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앵자지맥 종주기5


 

              *지맥구간:삼합리고개-앵자봉-천진암갈림길

              *산행일자:2009. 8. 21일(금)

              *소재지  :경기광주/여주

              *산높이  :앵자봉667m, 우산봉672m

              *산행코스:삼합리고개-289.6봉-남이고개-자작봉-앵자봉-우산봉

                        -천진암갈림길-천지암

              *산행시간:8시38분-15시54분(7시간16분)

              *동행    :나홀로 

 

   


 

  앵자봉 아래 천진암에서 성지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창립성현5위 묘역 앞에서 주님께 무사히 순례를 끝냈음을 고하고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벽성조께도 큰절로 고했습니다. 미리내성지를 출발해 애덕고개, 망덕고개, 신덕고개의 삼덕고개와 은이성지, 그리고 곰배마실 성지를 차례로 순례한 후 여기 천진암성지에 이르기까지 산길로만 순례 길을 이어왔습니다. 제가 굳이 산길을 순례 길로 택한 것은 이 길이 한남앵자지맥 길이어서 지맥종주도 같이 해보고 싶어서였는데 저보다 앞서 이 지맥을 종주한 산 꾼들 덕분에 길 찾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여기 묘역에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과 이승훈 등 다섯 분을 모신 것은 이분들이 이 땅에 새롭게 길을 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한 암자였던 천진암이 가톨릭 성지로 바뀐 것도 1700년대 후반에 이벽,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권상학, 이총억 등 젊은 선비들이 원로학자 권철신과 더불어 이 땅에 새 길을 내고자 이 암자에 모여 천학(天學)을 공부하고 기도를 올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들이 내는 새 길이 고난의 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 길이건 새 길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 후에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는 사람들과 차들이 다니는 길을 내는데 든 비용보다 빛과 진리를 얻는 구원의 길을 개척하는 데 치른 희생이 훨씬 컸습니다. 뒤이은 103인의 순교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이분들의 순교덕분에 여기 천진암을 발상지로 해서 이 땅 곳곳에 헤븐로드가 뻗치어 나갔고 저는 이번에 천진암-미리내의 헤븐로드를 걸은 것입니다.


 


 

  오전 8시38분 광주시와 양평군을 경계 짓는 삼합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새벽같이 서두른 덕에 아침8시에 곤지암을 출발해 삼합리고개까지 가는 광주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삼합리고개에서 하차해 길 건너 왼쪽 길로 들어서자 주렁주렁 달린 낟알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수수 한 그루가 구부정한 허리로 반갑게 저를 맞았습니다. 넓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저를 보고 발광하며 짖어대는 훈련 견들이 갇혀 있는 우리를 지나 묘지로 들어섰습니다. 맨 위 묘지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289.6봉에 이르기까지 잡목숲길을 지나느라 바짓가랑이가 다 젖었습니다. 삼각점이 박힌 289.6봉에서 몇 걸음 옮겨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서쪽으로 향하는 중 개활지(開豁地)의 묘지를 지나며 건너편 천덕봉의 산줄기들을 눈여겨보았지만 지난 번에 어느 줄기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9시30분 나무의자가 세워진 쉼터를 지났습니다. 

묘지에서 쉼터에 이르는 길은 임도 길로 그늘지고 평탄한 길이어서 쉬는 듯 걷는 듯 했습니다. 나무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세상모르고 쉬고 있는 잠자리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서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는 끝났고 오솔길이 이어졌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선 후 3백m대의 봉우리를 두 개 넘어 다다른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송전탑을 지난 시각이 10시11분이었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직진하여 오른 쪽 급경사 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 길로 내려섰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곧바로 넓은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용문산이 멀리 보이는 오른 쪽 바로 옆의 송전탑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인 된비알의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걸어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이동통신 중계탑을 지나 전선공사중인 차도로 내려선 후에야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았다 싶어 비로소 안심했습니다. 나무의자 쉼터에서 여기 차도에 이르기까지 알바가 걱정되어 조심해서 산행해서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10시55분 곤지암과 양평을 이어주는 남이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전선공사를 하고 있는 차도가 남이고개인줄 알고 들머리를 찾다가 얼핏 이 길이 이제는 차가 다니지 않는 옛날 도로라는 생각이 들어 왼쪽 길로 돌아내려가자 차들이 쌩쌩 내달리는 남이고개가 나타났습니다. 양평 쪽으로 이 고개를 넘자마자 길 건너 왼쪽 들머리로 올라섰습니다. 키다리 마타리 꽃이 자리를 같이하는 묘지를 지나 북서쪽으로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왼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해 오른 쪽으로 꺾어 올랐습니다. 자작봉의 이정표가 서있는 한전도로(?)를 지나 곧바로 올라가 삼각점이 서있는 393.7봉에 올라선 시각이 11시31분으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17분간 푹 쉬었습니다. 남이고개를 지난후로는 이정표도 세워졌고 길도 분명해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12시29분 해발575m의 자작봉에 올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393.7봉에서 송전탑공사장을 거쳐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서는 길은 오름 새가 꾸준하게 이어졌는데 길바닥에 도토리가 나뒹굴어 잠시라도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겠다 싶었습니다. 소망수양관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몇 걸음 더 걸어 “자작봉”표지판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오르자 이번 산행에서 거의 보지 못한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자작봉에서 16분 간 점심을 든 후 무단출입을 삼가하고 정숙유지를 당부하는 소망수양관의 안내판을 뒤로 하고 로프가 쳐진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로 소망수양관 길이 갈리는 몇 곳의 삼거리마다 이정표가 세워져 앵자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평탄한 능선 길을 걸으며 바위위에 자리 잡은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사진 찍고 나서 칼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가파른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선 암봉이 “귀염바위”이겠다 싶었던 것은 이 암봉에서 휘 둘러본 조망이 빼어나 바위의 모양새와 관계없이 많은 산객들로부터 귀염을 받았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왼쪽으로 펼쳐진 골프장이 참으로 광활해 보였고 먼발치의 태화산도 눈에 잡혔습니다.


