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7구간(이화령→하늘재) : 밧줄 능선, 파도타기를 하다


[산행일시] 2015. 06. 13(토) 10:14~19:12(8시간 58분)
                 (산행시간 : 7시간 23분 / 휴식시간 : 1시간 35분 / 헛걸음시간 : 0시간 00분 // 대간 (접근·이탈)시간 : 0시간 00분)
[날      씨] 맑음 / 구름 많음
[산행인원] 성봉현
[지형도명] 월간 '사람과 山' 1대간 9정맥 종주지도(2009년 20주년 특별부록) 11구간, 영진5만지도(영진문화사, 2011년판)
[대간 접근] 서울(동서울)→문경(문경읍) : 시외버스 / 문경→이화령 : 택시(11,800원)
[대간 이탈] 하늘재산장→'포암' 시내버스 회차지점 : 도보 / 포암→문경(문경읍) : 시내버스 / 문경→서울(동서울) : 시외버스
[산행시간] 이화령(10:14) → 758봉(헬기장, 10:33) → 조령산(11:24~11:31) → 신선암봉(12:28~12:38) → 928봉(13:18~13:23)
                → '문경새재 제2관문 갈림길' 이정표(13:49~13:57) → 깃대봉 갈림길(14:34) → 조령 제3관문(14:52~15:29)
                → 마패봉(16:02~16:10) → 동암문(17:14~17:19) → 960봉(18:00~18:05) → 탄항산(18:35~18:38) → 하늘재(19:12)
[산행지도] 영진5만지도(영진문화사, 2011년판)

[구글 어스]

[산행기록]

이번 구간은 원래 일주일 전인 현충일날 이화령에서 출발하여 조령산과 신선암봉을 넘은 후 '문경새재 제2관문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서 이정표를 보고서도 계곡능선으로 내려간다는 느낌 때문에 제2관문 방향의 능선으로 가는 헛걸음으로 중간에 포기하였던 구간이다.
실수한 지점에서 다시 이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시하고 다시금 이화령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산행 전날 인터넷으로 문경가는 시외버스를 예매하였는데 무언지 모를 들뜬 기분으로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새벽을 맞이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 시간에 맞추어 신내동 집을 나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예매한 시외버스 출발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문경을 경유하는 안계행 시외버스가 드디어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중간중간 짧은 잠을 자다보니
어느새 연풍IC를 지나 이화령터널을 지나는가 싶더니만 문경읍에 있는 문경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 인근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앞의 택시 승차장에서 대기 중인 택시로 십여 분 만에 이화령까지 이동한다.
이화령에 도착하니 산악회에서 왔는지 몇 명의 대간꾼들이 이화정을 지나는 모습이 보인다.
산행 준비를 이미 끝낸 상태이므로 주변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은 후 하늘재까지 가야 할 발걸음을 옮긴다(10:14).


이화정 옆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출발하여 이화령산불감시초소를 지나자마자 좌측편으로 선답자의 표지기들이 나부낀다.
직진하는 길목에 보이는 쇠파이프 터널에 매달린 많은 표지기들이 이쪽으로 오라 하지만 좌측의 낙엽이 무성한 오름길로 진행한다.
초반부터 경사진 오르막길은 금새 이화령 생태이동통로로 이어진 마룻금 능선 상의 헬기장에 이른다(10:16).
지난 구간 날머리에 자리잡은 군부대가 있는 681봉과 이화령휴게소를 한 번 살펴본 다음 조령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을 시작한다.
주변 조망이 막히는 숲길로 들어서면 조금은 숨가쁘게 올려가는 산길에 또 하나의 헬기장을 지나고(10:25)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넓은 헬기장으로 조성된 758봉에서 앞쪽의 조령산을 보면서 잠시 숨을 고르라 한다(10:33).
우측 방향으로 완만히 내려가는 산길은 이화령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직진하던 우회로가 올라오는 지점과 만나는 안부에 이르는데(10:45)
이정표[↑조령산 1680m ↓이화령 1090m →이화령 1200m]와 '조령산 119 솔라표시등-01 문경소방서'라고 표시된 적색 표시등이 있다.


