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구간

금북정맥

산행일

배티고개~칠현산~칠장산

(20km, 8시간)

2008년 9월 7일

 맑음

 

<산행 기록>

배티고개-옥정재-무이산-덕성산-칠현산-3정맥분기점-칠장사

   6:30       9:30    10:40   12:30   13:10        13:50       14:30

 

 


금북정맥의 끝-칠장산을 만나다!


 

  금북정맥 14구간의 산행은 2008년 9월 7일에 진행한다. 올해의 9월은 여름의 꼬리가 길어서 낮에는 아직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고 아침저녁으로만 선선하다. 경부고속국도 안성IC를 빠져나와 안성 시내를 지나자 아침이 밝아온다.

  배티고개로 향하는 353번 지방도를 따라 안성의 외곽을 지날 때 오른쪽에 대한민국 술박물관을 지나간다. 젊은 시절에 주류 도매업을 했다는 박영국 씨가 1990년대 초부터 술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여 각종 희귀자료까지 전시해 놓은 박물관인데 빼곡하게 모아놓은 전시물들은 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란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게/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옴세/백년덧 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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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 외곽을 지난다-오른쪽에 술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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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배티고개 오름길>

 

  6:30

  아침 해가 눈부시다. 일요일 아침이라 차량의 통행이 뜸한 배티고개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선다. 배티고개는 충청북도의 마스코트인 ‘고드미’와 ‘바르미’가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는다. 예로부터 중원문화의 발상지요, 애국충절의 고장인 충북 전래의 선비 정신과 기상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올곧고", "바르게" 개척해 나가자는 충청북도 정신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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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 마스코트 고드미와 바르미>

  배티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고갯마루에서 골프장 도로를 따라 들어간다. 도로 양편으로 가꾸어놓은 꽃밭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향긋한 가을의 냄새가 난다. 일요일이라 골프장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자주 눈에 띈다.

  왼쪽에 따라오는 정맥 능선이 지척에 들었을 때 골프장 도로에서 정맥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헬기장을 지나고 봉우리를 넘어선다. 50분쯤 지나자 골프장이 보이는 장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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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개-위 능선으로 올라간다>

  지난 산행의 엽돈재에서부터 충청남도를 벗어나서 능선의 왼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이요 오른쪽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이다.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능선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으로 간다”는 말이 있어 왔다. 왜 살기는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으로 간다고 했을까. 진천군으로 말하면 자랑할 만한 경승지는커녕 맛깔스러운 별미 음식도 얼른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5월에 진천군을 둘러보는 여행의 기회를 가졌는데 “살아서는 진천에서 생활 한다”는 타당성을 구태여 찾아야 한다면 미호천을 끼고 있는 넓은 진천평야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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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의 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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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장고개에서 산길을 1시간 남짓 걸어가니 470.8m봉에 닿는다. 철판으로 만든 헬기장이 있는 곳이다. 지금껏 조망이 없는 숲길을 걸어왔는데 갑자기 사방이 툭 트인다.

  북동쪽으로는 칠장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진천평야를 끼고 있기는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진천군의 모습이 아스라하다. 백곡면 건너 작은 봉우리는 김유신 장군의 생거지와 태실이 보관된 태령산일 것이고 그 옆에 있는 봉우리는 만근산이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여 쌓았다는 만뢰산성이 있다.

  북쪽 저 멀리로 안성시의 모습도 신비한 안개에 싸여 아침을 깨우고 있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농사와 아울러 상업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어서 안성장은 대구와 전주에서 열리는 오일장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장으로 손꼽혔다. 안성장은 서울과 경기 지방으로 올라오는 삼남의 물건들이 몰려들었던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억새가 하늘거리는 봉우리에서 한동안 조망을 감탄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다시는 이런 툭 트인 좋은 배경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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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이 있는 470.8m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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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쪽의 칠장산 능선>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잠시 후에는 대명동과 상현동을 연결하는 안부에 닿는데 출입금지를 알리려는 것인지 줄이 쳐져 있다. 산길은 뻔하게 보이는데 달리 길은 보이지 않으므로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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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은 오른다. 더불어 9월 같지 않은 한낮의 무더위가 서서히 시작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변화는 그 주기적인 특징이 달라지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동물들이 더 잘 안다는데 숲속에는 매미가 떠날 줄 모르고 노래한다. 한여름을 착각하게 만든다. 아주 가까운데서 매미의 노래 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주시한다. 한 마리의 매미를 찾아내고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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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이솝우화에는 뮤즈 여신의 노랫소리에 취한 사람들의 죽은 넋이 매미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시인 박재삼은 매미를 이렇게 노래했다.

