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구간

한남금북정맥

산행일

쌍봉리~소속리산~감우리

(18km, 8시간10분)

2007년 10월 6일(토)

 맑음

<산행 기록>

코니아일랜드-583번지방도-금왕농공단지-체육공원-21번국도-소속리산-346봉-감우리

    7:10             9:10               9:30            9:50        10:50      12:30    14:00   15:20


 

무극광산의 금맥을 따라


 

  한남금북정맥 두 번째 구간의 산행을 간다. 산행시작 3시간 전에 일어나야 시간을 맞출 수 있으므로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 중부고속국도의 음성IC로 빠져나가서 82번 국도를 따라 금왕읍 직전에 583번 도로를 만난다. 지난번에 비 때문에 중단했던 쌍봉1리의 코니아일랜드 아이스크림 공장앞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다. 길옆에 차를 주차시키고 산행준비를 한다. 하늘은 청명하여 오랜만에 여유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왼쪽 코니아일랜드 공장이 출발점이다>

  7:10

  583번 도로에서 코니아일랜드 아이스크림 공장의 우측편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니 가옥이 한 채 나오고 날등을 따라 진행한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고 짐작한 대로 덤불만 가득하여 길이 없다. 그래서 오른편의 밭의 가장자리를 지난다. 건너편 산 위에 물탱크가 있다고 하는데 숲이 우거져 있어서 보이지 않다가 민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서 가까이 다가가니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꾸준하게 선답자의 리본이 있어서 길을 잘 찾아간다. 중간중간에 덤불로 길이 막히더라도 정맥능선을 이어간다는 상식을 가지고 돌아가서 다시 길을 찾으니 예상대로 길을 잃지 않고 이어간다.

  내곡리와 쌍봉리를 이어주는 제수리 도로를 가로질러 가시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길가 곳곳에 인삼밭이 나오고 지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진행방향에서 묘와 소나무 지대로 유턴하듯이 돌아 내려간다. 그리하여 맞은편 구릉으로 올라서니 잘 가꾸어진 묘가 여럿 나오고 정면에 군부대 초소가 보인다.

  높지 않은 구릉에서 바라다보는 시골풍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인삼밭과 고구마밭이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아 산야는 이미 가을의 모습을 드러내고, 능선 위에 서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하나의 다리로 선 학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또 하늘에는 양떼구름으로 불리는 고적운이 무수히 많은 조각구름들을 넓게 펼쳐낸다. 

<구릉위에서 본 그림같은 풍경>

<인삼밭옆의 고구마밭>

  정맥능선을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서 우회하는 구간이 나온다. 구릉위에서 군부대 초소전망대를 바라보고 내려서니 군철조망이 나오고 왼쪽으로 내려간다. 작은 개울을 만나 물을 건너게 되지만 철조망과 함께 이어간다. 철조망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개울과도 헤어지고 철조망따라 능선을 올라서는데 부대초소에 있던 초병이 길이 아니라며 말을 걸어온다. 정맥따라 산행을 하고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얼른 벗어나겠다고 했더니 머쓱해한다.

  철조망이 꽤 길게 이어진다. 잡초가 진행을 방해하고 길도 철조망을 바짝 붙어서 간신히 지나간다.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가니 어느새 협진주유소가 있는 583번 지방도에 닿는다.

  9:10

  코니 아일랜드 공장에서 583번 지방도까지 꼭 2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젠 다시 도로따라 길을 간다. 협진주유소 왼쪽에 있는 시멘트 도로로 들어가고 잠시 후에 연립주택 앞을 지나 2차선 포장도로에 닿는데 등나무 보신탕의 간판이 있는 식당앞이다. 계속해서 왼쪽으로 도로따라 고갯마루로 진행하니 금왕농공단지 입구를 만난다.

<금왕농공단지 입구>

  9:30

  금왕농공단지 입구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고갯마루에 닿는데 방아다리 고개다. GS칼텍스 주유소로 가기 직전 오른편에 있는 능선으로 길이 이어지고 잠시 후에 82번 지방도에 의해 절개된 능선 상단부가 나오는데 155.8m봉이다. 맞은편으로 공장부지인듯한 넓은 공터가 보이고 절개지를 따라 내려가니 정맥능선은 온데간데 없다. 전에는 산줄기였지만 이젠 터를 닦아 정맥능선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82번 지방도를 만나는 금왕산업단지 사거리로 진행하고 목우촌 우유공장 앞으로 간다.

