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3시.


 집을 나서는데 칼바람이 서슬 푸르게 날아다녀야 하는 계절임에도 겨울은 어디로 가고 남은 잠이 달아날 정도의 찬바람만 스산하게 분다.

 

수덕고개 잠든 식당 앞에 도착하니 일곱시 이십오분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고 있다. 동지가 가까우니 밤이 무척이나 길다.
 동쪽의 넓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홍동산(弘東山 309.8m)은 가야산과 덕숭산의 기세에 눌려 웅크리고 있는 듯 하다.
 
 고개상회 왼쪽 임도를 따라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헤치고 오르막을 올라간다.

이십분 정도 임도를 따랐다. 낙엽이 많이 깔린 임도와 헤어지고 오른쪽 묘지 뒤로 첫 번째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봉우리에 올라(07:51) 주변을 둘러본다. 표시기가 왼쪽 능선을 따라 달려있다. 길은 걷기 좋다.
지도를 보면서 능선을 따르는데 많은 소나무가 잘려 쓰러져 있다. 누렇게 말라 죽어있다.

 

홍동산(08:16 육괴정에서 2.5㎞)을 지난다. 능선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나무들은 모두 타버리고 타버린 나무사이로 길을 찾는데 진달래가 꽃을 피웠다. 나는 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지만 진달래는 계절이 하 수상해 정신이 없다. 계절을 잃어버린 산과 숯으로 변한 나무가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배낭 주머니에 꽂아둔 지도가 없어졌음을 알고 다시 홍동산을 향해 올라간다. 홍동산 정상부분 바위까지 올라가서 다시 되짚어 내려간다. 지도는 꽃피운 진달래나무 아래 떨어져 있다.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땀을 흘렸다.(09:15) 지도를 찾지 못했다면 산행을 중지하고 대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오른쪽 능선은 골재채취로 산이 파괴되고 있다. 잡목을 헤치며 산을 내려가는데 날카로운 나뭇가지와 가시가 바지를 뚫고 들어와서 허벅지에 꽂힌다. 홍동산에서 가늠한 능선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지만 잡목이 길을 막고있어 생채기만 내고 돌아 나오기를 여러 번 했다. 묘지가 많은 곳을 지나 저수지 공사장까지 내려섰다. 공사장에는 인부들이 있다. 서로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뒤로 돌아서서 능선을 살펴보니 묘지가 많은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묘지 앞을 지나 능선에 붙으면 정맥을 올바르게 가는 것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돌아서 가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정맥능선을 좌측에 두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간다.

 낙상리 상타마을 앞으로 나가서 아스팔트 이차선 도로를 따라 까치고개로 올라가는데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두 번째 손을 드는 순간 짐차가 멈춘다. 달려가서 까치고개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타라고 한다. 오늘은 구겨지는 날이다. 지도를 잃어버려 한 시간을 헤매고 차까지 얻어 타고 아...

까치고개에 올라 홍성군쓰레기매립장 선 간판을 확인하고 홍성군환경사업소 위생쓰레기 매립장 입구까지 들어가서 표시기들만 확인하고 괴로움을 안고 돌아선다.

 

까치고개(10:00 홍동산에서 3.4㎞)에는 갈오리 표석과 예산군 덕산면과 갈산면 표시판이 있고 독립유공자 이근주묘가 400m 떨어져 있음을 알리는 표시판이 있다.

예전에 교회인 듯한 건물을 지나고 밭을 지나 일월산을 오른다. 오르막길을 따라 흰색 선이 계속되고 백열등이 많다.

 

일월산은 바위가 많은 산이다. 큰 나무가 없어 전망이 좋은 곳 바위 위에서 뒤로 돌아서서 지나온 능선과 걷지 못한 능선을 본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후회의 마음이 교차한다.

