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 10. 17(일) 맑음.
◎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오산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의정부시와 양주시의 경계 사패산에서 산행을 마침.
◎ 도상거리 : 약 15km(사패산에서 울대고개를 왕복한 거리까지 포함)
◎ 오산삼거리 - 산성 - 작고개 - 한강봉 - 꾀꼬리봉 분기점 - 첼봉 - 항공무선표지소 - 울대고개 - 사패산 - 울대고개.(사패산에서 우이암까지는 지난 산행기록을 본 산행기의 뒤에 붙입니다.)
◎ 홀로 걸음.
◎ 산행시간 : 5시간 40분(항공무선표지소 한바퀴 돌며 20분 지체)

 

산행기록

 

아침에 여관에서 나오며 김밥을 세줄 샀습니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이것으로 해결할 예정입니다. 오산삼거리를 찾아가는 길이 헷갈려 교통정리 하는 택시기사 분에게 물어보니 오산삼거리는 잘 모르고 대교아파트는 잘 압니다.

 

07:00 오산삼거리에서 대성사방향으로 접어들면 표시기가 좌측 비포장도로를 따라 달려있습니다. 배추밭을 지나 희미한 산길을 따라 오르막을 쳐 오르는데 다져지지 않아 자꾸만 흘러내립니다.

 

07:12 능선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희미한 길들이 여러 개 나있어 방향을 잘 가늠하며 진행해야합니다.

 

07:27 산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석축을 내려서니 철탑이 나옵니다. 3분 더 걸어나가니 또 철탑이 이어집니다. 맑은 공기의 상큼함과 산새의 지저귐이 어울려 머리는 맑고 가슴은 탁 트입니다.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07:35 가족묘지 무덤 앞 계단을 내려서서 우측으로 비닐하우스와 호박덩굴을 보면서 2차선 포장도로 작고개에 내려섭니다. 버스정류장 옆에 표시기가 달려있습니다. 여기서 좌로 방향을 틀어 길을 따르면서 우측 능선을 보면 빨간 표시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개가 짖어대는 집으로 들어서면 아니 됩니다.

 

07:45 능선에 붙어 철탑 옆으로 오르막길을 속도를 늦추어 걸어가는데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07:48 청설모가 나무를 타고 오르다가 멈칫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움직이지를 아니합니다. 고놈 참 맹랑합니다. 나는 못 본 척 참호와 방공호를 지나 계속 걸어갑니다. 벙커 앞에 나무토막을 엮어 위장을 해 두었습니다. 시원한 공기를 또다시 힘껏 들이마십니다. 싱그러움은 긴 여운을 남기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해줍니다. 이 기분 때문에 아침 산행이 즐거운 것입니다.

 

08:00 호명산 오르막길에 벙커를 지나 넓은 공터가 나오면서 돌탑과 철탑이 있습니다. 멀리까지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침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맨손체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길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꾸준한 오르막이라 땀을 충분히 흘렸습니다.

 

08:10 호명산(423m) 정상에는 완성된 작은 돌탑과 미완성 돌탑이 있습니다.

 

08:18 작은 재가 있는 십자로 안부에서 직진합니다. 걷기 좋은 산길을 1분 정도 더 걸어가면 우측으로 길의 방향을 바꾸어야 됩니다.

 

08:23 흰색과 빨간색이 반반인 깃대가 세워진 헬리포트를 지나면 방공호가 나오고 계속 직진합니다.
 지난 한 주는 마음이 계속 무거웠는데 이제야 모든 것이 걷히는 것 같습니다.
 산책을 나온 것으로 보이는 부부가 우측에서 불쑥 나타나서 깜짝 놀라면서 엉겁결에 인사를 나눕니다.

 

08:26 묘지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경사가 급한 길을 내려갑니다. 전방에 높은 봉우리가 보입니다.

 

08:30 1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보면 철문이 보입니다. 도로를 따라 철문 앞에까지 가면 철문좌측 옆에 표시기가 달려있습니다.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판과 의정부시장 명의로 된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안내판도 있습니다. 호명산 느타리버섯이라는 문구도 보입니다. 넓은 평지에는 구절초와 억새가 가을바람에 흔들립니다.
 석물로 둘러싼 전주이씨 묘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계속 묘지가 이어지고 작은 키에 통통하게 살찐 잣나무 여러 그루가 길 양편으로 도열해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한강봉을 바라고 올라갑니다.

