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 자 : 2002년 3월 7일~9일(1박 3일)
2. 장 소 : 전남 구례군 성삼재 ~ 전북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
3. 준비물 : 스틱,장갑,여벌 옷,스패츠,오버복(上,下),우모복,행동식,김밥(4줄),지도,나침반,소주1,식수1,
건전지(3set), 텐트(2인용), 토지 1부2권
4. 비 용 : 영등포~구례구역(무궁화호 15,100)
구례구역~구례터미널(버스 700)
구례터미널~성삼재(택시 20,000)
매요리~남원역(버스 1,700)
남원~영등포(15,100)
건전지(AAA) 1set(1,800), 김밥(4,000), 3/8조식(김치찌개 - 4,000), 3/9 석식(짜장곱 - 3,000)
계 : 52,600

5. 일 정
23:30 영등포역
24:00~3/8 05:03 영등포역~ 구례구역
05:20~05:50 구례 터미널
06:25 성삼재
06:40 이정표 - 성삼재 0.3km, 만복대 5.7km
06:55 이정표 - 성삼재 1.0km, 만복대 5.0km
07:15 고리봉 - 해발 1,248m
07:40 이정표 - 성삼재 2.0km, 만복대 4.0km
08:20 이정표 - 성삼재 3.0km, 만복대 3.0km
08:30 묘봉치 헬기장(해발 1,108m)
09:00 이정표 - 성삼재 4.0km, 만복대 2.0km
09:29 이정표 - 성삼재 5.0km, 만복대 1.0km
09:55 만복대(해발 1,433.4m) - 성삼재 6.2km, 정령치 2.0km
10:40 이정표 - 만복대 1.0km, 정령치 1.0km
11:20~12:00 정령치휴게소 - 점심식사
12:30 고리봉(해발1,304.5m) - 정령치 0.8km, 고기삼거리 3.0km, 바래봉 8.6km
13:15 이정표 - 고리봉 0.5km, 고기삼거리 2.5km
13:34 이정표 - 고리봉 1.0km, 고기삼거리 2.0km
13:43 이정표 - 고리봉 1.5km, 고기삼거리 1.5km
13:57 이정표 - 고리봉 2.0km, 고기삼거리 1.0km
14:40 고기삼거리
15:00~16:30 가재마을(휴식 취함)
17:22 수정봉(해발 804.7m)
17:53 입망치
19:30 취침
3월 9일
07:40~09:06 기상 및 아침식사
10:40 여원재(2구간 종점)
12:00~13:45 점심식사
14:30 고남산(해발 846.5m)
15:06 중계탑
16:43 매요휴게소
17:55~18:40 매요리~남원역
19:58~24:00 남원역~영등포역

6. 산행기
일본 여행 덕에 계획된 2구간이 2주를 넘어서야 시작되었다. 올해 안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자하는 나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일본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 노조창립일덕에 얻게된 3일간의 연휴를 통해 그간에 미루어진 2·3구간을 하려고 했으나 장기간의 여행으로인한 피로 누적과 체력의 저하는 계획한 산행을 이룰수 없게끔 만들었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통해야만 대간종주를 무사히 마칠수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3월 22일 저녁

어제 일본을 다녀온 내게 세희와 은영이가 술을 쏘겠다한다. 그동안에 노고가 많았냐며... 사실은 내게 선물을 받고싶어서 그런다는걸 뻔히 알지만 못이기는척하고 커다란 베낭을 메고 나온 나를 무척이나 놀라워한다. 하긴 내 베낭 맨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으니까...(산사람들 빼고) 나를 놀리는건가? 회가 먹고싶다며 회집에 가자한다. 우띠... 회는 지겨워죽겠구만... 회를 먹기 보단 간만에 신나게 떠들어본다.
일본에 가서 느낀 이러저러한 것들. 회먹구 2차, 3차 하다보니 어느새 헤어질시간이다. 평소 같으면 그녀들이 먼저 갔을테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떠난다. 그녀들이 좋긴 하지만 친구여서인지 내겐 산이 먼저다. 쿠후후.
미리 예매해놓은 표를 찾고 나서 10여분 있으니 개표가 시작된다. 술기운이어서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나의 소중한 베낭을 열차 선반에 올리지 못하고 놓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너무 많이 마신건가? 산행 때문에 술도 별로 안마셨는데... 책을 펴고 읽어보려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않조아보이던 세희가 생각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기분에 취해 모르고 있었던거같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 틍화를 해보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었다. 한참 잠을 자다가 잠결에 깨끗한 열차의 모습에 일본의 열차에 타있다는 착각을 하였다. 일본 연수를 온 우리 회사사람들이 무척 떠든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 일본에서 열차 타본적이 없는데... 그리고 어제 귀국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갖 출고된 열차인지 무척 깨끗하다. 아직까지는 일본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3월 23일

