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산줄기 환주45

                                                                      (백두대간 6)
 

                                                  *산행구간:노고단-연하천-세석

                                                  *산행일자:2009. 10. 22일(목)

                                                  *소재지  :전남구례/전북남원/경남하동 

                                                  *산높이  :삼도봉1,435m/토끼봉1,534m/칠선봉1,558m/영신봉1,652m

                                                  *산행코스: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벽소령-영신봉-세석대피소

                                                  *산행시간:4시57분-17시26분(12시간29분)

                                                  *동행    :나홀로

 


 

  이번의 섬진강산줄기 환주산행은 최근 어느 산행보다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이틀에 걸쳐 치러낼 산행코스를 성삼재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세석으로 가서 일박한 후 영신봉에 올라 낙남정맥을 따라 길마재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잡고나자 몇 가지가 걱정됐습니다. 옛날 같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는 코스이지만, 이번에는 작년 가을에 다친 허리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무거운 짐을 지고 오래 걷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였습니다. 외삼신봉에서 묵계치로 내려가는 낙남정맥 길에 수직암벽이 있는데 이 길이 비탐방로여서 옛날에는 두 단계로 걸어 놓았던 로프를 아래 단계는 걷어내 따로 자일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세석대피소에 예약을 해놓지 않아 잠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고 버너와 코펠에 보조자일이 추가되어 꽤 무거워질 짐을 지고 긴 시간 산행을 해도 아직은 성치 못한 몸이 탈 없이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한 후배에 도움을 받고자 동행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못해 저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보조자일이 필요한 암벽 길을 다음으로 미루고 산행코스도 벽소령에서 일박한 다음 낙남정맥의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하산하는 짧은 코스를 택해 짐 무게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새벽4시57분 성삼재탐방소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산본 집에서 전철로 천안역으로 가 밤11시57분에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새벽3시20분 경 구례구역에서 하차하여 성삼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성삼재 행 버스가 구례읍내 터미널에서 15분여 대기하는 동안 어묵으로 요기를 한 후 4시정각에 터미널을 출발해 성삼재로 향했습니다. 4시40분 조금 넘어 도착한 성삼재의 새벽공기는 냉랭했습니다.  발목과 손목을 덮는 긴 내의를 입고도 추위가 느껴져 다운자켓을 덧입고 산행 길에 올랐습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고 노고단으로 오르는 저를 잠시 멈춰 세운 것은 저 아래 구례읍의 야경이었습니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전등불은 햇빛처럼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어서 저토록 매혹적인 야경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산객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새벽에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곧바로 노고단 고개로 올라섰습니다.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 보이는 반야봉이 일출을 준비할 즈음에도 숲속의 산길은 여전히 어두웠는데 생각보다 밤과 낮의 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6시25분에 헤드랜턴을 끄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7시16분 임걸령에 다다라 아침을 들었습니다.

어둠이 가시고 붉은 해가 산 능선을 넘어 솟아오르자 방금 우회해온 노고단에서 아침 햇살을 받은 노란색과 붉은 색의 단풍들이 막 세수를 마친 듯 환해 보였습니다. 돌가닥 길과 흙길을 번갈아 걸으며 오른 쪽으로 피아골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으로 내려섰습니다. 오랜 가을 가뭄으로 수량이 많이 줄어든 샘물을 떠 마신 후 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김밥을 꺼내 들었습니다. 왼쪽 위로 반야봉 길이 갈리는 노루목까지 오름 새가 계속 이어져 오름 길 중간에 다운 자켓을 벗어 넣었습니다. 지리산 서부의 최고봉인 반야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삼도봉에 오른 시각이 8시44분으로 그새 아침 냉기는 완전히 가셨습니다. 화사한 단풍나무 숲에 회색의 고사목 및 푸른색의 구상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반야봉은 노고단 쪽에서 바라본 반야봉과 삼도봉에서 올려다 본 반야봉을 잘 꿰어 모아야 그 온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야봉에서 극락정토로 떠나는 반야용선에 오르려면 그동안 베푼 적선의 탑이 1732m보다 높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엇습니다.