부드러워진 산길을 따라 헬기장을 지나면 우측편에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8066297 조령산 1지점 충북괴산소방서 119]이 나오고(10:52)
이 분여 후 좌측으로 희미한 갈림길을 만난다(10:54).
이곳에서 희미한 좌측길은 대간 산마루를 따르는 산길이며 우측의 뚜렷한 산길은 조령샘으로 우회하는 길이다.
헛걸음으로 끝난 일주일 전에는 조령샘으로 우회하는 산길로 갔지만 오늘은 좌측편 산마루를 따르는 산길로 진행한다.
낙엽으로 길의 흔적만 보이는 오르막길은 미끄럽기도 하지만 고도를 계속 올려가는 형국이라 우회길보다 힘든 비알의 마룻금은
조령샘으로 우회하던 산길이 조금은 급한 계단길로 바뀌어 오르다가 끝나는 지점과 합류된다(11:15).
즉 마룻금 산길은 이정표[↑조령산 460m ↓절골 2700m →이화령 2420m] 상의 절골 방향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이제 합류점에 먼저 도착한 이화령에서 보았던 산악회 팀의 선두와 함께 조령산까지 짧은 거리를 동행한다.
두서너 명씩 무리지어 오르는 단체팀의 정겨운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으며 뒤따르다가 넓은 길에서 추월하기를 두어 번,
그렇게 조령산에 도착하니 제일 앞선 선두였는지 서너 명의 산꾼들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11:24).
더불어 지난 번에는 못 보았던 커다란 아이스케이크 통을 누군가 지고 와 팔고 있는 것을 보니 놀랍기만 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선암봉으로 가기 전 숨을 고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늘을 가린 회색빛 구름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부봉과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마룻금의 조망을 끝내고 조령산을 떠난다(11:31).


조령산을 내려가자마자 946봉이 높아만 보이는 전망처가 나오고 산길은 좌측의 계단길로 내려간다.
조망처에서 보는 신선암봉과 마패봉 그리고 부봉은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가는 길 마저 오르내리는 형상이 심상치 않은 것이 갈 길이 멀기만 할 것 같다.
좌측의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야트막한 능선 구릉을 넘어서면 밧줄이 내려져 있는 곳이 나오는데 이제 밧줄 구간의 시작을 알린다(11:40).
짧은 내리막길은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8566419 / 조령산 10지점]과 이정표[↑신선암봉 1300m ↓조령산 380m →마당바위 2400m]가 있는
안부 사거리로 내려섰다가(11:41) 946봉으로 올라선다(11:44).
다시 내려가는 길목에는 두 번째 밧줄이 Y자 형태로 내려져 있는데 제법 길게 이어진다.
(지난 현충일날 이곳에서 모 산악회의 나이드신 여성 한 분이 미끄러져 떨어진 듯 부축해도 걷지 못할 정도의 사고가 발생하였던 곳이다.)
밧줄이 끝나면서 조금은 가파른 돌길의 내리막을 따라 또 다른 밧줄이 내려진 곳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잠시 완만한 흙길로 바뀐다(11:52).
잠시 후 이정표[↑신선암봉 920m ↓조령산 760m ←절골 2300m →마당바위 2200m]가 서 있는 안부 사거리가 나오고(11:56)
흙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조망이 트이는 약간 경사진 너른 반석바위의 887봉을 만난다(12:05).