구례에서

평소 지리산에 다닐때와 마찬가지로 구례역에서 내려 마치 나를 위해 대기한 듯한 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로 갔다. 자주 들어가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김치찌개를 시킨다. 콩나물국밥을 권하지만 뜨거운걸 잘 못먹는 나로서는 부담이 가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아직까지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개통이 되지 않았다한다. 예상은 한거였기에 결국 또다시 택시 신세를 저야했다. 이번에 만난 택시기사 아저씨는 상당히 건실하고 부지런한 분인듯하다. 약간의 돈 욕심이 있는(어느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분이기는 하나 결코 공으로 얻으려는게 없는 정직한 분인 것 같다. 몇일전에 지리산에 많은 눈이 내려 차량이 통제되었다는데 다행히 눈이 녹고 많은 경력을 자랑하시는 기사님덕에 무사히 성삼재로 향할수 있었다.

성삼재 - 정령치

성삼재에 도착하니 아직 겨울밤이 길어서인지 어둑어둑하다. 택시안에서 언몸을 좀더 녹이는데 피로감이 굉장히 심하다. 우째 몸 상태가 심상치않다. 아직 해가 이르긴 하지만 바로 출발하기로했다. 택시 기사님께 미안하기도하고 따뜻한 스팀 바람에 몸이 더 피곤해지는 것 같고 가장 중요한 건 지리산 국립공원이 경방기간으로 인해 산행 통제중 이어서 걸리면 산행도 못하고 벌금을 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조급하다. 베낭을 고쳐 메고 고리봉으로 향한다. 고리봉 이정표는 있는데 출입을 못하게 철망으로 막아놨다. 철망을 넘기에는 베낭이 크고 무겁다. 어쩔수 없이 철망이 닿지 않은곳까지 우회해서 출발한다.
눈이 10여㎝ 정도 쌓여있다. 눈이 어설프게 쌓여있어 눈이 녹은 곳은 상당히 미끄러울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사람이 못들어가게 철망을 쳐놔서인지 사람의 발자국은 없고 노루발자국과 토끼의 발자국이 있다. 그리고 개로 추정되는 발자국도... 설마 늑대는 아니겠지? 하긴 내가 늑대니까... 2구간의 처음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시작되고 있다. 멀리 약간 쌓인 지리산과 그 외 산줄기들이 퍽 이뻐보인다. 그러다가 내 눈에 성삼재휴게소가 들어오고 가지 말라는곳에 가서 사고를 쳐서 골치아프게 한다던 산악구조원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 아저씨한테 걸리면 십중팔구 벌금인데, 어서 도망가자! 아직까지 지리산 국립공원안이어서 이정표가 잘 표시되어있다. 해발 1,248고지의 고리봉에 도착하니 대간의 모습이 대략적으로 잡힌다. 정맥에 비해서 대간은 크고 굵직굵직하게 잡혀있어 길 찾는데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듯하다. 거기에 대간종주를 먼저 행한분들의 이정표가 형형색색으로 어지러이 깔려있어 독도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내 오른편으론 구례에서 남원으로 넘어가는 737번 국도가 내 옆을 따라온다. 큰길이 옆에 있으니 차량통제가 되고 있긴하지만 왠지 안심이 된다. 묘봉치를 지나니 경사가 상당히 심하다. 거기에 눈이 녹으면서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그렇다고 아이젠을 하기엔 눈 양이 적어서 아이젠을 하면 무릎에 치명적일듯하다. 저 멀리 높기만한 만복대가 보이는데 왜 이리 길이 내려가는 건지... 시계의 고도계를 보니 900m정도된다. 만복대가 1433고지이니까 500여미터 이상을 올라가야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기력이 딸리고 힘들어 죽겠는데 왜 자꾸만 내려가는거야...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언제 저기까지 가지? 그럭저럭 그렇게 오르다 보니 만복대. 힘겹게 만복대에 오르니 억새와 잡목들이 설화를 가득히 피어 정말 이쁘다. 사진을 찍고 싶지만 베낭을 내려 사진을 찍는게 귀찮고 배가 고프다. 정령치가 여기서 1시간여 거리니까 어서가서 밥을 먹어야겠단 생각만든다. 아침이 부실했나? 왜 이렇게 배가 고프지? 어서 가서 점심을 먹고 싶은데 마음만큼 발걸음에 속력이 나지 않는다. 정령치를 1.0km정도 남겨놓고 이동하는데 정령치쪽도 철망을 쳐서 사람들이 출입을 못하도록 막아놨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치밀함과 부지런함에 절로 경이가 표해진다. 정말 지리산국립공원은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것같다. 걸리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앞선다. 조심스레 내려가소 또다시 철망을 따라 돌아 나왔다. 콜라가 먹고싶어 휴게소로 가니 내부수리중이어서 4월까지는 개방을 안한다한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자판기도 꺼놨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체감온도는 자꾸만 떨어지고 배는 고프고, 게다가 피로감이 너무 크고...어쩔수 없이 공중전화 박스 안에 들어가 바람을 피하며 준비해온 김밥을 먹기 시작한다. 김밥 두줄을 허겁지겁 먹고 공중전화 박스안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노라니 졸립다. 이때 휴게소 직원들이 점심 준비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큰일났구나. 여기서 쫓겨나서 산행못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애써 모른척하는게 눈에 보인다. 저분들도 사람인지라 뭐라 못하는구나. 그런 그들이 고맙기만 하다. 융통성 없이 뭐라하면 정말 할말도 없고 여기서 어떻게 시내까지 가냐싶어 예정보다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정령치 - 주촌리 가재마을

