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구간

금북정맥

산행일

차령고개~1번국도~전의산

(20km, 8시간10분)

2008년 8월 16일

 흐림

 

<산행 기록>

차령고개-국사봉-691번지방도-1번국도-골프장-전의산연수원-서정리마을

     6:50     9:00       11:15         12:15     13:45        14:15           15:00

 

 

연기군을 지나간다!


   금북정맥 11구간 산행을 간다. 오늘의 산행구간은 차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체력이 다할 때까지다. 출입금지구간과 우회도로를 지나므로 목적지를 설정하기가 애매해서다. 내심 경부고속국도가 지나는 21번 국도까지 가보겠다는 의욕으로 출발한다.

  아직은 여름이라 새벽 일찍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으므로 밤 12시에 출발하여 경부고속국도의 망향휴게소에서 2~3시간 잠을 청한다. 동이 틀 무렵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길을 나선다.

  천안논산간 고속국도에 들어선다. 2002년 12월 24일 개통한 총 연장 82km의 천안논산 고속국도는 경부고속국도에서 호남고속국도를 타기 위해 대전광역시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주고 열차가 지나지 않는 백제문화관광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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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논산간 고속국도>

  날씨가 흐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 하늘은 흐리지만 오전부터 개인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어서 개의치 않는다. 사실 2주 전 이곳에 왔다가 천안지역의 폭우로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 일기예보에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다.

  차령터널을 지나 정안IC를 빠져나간다. 고속국도를 나오니 23번 국도가 옆에 있다. 차령고개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차령휴게소 인풍기사식당이 보이고 지금은 차의 왕래가 거의 사라진 차령고갯길은 적막감이 감돈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삼남대로의 차령고개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환영합니다. 여기는 천안시입니다”와 반대편으로는 “안녕히 가십시오. 백제의 고도 공주시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이곳은 차령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인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는 “칠장산으로부터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 영맥(嶺脈)이 되어 대문령과 마일령이 되며 전의읍에서 크게 끊어졌다가 서쪽에서 일어나 차령이 되며, 또 서쪽으로 무성, 오서, 가야 등 내포의 여러 산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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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령고개>

 

  6:50

  차령고개를 출발한다. 밤새 내린 비의 여운으로 산길은 축축하게 젖어 있고 나무를 치면 물방울이 우두둑 떨어진다. 스틱으로 산길의 나뭇잎을 도닥거린다. 등산화가 젖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니까. 비는 내리지 않지만 빗물을 머금은 잡목으로 인하여 우의를 꺼내 입는다.

  국사봉으로 향하는 산길은 상쾌한 아침을 연다. 능선에 올라 잡목사이를 간다. 산길의 왼쪽은 천안시 광덕면이고 오른쪽은 공주시 정안면이다. 차령고개에서부터 천안과 공주의 경계능선을 걷는 셈이다. 정맥능선의 의미가 그뿐이겠는가. 능선 길의 왼쪽에 서 있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천안의 풍세천을 거쳐 아산만으로 흘러들고 오른쪽에 서 있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정안천을 따라 금강으로 흘러드니 물줄기의 경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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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의 아침>

  가족묘를 지나니 임도를 만난다. 잠시 후 임도에서 산길로 들어서니 342m봉으로 가게 되지만 계속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조금 있다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20분쯤 임도를 따라 걷다가 280m봉의 송전철탑(No.118)을 만나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간다.

  밤나무 밭 사이를 지난다. 알차게 여물어가는 밤이 익을 무렵이면 밤나무 주인은 밤잠을 설칠지도 모르겠다. 정맥능선을 지나는 산행객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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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밤나무밭을 지나고 소나무가 펼쳐지는 산길을 따라가니 송림 삼거리가 있는 303m봉을 지나간다. 10분을 더 걸어가니 가파른 오름길이 나오고 382m봉인 국수봉에 닿는다. 국수봉은 차령고개에서 1시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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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봉>

  11구간 산행을 하던 8월 16일은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었는데 양궁과 사격 등에서 금메달 소식이 들려와 우리를 흥분시키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한결같이 손을 사용하는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의 근육은 쓰면 쓸수록 발달하고 쓰지 않으면 않을수록 퇴화한다는 것은 상식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손재주를 좌우하는 장장근(長掌筋)이 발달했다고 한다. 반대로 발재주를 좌우하는 족척근(足蹠筋)은 서양 사람들에 비하여 덜 발달했다. 정착농경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손의 사용은 그만큼 많았던 셈인데 그것이 오늘날 금메달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산을 주로 다니는 우리 등산인의 발근육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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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을 머금은 산길>

