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5구간(댓재-백복령) 종주기


지난주 산행 때는 서울시에 심의 서류를 제출하고는 홀가분해하며 갔었다. 하지만 막상 엊그제 열린 심의에서 제대로 설명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위원들끼리 내부 방침을 논의하는 말만 들으며 나왔다. 그 날 상정된 몇 개의 화장실을 심의한 결과 너무 기대에 못미쳐서 자체적으로 표준안을 만들어 내려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나오며 심정이 매우 착찹했었다. 건축 창작은 장소성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조건을 수용해 만들어가는 것이 기본인데 아파트처럼 똑 같이 만들어지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오랫동안 그 일과 씨름했는데 제대로 의사 전달도 못하고 무산 될 것 같은게 허탈하여 어제 아침 실무자에게 심정을 말했더니 한참 후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 약속한 시간에 담당 부서 책임자와 만나 상의한 후 밤 세워 수정안을 만들어 갖고 다시 가서 담당관과 조율하고 나자 이번 산행을 나서는 발걸음이 다시 홀가분하게 되었다.


이번 구간은 홀로 나서게 되었다. 함께 가는 강남건축사 등산 동호회에서 일정을 미뤘는데, 나는 그 날 시간이 되지 않아서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대간 구간중 두 차례 성삼재-매요리와 신풍리 덕삼재 구간을 단독 산행을 했었다. 그 중 온전히 혼자 걸었던 2구간은 정말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사실 지난주에 다녀오려고 나섰다가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되돌아섰던터라 이번에는 미리 예약을 했었다.


요새 대간을 가는 것이 유행처럼 실천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대간길의 리본을 보면 홀대모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는 단체로 진행하고 있다. 산을 단체로 갈 때는 편리한 점이 많다. 먼 거리를 왕복해 가서 야간에 시작하는 산행을 혼자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단체로 갈 때는 아무리 험한 지역이라도 심리적으로 서로서로 의지하며 힘이 되는 점이 있게 된다. 그리고 준비된 차량을 이용하게 되니 약속장소로 가기만 하면 다녀오게 된다. 그래서 때론 관성적으로 너무 편하게 오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준엄한 대간 길을 가는 감각이 점차 무뎌지는 듯 했다. 산을 가는 것이 단지 관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혼자 가는 이번은 모처럼 고절한 감정으로 산을 대하게 될 것 같았다. 기끔은 혼자 자연의 품에 놓여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할 것 같았다.


처음 대간 길을 나서면서 가장 험하고 힘든 구간이 어디일까 궁금해서 경험한 사람들을 만날 때 그 것을 물어 보곤 했었다. 어려운 구간을 지나는 것은 백두대간 전체 산행에 대한 자신감과도 관계된다. 그런데 대체로 속리산, 대야산, 두타‧청옥, 설악산 구간을 꼽았다. 그 중에서도 두타 청옥이 더 힘든 것처럼 예기들을 했다. 그리고 이번이 바로 두타 ‧ 청옥산을 지나는 구간이 되었다. 그것도 혼자 걷게 되었다.


출발일이 되어 막상 혼자 가려니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험하고 어려운 구간을 혼자 해내고 나면 백두대간을 스스로 체험하는 느낌을 더 크게  얻게 될 것 같았다. 다음주에는 다른 일이 있어서 갈 만한 시간은 이번주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청량리 역으로 가면서 채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주에 함께 가지 못하게 된 사정을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빌어달라는 말이 나왔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험하기로 소문난 코스로 떠나는 마당에 무거운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듯 했다.


청량리 역에 도착해서 개찰을 하고 플랫폼으로 나가 대기중인 열차에 올랐다. 태백선 열차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좌석을 찾아가니 다른 분들이 앉아있다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며 비워주었다. 잠시 후 진짜 주인인 듯한 여자분이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 아주머니는 사북으로 형부가 발령이 나서 언니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사북이 어디쯤인지 물었다. 나는 정선을 지나 대간 마루금을 넘기 전에 있는데 유명한 탄광지대라고 했다. 그 전에 내가 우리나라 땅에서 내가 순수한 고장으로 생각하는 정선이 있다.