  목우촌 공장정문 맞은편에 체육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고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가득한 체육공원안의 농구대 앞에서 산길은 다시 이어진다.    

<잡초가 무성한 체육공원>

  체육공원이 있는 금왕읍은 빈약한 자연 조건을 가졌던 이곳 음성군에서 한때는 많은 금을 캐냄으로써 ‘골드러시’와 같은 일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충청북도를 통틀어 군 하나에 읍 두 개가, 더군다나 나란히 마주 붙어서 있는 곳은 단양군과 이 곳뿐인데, 음성읍에 맞붙어 크게 발달해 있는 금왕읍이야말로 예전에 흥청거리던 ‘황금시대’가 남긴 선물이다. 식민지 시대에 개발된 금왕읍의 무극광산은 구봉광산, 장항광산과 더불어 나라 안의 3대 금광으로서 6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500kg에 가까운 금을 생산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 금값이 나라 밖의 시세와 맞지 않고 또 너무 깊게 파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데다 순도마저 떨어져 1973년부터는 금광의 문을 닫고야 말았다. 광산촌으로 기반을 다진 금왕읍은 금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음성군의 중심에 자리잡았다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서 교통의 요지, 농산물의 집산지로 역할을 새롭게 바꾸고 있단다.

  10:50

  한 시간의 산길을 걸어서 봉곡리가 있는 21번 국도변에 닿는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바리가든 식당앞에서 잠시 배낭을 내리고 휴식한다.

    

<21번국도>

  잠시 휴식한 후에 다시 산으로 향한다. 산밑에 있는 밭에서는 농부들의 가족이 총동원된 가운데 고구마 수확으로 한창 바쁘다. 골마다 고구마가 가득 쌓여 있다. 정겨운 풍경을 뒤로하고 나의 길을 간다. 이곳에서 345.8m봉까지는 오름길을 가야한다. 중간중간 간식을 먹고 있지만 생각만큼 뒷심이 발휘되지 않아 느릿느릿 올라간다.

  345.8m봉을 지나면서 완만한 오름길의 능선이 이어진다. 한낮이 되면서 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간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약간 더운 기온까지 느껴진다. 더울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날파리는 눈앞에서 쉼없이 진행을 괴롭힌다. 그러다 들숨에 한 놈이 입안으로 들어갔나 보다. 뱉어 낼려고 캑캑거려도 감각이 없다. 젠장~

  숲길을 따라 여유있는 길을 갈 때 딸랑거리는 종을 매단 한 분의 등산객을 만난다.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등산객이라 반가워서 인사를 했더니 그 분도 나처럼 정맥산행을 혼자서 하고 있다며 기뻐한다.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지나온 발자취를 얘기한다. 잠시 소란을 떤 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다시 간다.

  안부사거리를 지날 때 아크릴판에 청색 매직펜으로 ‘門安 등산로’라고 쓴 안내판을 만난다. ‘들어서면 평안한 길, 옛 나무꾼이 등짐지고 줄줄이 넘나들던 길.’이란 말이 퍽 정겹다.

  

<문안등산로 안내판이 퍽 정겹다>

 

<산부추도 가을을 만끽하고>

  12:30

  어느덧 소속리산 정상(431.8m)에 닿는다. 정상이라도 나무들에 둘려싸여 조망은 없으나 이 산을 거쳐간 수많은 흔적은 남아 있다. 선답자의 리본이 나무마다 깊은 인연으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산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이 반갑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데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도 소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산길에 자주 만나는 리본은 언제 보아도 반갑다. ‘배창랑과 일행들’, ‘부산백두산산악회’, ‘홀대모’ 등과 더불어 ‘마산 전수배 진희자’님의 리본도 오랜만에 만난다.

<소속리산 정상>

  소속리산 정상에서 물을 마시며 휴식한 후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향한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라 조망은 없지만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가늠하고 방향을 잃지 않는다. 잠시 후에는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 능선을 지난다. ‘꽃동네’라고 부르는 사회복지시설이 위치한 곳이다.

