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3구간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1.20
2.산행구간 : 복성이재-봉화산-월경산-중재
3.산행동지 : 나홀로
4.산행여정
-1/20 (제5소구간:복성이재-중재)
03:00 울산출발
05:30 함양도착
06:10 복성이재도착 및 산행시작
09:35 복성이재(세시간을 헤매고 다시 원점으로)
11:14 봉화산
13:40 월경산
14:21 중재 도착 및 탈출

5.산행기

- 산행동지를 위하여

일정상으로 이번주는 산행하는 날이 아니다. 격주 휴무일에 종주산행을 하는 원칙을 나름대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는 예비 산행일로 활용하기로 한 날이다.
얼마전 부서 등산동호회 회장인 이승철과장이 나에게 ‘백두대간한다면서요’라고 물어와 그렇다고 했더니 제3구간종주에 따라 나서겠다고 했다. 사실 혼자보다는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한건 사실이라서 흔쾌하게 좋다고 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번 구간은 뭐 특별한 데도 없을 뿐 더러 지난 연말 나에게 백두대간종주의 화두를 던진 남덕유에서 향적봉까지의 종주때 연말의 바쁜 일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한 남덕유코스에 동행시키는 것이 좋겠다 싶어 이번주에 아예 복성이재에서 육십령구간을 이어 놓고 오겠다고 부랴 부랴 나서게 된 것이다.
사실 이 구간은 1박2일코스로써 당일에 종주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주 육십령에서 남덕유-빼째까지의 동행산행이 재미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배낭에 최대한 짐을 줄이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김밥과 행동식으로 준비했다. 출발할려고 눈을 뜨니 집사람과 원재는 나를 배웅해 준다고 그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있었다.

- 가자! 육십령으로

함양에 도착하니 새벽 5시반. 차를 주차시키고 옆에 있는 개인택시 사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을 자고 있는 기사 한분을 깨워 복성이재를 가자고 했더니 어딘지 모른단다. 지리를 잘 몰라 지도를 내놓고 이리저리 설명을 하니 대충 알겠단다. 가까이 가면 내가 지도를 보고 안내를 할테니 가자고 했다. 시동을 걸고 성애를 제거하는데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흥부마을 지나 비포장 농로를 따라 복성이재로 올라가는길은 보기보다 험하다. 가는데 차 밑바닥이 닿는다. 고개마루까지 가는데 상당히 애를 먹는다.
미안해서 팁을 좀더 얹어 주었다. 6시 10분이다. 기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금 산에 올라갈거냐고 묻는다. 택시는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온 주위엔 어둠만 남는다.
새벽의 복성이재는 차다. 하늘엔 구름이 끼었는지 별도 보이지 않는다. 랜턴으로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달아 놓았던 당나구가 그려진 표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복성이재가 틀림없다. 오늘은 육십령까지 내 달려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헤드랜턴과 후레쉬로 길을 밝히며 길을 떠난다.

대간 마루금으로 올라서서 조금 나아가자 소나무를 어지럽게 벌목하여 놓았다.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표지 리본으로 길을 찾아 조금가면 역시 마찬가지다. 길 주위의 소나무는 온통 밑둥이 잘려져 토막나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가시가 옷에 걸려 스틱으로 내리쳐 본다. 한손엔 스틱이고 또 한손엔 후레쉬를 들고 있으니 손을 쓸 수가 없다. 조금가니 치재(?)가 나온다. 어디서 봤던 고개 같다. 고개마루들이 다 비슷하구나.
봉화산 오르는 길은 역시 철쭉이 정신없이 많구나. 옷소매며 얼굴이며 바지며 안끄는 것이 없다. 봉화산의 철쭉제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오늘중으로 육십령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길만보고 숨을 헐떡이며 봉화산을 오른다.. 날씨가 추워서 인지 후레쉬 불빛이 금방 희미해진다. 헤드랜턴을 켜고 건전지를 갈아준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는다. 얼마를 달려 왔는지 모르겠다. 주위가 밝아 온다. 왼쪽 하늘이 더 훤하다. 좀 이상하다. 산길이라 그런가? 오른쪽이 동쪽인데.... 별 생각 없이 계속 간다. 고개 마루에 내려 선다. 배낭을 열고 목도 축이고 바나나 하나를 까 먹는다. 지도와 함께 나침반을 꺼내 본다. 지도를 봐서는 어딘지 모르겠다. 나침반을 보니 내가 지금 남서쪽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상하네....?? 갈길이 멀다. 조금 더 가보자. 산마루까지 올라 갔다. 아뿔사. 저기 저산이 지난번에 넘어 왔던 고남산아닌가? 그리고 저건 88고속도로!!. 오늘은 함양지도만 갖고와서 운봉지도는 없는데....틀림없이 지난주에 지나 왔던 길인데...

