돌아 나온다.

 묘지가 있는 곳이 정상이었다. 정상에는 묘지를 잘 안 쓴다고 들었는데 왠 일일까. 관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쨌거나 대간길은 묘지가 있는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거의 300도 이상 꺽어진다. 거의 정상을 올라오던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는 듯 하다. 신선봉을 오르면서 그토록 많이 보이던 조릿대는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대간길을 따라서는 차돌베기까지 계속 군락지가 이어진다.
간간히 태백산 쪽에서 전술기의 굉음과 로켓탄 발사 폭발음이 귓청을 찢는 듯 들려온다. 조용한 산 속에서 이보다 더한 소음이 있을까.

 바깥세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숲길은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답답하게 하는데 그나마 길가로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심심함을 위로해준다.
각화산으로 연결되는 삼거리 차돌베기 이정표를 보면서 지도를 살펴보지만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있지 않고 삼거리임을 미루어서 나의 위치를 짐작한다.

  

  깃대배기봉 가는 길의 넉넉한 능선길은 마치 참호를 지나가는 듯 깊이 꺼져있고 군데군데 멧돼지들의 파헤친 흔적들이 마치 밭을 일구기 위해 갈아엎어 놓은 듯 하여 멧돼지들의 수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케 한다. 설마 내 앞에 그 놈들이 나타나지 않겠지. 그러한 파헤침은 태백산 능선까지 이어진다.
길가로 새의 머리와 부리, 날개 형상을 한 이삭바꽃들이 하나 둘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을 할수록 이젠 숫제 꽃밭이다. 이렇게 많은 이삭바꽃들을 보기는 머리털 나고는 처음이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깃대배기봉은 가짜?
신선봉을 출발한지 두 시간 사십 오 분, 표석은 없고 등산 안내판이 설치된 깃대배기봉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비록 밋밋하지만 오름이 계속되는, 분명 정상은 아닌 듯 한데 여기가 깃대배기봉이라고 안내판에 표기되어 있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마침내 제일 높은 듯한 지점이 나타난다. 미루어 짐작컨데 안내판을 짊어지고 온 사람이 지쳐서 더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밋밋한 산이다 보니 적당히 내려서 안내판을 그대로 세워놓은 것 같다. 어쨌거나 가짜 깃대배기봉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간 흔적이 그리고 많은 표지기들이 나부끼고 있는데, 진짜 봉에는 잡초와 나무만 무성하다.

  

 숲 사이로 부소봉이 언뜻언뜻 보인다. 태백산 옆에 부소봉이라. 언제 누가 명명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만은 우리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름이 아니던가.

- 잠시 옆길로 빠져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한인(한님/하느님)천제의 후손인 단군 조선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들이다. 그 중 신라는 신라 오악 중의 하나인 북쪽에 위치한 태백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태백산 정상에 천제단을 세운 것이다. 태백은 하늘을 모시는 하늘을 의미하는 산이다. 옛날에는 한인(한님)의 후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신라 또한 한님의 후손이었기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즉, 천자의 나라라는 것이다. 고구려, 백제, 발해와 더불어 신라 모두가 하늘의 자손들이었다.
우리의 조상, 하느님의 후손인 부소 단군께서는 인류 최초로 불을 발명하신 조상님이 아닌가. 부싯돌이란 말이 바로 부소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느님을 모시는 천제단 바로 아래에 부소봉이라.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면서 부소봉으로 접근한다. 표지기를 따라가다 보니 능선사면으로 돌아간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으로 가게 되겠지 하면서 조금씩 가다보니 아뿔사 부소봉을 100여 미터 앞두고 돌아가 버렸다. 다시 돌아가서 봉우리로 오를까 하다가, 저 부드러운 능선이 기다리고 있는 태백에 올라서 아쉬움을 달래기로 하고 천제단을 향한다.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주목과 고사목들이 온 산에 깔려있다. 비와 구름 속의 소백으로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조망을 보지 못한 채 걸어왔던 답답함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저 멀리 구름에 가려진 소백의 실루엣이 아련하고, 선달산과 옥돌봉, 구룡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천천히, 천천히 정상으로 오른다.
  ▼주목과 태백산 정상


 
  

  ▼태백산에서 본 구룡산(사진 가운데 봉우리)과 대간능선

  
 
 
 

  ▼태백산 천제단과 주목들의 군상


 
 

   


 
   

  

   태백의 정상부에서 내 눈은 좌우로 쉴 새 없이 바빴고 즐거웠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산정의 평평한 능선길을 따라 장군단을 지나서 돌계단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간다. 맞은편으로는 산자락에 길게 상처를 입고 우뚝 서 있는 함백이 왠지 측은해 보인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유일사, 직진하면 사길령 매표소 방향의 대간길, 갈림길을 지나서 작은 봉우리들을 넘고 돌아 경운기도 다닐 수 있는 넓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서 사길령 매표소로 내려선다.
대간길은 양배추 밭으로 경작되어 양배추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자리를 따라 표지기들이 붙어있고 길옆에는 맑은 물이 퐁퐁 솟아 나오는 샘이 생겨나 있다. 그곳에서 얼굴을 닦고 화방재로 이동한다.

태백산을 내려 온지 한 시간만에 화방재로 내려서니 시계는 18:10분을 가르키고 있다. 오늘의 대간 산행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이제 부터는 산행만큼이나 힘든 승용차 회수와 집까지 이동하는 일이 남아있다.

 ... ... ...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