'조령산 119 솔라표시등-04' 시설물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편에 매달린 선답자의 표지기들을 따라 좌측길로 암봉을 우회한다(12:08).
커다란 바위를 가로 지르는 밧줄을 지나면 정면으로 거대한 암봉의 신선암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연속해서 능선의 좌사면으로 진행한다.
이제 산길은 좌측으로 비탈진 바윗길로 이어지고 이어서 좌우로 낭떠러지인 바윗길을 줄을 잡고 또 한 번 더 지난다(12:20).
(적설기 산행 시에는 상당히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산길은 줄이 내려진 바윗길로 또 연결되는데 그리 경사지지 않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으며 암봉을 넘어서면 신선암봉이 바로 눈앞이다.
바위능선을 피해 우측 흙길로 이어지는 길은 커다란 바위 사이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자마자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또 한 번 더 경사진 바윗길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바윗길이고 올라서면 짧은 흙길이 나타나다가 다시 줄이 내려진 3미터 높이 정도의 바위가 길을 막는다.
줄을 잡고 올라선 후 암릉을 넘어서면 정상석이 서 있는 신선암봉(937m)으로 길다랗고 넓은 바위 봉우리이다(12:28).
지나온 조령산과 제3관문을 지나 올라야 할 마패봉 그리고 부봉능선과 주흘산 등이 조망되는 곳이다.
물도 먹을 겸 잠시 쉬었던 신선암봉에서 928봉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12:38).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8586259 / 조령산 6지점] 앞의 이정표는 방향 표시판이 훼손된 채 땅에 떨어져 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우측 능선길의 대간 마룻금은 바로 앞에 뾰족하게 솟아 보이는 928봉을 향해 경사진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간 안부에서 우측편으로 올라서면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8796538 / 신선암봉 7지점]이 나오고(12:50)
다시 안부로 내려서는데 이정표[↑제3관문 3.4km ↓(…/신선암봉 0.3km) →문경새재(꾸구리바위) 2km]가 있는 삼거리이다(12:52).
('꾸구리'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우리나라 특산종이라 한다.)
밧줄이 내려져 있지만 흙길이라 미끄러운 오름길을 올라서면 산죽밭이 나오고 또 다시 암릉으로 이어진다.
암릉길은 살짝 내려서는 듯 하다가 다시 암릉으로 올라서고 커다란 암봉을 지나 바위를 붙잡고 우측으로 돌아서니
발 디딤쇠가 박혀 있는 내리막길이 나온다(13:13).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올라가는 바윗길로 이어지고 내려진 줄을 잡고 올라서면 다소 넓은 평지의 928봉 정상부이다(13:18~13:23).


짧지만 다소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간 후 다시 올라선 암릉길을 조금 걸어가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위험지역으로 조심하라는 안내판과 함께
'조령산 119 솔라표시등-05' 시설물이 있는 곳을 지난다(13:27).
줄이 내려져 있는 바윗덩어리를 넘어선 후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서면 암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길이 나온다.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9336578 / 신선암봉 12지점]이 있는 곳을 지나 수평으로 묶여 있는 줄이 있는 곳에서 우측편 바윗길로 올라선 후
짧은 내리막길을 내려갔다가 살짝 올라선 능선길에는 제3관문 방향의 표시판이 없는 이정표[↓조령산 3.07km]가 있다(13:40).
줄이 내려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바위와 바위 사이로 좁은 길이 있는 곳이 나오는데(13:45)
좌측편의 바위로 올라서서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9466620 / 신선암봉 11지점]을 지난다.
마패봉을 보면서 내려가는 경사진 길이 끝나는 안부에서 줄을 잡고 올라서면
'문경새재 제2관문 갈림길' 이정표[←문경새재(제3관문) 2.2km ↑문경새재 제2관문 1.8km ↓(…/신선암봉 1.5km)] 있는 삼거리이다(13:49).
일주일 전 현충일에 이화령에서 이곳까지 진행한 후 이정표는 제3관문 방향을 알려주고 있지만
마치 계곡능선으로 내려가는 듯 하여 제2관문 방향의 능선을 가다가 좌측으로 분기될 것이라고 나름 판단하면서 헛걸음을 했던 지점이다.
조금 전 훼손된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만난 고사리주차장으로 가신다는 산님과의 대화를 끝내고 제3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13:57).


계곡능선으로 떨어지는 듯한 능선길은 이내 산마루 능선으로 바뀌어 완만하게 이어가다가
밧줄이 내려진 완만한 경사의 바윗길을 만나는데 실질적인 밧줄 구간은 조금 전 '문경새재 제2관문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끝났다.
안부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는 산길에도 줄이 내려져 있지만 그냥 올라도 되는 곳이며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9546672 / 신선암봉 10지점]이 서 있는 능선 구릉 삼거리를 만난다(14:09).
우측 1시 방향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바람에 쓰러진 것인지 커다란 나무가 길을 막고 있는 곳을 지나는데 남은 구간의 산길이 잘 보인다.
이어 '조령산 119 솔라표시등-08' 시설물을 지나고 오르내리는 능선길은 줄이 내려진 오르막길을 거쳐(14:21)
커다란 암봉 앞의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우측 모두 선답자의 표지기가 있다(14:28).
좌측길로 돌아가니 금새 우측에서 오는 길과 합류되어 삼각점[402 재설 / 1978.7 건설부]이 매설된 능선 구릉에 도착하고(14:30)
고도를 낮추는 산길은 '깃대봉입구 갈림길' 이정표[↑깃대봉( km) ↓조령산( km) →제3관문(1km)]가 있는 삼거리로 이어진다(14:34).


