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홀로 걷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제까지 나의 백두대간
홀로 걷기를 뒤돌아봅니다.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이화령까지
왔으니 거의 절반은 온 셈입니다. 한번 답사에 나설 때마다 후회와
후회를 거듭하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감사와 보람으로 가득합니다.

생업이었던 식당(아내-주방, 나-접대, 배달)을 그만두고 나니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느낌이었습니다. 80년 말 군에서 제대한 이후 가장
(아내, 딸, 아들 둘, 어머님)으로 IMF시에는 신용불량자로 낙인까지
찍히며 생활이 아닌 생존을 이어온 지난 삶들이 진실로 꿈만 같습니다.

때맞추어 지난 가을 제대한 막내마저 기능공일망정 국내 최고의 S전자에
입사를 하고나니 훨훨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작년 8월에 큰아들이 대출을
받아 구입한 지하 빌라 집도 있어 주말이면 애들이 찾아듭니다. 통장에
잔고는 없으나 시달림도 없고 닦달도 없으니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일을 하여야하나 당장은 아니었습니다. 이제까지는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만 52년 만에 찾아온 이 작은 시간적 여유를 좀 더 누리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나는 오랜 시간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였던 백두대간
홀로 걷기에 나선 것입니다. 준비라면 이유 없이 갈망하였던 마음뿐입니다.

다시는 나의 생에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절박감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뒤돌아보면 어처구니없습니다. 한 달에 하루 시의원인 친구의 조직관리
차원에서 운영하는 동네 산악회를 맡아 셋째 주 목요일에 등산을 한 것이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산은 어려서부터 좋아하였습니다.

6월 7월 2개월 안에 백두대간 걷기를 마치겠다고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이 것 저 것 준비하여 세밀한 계획도 없이 어찌되겠지 하며 텐트, 깔판
식량, 우의, 옷, 즉석 국거리, 버너, 코펠, 지도(1:120,000 교통지도 복사)등
나름대로 준비한 것들을 배낭에 넣으니 22kg이나 무게가 나갔습니다.

집을 나설 때부터 걱정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그렇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꼭 끝까지
걸어야겠다는 열망이 나를 집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진주로
진주에서 중산리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까지 근심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5월31일 오후 천왕봉 아래 로타리 대피소까지 정말로 낑낑대고 올랐습니다.
밤새 대피소에서도 걱정으로 잠을 설쳤습니다. 결국 새벽 4시에 대피소를
나서며 그 중 무게가 가장 나가는 텐트 일습을 몰래 마당가 벤치 밑에
버리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동대문 바닥을 헤매며 어렵게 구한 2인용입니다.

노고단 대피소에 밤 10시 도착하였을 때 나의 배낭은 더욱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오는 도중에 쌀이며 기타 여러 가지를 들렸던 대피소에 두고
왔기 때문입니다. 노고단 대피소를 출발하며 이틀째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보다 한결 가벼웠지만 그래도 짊어진 배낭이 무겁다 느껴졌습니다.

노치 샘 앞 구멍가게에서 시원한 음료를 병째 들이키며 앞으로의 답사에
자신이 없어 결국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려웠지만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하여
위로를 삼았습니다. 진부령까지 한 번에 갈 생각은 아니 하였지만 단 이틀
만에 돌아서는 마음은 참담하였지만 포기하고픈 마음은 절대 없었습니다.

주중 3-4일간 답사를 하고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버스가 다니는
고개에서 고개까지 구간을 잡았습니다. 하루 20km에서 30km를 답사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5시에 출발하여 하루 8-10시간 걸어 15시까지 답사를
끝내면 버스를 이용하여 출발지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잠은 불가피하면 차에서 자고 찜질방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2차 기간
첫날인 6월6일 저녁을 운봉 읍내 바래봉 주차장에서 해결하고 잠은 남원
시내 5,000원짜리 찜질방에서 해결하였습니다. 새벽 운봉으로 차를 이동하여
공터에 주차시키고 택시를 이용 노치 샘으로 가서 답사 길에 나섰습니다.

복성이재에 도착하여 버스 종점인 흥부마을까지 30여분 걸어야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지나가는 차를 향하여 손을 들었습니다. 몇 대만에 어린아이 둘을
태운 부부가 뒷좌석에 태워주어 버스를 이용하여 운봉까지 복귀하였습니다.
함양에서 목욕은 하였으나 찜질방 잠을 포기하고 육십령으로 갔습니다.