  “매미 울음소리에/우리 마음을 비추는/한낮은 뒷숲에서 매미가 우네/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명명한 명명한 매미가 우네.”

  매미 울음소리를 ‘명명’으로 표현했으니 밝고 맑은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매미는 맴맴하는 줄 알았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다르게 나타나나 보다.

  여름을 보내는 끝자락에 원없이 들어보는 매미 소리가 다음 주에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계절의 변화가 내일의 기후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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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 명명한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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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

  매미의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으며 숲을 벗어난다. 차량 통제용 차단기가 설치된 임도로 내려서는데 물봉선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생긴 모습이 다른 꽃과는 색달라서 한 번 이름을 기억하고 나니 잊혀지지 않는 꽃이다. 예쁘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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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기가 설치된 임도>

 

  9:30

  배티고개에서 3시간만에 해발 390m의 옥정재에 닿는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길가에 있다. 진천과 안성을 이어주는 옥정재는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가거나 안성장을 갈 때 이용했던 곳으로 지금은 587번 지방도가 지난다. 차량의 행렬이 수시로 이어지는 것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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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재>

  정맥 산길은 옥정재 표지판이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옥정재에는 사유지가 있어서 우회로가 개설된 것이다. 산사면을 빙 돌아가더니 이내 오름길로 바뀌고 잠시 후에 능선에 올라서자 비로소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다시 산길은 이어지고 가파른 오르막과 수그러지는 내리막길이 반복하여 나타나더니 흔적도 희미한 안부를 지난다. 옥정리의 내동과 죽현리의 윗만디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교통이 발달한 요즘에도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부부탑이라고 쓴 돌탑을 만나고 보니 어느 방향에서건 산길을 애용했음이 분명하다. 무슨 연유로 이곳에 돌탑이 세워져 있는지 모르겠으나 돌탑을 쌓은 정성만큼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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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돌탑>

  돌탑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무이산 갈림길이 나온다. 잠시 무이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방향을 틀었는데 햇볕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던 뱀 한 마리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더니 숲으로 재빨리 도망을 간다.

 

  10:40

  무이산 정상(462m)에 닿는다. 정상석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커다란 바위 하나가 세워져 있다. 정상 주변은 키 큰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망은 썩 좋지 않고 나무 그늘도 없어서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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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정상>

  무이산을 지나 다시 산길을 간다. 능선의 오른쪽은 진천군 광혜원면 소재지인데 조선시대 때 여행자를 도와주던 광혜원이 있었으므로 광혜원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다. 또 이와 더불어 무이산에서 덕성산으로 향하는 오른쪽 골짜기의 광혜원면 구암리에는 무술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진천 태생으로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이 소년시절부터 용화향도(龍華香徒)라는 낭도들과 무예 등 화랑도 정신을 연마하던 터가 남아 있다.

  북쪽 골짜기 비들목도 화랑들이 전서구(傳書鳩)를 길들이던 마을이며 동쪽으로 내려오면 화랑의 연무대와 병기고 자리에 병무관 마을이 있다. 지금의 구암저수지 부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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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에서 보는 칠장산 능선>

  칠장산이 가까워지고 있다. 무이산에서 바라보는 칠장산 능선이 선명한데 혼자 걷는 능선길을 누가 겁을 주려는 것일까. “뚝!”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도토리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다. 아! 가을이다. 도토리가 지천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어느새 가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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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무이산에서 덕성산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외줄기로 곧게 뻗은 능선이라서 나무들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조망을 감상하며 서둘지 않는다. 470.8m봉을 지나기 전에 평택-음성간 고속국도 건설현장이 내려다보이고 능선의 오른쪽은 산허리를 따라 임도가 길게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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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음성간 고속국도 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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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8m봉>

  능선의 오른쪽 구암리에 남아 있다는 김유신 장군의 흔적은 이곳뿐만이 아니라 진천군 전체에 걸쳐 곳곳에 남아 있는데 김유신과 진천은 어떤 관계에 있던 것일까.

  김유신은 이곳 태수로 있던 김서현과 만명 부인 사이에서 595년에 태어났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본디 신라에 합병된 가락국의 왕족이다. 신라의 왕족은 부모가 모두 왕족인 성골과 어느 한 쪽만 왕족인 진골로 나뉘는데 이들 성골과 진골이 다른 신분과 혼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김서현은 신라의 장군이기는 했으나 엄연히 다른 신분에 속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왕족인 만명과 사랑을 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안 만명의 아버지는 이들의 사이를 떼어 놓기 위하여 김서현을 고구려와 맞닥뜨려 싸움이 그칠 새 없는 이곳의 태수로 보내 버렸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이들을 떼어놓지 못하고 만명이 당시 만노군이라 불리던 이곳 진천까지 도망을 쳐 사랑의 결실로 김유신을 낳은 것이다.