정시에 출발한 기차가 교외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얼마 안 된 시각에 근교의 농촌 풍경이 펼쳐보였다. 복잡한 서울을 조금 벗어난 곳에 그런 풍경이 펼쳐지는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높고 파란 하늘에서 가을 표정이 느껴졌다. 기차가 5시 20분 강변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송에서 잠시 후 덕소역에 도착한다고 했다. 서울서 더 멀리 벗어난 곳에 당도하니 다시 아파트 숲이 보인다.


8시 40분 정선을 지나 9시 사북에 도착하자 아주머니가 내렸다. 9시 12분 태백터널에 진입하자 ‘우웅‘소리가 났다. 9시 25분 태백역을 자나 10시 46분 동해역에 도착하자 내일 댓재까지 태워주기로 한 택시 기사가 숙소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나와 있었다. 역에 내려 물을 준비하고 숙소로 가서 내일 아침 4시에 전화로 깨워달라고 하고 헤어졌다. 


찜질방은 싼 가격에 목욕도 하고 잠도 잘 수 있는 것이 편리하게 생각되었다.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매점에서 밧데리 충전을 하고 주인에게 깨워줄 수 있겠느냐고 하니 그렇게 해주겠다고 해서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긴장하여 내가 먼저 깨어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기사에게 전화를 하면서 아침을 먹지 않고 바로 출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기사가 도착해 있었다


차량도 없는 길이지만 밤길에 휘돌아 난 길을 더디 가고 있었다. 4시 45분 댓재에 도착했다. 댓재 이정표 조형물이 전등불로 경관 조명시설을 해 놓아서 밝게 빛나 보였다. 광장 우측 산쪽을 보니 길 옆에 텐트가 보였다. 내가 기사에게 올라가는 길을 물으니 그가 무심코 텐트 옆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지난번 구간을 마칠 때 표시된 길을 본 곳이 있어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에 버스가 서 있던 옆으로 보이던 표지를 보고 올라가려고 생각하는데 단체 등산객 버스가 도착했다.


혼자 있다 주변에 사람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전에 우리가 올라가는 구간 입구에서 다가와 말을 건냈던 것이 생각났다. 그도 그런 마음인 것을 거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 차에서 내린 인솔자에게 길을 어느냐고 물으니 표지에 쓰인 곳을 가르쳐 주는데 내가 가려던 길과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그 길로 산행을 시작해 조금 가다보니 랜턴불이 약해 뒤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그 차로 가서 밧데리를 좀 얻자고 했더니 여자분이 선 듯 갖고 잇던 밧데리를 주셔서 안심하고 나섰다. 어둠에 빛이 없이는 가지 못하고 가다가 사고라도 날 수 있던 터라 생명의 은인 같은 기분이었다.


5시 산행을 시작했다. 5시 10분 약간 오르막길을 걸었다. 좌측 통골, 우측 햇댓골 표지가 나타났다. 그러나 두타산 등 대간길 주요 지점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긴장하며 주변을 보게 되었다. 좌측으로 리본이 보였지만 대간 리본이 아니어서 천천히 지도를 보니 지도상에 통골이 나타나 있어 그 쪽으로 갔다. 통골까지 거리는 2km였다. 숲 위로 별이 보였다.


좌측으로 걸음을 옮기니 뒤에서 아까 댓재서 본 일행들이 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전에 덕산재서 보았던 “진부령까지 무사히 종주하세요” 라고 쓰인 리본이 반갑게 보였다. 그리고 단지 하나의 리본이지만 서먹한 길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5시 19분 우측 계곡 쪽이 훤해지며 새벽의 동트임의 순간이 찾아오는 느낌을 주었다.


동해 바다쪽이어서 날이 훤할 때면 동해 바다가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얼마 후면 어둠길이 끝나고 정말 날이 훤히 밝아질 것 같았다. 혼자서 야간 산행을 할 때면 어서 빨리 어둠이 가시고 밝은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5시 23분 다시 이정표가 나왔다. 통골 1km 라고 써 있는 듯한데 거리를 표시한 부분이 애매하게 보였다. 오름길을 가다 내리막길을 걸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두타산을 오르는데 아직까지는 그리 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측 멀리 산 능선 위로 하늘이 붉은빛을 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5시 35분 약간 내리막길을 걸으며 날이 훤해져서 랜턴을 껐다. 5시 38분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 약간 내리막 길을 걷는 동안 뒤로 어둠속에 지나온 봉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우측 산 아래로는 굽이굽이 강원도 산세가 펼쳐진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닭 훼치는 소리가 들리고 좌측 깊은 계곡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평지 같은 완만한 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윽한 산의 느낌이 들었다.


