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누군가 ‘산에 갑시다.’라고 외치는 소리에 불은 켜지고 이내 부산스런 움직임이 일어난다. ‘조금만 더 재워주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이럴 때 늘 하는 생각이지만 안락하고 따스한 방놔두고 이 어인 고생인지.....
오늘 산행은 밤티재에서 불란치재까지이다. 산행을 많이 못해본 몇몇 분들을 위해 난 늘재에서 먼저 출발하기로 하였다.

3시20분 매서운 봄바람을 맞으며 청화산을 향해 출발한다. 발목을 다쳐서 한동안 산행을 중단했던 구회장님을 필두로 어둠을 헤치며 서서히 나아갔다.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시원한 공기는 폐속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그런데 대간이 처음이라는 몇몇 분들의 산행장비가 부실하기 그지없다. 청바지에 가벼운 운동화, 거기에 랜턴도 배낭도 없다. 그야말로 맨몸뚱이 사나이. 마음속에 먹구름이 밀려온다. 머릿속으론 자꾸 중간 탈출지점을 헤아려 본다. 그러나 이 맨몸 사나이는 반시간도 못되어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뒷사람에게 수습을 맡긴 후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구간은 일반산행으로 많이 알려진 구간이라 능선 좌우로 갈림길이 많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한분은 중간에 혼자 떨어져서 오시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 하산한 꼴이 되었다. 그래서 너무 상심한 나머지 차를 타고 버리미기재까지와서 다시 대야산까지 산행을 하였다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5시3분 청화산(984m) 도착. 아직도 내리막길에는 얼음이 있어서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잘못 넘어지면 엉덩방아에 나가자빠지기 일쑤다. 거기다 운이 없으면 뾰족한 나무에 주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비명소리란 ‘.......’ 일행 중 두분의 랜턴마저 고장 나니 엉그적 엉그적, 그야 말로 심봉사 행렬이 따로 없다. 설상가상으로 한분은 발 뒷굼치에 물집이 생겨서 연신 신음소리를 내뿜는다. 임시처방으로 대일밴드를 붙여보지만 별 효험이 없다. 어느새 밤티재에서 출발한 대간거사가 휘~이~잉 지나간다. 이어서 베트콩 선사도 쌔앵~

이곳은 낙엽이 듬뿍 쌓인 오솔길과 굴곡 있는 암릉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서서히 날은 밝아오고 우리가 가야할 능선이 뱀처럼 꾸불꾸불 앞에 놓여 있다. 7시5분 갓바위재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는다. 영준이 아버지와 삼촌은 오늘도 보온밥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김치, 구운김, 노오란 계란말이를 펼쳐놓고 식사를 한다. 덕분에 내 뱃속도 횡재를 하고..... 이곳에서 몸 상태가 안 좋은 분들을 의상저수지 쪽으로 하산하라 일러 놓고 다시 조항산을 향한다. 가파른 바위능선이라 오르기가 적잖이 힘겹다. 비록 아래에서 보면 빤히 보이지만 숨을 여러번 골라야 오를 수 있는 곳이 조항산(951.2m)이다(8시). 해가 떴음에도 불구하고 황사현상 때문에 하늘이 희뿌옇다. 그래도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가야할 대야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진 대간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능선의 기복이 너무 심하여 고생문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조항산에서 경사가 심한 길을 종종 걸음으로 25분 남짓 내려오면 고모치이다. 이곳에서 잠시 오르다 보면 능선 오른쪽 옆구리까지 심하게 파헤쳐진 채석장을 볼 수 있다. 백두대간 능선이 잘려나갈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저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합법을 가장한 사업을 일삼는 자들이라 애당초 자연보호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목청 높여 외쳐 보아야 저들에게는 한여름 앵앵거리는 모기소리로 밖에 안 들릴 것이다. 언젠가는 건너편에 있는 마귀할미통시바위도 이들에게 좋은 먹이 감으로 변할 것이다.

8시51분 899m 지점에 도달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바로 마귀할미통시바위로 가는 길이며 좌측이 대간능선이다. 커다란 집채만한 바위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밀재에 다다른다.(9시36분) 이곳은 용추폭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여기서 다시 다리에 힘을 다부지게 주어야 올라갈 수 있다. 가다보면 코끼리의 코같이 생겨서 코끼리바위, 그 옆으로 문처럼 생긴 곳을 통과하는데, 그래서 이곳을 대문바위라 일컬으고 있다. 지름길인 바위능선을 힘겹게 올라가면 코앞에 대야산이 있다.

10시12분 대야산(930.7m) 도착. 사방이 탁 트여서 경치를 구경하기는 아주 끝내준다. 저 아래에는 촛대봉이 아주 나지막하게 느껴진다. 멀리에는 지난번 넘어왔던 곰넘이봉도 보인다. 널찍한 바위에 앉아 온갖 과일을 먹노라면 그간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풀어진다. 목줄기를 통해 시원한 물이 들어갈 때는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마치 가뭄에 찌든 풀이 물기를 머금은 듯....

여기서 바로 우측으로 내려가면 용추폭포로 가는 길이고 대간은 정면의 바위 능선을 넘어야 한다. 내리막길은 매우 가파르고 중간지점에는 굵은 밧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염없이 내려오다 바닥에 이르면 나지막하게 보였던 촛대봉이 그렇게 높아 보일수가 없다. 11시5분 허물어져가는 묘 한기가 놓여 있는 촛대봉에 도달한다. 뒤돌아서서 대야산을 바라보니 바위 갑옷을 입은 듯 웅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격정의 능선을 모두 넘었으니 이제부터는 완만하고 오붓한 오솔길이 전개된다.

11시23분 불란치재 도착. 해는 벌써 중천에 걸려 있었고 그 햇볕이 따갑게 느껴진다. 일행과 담소하며 오늘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11시53분 주차장 도착.
총 산행시간 8시간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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