 

  9:00

  해발 402.7m인 국사봉에 닿는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나무들은 낯선 산행객에게 인사라도 하듯 봉우리 주변을 빙 둘러섰다. 그래서 조망은 없다. 국사봉은 정맥능선에서 조금 들어간 곳인데 차령고개에서 2시간 10분이 걸린 곳이라 잠시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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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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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은 조망이 없다>

  국사봉을 출발하여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382m봉을 지나고 30분을 지나자 임도에 내려선다. 여기서도 임도 옆에는 정맥능선이 조금씩 남아 있어서 산길을 들어서기도 하는데 그냥 임도따라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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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임도를 따라 10여분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 굴곡지점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다시 20여분 더 진행하자 군부대 철망을 만난다.

  군부대 철망을 따라 진행을 할 수 없으므로 오른쪽 계곡길로 빠져 내려가는데 어딘가에 마을로 나가는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수풀이 워낙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갈림길을 놓쳤다. 산사면을 따라 한동안 내려가다 길은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군부대 철망으로 올라선다. 에라 모르겠다.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철망을 따라 간다.

  결과적으로 군부대 철망을 따라 가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자그만치 40분 이상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철망을 따라가는데 초소에서 사병이 내려다보기도 했지만 혼자여서인지 제지하지 않았고 무난하게 통과하여 군부대 후문까지 간다. 그 긴 능선은 조망이 훌륭하고 길도 선명하여 산행객을 출입금지 시킬 것이 아니라 철망을 따라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청와대 뒷산도 개방하는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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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후문앞 691번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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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의 조형물>

 

  11:15

  군부대후문을 나와 691번 지방도에 닿는다.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닦으며 긴장을 푼다.

  국사봉부터는 공주 땅을 벗어나고 연기군 전의면과 천안시 광덕면의 경계능선을 이어오다가 연기군 땅으로 들어선다. 백제 때는 두잉지현,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연기현이 되었고 조선 태종 때는 지금의 전의면, 전동면 자리인 전의현과 조치원읍 주변의 연기현이 합쳐져 전기현으로 불리다가 1914년에 연기군이 되었다.

  연기군의 군청 소재지인 조치원은 1931년에 대전, 강경과 같이 읍으로 승격되었는데 해방 전까지만 해도 근처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산이 모였다가 다른 지방으로 팔려나가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경부철도가 개통된 뒤에도 급격히 발전한 신흥도시였기는 하나 교통의 편리함이 곧바로 계속되는 발전과 이어지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대전시와 청주시가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도시의 흡인력이 강해짐에 따라 이곳의 상권은 더는 성장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기차만 수없이 지나가는 조그만 읍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연기군은 동으로는 충북 청원군과 서로는 공주시, 남으로는 대전광역시, 북으로는 천안시와 경계를 이루며 1읍 7면에 인구 8만여 명이 모여 사는 살찐 누에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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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마을입구>

  691번 지방도에서 대전가톨릭대학교 입구를 지나 15분 걸어가니 멀리 고가도로가 보이는 삼거리에 닿고 왼쪽 요셉의 마을 안내판을 따라 들어간다. 10분후 요셉의 마을 입구 입간판의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요셉의 마을이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요셉의마을성요셉치매센타이다. 2001년 9월에 설립하여 60세이상 노인의 치매, 중풍, 노인성질환의 치료와 안락한 노후생활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에 치매센타 건물을 두고 도로 따라 계속 올라가니 사각정자가 나오고 그 왼쪽으로선답자의 리본이 매달려 있어 산길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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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정자>

  산길로 들어선다. 여러 가닥의 군통신선이 얽혀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삼거리에 닿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간다. 리본을 보면서 애매한 길을 찾아 묘 앞의 1번국도가 보이는 지점까지 가는데 길을 잘못 들기 쉬운 지점이다.

  1번 국도가 내려다보인다.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이르는 498.7㎞의 1번 국도는 일제강점기부터 최초로 건설된 우리나라의 남북 종단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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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국도>

  차량이 씽씽 달리는 1번국도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지하횡단통로가 나오고 통로를 지난 후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니 경부선 철로의 ‘통행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거참, 통행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통행을 해야 하는 지점의 안내판 역할을 하고 있다.