5시 44분 평지같은 완만한 길을 걸어 내리막 숲길을 걷다보니 숲 너머로 산봉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오름길을 올라가다 보니 우측으로 운해가 보였다. 5시 50분 봉우리에 올라 휴식을 취했다. 거기서 아침으로 김밥을 먹으려 했는데 쉰 냄새가 나서 버리고 복숭아를 먹었다.


다시 길을 나서 5시 55분 봉우리에 도착했다. 날이 훤해져서 가려는 방향으로 산세가 보였다. 뒤쪽 먼 산 주변으로는 구름이 운해를 이루며 끼어 있었다. 지난 몇 구간 빗길을 걷느라고 제대로 조망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니 귀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그 모습을 스케치 하고 6시 15분 출발했다.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길은 완만했지만 돌이 널부러진 곳이 있고 물이 고여 곤죽된 부분도 있었다.


6시 30분 이정표가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표시한 글씨가 지워져 있어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혼란을 줄바에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6시 35분 통골재에 당도했다. 거기에도 이정표가 있는데 두타산이 2.2km 남았다. 그리고 진행방향 직각방향으로는 우천시 계곡유수를 조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서 산죽길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6시 50분 약간 급경사 오르막길을 걸었다. 참나무 숲 아래 키 작은 철쭉 군란이 펼쳐 있었는데 안개가 끼어 숲길이 어두웠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어 6시 52분 봉우리에 닿았다. 봉우리로만 알고 올라갔는데 봉우리에 묘 1기가 봉우리 정상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마치 명당을 써서 천지 기운을 홀로 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추석 성묘를 앞두고 가지런히 벌초가 되어 있는 것이 정성스레 돌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7시 내리막길을 걷다 안부를 지나 오름길을 걸었다. 길가에 이대장이 말한 산사랑방 꼭지라고 쓰인 리본이 보였다. 7시 19분 기리 좌측에 잇는 전망대 바위가 있어 올라갔지만 안개가 끼어 전망을 볼 수 없었다. 그 너머로 짙은 안개처럼 뿌연 구름바다가 되어 있었다.


7시 21분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길이 나왔다. 한참 힘들게 오른 오름길 이후에 마치 농촌의 밭처럼 평평한 곳이 나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계절 따라 길가의 야생화 줄기가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안개비에 젖어 추적거렸다.


다시 약간 경사가 심해진 오름길을 걸어 7시 28분 두타산(1352m)에 도착했다. 그 곳은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어 너른 공터처럼 되어 있는데 안개가 짙어 주변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험난한 길을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그 곳까지 그리 힘들게 올라 온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 곳은 다음 청옥산을 가는 구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30m 두타샘물이 표시되어 있었다. 샘을 찾아가 마시고 올라왔다. 바위에 앉아 쉬고 있다 뒤에서 인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사람이 올라왔다. 산빛사랑 산악회 번개불똥 권만수 씨라고 했다. 그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두타산은 삼척, 동해시의 분수령으로 이 두 고장을 대표하는 산이며,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진다. 두타(頭陀)는 인간사의 모든 번뇌를 털어 없애고 물질을 탐착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산어귀의 삼화사, 천은사이 모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두타산은 청옥산, 고적대와 함께 해동삼봉으로 불리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사람들에게 험하다고 예기를 들을 때는 마치 직벽의 절벽을 넘어 갈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리 경사가 심하지 안았다 .7시 55분 두타산에서 0.6km 내려온 지점의 이정표가 서 있었다. 안개가 끼어 숲이 어둑했다. 길가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다. 가장 험하고 깊은 고을을 이루게 하는 마루금 능선을 기면서 마음도 그윽해졌다.