- 당나구! 드디어 허파 뒤집어 지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히 복성이재에서 똑바로 붙었어. 틀림없어. 그런데 왜 내가 반대로 가고 있는 걸까?
힘이 빠진다. 정신이 없다.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되돌아 가야한다. 거의 2시간을 달려 왔는데... 날이 밝아 되돌아 오는 길은 분명 일주일전의 그 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복성이재에서 택시를 보내고 하늘을 쳐다 보고 후레쉬를 이리저리 비추어 내가 가고자 하는 길도 확인했는데... 배낭을 메고는 어둠 속에서 갈 길이 바빠서 그냥 정신없이 반대방향으로 붙어 버렸나? 정말 모르겠다. 단지 지금 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 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 구간 종주는 김이 팍 새 버렸다. 맥없이 다시 복성이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시리봉을 지나 조금 가니 아막산 성터가 보인다. 그래. 새벽에 봉화산을 오르는데 너덜지대가 있었지. 후레쉬 불빛 끝에 스치는 돌탑도 보이는 것 같았는데 왜 아막산 성터라고 생각을 못했을까? 지난주에 넘어 오면서 아막산 성터에 대한 궁금증을 얼마나 가졌었는데, 왜 오늘 잘못 가고 있을 때는 그냥 지나쳤지? 아막산 성터를 내려 오는데 배낭 지퍼가 열렸는지 내용물이 우르르 쏟아져 돌 틈으로 들어가 버린다. 야! 이거 오늘 조심해야 겠는 걸. 귀신에 홀렸나? 왜 이러지?

주섬주섬 정리하여 그 지루한 산길을 내려 온다. 종아리가 아리아리하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 버릴까?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패나 실수 할적도 있지 않니? 그래 실패 한적이 많았지.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그대로 학교를 포기한 적도 있었지.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고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기 위해 시작한 백두대간이 이제 시작에 불과한 데... 오늘 가는데 까지 가 보기로 했다. 육십령을 포기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다음에 접근이 용이한 중재까지 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복성이재에 내려 섰다. 9시35분이다. 세시간 반을 헤매였구나. 배가 고프다. 쪼그리고 앉아 싸가지고 온 김밥을 먹는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어제 퇴근 할 때 보니 신불산에 눈이 하얗게 왔었다. 집에 와서 집사람보고 내일은 친구들과 신불산에나 가보라고 했다. 올 들어 매주 산에 가는 내보고 그냥 이번 주는 백두대간 쉬고 자기하고 신불산에나 가자는 말에 벌컥 화부터 냈었다. 별일도 아닌데... 미안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맛있는 깁밥까지 싸 주다니. 김밥하나에 무 김치 한입. 추워도 정말 맛있네. 저쪽에서 승용차 한대가 올라 오더니 휠끔 쳐다보고 저만치 선다. 저기 내려가서 밥먹고 가란다. 조금만 가면 집이 있는데 추운데서 먹지 말고 따뜻한 밥 먹고 가란다. 정말 고맙다. 햇볕은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고개 마루를 타고 부는 바람이 차다.



