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삼도의 용이 머금은 여의주, 그리고 화주봉에서 굽어보는 대간길(5회차 9구간. 덕산재 - 우두령)


● 일시 ; 2002년 5월 4일 ~ 5월 5일
● 날씨 ; 맑음
● 동행 ; 이찬영. 유병길. 가고파 산우회 회원
● 구간 ; 백두대간9(덕산재 -부항령 -1030봉 -1170봉 -삼도봉 -삼마골재 -1175봉 -화주봉 -우두령 )

● 산행시간
- 5월 4일 토요일
22:06 = 동대문 주차장 출발(혜성관광버스)

- 5월 5일 일요일 (총 산행시간 : 8시간50분. 도상거리 24㎞)
03:07 = 덕산재 도착
03:30 = 덕산재 출발. 산행시작
04:50 = 부항령 도착
05:40 = 1030봉 도착
06:50 = 1170봉 도착
07:46 = 삼도봉 도착. 아침식사
08:20 = 삼막골재 도착
10:25 = 1175봉 도착
11:10 = 화주봉 도착
12:20 = 우두령 도착. 산행 끝.
13:18 = 우두령 출발
16:30 = 서울 양재역 도착
17:30 = 집 도착



●산행기

벌써 며칠 전부터 초등학교 5학년 딸래미가 묻는다
"아빠 4일 날도 산에 가?"
"응 가야지"
나는 이 물음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어떤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생각은 5월 5일 어린이날 선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선물을 벌써 정해놓고 있다는 귀뜸을 받았으나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대간산행을 시작하면서 마음이 굉장히 조급해진 느낌이다. 한달에 2번이나 토·일요일을 빼내고 나니
남는 휴일이 무척 적게 느껴지면서 가정에, 가족에 투자해야 될 시간적 몫이 그만큼 줄어서 인지, 아님 당일 산행을 다닐 때는 아침에 나갔다 오후에 들어오니까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아무튼 마음이 바빠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 틈새를 벌서 딸애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집을 나오면서 아내에게 딸 아이 선물을 사주라고 했으나 선물은 무슨 선물이냐며 정색이다.

동대문에 도착하니 회사 동료가 기다리고 있다. 반가움의 인사와 함께 그 동료의 아쉬움이 섞인 얘기를 듣는다. 대간산악회에서 같이 종주하던 산꾼들이 대간종주를 마친 후 기획산행으로 시작한 한북정맥 종주를 끝내고 이젠 낙남정맥 종주를 위한 오늘이 그 첫 산행일이란다. 광장 동쪽에 주차된 차량에 그분들이 승차하고 있어 인사를 나누고 왔다는 것이다.
이 동료의 표정에서 대간을 함께 마치지 못한 아쉬움과 낙남정맥을 타는 분들에 대한 부러움이 교차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동료에게서 나는 또 한번의 산에 대한 열정과 산으로 향하고 있는 산꾼의 겸허한 자세를 본다. "얼른 대간을 마치고 낙남에 합류하면 되지요" 하고 격려 덕담 후 차량에 오르려 하니 내가 타고 갈 차량이 두레 고속버스가 아닌 혜성관광 버스로 바뀌어 있었다. 올라가 보니 승차자가 적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라 자녀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썰렁하기가 이를 데 없다.

덕산재 도착하여 산행대장에게 간략한 산행개요를 듣는다. 오늘 산행은 도상거리 24km라고 하나 실제로는 28km 정도가 되어 코스가 약간 길다는 것이다. 따라서 30분 앞당겨 시작하기로 하였다.
차에서 내리니 새벽 바람이 서늘하다. 쌍방울 주유소를 뒤로 하고 대간능선으로 올려 붙인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얼마간 올라을까? 정상적인 마루금에 닿았음이야. 그런데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앞사람 뒤꽁무니만 바라보고 게속되는 야간 행군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의할 것 같으면 폐광터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봉우리 몇 개 넘으면 삼각점이 있는 813.1m봉에 닿고 다시 긴 내리막길 뒤에 부항령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폐광터는 어디고 813.1봉은 어디인지 알 수 가 없다. 4시 4~50분쯤 됐을까? 조그만 헬기장이 있고 누군가 동행자가 여기가 부항령이라 하는데 고개길이란 생각이 전혀 들질 않는다. 어둠속에서 보이는 것은 잡초만 무성한 산길임에랴!