오늘 가는 구간은 더 위로 가서 만날 오대산이나 설악산처럼 유명한 산들은 아니다. 강원도를 이루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그윽한 느낌을 띠는 구간이다. 그런데 이 곳 산들은 삶을 보듬는 신령한 기운을 띠고 있는 느낌이다. 좌측으로는 아우라지가 있고  우측으로는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이 잇다. 다만 안개가 짙어 주변 산세를 보며 지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더 전설 같은 상념에 빠질 수가 있었다.


몇 해 전 이곳 좌측방향에 있는 정선 아우라지를 다녀갔었다. 그 때 강줄기가 있어 높은 지대의 느낌은 덜했지만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에 당도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음 안에서는 속세의 느낌마저 가신 듯 순수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산천의 신비한 본래 모습의 소중한 느낌을 느끼게 되었었다.


좌측으로 급경사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늘에서 비행기소리가 들렸다. 7시 58분 오르막길을 걸었다. 8시 봉우리를 넘어 가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8시 7분 박달령이 0.9km 남아 있는 이정표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거기서는 완만하지만 긴 오름길이이 이어지고 있었다.


8시 20분 박달재에 도착했다. 두타 2.3km 청옥 1.4km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직각 무릉계곡 관리소는 5.6km였다. 8시 25분 통나무 오르막길을 지나 다시 널부러진 바위돌이 날카로운 길을 지났다. 8시 26분 문바위재를 지났다. 청옥산이 1.1km 남아 있었다.


8시 29분 숲길을 가는 동안  햇살이 비추었다. 햇살을 받자 푸른 숲의 녹색 색깔이 아름답게 드러났다. 햇살이 비치자 점차 날이 맑아질 것 같은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이정표가 나타날 때쯤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숲에 짙은 안개가 끼어 조금 전과 다르게 숲의 표정이 무겁게 보였다. 8시 33분 안부 지나 오름길을 걸었다. 8시 44분 햇빛이 다시 숲에 영롱히 빛났다. 다시 긴 오름길을 걸었다. 험하기보다 오르는 구간이 긴 것이 힘이 들었다. 이번 구간은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이 많아 서 힘든 구간으로 불리는 듯 했다.


8시 50분 청옥산(1403m)에 올랐다. 안내 표지에 이 산은 청옥이 많아서 청옥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청옥은 금.은, 수정, 적진주, 마노. 호박과 함께 극락의 7가지 보배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다. 두타 청옥산 등에 그처럼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실제로 수행에 알맞은 곳으로 여긴 까닭일 듯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관음사 천은사 등 사찰들이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십여개가 넘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무심코 진행 방향으로 나가 돌아보니 숲에 다시 표지석이 하나 더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방향에 등산로 아니라고 가로막고 쓴 글씨가 보여 주변을 살피니 올라온 곳에서 우측으로 급히 꺽인 지점에 리본이 많이 보였다. 리본을 보며 약간 급한 경사 내림길을 걸어갔다. 두타산에서 내려올 때 보다는 길이 완만했다. 길을 가는 동안 숲에 안개가 자욱했다. 잠시 후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9시 14분 연칠성령이 0.5km 로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름이 특이해서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계속해서 안개가 짙게 낀 길을 걸었다. 길은 완만했다. 다시 나타난 이정표에 고적대가 1km 남아 있었는데 지도를 보니 그 전에 연칠성령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9시 21분 연칠성령에 도착했다. 안내 표지가 있었다. 그 표지에 “연칠성령은 안내판에는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領)이라 불리웠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 하는데 인조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澤堂 李植)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 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望京)한 곳이라 전해진다. ”고 쓰여 있었다. 한 인간의 감회로 이름을 붙여진 것이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도회지를 떠나 산을 찾아오는 것을 의미 있게 여기는 마당에, 이곳에서 서울을 그린다는 것도 의미 있게 여겨질 수도 잇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다시 출발해 완만하고 긴 오름길을 걸었다. 오르막 안부 오르막 봉우리 넘을 때 바위가 보였다.  그 바위 형상이 고적대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했다. 9시 32분 고적대 연칠성령이 각각 0.5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이정표 뒤로 보이는 숲의 나무가 안개속에서 실루엣으로 추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산림욕에 대해 설명되어 있었다. 대간은 종주가 목적이지만   걷는 사이 몸에 좋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는 듯 했다.


