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산줄기환주41

                                                                     (백두대간 2)


 

                                           *환주구간:중재-봉화산-사치재

                                           *산행일자:2008. 10. 9일(목)

                                           *소재지  :전북장수 및 남원/경남함양

                                           *산높이  :봉화산920m, 월경산982m

                                           *산행코스:중기마을-중재-월경산-광대치-봉화산-복성이재  -사치재-사치마을

                                           *산행시간:6시55분-18시3분(11시간8분)

                                           *동행    :나홀로

 


 

  호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 종주 길에 자주 보았던 꼬막껍질을 이번 섬진강산줄기 환주산행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복성이재에서 만나본 꼬막껍질이 더할 수 없이 반가웠던 것은 이 고개를 지나는 산줄기가 백두대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인 호남정맥과 북쪽 울타리인 금남호남정맥에서 만나본 꼬막껍질을 대간 길에서 보았다는 것은 바로 동쪽 울타리산줄기에서도 꼬막껍질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꼬막껍질은 섬진강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산줄기가 강줄기와 다른 것은 문화의 존재여부입니다.

저는 문화란 사람들이 살면서 남기는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문화가 강줄기를 따라 발전한 것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과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이고, 산줄기를 따라 문화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그 정반대 이유에서입니다. 어느 한 산을 정해 점의 산행을 하노라면 비록 강줄기와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스님들이 모여 사는 절이 있어 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살지 않은 산줄기를 이어가는 선의 산행에서는 좀처럼 문화를 만나 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예외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이쪽 저 쪽 사람 들이 넘나드는 고개 마루입니다.


 

  제가 꼬막껍질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이 꼬막껍질은  동물들이 남긴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남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정맥 종주 길에 능선에 떨어져 있는 꼬막껍질을 몇 번 보고 혹시나 이 산줄기가 꼬막이 많이 자생하는 바다가 융기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주로 묘지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먹고 껍질을 버려둔 것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영취산에 올라서며 이제껏 보아온 꼬막껍질이 섬진강산줄기를 꿰뚫는 유일한 문화의 흔적일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동쪽 울타리인 대간 길에서도 이 꼬막껍질을 반드시 만나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복성이재에서 꼬막껍질을 만나 보자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싶어 기뻤습니다. 백두대간과 7개 정맥을 종주하면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전 산줄기를 꿰는 그래서 산줄기에서 문화를 만나보기는 이번 섬진강산줄기가 처음이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어째서 꼬막껍질이 섬진강산줄기에 산재해 있는 가를 규명하는 일은 산줄기와 강줄기를 모두 돌고 난 후로 미뤄둘 뜻입니다.


 

  6시55분 중기마을을 출발했습니다.

함양 읍내 찜질방에서 하루 밤을 묵은 후 아침 6시20분에 중기마을로 향하는 첫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밤을 주우러 나섰다는 아주머니 몇 분들도 중간에 다 내려 이 버스 종점까지 타고 간 손님은 저 혼자였습니다. 중기마을에서 하차해 중재로 오르는 길에 밭을 지키는 누렁이 개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저를 보고도 짖지 않고 눈만 껌벅거리는 녀석을 보고 순둥이 개의 인사는 저런 것이다 싶어 저도 눈을 껌벅이며 반가움을 표한 후 바짝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침이슬로 바지 단이 다 젖으리라 걱정했는데 가을 한 복판의 풀잎에는 여름 내내 맺혔던 이슬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7시28분 해발650m의 중재고개마루에 올라 섬진강산줄기 환주를 시작했습니다.

안부사거리인 중재에서 왼쪽으로 올라서서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3년 전 9월에는 동이 트기 직전에 헤드랜턴을 켜고 이 길을 오르면서 혹시라도 야행성동물인 멧돼지와 맞부닥뜨리는  것은 아닌가해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번에도 잣나무 숲을 벗어날 즈음 아래 산자락에서 멧돼지(?)의 포효소리가 들려와 움찔했습니다. 지난번에 쉬었다 간 묘지 봉우리를 지나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오른 쪽으로 우회해 월경산 분기점에 다다랐습니다. 지난 번 백두대간 종주 시에는 안개가 짙게 깔려 이 갈림길을 언제 지났는지 모르고 지나 마루금에서 서쪽 위로 조금 벗어나 있는 월경산을 오르지 못했습니다.