 

08:45 첫 번째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옵니다. 직진길이 정맥길입니다.

 

08:55 돌탑에 한강봉(465m)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부부 두 쌍이 자리를 깔고 뭔가를 먹으며 밝은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돌탑 뒤로 길이 이어집니다.

 산길이 넓고 한참 동안 표시기가 보이지 않기에 하나를 달아놓고 좋은 산길을 즐깁니다.

 

09:10 꾀꼬리봉 능선분기점에서는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벙커가 있고 벙커 위에는 항상 굴뚝이 같이합니다. 첼봉이 뾰쪽하게 솟아있어 오르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09:24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데 먼저 벙커가 반겨주고 1분 더 걸어가니 첼봉 정상입니다.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있고 카메라를 중심으로 녹색 철망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헬리포트가 있는데 여기서 자칫하면 12시 방향으로 넓은 길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그리로 갈 수 있습니다. 정맥은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09:32 첼봉 정상에서 휴식을 겸해 김밥을 먹고 일어섭니다.

 

09:40 급조한 참호 앞에 작은 재가 나옵니다. 재를 지나 1분 정도 걸으니 임도가 나오고 우측에 간이화장실이 보이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임도는 우측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임도를 따르지 않고 산으로 오릅니다.

 

09:52 계속 되는 오르막이 끝나고 길은 우측으로 90도 꺾여집니다. 땀이 흐르지만 시원함과 상쾌함이 땀을 식혀줍니다. 길은 계속 좋습니다.

 

09:58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옵니다. 전방으로 도봉산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자아내게 합니다. 공터 건너에 솟아 있는 가느다란 안테나가 항공무선표지소입니다. 공터를 가로지르면 철망과 굳게 닫힌 작은 철문이 길을 막습니다. 감시카메라와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문제는 철망 좌측에도 우측에도 표시기가 달려있어 어디로 철망을 돌아야할지 몹시 고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우측잡목이 무성한 곳으로 철망을 따라 가 봅니다. 가시잡목과 수로가 나옵니다. 계속 돌아가니 개가 짖어댑니다. 우측으로 능선이 있고 능선을 따라 길도 있지만 표시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10:16 굳게 닫혀있는 작은 철문이 있는 곳에서 다시 좌로 표시기를 따라갑니다. 우측에 달려있던 표시기는 모두 떼버렸습니다. 뒤에 오는 분들의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2분 정도 철망을 따르니 금방 항공무선표지소 정문이 나옵니다. 정문 옆에서 개들이 짖어댑니다. 좀 전에 철망 우측으로 돌아 만났던 그 개들인 것입니다. 결국 정문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 것입니다.
 철망 좌측으로 돌 때도 주의할 점은 정문 앞까지 가야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정문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좌측 능선으로 표시기를 보고 들어선다면 영 엉뚱한 능선을 따르는 것이 되니 무조건 정문을 찾아야 합니다.
 정문 앞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우측을 바라보면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이 조금 전 철망을 따라 우측으로 돌았을 때 만났던 능선입니다. 굳이 이 능선을 따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10:22 포장도로를 등지고 숲으로 들어섭니다.

 

10:38 조성 된지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공원묘지입니다. 능선을 따르면서 수많은 무덤과 무덤 앞에 놓여있는 꽃병 그리고 조화를 보며 걸어가는데 고운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이 무덤과 무덤 사이로 흘러갑니다. 살아있어 나는 이렇게 산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저 많은 무덤의 주인들은 죽었으니 저렇게 무덤 속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있는 것입니다. 삶은 혼과 백이 함께 하는 것이고 죽음은 혼과 백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입니다. 건강한 혼백이 함께 있어 감사하게도 나는 이렇게 우리나라 산들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감사하고도 감사한 마음을 늘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며 혼백이 함께 하는 동안은 늘 산을 찾을 것입니다.

 

10:41 파평윤씨 묘 앞에서 공원묘지를 뒤로하고 숲으로 들어갑니다.

