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백두대간 홀로 걷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대간 길에 들어서기
까지는 아니다. 도대체 배낭은 이미 챙겨져 있는데 한 시간
이상 이른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정각 네시에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깼다. 백두대간 답사 때문에
핸드폰을 바꾸었는데 덕을 독특히 보는 셈이다. 05:20에 대간
길에 들어섰다. 행여 비가 올세라 반 바지에 우비 바지를 입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새벽 답사는 이슬때문에 우바지를 입으려 했었다.

큰재에서 신곡리 부락까지는 약 1km 거리이다. 어제 밤 신곡 마을
초입에 있는 백화명산 포도 집하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그곳에서 잤다.
밥은 늘 저녁에 아침거리까지 지어 놓는다. 즉석 해장국을 끓여 해놓은
밥을 말아 먹으면 그 뿐이다. 점심은 아예 처음부터 빵으로 해결했다.

05:50 처음으로 임도가 나타나 표식을 따라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곡을 지난 다음 능선이기에 상식대로 능선을 오르려고 능선 위쪽을
살피니 몇개의 표식이 걸려 있는데 무언가 이상하였다. 길이 없었다.
기웃거리다 문득 우측을 보니 내려가는 길에 표식이 무수히 걸려 있었다.

임도에서 능선 길에 오르자말자 바로 왼쪽으로 꺾여지며 대간 길이 이어
있었다.목장인 듯한데 종교 방송을 틀어 놓았는지 새벽에 홀로 산에
오르는 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목장 뒤를 돌아 감싸고 대간 길이
이어진다. 임도 능선 위쪽으로 표식을 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06:20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룬 우리나라 여느 마을 뒷산마냥 한 시간을
걸었는데 그 길이 그 길이다. 간혹 덩쿨로 길을 막음도 마찬가지이다. 표식이
많이 걸려있다. 작은 공간인데 제법 아침 바람이 시원하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도 표식을 걸었다.[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은행정 박경훈 2004.06.25].

표식을 거는데 육십령에서 덕유산 오를 때 샘터 근처에서 울어대던 딱따구리가
근처에서 운다.06:50 능선에 오르니 너른 공터다. 주위를 살피니 아래쪽에
무덤이 있는데 손 놓은지 오래 되었다. 위쪽도 자세히 보니 무덤이었다. 제사
지내는 후손은 오지 않고 지나가는 객들의 쉼터가 되어 고시례만 받아 먹는다.

바로 계곡의 너덜 지대를 지나는데 비록 보이는 곳이 건너편 능선이지만 바람이
시원하여 금방 쉬었는데도 잠시 발길을 또 멈춘다. 두 시간여 지나도록 그럴듯한
장소가 없었다. 바로 개터재에 도착하였다. 무덤가 쉼터에서 들리던 불상의
소리가 그 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개터재의 오르막도 잘라놓은 나무에 막혔다.

오르막 왼편 능선의 나무들을 기계톱으로 벌목하고 있었다. 날이 새자 작업을
시작한 듯 저 멀리 있는 인부의 모습이 보였다. 집을 지으려 나무를 벤다고
하였다.07:40 개터재 이후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 되었다. 잡목도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큰재에서 개터재까지 뒷산을 오르고 내리듯이 두시간여를 걸었다는 말이다.

08:10 너른 공터가 있어 잠시 쉬는데 [포천 막걸리 다시마 김...] 부식 등을 파는
자동차 행상의 스피커 소리가 들린다. 포천 막걸리를 그렇게 파는 줄은 처음이다.
능선을 지나다 보면 나무 사이로 마을이 보이고 집들이 간간히 보이니 동네 뒷산이
맞다. 백두대간이라고 모두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 우리 삶의 터전이다.

08:30 윗 왕실 임도에 당도 하였다. 실로 감격으로 지금까지 재미없는 답사 길을
보상 받았다. 아마 구룡령에 이런 생태학적 육교가 있다고 들었다. 오늘도 만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임도를 통행하는 차량이나 하다못해 경운기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연육가 있다.입구 상단에 [여기는 국토가 숨쉬는 곳 백두대간!].