어수선하여 잠을 자기도 어렵거니와 쓸데없이 견물생심으로 돈을 쓰니
이때부터 잠은 오직 자가용인 카렌스를 경유로만 사용하게 새로 나온
엑스트랙에서만 자고 있습니다. 육십령에서 남북으로 복성이재와 삿갓재를
답사한 것은 버스 편이 많기에 복귀에 돈과 시간을 아끼려는 방안이었다.

추풍령 이후는 양방향이 아닌 출발지 원점복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종착지 교통 사정이 좋지 않으니 결국은 마찬가지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성이재에서 육십령으로 복귀하며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다시 택시를
한 번 더 이용하였으나 그 이후 지금까지 택시를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꿈꾸는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이렇게 할 것입니다.


1. 스스로의 체력을 점검한다.

일단 1박2일 예정으로 지리산 구간 천왕봉-노고단 대피소, 노고단 대피소
-여원재 구간을 답사하라. 최소한 하루 일정으로 천왕봉 노고단 구간을
완주하여 자신의 체력을 점검하고 자신감으로 정신무장을 시킬 수 있다.
나 스스로 무거운 배낭을 지고 생전 처음으로 장거리를 장시간에 걸쳐
산행을 하였지만 종주 후 스스로에 대하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2.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 한다.

최소한 한 구간 거리를 15km로 예정하면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보통 8시간
이상 산행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느꼈던 배낭의 무게가 점점 무쇠
덩어리로 느껴지게 된다.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 완주의 첩경이다.
나의 배낭에는 비상 옷 한 벌 한 봉지에 1,500원하는 10개들이 꿀 호떡
빵과 800원하는 옥수수 통조림 하나 900ml 수통 두 개 500ml 식수에 미숫가루
탄 것 하나 우의 한 벌이 전부이다. 점심은 간식 개념으로 하고 아침은
어떠한 경우에도 많던 적던 꼭 먹었다. 때론 참외 하나와 찹쌀떡도 있다.

3. 식수는 집에서 준비한다.

산행을 마치고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시원한 음료다. 저녁을 먹을 시 시원한
식수는 필수불가결이다. 나는 야외에 놀러갈 시 시용하는 겉모양이 산뜻한
아이스박스를 차에 가지고 가는데 2L용량 식수 6개 500ml 용량 식수 6개를
집의 냉장고를 이용하여 꽁꽁 얼려 가지고 간다. 한쪽엔 김치 등을 담으면
3-4일 시원한 식수를 먹을 수 있다. 조수석 뒤에 놓으면 베개로도 딱 이다.
출발 할 시 수통 두 개에 물병 하나면 아주 시원한 음료로 답사를 마친다.

4. 오전에 산행을 마친다.

하절기이므로 평균 5시 정도이면 주위를 판별 할 수 있다. 대간 길은 일반
등산객이 다니지 않으므로 이슬로 옷이 젖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루 20km를 목표로 할 때 시간당 2.5~3km를 산정하면 12시 전후이면
마칠 수 있다. 차를 가지고 다니며 나처럼 일주일에 4일 정도를 산행 한다
하면 출발지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녁 6시를 전후하여
막차의 운행이 끝난다. 만약을 위하여 충분한 복귀시간을 가져야 한다.

5. 끝까지 손을 든다.

대개의 경우 지나가는 차를 향하여 2~3번 손을 들어 태워주기를 요구하다가
차들이 그냥 지나가면 포기를 한다. 나의 경우 최대 8대가 그냥 지나갔다.
때로는 차를 정지시키고 태울 수 없는 사정을 오히려 사정할 때도 있었다.
2차 6월7일 이후 처음 딱 두 번 택시를 이용하였을 뿐 거의 얻어 탔다.
일단은 복귀하는 지리를 잘 익혀야 하고 번잡한 읍내나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걸어야 한다. 앉아서 기다린 적이 없다. 끝내는 걸어서
목적지까지 간 다는 마음으로 걷다가 차 소리가 나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든다. 대형 화물이나 트럭은 태워주지 않아 탄 적이 없다. 곁에 여자를
태운 차량도 잘 태워주지 않는다. 1톤 화물 짐칸은 한번 탔다.