 

일월산 정상(10:40 까치고개에서 1.7㎞)에는 특이하게 생긴 큰 바위가 여럿 있고 팔각정이 있다. 태극기를 높이 달아놓은 곳 아래에는 불탄 사당이 시커먼 뼈대만 드러내놓고 있다. 사당 앞에는 洪州淸難祠重修碑(홍주청난사중수비)만 불탄 사당을 지키고 있다. 2002년 10월 홍성군수가 적어 달아놓은 경고문과 피뢰침이 있는 돌탑(예전 봉수대가 아닌가 추측된다.) 위에는 산불감시카메라(10:50)가 산을 지키고있고 돌탑은 철망으로 둘러져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홍성읍은 무척 넓고 건물들이 많다. 홍주종합운동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정상에서 만난 주민의 말에 의하면 운동장 옆에 보이는 넓은 공터는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설 곳이라고 한다. 혹시 24시간 영업하는 찜질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산아래 바짝 붙어있는 도로에 접해있는 신축건물을 가리키며 깨끗하고 넓고 좋으니 가보라고 한다. 정상에서는 서산방조제로 생긴 간월호도 멀리 보이고 공리저수지는 가깝게 보인다.

 

산을 내려서서 아스팔트도로를 걷다가 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들어서면 곧이어 헬리포트(10:57)가 나온다. 급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나간다. 무덤(안동 장씨와 나주 정씨 묘지) 왼쪽으로 자갈이 깔린 살포쟁이고개(11:20)에 내려선다. 한쪽은 이미 포장이 된 것으로 보아 자갈이 깔린 곳까지 모두 포장이 될 것 같다.

 

살포쟁이 고개에서 25분을 걸었다. 무덤3기가 홍성읍을 향해 나란히 있는 곳이다. 길은 솔잎이 깔려있어 걷기 좋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잡목지대를 정리한곳을 지나는데 나무에 길게 메어져 있는 표시기를 본다. 곧 송전탑이 나올 것이다. 역시 정리된 길 끝에는 송전탑이 서있다. 흰색 긴 띠는 한국전력 인부들이 달아놓은 것임을 지나온 오랜 시간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29번 국도 위 구황면과 홍성읍의 경계를 이루는 하고개(11:52 일월산에서 2.6㎞)에는 홍성민속박물관(테마박물관)이 있다. 입장료가 5,000원이라고 적혀있다. 하고개를 지나니 새로운 도로(4차선) 건너편에 서있는 해태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넓은 도로를 건너 해태상(11:58) 뒤로 능선에 올랐다. 왼쪽 아래에는 굴착기가 땅을 파고 있다. 이곳 공사현장은 홍성읍 우회도로의 시작지점이다.

 

왼쪽으로 도로와 터널공사장이 보이는 곳에는 전의이씨묘가 있고 그 앞으로 5분 정도 내려서니 시멘트도로 맞고개(12:30 하고개에서 38분)를 건넌다. 포도밭에는 인분을 뿌렸는지 구린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6분을 걸었을까 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간다. 오른쪽 좋은 길은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수리고개(12:40 맞고개에서 10분)를 넘어가는데 왼쪽에 터널공사장이 가깝게 보인다. 좌우로는 농토가 함께 한다.

 

정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남산에 오르니(13:00) 팔각정 아래 벤치와 삼각점이 있다. 팔각정에 올라 홍성읍을 내려다보며 음료수를 한 모금하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간다. 내려가는 길은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길은 산책을 하기 좋도록 해두었다. 짧은 내림길이지만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남산에서 내려서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꽃조개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충령사를 둘러보려고 왼쪽으로 도는데 모서리에 충혼탑이 높게 서있다. 충혼탑 아래에 서정주 시인의 시가 음각 되어있다. 충령사는 문이 닫혀있어 둘러보지 못했다. 충령사 문 앞에 있는 검은색 비석은 국가유공자충혼탑이다.

 

한용운선사상을 둘러보고 공사로 어수선한 21번 국도 위 꽃조개고개를 건너 머리위로 높게 지나가는 공사중인 도로 아래를 통과해 절개지 끝까지 걸어간다. 절개지가 끝나는 곳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표시기가 달려있다. 절개지 위에 올라서니(13:26 수리고개에서 1.5㎞) 수리고개 옆에서 시작된 터널공사장과 이어지는 터널공사장이 보인다. 이 터널의 이름은 마온터널이며 도로는 하고개에서 수리고개와 꽃조개고개를 지나 홍성읍의 외각을 한바퀴 돌아가는 홍성읍의 우회도로이며 2006년 말 완공예정이라고 한다.

