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연인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

                                *산행일자:2010. 7. 1일(목)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연인산1,068m

                                *산행코스:백둔리버스종점-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

                                               -마일리버스종점-현리버스터미널

                                *산행시간:10시18분-18시48분(8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올 3월에 입학한 방송대의 학기말 시험은 전 과목 모두 객관식으로 출제되어 공부를 안 했다가는 과락을 당하기 일쑤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어온 터라 그간 한 주도 거르지 않은 주말산행을 두 주 연속 빼먹으면서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일반 대학과는 달리 전 과목을 단 하루에 치르는 방송대의 학기말 시험이 한주 밖에 남지 않아 지난달에는 매월 셋째 일요일에 진행해온 경동고교 동문산악회의 한북연인지맥 종주산행을 불참하고 시험관련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간 저 나름대로 꾀부리지 않고 꾸준하게 공부해온 덕에 지난 일요일 1학기말 시험을 어렵지 않게 치렀습니다.

 

 

  기말시험에 대비하고자 제게 내린 딱 2주간의 비상령을 시험이 끝나자마자 해제하고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집근처 극장을 찾아 영화 “포화 속으로”를 감명 깊게 보았고, 대학동창을 만나 4대강개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대학가의 학림다방을 삼 십 수년 만에 다시 찾아 한 국문과 학형의 설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들었습니다. 과천의 서점을 들러 “민족 민족주의”제목의 책을 샀고, 아들이 가져다 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도 마음 편히 읽었습니다. 제게 일상이란 이와 같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만나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고, 오르고 싶은 산을 오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어서 일상으로의 복귀가 전혀 야단스럽지 않습니다. 

 

 