 

10:50 녹슨 철조망을 넘어 산을 내려서니 넓은 터에 비닐은 덮여지지 않은 비닐하우스의 골조가 먼저 보입니다. 그 앞에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집니다. 노인이 보조기에 의지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쳐진 어깨가 세월의 무게에 눌려 힘겹게 보입니다. 마을길을 따르며 앞을 바라보면 북한산 능선이 펼쳐집니다. 노인의 모습은 날개를 편 산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10:58 울대고개입니다. 인천 64㎞, 원당 19㎞ 이정표가 서있는 39번 국도는 무척이나 넓고 차들도 많이 다닙니다. 채미는 '무봉리순대국밥'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채미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잔디밭산악회의 일원으로 일대간구정맥완주를 마쳤다며 자랑을 하는 75세 된 노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연세에 대단합니다. 일대간구정맥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의 목표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거나 완주를 위해 노력하고있는 사람을 만나면 동지애가 절로 싹틉니다. 채미에게 자랑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 분은 이곳에서 사패산에 오르는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어디론가 가셨다고 합니다. 

 국밥집 도로 건너에 표시기가 보입니다. 굵은 쇠파이프(J자를 거꾸로 꽂아놓은 파이프)를 보며 무단횡단을 하여 올라서니 파이프 주변에 철망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11:07 철탑은 철선을 어깨에 걸쳐 산아래 철탑까지 이어줍니다.

 

11:21 방공호가 있고 깃대가 세워져 있는 화생방 훈련장을 지납니다.

 

11:40 사패산 0.6㎞, 안골입구 3.3㎞ 이정표를 만납니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사패산을 빙글빙글 돌며 요란한 소음을 냅니다. 화려하게 단풍으로 물든 산의 모습과 정상에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나봅니다.

 

11:43 철난간과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해 쳐놓은 흰색 줄이 길을 따르는데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은 굳이 출입금지 줄을 넘어 들어갑니다.

 

11:46 포대능선 2.4㎞, 안골입구 3.5㎞, 사패산 0.1㎞. 이정표입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목표한 한북정맥 답사의 마지막 지점입니다.

 

11:48 임선배님과 함께 올랐던 사패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처음 이곳에 올랐을 때 느꼈던 만큼의 큰 감동은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많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며 수피령에서 출발해서 이곳까지 이어온 한북정맥을 돌이키며 감회에 젖어봅니다.

 

11:55 정상을 내려가면서 자운봉을 바라보니 헬리콥터가 자운봉을 중심으로 빙빙 맴돕니다. 바위 위에 도롱뇽이 8자를 그리며 기어갑니다.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는데 중년의 남자가 먹을 것이 있으면 조금만 달라며 애처로운 모습으로 애걸합니다. 물과 김밥을 주면서 산행에 나설 때는 철저한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괜히 그런 말을 했다 싶어 후회가 됩니다. 산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 만한 선생은 없습니다. 그는 산아래 마을에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에서 올라와 이곳에 정착한지 4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철탑을 지나 걸어가는데 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표시기가 한 뭉텅이 한쪽에 쳐 박혀 있습니다. 정맥의 어려운 길 찾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보호를 외치며 충분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40 울대고개에 내려서서 채미와 한북정맥 종착지 장명산을 향해 갑니다.

 능선이 그의 다 사라져서 도시가 되어버린 남은 구간의 답사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장명산과 곡릉천, 한강, 임진강을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39번 도로를 따라 송추를 지나고 장흥을 지나 1번 국도를 따릅니다. 이 도로는 문산을 지나 북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예전에 군대생활을 수색과 원당에서 한 나로서는 옛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너무나 많이 달라진 도시의 모습에 거저 멍 할 뿐입니다.
 현달산과 고봉산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며 이동하다보니 정맥 표시기가 보입니다. 참 반갑습니다.
 도시로 바뀌어 산은 없어지고 능선도 사라진 이런 곳을 공장과 집과 도로를 헤집어가며 내 나라 소중한 정맥이라며 한 발, 한 발, 밟으며 정맥을 완전히 종주 한 분들을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고양시 일산은 아파트도시입니다. 보이는 아파트만 해도 많은데 계속 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원조 DJ이종환씨가 운영하는 음악카페 옆을 지나 장명산을 찾아갑니다.