6. 밥은 하루에 한번 한다.

아직 저녁 시간을 쫓겨본 적이 없다. 보통 4시 전후면 출발지에 복귀하곤
하였다. 잠자리에 들 시간 10시 전후까지 시간이 남아돈다. 아침에 먹을
량까지 충분히 하여도 쉬거나 하는 염려는 없었다. 밤3시 4시에 모닝콜로
일어나면 즉석식 국을 끓여 밥을 말아 간단하나마 늘 아침을 먹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할 준비를 한다. 배낭 속 물건을 챙기고 표식까지 만든다.
이 시간에 휴대 전화의 전지를 차량용 충전기를 이용하여 충전하기 위하여
라디오를 늘 켜 두었다. 백두대간의 완주를 위하여 꼭 필요한 전화가 아니면
통화를 자제하였다. 홀로 가는 백두대간에 휴대전화는 식수 이상 중요하다.

7. 지팡이는 필수품이다.

백두대간 답사를 하며 처음으로 지팡이를 한쪽만 사용하였는데 나중에는
두 개를 사용하게 되었다. 첫날은 익숙하지 않았으나 산행 속도를 빠르게
하여 전체적으로 시간을 절약하고 내리막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지팡이를 든 오른쪽 바지는 이슬에 많이 젖지 않으나 사용 않는 왼쪽
바지는 금방 펑 젖어든다. 지팡이의 유용성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8. 표식은 자랑이나 과시가 아니다.

지리산 구간은 워낙 일반 등산객이 많아서인지 백두대간 지킴이들의 표식이
적었다. 혹 내가 인식하지 않은 줄도 모른다. 노치마을 경노당 앞마당에
있는 나무에 수많은 표식이 걸려있다. 나도 처음으로 이때부터 하루에
3-5개 표식을 매달았다. 우두령 아래 마산 마을에서 대간 길에 접어들 때
길을 잃었었다. 대간 표식을 발견하곤 얼마나 반가운지 그 표식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제 장성봉 정상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표식의 전화로
새벽 5시에 나산적님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다. 표식은 이정표이며 등대다.
백두대간 지킴이에게 표식은 희망의 등불이라 생각하며 많이 달길 원한다.
내가 관여하는 동네 산악회도 리본을 사용하지 않아 처음 구입에 애를
먹었다. 우연히 꽃가게 하는 여자 동창 네 집에 들리게 되어 한 둘레를
구했다. 적당히 잘라 유성매직으로 쓰며 출발 전날 일자를 써서 휴대한다.
표식에 일자를 쓴 것이 희귀한데 자신과 뒷사람을 위하여 나는 꼭 쓴다.

9.10m 이내에 표식이 없으면 대간이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올 시 내리막길에서 10m이내에 표식이 없으면 길을 잘못
든 것이다. 특히 정상 표석 뒷길을 조심해야 한다. 추풍령 직전 가성산이나
장성봉의 정상 표석 뒷길은 길이 아니다. 속리산 구간내의 등산로 아님이나
폐쇄는 대간 길이다. 표식도 반드시 백두대간이라고 쓴 표식을 구분해야
한다. 속리산 대야산 악휘봉 등은 일반 표식이 많다. 낭패를 볼 수 있다.

10. 지도가 없어도 된다.

처음에는 1;120,000 교통지도 두 번째는 새로나온 1;50,000 교통지도를
구입하여 백두대간 구간의 등고선을 대충 찾아 형광펜으로 그리고 복사를
하여 사용하였다. 아니 휴대하였을 뿐이다. 실제로 조금만 연구한 사람이면
지도가 없어도 가능하단 생각이다. 그만큼 길이 나있고 표식이 걸렸으며
표식이 중요하다. C신문사 발행의 실전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구입하였다.
1:50,000 지도가 부록으로 있으며 구간마다 이용할 버스와 터미널의 전화
번호 택시의 이용 시 개인택시를 포함한 휴대 전화가 자세히 적혀있다.

앞으로 더 얼마나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나 지금까지의 정신으로 초지일관
나아간다면 끝내 완주 하리라 다짐을 합니다.

