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예보에 눈 또는 비가 내린다고 했었는데 다행히 하늘에 별도 총총한 것이 맑았다. 4시30분 이화령을 출발한다. 입구에서 백두대간은 좌측으로 올라야 마루금을 밟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고 빠른 길을 가려고 할때는 우측 사면의 細路를 따라가면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여러개의 헬기장을 지나게 된다. 건조기라 양지에는 낙엽이 바짝 말라 있어서 새삼 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제법 가파른 경사를 올라서면 759고지에 다다른다. 오늘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백두대간의 의미를 마음에 되새기며 한구간 한구간을 빠짐없이 이어가는 모습들이 장하게 느껴진다.

조령산 아래에는 조령샘이 있는데 그 물맛은 아주 시원하고 상큼하다. 특히 여름철에 이 샘물을 마시면 온갖 시름을 잊게 하고 땀을 금방 식혀준다. 하지만 오늘산행은 마루금을 타야하기 때문에 좌측능선에 희미하게 나있는 길을 주의 깊게 찾아야만 제대로 밟을 수 있다. 6시2분 숨을 헐떡이며 오른곳은 조령산(1,026m)이다. 아직 사위가 컴컴한 터라 주변을 조망할 순 없었다. 일행들은 잠시 숨을 조율하며 간단한 행동식을 먹기도 한다.

잠시 서서 앞을 내다보니 송곳처럼 하얀 살을 들어 내놓고 뾰족뾰족 솟아있는 신선암을 비롯한 여러개의 봉우리가 겹겹이 보인다. 저곳을 모두 밟고 지나야하는데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자니 엄두가 안난다. 이제부터는 경사도 심하고 부분적으로 암릉이 있다. 또한 결빙된 바위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위험하다 싶으면 자일을 걸고 이동할 수밖에.... 속도는 게걸음... 길 양편은 낭떠러지...

이 구간을 지나다보면 중간 중간 전망 좋은 펑퍼짐한 바위지대를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 주변풍광을 두루 살피기엔 안성맞춤이다. 마침 해도 솟아오르고.... 기분은 더한층 상승되고... 지나온 능선과 주변산세를 바라보면 흑백사진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커먼 바위군락과 나무들이 하얀 눈을 듬뿍듬뿍 묻히고 있으니 이 얼마나 색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 모습인가. 일전에 어떤 분의 산행후기속에서 어떤 산을 스케치한 모습을 본적 있는데, 이것이 그것과 흡사한 정경으로 보인다. 이런걸 볼때면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하는 건지...

제법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받으며 일행은 나무와 자일을 번갈아 잡으며 익숙한 몸놀림을 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아마도 사지가 쑤시고... 무슨 막노동이라도 한것처럼 온몸이 결리고 끙끙 앓을 것이다. 많은 체력을 소비한터라 시장기가 발동한다. 일행 중 한분이 무겁게 가지고온 따뜻한 밥과 먹음직스런 반찬을 주시는 통에 임금님 수랏상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예의상 먹으라고 한건데 아무 생각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은 것은 아닌지... 이미 소화가 다된 이 마당에 새삼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자일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간단히 식사까지 하고나니 선두와는 1시간정도 차이가 나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호출로 자일 몇동을 배낭에 담고 빠른 속도로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깃대봉도 올라갔다 내려오련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렇게 산행을 하면 안되는데....

11시5분 조령3관문(문경새재) 도착. 이곳이 새도 날아 넘기 힘들다 해서 새재라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자는 부하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거의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패배를 하였다 한다. 비록 병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가파른 능선과 절벽이 즐비하여 일당백을 물리칠 수 있는 지리적 특성을 감안하면 이곳이 요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아쉬운 역사의 한 단면...

선두는 벌써 10여명이 1시간전에 출발을 했고, 몇몇 분은 수안보로 하산해서 온천을 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물한모금을 마시고 마폐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된비탈이라 숨이 턱에 걸려서 넘나들지를 못한다. ‘자꾸 이러면 중는 건디...’ 그래도 한걸음이라도 줄이려고 지름길을 택한다. ‘잔머리만 늘어가지구...’ 끊어질 듯한 가슴을 움켜지고 가까스로 마폐봉에 도달하니(11시35분) 자욱한 안개와 먹구름에 가려져 주변을 볼수가 없다.

지릅재로 향하는 갈림길을 지나 미끄러운 길을 스틱과 나무를 의지 삼아 선두와의 격차를 줄여 나갔다. 북암문을 지나(11시51분) 얼마 안가니 선두가 보였다. 그래도 이미 두분은 3~40분전에 앞서 나갔다고 한다. 듬성듬성 있는 성벽을 따라 나지막한 능선을 40여분 걸으면 안부인 동암문에 다다른다(12시32분). 잠시 일행과 간식을 먹고 길을 재촉한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부봉은 시간관계상 또 생략한다. 그래서 좌측방향 즉 주흘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아까부터 얼굴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하얀 가루가 흩날리고 있는데 입자가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만 이것이 눈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1시30분 주흘산과의 갈림길에 도착. 이정표를 보니 하늘재까지 1시간30분 거리라고 쓰여 있다. 내리막길이 다소 가파른 듯 보여서 짧은 자일을 걸어 놓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1시55분 평천재를 지날 때는 불순한 일기에 간간히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맨얼굴을 눈이 스칠 때는 따갑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주춤거림 없이 내닫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손해일 듯 싶었다. 2시21분 널따란 바위주변에 커다란 소나무가 몇 구루 서있는데 정상비는 없지만 위치상으로 보아 탄항산(월항삼봉)인 듯 하다.

2시42분 762봉에 도착하니 멀리 하늘재가 보이고 타고 온 버스도 보인다. 비록 후반부에 날씨가 고르지 못해서 정감 있는 산행은 하지 못했지만 도착지점에 다다를수록 느껴지는 안도감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평안함이 감겨온다. 상수관에서 나오는 물을 한껏 들이켜니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시원하고 짜릿하다. 2시50분 하늘재 도착.
총산행시간 10시간20분 소요.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