 

  8시39분 해발 982m의 월경산을 올랐습니다.

“중치1.9Km/광대치1.3Km"의 표지판이 땅바닥에 놓인 분기점에서 서쪽 위로 8-9분을 걸어 월경산을 들렀습니다. 싸리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삼각점을 빼고는 정상을 알리는 표지물이 하나도 없어 얼른 삼각점만 사진 찍고 곧바로 대간 길로 복귀했습니다.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진행 중 이내 만난 약초시범단지의 철망울타리를 따라 내려가다가 몇 분 후 오른 쪽으로 꺾어 사거리안부인 광대치로 내려섰습니다. 3년 전 짙은 안개로 들르지 못한 월경산과 위치를 몰랐던 광대치를 이번에는 확실히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봉화산4.7Km/중치3.2Km"의 표지목이 세워진 광대치에서 조금 올라가 만난 바위에서 짐을 내려놓고 사과를 까먹었습니다. 광대치 출발 40분이 조금 못되어 "봉화산0.8Km/광대치3.8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봉우리에 올라섰는데 해발고도가 940m(?) 가량 되는 이봉우리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연봉들 거의다가 비슷한 높이여서 지도상의 944봉이 어느 봉우리인지 가름 하지 못했습니다.


 

  10시35분 동쪽사면을 깎아지른 암벽이 받쳐주는 전망바위를 지났습니다.

해발900m가 넘는 연봉들을 모두 지나 다다른 봉화산2.5km 전방 지점에서 몇 분을 더 걸어 전망바위에 다다랐습니다. 3년 전 이곳에서 쉬어갈 때 이 바위를 지탱하는 몸통바위가 운무를 뚫고 잠시 모습을 드러내어 순간을 놓칠세라 얼른 셔터를 누른 기억이 났습니다. 왼쪽 아래 골짜기와 들판이 한 눈에 잡힐 정도로 전망은 좋았지만 안개와 숨바꼭질하던 3년 전에 비해 신비감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전망바위를 지나자 억새 숲이 선보인다 했는데 본격적인 억새밭은 잘 다듬어진 묘지 봉우리에서 시작됐습니다. 깔끔한 묘지가 들어선 봉우리에서 남서쪽으로 15분가량 걸어 차들이 다닌 흔적이 역력한 임도로 내려서기까지 코앞의 억새밭과 저만치 앞에 솟은 봉화산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손놀림이 바빴습니다.


 

  11시32분 해발 920m의 봉화산을 올랐습니다.

임도 건너 올라선 억새밭에 초대된 손님이 저 혼자여서 봉화산에 이르기까지 20분 가까이 마냥 호젓한 억새밭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고개를 삐쭉 내밀며 저를 반기는 억새들이 소슬바람에 흥이 겨워 일제히 어깨춤을 추는 모습이 군무(群舞)의 아름다움을 한껏 내보여주어 모처럼 제가 산식구로 대접받는 듯 했습니다. 무인산불감시초소에서 조금 떨어진 봉화산 정상에 오르자 북쪽 멀리 자리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희미하게나마 일망무제로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사방을 휘둘러본 후 그늘진 곳으로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


 

