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산행이 날이가면 갈수록 그 열기가 뜨겁다. 각 산악회마다 앞다퉈 실시하고 있는 이 산행은 많은 사람들이 이름 있는 산들의 산행 틀에서 벗어나 한번쯤 시도하고 싶은 마음의 한 현상인 듯 싶다. 이밖에도 각 정맥산행이 일반인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다양한 산행의 저변확대에 한 몫이 되었다.

버스와 소형차까지 가득 채운 후 동대문을 떠나 오늘의 출발지점인 미시령으로 향했다.
2시45분,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대원들은 바람 많다는 황철봉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눈 한번 못 붙인 나로서도 다소 부담감은 있지만 산속에서만 발휘되는 특유의 정신력이 있기에 그리 걱정은 되지 않는다.

산행 20분도 채 안되어 한 분이 체통에 힘들어하신다. 오늘 산행을 잘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컨디션 조절이 그날 산행의 성패를 가른다. 따라서 차안에서 최소한의 수면을 취하는 것과 뱃속에 부담이 덜 가는 식사를 하는 것이 이롭다 할 것이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사물이 시야에 구분될 무렵(4시50분) 후미그룹은 첫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1,318m 고지에 이르렀다. 이번 산행의 특징은 너덜지대와 바람이 많기로 유명하다. 오늘 산행중 규모가 크고 작은 너덜지대를 여섯번이상 통과해야하며 또한 대개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하산하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다음구간이 길고 험한 것을 고려하여 공룡능선 중간지점인 1275봉까지 길게 잡았다.

5시40분 잔가지와 돌부리에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황철봉(1,381m)에 도달했다. 황철봉의 바람은 그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너나 할 것 없이 나홀로 트위스트 스텝을 밟게 한다.
음악이 없어도, 춤을 몰라도 자연스러운 그 유연한 발놀림....
그리고 이곳에서는 멀리 대청봉을 위시한 서북능선, 공룡능선, 검푸른 동해바다 그리고 지난 구간의 상봉까지 사방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저항령 좌우측에는 백담사로 갈수 있는 길골과 반대편 설악동쪽으로 빠지는 저항령 계곡이 있다. 하지만 그 거리는 만만치 않다. 다시 너덜을 밟고 올라서면 갈림길을 접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우왕좌왕 하게된다. 왼편으로도 표시기가 있는데 초행자가 가기엔 어려운 암벽을 타야하므로 그냥 봉우리를 넘어서 가는 것이 무난하다.

이 구간의 능선에 홀로이 앉아 모든 시름을 덮어두고 주변의 산세와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산행의 맛을 배가시킨다. 마등령에 도착(9시)하니 여러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몇몇 분은 비선대로 하산하시고 다른 분들은 마음을 굳게 다지며 공룡능선을 향한다. 이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6∼7시간을 걷고나면 체력이 상당부분 소진되고 팔다리가 내의지권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건대 표정이 제각각 이다. 결코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난 할 수 있다는 주문만 외우는 듯.....

공룡능선은 주변경관이 빼어난 반면에 산행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구간이다. 하늘을 뚫을 듯이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를 낑낑대며 올라서면 건너편에는 더높은 봉우리가 비웃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단순한 평지가 아니라 하염없이....아주 설설 기면서 내려갔다가 또 헥헥대며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진을 빼는 것이다. 이때 받는 난감한 질문은 '얼마나 더가야돼요.' '계속 이런가요?' 이럴때 나는 '상투적인 말로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세요.'
이때 무전기에서 대장나으리의 충격적인 연락이 왔으니, 오늘 하산하기로 한 설악골 중간지점에 산사태가 일어나서 바윗돌이 구를 위험이 있으므로 희운각 직전의 무너미고개까지 가야 한단다. 지금까지 각종 위로의 말을 다해가며 용기를 북돋았는데 세네시간을 더 걸어야하니 앞으로는 뭐라 말해야 할지....더구나 많이 지친 상태에서.....아니나 다를까 몇몇 사람은 '나 어떻게!!' 하는 표정으로 사색이 된다. 고1,2의 어린 학생들에게는 심적인 타격이 크다. 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예서 말수는 없잖은가? 엎어지고 깨어져도 일어나야 하며 산속에서 이런 추억이 없다면 그 어디에서 산행담을 나누랴!!

11시 50분 1275봉을 지나서 아래로 내려가니 대장께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길을 가다보니 지난겨울 눈보라가 몰아치고 가슴까지 차 오른 눈을 뚫고 걷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 추위에도 러셀을 하고 나면 등에서 땀이 나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기도 했다. 또한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헤멜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인간탱크라 불리는 박진서 사장님의 '길 찾았다!!!'라는 소리가 아직도 환청처럼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산행이 내게는 뒷동산 산보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발걸음을 재촉한 일행은 2시가 되어서야 무너미고개에 도착했다. 저마다 갈증에 목말라 하던 우리는 계곡에서 목을 축이고 얼굴에 땀을 씻어낸 후 정신을 가다듬고 하산을 시작했다. 이곳에도 가뭄으로 인하여 물줄기는 가늘었으며 사람들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연신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3시에 양폭을 지나서 걷다보니 지쳐서 쉬고 있는 일행들이 자꾸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산행시간이 12시간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에 피로도가 한층 고점에 올라있는 상태이다.
설악동에 도착한 시간은 5시30분. (총산행시간 14시간45분)
오늘 산행거리는 30km에 이른다는 것이 중론이다.

백두대간을 완주한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하다.'라는 존경 어린 말을 종종 듣는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이 힘든 산행을 밥먹듯이 하며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슬기와 지혜로서 그 고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체력만 가지고 산행하기에는 벅차며 정신력이 뒷받침 될 때 이런 산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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