 

14:40 건축폐기물이 분쇄되면서 나오는 먼지가 목으로 계속 들어오면서 가슴을 옥죄입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 회색 먼지에 덮여있습니다. 거대한 기계 그리고 레미콘공장, 이곳에 장명산이 철망에 둘러 쌓여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 산도 시간이 문제이지 순식간에 없어질 것 같습니다. 실제 장명산은 철망에 둘러 쌓여 있는 봉우리가 아니고 건축폐기물이 쌓여있는 곳에 우뚝 솟아 있던 봉우리인데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을 때 일본인들이 용의 혈을 끊으려는 목적으로 석회광산을 내면서 장명산 파괴가 시작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개발의 허울을 쓰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곳, 아! 괴로움으로 신음하는 자연의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채미와 사진기를 들고 장명산에 오릅니다. 장명산 오르는 길 주변의 풀과 나무들도 시멘트 부수어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스치기만 해도 먼지가 풀풀 나릅니다. 정상에는 벙커와 파이프로 만든 종과 깃대가 있습니다. 공사장을 등지고 강을 내려다봅니다.
 곡릉천과 한강, 으슴푸레 보이는 임진강이 말을 합니다. "인간들아 너희들은 더 좋은 삶을 추구하려고 자연을 계속 파괴하고 있구나, 너희들이 멸망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겠구나"  물은 오염이 되어 흘러갑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인간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사패산-우이동

 

서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사이에 위치한 해발 739.5미터의 도봉산은 북한산과 더불어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산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장엄하여 성난 호랑이에 비유되기도 하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최고봉인 자운봉을 비롯하여 만장봉, 선인봉, 주봉, 우이암 등의 암봉들이 빼어나고, 특히 선인봉 암벽 등반코스로는 박쥐코스 등 37개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북한산 및 도봉산 지역의 60여 개 사찰 중 제일 오래된 건축물인 천축사를 비롯하여 망월사, 회룡사 등의 절과 도봉산 3대 계곡인 문사동계곡, 망월사계곡(원도봉계곡), 보문사계곡(무수골)을 비롯해 도봉계곡, 송추계곡, 오봉계곡, 용어천계곡 등 아름다운 계곡을 안고 있다.
 
동대구역 출발

배낭을 단단히 둘러맨 채미와 재형은 역으로 황급히 들어서서 누구를 찾는 듯 역 구내를 한바퀴 빙 둘러보더니 아직 공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유난히 밝은 신축역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쪽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텔레비전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시계 바늘이 영시 오십 분을 넘어설 때 상택이 역사에 들어섰다.
01시 16분 부산 발 서울행 무궁화 열차는 동대구역을 벗어난다. 지난겨울 북한산 산행의 긴 여운이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열차의 기적소리 끝 부분에 매달려 서울로 달려가고 있다. 오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무리들이 주변 승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떠들어댄다. 그들은 김천에서 우루루 몰려 내려갔다. 저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김천사람들은 아닐 것이라며 상택은 애써 김천에 대한 애향의 마음을 나타낸다.
밝은 불빛과 연이어지는 방송에 애당초 잠자기를 포기한 재형은 주간지를 뒤적이며 눈을 감았다 떴다 무료함을 달랜다. 수원역을 지나자 차창으로 지나가는 건물의 윤곽이 들어 난다. 05시 30분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회룡역으로 향했다. 일요일 새벽 대구라면 별로 바쁠 일도 없어 지하철이 텅텅 비었을 텐데 여긴 서서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분주하고 바쁘다. 재형은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하지만 그때마다 정을 못 붙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회룡 지하철역 화장실은 휴지가 바닥에 가득하고 변기는 부서져 있고 오물로 가득하다. 도봉산 오르는 길은 역을 빠져 나와 아파트단지를 지나고 도로를 건너 10분 정도 산을 향해 올라간다. 배낭을 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기를 느낀 그들은 식당을 찾았지만 영업을 시작한 식당은 없고 맑은 물이 흘러가는 개울가 작은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가게를 지나 매표소로 향하는데 410년 되었다는 정자나무가 눈길을 끈다.

