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5일

바로 지금 시작하라.

대간 종주를 재개한다. 오늘은 추풍령에서 큰재까지다.

기록을 보니 2014년4월19일 추풍령에서 북진을 중단 한 상태다. 아들이 군제대하기전 대간길 종주를 마치려 했었다. 그 아들이 GP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고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하였다. 중단 이유를 생각해보니 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고 게으른 탓 같다. 이제 게으름을 떨치고 매 2-3주마다 부지런히 대간길 이어나가고자 한다. 체력이 허하는 한 그리 하고자 한다.  

04:30에 집을 나서 광역버스 첫차를 타고 서울역에 05:26에 도착하였다. 06:10발 부산행 ITX-새마을호(Intercity Train eXpress-Saemaeul)는 정시에 출발하였다. 명칭이 낯선 ITX-새마을호는 지난 5월에 기존 새마을호를 퇴출시키고 새로이 단장하여 운행을 시작했다. 그간 국민들에게 친근한 명칭을 갑자기 없애기 섭섭해서 2018년까지 새마을명칭을 병기한다고 한다. 객차의 편의성은 기존 새마을객차보다 떨어진다. 그런데도 요금은 똑같다고 한다. 사실 KTX보다 기존 새마을호 열차를 더 선호하였는데 아쉽다.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면 어디 덧날 일 있나?

도대체가 우리는 이름을 너무 쉽게 바꿔버리는 습성이 있다. 도로명도 바뀌었고 자기 이름도 재판을 해서 바꿔버린다. 명칭 앞에 '신(新)', '새' 라는 접두어 붙이기를 졸라 좋아 한다. 신행정학개론, 신한국 등. 도서관에 수십년간 서가에 꽂혀있는 책명칭도 신행정학, 출판된지 얼마 안된 서점매대에 놓여있는 책이름도 신행정학이다.


몇명이 팀을 이뤄 함께 종주를 하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을 것이나 나홀로 주행으로 얻는 이점에 못미치는 것 같아 줄곳 장시간 산행은 나홀로를 고수해 오고 있다. 산행 사이트에 게재한 산행기를 읽거나 SNS상에서 산행관련 채팅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주행하자는 제의를 솔찬히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하여 오고 있다. 잘나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뜻으로 나홀로 주행을 선호하는 것 같다. 

08:51 ITX-새마을호는 정시에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김천으로 오는 도중 대전역에서 승객 대부분이 내렸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김천 역사 앞 늘어선 택시들 중 한 대를 잡아타고 추풍령표석을 향했다. 20분 정도를 달렸다. 택시기사분과 큰재에서 18:30-19:00 경 PICK-UP 하기로 약속을 하고 하차하였다.




09:18 추풍령 표석 앞에 서서 Tranggle앱으로 Track시작점을 찍었다. 날씨는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다. 한낮에는 무척 더울 듯하다. 차도를 건너 표석 맞은편에 위치한 등산안내도를 들여다보니 오늘 날머리 큰재까지는 표기가 안되어 있다. 등산지도에는 18.5km 보통걸음으로 8시간 38분 소요되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다.


포장 농로를 따라 올라가니 포도재배 비닐하우스가 나온다. 들머리를 찾으려다 비닐하우스를 한바퀴 돌았으나 안보여 할 수 없어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았다. 마당에서 일하던 여인이 포장도로따라 가면 언덕 기슭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고 알려준다. 포장도로가 차도와 농로가 투명벽으로 나뉜채 나란히 있기에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포도포장작업을 하는 여인에게 들머리 를 다시 한번 물었다. 소위 대간꾼이 갈길을 묻는다는 것이 좀 거시기해서 갈 길에 대해 웬만하면 안 물어보는 주의인데 오늘 좀 거시기했다. 초장부터 영 거시기하다. 대목싸게 백두대간 지도가 내장되어 있는 eXplorist를 수리맡겼더니 이리 불편할 줄이야. 대간길이나 산행길을 주행하다 숱한 알바를 하였기에 장만한 eXplorist 인데 하필 이때 수리를 보내 이런 상황을 겪으니 난감하다. 오늘 주행하다 알바할까 은근히 걱정이 든다. 방금 여인에게 물어본 이후 오늘 주행을 마치고 택시에 오를 때까지 대간길에서 사람을 한명도 보질 못했다. 들머리에 풀들이 무성히 자라 길이 지워져 있다. 계단도 사람 어깨 높이까지 자라서 눈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요 며칠간은 대간꾼들의 통행이 뜸했던 것 같다.


