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첫걸음 신고합니다 (빼재-대덕산-부항령)


2003년 12월 6/7일   바람불고 엄청 추운 날


 


 


지난 여름 덕유산종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육십령을 넘으면서 그려봤던 백두대간의


꿈을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오늘에야 첫걸음을 하게 되었다. 오늘 동행하는 팀과 함께


완결짓지는 못할지라도 선답자들의 흔적을 따라 백두대간길을 두루 밟아보고싶은 소박한


소망을 갖고 출발한다.


 


버스창밖으로 보이는 달이 아직 중천에 이르지 못함에 삼봉산 어느 산자락에서 벽소명월


만치나 아름다울 그림을 기대하며 잠시나마 잠을 청해본다.


 


어느새 버스가 신풍령휴게소에 닿아 단잠자는 산객들을 깨울까봐 조심스레 엔진소음을


내면서 다음명령을 기다린다. 창밖을 다시 보니 달빛아래서 소나무가지가 땅바닦에


고꾸라질듯이 휘청대는데 바람의 세기가 예사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싸락눈인지


움푹한 곳마다 수북한데 산정상에는 얼마나 쌓였을런지 염려된다. 대간산행이 첫걸음부터


만만치 않은 시련을 만난다.


 


 


3:50 도로를 건너 비탈길을 오른다. 바람은 아직도 매 불고 포근하던 날씨가 동장군을


 모셔왔는지 찬 기운이 얼굴을 찌르며 파고든다. 눈은 가랑잎을 살짝 덮을 정도니


산행에는 별 지장이 없을 듯 하나 언 땅은 지나는데 어려움이 없을는지 모르겠다.


등에 꽃힌 스틱이 나무가지를 연신 붙잡는 통에 등이 휘청거리고 헤드랜턴 불빛따라


조심조심 걷자니 나무가지에 머리통을 쥐어박는 일이 심심치 않아 온 신경이 곤두선다.


 


덕유삼봉산을 지나 밑으로 줄 잡고 내려서는 길을 놓쳐서 능선길로 치닷다가 벼랑에 막혀


돌아와 잠시 우왕자왕했다. 덕유산의 품을 떠나기가 무섭게 험한 급내리막길이 한없이


이어지고 한 동안을 끙끙거리며 내려와 임도를 만나 안도의 한숨을 쉰다.


김장때도 지나가고 있는데 임자 못 만난 배추들은 겨울내내 얼어붙은채로 추위에 팽개쳐질


모양이다.


 


 


6:30 소사고개에 닿아 후미일행을 기다리면서 첫 휴식을 갖는다. 옷 매무새를 좀 다듬을까


해서 잠시 벗어놨던 자켓이 얼어붙은 배추잎처럼 버적버적하게 얼어버렸고 물 한모금


마시렸더니 뚜껑이 얼어붙었다. 아- 서있는 것이 춥다.


 


다시 작은 삼도봉을 향해 오른다. 폭신폭신한 낙엽송잎을 밟으며 한참을 오르다 다시


급경사를 만난다. 대간길이 이리저리 잘려나가며 간신히 이어지곤 있으나 머지않아


흔적조차 없어질 조짐인데 어떻게 길을 찾아갈지 걱정스럽다.


 


 


 


잠시 쉬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사위가 밝아지면서 삼봉산의 진모습이 나타나는데


한 눈에 봐도 험하기가 말이 아니다. 밤새 내려온 길이라 생각하니 끔찍스럽다.


비교적 완만해 보이는 능선을 옆에 두고 대간꾼들은 험한 골짜기를 왜 고집하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무서운 삼봉산. 빼재에 활거했던 호랑이들도 저 골짜기를 단숨에 내려오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인간의 의지가 새삼 대단함을 느낀다.


 


사진을 찍으며 숨을 고른 후 다시 가파른 능선길을 사력을 다해 오른다. 사진을 찍는


잠깐 사이에 얼어버린 손끝이 아려오고 콧물은 두어발짝이 멀다하고 연신 제집을 들락거린다.