 

절개지 위에서 능선을 따르는데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능선은 방향을 여러 번 바꾸며 신성역을 향해간다.

 

개들이 짖어대는 신성역 앞마을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장항선(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온양시, 예산군, 홍성군, 대천시를 지나 서천군 장항읍에 이르는 철도. 총연장 143.8㎞ 충청남도 남서부지역의 중요한 교통 축이다. 예전에는 충남선이라 불렀다.)이 지나가는 신성역(13:58 꽃조개고개에서 1㎞)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매표소에 있는 역무원과 인사를 나누고 철도를 건넌다.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와 은행나무를 지나 낮은 산으로 오르는데 묘지들이 많다. 묘지 앞에는 대한주택공사 충남지사에서 분묘이장을 강제하는 표시판이 꽂혀있다. 표시판은 모두 부수어져 있다.

 

능선에 올라 독도를 한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잡고 능선을 따르는데 오른쪽 아래에는 장항선도 함께 한다. 표시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방향만 잡고 잡목사이로 산길을 간다.

 

인삼밭이 나오면서 길은 아주 좋아진다. 삼각점이 있는 162.4m봉(14:38)까지 길은 좋다.

 

거대한 둥근 돌에 맞아 꺼진 듯 한 지역이 나온다. 석회암 지질에서 볼 수 있는 돌리네(카르스트)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고(14:59) 산을 내려가니 아스팔트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 정맥을 이어간다.

 

 냄새나는 축사 옆으로 예쁜 집이 있고 그 앞으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갈마고개에 내려선다.(15:10 신성역에서 3.2㎞) 홍동면과 광천읍의 경계인 이곳은 아스팔트2차선도로이고 공수마을 표석이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넓은 농로를 따라 언덕 위에 하얀 집을 향해 걸어간다. 집 옆에는 파란 물통이 있고 소나무가 그림같이 서있다.(15:17) 집을 지나 2분을 걸어가니 열녀난향의 묘(烈女蘭香의 墓)가 나오고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아홉굴고개(15:30)에는 홍동면표시판, 독립유공자 황윤성의 묘소 800m 표시판, 버스정류장, 원천리 중원마을 표석(거대한 자연석) 등이 있다. 상원마을 방죽골 이정표 앞에서 낮 익은 차가 서있다. 채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왜 와있느냐고 물었다. 채미는 미리 답사를 해보니 차가 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 계속 되는 부분이라며 한사코 차를 타라고 한다. 나는 걸어가겠다고 하고 채미는 타라고 하고 결국 내가졌다. 방죽골 화살표방향으로 넓은 시멘트 길을 차를 타고 간다. 참 이상하고 찜찜하다.

 

 3층집을 지난다 길은 계속 넓은 길이라 거침이 없다. 미생물환경이용연구소를 지나고 양로원과 은퇴농장이 나온다. 홍광농장을 지나서 오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나는 내리겠다고 하고 더가도 된다고 하고 결국 내가 이겼다. 30분에서 40분 정도 시간을 단축시킨 것 같다. 그런 만큼 애초에 잡은 목표지점인 생미고개를 지나서 신풍(하풍)고개까지 갈 생각이다.
 
  오거리에서 비포장 넓은 길로 들어서서 냉이 밭을 지나는데 냉이를 수확하는 부부를 만났다. 부부에게 요즘도 냉이가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내게 어디 가느냐고 되레 묻는다. 웃음으로 답하고 계속되는 넓은 길을 걸어간다.

 

 기독교묘지 표시판(16:15 감리회 광천교회 안식의 동산) 옆에는 돌을 두른 무덤이 여러 기 있다. 표시판에는 유교식 법을 따르지 말 것과 주의사항을 적어두었다.