- 중재까지는 가야지

찬 김밥이지만 싸준 이의 따뜻한 마음 느끼며 잘 먹었다. 시간이 있으니 중재까지는 가겠다. 이제 서둘 것 없이 천천히 쉬엄쉬엄 가자. 그리고 육십령까지는 다음에 연결하자.
3시간30분을 겉돌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정말 허파가 뒤집어 지는 듯 하다. 마루금으로 올랐다. 맞다. 오늘 새벽 내가 올랐던 그 길이다. 벌목현장이며 묘지하며 새벽에 지났던 그 길이 틀림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내가 거꾸로 돌아 갔단 말인가? 조금 지나니 치재가 나온다. 포장된 도로다. 아침에 내가 치재라고 생각했던 길이.. 그럼... 복성이재? 어디서 본듯 했었는데...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고 봉화산으로 향해 오른다. 왼쪽으로 철망이 쳐져 있다. 철망은 무명고지까지 이어져 있다. 300두 이상의 흑염소를 잃어 버렸다고 철망을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 옆으로 가다가 잘못하면 총 맞을라!

오늘 새벽일을 하나 하나 풀어 보자. 일단 처음에는 제 방향으로 붙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길을 헷갈린 것은 벌목현장이겠다. 거기서 길을 잃고 약간 헤맨 적이 있지만 어떻게 앞으로 안가고 뒤로 갔단 말인가? 대간길을 중심에 놓고 왼쪽으로 내려 섰는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내려 섰는지에 따라 길을 찾았을때 나아갈 방향이 틀린다. 오른쪽으로 내려 섰으면 오른쪽으로 붙어야 하고, 왼쪽으로 내려 섰으면 왼쪽으로 붙어야 하는데...어둠때문에 거기서 헷갈렸을까? 복성이재를 떠나 얼마 안되어 다시 복성이재로 갔는데 그 곳을 치재로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치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나중에 보니 포장이 되어 있었다. 최소한 이정도만이라도 알았더라도 빨리 잘못된 것을 알았을 텐데. 오늘 복성이재만 세 번을 통과 했단 말인가. 허파가 뒤집어 지는 구나!
비슷비슷한 고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만 갔을 것이다. 잘못가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두시간여를 계속 거꾸로 가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나?

나구야! 나구야! 땅나구야! 그러니 너 보고 사람들이 당나구라고 하지. 소금가마니 무겁다고 물에 자빠지는 약은 꾀 쓰다가 솜가마니까지 물에 빠뜨리는 놈 아니냐?

어쨌든 오늘 일은 정말 큰 교훈을 얻은 셈이다. 대간 첫머리에서 이런 실수를 했으니 앞으론 절대 그런 일 없겠지. 항상 나침반으로 중간 중간에 확인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야 겠다.

봉화산 정상언저리는 억새가 평원을 이루고 있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억새가 춤을 춘다. 줄지어 선 지리산 연봉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남덕유가 저기 보이는 저 봉인가? 920미터 밖에 안되지만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 지리산과 남덕유로 이어지는 봉들을 조망하기에 좋은 것 같다. 손끝으로 억새를 쓰다듬으며 능선 산행을 계속한다. 저 만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다. 반갑다. 금방 지나간 듯한 발자국의 주인공들이다. 권하는 술을 한잔 받아 먹는다. 부산에서 오셨단다. 부산이나 울산이나 똑 같은 데서 왔다고 좋아한다. 자기도 몇 년 전에 백두대간했는데 나보고 꼭 완주하란다.

가는 길이 수월하다. 급할 것도 없고 중재까지만 가면 되는데 시간은 많다. 월경산을 지나서는 급경사길이다. 아직도 잔설이 남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더욱 떨게 만든다. 중재에서 오늘의 미완성 종주를 끝낸다.
오늘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 같다. 누가 육십령까지 가면 좋지 못한 일이라도 생길까봐 못가도록 한 것일까?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 나머지 육십령까지도 곧 이어 놓으리라.(終)

6.4차 구간종주 계획
- 기간 : 2002.1.26-27(1박2일)
- 구간 : 육십령-남덕유-무룡산-동엽령-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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