산행길로 접어드는 전망대쪽으로가서 슬슬 눈치를 보다가 담을 후다닥넘어서 빠른걸음으로 이동한다. 고리봉이 또하나 나온다. 고리봉. 이게 무슨 뜻일까? 가까운 지역권에서 같은 이름의 봉우리가 나온다는건 분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내가 알기로는 지리산의 이름은 바뀌었어도 일반적인 봉우리의 이름들은 옛날부터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궁금증이 일기는 하지만 내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자나 한글에 박식한것도 아니고 이내 내 생각을 접어버린다. 고리봉에서 갈림길이 생긴다. 한쪽은 대간길 그리고 또 하나는 바래봉가는 길이란다. 맨 처음엔 바래봉 쪽이 대간길인줄 알았는데 그쪽은 아닌가 보다. 고리봉에서 바래봉까지는 8.6km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다. 하지만 산새가 참 예쁘다. 지리산의 큰곳만 갈줄만 알았지 이쪽 코스도 상당히 이쁘다는 생각이 든다. 대간 종주를 하고나서 지리산에 올 때 이쪽코스로 한번 와야겠다. 여기서도 사진을 찍고 싶지만 포기했다. 카메라 꺼내는게 귀찮아서...
고리봉에서 고기리까지는 3.0km 계속 내리막길이다. 난 내리막길엔 공포감이 심하다. 무릎에 무리가 올까봐 겁이 나고 미끄러질까봐 겁이난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하자마자 눈과 흙 그리고 낙엽에 주~욱 미끄러져버렸다. 왠만해서는 미끄러지지 않는 나인데, 잘못했으면 손목이 부러질뻔했다. 이런데서 다치면 정말 큰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만약 다치면 대간종주가 1년여는 미루어 질꺼라는 생각에 부쩍 주의를 하며 내려간다. 자꾸 내려가면서 느끼는건데 왠지 나보다 먼저 개 한 마리가 나보다 먼저 종주를 한것같다. 이놈의 개가 무슨 생각으로 대간길로 다닌거지? 산이 꽤 깊어 혼자서 이곳까지 올리도 없고 사람하고 같이 왔다면 사람 발자국도 있어야하는데 그것도 없다. 산새가 자꾸만 쫓아온다. 10여미터씩 앞서가며 뭐라고 지저귄다. 아마도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나를 경계하는 거겠지만 그런 그녀석이 이쁘기만 하다. 잠깐 쉬며 그녀석 먹으라고 고시래~하며 음식들을 좀 흩뿌려주고 다시 내려가다보니 길이 없어졌다. 독도를 해보니 방향은 맞다. 아마도 짐승길로 접어든 모양이다. 가까운곳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그리 멀리 벗어난것같진 않다. 빽하기엔 내 체력이 지쳐서 그냥 아무렇게 길을 잡고 내려가니 고기삼거리에서 10여미터 벗어난곳이었다. 잠시나마 길을 잊어먹었다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니 피로가 몰린다. 적어도 금요일인 오늘까지는 쉬고 평소대로 토·일요일에 산행을 했어야한다는 생각이든다. 나의 체력을 너무 과신했던 것 같다. 아무튼 식수도 떨어지고 마을에 도착했으니 콜라를 먹을수있으리란 생각하에 이동한다. 운천초등학교를 지나가는데 흔한 가게가 안보인다. 아무래도 어지간한 깡촌인가보다. 뒤에서 갑자기 차소리가 들리길래 뒤돌아보니 남원방향 버스가 간다. 그 버스를 보니 갑자기 집에 간절히 가고 싶어진다. 집에가서 샤워를 하고 푹 쉬고싶다. 하지만 3일의 황금같은 연휴를 이렇게 보낼수가 없어 그냥 침을 꿀꺽 삼킬뿐...
가재마을로 들어서니 사람들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그냥 자기 갈길을 간다. 아마도 이런 베낭을 짊어진 사람을 지겹게도 본 모양이다. '또 왔어?' 하는 눈빛이다. 마을회관 앞으로 가니 식수를 보충할 수가 있었다. 목마름을 달래고 수낭에 물을 채우고 나니 그냥 쉬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피곤하다. 여기에 여장을 풀고 오늘을 여기서 마감을 하고싶단 마음이 가득하다. 피곤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여기저기에 전화를 해본다. 모두다 한결같이 잘해라~ 힘들면 그냥 올라오라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괜시리 자존심에 발동이 걸린다. 내가 누군가! 쥬신다물 양승현이 아닌가! 난 할수 있다. 못해도 2구간은 끝내야지. 그래 2구간까지만이라도 끝내자. 그래야 내 계획대로 대간종주를 할게 아닌가! 여기서부터 포기를 한다면 어렵게 시작한 나의 계획이 뭐고 나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곤두박쳐 내리 꽂히는거다. 그 아이도 이런 나를 비웃을테지? 절대 그럴수 없다. 내가 어떤놈이냐! 자존심하나로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어놓았는데... 그래 해보는거다. 명긴 내가 설마 죽기야하겠어? 해보는 거다! 파이팅! 양승현!