소나무 숲 속에 냉장고가 여러 개 버려져 있다.(16:18) 오래 전에 버려졌는지 녹이 쓸어있다.

 

 시멘트도로인 도재고개를 지나 푹 꺼진 임도를 지나고 밭길을 따라간다. 굵은 나무를 베어서 포개어 놓은 곳에는 밭이 있고 포장된 길은 넓다. 이어서 기미삼일운동기념비가 있는 애국선열들의 묘지가 나온다. 애국지사 김동하추모비를  포함해 여러 개 비가 서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길을 재촉한다.

 

 96번 지방도 위 생미고개(16:35 아홉골고개에서 4.3㎞)는 아스팔트2차선 도로이다. 길다란 자연석 위에 신동마을 이라고 적어놓았다. 신동리교회 표시판이 길가에 있고 길 건너에 창고도 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KT광천지점 장곡분기국사 건물 앞에서 채미가 기다리고 있다. 원래 목표한 종착지라서 기다리고 있다며 여기서 끝내자고 한다. 어스름은 내리고 있지만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신풍(하풍)고개까지는 충분할 것 같다.

 

 짐승(고라니와 멧돼지로 추정) 발자국이 여러 개 찍혀있는 흙 길을 지나서 걸어가는데 소나무가 모조리 베어져 있는 곳이 나온다. 솔잎을 보니 아직 싱싱함을 간직하고 있다. 벤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참 많은 나무가 잘려 나자빠져있다.

 

 중방리와 꽃밭굴을 이어주는 도로 위 꽃밭굴고개(17:12)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립유공자 윤형중, 윤익중, 윤낙중, 윤의석 묘소와 표지판이다. 묘지는 잘 단장이 되어있고 기미3.1독립운동 및 항일투쟁공훈종합비와 독립유공자가 된 경위를 적어둔 안내판이 서있다.

 

완전히 해는 넘어갔고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러나 랜턴을 꺼내지는 않고 눈을 더욱 크게 뜨고 길을 찾아간다. 넓고 좋은 길을 걸어가다가 왼쪽 숲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만 조심하면 신풍고개까지 무난하게 내려선다. (17:30 생미고개에서 3㎞)

 

 정맥을 가는 동지들의 산행기에 적힌 하풍고개는 현지에서는 알지 못한다. 장곡면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역시 신풍고개라고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하풍고개는 모른다.

 

 신풍고개에 내려서면서 무덤을 지나는데 대구서씨라는 글을 적어놓은 묘지석이 보인다. 달성군이 지금은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지만 그래도 대구서씨는 아니다. 정확하게 달성서씨다. 그냥 보고 지나치기에 참으로 괴로운 묘지석이다.

 

산행을 마치고 : 채미와 만나 일월산 정상에서 찜 해둔 홍성의 찜질방으로 가서 씻고 먹고 잤다.
 
 채미는 낮에 홍성읍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문화재수리기능인(인간문화재) 전흥수씨 개인이 100억 원을 들여 지은 한국고건축박물관을 둘러봤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TV에서 한 번 본적이 있다.

 

◎ 2004. 12. 11(토) 맑음.
◎ 산행 기점과 종점 :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옆 40번 국도 수덕고개(육괴정 고개상회)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홍성군 장곡면 신풍1리 포장도로 신풍고개에서 산행을 마침.
◎ 도상거리 : 약 27km
◎ 산행 중 통과지점과 시간 : 수덕고개(07:25) - 홍동산(08:16 수덕고개에서 2.5㎞) - 까치고개(10:00 홍동산에서 3.4㎞) - 일월산(10:40 까치고개에서 3.4㎞) - 살포쟁이고개(11:20) - 하고개(11:52 일월산에서 2.6㎞) - 맞고개(12:30) - 수리고개(12:40) - 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남산(13:00) - 꽃조개고개 지나 절개지 올라서서(13:26 수리고개에서 1.5㎞) - 신성역(13:58 꽃조개고개에서 1㎞) - 162.4m봉 삼각점(14:38) - 갈마고개(15:10 신성역에서 3.2) - 열녀 난향의 묘(15:19) - 아홉굴고개(15:30) - 생미고개(16:35 아홉굴고개에서 4.3㎞) - 꽃밭굴고개(17:12 독립유공자 파평윤씨 3형제와 당질 의석의 묘) - 신풍고개(17:30 생미고개에서 3㎞)
◎ 홀로 걸음.
◎ 산행시간 : 10시간 30분 (표시기를 한 구간에 50개 이상 달면서 진행을 하니 예상보다 산행시간이 많이 걸린다.)
◎ 도재고개 주변 쓰레기처리와 신풍고개에 대한문의 : 홍성군 장곡면 041-630-1606

