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종주를 시작합니다. 1999년 7월 16일 백두대간 종주산행 출발을 시작으로, 낙동정맥, 낙남정맥, 호남정맥, 금·호남정맥, 금남정맥까지 2004년 8월 1일 종주를 마치면서 만 5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솟아납니다.

 

이제 한북정맥은 홀로 가려고 합니다. 동반자 채미의 지원이 없다면 엄두를 내지 못할 일입니다. 깊은 사랑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2004. 9. 11(토) 온종일 비바람.
◎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과 철원군 근남면의 경계 수피령에서 출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의 경계 광덕현에서 산행을 마침.
◎ 도상거리 (약 19.5km) 산행 실제거리 (약 25.5km)
◎ 홀로 산행.
◎ 산행시간 7시간 20분.

 

산행기록

 

새벽 3시 50분, 묵직한 운전대를 잡고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섭니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차는 적막을 깹니다. 세찬 바람에 날려온 비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차창유리에 부딪힙니다.


치악휴게소에서 1시간 정도 쉬면서 라면과 공깃밥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호저대교 녹색 철구조물이 이색적입니다.

 

07:30 춘천 요금소에서 고속도로 통행료(11,900원)를 계산하고 춘천으로 향하는데 다시 휴게소(할렐루야휴게소)가 나옵니다. 여기서 산행준비를 마쳤습니다.

 

08:00 춘천시내 아파트가 즐비한 곳으로 들어서서 태백교를 지나 공설운동장방향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공지천을 지나니 중고자동차를 매매하는 점포들이 나오고 의암호가 모습을 들어냅니다. 소양강처녀 노랫말을 적은 큰 바위를 호반로 끝 지점에 세워둔 것이 보입니다.

이호 작곡, 반야월 작사. 신호를 받고 잠시 기다리는 차에서는 작곡과 작사자의 이름만 언뜻 볼 수 있었습니다. 소양강과 북한강의 경계지점을 넘나드는 소양제2교를 넘어 5번 국도로 차를 몰아갑니다. 의암호, 북한강, 소양강, 물의 양이 엄청납니다. 군인들을 태운 차들이 많이 보입니다.
 춘천시내에 들어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보이는 것은 놓치지 않고 모두 담으려 애를 썹니다.

 

08:30 말로만 들었던 102보충대를 지나 북한강을 따라 5번 국도 위를 계속 달립니다. 춘천유원지를 지나고 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말고개터널을 통과합니다. 신포리에서 사내면 방향으로 길을 바꿔 56번 국도로 들어섭니다. 한글로 '곡운구곡의 고장'이라는 글을 새겨 콘크리트로 만든단 위에 올려진 큰 바위를 보면서 한문 표기를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피령의 호랑이부대를 지나는데 서너 명씩 짝을 지어 비를 맞으면서도 웃음기를 먹음은 얼굴로 힘차게 걸어가는 군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외출, 외박을 나가는가 봅니다.

 

09:23 드디어 오늘 산행 출발지점인 화천군과 철원군의 경계 수피령(862m)에 도착했습니다.


09:27 사진을 찍고 첫 발을 내 딛었습니다. 이제 부지런히 걸어야합니다.


 속살을 드러낸 삭막한 들머리 풍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야생초사이로 쑥 올라온 노란 마타리가 보기 좋습니다. 군작전용 삐삐선이 깔려있고 꿩 한 마리가 내 발걸음 소리에 놀라 산길을 그냥 뛰어 달아납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산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다행히 대성산은 구름에 살짝만 덮여 정상부분만 빼고 다 보입니다. 첩첩 산이 대성산 주변으로 누워있습니다. 대성산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군용도로 보이는 임도가 뚜렷이 보입니다.


 참취, 투구꽃, 용담이 산길을 따라 도열해있습니다. 혼자 걸어가는 나를 보면서 웃어줍니다. 길은 좋지만 능선길이 아니라서 조금은 섭섭합니다. 나무와 야생초는 비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09:47 10m정도 언덕을 올라 능선으로 살짝 올라섰지만 다시 좌측으로 방향만 바꾼 사면길이 이어집니다. 진행방향은 서쪽 방향입니다.
 강한 비바람에 쉼 없이 흔들리는 나무와 야생초는 바람이 부는 데로 흔들리기만 할 뿐 바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제자리를 지킵니다. 나무와 야생초는 자연이 주는 고통과 혜택으로 그 땅에 적응을 하며 굵어지고 커지며 꽃을 피우고 잎을 키웁니다. 밀려오는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09:57 나무계단을 밟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2-A 헬리포트입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야하는데 나는 높은 봉우리만 보고 우측으로 들어서서 오르막을 오릅니다.