 

  10시 정각에 해발1,534m의 토끼봉에 올랐습니다.

전라 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 한 점을 이루는 삼도봉에 올라 10분 여 쉰 후 화개재로 내려갔습니다. 지리산 능선의 급속한 훼손을 막아 줄 깔끔한 목재계단 길을 내려가며 뒤돌아 본 삼도봉이 품고 있는 거암들의 당당한 모습을 제대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한 달 전 쯤 들렀던 화개재는 동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람에게는 고개 마루이고 지리산의 주능선을 종주하는 제게는 편안한 안부이기에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면서 뱀사골에서 불어 올라온 골바람에게 이 골짜기에서 이무기의 영혼을 달래고 있을 고(故) 고정희 시인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던 것은 1시간 가까이 오름 길이 계속 되어서였습니다.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오른 토끼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내쳐 연하천을 향해 내달았습니다.


 

  11시36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들로 온산이 불타고 있는 지리산의 연봉들에 대한 감탄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6시간 넘게 강행군을 한 탓에 많이 지쳤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의 주능선을 종주하면서 높낮이 차가 200m선인 봉우리와 안부를 수 없이 오르내리리라는 각오를 아니 한 바는 아니지만, 산릉 길이 거의 다 너덜길이어서 바닥창이 두꺼운 구두를 바꿔 신고 걸었는데도 발바닥이 아팠습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도 견디기 힘들었던지 쉬다 가다를 반복하는 돌가닥 길을 걸음이 느린 저는 쉬지 않고 걸어 토끼봉 출발 1시간 반 만에 연하천에 다다랐습니다. 지난 달 연하천에서 명선봉으로 오를 때는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단풍색상이 참으로 곱다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단풍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낙엽으로 바뀌었고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도 그 때의 해맑음은 다 잃어버리고 칙칙하게 변해버려 이번에는 카메라를 들이댈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연하천의 샘물도 많이 줄어들어 휴일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태풍이 건너 뛴 올 가을 강수량이 턱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닷물을 담수화해 육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태풍의 상륙이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들기는 조금 이른 것 같아 페트병에 샘물을 채운 후 벽소령으로 향했습니다. 음정으로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오르기까지 모처럼 평평한 흙길도 걸었는데 주홍나비가 나풀거리며 몇 십m를 동행했습니다. 삼각봉에 올라선 시각은 정각12시로 그늘을 찾아 점심을 들면서 20분 남짓 쉬었습니다. 


 

  13시56분 벽소령대피소에서 4-5분가량 쉬었습니다.

한 번 지치자 삼각봉에서 벽소령에 이르는 짧은 길도 마냥 멀게 느껴졌습니다. 몇 곳의 암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우회하는 동안 뒤따라오던 몇 분들이 저를 앞섰습니다. 저와 똑같이 야간열차를 타고 내려와 화엄사 계곡을 타고 노고단으로 올라왔다는 50대 초반의 이천 분 은 성삼재에서 출발한 저를 삼각봉 조금 지나서 앞지르면서 제 걸음이 결코 느린 것이 아니라며 격려했습니다. 당일로 천왕봉을 올랐다가 대원사로 하산한다는 이분은 제게 벽소령보다는 세석의 대피소가 빈자리가 더 많다며 세석에서 묵을 것을 권했습니다. 미쳐 대피소예약을 못한 터라 벽소령대피소에 자리가 없으면 음정으로 내려가 1박하고 새벽같이 되올라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던 제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이 다음날은 세석을 거쳐 낙남정맥 첫 구간을 종주할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장장16시간을 걸어 하루에 마쳤던 그 때에 비해 주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이 아니고 작년에 허리를 크게 다친 사고의 후유증 때문이라며 애써 자위하면서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우뚝 솟은 거암들이 가운데로 바람에 길을 내준 형제봉을 지나면서 5년 전 한 여름 이 바람으로 땀을 식힌 일이 생각났습니다. 벽소령에 이르자 먼저 와 쉬고 있는 몇 분들도 평일 날은 빈자리가 많으니 아무 걱정 말고 세석으로 가서 묵으라고 일러주어 쵸코렛을 꺼내 든 후 곧바로 세석으로 향했습니다.