  철로를 가로질러 건너편 도로에 올라서는데 왼쪽으로 더 올라가니 덕고개다. 덕고개에서 건너편 능선을 바라본다. 1번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금북정맥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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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고개>

 

  12:30

  덕고개를 출발한다. 건너편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마땅히 접근할 방법이 없다. 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간혹 리본이 보이기도 하는데 겨울철에 지나간 산꾼들이 붙여놓은 듯하다. 지금은 수풀이 무성하여 지나기가 어려우나 뒤편의 능선을 보고 길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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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뒤덮은 수풀>

  간신히 능선으로 올라서자 산길은 뚜렷한데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인다. 덕고개의 남쪽 어딘가에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나 보다.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연기군은 예로부터 부지런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사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동국여지승람’의 연기현 편에는 “백성들이 농사에 부지런히 힘쓰고 남을 고자질하는 풍습이 없다”고 했는데 금북정맥이 역사적으로 국경의 경계가 되는 역할을 하였으므로 평화롭게 살기에는 어려움도 있었던 듯하다. 가장 대표적인 흔적이 산성이다.

  ‘동국여지승람’의 다른 부분에는 “세 봉우리가 높이 솟아 평야를 에워쌌고 두 강이 흘러 옛 성을 휘감았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세 봉우리는 운주산, 증산, 고산을 가리키고 옛 성은 전동면에 있는 운주산의 운주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지금 남아 있는 산성들은 운주산성 말고도 고려산의 고려산성, 금성산의 금이성터 등이 있는데 가장 큰 싸움이 고려 시대에 있었던 거란족과의 싸움이다.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윤기는 “이곳은 지난 날 큰 싸움터라네. 적의 기병 올 때에 몇 만이나 되었던고. 공중을 덮은 깃발 구름이 휘날리듯”했다고 한시로 읊을 정도였다. 이 싸움에서 고려는 원나라의 힘을 빌어 거란족을 물리쳤는데 내빼는 거란족을 웅진 곧 공주까지 추격하니 그들의 송장이 삼십리쯤 길에 깔렸었다고 한다.

 

  비는 내리지 않으나 하늘은 잔뜩 흐리다. 구름이 많아서인지 기온은 무더위를 피하여 그리 높지 않다. 숲이 많은 산길은 그 자체가 기온을 떨어뜨리기도 하므로 오늘의 산행은 대체로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171m봉을 지날 때는 가족 산행객도 만나고 부드러운 산길은 평화롭다.

  13:45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들어선다. 한적한 도로의 양옆에는 키 큰 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푸른색 내음을 풍긴다. 여름의 냄새다. 울울창창한 가로수길은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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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들어가는 도로>

  10여 분 올라가니 IMG내셔널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 입구가 나오고 계속 진행하여 도로 따라 왼쪽으로 원을 그리듯이 빙돌아 골프장 건물을 돌아가니 주차장 옆으로 산길이 나온다. 산길로 들어서니 이내 능선 길에 들고 오름길을 만난다.

  힘들게 오름길을 올라서니 시멘트 도로와 함께 전의산 연수원 건물을 마주한다. 산행객의 냄새를 맡은 강아지 한 마리가 쫓아 나오더니 나를 빙빙 돌며 계속 짖는다.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에 관리인이 나오더니 연수원 건물로 들어가지 말라며 길을 안내해준다. 확실한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서 애매하다. 산을 내려가라는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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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산 연수원>

  선답자의 산행기에 의하면 연수원 건물을 통과해야 뒤편의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돌아갈 만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연수원 건물을 옆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고 건물 옆의 능선으로 들어섰는데 잠시 후에 연수원의 마당으로 올라서고 만다. 관리인이 다시 나오더니 저쪽이라며 다시 알려주는데 참으로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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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로는 없고 수풀만>

  관리인이 가리키는 쪽으로 내려가니 탈출이다. 능선을 이어가기 위한 우회로가 아니고 서정리의 마을도로에 내려서고 만다. 어차피 기운이 빠져 고등고개까지만 가려고 했던 것이 불과 2km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서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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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리 마을도로>

  산행은 그렇게 끝난다. 길이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남긴 채 집으로 돌아와 최근 선답자의 산행기를 다시 읽어 본다. 어이된 일인지 우회로가 있었다.<200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