계단길 벗어나니 가파른 등로가 오랫만에 찾은 대간꾼을 반긴다. 오늘 주행에 앞서 미리 숨을 고르라는 듯 꽤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사기점 고개 4.0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조금 위쪽으로는 추락주의를 경고하는 안내판과 두꺼운 밧줄로 둘러쳐져 있다. 조금 뒤 알았지만 여기가 채석장이다. 밧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작은 암반석들이 계속되는 내리막 길이라서 몸을 움크리고 조심조심 발을 내디더야 한다.
그런데 이 방향이 대간길 맞는 건가. 오른쪽 뒤편 숲사이로 추풍령 마을이 보인다. 나침판을 확인하니 동서방향을 가르키다 동남방향을 가르킨다. 북향이어야 되는데 동남쪽이다. 아무래도 이상해 다시 몸을 돌려 되돌아 온 암반석길을 올라 이정표있는 곳 까지 다시 왔다. 혹시 밧줄이 길을 유도하는 것은 아닌지 밧줄을 잡고 두리번 거렸으나 터진 통로가 안보인다. 해서 밧줄을 넘어서니 눈앞으로 낭떠러지기가 내려보인다. 순간 아찔하였다. 채석장이다. 좋은 암석 다 파먹고 앙상한 뼈만 남겨놓은 듯 하다. 그 채석장 사장 살림살이가 많이 좋아졌을까. 그래 방금 가던길이 대간길 맞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침판은 동남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표지리본들이 눈에 띠지만 나침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인해 잠시 주춤거린 것 같다. 진득하게 가던 방향으로 주행을 계속하였다. 양옆으로 잡풀들이 우거져 두손과 쌍스틱으로 양옆 잡풀 더미를 헤치며 걸었다. 흙길 안부가 이어지고 양옆이 숲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왼 쪽 아래로 물이 가득찬 보가 보이는 데 저곳이 지도에 표시된 추풍령저수지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도를 살펴보니 지나온 시간과 등로를 가늠해보니 추풍령저수지가 맞다. 등산지도를 정치하고 보니 마루금이 남쪽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북을 향하고 있다. 나무 의자가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다.


​양지 바른 곧에 사자(死者)의 유택이 있다. 말끔하게 벌초를 한 모습이다. 대간길을 주행하면서 묘소를 많이 접한다. 개인 소유지 땅에 묘를 썼을 수도 있겠으나 사람이 접근하려면 1-2시간 넘게 걸리는 이 깊은 산중에 모신 것이 고인의 뜻일까 후손들의 뜻일까. 백두대간 정기를 받아 후손 번창하기를 빌기 위해 이곳에 유하는 것인가. 나역시 부모님을 시골 고향마을 선산에 모셨지만 도시에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1년에 고작 두세번 정도 성묘갈 뿐이니 자식된 도리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산소 앞에서 서면 우리 잘되게 보살펴 주세요 하고 빈다.

​올해는 도토리 풍년이다. 요즘 큰산에 오르면 등로에 대추들이 널려 있다. 일전에 북한산 영봉코스를 오르는 데 잠시 멈추고 등로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웠는데 금시 호주머니에 꽉차버렸다. 큰재로 가는 대간길에는 그 보다더 도토리들이 쌓여있다 시피 등로에 널려있다. 사람 귀를 놀라게 하며 우두둑하고 잎사귀에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대추 떨어지며 내는 소리들이다. 갖은 버섯들도 화려한 색상을 뽑내고 있다. 짐승들의 배변도 자주 눈에 띤다. 멧돼지 배변 같기도 하다. 사람의 손길은 아니듯한데 등로 양옆이 파헤쳐져 있는 모습들이 등로 옆으로 자주 눈에 띤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호젓 한 안부 능선 길을 독차지 하고 밥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밤잠을 설치고 새벽밥을 먹고 먼거리 이동하여 이자리까지 와서 밥상을 준비했다. 이곳이 전생에 예정되어진 곳은 아니 었을까. 고시(수)레를 한 후 맛있게 먹었다. 가끔 산중 취식할때 고시레를 잊는 경우도 있다. 장거리 산행시 도시락을 챙기는 것은 참 신경쓰는 일이다. 김밥집에서 준비할 수 도 있지만 배낭에 몇시간 넣고 주행하다 보면 뭉게져 버려고 입안에 집어 넣는 것이 도시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집에서 도시락통 국통 온수통을 직접 준비해 간다. 다 보온기능이 있는 통들이다 보니 배낭무게를 다 차지한다. 보통 배낭무게만 8kg 정도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아내는 언제 한번 대간길을 함께 동행하기를 희망하지만 좀 거시기하다. 몇해전 치악산을 가서 산 아래 기슭에서만 둘러보고 오려다 우연찮게 정상까지 올라 돌탑을 돌고 사방을 조망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하산길이 어두워져 헤드라이트을 하고 내려온 적이 있다. 그믐무렵이었던지 사방이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을 정도 칠흙같았다. 겁이 많은 아내는 내손을 힘주어 꼭 잡고 승용차 있는 곳에 다 내려설때까지 놓지를 안했다. 그때 아내의 산행 모습을 보고 내가 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치악산 오르는 길이 산행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만만치 않은가. 오죽했으면 우스게 말로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고 했겠는가. 껄껄. 치악산아 미안 하네.