 

  13시52분 해발667m의 앵자봉에 올라섰습니다.

귀염바위(?)에서 앵자봉으로 오르는 길은 고도차가 40-50m에 불과해 마지막 몇 분간만 가팔랐습니다. 두 곳의 송전탑을 지나 앵자봉이 가까워지자 길섶의 야생화들과 버섯들을 마음 편히 바라다볼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어느 해 봄 집사람과 함께 이벽성조 등 성현5위 묘역을 둘러보고 지금은 막힌 앵자봉과 우산봉 사이의 가파른 계곡 길로 여기 앵자봉을 처음 올랐습니다. 작년에 두 번을 더 오른 이 봉우리를 이번에 또다시 찾은 것은 미리내성지에서 시작한 성지순례를 이 산 아래 천진암에서 마치고 성현5위 묘역을 참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앵자봉은 사방이 탁 트여 앞서 지나온 귀염바위보다 더 많은 산들이 보였으니 북서쪽으로 검단산과 예봉산 그리고 이 산들 사이로 흐르는 한강이 잘 보였고 그 너머로 북한산의 매끈한 인수봉도 흐릿하게나마 보였습니다. 북동쪽으로 양자산과 용문산이, 서쪽으로는 무갑산과 관악산이, 남서쪽으로 태화산이, 남동쪽으로 천덕봉과 그 왼쪽으로 한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0분간 쉰 후 천진암으로 향하기 직전 마지막 남은 성지순례 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끝까지 보살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5시12분 천진암갈림길에서 지맥종주를 마치고 하산했습니다.

앵자봉에서 천진암갈림길을 거쳐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지난 가을 대학동기들과 한 번 걸었던 길인데다 전반적으로 고도가 낮아지는 길이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앵자봉에서 안부로 내려서자 왼쪽 아래 천진암성지로 내려가지 말라고 걸어놓은 대형 플래카드와 철조망이 눈에 띄었습니다. 앞서 소망수양관은 물론 여기 천진암성지까지도 무단출입을 금하는 경고성 안내판 및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을 보자 천년을 훨씬 넘게 산 속에 자리해온 그 많은 사찰들이 산길을 막고 통행을 금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한 많은 산객들이 혹시라도 주님의 자비가 부처님의 자비를 따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할까봐 적지 아니 염려됐습니다. 이 산 최고봉인 해발 672m의 우산봉을 넘어 다다른 두 번째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양자단맥이 갈리고 지맥 길은 왼쪽으로 꺾여 이어졌습니다. 이 길로 한참동안 진행하다 한 대학에서 자기네 땅이라며 만든 초록색문짝 두 개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길을 가로막을 심사로 해 놓은 것 같은데 그리 했다가는 종주꾼들의 극성으로 출입금지라는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욕만 실컷 얻어먹을 것입니다. 천진암 갈림길에 다다르기까지 편안한 길을 걸으며 이 길이 바로 헤븐로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시54분 천진암 성지 안의 광암성당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천진암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천진암 가는 길은 초반에는 다소 경사가 급했습니다. 지난 번 정개산에서 안부로 내려갈 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더니 엉치등뼈가 지금도 아파 급경사길이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하느님을 보다 가까이에서 뵙고자 곧게 치솟은 낙엽송과 잣나무들이 함께 만든 숲 사이로 고즈넉한 길이 나있어 하산 길이 명상의 길이었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전직 장관분의 묘지를 지나 얼마간 내려가자 물이 흐르는 지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지계곡을 건너 광암성당 앞으로 내려서기까지 또 한 번 낙엽송 숲길을 걸었습니다. 광암성당 앞에서 옷매무세를 손 본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안내 일을 맡아보시는 안내소로 가서 팜프렛을 얻어들었습니다. 성지를 둘러보겠다는 제게 두 노인들은 저녁5시까지는 이곳으로 내려와야 한다며 배낭을 맡아주어 고마웠습니다.


 

  문을 닫는 저녁5시까지는 1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아 마지막 순례 길을 서둘렀습니다.

안내소를 출발해 오른 쪽의 선암로를 따라 올랐습니다. 방천담을 지나 올라선 “100년 계획 한민족 대성당 건립현장”은 10수년전에 집사람과 함께 왔을 때보다 별반 진척된 것이 없어 보여 100년이란 역시 긴 시간임을 느꼈습니다. 오른 쪽 강학로를 따라 걸어 천진암터 창립성현5위 묘역에 다다랐습니다. 이벽성조 묘 앞에서 주님께 성지순례 종료를 고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벽성조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리내성지에서 시작한 저의 성지순례는 끝났습니다. 때 마침 카메라가 바테리가 다 되었다며 작동을 멈추어 감격스런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앵자봉 산줄기가 포근하게 보듬고 있는 묘역을 출발해 안내소로 향했습니다. 식수로 쓰인다는 계곡물은 관리가 잘 되어 깨끗했습니다. 앵자봉-우산봉 사이의 안부에 출입금지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은 이 계곡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했나 봅니다. 대성당 건립현장으로 되돌아와 광암로를 따라 내려오는 중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셔터를 눌렀더니 이번에는 웬일인지 말을 잘 들었습니다. 성역로 맨 위의 십자가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안내소에서 배낭을 찾아맨 후 천진암 정문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이 스르르 닫혔습니다. 철문은 닫혔지만 저는 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버스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