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라 묵상하라 끊임없이 묵상하라

2014년 9월 25일

 

지기재  경북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N36 21'54.13"  E127 59'7.49"
화령재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N36 26'44.68"  E127 58'17.87"

​꼭두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 마누라 잠 설치게 해놓고 아름다운 고행길을 나선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 광역버스 첫차로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6시10분 부산행 ITX-새마을호를 타고 8시 53분에 김천역에 내렸다. 대합실 매점에서 자그마한 목캔디를 한통 샀다. 택시들이 승강장에 줄지어 대기중이다. 맨 앞차를 잡아 타고 지기개를 가자하니 기사가 백두대간이죠 하고 묻는다. 올해 67세인 이 개인택시 기사분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호남정맥등 5개 정맥도 종주를 마쳤다고 한다. 부인과 함께. 산행이력은 18년.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산행이 뜸하다고 한다. 무릎 관절에서 물을 빼내는 레이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기사분은 운전중 산행동호인의 전화를 받는데 그 동호인이 이번 주말 함께 정맥을 타자고 제안을 하는 모양이다.

나도 장거리 산행을 처음 시작할 무렵 청계산 8-10시간 당일 종주를 마칠 즈음에 절뚝절뚝 기다시피 하며 하산 했던 기억이 난다. 하산산행길에서 잠시 마주친 어느 젊은이가 이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퇴행성 관절염 초기 증상 같으니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으라고 권했다. 다행히 관절염 증세는 아직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이후 나만의 주법을 고수해 오고 있다. 길표 외스틱을 버리고 브랜드 쌍스틱을 장만했다. 배낭무게를 과학적으로 분산시키는 고급 배낭으로 바꿨다. 제일 원칙은 만만디(천천히 중국말) 주행이다. 장거리 산행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자주 받지만 선뜻 받아들이 못하는 이유다. 무리지어 산행을 할 경우 특히 하산길에서는 서로 경쟁하듯 졸라 빠르게 내려들 간다. 다람쥐처럼 내리막을 닫는다. 앞사람 쫓아 내려가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목이 접질러지기도 한다. 천천히 내려가자니 먼저 내려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 같고. 뭘 그럴리가 하겠지만 개중에는 늦게 내려온다고 핀잔을 주거나 구시렁대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홀로 산행이다.

백두대간을 완주한 현지인인 기사분이 지기재 위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건네준 등산지도를 보고도 감이 안잡히는지 가는 중에 차를 세우고 네번을 물어본다. 내가 다 미안하네. 나같은 나홀로 대간꾼들의 택시 이용이 미미한 모양이다.

 

 





 

지기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정류장 지점이 바로 지기재 의 들머리 날머리 지점이다. 포장 임도로 들어서서 잠시 걸으니 언덕 수풀 소로가 종주리본을 메달고 대간꾼을 맞이 한다. 나무 이정표를 바라보고 주위 산천경계를 둘러보고 있는데 포도비닐 하우스를 손보고 있던 농부가 말을 걸어온다. 나도 한 마디 건넸다. 외지인들이 농장옆으로 지나쳐서 많이 성가시죠 하자. "어데요" 한다. 지방 사투리는 참 거시하다. "거시기"라는 말은 호남 사투리다. 거시기가 거시기해서 거시기하다. 호남출신인 나도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 농부가 한 말 "어데요"도 외지인이 즉각 감잡기는 어려울 듯. 황금들녁이 이어가고 있다.

 
이 구간 지기재부터 화령재까지 구간도 흙길 완만한 안부 능선 길이 잔물결 치듯 펼쳐진다. 어제 이 지역에는 많은 비가 왔다. 등로에는 밤 도토리가 방금 떨어졌다고 말하려는 듯 반짝 윤기를 내고 있다.

등로 옆에 물기를 머금고 서있는 잡목 가지 잎사귀들이 마루금을 지나가는 대간꾼의 얼굴을 어루 만진다. 등산화 발등에 빗물이 적셔진다. 대간꾼은 쌍스틱을 쥔 손을 눈높이로 들고 이들과 하이파이브하듯 숲터널을 뚫고 지나간다.

동네 아낙네들이 숲속에서 밤 도토리를 줍고 있다. 젊은 부부가 간소복 차림으로 산책하듯 안부 능선 길을 걸어 오면서 인사를 건넨다. 


