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로 본 평면도

북서쪽에서 본 입체도

 

시간날 때만 안내산악회를 따라 걷고 있는 대간길, 또 한 구간을 추가했다. 오늘은 노래말로 시작해 본다.

 

(애고, 도솔천아!)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고개 넘어 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벌 뿌리치고

먼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

(중략)

.......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노을 비끼는 강변에서

잠든 몸을 깨우나니

시름짐은 어딜 가고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빈 허리에 뒷짐 지고

나, 나...

선말고개 넘어서며

오월산에 뻐꾸기야, 애고, 도솔천아!

도두리벌 바라보며 보리원의 들바람에

애고, 도솔천아 !

애고, 도솔천아 !


 

위는 80년대부터 저항가수라고도 알려져 있는 정태춘의 ‘애고 도솔천아’라는 노래의 가사(중간은 생략함)이다. 이 곡은 타령조의 리듬에 저음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로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미군부대 철조망옆에 있는 시골마을 도두리를 떠나는 한 청년의 쓸쓸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젊은이에게 있어 도솔천은 고향을 떠나며 갈 수도 있는 목적지로도 생각해 보았음직하다. 그러나 마지막 쯤에 ‘애고 도솔천아!’라고 외치는 품으로 보아 안온하게 이상향인 도솔천에 도착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라고 하겠다.


 

이 가수에 대해 그 동안 들어온 행적과 전해지는 이야기를 근거로 노래말의 행간을 읽어 본다면, 청년이 정든 집을 떠나는 이유가 꼭 도솔천을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고향에 있을 수 없는 어떤 절박한 사정에 그는 집을 떠나야만 했고, 떠나는 순간 갈 곳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지만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목적지인 천상의 정토 도솔천을 이 청년도 떠올렸음직 하다. 그러나 자기의 발길이 꼭 거기를 향한다고는 보증 못하는 답답한 심정을 타령조로 노래한 듯 하다. ‘애고 도솔천아!’라는 외침은 도솔천과 자신 사이에 놓인 거리를 확인하고 그곳에 가기를 애전에 포기했기에 약간은 절망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우리는 도솔천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불교이론에 의하면 도솔천은 석가모니 부처가 머물다가 이 세상으로 오신 곳이며 현재에도 미륵보살이 그곳에서 수 억만년 후 미래에 중생을 제도하러 이 땅으로 오실 때를 기다리며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붓다가 머물고 있던 도솔천이란 어떠한 곳일까? 도솔천은 불교의 우주론에 의하면 욕계에 속하는 천계(天界)이다. 인간계 바로 위에 사천왕천, 삼십삼천, 야마천이 순차적으로 놓여있고 야마천 바로 위에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천상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겨지는데 미래의 붓다(미륵)가 거주하고 있으므로 경건한 불자들은 그곳에 태어나기를 바라게 된다.


 

도솔천이라는 이름은 즐거움이 가득차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다른 정보에 의하면 지족(知足)과 안분(安分)을 뜻한다고도 한다. 모두 이상향이 가져야 할 필수조건들이다.


 

그렇다면 도솔천은 천계(天界)의 상상 속에만 있고 이 세상(地界)에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소백산의 남쪽 자락 백두대간 마루금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도솔봉이요, 고창의 선운산을 도솔산이라고도 부른다. 광양의 백운산에도 도솔봉이 있다고 한다. 조상들은 불교의 파라다이스를 하늘에다 모셔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땅으로 가져와서 우리 곁에다 두기를 기원한 것이었다.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 산과 강을 지상최고의 낙원으로 여겼기에 거기에 걸맞는 이름을 물색하다 보니 불교의 낙원인 도솔천의 이름을 차용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해발 1,314m의 소백산 도솔봉은 우리네 산하에 우뚝 솟아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오라, 와서 파라다이스를 맛보라.’ 그렇게 도솔봉은 외치는 듯 하다.


 

신라시대 향가에는 월명사 스님이 지은 ‘도솔가’라는 향가가 있는데 이 노래는 도솔천의 주인인 미륵부처를 기리기 위해 꽃을 뿌려 신심을 나타낸다는 노래인데 ‘도솔천’이라는 이름이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는 신앙심 높은 신라사람들에게 친근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1월 14일 일요일 아침 안내산악회를 따라 도솔봉으로 가는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였다. 죽령고개를 넘어가는 국도를 차로 지나다닐 때면 국도 남쪽에 험준하게 솟아있는 도솔봉이 늘 보였고 그곳은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서 늘 신비에 싸여 있는 듯 했다. 그 후 중앙고속도로가 난 뒤로는 한국 최장의 터널이 죽령을 뚫고 낮게 지나가기에 영주를 가더라도 도로위에서 한참 위에 솟은 도솔봉을 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오늘은 그 신비를 만날 수 있는 날이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남쪽에 자리한 바위 봉우리로 그 이름이 불교의 낙원을 표현하는 매력적인 이름인지라 불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그리워할 장소인데, 나는 오늘 그 장소를 처음 만나는 감흥은 물론 소백산의 유명한 눈경치를 이곳에서도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가 크다. 또한 소백산의 이름난 칼바람도 이곳까지 분다면 온 몸으로 만나고 싶었다. 아침 7시에 서울을 떠난 산악회 버스는 단양휴게소에서 30분 이상이나 쉬었기에 10시 36분 죽령고개에 산객들을 내려 놓는다.