가재마을 - 입망치

애써 나를 다둑거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에서 다시 대간으로 들어서는 길은 곳곳에 매달아 놓은 전임자들의 꼬리표덕에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었다. 마을이 가까워서인지 소나무가 많다. 솔잎을 따서 우리것인지 확인해본다. 토종 우리 소나무군... 일제시대와 전쟁때 피해가 이곳은 덜했던 모양이다. 몇 개의 묘가 나온다. 안녕하셔요?하고 인사를 건내보지만 아무 말이 없다. 하긴 무슨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지를 버리겠지? 흐흐
충분히 쉬고 내 맘을 잘 다스려서인지 도면상 1시간코스인 수정봉까지 무사히 예정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수정봄에서 잠시 머문후 바로 이동한다. 해가 슬슬 바닥을 향해간다. 땅바닥을 향해감에 내 맘도 조급해진다. 대간 첫날밤이 다가오고 있다. 1구간에서야 산장에서 편히 잤으니 첫날밤이라 할수 없고 여러사람과 같이 잤으니 무섬증도 못느끼고 잤었는데… 그러고보니 cd-player를 챙기는건데 무게핑계로 잊어버렸다. 이런 실수가... 오늘 밤 무서워서 어카지? 생각해보니 제대 후 나 혼자서 산속에서 자본적이 없다. 정맥종주하면서 절 입구에서 잔걸 빼고는(그때 절 입구에서 자는통에 자리가 않좋았던지 잡자리가 좋지 않았지) 괜시리 걱정된다. 자리가 좋은 곳을 골라야지. 예전처럼 자릴 잘못 잡아서 가위 눌리는일이 없도록... 군대 가기 전이었지? 북한산이였던 것 같다. 무서운 이야기지만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자리가 별로 안좋은곳에 혼자서 비박을 하는데 내 정수리를 통해 뭔가가 들어오는걸 느꼈고 '이게 가위구나'하며 내 정수리를 통해 들어온 그 뭔가를 쫓아낸적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 그 소리 듣더니 네놈 기가 센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센지 몰랐다하시며 어디 가서 귀신한테 홀릴일 없겠다하며 산에 다니라하셨었는데... 그런일을 다시는 겪기 싫다. 게다가 여긴 깊은 산중이 아닌가. 늦은밤에 무섭다고 내려가는게 오히려 내겐 치명적일수 있다는걸 알기에 잠잘 자리를 잡아야했다. 마침 입망치에 소로가 있고 밭이 있었다. 습기가 많은게 별로 맘에 들지는 않지만 급하면 길따라서 줄행랑을 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의 보금자리를 여기에 잡기로 했다.