대간길은 어느 덧 온전히 강원도의 체취에 베어 있었다. 이  곳 지리적 체취는 지나온 곳들과 다른 점이 느껴진다. 그러한 특유의 느낌은 그 자체로서는 잘 모르지만 비교를 통해 그 다른 대상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다른 각기 독특한 느낌을 갖고 있는 지나온 곳이 그립게 된다. 뒤돌아보니 동안 벌써 긴 거리를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36분 고적대 0.3km 이정표가 다시 있었다. 마사흙길 옆에 구절초가 청초하게 피어 있었다. 그 것을 보니 산의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위로 바위 사이가 통로처럼 된 곳이 보였다. 계속해서 길이 험한 곳을 지났다. 이 구간은 아직 대관령 이남부분으로서 그 나름의  체취와 삶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갈 대관령을 지난 곳에는 유명한 콘도 시설 등 상업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청옥산을 지나며 험한 구간은 다 지났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적대 올라가는 구간이 더 힘들었다. 봉우리에 당도할 즈음에 암릉이 있었다. 진행이 더디었다. 전체 남은 구간 거리가 멀어서 끝날 때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길은 완만하고 편해졌다. 하지만 봉우리를 오를때마다 오름길이 길어서 힘이 들었다. 오늘 걷는 구간은 그렇게 매번 봉우리를 넘어가게 되었다.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 표면이 돌기가 솟아 험한 인상을 풍겼다. 능선을 올랐다. 우측 허공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 그윽한 느낌을 주었다. 바위에 오르니 봉우리가 보였다. 안부 같은 곳 우측에 몽촌토성에서 보았던  빨간 열매가 구슬처럼 꽃나무가 보였다.


9시 47분 고적대(1353m)에 도착했다. 벤치가 있었다. 가는 방향은 백복령으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상으로 반을 조금 못 미쳐 온 지점이었다. 갈미봉에 이르러서야 절반이 될 것 같았다.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10시 출발했다. 가는 방향 입구에 많은 리본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이 터널을 들어가듯 숲길로 들어섰다.  10시 3분 두 사람이 마주오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데 좋은 인상이었다.


잠시 후 시야가 트인 곳을 지났지만 안개가 자욱해서 주변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단지 시야가 트인 것만으로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능선 바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잡목지대 철쭉숲길을 걸었다. 그리고 10시 11분 벤치가 놓인 곳을 지났다. 뒤로는 절벽인 듯 나무 울타리가 쳐 있었다.


10시 15분 봉우리를 지나 길을 내려가 10시 17분 고적대 삼거리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숲길 오르막길을 걸었다. 길고 완만했다. 갈을 가다가 우회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숲에 안개가 자욱했다. 길옆에는 빨간 꿀단지 꽃이 보였다. 10시 29분비행기 소리가  맹수소리처럼 들렸다. 10시 32분 길을 가다 우측으로 트여 보이는 곳에 한 목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해 더 그윽해 보였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좌측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갔다. 10시 37분 숲길을 지나는 동안 안개가 끼어 어두웠다.


무거운 분위기속에 나무들이 정령처럼 살아날 것 같은 풍경이 보였다. 나무가 쓰러져 장애물처럼 놓여 있었다. 흙이 될 때까지 저렇게 놓여 이을 것 같았다. 길 좌측에 썩은 고목이 보였다. 하지만 올려다보니 소나무로서 잎이 피어 있었다. 10시 40 다시 밑둥이 부러진채 누운 나무가 보였다. 이 구간에서 원시적인 숲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능선을 오르니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10시 45분 갈미봉에 올라섰다. 무의식적으로 오르다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라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 곳에서 쉬고 있던 사람과 인사를 했다. 이름이 채길병씨인데, 그도 댓재에서 3시에 시작했다며 나보고 빨리 왔다고 했다. 그에게 먼저 가겠다고 인사하고 앞서 나가자 그는 천천히 조심하며 가라고 했다.


급한 내림길을 걸어갔다. 그야말로 무릎 조심하라는 말이 생각났다.  10시 53분 너른 숲 지대가 나왔다. 좌측으로 돌아가는 방향에 참나무 둥치에 버섯이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조금 가니 같은 모습이 보였다.  11시 오름 철쭉 터널 길을 지났다. 앞쪽에 시선이 트인 곳으로 나가니 앞에 산개가 낀 상태에서 희미하게 봉우리가 보였다.