식사를 마치고 숲 터널을 이룬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안부 능선길이 숲터널 밑으로 길게 이어진다. 왼쪽 아래 숲사이로 추풍령저수지가 확연히 조망된다.  넓은 안부를 통해 임도가 구비치며 이어지고 있다.  임도를 벗어나 숲길 오르막을 오른다. 고개 마루를 넘어 잠시 내려서니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는 제9131부대 전술도로라고 안내판이 말하고 있다. 포장 도로 건너편에 종주 리본이 다시 숲길 등로로 올라 서라고 손짓하고 있다. 등로로 올라서서 구릉을 넘어가리라 예상했는데 웬걸 D자형 소로다. 다시 포장도로에 내려 섰다. 선행자들이 개척한 대간길 마루금이려니 했다. 쌍스틱을 배낭에 걸치고 빈손차림으로 터벅터벅 전술도로를 걸어 내려갔다. 내려가며 혹 종주리본들이 숲속으로 안내하지 않을까해서 도로변을 좌로 우로 살피며 걸었다. 농경지도 눈에 띠지 않는바 일반인의 통행은 거의 없을 듯 하다. 도로 붕괴 위험 경고문을 세웠다. 전술도로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도로관리는 그저 그렇다. 빨리 서둘러 보수를 해야지 경고판 내거는 것이 대수냐. 군인들이 굼뜨네. 혹 제9131부대장은 유념 좀 하시기 바라는 바이다. 요즈음 군기빠진 사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그 잘난 언론들 아가리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내 군대 생활할 때는 안 그런것 같은데. 경고판 앞에서 뒤돌아 산 정상을 보니 중계탑 이 보인다. 지도에는 난함산 통신시설로 표기되어 있다. 군시설이 아니라 민간시설이라는 이야기인가.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숲이었을 듯한 구릉을 파헤쳐 밀어 제치고 평지 작업인지 택지 조성 작업인지를 하고 있다. 작업하던 블도져가 서있다. 도로변 언덕으로 종주리본이 안내를 한다. 길이 보지 않아 잠시 이리 저리 주춤거리다가 잡풀로 가려진 길을 따라 허리춤까지 자란 잡풀을 제키며 걸었다. 다시 잡목더미로 들어서니 허리를 깊이 숙여 지나야 할 정도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잡목터널을 벗어나니 농구장보다 더 넓어 보이는 양지 바른 공간에 묘 몇기가 자리하고 서있다. 다시 안부 능선길이 이어진다. 숲 능선이 지나자 하늘이 시원스레 저멀리 전방까지 조망된다. 얼추 보건데 오늘 주행 막바지인 용문산 국수봉 자락인 듯 하다. 울타리가 나타나고 배수로가 흙으로 가득차 있다. 수로가 지나갈 지형은 아닌 것 같은데 인공 배수로에 흙이 가득 메여있다.





작점고개에 다다르다. 차량 흐름이 영 한가하다. 작전고개라는 이름은 백두대간 종주팀들이 명명했다고 한다. 이 고개는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의 경계다. 충북사람들이 고개 너머 경상도 땅에 여덟 마지기 전답에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여덟마지기고개라 하는 사람도 있고, 능치마을에서는 고갯마루에 성황당이 있었다고 하여 성황데이고개라 칭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고개 쉼터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듯 정갈하게 단장되어 있고 돌 벤치 등 잠시 피곤한 엉덩이를 붙일 곳이 군데 군데 있다. 기념사진만 몇 컷 찍은 후 곧바로 용문산 방향 돌계단으로 올라섰다. 현재 지점까지 이동거리 9.5km 소요시간 4시간 28분이다. 오늘 주행해야할 거리의 반에 못미치고 있다. 부지런히 서둘러야 일몰전 큰재에 내려서겠다.  