첫날밤
베낭을 내려 비닐을 깔았다. 군대가기전 '98년도에 등산교실하면서 구입해놓은 흔해빠진 비닐인데 지금까지도 쓴고 있다. 내가 알뜰해서인지는 몰라도 참 오래도록 쓰고 있다. 이왕이면 대간 끝날때까지 이 녀석도 나와 함께 하고싶다. 텐트를 치고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산이 깊어서인지 금새 캄캄해진다. 맘이 조급해진다. 물을 끓이고 햇반을 집어놓고 한참을 있었다. 확실히 화력이 약하긴 약하다. 저번에 지리산에서 콜맨은 물끓이는데 걸린 시간이 내 버너의 반정도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녀석도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콜맨은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고 휘발유를 따로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귀찮다. 귀찮은건 정말 질색이니까. 오늘 저녁의 메뉴는 육개장에 김치다. 인스턴트 육개장이지만 끓이고 나니 제법 훌륭하다. 떠온 물과 바람 때문에 먼지가 들어가서 요리조리 둥실둥실 뜨는게 많다. 아예 불을 끄고 입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내가 끓인거지만 정말 맛있다. 그런데 사온 김치는 왜 이렇게도 신거야. 너무 시어서 도처히 입에 넣기가 민망하다. 슈퍼가 가까우면 쫓아가서 따질테지만 그 시간이면 이 멍청한 머리가 금방 잊을테니 덩벙거리며 잘못 고른 내 머리를 탓할 수밖에... 그럭저럭 밥을 먹고 나서 가져온 소주 한모금을 마셔본다. 으~ 써라. 역시 소주는 나와 안맞는것같다. 밥을 먹고 나니 포만감에 절로 졸립다. 이제 7시 반인데 지금 자면 분명히 두시에 깨는데... 그때 깨면 무서울텐데... 이 생각 저 생각 해보기도 전에 따뜻한 침낭안에 있으니 금새 잠이 들어버렸다. 결국 두시에 잠이 깨었지만 지나가는 처녀귀신도 없더군... 처녀귀신이라도 꼬셔보면 좋을테지만 처녀귀신도 날 싫어하는 모양이다.

3월 9일 아침

푸욱 잤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몸이 정상이 아니다. 약간의 열도 있는 것 같고 근육들도 밤중에 많이 추워서인지 굳어있다. 등산화를 신어보니 딱딱한게 동계훈련때 자고 나면 얼어버린 군화를 신는듯하다. 그 신발을 신으니 오한이 느껴진다. 그래도 잠은 잘 잔 것 같다. 어제 귀신생각 해보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으니... 버너에 물을 올려놓고 텐트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자리가 좋은 곳이었다. 양지바른 곳이어서 햇볕도 금새 들고 따스하다. 반면에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금새 진흙밭이 되어버린다. 어제 남은 육개장에 밥을 말아 퍽퍽 퍼먹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어르신 한분이 올라오신다. 아마도 이땅 임자인가보다. 붙임성하나는 왕인 나! 여기서도 어김 없이 발휘된다. 괜히 밑보였다가는 죽일놈 소리 들을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아직까지 산에서 그런 소리 들어본적은 없다. 뭐 특별한 얘긴 없다. 사람 사는 얘기. 사람냄새가 물신 나고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 결과가 텔레비젼의 드라마처럼 보이긴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살이 보태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자식자랑에 정신이 없으신 어르신. 자식들이 무척 자랑스러우신가 보다. 하긴 서울에선 보잘 것 없는 나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에겐 대견하고 멋진 자식이니까... 그리고 가슴 아픈 얘기 하나. 아니 화난다함이 옳겠지? 이웃집에 나이 드신 할머님이 그분의 땅에 있는 집에서 사시는 모양인데 할머님의 자식들이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식사한끼, 물한잔도 챙겨드리지 않는다한다. 다행히 이 밭에 아침마다 올때마다 어르신께서 한번씩 들려 선행을 쌓는 모양이다. 가끔 청소도 해드린다한다. 친자식이 지척에 있으면서 그런다하니 할말이 없고 그 아들에 그 며느리가 어떤 쌍판을 한지는 알리야 없지만 분명히 세상은 돌고 돈다.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친게 있으면 그 업보가 쌓여 배로 돌아올날이 있을 것이다. 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짧은 인생을 살면서 세상이 돌고 돈다는걸 알았고 제로의 원칙이 있다는걸 알았다. 주는게 있으면 언제가 반드시 받는다. 그게 되로 받든 말로 받든간에... 이 원칙이 여러사람에게 인식되어질 때 우리 사회가 좀더 아름답고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사회가 될터인데... 어르신과 이 얘기 저 얘기 특히 못난 이웃집 얘길 듣고 열을 올리다보니 어느새 아홉시다. 어르신도 시간을 끊게 미안했던 모양인지 어서 가라하시면 먼저 내려가신다. 나는 어르신보고 인연이 닿으면 만나겠지만 만나지 않더라도 옆집 할머니 오래오래 챙기시면 장수하시고 자식들에게 대접받을거라는 덕답을 해드리니 무척 좋아하신다. 언제 기회닿으면 오랜다. 사위삼고싶다고... 흐흐 그냥 하산해버려?