혹 시공자나 시행기관이 누구인가 알아보려 내려가 살폈지만 아무 흔적도 찾지
못하였다. 다시 감격에 감동까지 먹었다. 이 맛에 홀로 백두대간 답사 길에
나섰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몇방 찍었다. 표식도 난간에 걸었다. 아예 콘크리트를
타설할 적에 미리 글을 써 놓은 양 콘크리트에 깊게 붉은 글씨로 음각되어 있다.

09:40 백학산 정상에 올랐다. 오르는 길의 발길이 가벼웠다. 감격을 크게 먹은
덕택이라 생각한다. 정상은 북쪽만 시야가 트였고 어제 국수봉에서 본 정상
표석을 이리로 옮긴줄 알았다. 어찌 그리 비슷한가 했더니 1998.5.10 상주 시청
산악회에서 세웠기 때문이었다. 표석 바로 곁에 참나무는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정상에 이런 우람한 참나무가 있는 곳은 백학산 정상이 유일한 것 같다.
10:00 임도가 능선을 깎았는데 배수로로 충청도로 흘러갈 물이 경상도로 흐른다.
물을 도적질 당했고 하였는데 이해 득실은 모르겠다. 내리막도 유유하였는데
막판에 곤두서는 곳이 있었고 자락은 완전히 잡종지 진흙 덤불을 헤쳐야 하였다.

11:10 개머리재에 당도를 하였는데 아스팔트 포장이 막 끝난 듯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개머리재에서 오르는 능선의 길은 깊게 파여져 물이 흐르고 있다.
12:00 지기재에 당도하기 직전에 좌우로 과수원이 있어 그 사이를 지나가니
백두대간 길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기재를 지나면 아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개인이 소유한 과수원을 통과하니 이번에는 통과를 금지하고
돌아 가란다.부득불 마을 안으로 들어오고 농수로 일망정 수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통과를 허락한 곳은 과수가 실한데 금지한 곳은 부실하였다.생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이 그러하니 말없는 백두대간이 보은을 하지않나 생각한다.

13:00 기지개에서 오른 능선을 지나 계곡에 들어서니 마루금이 논두렁겸 농로였다.
길 오른쪽은 높이가 차이나는 밭인데 수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즉 논두렁 끝
부분에 물꼬가 있는데 이것이 농로 지하로 경상도 수계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옛 현인 신경준님이 오늘날 그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13:30 신의터재에 도착하였다. 왜정 시대에 어신재로 바꾼것을 문민정부에서 지명
광복을 시켰다고 한다. 의병장 김준신의 역사가 서린 고개로 작은 공원화 되었다.
15:00에 다시 큰재에 도착하여 상주를 거쳐 내일 답사 기점인 신의터재로 가는
도중이다. 목욕후 pc방에서 답사 중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기록하여 게시를 한다.

*고개 마루에서 홀로 배낭을 메고 있으니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면 거의
차를 세우고 태워준다. 오늘도 네번이나 지나가는 차를 탔다.신의터재에서 화동
까지 승용차를 얻어 탔고 화동에서 모동까지는 버스 모동에서 태워주는 분이
잘못하여 추풍령 가는 도중인 반고개라는 곳에 내려 주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다시 반고개에서 반계 삼거리까지 모동가는 1톤 화물차를 타고 왔고
반계에서 큰재까지는 지나가는 경찰 순찰차를 얻어 탔다. 혼자니 가능한 것인지.
지금 시각이 20:10을 가리킨다. 곧 신의터재에 가서 라면끓여 지어 놓은 밥을
말아 먹고 내일 산행을 준비해야 한다. 산행기 쓰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 고니 - 은행정박경훈님 ~!힘내십시요. 파이팅입니다.
▣ 박기준 - 박경훈님.지난 토요일에 비재 밑 주유소 휴게소에서 만난 박기준입니다.
▣ 박기준 - 늘재까지 오셨죠? 무더위에 힘드셨죠?.본인은 서울에 23:00 도착하였습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