 

  15시5분 선비샘에서 식수를 보충했습니다.

벽소령에서 1.1Km 되는 길은 낙석을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지만 땅바닥이 평평한 흙길이어서 모처럼 발바닥이 편안했습니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떨어진 거리가 6.3Km여서 서두르지 않으면 해지기 전에 닿기 어려울 것 같아 평지길이 끝나는 삼거리까지 들입다 내달렸습니다. 왼쪽으로 나 있는 넓은 길이 음정으로 내려가는 넓은 도로 같은데 나뭇가지들을 쌓아 길을 막아 놓은 것으로 보아 음정 가는 길은 벽소령 대피소에서만 열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삼거리에서 20분 남짓 걸어 통나무 쉼터에 올라서기까지 땀을 좀 흘렸지만 이 쉼터에서 선비샘까지는 덕평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에돌아갔기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39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을 종주했을 때는 선비샘 주변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지금처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수량만은 충분하다 했는데 이번에는 오랜 가뭄으로 수량이 많이 줄어 물줄기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선비샘을 출발해 칠선암으로 다가갈수록 천왕봉이 점점 가깝게 보이자 지리산의 주봉은 역시 천왕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17시26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선비샘 출발 반시간 남짓 걸려 “벽소령4.2Km/세석대피소2.7Km” 지점에 이르자 회색의 고사목 군이 나타났습니다. 온 몸을 불살라 생의 고별 향연을 벌이고 있는 단풍잎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등을 눕힐 마음이 일지 않아서인지 여기 고사목들도 장터목과 마찬가지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서있었습니다. 나무계단 길을 올라 다다른 칠선봉에서 장터목대피소가 잘 보여 세석대피소가 자리한 곳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칠선봉을 여섯 번째 오르면서도 영신봉을 받쳐주는 암봉들이 저리도 절경인가는 이번에 처음 느꼈습니다. 흔히들 지리산은 육산(肉山)이고 설악산은 골산(骨山)으로 표현합니다만 칠선봉에서 바라다본 영신봉 전위봉의 거암들은 설악산 못지않아 보였습니다. 하기야 산신령께서도 이 넓은 산을 더러 더러 바위도 갖다 놓아야지 몽땅 흙으로만 채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깎아지른 암봉을 계단 길로 올라서자 지나온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길 왼쪽 위 영신봉을 밟아본 후 세석대피소로 내려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빈자리가 꽤 있어 18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옆자리의 한 분도 저처럼 예약을 하지 못해 오후 3시부터 자리배정을 기다렸다 합니다. 10여 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신다는 이 분은 저보다 2년 연배이신데 지리산을 105번 오르고 백두대간과 9정맥 종주를 모두 마치셨다 합니다. 같은 처지인 제가 이 분만큼 산을 자주 오르지 못한 것은 산에 대한 열정도 떨어지고 산행기를 작성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서였을 것입니다. 라면을 끓여 저녁을 해결하고 나자 소등시간인 저녁8시가 다 되었습니다. 이참에 밀린 잠이나 실컷 자두자는 생각에서 일찌감치 눈을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애당초 묵으려고 했던 벽소령에서 6.3Km를 더 걸어 세석에서 하루 산행을 마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습니다. 성삼재에서 세석까지 5년 전 몸이 성할 때보다 2시간 반가량 더 걸렸지만 이정도면 낙남정맥과 낙동정맥 종주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벽소령-세석-삼신봉-청학동으로 잡은 이튿날 산행코스를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하산하는 대신 더 먼 쌍계사로 하산하기로 변경한 것도 세석까지 진출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바닥이 딱딱해 허리가 더 아팠지만 마음이 평안해 잠을 푹 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