입망치 - 여원재를 지나서...

몸이 무겁다. 내일도 산행을 계속해야하는데 이래가지고 가능할는지... 첨부터 너무 무리하게 잡은게 실수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랴. 칼은 뽑았으니 실행은 해야지. 입망치에서 시작할 때 길이 약간 가파른듯하더니 어제와는 달리 능선이 비교적 완만하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다보니 24번국도가 보이고 마을의 모습도 보인다. 우와 여기에선 콜라를 먹을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산행엔 왜 이렇게 콜라가 먹고싶은지 모르겠다. 아마도 체력이 약해지면서 수분과 당분의 부족 때문인것 같다. 여원재로 내려와서 국도에 베낭을 내려놓고 가게가 없는지 확인해보니 가게가 문을 닫았다. 문 닫은지 꽤 된모양이다. 먼지가 가득하다. 아무래도 당분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다시 베낭을 둘러메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길 찾기가 용이하지 않다. 내가 가진 지도에는 길이 세부적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뭐 군사목적상 자세하게 기록할수 없다나? 그럼 서울 시내는 어떻게 되는거지? 막 가다보니 지도와 지형이 다르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 좌표를 다시 따보고 지형과 요리조리 맞혀보니 잘못왔다. 어설픈 꼬리표탓이다. 투덜거리며 빽! 내가 본 좌표대로 이동하니 꼬리표가 우루루 몰려있는 나무가 내 눈에 들어온다. 처음부터 내 좌표를 믿었어야 하는데 꼬리표에 너무 맹신했던 것 같다. 나보다는 잘하는 분들이 먼저 갔을거라 생각했는데 게중엔 아닌 분도 있는 모양이다. 그럴꺼면 환경오염되는 그런 꼬리표를 왜 달고 다니는거지? 동물의 습성상 자신의 표식을 해 놓는게 본능이라지만 이렇게 이기적일 필요성은 있을까? 괜시리 또 투덜거려본다.
봄이 오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봄을 알리는 소리로 바쁘다. 역시 봄에 가장 민감한 이는 땅을 보며 사는 농부인듯하다. 논, 밭을 갈고 고추나 깨를 심기 위함인지 비닐을 새로 깔고 모종을 하는등 일손이 무척 바쁜듯하다. 저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데도 농촌에서 사시는 분들은 빛이 많다한다. 누구 때문일까? 뭐니뭐니해도 먹는게 가장 중요한건데 우리는 정작 먹는걸 만드는 분들은 너무 도외시하고 사는건 아닌지...
논, 밭이 많아서인지 비교적 지대가 낮고 걷기에도 수월하다. 머얼리 고남산이 보인다. 썰렁하고 매마른 고남산. 고남산 주위는 산불 때문에 까뭍까뭍하다. 슬슬 지대가 높아지면서 내 발걸음도 무거워지고 어깨도 무거워진다. 하지만 나를 더욱더 피곤케하는건 산불 때문에 검게 타버린 소나무들이다. 산불이 난지 몇 년 안된 모양인지 검게 그을린 소나무가 무척 많다. 아픈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네들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듯 푸른 솔잎을 피우고 있다. 완전히 타버린쪽은 흙이 조금씩 밀려 내려오고 있다. 얼마안가서는 산사태가 발생할것같다. 하루빨리 예전의 푸르름을 되찾아야할텐데... 다시한번 불의 무서움을 느낀다. 언땅이 녹고 산사태 초기증세가 일어나면서 땅이 미끄러워 고생스럽다. 어렵게 오르다보니 배가 고프다. 어느새 밥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대충 양지바른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쪼구려 앉아서 밥을 먹으려하니 힘들다. 의자를 가져 왔어야하는데 무게를 핑계로 가져오지 않았더니 되려 더 힘들다. 다음부터는 반드시 의자를 가져와서 편히 밥을 먹어야겠다. 따스한 곳에서 밥을 먹고나니 무척 졸립다. 배낭에 기대어 잠시동안 꾸벅꾸벅 졸다가 도져히 내일까지 진행하기가 무척 힘들것같은 생각이 든다. 그냥 진행을 해? 아니면 그냥 2구간에서 끝내고 그냥 갈까? 우선은 어디 가는데까지 가보자...