 

날은 개였지만 제법 바람이 불어 스산한 기분이다. 무거운 몸을 추스르며 도솔봉을 향한다. 겨울철인지라 운동량이 적어 몸무게가 3kg은 족히 늘어서인지 발걸음이 무겁다. 겨울방학이라 집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하마부인이 자주 먹을 것을 챙겨주니 살이 찌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무거운 쇳덩어리로 된 구식 탱크처럼 몸무게가 나가기에 숨이 턱에 닿을 것 같지만  힘을 내어 쉬지 않고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길에는 점점 눈이 쌓여 있다. 우선은 아이젠없이 운행해 본다.

 

11시 20분 경 제법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전망점에 도착했다. 여기서 부터는 경사가 좀 완만하여 살 것 같다. 그 대신 눈은 더욱 쌓여 있다. 우선의 목표지점은 삼형제봉이어야 한다. 봉우리가 세 개여서 삼형제봉이다. 산행 시작 후 한 시간쯤 가니 삼형제봉을 오르내리게 된다. 첫 번째 봉우리를 12시 26분에, 두 번째 봉우리를 12시 35분에, 세 번째 봉우리는 12시 40분에 통과하였다. (얼마 전 거금을 주고 구입한 GPS를 가지고 다니기에 각 지점을 통과한 정확한 시간의 확인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비싼 GPS가 그저 시간을 확인하는데만 쓰이고 있다.)

 

삼형제봉의 첫 봉우리에 올라서서 처음으로 도솔봉을 마주 한다. 여느산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기대가 너무 컸나?) 우선 저기까지 걸어서 가야한다. 두번째 봉우리에선 도솔봉을 더 가까이 보며 그 신비를 상상해 본다.

 

제1형제봉에서 처음 맞닥뜨린 도솔봉의 자태


 

제2형제봉에서 더 가까이 보는 도솔봉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멀리 소백산의 제2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단정한 능선이 눈에 들어 온다. 능선길에는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북쪽에 면한 오른쪽 뺨이 감각이 없어 손으로 어루만지며 운행을 하였다. 그래도 옷을 두껍게 끼어 입은지라 몸속에선 땀이 배어나온다. 삼형제봉길의 중간쯤에서 더는 못 견디고 아이젠을 배낭에서 꺼내어 착용하였다. 내리막길에선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우 가파른 것은 아니지만 1,000m가 넘는 산이라서, 쉬지 않고 오르려니 도솔봉 직전에서는 숨이 헐떡여진다. 오후 1시 19분 드디어 그리던 도솔봉에 도달하였다. 해발 620m인 죽령을 떠난지 2시간 43분만에 고도를 700m 쯤 높이고 거리는 약 6km를 걸어와서 해발 1,314m의 몇 년동안 상상속에서만 밟으며 오르기를 고대하던 도솔봉 정상을 밟게 된 것이다.

 

여기가 수미산 위에 솟아있는 그 아름다운 불교의 낙원 도솔천인가? 아름다운 정원과 꽃들은 없다. 산꼭대기인지라 바람이 부는데 일망무제로 사방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평범한 바위 봉우리 위에는 공간이 5-6평 정도 있고 엷은 눈에 덮여 있다. 그리고 白頭大幹이라는 한자 옆에 兜率峰이라고 어려운 한자가 정상석 위에 쓰여져 있다. 높이는 1,314.2m라고 적혀 있다. 정상의 평평한 공간에 서서 사방을 돌려 동영상도 찍고 정지된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산객들의 인물사진을 정상석을 배경으로 찍어주고 나도 한 장 찍어 받는다.

 

 

도솔봉 정상

 

정상은 평범 그 자체이다. 도솔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저 아랫 동네에서 구름속에 싸인 이 봉우리를 볼 때의 신비감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곳을 낙원이라 조상들은 이름 붙였거늘. 멀리 단정한 소백능선 위에서 눈옷을 엷게 입고 있는 연화봉과 비로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蓮花와 毘盧 또한  佛國의 파라다이스이리라. 또 앞으로 가면 곧 있는 묘적봉은 어이 하랴. 신묘하고도 적막한 봉우리가 아닐런지. 한가하고도 기이한 곳에 진리가 있지 않을런지? 몸은 평범한 산길을 와서 보통의 산봉우리에 올랐지만 마음은 이상향의 도솔천을 찾아 헤매인다. ‘이 어딘가 미륵보살이 계실 터인데?’

