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곰넘이재에서 태백으로 [곰넘이재-부소봉-태백산] [함백산-만항재-화방재]

경상도 동북쪽 오지에 참새마을(경북 봉화군 춘양면 진조리)이 있습니다. 구룡산과 각화산이 포근하게 감싸안아 참새 둥지를 튼 산골 마을입니다. 마을을 비켜 흐르는 넉넉한 계곡은 이 마을에 농사를 돕고 풍성한 인심을 만들어 낼 듯 했습니다. 참새처럼 옹기종기 모여 정답게 살아왔을 참새마을, 문명의 거센 바람 탓인지 이웃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삼복 더위도 잊은 채 밭이랑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참새마을에서 계곡을 십 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강원도 영월 땅과 내통했던 곰넘이재가 있습니다. 곰넘이재에 오르는 길은 넓게 닦여져 임도로 활용되었을 텐데 지금은 길이 방치되어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곰넘이재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 구간 산행, 태백산까지는 하루 산행으로 꽤 벅찬 일정이었는데 산골 오지 참새마을(진조리)에 4륜 구동 차량이 나타나서 곰넘이재까지 차량 지원을 받게 된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곰넘이재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은 신선봉, 깃대배기봉, 부소봉을 지나서 태백산으로 이어졌습니다. 깃대배기봉을 지날 무렵 태백으로 가는 백두대간에 비가 내렸습니다. 여름 산길에서 비를 반갑게 맞을 때가 있습니다. 장거리 산행으로 젖은 땀과 더위를 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백산에는 옛적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던 천제단(天祭壇)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정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무속 신앙의 흔적을 비롯하여 자연을 숭배했던 신성스런 성지(聖地)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태백산은 아직까지 자연 신앙과 관련된 전설이 살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태백산에는 하늘 뿐만 아니라 비, 구름, 바람은 물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 영겁을 지탱해 온 바위 등, 모든 것이 신령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태백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산골마을 태백에서의 밤비는 백두대간의 힘겨운 산행을 무사히 끝낸 성취감 때문이었는지 눈꽃 잔치 때의 서설(瑞雪)처럼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태백의 산신(山神)이 머무는 당골 아래 민박촌에서 당신과의 깊은 인연에 대하여 밤새 생각했습니다. 빗소리까지 막았던 열정이 어디서 왔는지, 밤을 뒤척이며 당신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 내리는 태백의 밤은 당신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가득 쌓여지며 그렇게 새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태백의 하늘은 흰 구름이 둥실 떠 있는 밝은 날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로 알려진 만항재(1330미터)에서 함백산 정상에 쉽게 올랐습니다. 날아갈 듯한 산바람에 밤새 그리던 당신을 붙잡듯 1572.9미터라고 새겨진 함백산 표지석을 붙잡고 백두대간 종주의 의지를 다지며 화방재로 내려왔습니다.
[태백-풍기-춘양-진조리] [진조리-곰넘이재]
[곰넘이재-신선봉-부소봉-문수봉-당골]

[당골-함백산]
[함백산-만항재-화방재]
[화방재-태백-검룡소-태백-봉화-풍기-대구]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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