고남산 - 매요리

다시 시작하려는데 발걸음이 무척 무겁다. 너무 힘들다. 힘들고 외롭고 갈증이 자꾸 난다. 30여분을 걷다가 다시 쉬었다. 갈증 때문에 가져온 캔 포도를 따서 먹고 또 30여분 가량 쉰다. 도저히 안되겠다. 아무래도 오늘 그냥 서울로 올라가는 편이 내게 나을듯하다. 내일까지 진행했다가는 탈진할 것 같다. 지도를 펴고 하산코스를 잡아보니 매요리나 사치재에서 이번 산행을 마감 해야할 것 같다. 그러자면 고남산을 지나고도 30여분을 가야한다. 갈증탓에 계속 물을 마시다보니 식수도 떨어졌다. 아직까지 식수대용으로 대신할수 있는 과일캔이 두 개 남아있긴하지만 믿을수가 없다. 무슨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거니까... 끄적 끄적 오르다 보니 고남산인가 보다. 눈에 뵈는게 없다. 어서 빨리 매요리까지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각의 폭도 생각의 폭도 좁아져버린다. 고남산 정상을 지나는데 갑자기 3m정도의 암이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바위에 붙었는데 아뿔사! 올라갈수가 없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몸의 중심이 뒤로 쏠려 도져히 올라갈수가 없다. 내려가려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꽤, 아니 아주 많이 가파르다. 여기서 구르면 크게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있었다면 거침없이 올라갈 수 있는 릿지 코스인데 베낭 때문에 바위에 붙어 곧 떨어지려하는 거북이 꼴이다. 공포가 엄습해오고 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계속 붙어있을수도 없고 조심스래 나의 짧은 발을 아래쪽을 향해 휘적휘적 젖다보니 걸리는게 있다. 조심조심 아주 겨우 무사히 내려올수 있었다. 우회길을 찾아보니 있다. 분명히 눈에 띄는 곳에 있었는데 조급한 마음에 한치 앞을 못본 것이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암이긴 하지만 친절하게 누군가 자일을 걸어놨다. 그 자일을 잡고 오르는데 양편이 다 절벽이다. 아찔하다. 이런곳을 내가 맨몸으로 오르려했다니... 오르고 나니 또 커다란 바위가 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너무 무섭다. 방금전에 느꼈던 공포감으로 인해 무섬증이 배를 더해간다. 이번에도 자일이 걸려있어 그 바위를 넘어갈수 있었다. 조금 걷다보니 중계탑이 보인다. 그냥 조그만 중계탑인줄 알았는데 사람이 상주하고 있을만할 정도로 크다. 저기서 물을 보충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중요한 중계탑인 모양인지 한국통신 소유인데도 방어진지가 구축되어있다. 철조망도 쳐진게 무슨 부대같은 느낌이 든다. 중계탑을 우회해서 가려는데 땅이 질퍽거려 굉장히 미끄럽다. 이번 산행은 녹은 땅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스틱에 의지하며 겨우 내려가 중계탑을 들여다보니 수돗가가 보인다. 역시 물을 구할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문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문은 굳게 닫혀있을 뿐이다. 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리니 방송이 나오는데 상주자는 주말이라 퇴근했고 지금 전주에서 이곳을 무선으로 통제하고 있어 들여보내 줄 수가 없단다. 실망감, 주저앉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목이 이토록 마른데 수도가 코 앞에 있는데 물을 마실수가 없다니... 담을 넘어볼 생각을 했는데 원형 철조망이 촘촘하게 쳐 있어서 도져히 들어갈수가 없다. 어쩔수 없이 더 지치기 전에 매요리로 가야겠다. 무거운 발을 애써 끌면서 산행을 다시 한다. 아직도 갈길이 까마득하다. 중계탑으로 통하는 소로가 있긴하나 이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도면상 물을 구할수 있는 곳이 없다. 산도 깊은지라 잘못하면 길을 잃을듯하여 그냥 대간길로 진행하기로 했다. 통안재를 지나니 묘가 나온다. 묘를 지나면서 인사를 드리고 간절히 말한다. 제발 물이 있는곳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빌어본다. 멀리 사원같은게 보이는데 길이 안보인다. 좀더 진행하니 4륜구동차가 겨우 들어올만한 길이 들어온다. 어떤 사교 집단의 모임터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나긴 하지만 길을 따라 쫓아가봤다. 그만큼 나의 갈증은 너무도 심했다. 300여미터를 가다보니 물냄새가 난다. 가까운곳에 물이 있단 생각에 거의 뛰다시피한다. 예상대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인사드린 묘 주인께서 나를 어여삐 보셨나보다. 흠칫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 생각할 여유도 없다. 물을 받아서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수통에 물을 채우고 나니 배가 부르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다. 그래도 힘이 난다. 다시 베낭을 내려놓은 자리로 돌아가 묘가 있던곳에 인사를 하고 다시 진행한다. 물에 힘을 얻어 부지런히 산행을 한다. 어서 집에 가고싶다. 나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지쳐있다. 유치재를 지나고 있으니 멀리 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린다. 으와 드디어 마을이 가까워 오는구나.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진다. 갑자기 눈 앞이 환해진다. 마을이다. 본능적으로 길을 따라간다. 쉼터가 있을만한 곳으로 나의 본능은 거의 오차가 없었다. 폐교된 운성초등학교가 나오고 그옆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다.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콜라를 먹을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아니, 할머니는 내게 어떻게서든 뭐라도 팔아볼 요양인지 자꾸만 다른것들을 권한다. 쵸코파이까지.. 내가 휴가나온 이등병인가? 17:30분에 남원행 버스가 온다고 했는데 도무지 올 생각을 않는다. 이 할머니가 거짓말한건가? 뒤를 돌아보니 가게문을 닫아버렸다. 오늘은 팔만큼 판모양이다. 하긴 이 조그만 마을에서 뭐 남는게 있겠어?하는 생각이 든다. 폐교가 된 운성초등학교는 마을의 잡동사니가 다 모여있다. 아직까지 학생들의 교보재들이 잔뜩 쌓여있는게 지금이라도 당장 얘들을 교육할 수 있을듯하다. 서울은 좁고 좁은 운동장에 작은 교실에서 콩나물 시루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거기도 모자라 흙을 만져볼 기회도 못같는 불쌍한 아이들인데...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엔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뭐라고 꼬집어 말할수 없는 내가 답답하기만 하다.