 

산행시작

 

회룡매표소 입구에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사패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는 내용이다. 입장료 3900원을 내고 회룡사로 올라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듯한 아이들이 연신 작은 폭포 밑 소를 향해 뛰어든다. 회룡사 경내에는 연등으로 가득하고 여승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회룡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681년(신라 신문왕 1)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했을 때의 명칭은 법성사(法性寺)였다. 930년(경순왕 4) 경보(慶甫), 1070년(고려 문종 24) 국사(國師) 혜거(慧炬), 1384년(우왕 10) 자초(自超) 등이 각각 중창하였다. 특히 자초는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이 곳에서 3년간 수도하였고, 이성계가 정계로 나간 뒤에는 자초가 홀로 남아 사찰을 중건하고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 그 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곳에 찾아와 절 이름을 현재의 회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나 함흥(咸興)에 머물다가 1403년(태종 3) 서울로 돌아와 이곳에서 수도하던 자초를 찾아오자 자초는 ‘회란용가(回鸞龍駕)’라 하면서 기뻐하였는데, 절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1630년(인조 8) 비구니 예순(禮順)이 중건하였으며, 1881년(고종 18)에는 최성(最性)이 중수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38년 비구니 순악(順岳)이 중수하고 칠성각을 지었으며, 1940년에는 석굴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다. 이후에도 불사를 거듭하여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삼성각·선실·요사채가 있다. 사찰 유물로는 신중탱화와 오층석탑·석조(石槽)·노주(露柱) 등이 있다. 이 중 신중탱화는 1883년 수락산 흥국사에서 만든 것이다. 오층석탑에는 의상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고 전하나 탑의 형식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석조와 노주도 조선 전기의 유물로 보인다.)

 

절을 지나 산으로 들어서자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돌탑들이 계곡을 따라 줄지어있고 계곡은 인공적으로 축대를 쌓아 자연의 풍경을 구겨놓았다. 간이화장실 앞에서 상택은 능선으로 방향을 바꾸어 길을 잡아 오른다. 채미는 편안한 길로 가려다가 혼자 되기가 두려운지 함께 능선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패능선 사패산(552m)


사패능선과 포대능선 갈림길을 얼마 남겨둔 지점에서 연세가 지긋한 노신사를 만나 사패산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자운봉 방향으로 가려면 사패산은 반대방향인데 볼 것 없으니 자기를 따르기를 종용했지만 재형은 사패산을 포기할 수 없어 갈림길에서 채미에게 배낭을 맡겨두고 사패산으로 향하려는데 상택도 따라나선다. 둘은 부지런히 달렸다. 사패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변에는 밧줄이 길을 안내한다.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봉산 능선을 감상하고 있다. 흐린 날씨지만 그들 눈앞에 펼쳐진 절경은 상택과 재형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사패산의 경치를 감상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10분이 소요됐다. 

사패산에 관한 내력이 표지판에 적혀있다. 백두산을 시발로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려오다 원산아래 추가령 지구대에서 하나의 정맥을 이룬다. 이것이 한북정맥이다. 상택과 재형은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있지만 2년 후에는 한북정맥을 종주해야한다. 그러기에 더욱 이곳에 관심을 가진다. 한북정맥은 내려오면서 백암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이루고 도봉산 전에 사패산(賜牌山)으로 솟아올랐다. 사패산은 동으로 수락산, 서남으로 도봉산을 끼고 안골계곡과 회룡골계곡 등 수려한 자연과 휴식공간들이 어우러진 산이다. 또한 사패산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 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 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산의 등뼈 포대능선

 

포대능선은 예전에 대공포진지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 길이는 1.2㎞ 정도이다. 바위능선은 장쾌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위능선을 따라 오르기를 즐기는 상택과 재형은 채미에게 우회로를 알려주고 칼날 능선을 걷는다. 산불감시초소까지 올라 도봉산을 둘러보는 상택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수락산이 아파트단지와 도로 저 너머에 흐릿하게 보인다. 견고하고 규모가 큰 벙커 위에 삼각점이 있다. 삼각점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적어둔 안내판도 있다. 재형은 벙커 위에서 상택을 기다린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도봉산을 둘러본다. 재형은 심심지 않은 도봉산 산행이 즐겁다는 표정이다. 
바위를 넘고 쇳물이 손에 베이도록 힘주어 쇠줄을 잡고 줄줄이 바위능선을 지난다.

