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두대간 종주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준비도 아니 된 자가 마음만 앞세워 일시에 종주할 생각으로 집을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첫날 천왕봉을 오르는 순간부터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그나마 지리산 종주를 단숨에 마친 것은 다행이라 생각 한다.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는 중산리에서 오르는 길이다.

중산리에 가려면 진주를 거쳐야 하기에 서울 고속터미날에서 진주행 고속

버스를 탔다. 06:40분에 출발한 버스는 3시간 40분만인 10시 20분에 도착

하였다. 남강과 논개와 김시민의 진주성대첩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배낭을 보더니 중산리까지 50,000원이란다. 매표소 앞까지 갈 수 있어 힘이

덜 든다고 하였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번호부를 뒤져 시외 터미널을 찾아

직원의 안내를 받아 택시로 2,200원을 내고 터미널까지 갔다. 중산리가

종점인데 삯은 3,800원이었으며 11시 출발하여 12시 05분에 도착하였다.




등산로 입구인 매표소 앞까지 길이 잘 닦여져 있어 일반 차량은 대개가

그곳까지 가는데 버스 종점에서 걸어가면 20여분 정도 걸린다. 20kg이
넘는 배낭을 메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하는데 20kg 쌀 한 포대는
쉽게 들지만 배낭 20kg은 쉽지 않다. 그만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나에게 산을 오르는 처음부터 등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단순히
무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떻게 끝까지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겠냐는 회의였다. 하여튼 나는 1시 정각에 등산로

초입인 안내도 앞을 출발하여 중턱인 로타리 대피소에 3시30분에 도착했다.




중산리 버스 종점에서 20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12시 30분에 출발하여 6km
지점인 법계사까지 3시간 만에 올랐으니 그리 늦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적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을

치는 육체적 고통보다는 종주계획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이 더욱 힘들었다.




오르는 내내 귓가를 어지럽힌 것은 소리도 경쾌한 계곡의 물소리나 산새의

지저귐이 아니라 양쪽 어깨에서 배낭 무게를 버거워하는 끈의 울음소리였다.
삐적삐적하는 그 소리는 어린 시절 지게를 졌을 적에 들어본 소리였다.

결국 이튿날 새벽 로타리 대피소를 출발하며 텐트를 버리고 가야하였다.




일출은 생각하지 않고 6시에 천왕봉을 출발한다는 계획이었기에 4시 반에

대피소를 출발하여 5시 50분에 천왕봉 정상에 섰다. 북풍이 강하게 불어

추웠으나 날씨는 쾌청하였다. 해는 이미 고개를 내민 뒤였으나 붉게 물든

하늘아래 골안개 피어오르는 지리산 산하는 저절로 입을 벌리게 하였다.




들리는 말로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천왕봉 일출을 보았다는 6월1일이었다.

그만큼 천왕봉에서 일출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고 날씨의 변화가

심하다는 말일 것이다. 한국의 산하에서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정상에서

보는 광경만큼 조국의 산하에 대한 경외심이 들게 하는 곳은 없다고 본다.




3개 도 5개 군에 걸친 장대한 면적에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쌓인

장관은 절로 숙연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에 이르는

등산로는 이른 아침 홀로 걷기에는 너무 아까운 산책로라 생각한다. 비록

관리된 길이긴 하나 길의 아름다움을 찾으라면 나는 그 길을 추천하고 싶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 상에 수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등산로가 봉우리를 통과하는 것은 삼도봉 하나로 기억한다. 500m마다
표시된 표시목이나 몇km 떨어져 있다는 이정표는 수없이 많으나 그 봉우리를

표시하는 것은 정작 없어 걷다보면 어느덧 봉우리를 통과하기 일쑤였다.




세석산장에서 잠깐 쉬며 다시 배낭 속에 있던 고추장 라면 쌀 등의 물건을
꺼내 무게를 줄였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하니 안내 방송으로 오늘 밤의

예약된 정원 140명이 다 찼으니 대기하는 등산객은 다른 대피소로 가란다.

물이 부족한 곳인데 내일 아침이면 한바탕 소동이 일거란 생각을 하였다.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샘물이 콸콸 세 곳에서 쏟아나는데 한곳은 그릇에
깡통 맥주를 담아 놓고 3,500원에 팔았다. 단숨에 들이켰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25km 주능선 등산로 상에 장터목 세석 벽소령 연하천 노고단

대피소와 덕평봉 넓은 공터에 선비샘 등이 있어 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세석에서 벽소령까지는 춘천에서 온 50중반의 아주머니 두 분과 연하천에서

화개재까지는 인천에서 온 소위 20대 백수 김병오 유성호 청년과 심심치

않게 동행하였으며 형제봉에선 영광의 성지 송학 중학생들과 대화를 텄다.

전교생 54명에 교사 12명인데 장하게도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고 하였다.




화개재를 넘어 삼도봉에 올라서니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삼각 투구모양의

청동 표시물이 석양에 빛나고 있었다. 그 밑에 [3도를 낳은 봉우리에서

전북 경남 전남 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천지인 하나 됨을 기리다. 1998.10]

이라고 써있다. 해는 지는데 목적지 노고단은 저 멀리 아득하게 있었다.




임걸령 고개에 이르러 인척이 있어 문득 뒤를 보니 달이 중천에 걸렸는데

두 청년이 마루턱 후미진 곳에서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달빛을 받으며

노고단까지 걸었다. 아직 4km를 더 가야 하였다. 무서움보다는 아직 내가

지치거나 다리가 아프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였다. 입구 우측의 돌탑이 으시시함으로 다가왔으나

대피소나 성삼재에 이르는 이정표가 없어 부득이 근처 방책이 쳐진 곳까지

가까이 다가 설 수밖에 없었다. 문득 오래 전에 와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고단 정상은 인터넷 예약으로 또는 허가 받아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었다.




고개에서 한참을 헤매었다. 노고단 고개 마루 그 어디에도 방금 지나온

천왕봉과 반야봉을 가르치는 이정표만 있었지 휴게소에 이르는 안내판은

없었다. 지도상에 나타난 대피소는 지나온 계곡 아래 있었다. 외길이었다.

이왕 가는 김에 가는데 까지 가자고 반대편 내리막길로 들어 걸어갔다.




직원에게 항의를 해보았지만 밤길을 걸어온 나만 이래저래 미련한 놈이었다.

새벽 4시 30분 법계사 아래 로타리 대피소를 출발한 나는 밤 9시 30분이

되어서야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 하였다. 거리상으로는 30여 km를 17시간

걸려 종주를 한 셈이다. 스스로가 놀라웠고 한편 또 다른 자신감이 생겼다.




*지리산을 등산함에 있어 배낭에 짐을 챙김은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각 대피소에는 매점이 있어 챙겨간 것 이상의 각종 물건을 판매한다.

필요한 물건 대부분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일과 야채만
없다. 물도 구간마다 샘이 있으니 먹을 여분의 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대피소에서 야영을 할 시는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에 5,000원이며 담요는 1장에 1,000씩 대여한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관리를 하므로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일회용 커피는 이상하게 팔지를 않고 있다. 노고단에선 박스채 판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