 

  12:30

  덕성산 정상(519m)에 닿는다. 덕성산도 정맥능선에서 약간 비껴나 있기는 하지만 멀지 않으므로 정상을 찾았다. 오늘 처음으로 그늘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도 만난다. 정상 주변에는 등산안내도와 돌탑이 있다. 조망을 감상하며 잠시 휴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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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산 정상>

  덕성산에서 조망을 끝내고 다시 산길을 간다. 덕성산부터는 진천군과도 헤어지고 안성시로 들어간다. 시군의 경계가 정맥능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산길도 고속도로 수준으로 바뀐다. 칠장산과 칠현산 그리고 덕성산을 잇는 코스는 산행객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찾는 이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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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수준의 산길>

 

  13:10

  덕성산에서 40분을 걸어서 칠현산 정상(516.2m)에 닿는다. 고려 때 혜소국사가 7명의 악인을 현인으로 바꿔놓았다고 해서 칠현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칠현산 정상은 조망은 없으나 더운 날씨에 휴식을 하기에 좋은 나무그늘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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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현산 정상>

  이제 칠장산 3정맥 분기점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칠현산 정상을 출발하니 산죽밭을 지나면서 급경사의 흙길을 내려간다. 잠시 후에는 지금까지 자주 보이던 돌탑이 여기에도 보이는데 그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안내석이 있다. 칠순비 부부탑으로 “김성기 임경순 2002년 11월 24일 광혜원 중고개”라고 적혀 있다. 칠순을 기념하면서 돌탑을 정성들여 쌓았던 것일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돌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쌓은 그 정성만큼은 백년해로를 빌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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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앞의 기념비석>

  돌탑이 있는 고개에서 오름길을 간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다시 완만한 산길로 바뀌면서 헬기장이 나온다. 수풀이 가득한 헬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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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

  헬기장을 지나 10분을 더 걷는다. 칠장사 갈림길을 지나고 칠장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름길의 오른쪽에서 3정맥 분기점을 만난다. 오른쪽은 백두대간 속리산으로 향하는 한남금북정맥이고 칠장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김포 문수산으로 향하는 한남정맥 길이다.

  3정맥 분기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산줄기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곳으로 물줄기는 물론이고 지방과 문화를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위쪽의 한강문화권과 오른쪽 아래의 금강문화권 그리고 왼쪽에는 안성천의 경기남부문화권이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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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맥 분기점>

  3정맥 분기점에서 칠장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6분 거리에 있는 칠장산 오름길을 간다. 조망이 탁 트인 넓은 평지의 헬기장이 나오고 칠장산 정상석이 서 있지만 헬기장을 가로질러 조금 더 올라가니 칠장산 정상(492m)이다. 한남정맥에 이은 감개무량한 두 번째 정상 방문에서 먼저 도착한 산행객 한 분과 만난다. 나하고 같은 시각에 한남정맥을 마무리한 의정부의 황태주 씨다. 정맥 완주의 인연을 칠장사까지 하산하면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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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소국사비>

  안성시 이죽면의 칠장사는 636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지만 고려 때 절을 크게 일으킨 혜소국사의 자취가 더 짙은 절이다. 대웅전의 뒤편에 서 있는 혜소국사비는 보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데 대각선으로 잘려진 흔적이 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오 기오마사가 이 절을 습격하였을 때 당시 노승이 크게 꾸짖자 가토오가 칼을 빼 들고 노승을 쳤는데 노승은 사라지고 대신 이 비석이 칼을 맞고 피를 흘려 가토오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쳤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황태주 씨와도 헤어지고 칠장사를 나가 배티고개로 돌아간다. 금북정맥의 270km가 기억속에 아련거린다.<2008.10.6>


 

* 금북정맥 전 구간 참고문헌

한국의 발견<뿌리깊은나무>

다시 쓰는 택리지<휴머니스트>

답사여행의 길잡이<돌베게>

이규태 코너<조선일보사>

나의 국토 나의 산하<한길사>

조용헌의 소설<랜덤하우스>

소설 풍수<나남>

월간산<조선일보사>

월간사람과 산<산악문화>

각 지방단체 홈페이지

성봉현, 북한산 님의 산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