나무 숲 안부 능선길이 이어진다. 짧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반복된다. 산을 타는 재미중 오르고 내리는 재미가 평지를 걸어가는 재미와는 또다르다. 어느 정도 장시간 걸을 경우 평지가 산지보다는 더 주행자를 지치게 하는 것같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는 경우 평지는 대개 엉덩이를 붙이고 휴식을 취하지만 산길에서는 발걸음 멈추고 배낭을 멘채로 등로에 서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 많은 산행자들은 걸으면서도 또는 긴 계단길을 오르내리는 중에서도 휴식을 취한다는데(stair rest) 가끔 경험을 해본다. 평지를 걸을때 20km정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주행을 가끔 하지만 오늘 산행에선 접의자를 다섯번씩이나 펼치고 너부러지듯 휴식을 취했다. 종주리본이 무리져 걸려 있는 나무 아래 접의자를 펴고 앉았다. 가쁜 숨 내뱉으며 앞을 보니 카페URL과 함께 무좌골산이라 인쇄된 표지가 보이길래 무심결 무좌골산이 카페 명칭인줄 알았다. 여기가 무좌골산이다. 삼각점 표지석도 보인다. 등산지도에는 표시가 안되어 있다. 





용문산가는 길은 오르막 내리막 연속이다. 오르막길을 오른 후 다시 내리막길을 만나면 아이고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지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오르막길은 숨이 차고 오르다 멈추다를 반복한다. 반면 내리막길은 스틱에 의지해 짧은 보폭으로 내려서면 무릎은 신경쓰이나 숨은 가쁘지 않기에 오르막을 더 힘들어 한다. 큰재까지 짧게 그리고 길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거의 같은 횟수로 반복이 된다. 지루한 반복이다 보니 내리막 길을 만나면 오르막길을 대비하고 내리막길을 만나면 오르막길을 대비하는 그런 주행을 이어나간다. 등로 주변에 야생화 무리가 눈에 띤다. 아마 저 야생화 이름이 며느리 밥풀때기 꽃이지. 며칠전 후배들과 북한산 주행시 눈에 띠어 한 후배가 알려줬던 야생화 바로 그 꽃이다. 꽃며느리밥풀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꽃이름과 관련한 애절한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젊은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며느리는 효성이 지극하였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늘 못마땅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시아버지의 제삿날이 되었다. 가난하더라도 제사상에는 쌀밥을 올려야겠기에 며느리는 그 동안 아껴두었던 쌀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밥이 거의 다 되어 가자 며느리는 밥이 익었나 보려고 솥뚜껑을 열어 밥알 두 개를 막 입에 넣으려 할 때였다. 밖에서 솥뚜껑 열리는 소리를 듣고 부엌으로 달려온 시어머니는 어른이 잡숫기도 전에 먼저 먹다니 하시며 몽둥이로 사정없이 며느리를 때렸다. 며느리는 그만 밥알 두개를 입에 문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 흘러 어느 여름날 빠알간 입술에 밥풀 두개를 입에 문 꽃이 며느리 무덤 위에 돋아 났다. 그꽃이 바로 꽃며느리밥풀이란 이름의 꽃이라고 한다. 등로 구릉에 무엇인가를 검은 망사천으로 덮어 놓았다.





용문산에 이르다. 헬기포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포트 전후 주행 등로가 숨이 가쁜 구간이기에 혹 슬픈 사건을 계기로 이곳에 포트가 생긴건 아닌지.



국수봉까지 2.3km 이정표가 숲사이로 버티고 서서 지쳐 지나가는 대간꾼 등에 대고 힘내라며 배웅을 한다. 등산화 발등에 물기가 맺혀있기에 햇볕나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나 했는데 아니 땀을 비오듯 턱주걱으로 흘러내려 등산화를 적시고 있다. 물통 2개를 비우고 이제 남은 물 한통도 절반으로 줄고 있고 식은 커피물이 약간 남아 있다. 오이 한개가 아직 배낭 안에 있으니 갈증해소 거리가 별로 안남은 셈이다. 3시간 정도 더 주행을 해야하는데 괜찮을까.