우측편 제3관문 방향의 산길은 다소 급한 내리막으로 바뀌어 이정표[↑조령3관문 0.8km ↘깃대봉 0.42km]가 있는 성터로 내려선다(14:41).
사각 통나무로 정비된 오름길을 올라선 후 '진입금지(등산로 아님)'이라고 표기된 안내판의 뒷면을 보면서 내려가고
야트막하게 쌓은 성곽을 따라 계속해서 고도를 부드럽게 낮춘다.
성곽과 멀어지면서 안전난간이 세워진 나무계단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두 번 내려가면
조령산에서부터 제3관문까지 거리는 얼마 되질 않지만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암릉이 파도 타기를 하던 능선이 끝나는 제3관문이다(14:52).
조령약수 한 모금을 마신 후 이정표[↑마패봉 0.9km ↓조령산 5.0km ←고사리주차장 2.0km →(제2관문 3.5km/…)]를 사진기에 담고
제3관문 우측편에 있는 '제3관문 휴게소'로 이동하여 때늦은 점심으로 버섯라면을 먹는다.
(식사류는 잔치국수와 버섯라면 두 가지 뿐이며 공기밥을 추가할 수 있는 것 같다.)
지도를 보니 암릉길도 끝났고 마패봉만 올라선다면 960봉 전까지 큰 기복없이 진행하다가 960봉에 올라선 다음 하늘재로 내려가기만 되므로
하늘재산장에 도착 예정시간인 저녁 7시까지는 무난할 것 같아 마음 편히 점심을 먹고 마패봉을 향한 오름길을 시작한다(15:29).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백두대간 마루에 걸친 고갯길. 이른바 '과거길'의 대명사로서 조선왕조 개국 때 한양과 동래(지금의 서울과 부산)을 잇는
영남대로의 중심 구간이었다.
930리 길(380km)의 요추였기에 오랜 세월 문물의 교류지이며 국방의 요새로 기능했다.
'새재'라는 지명에는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草)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 사이(間)의 고개',
'새로(新) 만든고개' 등의 여러 뜻이 담겨 있었고, '문경'이란 '기쁜 소식을 듣는(聞慶)' 곳으로 구전되며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이곳을 지나갔다.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는 택리지의 기록처럼 문경새재는 과연 신통한 길로 통했다.
그리고 오늘날 이 길은 박제된 채 이름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길이 돼 전국의 행객들을 걷게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선'에서 문경새재가 무려 1위를 차지한 것.
과거를 고스란히 품고 현대적으로 태어난 문경새재는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총 6.5km 비포장 황톳길이다.
맨발로 걸으면서 자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전국 최고의 산책길로 유명하다.


이화령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있는 쇠파이프 터널을 마패봉 오름길에서도 만난다.
쇠파이프 터널을 통과하여 성곽과 나란히 오르는 마패봉 가는 길은 사각 통나무 계단길과 돌계단으로 이어지다가 밧줄 구간을 지나고
가파르던 오르막이 끝나면서 쓰러질 듯한 이정표[↓조령 3관문 1,400m]가 있는 곳을 지나 완만해지더니 이내 마패봉(925m)에 이른다(16:02).
바위 구릉인 마패봉에는 높이를 각각 925m와 920m로 표기한 두 개의 정상석이 있으며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세운 표지판을 보면 '마패봉(마역봉) (해발 920m)'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된 지형도에는 '마역봉 925.1m'로 되어 있다.
부봉을 향해 내려가려는데 청주 분평동에 거주하는 부부 산꾼이 올라와 주변 봉우리들의 이름에 대해 물어본다.
가지고 있던 사람과 산에서 출판된 지도를 보면서 주변 봉우리들을 알려주고 부부 산꾼과 헤어져
이정표[←신선봉 1.3km ↓조령3관문 0.9km ↑(하늘재 8.6km/…)]의 하늘재 방향으로 다시 대간길을 이어간다(16:10).