부항령을 뒤로 하고 급경사에 오르막길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간다. 오래된 묘 1기가 있는 970m봉에 오르고 이 봉우리에서 90도 꺾어 북동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에 잡목이다. 뚝 떨어져 안부에 닿으면 사면길을 만나고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막 중간에 암릉이 있고, 이 암릉을 다 올라서면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약1,030m봉). 공터가 상당히 넓다. 날은 밝아지고 주위의 경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북서쪽으로 다시 90도 꺽어 능선이 휘어 넘어가서는 내리막인데 작은 암릉지대가 이어진다. 암릉지대를 내려와서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두 개 넘고 나무도 없는 뾰족한 암봉을 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니 최고의 전망을 제공한다. 1,170봉. 석기봉의 위용이 멋들어 지게 나타난다. 석기봉 뒷 쪽으로 민주지산(? 각호산)이 보이고, 하~~ 삼도봉이 보이는구나. 아침을 먹을까 하다가 삼도봉에 가서 먹기로 하고 여기서 병길이와 사진 한 컷을 박고 갈 길을 재촉한다. 출출한 시장끼가 약간 있다.

잠시 내려오니 목장지대가 나타난다. 초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풀도 가축도 아무 것도 없다. 다만 황량하게 대간 마루금만 파헤쳐진 느낌이다. 대간 마루금 바로 서쪽 밑으로 목장도로가 반원을 그리며 휘돌아 내려간다. 목장길을 따라 가다가 오른쪽 능선으로 붙어 한참을 내려가며 작은 봉우리 두 개를 넘으니 사거리 안부다.

바로 삼도봉 턱밑이다. 저 위에 삼도봉이 보이고 있다. 이 사거리 안부에서부터 중미마을 5km, 해인리 1.5km, 삼도봉 0.5km라고 씌여진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배경으로 김근봉 대장에게 부탁하여 병길이와 사진을 한장 박고 삼도봉을 향하여 힘있게 오른다. 여기까지 병길이의 운행은 매우 순조롭다.

드디어 삼도봉에 오른다. 오늘은 사진에 굶주린 사람인양 병길이와 한방씩 박는다. 그리고 둘러보는 사방의 경관, 삼도봉에서 보이는 석기봉의 모습이 장관이다. 남쪽으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출렁거리고 북쪽으로는 황학산과 대간이 강렬하게 손짓하고 있다.
삼도봉은 말 그대로 충북 경북 전북의 3개 도가 만나는 지점으로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가 만나는 하삼도의 꼭지점이다. 진입로도 셋. 북쪽 충북 상촌에서 물한계곡으로 오르는 길, 서쪽 전북 무풍 대불리에서 오르는 길, 동쪽은 경북 김천 해인리에서 오르는 길이다.

이 삼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삼도를 경계로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물을 가르고 언어와 풍습, 그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확연하게 다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산이 주는 경계에서 오는 차이일 뿐이다.
삼도봉을 정점으로 하는 하삼도가 아웅다웅할 이유가 없다. 동이 어떻고 서가 어떻고, 영남이 어떻고 호남이 어떻고..... 전라, 경상, 충청도는 우리 한반도 남부지방을 다 아우른다. 그래서 삼도봉의 용 3마리는 뒤엉켜 하나의 여의주를 물고 하삼도를 발아래 아우르고 있다. 화합하자고 엉켜있다.

삼도봉 화합의 화강암 탑에 음각된 비문을 읽는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듯 탑돌이 한번 하고...

《삼도 대화합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소백산맥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 인접 군민의 뜻으로 이 탑을 세우다.영동. 무주. 금릉. 95. 10. 10》

새벽 3시반에 시작한 산행과 공식적인 휴식시간, 그리고 상석(床石)에 앉아서의 아침식사. 정상주를 한잔씩 병길이와 나누어 마신다. 속이 다 쓸려 내려가는 것 같은 그 맛. 그 맛은 천상의 음료맛이라!!!

운행은 계속되고 삼도봉을 내려오는데 약간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삼도봉에서 삼막골재 사이 급경사에 군데군데 통나무로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아무런 효용성이 없는 나무계단은 오히려 산을 파헤친 것이리라. 이것은 필시 경북 쪽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모르긴 몰라도 도지사들이 참여하는 3도 화합 행사가 가끔 삼도봉에서 있어 참석하시는 높으신 분들 등산에 편리하라고 설치된 것으로, 삼막골재의 잘 정돈된 헬기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삼막골재의 통과 시간만을 메모했는데 이정표 내용 기록을 놓치고 말았다. 기억에 황간 황룡사 4.5km(?) 표시만 기억이 난다. 충북 영동 물한리와 경북 김천 부항면 해인리 가는 거리표시가 아니었나 한다.