 


 


8:00 여기도 삼도봉이라. 아직도 찬바람이 매 불고 허기진 배를 감당하지 못해 삼도의


경계선을 가늠해보지도 못하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아침식사준비를 한다. 잔설로 덮힌


비탈에서 미끄러지지않으려 조바심하면서 먹을 것을 이것저것 꺼낸다. 강원도 아낙들이


밭에서 일할 때 이렇게 앉아서 어떻대더라 하며 속으로 킬킬대고나니 여유가 좀 생긴다.


 


 


8:30 휴식을 달게 끝내고 대덕산을 향한다. 지척인듯이 보이나 내리막 오르막을 한번씩


해야하니 만만한 길이 아니다. 대덕산정상에 다가가면서 보니 틈실한 소등짝처럼 맨드름한


봉우리밑으로 얼음꽃이 만개한 싸리나무와 어우러져 덕산의 한겨울 풍채를 잘 보여주고 있다.


 



 


 


9:00 대덕산정상(1290m)의 조망은 사방이 시원스럽다. 삼봉산은 북으로 줄기가 계속뻗쳐


덕유산줄기와 맞닿은 듯한 모습이 병풍 열두폭을 가득 채운 한폭의 그림이고  그 너머로


덕유산 향적봉이 보이는데 구름이 지나가면서 눈을 뿌려대는가 시나브로 산 모습이 변하


더니 곧 백설에 뭍힌 고봉으로 변한다. 내년봄까지 보여줄 덕유산의 모습을 순식간에


단장하고 있었다.


 



 


조망을 서둘러 끝내고 벼랑길을 내려온다. 얼음골 샘물은 의외로 따스한 온기를 갖고


있다. 정갈한 산죽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길에 피어있는 신기한 얼음꽃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갑짝스런 추위에 땅속의 습기가 얼어 폭발하듯이 솟은 얼음의 형태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봄맞이 나온 앙증맞은 새싹과 다름없는지 볼 수록 신기하다.


 


 



 


 


계속되는 산죽사잇길을 따라 내려와 도로를 만난다. 덕산재라는 곳인가. 김천에서 무주


어디론가 가는 도로를 넘에 나풀대는 길표시 리본을 따라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잡목들을 베어 길을 막은 탓에 가뜩이나 지친 몸을 이리저리 끌며 힘들게 길을 찾아 오른다.


 


대덕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잡아보려고 멈칫하는 사이에 일행을 자주 놓치더니 다시 또


외톨이가 된다. 오솔길처럼 한적한 길이지만 대간길이다. 낙옆을 걷어차며 걷다보면


어김없이 보이는 대간표시 리본들, 선답자들의 행적이 행여 길을 노칠세라 촘촘이 늘어서서


길잡이를 해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가다보니 정상으로 치닷는데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도 없고 갈 길이


모연해서 망서리다가 되돌아 내려오니 몇 걸음 안가 리본이 주렁주렁 날리며 왜 그리 갔노 라고 질책하듯이 왼쪽으로 꼬부라지라 한다.


 


 


대간길을 수차례째 걷는 선두의 비호처럼 빠른 발걸음을 어쩌자고 잡으려했는지


종아리가 터질듯이 뻐근해지고 내리막에 이르면 한기에 노출된 무릎이 삭신거린다.


추운날에 대한 대책이 미비했던 탓에 몸 이곳 저곳이 혹사당하고 있으니 오늘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리라.


작은 봉 두개를 더 넘고서야 도로를 만난다.


 


 


12:10 삼도봉터널앞에 종착한다. 첫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고 반갑게 맞아주는 낯선


일행이 고맙다. 공통화재가 일거에 생겼으니 돌아오는 길은 올 때의 서먹함을 일소


하고도 남아 다음산행에 대한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는다.


 


한잔 가뜩했으니 잠과 더불어 집에 닿으려니.....


 


동행해준 자유인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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