  ’꽃동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기 위하여 1976년 오웅진 신부가 시작한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이다.

  오웅진 신부는 1976년 9월 12일 동냥깡통을 든 최귀동(경락·베드로) 할아버지와의 숙명적인 만남을 통해 무극천 다리 밑에서 살고 있던 18명의 걸인들의 삶을 목격하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달아 당시 가지고 있던 돈 1300원으로 시작하여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 부엌 다섯 칸짜리 ’사랑의집’을 짓고 1976년 11월 15일 그들을 입주시킴으로써 ’꽃동네’의 기원이 되게 하였다.

  꽃동네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꽃동네를 찾아오는 걸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꽃동네를 돕는 사람들도 늘어났고, 그 가운데 일생동안 사랑과 봉사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젊은이들도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가톨릭 수도공동체인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의 시초가 되면서, 이후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맞이할 수 있는 시설이 한 동, 한 동 늘어나 오늘에 이른다.

 

  소속리산을 출발하여 40분이 지나자 시멘트 도로에 닿는다. 동음리와 상촌을 이어주는 도로다. 5만분의 1지도에도 표시가 자세하지 않아서 ‘웬 도로가 다 있는가’ 하고 의아해한다. 반듯하게 잘 생긴 도로 옆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이름 모르는 꽃들이 예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름다룬 가을의 모습을 만끽하면서 행복해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두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니 전혀 왕래가 없는 도로는 아닌 것 같다.

  

<상촌-동음리간 시멘트 도로>

  다시 산길을 간다. 산행이 끝나는 감우리 임도까지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숲길을 이어간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는가 하면 평탄한 숲길을 가기도 하고 잡목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기온이 올라서 조금은 덥게도 느껴지는 오후이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 산길은 동물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할 텐데 길을 가는 동안 사람의 감각도 활짝 열려있나 보다.

  길가운데서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뱀이 길게 늘어져 휴식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이놈도 아마 일광욕을 하러 나온 모양이다. 나를 보더니 숲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을 따라 도망가다가 똬리를 틀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길을 막고 있어서 비키라며 스틱으로 호통을 쳤지만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빙 돌아 피해 간다.  뱀을 한 번 보고 난 후에는 길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또 다른 놈이 나와 있지 않나 해서 감각신경이 바빠진다.

  다시 길을 간다. 길가에 온통 옻나무로 가득한 옻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옻나무>

  점점 힘이 드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좋은지 길을 걷는 것도 멀게 느껴지고 힘이 든다. 걸음이 느려지고 자주 물을 찾는다.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아니다. 오늘 산행목적지는 적어도 돌고개까지 가는 것인데 그것도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인 375.6m봉에 닿는다. ‘준.희’라는 분들이 붙였는지 산높이 표지가 뚜렷한 정상은 높낮이가 비슷한 산줄기에서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 준다. 

<감우리 임도를 지척에 둔 375.6m봉>

  잠시 조망이 트이길래 소속리산을 향하여 사진을 찍었더니 역광이다. 소속리산이 꽤 멀게 느껴진다. 산줄기는 가깝지만 지나고 보면 아득하게 멀리 있다. 뒤돌아보면 내가 언제 이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15:20

  감우리 임도가 있는 승주고개에 닿는다. 고갯마루에 송덕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왜 이런 곳에 세웠는지 사연이 있을 법한데 안내문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감우리 임도>

  승주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기로 한다. 정맥능선을 벗어나 15분 정도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곳이지만 18km 정도를 걸어서 더 이상 갈 힘도 빠진데다가 오늘은 컨디션이 나빠서 무리를 하지 않기로 한다.

  37번 국도까지 내려간다. 꼭 15분이 걸리는 거리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타고 출발지로 되돌아간다. 택시 안에서 기사 분에게 묻었다.

  “114에 금왕콜택시를 찾으니까 무극콜택시 말씀이냐고 되묻던데요?”

  “금왕이나 무극을 같이 부르지요”

  “두 이름이 동시에 통용되는 사연이 있습니까?”

  “금왕은 옛날에 금을 캐던 동네라 부른 것이고 무극은 금왕읍 무극리라서 그렇게도 부르지요.”<200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