 

** 지나온 구간 유적과 주요지점에 보충설명 **

 

** 일월산 홍주청난사중수비(洪州淸難祠重修碑) : 선조29년 7월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켜 임천, 정산, 청양, 대흥을 지나 홍주지방으로 쳐들어오자 당시 홍주목사 홍가신이 무장 박명원, 수사 최호, 체찰종사 신강행 등과 반란군을 평정하여 영의정 이항복, 우의정 김명원의 제의에 의해 이들을 공신으로 책목해 만들어진 사당이며 비각이다. (청난공신은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자에게 내린 훈공)

 

** 일월산 :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구항면 오봉리, 홍북면 중계리 경계 상에 있는 높이 394m의 일월산또는 백월산이라고 하며 홍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4㎞떨어진 곳에 위치한 홍성의 진산이다. 서해가 눈앞에 펼쳐지고 동편으로는 멀리 합덕평야와 봉수산이 지척에서 보는 듯 바라보이고 홍성읍을 품안에 품은 듯하다. 동쪽으로 동해가 바라보이고 해와 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 하여 일월산이라고 부른다. 꼭대기에는 일자봉 월자봉의 두 봉우리가 솟아 있고 천축사라는 사찰터와 산령각씨 부인당 용화사 천화사 등이 있다. 특히 일월산은 태백산의 가랑이에 위치 음기가 강한 여산으로 알려져 그믐날만 되면 전국 각지의 무속인들이 이 산을 찾아 영험함과 신통함이 더한 내림굿을 한다. 그렇게 하면 점괘가 신통해진다 하여 무속인들로부터 성산으로 추앙 받는 곳이기도 하다』

 

** 홍성군 : 홍성군은 충절의 위인 최영, 성삼문, 김좌진, 한용운, 김복한, 홍주의병 등을 배출했으며, 내포 홍주문화의 발흥지로 42개소(국가 8, 도 34)의 문화 유적지가 산재해 있으며, 한국 전통 춤의 아버지 한성준, 조선 판소리의 대가 최선달을 배출했다. 홍성군수 이상선이 단기4333년(경진) 음력 10월 15일 세운 비석에는 靈耀臺 定礎文(영요대 정초문) "백월산은 國難克服(국난극복)의 悠久(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 온 영산이며 진산이다. 山河襟帶(산하금대)와 國泰民福(국태민복)을 축원하며 靈耀臺(영요대)를 定礎(정초)하니 吉祥(길상)의 烽燧(봉수 즉 봉화)로 홍주의 瑞運(서운)이 萬代(만대)에 繁昌(번창)하리라" 라는 비문이 음각 되어 있다.

 

** 하고개 洪州丙午義兵駐屯遺址碑(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 : 조선말 의병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당시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의 봉화가 홍주의 하우고개에서 맨 처음 올라, 의병들이 홍산, 서천, 남포, 보령을 거쳐 광천에 와서 대부대가 되었으며, 이 주력부대가 광천에서 구항 마을과 신당곡을 거쳐 하우고개에 당도하였고, 천북, 결성, 서부에서 궐기한 의병들도 서산도로로 따라 하우고개로 집결하였다. 국토를 지키겠다는 의열들의 모임이 홍주성을 2㎞ 추격하여 월산 낙맥(?)에 진을 치고 만반의 전투태세를 구비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홍주성 탈환의 진군 나팔이 울리어 1906년의 병오의병 거사가 발족되었다고 한다.