 

10:06 헬리포트입니다. 구름이 계곡에서 날아오르고 비와 바람이 대단합니다. 50m정도 진행하니 철원군에서 세운 복계산(1057.2m) 표석이 서있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올라온 복계산을 둘러보고 돌아섭니다. 2-A 헬리포트에서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바른길을 갔을 텐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치밀하지 않은 나를 탓할 밖에, 하지만 복계산을 덤으로 보았으니 보상은 충분한 셈입니다.


 초록색등허리에 검은 점이 있는 개구리(무당개구리로 추정)가 지천으로 널려 느리게 기어다닙니다.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입니다.

 

10:24 다시 2-A 헬리포트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웃습니다.

 

10:38 희귀종이라서 그런가요? 보라 빛 금강초롱 꽃 4개가 신비함을 더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계속 사면길은 이어집니다. 처음 투구꽃을 만날 때만해도 무덤덤한 마음이었는데 자꾸 보니까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개구리가 정말 많습니다. 개구리를 피해가며 조심해 걸어갑니다. 가끔 뿌직 소리와 뭉클한 느낌이 전해오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개구리를 밟은 것은 아닌지 찜찜합니다.

 

11:10 사면길이 끝나고 남쪽 방향으로 길을 잡습니다.

 

11:33 삼각점을 확인합니다. 참호 비트 방공호 참 오랜만에 접하는 군사용어입니다. 장기간 군사작전을 치를 수 있도록 분대규모정도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만하게 넓게 판 구덩이에 노끈을 사용해 천막을 덮어 단단히 묵어두었습니다.

 

12:02 참호와 큰 천막막사, 헬리포트, 포탄피로 만든 빨간 종, 콘크리트벙커 등이 있는 봉우리를 내려서니 굵은 밧줄이 묶여있고 나무계단과 대형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이 이어집니다. 흰색투구꽃은 군사시설물이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는 이곳에 이런 살풍경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평화롭게 피어있습니다.

 

12:30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 해서 깜짝 놀라 눈을 돌려보니 북한군의 모양을 한 나무판이 서 있는 겁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실소를 터트립니다. 철조망을 둥글게 말아 쌓아놓았고, 대형타이어 무더기와 어지럽게 파여 있는 참호, 호를 가로질러 나무다리를 놓아두었고,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은 잡목을 볼 수 없습니다. 콘크리트벙커 위에는 생명력을 돋우고 있는 질경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상에는 또 다른 대형벙커가 있습니다. 내가 갈 방향으로는 군사용 임도가 이어집니다. 이곳은 헬리포트와 중계기까지 세워져있는 중요한 군사작전요충지역인가 봅니다.

 

12:41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가며 들락거리지만 결국 임도를 따르면 됩니다. 임도는 탱크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이고 대전차 차고도 중간중간 준비되어 있습니다. 싸리빗자루를 모아 세워둔 나무함도 여럿보입니다.

 

12:56 임도 끝에는 헬리포트가 있습니다. 헬리포트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면 좌로 방공호가 길게 이어집니다.

 

13:00 콘크리트벙커에서 비를 피하며 점심을 먹습니다. 벙커 안이 궁금해 손전등을 들고 벙커 안을 살펴보니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7분간 밥을 먹고 다시 정맥을 이어갑니다.

 

13:17 삼각점이 있고 두 동강이 난 복주산 표석이 한쪽에 버려져 있습니다. 깨끗한 표석인데 왜 깨어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3:25 깨진 표석이 있는 봉우리는 복주산 정상이 아닙니다.(그래서 표석을 깨어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힘든 바윗길을 올라서면 한문으로 된 복주산(伏主山 1152m) 작은 표석이 있고 그 옆에는 한글로 된 큰 표석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이곳에 오른 흔적을 표석에 글로 적어두었습니다. 2004년 9월 6일 이면 이번 주 월요일에 적은 것이 됩니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칩니다.

