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구간(여원재~ 중재)

코스 : 여원재-고남산-사치재-복성이재-치재-봉화산-중재
(도상거리 ?. km / 실거리 약 36.5km)
기간 : 2002. 3. 23(토) ~ 24(일)
인원 : 오종태, 나
기상 : 황사로 흐림, 강한 바람, 영하와 영상을 오르내리는 기온

22일 수원역에서 밤 11시 35분 에 출발한 열차는 어느덧 새벽 4시 10분 남원역에 도착했다.
조금 늦겠다던 종태씨가 20분뒤 대합실 창밖에서 손짓한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따뜻한 모주 한사발에 콩나물 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승용차로 여원재(470m)에 도착해서 산행채비를 하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어제 직원들과 술을 마셨다는 종태씨가 아직도 숙취상태여서 조금 걱정이 된다.
봉송황토마을 입구에 차를 대고 남원방향으로 버스정류장을 조금 지나니 해드랜턴에 반사된 리본들이 들머리를 알린다.(05:28)
약간의 잡목을 지나 캄캄한 소나무숲길의 리본을 찾으며 논두렁을 지나고 마을길을 지나 고갯마루(06:14)를 넘으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숲을 빠져나오니 제법 넓은 길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안내한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매는데 종태씨가 리본을 발견하고 손짓한다.
합민읍 성터가 이곳 어디에 자리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찾아볼 겨를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고남산을 향에 힘겹게 오르는데 5명의 종주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깐 짬을 내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전망 좋은 김해김씨 묘에서니 바래봉이 코앞에 보인다.
얼마후 약간의 암릉길을 오르니 오른쪽으로 88올림픽도로가 시원스럽게 내려 다 보인다.
황도 캔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운 종태씨가 그제야 힘이 좀 나는 듯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흰 밧줄이 매어있는 암릉길을 힘겹게 오르니 어느덧 고남산 정상이다.(846m/07:49)
볼품없는 산정 앞에 중계탑이 흉물스럽게 육중한 몸을 들어내 보이고 있어 그리 마음이 편치 못하다.

중개탑을 내려서 콘크리트로 포장된 통안재를 가로질러 길을 재촉하니 유치재(08:32)에 닿는다. 잠시 이마의 땀을 식히며 간식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식수를 보충하고자 매요마을로 내려서 한 농가에 들어서니 아무 기척이 없어 염치불구하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대나무 숲을 올라 마을을 벗어나 리본을 따라 잘 가는 듯싶더니 잡목숲을 주의하지 않고 내려서다 길을 잃고 계곡에 내려서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평소 혼자가 아니라 그랬는지 편한 마음으로 리본만 쫓아가다가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대간은 결코 물을 건너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에 지도를 살펴 계곡을 따라 다시 질퍽거리는 길 없는 논두렁을 오르며 대간을 찾으니 743번 지방도로에 올라섰다.

시원한 배로 목마름을 해소하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서니 88고속도로 위로 고가도로가 놓여있다. 우회루트인 육정육교(10:42)다.
제법 기와집으로 잘 정돈된 사치마을을 88고속도로를 끼고 지난다.
고속도로 지하통로가 사치마을을 마주하고 있고 88도로가 가른 사치재에 지리산휴계소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앞서간 다른 종주팀이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것을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마루금을 잠시 벗어나 1km 가량 우회하는 바람에 아쉬움이 컷으나 덕택에 안전운행을 한 것에 감사한다.

한참 지루한 길을 벗어난 기쁨으로 숲길을 접어들었으나 산불로 온통 고사목이 된 소나무들이 위령제를 지내듯 앙상한 알몸만 흉직하게 들어내 보이고 있다.
697봉(11:16)을 씩씩거리며 올라서니 온통 허허벌판이다. 화목이 된 나무들을 쓰러져 있고 육중한 산은 허연 바위 뼈를 들어내 보이며 있는 모습이 흡사 과거 60년대 에너지 혁명이후의 활동사진을 보는 듯하다.