정글터널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긴 계단길이 이어지고 있다. 상주시에서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하는 곳에 입간판을 세웠다. 급경사주의 30도. 국수봉까지의 오르막 내리막 길의 반복 구간은 용문산 구간보다 길다. 안부능선으로 내려서니 용문산 기도원으로 내려서는 이정표가 서있다. 국수봉을 넘어설때까지 기도원방향에서 사람외침 소리가 들러온다. 온 산에다 대고 무슨 울부짐을 저리 지를까. 육성같기도 하고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다. 호젓한 안부 능선길이 이어진다. 지나온 구간에 비해 이정표가 여러번 보인다. 대간길임을 감안 대간꾼을 배려한 이정표라기보다는 현지인을 더 배려한 듯 하다. 하기사 대간꾼이 현지 이정표에 의지하기보다는 종주리본에 의해 안내를 받기에 그런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 법도 하다. 사람발길이 오래인 듯 무릎 길이의 잡풀들이 사람 발길에 밟히지 않은듯 등로를 뒤덮고 있다. 등로 식별이 덜 된다.




드디어 오늘 주행 마루금의 가장 높은 곳 고도 798m의 국수봉에 당도하였다. 사방 팔방이 조망된다. 중천에서 떨어지는 해는 일몰을 준비하고 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폭포가 눈을 따갑게 하기전 제때 제때 닦아 주어야 한다. 스마트폰이 많은 기능을 발휘하기에 옛날에 비해 종주시 휴대하는 기기가 많이 사라졌다. 지리산 종주시 소니 캠코드를 목에 걸고도 다녔다. 음악듣기 좋아해 MP3플레이어를 지니고 다녔다. 디카사진기나 특별한 경우는 큼지막한 DSLR사진기를 지닌적도 있다. 스마트폰 2-3배 크기의 GPS도 지녔다. 스마트촌 앱이 아직 전문 GPS기능 중 일부를 하고 있지만 멀지않아 아마 대체하리라 짐작된다. 동영상 촬영, 파노라마사진 촬영, Track Log기록, 필요시 녹음, 타이머셀카 등을 한 스마트폰으로 다 해결하니 대단한 IT발전이다.  



해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일몰전 무탈하게 큰재에 내려서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안터져서 문자로 기사분에게 차량 스탠바이 시간을 7시에서 7시 30분으로 늦추도록 문자를 날렸다. 캐치콜 통화불가 메세지가 뜨고 얼추 30-40분 지난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 국수봉 내리막 초입에 상주시에서 세운 급경사 간판이 서있다. 급경사 주의 30%. 30%는 기울기가 30도라는 이야기인가. 주행해 오는 중 큰재에 내려설때까지 이런 간판을 꽤 많이 보인다.





내리막길이 연속된다. 펑퍼짐한 안부능선들을 지나치며 숲사이로 논밭과 비닐 하우스 농축사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편안한 안부 능선길들이 계속 반복되어지고 있다.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해가 곧 모습을 감출 태세다. 스마트폰을 열고 등산지도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7시를 훨씬 넘겨 큰재에 다다를 것 같다.  삼각점표석들이 있지만 아무 표지가 없어 표석 지점에서 GPS를 찍어봐야 정확한 위치가 확인 될 것 같다.


해는 이미 멀리 보이는 산아래로 내려섰다. 헤드라이트를 꺼내 머리에 둘렀다. 여명이 감도는 포장 농로가 있건만 종주리본은 어두운 숲속으로 길을 안내하고 있다. 밤을 준비하는 작은 산 짐승들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듯 화살처럼 달려 숲속으로 숨어 버린다.

어두운 숲속밖으로 도로를 달리는 차량 불빛이 저 멀리 보인다. 오늘의 종착지 큰재에 내려섰다. 표지판이 소박하게 서있다.  차도 옆에 백두대간 숲생태원이 어둠속에 움크리고 앉아 있다.


생태원앞에서 백두대간 안내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택시가 언덕을 올라서 나를 발견했는지 비상등을 켜고 접근하고 있다. 사전에 생수한병 부탁했는데 기사분이 건네준다. 한번에 다마셔버렸다. 30분 정도를 달려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역전 김밥집에서 라면 한그릇 시켜 국물 한방울 안남기고 다먹었다. 물병에 찬물을 한병 채웠다. 대합실 매점에서 음료수 한캔을 사서 단숨에 드리켰다. 부산발 서울행 20:47 ITX-새마을호가 정시에 도착하였다. 열차 객실에 앉자 마자 물병을 금세 비웠다. 열차안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병 생수 두통을 사서 금세다 마셔버렸다. 서울역에 정시도착하여 광역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1시 24분이다. 오늘 집을 나서 20시간여 만에 다시 귀가 하였다. 경비는 10만원 정도 지출되었다. 전주로 며칠 출장간 아들은 지금 올라오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