11시 3분 다시 숲 속 길을 걸었다. 대간 리본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지금 나에게 산은 걷는 봉우리를 행해가는 것이 아닌 대하소설을 써 가듯 이어가야 하는 길이다. 대간은 체험의 일이다. 나의 몸이 견디고 참으며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을 겪는 일이다. 나는 단지 걸을 뿐이다. 걸으면서 밤을 지세고 아침을 맞곤 했다. 힘겹고 길게 인내하며 걸어야 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내가 걷는 대간길은 휴전선까지 일 뿐 그 이후의 구간은 제대로 다 마칠 수가 없는 길이다.


10시 6분 계단 내림 오름길을 걸었다. 11시 11분 그윽한 숲길을 걸었다.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우측 나무 가지에 비실이 백두대간이라고 쓴 노랑 리본과 용인동백점 파란 리본이 결려 있었다.  그리고 숲은 안개가 자욱하여 마치 정령이 깃든 듯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 들어 사진을 찍다가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사람과 만났다. 동해 함대 사령부에 근무하는 군무원인데 오늘 처음 만났다며 반가워하며 사진도 찍어주었다.


다시 오름길을 너덜길을 걸었다. 나무판자 같은 돌들이 깔려 있었다. 돌이 겹쳐진 곳은 성을 쌓은 흔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주변에 널부러진 길이 성을 쌓은 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 봉우리를 두고 좌로 비스듬한 벼랑길을 걸었다. 나무 잎이 무성해 숲이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 곳을 지나는 길이 완만하고 날씨도 맑아져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가자 길이 더 완만해졌다. 그 다음 통나무 계단길을 걸어 능선에 오르자 앞이 트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뿌연 안개가 끼어 있었다. 길가에 서 있는 나뭇잎 두 잎이 갈색으로 바래 있어서 마치 리본처럼 보였다. 다시 내림길 계단을 걸어가자 길 좌측 공터가 있고 의자가 놓여 있었다.  11시 27분 그 공터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기왕이면 편한 곳에서 쉬다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쉬고 11시 31분 출발했다.


10시 34분 완만한 길을 내려가다 보니 은수원사시 숲이 보였다. 그리고 11시 36분 잡목 내리막 길을 걸어가다보니 주변에 좋은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굵고 곧게 자란 소나무를 바라보니 웬지 흐뭇한 기분을 들어 명랑한 기분으로 숲길을 걸어갔다. 숲 위로는 맑게 게인 높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의 맑은 날은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을 맑은 날 깊은 산중에서 홀로 걷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최대한 산과 호흡하며 그 나무들의 표정을 정겹게 바라보고 그 정취를 느끼고 느낌으로 대화하며 걸으려 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보니 나 지신의 삶과 내가 잇는, 존재의 세계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나아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어떤지, 내가 잘 못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떠한 생각을 해야 하는지 천천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문제가 더 먼저 생각되었다. 하지만 당장 돌아간 후 해결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길을 가다 보니 앞쪽에 돌을 가지런히 깐 길이 나왔다. 물이 흐르도록 띠어 깔아 놓았다. 햇살이 비추었다.


좀더 가다 11시 48분 소나무 슾 공터에 다시 벤치가 나타나 다시 쉬었다. 그 곳은 이기령이 1.1km 남아 있는 지점이었다. 날이 맑아져 주변 산세가 보였다. 다시 출발해 오름길을 걸으며 수령이 적은 소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루는 곳을 지났다. 소나무 아래에 산죽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니 우측 숲 너머로 시야가 트여 보였다. 11시 59분 아래에 임도가 보이는데 대간길은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터널이 있나 보다 했다.  


12시 2분 이기령(810M)에 당도했다. 임도가 돌아 바로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12시 6분 이기령을 출발해 오름 길을 걸었다. 숲에 햇살이 비추었다.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려고 켜보니 받지 않은 전화가 여러 통 있었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가는데 길가에 싸리버섯이 보였다. 12시 27분 상월산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았다. 그러나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백봉령이 10.1km 남은 것으로 쓰여 있었다.