  어제는 저 혼자서 시험 때문에 빼먹은 한북연인지맥의 두 번째 구간을 종주했습니다. 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를 잇는 이번 구간을 모두 밟고 나자 숲이 우거질 대로 우거진 7월의 산속은 이 산에 뿌리박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축제를 벌이는 큰 마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속의 맹주로 군림하는 멧돼지도 이번 향연장에 틀림없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기대하게 된 것은 산행시작 얼마 후 만난 동리 분에게서 이 골짜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멧돼지가 출몰하니 큰 소리를 내면서 올라가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인데, 멧돼지는 끝내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온갖 풀꽃들과 나무 꽃들, 진초록의 나무 숲, 이들과 공생하는 버섯들, 숲속의 요정으로 불릴만한 크고 작은 새들, 각종 나비와 곤충들이 모두 연인산에 모여 연가를 부르는 듯 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짝짝이 모여 사랑을 노래하는 연인산을 저 혼자 오르기가 조금은 뭣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지려 밟고 지나가도 불평 한마디 않는 질경이가 제 연인이려니 하고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이산의 모든 연인들은 툭하면 갈라서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을 본떠서는 안 됩니다. 밟히고 또 밟혀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질경이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사랑이 낳고 사랑이 키워주고 사랑이 이어가는 것으로 질경이의 사랑이 남달라 생명 이어감 또한 남다르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오전10시18분 백둔리 버스종점을 출발했습니다. 가평터미널을 9시35분에 출발한 군내버스는 백둔리에서 저를 마지막으로 내려놓고 몇 분 동안 머물다 다시 가평으로 돌아갔고, 저는 연인지맥의 2구간이 시작되는 아재비고개를 향해 서쪽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차량통제구간이 시작되는 곳에서 시멘트길이 끝났다 했는데 과수원을 지나 지역식수원 보호 및 사유재산보호를 위해 설치했다는 철문을 옆으로 지나자 시멘트 길이 넓게 나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걸어 만난 생태경관 보전지역 안내판 앞에서 시멘트 길은 끝났고 숲길이 이어졌습니다. 이내 계곡을 건넜고 숲이 우거진 계곡 옆길을 걸어 오르며 7월의 산속이 참으로 거함을 느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는 중 긴 자루의 갈고리를 들고 내려가는 동리 분을 만났습니다. 그 갈고리는 어디에 쓰느냐고 여쭸더니 제 스틱을 가리키면서 이것들로는 멧돼지를 막을 수 없다며 혼자서는 위험하니 그냥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해 당황했습니다. 꼭 올라가야 한다면 조용히 가지 말고 계속 헛기침소리를 내야 멧돼지가 피할 것이라며 조심해서 올라가라고 일러주어 고마웠지만, 이제껏 제가 적의를 갖고 대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을 멧돼지가 제게 새삼 덤벼들 리 없다고 믿고 있기에 저는 이분처럼 흉기(?)를 들고 다닐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멧돼지를 보았고 그때마다 겁은 났어도 도망가지 않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은 그들에게서 저를 해치겠다는 적의를 발견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멧돼지를 포함해 수많은 산식구들이 어우러져 같이 사는 산속에서조차 저희들이 주인이라고 행세하려들면 산식구들은 당연히 노할 것입니다. 여기 산속의 숲이 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임을 인정한다면 이들이 저희들의 산 오름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12시5분 상판리와 백둔리를 이어주는 연인지맥의 아재비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백둔천 상류의 계곡은 꽤 길었습니다. 시멘트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걸으며 몇 번 계곡을 건너 다다른 합수점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진행하다가 길이 아닌 듯싶어 표지기가 걸려있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선 후에도 몇 번 더 계곡을 건넜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물이 불어 계곡을 건너는 일이 쉽지 않겠다 싶은 오름길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얼마를 더 올라가야 계곡이 끝날까 했는데 결국 물소리가 끝난 것은 아재비고개마루에 다다르기 5분전이었습니다. 지난 5월 1구간 종주를 마치고 하산한 아재비고개에 다시 올라 15분을 쉰 후 남쪽으로 3.3Km 떨어진 연인산으로 향했습니다. 음산하고 희미한 계곡 길에서 만나지 못한 멧돼지를 넓고 시야가 트인 능선 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더 이상 멧돼지에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나무들조차 숨소리를 멈춘 듯 적막감이 감도는 산길은 온갖 소리를 다 먹어 삼킨 양 하늘을 나는 비행기조차 제 소리를 내지 못해 모기소리처럼 아주 작게 들렸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13시3분에 다다른 1010봉 삼거리에서 점심을 들면서 산행 내내 제게 평온함을 안겨준 풀꽃과 바람과 산새들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13시50분 해발1,069m의 연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1010봉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 후 연인산 정상으로 향하는 중 가평에서 함께 버스에 올랐다가 연인산 입구에서 먼저 내린 몇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산행 중에 유일하게 만난 이분들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5-6명의 아주머니들로 백둔리를 출발해 연인산과 명지3봉을 거쳐 명지산을 오른 후 익근리로 하산한다며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바위사이로 길이 난 문바위를 거쳐 꿩의 비름 군락지를 지나면서 도톰한 연분홍 꽃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정상에 올랐어도 박무로 시야가 가려 바로 앞의 1030봉을 빼놓고는 어느 봉우리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목봉을 연인산으로 개명한 가평군청에서 새로 지은 산 이름에 걸맞게 정상에서 뻗어나가는 산줄기에도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소망능선, 장수능선, 청풍능선, 연인능선과 우정능선이 바로 그 것들입니다. 이 많은 능선 중 연인지맥이 지나는 능선은 가장 서쪽에 자리한 우정능선으로 8년 전에 한 번 지났던 길입니다. 정상에서 오래 머무를 일이 없어 잠시 숨을 고른 후 곧바로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우정능선으로 내려섰습니다. 1030봉을 지나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져 능선 길을 걷는 중에도 졸음이 와 잠시 멈춰 서곤 하다가 넓은 헬기장에 올라선 시각이 14시15분이었습니다.