 

 하오재로 내려가는 길에 헬리포트를 지나는데 구름이 살짝 걷히며 멀리 저수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용화저수지 인 듯 합니다. 벙커와 천막으로 덮인 야영지를 지나면 타이어계단이 이어집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구름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13:57 넓은 비포장도로 하오재를 지나 벙커에서 비에 젖은 몸을 쉬면서 5분간 정비를 합니다. 벙커 아래로 내려다보니 나무판으로 만든 군인들이 많이도 서있습니다.


 타이어계단과 벽돌계단을 딛고 오르막을 오릅니다. 좌측에 헬리포트가 있고 삐삐선이 계속됩니다.

 

14:47 긴 오르막을 올라 좌로 방향을 바꾸니 삼각점이 있는 회목봉 정상입니다. 회목봉을 내려서는데 금강초롱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헬리포트지나 넓은 임도 회목재입니다. 가는 방향도 넓은 임도인데 사람들이 저만큼 앞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비를 맞고 걸어가는 사람들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 빨리 다가가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어 속도를 높입니다. 그들은 아침 7시 30분에 수피령에서 출발한 포천군청 직원들과 그들의 지인들 이며 정맥은 이번이 처음인데 관절이 아파 걱정이라며 건장한 젊은 친구가 묻지 않은 물음까지 웃는 얼굴로 답해줍니다. 어쨌든 같이 걷는 것만으로 힘이 됩니다.

 

15:38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 상해봉 삼거리에 도착해서 헬리포트에 올라 바위봉우리 상해봉을 바라봅니다. 구름에 덮였다 벗겨졌다 하면서 점점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상해봉이 가깝게 보입니다. 강한 바람이 비를 날립니다. 산을 넘는 구름이 아름답습니다.

 

15:57 넓은 덕을 가진 산, 광덕산(廣德山 1046m)정상에는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우뚝 버티고 서있습니다. 광덕산을 지나면서 강원도 지역을 벗어나면서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포천군의 경계를 걸어가게 됩니다.

 

16:45 광덕현이 바로 앞인데 작은 삼각점이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잣나무가 계속됩니다. 잣나무는 바늘 같은 잎이 5개여서 오엽송이라고 한다는데 떼어서 세어보니 4개입니다. 다시 다른 것을 확인해도 역시 4개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지만 4개인 것도 있고 5개인 것도 있겠지요. 아니면 심한 바람에 한 잎이 떨어졌거나....


잣 열매가 수북히 달린 가지가 떨어져 있어 비닐을 끄집어내어 주워담았습니다. 배낭이 꽤나 무거워 졌습니다.

 

16:47 빗소리에 차량의 소음 사람들의 말소리가 작게 느껴지는 광덕현 휴게소 앞에서 산행을 마칩니다.


 채미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며 반깁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젊은이는 언제쯤 내려오겠냐며 걱정의 눈빛으로 비 내리는 산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산행을 마치고: 광덕현을 바로 출발 포천군 이동면으로 내려갑니다. 백운계곡과 선유담계곡 등을 지나 막걸리와 소갈비가 유명한 이동으로 들어서니 역시 막걸리를 내놓고 판매하는 간이 판매점이 줄지어 이어집니다. 우리는 일동에 있는 제일온천에서 짐을 풀기로 했기에 47번 국도를 계속 따릅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인데도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많습니다. 갈비를 파는 식당이 줄지어 있습니다. 일동으로 들어서서도 막걸리와 갈비를 파는 식당이 즐비합니다.


 전화로 확인을 할 때는 숙박비가 3만원이며 목욕은 무료라고 했는데 목욕무료표 두 장을 내놓으며 토요일이라 숙박비는 5만원이라고 합니다. 짐을 풀고 지하에 있는 목욕탕(유황온천)으로 최대한 빨리 갑니다. 세차게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수가 몸의 피곤을 빨리 날려줍니다. 내일 산행은 더욱 먼 거리에 비가 계속 된다니 최대한 피곤한 몸을 풀어둬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새벽 5시에 아침을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며 선금을 주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채미는 헤어드라이어기로 젖은 옷과 등산화를 말립니다. 눈물이 나도록 고맙습니다. 오랜 시간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결국은 모두 말렸고 나는 그 시간에 산행기를 정리했습니다. 23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듭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