12시 30분 이정표를 지나 조금 올라간 위치의 봉우리에 오르니 그 곳에 평평한 헬기장이 있었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멀리 시야가 트여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오름길을 걸어 능선을 지나는 동안 좌우측으로 시야가 트인 가운데 앞에 봉우리가 보였다.


우측으로 깊은 계곡 너머로 봉우리가 우뚝 서 보였다. 구름이 끼어 황홀한 모습을 띠었다. 12시 40분 봉우리를 오르니 계곡 건너의 산이 홀로 우뚝 서 보였다. 그 산 봉우리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구름이 흐르며 휘감기 시작하여 더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쉬고 가려다 아예 그 자리서 식사를 했다.


12시 55분 그곳을 출발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을 넘어갈지 다른 길로 갈지 걱정을 하면서 걷다보니 길이 좌측으로 이어져 대간 길이 다르게 이어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앞에 보이던 봉오리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1시 9분 다시 봉우리에 올랐다.


봉우리에서 우회하는 길을 나서자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경사가 약간 심한 그 길을 가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내림길이라 별로 힘이 드는줄 모르고 가는데 그는 경사길을 오르느라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하자 백복령에서 출발해 이기령까지 간다고 했다. 그도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어 댓재에서 왔다고 하니 그 걸음이면 백복령까지 2시간 3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내려가다 리본이 군대서 관물대 정리하듯 가지런히 매여진 곳을 지났다.

 

1시 25분 원방재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조금 떨어져 트인 곳에 잘 닦인 임도가 있었다. 깊은 산 인근에서 삶을 영위하는 흔적인 그 길이 산과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었다. 그 곳에 그 곳 풍경을 찍어 놓은 안내판이 있었다.  가을 풍경을 찍은 것인데 그 계곡지점에서 좌우로  산의 윤곽이 V자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던 곳에서 건너보이던 산을 올라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본대로라면 오름길이 무척 힘이 들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어치피 가야 할 길에 주어진 상황대로 묵묵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그런데 실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완만했다. 사름들이 오랫동안 다닌 흔적으로 길이 된 곳은 그 나름대로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가까울망정 벼랑을 오르도록 길을 내지 않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완만한 길을 걷게 되었다.


지도를 보면서 지나고 있는 인근 지역을 살펴보니 좌측으로는 정선군, 우측으로는 동해시였다. 그 중 좌측 계곡에서 생긴 물길이 내려가다 골지천과 만나 흘러 여강과 아우라지를 지나는 위치일 것 같았다.


나는 정선하면 아우라지가 먼저 떠오르다. 그 곳은 깊은 산중에 있어 번화한 도회지로부터 멀고 고립된 형국이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의 평온한 삶터의 느낌이 있다. 그러한 깊은 곳에서의 삶터는 여느 평지에 있는 농촌 마을과 삶의 체취가 다르다. 평지라고 하지만 넉넉하게 갈무리 할 만큼 수확할만한 조건은 아니다. 산나물과 임산물이 특선물인 이 지역은 단지 자연에 의지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성이 고와지는 오히려 얻어진 것이 넉넉해 보이고 감사함 마음이 깃든다. 그리고  아우라지강 여울처럼 정선아라리를 노래했다. 그 구성진 가락은 그 지역의 정서가 베어 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만이 제대로 그 느낌을 노래가락에 살려낼 수 있다. 고절한 지리적 조건에서 마음안에 그리움이 쌓여 아라리 가락이 생겨나게 했을지 모른다.  나는 나그네로서 대간 마루금을 걸어 지나치고 있지만 마음안에서는 그들의 정서와 동화될 수 있을 듯 했다.




  아우라지

                                                                   02. 6. 2


돌아갈 길은 멀고

빽빽히 산굽이 둘러쳐

모든 이야기는 다만

물길로 오간다.


멀어서 그리움이 일고

멀어서 슬픔이 일고

조양강 강물도

더 푸른 빛깔이 되었네


돌아갈 길 아득해

머물러온 땅

그리움 접고 돌아보면

흰구름 한가히 산등성이 위로 떠가고


동박꽃 피는 소식 강바람 타고 올 때

구절리 처녀 볼엔 살포시

수즙은 미소 인다.