 

 

  15시32분 전패고개로도 불리는 우정고개에 내려섰습니다. 헬기장에서 우정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뚜렷해 여느 지맥 길처럼 길 잃을 까 걱정은 아니 해도 되었습니다. 오른 쪽 상판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두 번 지나고 비좁은 헬기장 두 곳을 지나 우정고개로 내려서기까지 돌양지꽃, 나리꽃, 꿩의 다리, 승마, 까치수염, 좁쌀풀, 쑥부쟁이와 이름 모르는 자주색 꽃들 등 이런 저런 꽃들을 만나보고 7월은 역시 녹음과 방초가 절정에 이르는 성하의 한 달임을 실감했습니다. 지맥 길 동쪽 사면에 자리 잡은 잣나무들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잣송이가 한껏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녹음과 방초의 화사함과는 영 거리가 먼 질경이들이 뿌리박은 곳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길바닥이었습니다. 들판에서도 그러했고 산 위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채소가 요즘처럼 흔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먹을거리 들풀들이 고마웠습니다. 질경이는 매년 씨 뿌리고 길러야 하는 채소와는 달리 생명력이 강인한 다년생 잡초여서 양지 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랍니다. 봄과 여름에는 어린 순을 캐서 나물로 먹고, 가을에는 말린 씨로 차전자(車前子)를 만들어 사용하며, 뿌리를 씹어 먹거나 잎의 즙(汁)을 내어 먹으면 토사곽란(吐瀉藿亂)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질경이가 사람들의 눈을 끌지 못하는 것은 꽃과 잎 모두 화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끓여준 질경이 국을 자주 들은 제게는 질경이가 들풀이기에 앞서 고마운 채소였기에 모양새는 예쁘지 않더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밟고 그냥 지날 수는 없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길바닥이 미끄러워 몇 번을 넘어진 후 우정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이참에 가평의 명승지인 용추계곡으로 내려갈까 고심하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그 반대편의 마일리로 하산하기로 정한 후 반시간 남짓 그늘에 앉아 푹 쉬었습니다.

 

 

  17시14분 마일리 버스종점에 다다랐습니다. 우정고개에서 왼쪽 마일리로 하산하는 길은 넓었으나 바닥이 고르지 못해 자칫 발목을 뼈기 쉬울 것 같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오른 쪽의 그늘 진 산길로 들어섰다가 큰 길을 건너 왼쪽의 산길로 다시 들어가 계곡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졸졸 흐르던 계곡 물이 어느새 큰 소리를 내며 콸콸 흐르는 아랫목에서 짐을 벗고 탁족을 끝내고 나자 발바닥이 시원했습니다. 흙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참 동안 걸어 내려가 다다른 마일리버스종점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왼쪽 위로 동막골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버스종점인데 옆 건물은 비어 있는 것 같았고 정류장 소파는 흙투성이여서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햇빛조차 가릴 수 없는 정류장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버스를 타느니 그냥 걸어가다 가게를 만나면 그 곳에서 맥주라도 사들며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아스팔트길을 따라 마일리 마을을 향해 게속 걸었습니다.

 

 

  18시48분 현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청량리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종점에서 17분을 걸어 마일1리 회관에 이르기까지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다가 회관을 조금 지나 할아버지 한분을 뵈었습니다. 이분께 현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나 여쭈었더니 잰걸음으로 40분가량 걸린다고 말씀해 내친 김에 현리터미널까지 걸어갔습니다. 지난달 섬진강 산줄기 환주산행을 모두 마친 터라 오는 9월 쯤 섬진강물줄기 따라 걷기를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어 그 전에 아스팔트길을 걸어 연습해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앞서 할아버지가 말씀한 대로 40분 거리는 아니었고 부지런히 걸어도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습니다. 현리터미널을 십 수m남겨놓고 저녁6시30분에 마일리종점을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만났으니 시간이 절약된 것은 없고 버스비만 천원이 굳은 셈입니다.

 

 

  18일 만에 처음 나선 종주산행이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은 지맥코스가 짧은 데다 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에 이르는 능선길이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더 할 수 없이 편안했고, 녹음방초가 한창이어서 볼거리가 많아서였습니다. 이에다 시간도 넉넉하고 이 길을 찾은 산객들도 별로 없어 모처럼 여유로웠습니다. 마지막 마일리버스종점에서 현리까지의 도보행군은 따로 사서 한 고생이기에 염두에 둘 것이 못 된다면 저는 실로 오랜만에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넉넉하고 평안한 산행을 즐겼습니다. 두 주간 죽어라고 공부해 기대한 만큼 시험성적을 올렸기에 이번 산행이 마음 편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와 산행 중 어느 하나만 택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