지루하게 진행되는 오르막길, 군데군데 바위지대를 지나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 못 미쳐 전망이 별로 없는 1,089봉에 올라선다. 오늘은 이상스럽게 식수가 부족하고 힘도 든다. 약간의 휴식과 함께 운행속도는 지체되고, 병길이의 무릅 언저리는 아파오고..... 동행하는 회원 세분 역시 힘들어 하고.... 그래도 고맙게도 김대장은 열심히 산행 안내를 한다.

이름이 없는 무명봉인 뾰죡한 1,175봉에 오르니 전망이 트인다. 1,175봉은 몇 명 앉을 수 없는 좁은 암봉이지만 전망이 썩 괜찮다. 또 휴식, 병길이의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어서 급경사 내리막길 암릉 구간으로 직벽이다. 위험구간. 발 디딜 데와 붙잡을 데가 많아 내려서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으나 겨울철 얼어붙어 있을 경우 매우 위험할 듯하다. 급경사를 내려가 안부 부분에서 또 휴식, 그러나 병길이는 내려오질 않는다. 기다리던 일행은 먼저 일어서고 나는 그냥 기다리다가 병길아! 하고 몇 번 소리를 지르니 으~응! 하고 대답하면서 내려온다.

다시 오르막, 대간길이 그냥 대간길 인줄 아느냐. 오르내림을 수없이 반복하는 산행의 연속이 대간종주
길이라. 화주봉 오름길에서 1175봉을 올려보니 방금 내려온 암릉 구간이 바로 직각으로 떨어지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이상스럽게 화주봉 오름길이 힘든 줄 모르겠다. 같이 진행하던 동료회원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뒤에서 남여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내려다 보니 부부 회원이 어느새 접근해 오고 있다. 아마 잦은 휴식으로 후미와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진 것이리라. 올려다 보니 화주봉 정상이 눈앞에, 같이 오르던 일행 분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휴식을 취한다. 다행히 천만 다행히도 우두령에서 올라오는 어느 분이 물 보시를 하고 있다. 사실 산에서 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산행예절에도 나와 있는데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갈증을 해소한다. 부부 회원이 합류되어 다시 식구가 늘어난다. 병길이가 토마토 한 개를 얻어 절반을 먹고 절반은 내가 다시 반을 나누어 일행과 함께 맛을 본다. 토마토 맛이 이렇게 좋은 줄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됨이라.

여기서 다시 화주봉(1,207m. 일명 석교산)의 경관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멀리 지리산 연봉의 모습이 너무도 장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시작한 덕산재 부터의 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잡힌다. 또 그 뒤의 삼봉산, 초점산, 대덕산 등 지나온 대간줄기가 한 손에 잡힐 듯 출렁이는데 그 기분 또한 엄청난 기쁨으로 다가온다. 북으로는 황학산과 속리지구의 연봉들이 우렁차게 포효하고 있고 힘든 산행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 넣는다. 내가 가야할 거기.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다시서고 싶은 화주봉!!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다. 배도 고프고 물도 바닥나고..... 그런데 하산 길의 선두는 병길이다.
신통하게도 펄펄 날듯이 잘도 내려온다. 1시간여 하산길이 왜 이리도 지루한지, 자꾸 산 아래 차가 어디있나 살펴지기만 하고, 우두령은 나타나질 않고, 얼마를 내려오니 드디어 우두령에 도착한다.
어쨌든 마무리가 잘 되었는데 오늘의 산행시간은 예정시간을 거의 다 채운 거로 보아 좀 고전을 한 것이 확실하다. 정확히 8시간 50분.

병길이의 말에 의하면 토마토 반쪽으로 힘을 얻고 아픈 다리의 통증이 사라졌단다. 대단한 토마토!! 다음 산행에는 간식으로 토마토를 준비하리라. 산꾼으로 성장하는 병길이의 만만치 않은 도전이 나를 흥분하게 한다.

우두령을 넘는 도로는 포장이 완료돼 있었다. 왼쪽은 황간으로, 오른쪽은 김천으로 이어지지만, 대중교통편 왕래는 없다. 영동군 매곡면에서 나온 산불감시원이 폼나게 나타나 대간꾼이 주차한 아반테 승용차에 무시무시한 스티커를 붙이고 간다.

집에 도착하여 출발할 때 개운치 않았던 부분을 해소한다.
어린이날 집을 비운 아빠의 미안함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족 외식을 제의하니 흔쾌히 따라 나서는데 중학생 아들과 초딩 딸의 제안 메뉴가 다르다. 아들은 청소년이고 딸은 어린이니 딸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5차 종주 산행은 저녁 8시가 되서야 끝이 났다. (끝)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