강원도는 내가 삶에서 지차고 허전한 느낌이 느껴질 때 더 찾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대관령을 지나 만나는 동해바다는 그리움이었고 정선 등지의 오지로 가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나도 마음 한편에 외로움의 저림이 일어났었다. 높고 깊은 고을에서의 평온한 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 속에서도 여전히 외로움이 베어 오는 곳이다. 그리고 정선은 내가 살아오면서 격은 정서와 통할 수 잇을 것 같았다.


나는 삶에는 늦가을 같은 쓸쓸함이 베어 있다. 내가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환경과 관계 될 듯 하다. 나에게 찾아온 충격이 두 번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집안에 우환이 찾아 든 것과 고등학교 때 부친이 집을 떠나신 것이다. 그 때문인지 마음 한편 세상과 서먹한 느낌을 갖고 걸어오게 되었다.

 

길을 오르다보니 우측으로 지나온 산이 건너 보였다. 바위산이 위용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다. 1시 38분 봉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1시 46분 다시 바위 봉우리를 지났다. 올라온 뒤로 거친 바위위에 뿌리 내리고 자란 소나무 모습이  바위의 겉모습과 같은 질감을 띠고 있어서 하나의 몸처럼 보였다. 


1시 48분 다시 봉우리에 닿아 잠시 쉬었다. 그 곳에서 좌측으로 시야가 트여보였다. 휴식을 마치고 1시 58분 다시 오르막길을 걸었다. 그 앞으로 통나무 계단길을 지나 봉우리(1022봉)에 닿았다. 그 곳에도 헬기장이 있었다. 거기서 백봉령까지 남은 거리가 5km였다.. 


봉우리서 잠시 쉬고 2시 30분 다시 출발해 내림길을 걸어 다시 오름길을 올랐다. 그리고 2시 38분 다시 봉우리에 닿았다. 택시 기사에게 3시 30분에 오라고 해 두어서 남은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남은 거리로는 그 시간까지 당도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서둘러 걸어 2시 44분 다시 봉우리에 올랐다. 그 앞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진 길 뒤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보였다. 그 뒤로도 그리 높지 않은 봉오리를 다섯 곳이나 지났다. 능선길을 가다보니 우측 아래쪽으로 도로가 보이고 차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걷고 있는 길은  그 도로와 가까워지지 않고 지나쳐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3시 20분 거의 다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다시 오름길이 나와 당황스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시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 내려오니 숲길 끝이 트여 보이며 구간을 마치는 느낌이 들었다.


3시 40분 백봉령에 도착했다. 그런데 3시 30분에 와 있기로 한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도로 건너 좌측에 파고라와 벤치가 있는 곳에 등산객 일행이 모여 있었다. 나도 그 곳 벤치에 가 앉으며 택시기사에게 계속해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달리 교통편을 마련할 수 없는 곳에서 믿었던 일이 어긋나니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동해 가는 방향의 도로가로 나가 지나는 차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몇 대가 그냥 지나쳐 갔다. 구 사이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고개 마루 지점에서 멈춰섰다. 임계 가는 방향이었다. 그 차에 가까이 다가가 사정을 말하니 타라고 했다. 그 분은 벤츠만을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분인데 이 곳 지역을 담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정선을 지나 제천으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간다고 하자 임계에서 내려줄테니 강릉가는 버스를 타라고 했다.


얼마 후 임계에 내려 그분에게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바로 근처에 있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4시 5분 강릉행 버스를 탔다. 강릉으로 가는 길 주변이 살가운 농촌 풍경이 펼쳐 보였다. 맑은 개울이 흐르고 개울 주변에 논에서 출수한 벼가 막 노란 빛깔을 띠어가고 있었다.


차 안에서 산에서 제대로 통화를 못한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심의 때 위원들이 한 예기를 메일로 보냈으니 재심의 신청 서류를 만들 때 참작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월요일까지 심의서류를 제출하려면 일요일을 꼬박 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았다.


강릉에서 내려 서둘러 4시 46분 동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동안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다. 차가 문막휴게소에 들렀으나 땀에 젓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고 주변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냥 있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해 8시 10분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08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