 

눈앞에 펼쳐진 경치는 보통의 경치로 감흥을 주기엔 약하다 치고 즐거움이 가득차 있고 지족(知足)과 안분(安分)을 깨닫는다는 도솔천의 정신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가? 역시 아니 올시다이다. (일체유심조라는데 내마음마저 비뚤어졌는가?)

 

 

단정한 소백산 능선: 왼쪽이 중계탑이 있는 제2연화봉이고, 오른쪽으로 제1연화봉과 최고봉인 비로봉이 펼쳐진다.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한마디를 나도 가수 정태춘처럼 뱉어내고 만다.

 

‘애고, 도솔천아!’

 

현실에 존재하는 평범하고도 드라이한 도솔봉과 미륵불이 계시는 그림같은 도솔천은 결국 너무나도 멀다는 깨달음에 대한 나의 외침이다. 아름다운 도솔천은 가슴속에 묻고 현실의 도솔천에선 10분 정도 상념을 굴린 후엔 과감히 떠나야 한다. 어쩜 다른 도솔천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급경사길을 내려오니 제법 넓은 헬기장이 있고 또 하나의 도솔봉 표시 정상석이 서 있다. 오후 1시 반이다. 헬기장에서 내려와서 조금 걷고 있는데 산객 2인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권한다. 식사시간으로 약 20분을 쓴다.

 

 

앞으로 가야할 능선이 펼쳐져 있다.

 

걸어서 넘어야 할 다음 목표는 묘적봉이다. 이 이름 또한 묘한 여운을 남기기에 그 이름을 풀이하며 가는 길이기에 힘이 덜 드는 것 같다. (그러나 묘적봉에 대한 연구는 해보지를 않아 어떤 이름인지 아직 모르겠다.) 오후 2시 40분 묘적봉에 도착한다. 역시 평범한 봉우리인데 잠시 머물며 지나온 도솔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멀리 북쪽의 소백능선도 다시 한 컷 찍어 둔다.

 

 

묘적봉에서 바라 본 도솔봉

 

걸음을 재촉하여 오후 2시 56분 안부인 묘적령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대간길을 접고 우회하면 사동리로 내려가게 되는데 지난해 저수재에서 묘적령까지 대간길을 걸을 때 내려간 길이다. 오늘은 안내산악회의 풀코스를 따라 묘적령에서 더 가서 솔봉을 지나 송전철탑까지 가서 단양온천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대간길을 내쳐 갔다. 단축코스를 뛰기에는 모처럼 나와서 들이는 시간과 정력이 아깝다. 지난 해에 걸은 길인데 곧 나타날 것 같은 솔봉은 나타나지 않고 다리까지 슬슬 당겨오니 조바심이 난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오후 3시 47분 해발 1,114m의 솔봉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쉬면서 역시 지나온 도솔봉을 카메라로 잡아 본다. 여기서 남쪽 어딘가에 있을 철탑을 찾으니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갈 길이 멀다. 묘적령에서 탈출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길이 멀다. 서둘러 길을 갈 뿐이다. 솔봉에서 조금 전진하니 저 앞에 드디어 철탑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부지런히 걸어서 빨리 저곳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서두르는 산행, 재미없는 산행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솔봉에서 바라 본 도솔봉

 

오후 4시 8분 능선 속에 있는 공터에 도착하고, 20분 후인 오후 4시 28분에는 드디어 철탑밑에 도착한다. 이제 어두워지려고 하니 서둘러서 하산해야 한다. 오른쪽으로 꺾어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는데 북사면인지라 가루눈이 제법 두텁게 쌓여 있다. 능선과는 달리 다져진 눈이 아니라서 밟는 맛이 색다르다. 오늘 산행에 큰 눈은 없었으나 길의 7-80%는 얇게 다져진 눈에 덮힌 상태였다. 선두가 간 길을 눈위에 난 발자국을 따라 가는데 선두는 길이 없는 곳을 헤쳐 나간 것 같다. 돌 위를 따라서 걷느라 힘이 든다. 한참 가니 다행히 제법 넓은 산길을 찾게 되어 안심이 된다. 그 길은 곧 임도로 합쳐져서 아래쪽 온천으로 향한다. 오후 5시 25분 온천 건물 앞 주차장에 서있는 버스에 도착하였다.

6시간 50분의 제법 긴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GPS는 전체 산행거리가 16.8km라고 표시해 준다.

 

오늘의 수확은 무엇인가? 신라사람들이 그리던 이상향인 도솔천이 도솔봉 위에 있었던가? 현실의 도솔봉은 평범한 바위산이었고 그 위에서 부는 스산한 겨울바람은 이 땅에서 내가 도솔천을 찾는 작업이 수월치 않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도솔천은 어딘가 꼭 있으리라.

 

이승에 없으면 저승에라도!

 

(내가 너무 오버했나?)

 

도솔봉 위에서 사방을 보다.(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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