매요리 - 남원역

기다리기가 답답해서 천천히 이동을 해보니 장수군과 남원의 경계가 나오고 사치재로 나오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내게 무리다. 더 이동하고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나중을 기약하는게 내겐 더 좋을듯 하다. 남원의 명물이라 할수 있는 제기를 만드는 공장이 있어 기웃거려보다가 버스가 언제 오냐 하니 18:30분이랜다. 우띠! 할머니께서 착각하신 모양이다. 아님 가게에서 별로 팔아주지 않으니까 쫓아낸걸까? 설마 그런건 아니겠지? 절대로 아닐거다. 시골 인심이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는곳은 아니니까... 그래도 시간은 흘러 잠시 있다보니 버스가 온다. 역시 시골은 참 좋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내가 짐을 내려놓을때가지 움직이질 않는다. 그 작은 맘 씀씀이가 너무 고맙다. 담번에 오기위해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또다시 버스를 멈춰서서 시간을 확인해보고 말씀해주신다. 일본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불친절하다 했는데 오히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불친절한 것 같다. 10여분 지나다보니 눈에 익은곳이 눈에 띈다. 여원재다. 내가 반나절이 넘는 시간을 10여분만에 오니 김이 확 빠진다.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버스는 10분이라니... 다음번엔 절대 지치지 않도록 평상시 운동을 많이 해두리라. 운봉이란 마을을 지나는데 제법 마을이 번화하다. 운봉읍내란다. 남원시가 가까워서인지 읍단위 치고 상당히 외소하다. 피곤한 마음에 잠이 들어 자올자올하고 있는데 운저사 아저씨가 나를 깨운다. 다음에 남원역이니까 내리란다. 그 기사아저씨는 끝까지 낱선 이에게의 친절을 잊지 않았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남원역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나니 배가 고프다. 서울에 도착하면 12시경이 될듯하다. 택도 없는 택시비가 들긴 하겠지만 어서 집에 가고 싶을뿐이다. 우선은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아 남원역 근처를 둘러보니 중국집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중국집으로 이동해서 정말로 간만에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다. 짜장면을 후다닥 먹고 나니 어느새 기차시간이다. 기차를 타자마자 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대간 2구간은 피곤으로 시작해 피곤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산행 이후

무척이나 힘든 산행이었다. 나중에 들은건데 순택 형도 백두대간 구간중 두 번째로 힘든 구간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리 힘든 곳이 아닌 것 같았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이 힘들게 한건 아니었는지... 모든 번뇌는 내 자신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어쩌면 내게도 그런건 아니었는지...
아무튼 너무 과다하게 계획을 실행하려 한 내 자신이 문제였다. 평상시 몸 상태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오만함이 부른 화였다. 그래도 다친 것 없이 무사히 이렇게 돌아와서 산행기를 쓸수 있음에 난 행복하다. 나는 할수 있다. 분명히 해낼것이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