 13시46분 복성이재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12시8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서쪽으로 진행하다 다리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갔습니다. 풀숲 길을 지나고 보리수나무 숲도 지났습니다. 기대했던 보리수 열매는 거의 보이지 않아 한 두 그루에서 겨우 몇 개를 따먹었는데 그 맛은 여전히 새큼했습니다. 3년 전 대간을 종주할 때 조금은 지겹게 느껴졌던 솔밭길이 시작됐습니다. 중간에 끊긴 곳이 꽤 여러 곳이긴 하지만 정령치 앞 봉우리인 고리봉까지 이어지는 솔밭 길을 지루하게 느꼈던 것은 늙은 소나무의 수피가 비를 맞아 시꺼먼 색을 띠어 산 전체가 어두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묘지봉 위에서 철쭉 숲길을 따라 걸어 로프를 잡고 치재에 내려선 시각이 13시12분이었습니다. 잡목들이 좌우 양쪽의 길을 덮어 마치 터널처럼 보이는 안부사거리 치재에서 철쭉 숲길로 똑바로 올라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철조망을 따라 내려가다 솔밭 길을 지나 복성이재에 다다랐습니다.


 

  15시29분 781봉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복성이재에서 차도를 막 건너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호남정맥 종주 길에 자주 보았던 꼬막껍질이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10분도 더 못 걸어 길을 잃고 10분 가까이 헤매다가 지도와 나침반의 도움으로 간신히 제 길을 찾았습니다. 한 낮의 기온이 섭씨 25도에 달한다는 이상고온에 길 찾느라 진이 빠져 아막성터가 보이는 능선에서 20분여 쉬면서 빵을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아주 짧은 거리의 너덜겅을 올라 만나 본 아막성이 견고해보였습니다. 둘레가 633m에 이르는 아막성을 백제가 여기에 쌓은 것으로 보아 이 산이 신라와의 접경지대였던 것 같습니다. 아막성 위 묘지봉에서 철쭉 밭을 지나며 철을 모르고 피어난 철쭉 꽃 한 송이를 보았습니다. 묘지봉에서  781봉에 이르기까지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17시48분 88고속도로가 지나는 사치재로 내려섰습니다.

781봉에서 10분을 쉰 후 소나무 숲과 철쭉 숲을 지나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위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안부삼거리에 이르는 길도 솔밭 길이었습니다. 묘지를 지나 조금 올라섰다가 풀숲 길의 임도가 지나는 안부사거리로 다시 내려선 시각이 16시38분으로 머지않아 어둠이 밀려올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 9월에 이 구간을 뛸 때보다 날씨가 좋아 산행속도가 빠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인 일인지 오히려 조금씩 더뎌지는 것 같았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15분가량 가파른 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능선 삼거리에서 5분가량 쉬면서 숨을 돌린 후 왼쪽으로 내려갔다 700봉(?)에 올라서자 지리산휴게소가 보여 그렇다면 사치재가 멀지 않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풀숲이 우거진 길을 지나 헬기장에 이르기까지 낮은 봉우리 몇 개를 지났습니다.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했고 죽은 소나무들이 즐비했습니다. 시꺼먼 소나무 밭을 지나 사치재에 내려선 시각이 17시48분으로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오른 쪽 사치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찾기가 수월했습니다.


 

  18시3분 장수군 번암면의 사치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88고속도로가 지나는 사치재에서 오른 쪽 아래 사치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다음 날 오를 고남산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사치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19시에 남원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중 이 동네 할아버지 한 분과 몇 말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군에 가셨다는 할아버지는 마침 파주 문산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셨다며 고향이 파주인 저를 반겼습니다. 젊은이들이 다 나가 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이제 시골마을은 죽은 마을이라고 걱정하시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전날 운산리마을의 할머니처럼 사람을 그리워하는 기색이 역력함을 읽었습니다. 1시간을 다 기다려 남원행 막차에 오르는 제게 할아버지께서 조심해서 산행하라는 인사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반가워하면서 짐승들이 남긴 흔적으로 볼 때는 머리발이 서는 것은 문화냐 아니냐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문화란 익숙한 것이고 야생이나 야만은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종주산행의 횟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저도 산의 한 식구가 된 것처럼 다른 산 식구들과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산에 사는 생물들과 친해진다 해서 문화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은 문화는 인류의 전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산 속의 묘지에 올라 아무리 많은 꼬막껍질을 남겨놓았어도 이로써 산식구들과 교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도 함께 어우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에서 꼬막껍질을 화두로 삼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