우회로를 통과한 덕에 앞서간 종주팀이 뒤이어 올라온다.
오를 중재까지 간다고 한다. 꽤 먼 거리인데 그 정도 속도면 가능할 것도 같다.
벌거벗은 산을 넘어 능선 길을 가다가 20분 정도 내려서니 새맥이재(12:25)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를 잡는다.
햄을 넣고 복은 김치와 햇반 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거기에가 집에서 담아온
산수유술을 반주로 마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식사 후 적당한 취기를 가지고 양지바른 곳에 허리를 펴고 누워 꿀맛 같은 오침도 즐겼다.

새맥이재부터는 줄 곳 크고 작은 싸리나무와 철쭉으로 운행을 더디게 하고 마른가지들이 얼굴을 자꾸 성가시게 한다.
시리봉을 지나고 제법 빼곡히 들어선 철쭉을 통과하자 돌무더기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던 아막산성터다.(15:25)
누군가 공들여 쌓은 돌탑이 여기저기 보인다.

601봉에서 복성이재를 내려다보니 동북쪽에 얼마 전 건축한 듯한 기상관측소가 하얗게 모습을 보이고 있다.
601봉을 넘어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30여분 내려서니 복성이재다.(15:54)
치재마을 쪽은 포장이 돼 있으나 반대쪽은 아직 공사 중인지 중장비가 놓여있다.
이곳에서 오늘 치재까지 운행을 하고 치재마을로 내려설 계획 이였으나 몸은 이미 이곳에서 쉬기를 원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치재마을(063-626-1307) 철쭉식당 민박집은 그간의 대간 종주팀의 잦은 숙박으로 제법 시설을 갖추고 있는 듯해 보인다.
과거의 산행 중 민박이라면 그냥 평소에 쓰는 방한 칸 내어주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시골의 인심과 장작냄새가 코를 향긋하게 하고 군불 땐 따끈한 방에서 겨울 내내 땅속에서 곰삭은 김치를 주인에게 얻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얹어먹던 기억이 새삼 그립다.

돼지고기에 고추장을 버무리는 종태님의 손이 예사롭지가 않다.
거기에 김치와 물을 넣고 푹 끓여낸 국물을 떠먹어 보니 이건 손맛이 일품인 특급요리가 아닌가?
점심때 아껴두었던 산수유술은 보글보글 데워지는 돼지고기찌개와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니 산중행복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새벽 5시에 기상을 해보니 아직 밖은 캄캄한 한밤중이다.
이틀 동안 연속 술을 마셨던 종태씨의 속이 약간 망가진 듯하여 지남밤 술 권했던 내가 미안스럽기까지 하다.

속 풀어줄 요량으로 남은 돼지고기에 김치국을 끓였더니 손도안대고 고추장에 맨밥을 비벼먹으며 연신 고추장 맛을 칭찬한다.

지난밤 투숙한 다른 종주팀이 서둘러 길을 나서는 것을 보고 뒤이어 채비를 하고 민박집을 나섰다.(07:15)
다시 복성이재를 올라 약간 가파른 소나무숲길을 오르고 억새풀을 헤쳐 나가니 전망 좋은 곳에 올라선다.(07:53) 여기저기 임도가 산발적으로 보이고 봉화산 정상이 또렷하게 아침을 맞으며 우뚝 솟아있고 동북쪽으로 동화호가 푸른빛을 머금으며 자리하고 있다.

치재로 내려서는 길은 줄 곳 광활하고 빼곡한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매년 5월이면 이곳에서 봉화산 철쭉제가 열린다 하니 분홍물감을 흩뿌려 놓은 그때를 상상해보는 것으로 만족 할 수밖에.....
크고 작은 철쭉지대를 이리저리 지나쳐 어느덧 철쭉군락은 2미터가량의 키가 큰 노랑빛깔 억새들로 바뀌어 길안내를 한다.

흥성장씨의 묘비(08:37)가 있는 노송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묘 주인공에 대해 궁굼해 했지만 알 수가 없다.
[시조 장유는 상질(흥성)현 사람으로 신라 말에 난을 피하여 중국에 들어가 중국어를 배웠으며 고려가 개국한 뒤에 귀국하여 고려 광종 때 예빈성에 있으면서 중국의 사신의 접대를 맡아 하였다고 한다. 그의 6세손 장기가 흥산(흥성)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흥성으로 하였다.
-자료글-]

억새오름길을 숨가쁘게 오르니 다리재다(09:00)
봉화산 정상에 앞서간 종주팀의 모습이 가깝게 보이는 것을 보니 그리 먼 거리가 아닌 듯 싶다.