 

 




 

대한민국 대간 종주꾼들의 종주리본들이 다 모여 있는 듯 함께 도열을 하여 지나가는 대간꾼들에게 사열을 하고 있다. 이들 종주리본들은 대간길 등대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화도 밤새 비를 맞고 생기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등로에는 도토리가 대간길에 의전용 카펫트 처럼 떨어져 깔려 있다. 꽃잎 사뿐히 즈려밟고 가듯 대간꾼은 뽀도독 소리나지 않게 등로에 깔린 도토리들을 즈려밟고 걸어간다. 어린 주목 나무가 심어져 있다. 살아천년 죽어 천년 이라 했는데 이 어린 주목이 언제 커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려나. 그런데 잡목 숲더미 속에서 뭇 수종들의 시샘을 받는다면 주목의 기품을 살리며 제대로 자라기나 할까. 의연하게 크거라.

  

 

 능선 아래 숲사이로 별장이 보이고 귀에 익은 팝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You're Sixteen 곡이다. 산중이라 그런지 다소 이채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팝음악 대신 단소 소리가 들렸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농부의 별장은 아닌듯. 저 별장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기거를 하는가. 도를 닦는가. 명상을 하는가.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한 시간을 갖는 것일까. 경기도 깊은 오지벽지에 손바닥만한 땅이 한필지 있는데 이 곳에 움박을 짓고 들어앉아 면벽 묵상 정진하다 죽었으면 한다. 

 

 

신의터재에 내려섰다. 정자에 앉아 숨을 돌리며 오이를 으깨어 씹었다. 오이크기가 어른 팔뚝만해서 한번에 헤치우기가 영 벅차다. 아래 대간길 다녀 와서 아내에게 산중에서는 과일보다는 오이가 더 나은 것 같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신경을 써서 챙겨주었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마눌님은 언제 대간종주 함께 하자고 할란가 안 할란가 모르겠다. 대간 길을 가다보면 많은 지역 영웅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나라가 막지 못한 적병들을 지역민들과 함께 막아내고  야수같은 적병들을 도륙을 하듯 무찌르다 장렬하게 생을 바친 지역 영웅들.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조상들이다. 이곳도 지역 영웅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객소리를 좀 하련다. 살아있는 똥기계 역할하듯 국민의 혈세나 빨아먹는 여의도 정치꾼들, 여고생 앞에서 변태짓하는 고위공직자들, 거지마냥 국민들에게 표구걸하여 당선되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새빨간 거짓말쟁이 노릇하는 권력자들, 국민혈세로 군장성 만들어 놓았더니 여군장교 엉덩이나 탐하는 쓰레기 군인들, 소위 힘있고 잘난 자들이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이 아니다. 시골 벽지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 도시 뒷골목에서 폐휴지를 줍고 있는 우리의 부모세대들, 새벽부터 한밤 자정이 될 때까지 열심히 물건을 나르는 택배기사들, 밥먹을 시간 조차 부족한 노선버스기사들 바로 이들의 힘에 의해 이나라 이민족이 지탱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청문회장에 검증 받으러 나온자들이 가끔 자기의 지나온 소회를 언급한다. 젊음을 받쳐 국가에 헌신봉사 해왔단다. 개뿔 지랄 같은 소리 닥쳐라. 온갖 혜택을 다 받아온 귀족주제에 헌신봉사라. 그 입 다물라. 우리민족은 세습문화를 숭상해 왔다. 부의 세습. 권력의 세습. 재벌의 세습. 종교직의 세습. 권위의 세습. 가문의 세습. 끼리끼리 세습.  이 세습의 고리를 끊어버려야 새역사가 움트리라.

 







 

신의터재 차도를 건너 다시 대간 마루금 숲길로 뛰어들었다. 완만한 부드러운 흙길 능선이 이어진다. 등로에는 산유화 알갱이 모양 처럼 미끈한 타원형을 한 하수리 수종의 도토리가 널려있다. 식물 군락지 표지판이 군데 군데 설치 되어 있다. 철제 송전탑이 눈에 들어 온다. 장년 두 사람이 도토리와 밤을 줍다가 가까이 다가 서자 "등산 다녀오는교" 하고 인사를 한다. "아니요 지금 등산을 하는 중인데요." 나보고 밤나무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본다. 거참 현지인이 초행길 외지인에게 밤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참 거시기 하네. 숲을 잠시 벗어나자 전망이 탁 트인 평지가 나타나고 길가에 감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한 나무 가지에는 단감이 탐스럽게 열려 있다. 요걸 따서 배낭에 담아 말어. 후행자들도 많이 구경하기를 희망하며 그냥 지나쳤다.