 

자운봉(739.5㎞) 만장봉(718m) 선인봉(708m) 신선대

 

웅장한 바위봉우리의 늠름한 모습에 압도당한 상택과 재형의 가슴은 떨림의 느낌을 서로 주고받는다. 빗방울이 듣는다.
머리에는 삿갓, 손에는 나무지팡이를 짚고 맨발로 바위를 내려오는 기인은 위험을 스스로 느끼고 자운봉으로 다시 올라간다. 나르는 짐승이 아닐 지라면 바위에서는 바위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한다. 상택과 재형은 기인이 쩔쩔매며 돌아 올라간 자운봉 급경사 길을 쉽게 올라간다. 신선대 꼭대기에는 홀로 올라선 사람이 구름사이로 보인다. 재형도 올라가고 싶어했지만 상택이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오봉능선 오봉산(625m)

 

상택과 다른 길을 택한 재형은 자운봉을 지나 남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가야할 오봉능선은 동쪽이라 산을 휘감고 도는데 체력을 소비한다. 상택과 채미는 자운봉아래 갈림길에서 재형을 기다렸지만 재형은 소식이 없고 30분을 그냥 허비한다. 지도를 지참하지 않은 재형은 오봉능선과 도봉주능선 갈림길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가까스로 오봉능선으로 붙었다. 오봉산을 700m남겨둔 지점에서 상택과 통화가 됐다. 상택은 재형을 원망하고 재형은 미안해한다. 40대 중반을 넘긴 듯 한 몸이 굵은 사나이와 우연히 같이 걷게 된 재형은 어느새 오봉산 정상에 올랐다. 건장한 사나이는 오봉산 정상에서 점심 먹을 채비를 한다. 그가 내 놓은 포도와 맥주를 날름 먹지 못하고 동료를 기다리던 재형은 상택과 채미가 도착해서야 포도를 하나 입에 넣는다. 재형은 대추방울토마토를 내 놓으며 모두에게 권한다.
오봉산은 다섯 바위봉우리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마지막 두 개의 봉우리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자일에 몸을 묵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요즘 바위 연습이 한창인 상택과 재형은 군침을 흘리며 그들이 하는 모양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마지막 두 개의 봉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자일을 묵어두고 대롱대롱 매달려 건너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만 느끼고 발길을 돌린다.

 

우미암(542m) 우이남능선

 

오봉산을 내려와 우이암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던 채미는 관절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젠 아름다운 경치도 지난 이야기가 되고 고통을 부추기는 바위능선을 내려가야 하기에 관절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기만 한다. 맑은 물이 솟아 나는 약수터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들을 지나서 우이암에 이르니 우이암에도 자일을 걸쳐놓고 바위 오르기에 열심인 사람들이 보인다. 우이남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위험하다며 경고표시가 곳곳에 붙어 있지만 상택이 앞서서 위험한 능선을 따른다.
재형과 채미는 앞서간 상택을 따라 잡음에 가까운 음악과 악을 쓰듯 불러 재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우이동 매표소로 내려가는데 표지판의 거리 표시가 제각각 이라 채미는 신경이 곤두선다.

 

하산, 목욕 후 한 잔

 

정비되지 않은 우이동 계곡 식당들을 이리 저리 피해가며 6번 버스종점 옆 도선사로 오르는 길 초입에 자리한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그들은 다시 우이동 계곡 쪽으로 돌아 올라가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위치한 식당에서 지짐과 두부김치로 한 잔 하며 지나온 길들을 되짚어 보며 밝은 표정을 허공에 날린다. 

 

2003년 8월 10일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산행을 마치고 : 한강을 따라 문산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도로 '자유로', 1980년 중반만 해도 이 길은 비포장 길이었습니다. 겨울에 이 길을 따라 문산까지 두 번인가 걸어갔었는데 그때 북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지금은 엄청나게 넓게 길이 닦여있고 이렇게 넓은 도로에 차가 밀릴 정도이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대구로 들어오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추풍령에서 김천까지는 제한 속도가 80㎞인데 언제나 제구실을 하는 도로로 거듭나게 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남은 정맥(금북, 한남, 금북한남)을 종주 하려면 싫든 좋든 계속 이 도로를 이용해야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남은 정맥종주도 끝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