드넓은 억새평원을 이루고 있는 봉화산(920m) 산정은 지금까지의 여정을 말끔이 씻으라는 듯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권을 내주고 있는데(09:20) 무명봉 너머로 백운산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주변에 두개의 산불감시 초소가 보임)

봉화산을 내려서니 장수군과 남원 야영면을 잇는 임도가 나오는데 이 일대는 몇 년 전의 산불로 초토화된 이후 산림녹화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지 어린 소나무들이 임도를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어져 있다.
하지만 산림녹화와 산불진화를 위한 임도가 너무 많은 급사면을 만들어 오히려 생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나게 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운치 있는 억새능선을 따라 나그네처럼 걷자니 870봉(09:57)에 묘가 하나 덩그러니 길을 막고 있어 길손을 잠시 쉬어가게 한다.
무엇이 그리 한이 맺혔기에 이 높은 산에 자리를 잡고 세상을 내려 보고 있을까?

줄곳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가르는 대간마루금의 암릉을 오르내리며 운행하고 너럭바위에 올라(10:10) 땀을 훔치며 물 한 모금을 마시니 더위가 기분 좋게 가신다.
앞서간 종주팀을 추월하여 줄 곳 빠른 걸음으로 운행을 하니 광대치에 이른다.(11:15)
월경산의 안부라고 할 수 있는 광대치는 오른쪽의 분명한 대안리 내림길과는 다르게 왼쪽의 번암면 광대동 내림길은 희미하다.

억새평원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월경산을 향한 오름길은 걸음을 무척 더디게 한다.
힘겹게 능선을 올라서니 이마와 등은 어느덧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급한 사면길로 접어드니 어찌 된 건지 월경산이 등 뒤에 서 웃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대간루트는 월경산 정상을 비껴가게 표기 되어있다.
진작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더라면 월경상 정상을 올라 보았을 텐데 무척 아쉬웠다.

월경산(981.9m)을 지척에 두고 20여분 내려선 묘에서 점심을 맛나게 해결하니 배냥무게가
가벼운 솜이불 같다.(12:20)
가뿐한 몸으로 눈앞에 보이는 중재마을을 향에 10여분 내려가니 산사태가난 지역에 다다른다.
마사토의 토양특성으로 허물어진 지역을 30여분 벗어나 드디어 3구간(여원재~중재)의 종착지인 중재에 도착했다.(13:31)

기념사진을 찍고 중재마을로 내려서는데 몇몇 사람이 절개지에서 어린 소나무를 불법으로 채취하고 있다.
“왜 소나무를 채취하죠?”
“집에 가지고 가 심으려구요.”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그 이후의 조치는 종태씨가 잘 알고 있다.

중기마을로 내려서는 농로를 찾지 못하고 넓고 지루한 임도를 따라 중기마을 747번 지방도로로 내려가는데 버스 한대가 마을로 올라가고 있다.(14:15)
황소와 쟁기로 화전을 갈고 있는 한 촌부에게 버스 시간을 물으니 조금 전 올라간 버스가 곧 내려온단다.
오후 2시 40분 함양행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고향의 향수에 잠시 젖어본다.

함양에 도착하여 인월행 직행버스를 갈아타고 인월에 하차해 남원행 3시 45분 시내버스에 몸을 실으니 이틀간의 긴 여정이 이제야 끝난 듯 한 마음이다.
인월에서 여원재의 24번 국도에서 그간 지나온 고남산, 봉화산 능선들이 주마등처럼 펼쳐 보이니 감회가 새롭다.
판소리 동편제의 발원지라는 운봉을 지나 여원재에 도착하여 종태씨의 승용차를 타고 남원역에 도착, 기차표를 예매하고 추어탕으로 유명한 복식당에서 그간 잊지 못한 추어탕을 한 그릇을 또 비웠다.

이틀간의 일정에 고락을 함께하고 나를 위해 많은 친절을 아끼지 않은 종태씨와 서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이별을 하고 수원행 19시 35분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