 

 

오후 1시가 다 되어 간다. 이정표 표지판 주변은 잡풀이 없고 지면도 평평하다.  점심상을 펼쳤다. 보온밥통 국물텀블러통 커피텀블러통.  다들 보온 기능을 갖춘 통이건만 새벽 4시에 담아 8시간정도 지나다보니 온기만 약간 있을 뿐이다. 유독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여 무거운 보온통들을 사용하건만 신통치 않다. 소형 버너 갖고 다니고 싶지만 엄금사항이니 그럴수도 없고. 보온 유지기능을 더 늘린 산행기기들이 발전되기를.

 

식사를 마치고 호젓한 능선길을 헤염치듯 걸어간다. 음악 듣기를 좋아하지만 산행중에는 산중식구들의 속삭임을 외면하는 꼴이 되기에 거의 안듣는다. 헤드폰 없이 폰 자체 스피커로 내장되어 있는 MP3  한곡을 들으며 걸었다. 곡명 금잔디의 "내나이가 어때서" 리피트 하여 몇번을 들었다. 뽕짝 노래에는 우리의 한(恨)이 배여있다. 젊은 학창 시절 음악감상실에 온종일 틀어박혀 외국 음악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은 음악을 대할때도 편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음악 장르를 불문하고 두루두루 들을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뽕짝노래가 더 귀에 닿는다. 가사를 더 음미하는 것 같다. 그래 "내나이가 어때서"


대부분 산 정상은 오르막이 끝나고 시야가 탁 트여야 제맛이다. 열심히 숲터널을 헤치고 지나가는데 표지판이 있기에 자세히 보니 무지개산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울창한 숲속 등로 능선에 표지판이 서있다. 잠시후에 나타나는 윤지미산도 그렇다. 무리지어 지쳐서 정신없이 지나치다보면 놓칠 수도 있으리라.

 

 


 

 

 

윤지미산 표지판을 지나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까마득하게 내리 꽂혀있다. 흰 밧줄이 길게 이어져 내리고 있다. 화령재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섰다. 잠시 임도를 걸어 내려오니 종주리본을 매달은 숲터널 아우라가 대간꾼을 끌어 당기고 있다. 지도를 보니 화령재로 이어지는 임도와 마루금은 평행선을 그으며 나란히 가고 있다. 대간길은 숲터널 속으로 대간꾼을 안내하고 있다. 고속도로 터널 위로 가로 지르는 마루금을 지나며 처음에는 갖고 있는 등산지도에는 표시가 안되어 있기에 이 도로가 25번 도로려니 했다. 헌데 이 고속도로가 당진영덕고속도로 이다. 화서IC가 있고 얼마 못미쳐 속리산 휴게소 화서휴게소가 연해 있다. 오늘의 도착점 화령재가 다가 선다. 비탈길 숲터널 날머리를 헤치고 25번 도로변으로 내려 섰다.

 

 

 

 


 

 

화령재 표지석 앞에 섰다. 오늘 산행기록 16.2km 6시간 53분이다. 다음 들머리는 간이 화장실 왼쪽 편으로 이어지는 등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다음번 주행을 위해 화령터미널로 도착할 경우 이곳 까지 다시 와서 주행을 한다면 왕복 5-6km 1시간 남짓 합산하여야 할 듯. 샌달로 갈아신고 장비를 모두 배낭에 꾸린 후 도보로 화령터미널까지 갔다.  25번 국도 청주 보은 화서IC방향으로 걸어서 수청거리 삼거리를 직진한다. 이곳에도 나라를 지킨 지역 영웅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형교회를 지나 마을 안길 도로를 걸어 화령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화령재표지석에서 화령터미널까지 2-3km 30-40분 거리이다. 터미널 앞 분식점에서 라면 한그릇게눈 감치듯 허겁지겁 먹고 찬물을 여섯컵 정도 들이 마셨다. 배가 빵빵해 온다. 옆좌석 여고생 4명이 수다를 떨면서도 뜨거운 라면을 게걸스럽게 먹는 어떤 등산복 차림의 할아버지를 힐끔 힐끔 쳐다보는 눈치다. 젓가락을 놓으니 버스출발 1분전이다. 아따 바쁘다. 오후 5시 45분 발 보은 및 청주 경유 서울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