 

** 꽃조개고개 내리기 전 충령사 앞 충혼탑에는 시가 음각 되어있다.

 

하늘땅이 오래듯 살려는 겨레는
끝없는 충성을 나라에 다 하고
자손 만대를 늘리여 갈 집안은
먼저 어버이께 효도를 다하나니
여기 불어 오가는 맑은바람이여
늘항상 이뜻을 자손에게 전해라

     1977년 10월 15일

           글 지은이  서 정 주
           글  쓴 이  김 충 현

 

** 한용운선사상(卍海韓龍雲禪師像) 아래에는 선생의 시 두 편이 적혀있다.

 

님 이 沈 默

 

님 은  갓 슴 니 다
아  사 랑 하 는 나 의 님 은
갓 슴 니 다
푸 른 산 빗 을 ㅅㄱㅐ 치 고
댠 풍 나 무 숩 을........

 

 


讀 者 에 게
   上 毗

 

밤은 얼 마 나 되 얏 는 지
 모 르 것 슴 니 다
雪 嶽 山 의   무 거 운 그 림 자 는
 엷 어 감 니 다
새 벽종 을
 기 다 리 면 서
 붓을 던 짐 니 다

 

선사상 옆에는 선사상을 세우게 된 동기와 모금내역 선사의 이력 등이 적혀있다. (위치 :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 승려이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선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동상이다. 1985년 12월 2일 준공, 13만 홍성군민과 충남지역 수개군 학생, 전국의 불교계, 그리고 가계 인사의 성금 등 1억 5천 5백 만원의 예산이 들었다. 부지 2745평 높이 3.2m)

 

** 한용운(韓龍云:1889-1944) : 고종16년(1879)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굴 이라는 곳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 방씨의 차남으로 출생한 선생은 어릴 때 이름은 유천(裕天), 본명은 정옥(貞玉), 불명은 용운(龍云), 법호는 만해 (卍海, 혹은 萬海)라 한다.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26세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여 경악의 대가로 명승강사 가 되었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 불교 동맹 등을 반대하고 33세에 만주로 망명하여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의 지사들을 만나서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월에 최린과 상의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 할 것을 결의하였으니 이것이 3.1 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으며,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 보완하였다. 불교대전, 불교 유신론, 채근담강의, 님의침묵 등을 저작하고 유심지, 불교지를 발간하였다. 선생은 민족독립, 불교유신, 자유문학 의 3대 사상가로서 절의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29일(음 5월 9일)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壯)에서 별세하였다.
 결성면 성곡리 한용운 생가 터에는 생가복원에 이어 사당을 건립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였다.

 

** 기미3.1독립운동 및 항일투쟁공훈종합비 안내판 내용 : 파평윤씨 네 분 [건국훈장 애국장 윤익중, 건국훈장 애족장 윤형중, 건국훈장 애족장 윤낙중(기순), 건국훈장 애족장 윤의식 위 세 분의 당질(종질:사촌형제의 아들)] 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2001년 10월 26일 파평윤씨 화계 종친회에서 건립. 장곡만세운동에 참가한 500여명의 선두에 서서 옥고를 치렀고 윤익중은 중앙고보시절 김상옥이 주도한 혁신단에 가입해서 혁신공보를 발간 독립사상고취를 위한 기사와 논설을 썼으며 김상옥이 주도한 암살단에서도 활약을 했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 한국고건축박물관 : 1998년 10월 개관하였다. 부지 약 1만 6,500㎡, 약 3,600㎡에 이른다. 제1·2전시관을 비롯하여 사대부(양반) 가옥, 평민 가옥, 초가삼간, 연수원, 중국관, 일본관, 야외공원장, 사진전시관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건축 기능인들의 기능을 높이고 고건축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교육 터전으로 활용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
주요 전시물로는 강릉객사문, 송광사 국사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서울 남대문, 광룡사 약사전, 정전태실, 중화전 등의 축소 모형이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8시~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2003년 10월부터 유료로 전환되었으며,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산152-18번지에 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