나는 단지 걸어갈 뿐인데 백두대간은 상상치 못한 조국 산천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저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길에 홀로 접어들며 무서움을 느낀 적 없으며 홀로 걸으며 외로운
적이 없었으며 땀을 흘리며 힘겨워 하면서도 후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답사를 마칠 때마다 비록 혼자만의 희열일망정 보람으로 가득하고
찾아갈 백두대간이 부르는 듯 새로운 각오와 힘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밤티재에서 늘재 3.3km구간을 6월30일 답사하였다.
청화산 아래에 인근 마을사람들이 부르는 작은 청화산이 있고 그 근처에
삼파수라 불리는 샘물이 있고 마을 이름도 삼파수라 불리는 곳이 있다.
속리산 구간이 한강 금강 낙동강을 발원하는 삼파수라 하여 유심히 보았다.

혹 3.3km 구간에 있는 무명의 696.2m 봉우리가 그러한 삼파수를 이룬
산이 아닌가 하여 답사를 마치고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늘재에는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계 표지가 서 있었으나 밤티재는 공사로 인하여
표지판을 볼 수 없었다. 천황봉 정상이 삼파수를 이룬 지점이 아닌가 한다.

비재에서 형제봉을 거쳐 천황봉에 이르는 능선의 왼쪽은 계곡 아래 삼가
저수지에 모여 있다가 대청호를 거쳐 금강이 되어 흐르고 오른쪽은 상주의
북천이 되어 낙동강에 합류하는 것 같다. 천황봉을 지나 왼쪽의 수계는
한강을 이루는 발원이며 우측 낙동강 수계로 천황봉이 삼파를 이룬 것 같다.

이제부터는 한강과 낙동강 수계로 백두대간을 가야한다. 새로움의 시작이다.
오늘은 늦게 도착하였다는 핑계로 짧은 구간을 이어서 답사하였다.

*추가
1.귀경은 가능하다면 일요일보다 토요일을 택하라.
2.지도는 1:100,000만 지도가 낫다.
지역에서 1:50,000지도는 범위가 작아 주변지리를 살피는데 불편합니다.
즉,답사한 지역이 50,000지도 한장 범위를 넘으니 주변 지역을 살펴
버스 노선등을 알려고 할때 매우 혼란스럽습니다.1:100,000지도가 필수입니다.

▣ 헐렁이 - 자세하고 솔직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 김찬영 - 어려운 고행길을 벌써 반도 더했네요 . 처음마음 변함없이 끝까지 이루기를 바랍니다..늘 안산하시기를....
▣ 김정길 - 박경훈님의 은행정이란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홀로 자가용을 이용한 백두대간 산행이 무척 불편한데, 홀로 자가용 이용할 대간꾼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간의 나머지 구간 무탈하게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 토박이 - 똑같은입장 님의글구구절절 산행의지침서 계속올려주세요.완주하시기를 믿습니다. 화이팅!
▣ 김정목 - 존경합니다,님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심에 평생의 보람으로 간직되실거라 확신 합니다,저역시 님의 종주길 무탈하시고 화이팅!!!회이팅 입니다....
▣ 은행정박경훈 - 은행정은 저의 고향으로 옛날 김포군 양동면 신정리 은행정 마을입니다. 현 지하철 5호선 신정역의 이명입니다. 지하철 역이 있는 신정 4동 지역이 저의 고향 옛 은행정 마을입니다.
▣ 수리산 -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이리 고마 울 수가..늘 건강하시고 안전한 종주 부탁합니다.
▣ 알부남 - 백두대간 종주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 양창순 - 또박또박 새기며 잘 읽었습니다. 하나의 교범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언제나 안전 산행하시어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 길문주 - 매일같이 올라오는 대간 산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각자가 대간을 걷는대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처음 세우신 종주의 목표를 달성하시길 바라며... 의미깊은 52년만의 알찬 휴가를 보내고 계시는 님을 멀리서 나마 성원합니다. 건강하게 무탈산행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 미시령 - 처음에는 '오늘은 별 얘기를 다 쓰시네' 생각하면서도 죽 읽어가면서 박경훈님의 얘기속으로 깊이 빠져드는군요... 언젠가 단 몇 구간이라도 님처럼 해보고 싶습니다. 좀 복사해 놓아야겠네요... 불순한 일기에 건강 조심하시고, 부디 탈없이 완주하시길 기원합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