나무계단의 내리막길 중간에 월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이정표[←사문리탐방지원센터 2.2km ↓마패봉 0.1km ↑(하늘재 8.5km/…)]가 있고
그 앞의 '주 탐방로 안내'판을 보니 이곳 마패봉삼거리에서 하늘재공원지킴터까지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표기하였는데
탐방로 구간 소요시간은 일반적인 평균치로 개인별∙기상별 여건에 따라 가감될 수 있다는 토가 달려 있다.
바로 뒤따라 온 청주 부부산꾼과 다시 헤어져 나무계단길을 내려가고 이어서 급하게 고도를 떨어뜨리는 철제 계단길을 내려간다.
내리막길에 국립공원의 이정표[↑(하늘재 8.0km/부봉삼거리 3.4km) ↓마패봉 0.6km]를 만나고 조금 더 내려간 성터 안부에는
또 다른 이정표[↑부봉 3km 1시간40분 ↓마패봉 0.7km 20분 →동화원 1.3km 35분]가 서 있다(16:23~16:27).
(동화원은 문경새재의 옛 주막터다.)


이제 부봉 삼거리까지는 큰 고저차 없이 오르내리는 능선길이라 조망도 답답한 상태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성터와 나란히 이어지는 산길을 하늘재까지 0.5km 단위로 줄어드는 이정표를 보면서 걷다 보면 동암문을 만난다(17:14).
이정표[↑(…/부봉 1.3km 30분) ↓제3관문 3.9km 2시간 →동화원 1.4km 30분]가 있는 안부로
동암문을 나가는 출구 방향에는 '[비법정 탐방로] 출입금지'라고 적힌 현수막이 길을 막고 있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지지만 잠시 쉬었던 발걸음을 다시 시작한다(17:19).


삼 분 후 '하늘재 5.0km' 이정표를 지나면서 조금씩 고개를 드는 오르막길은 갈 지(之)자 형태로 오르다가
'부봉 삼거리' 이정표[↖하늘재 4.6km ↘마패봉 4.0km ↗부봉 0.5km]가 서 있는 삼거리에 이른다(17:33).
부봉이 지척이지만 늦어지는 산행시간과 지치는 체력 때문에 부봉 왕복을 생략하고 하늘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조금은 가파른 내리막 흙길이 끝난 안부에서 철제 계단길을 오른다(17:38).
커다란 바위를 수평으로 우회하다가 뒤돌아서서 지나온 부봉 삼거리가 있는 부봉을 잠시 바라본다.
계속 올라가는 철제 계단길은 쇠파이프의 안전 난간이 있는 일반 산길로 바뀌어 '부봉(1)지점 ☜ 119 구조요청지점' 안내판을 지나고(17:43)
조금 올라선 구릉이 960봉이겠거니 하면 또 저 앞에 능선 구릉이 보이길 너다섯 번 하고서야
이정표[←하늘재 3.6km ↓부봉 삼거리 1.0km]와 '주흘산 119 솔라표시등-05' 시설물이 있는 960봉 삼거리에 도착한다(18:00).


그렇게 심한 오르막은 아니지만 은근히 힘들게 한 960봉에서의 짧은 휴식을 끝내고 평천재로 급하게 떨어지는 산길을 이어간다.
직진하는 능선길은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좌측 9시 방향의 철제 계단으로 내려간다(18:05).
가파른 계단길이 끝나고 완만한 흙길로 바뀌는가 싶던 산길이 좌측으로 뱡향을 바꾸어 빠르게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가다가
이정표[↑하늘재 3.0km ↓(…/부봉 삼거리 1.6km]가 서 있는 평천재 안부에서 숨을 고른다(18:15).


이제 완만한 오름길로 진행되는 산길을 가는데 좌측편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른천둥 소리가 신경쓰이게 한다.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한바탕 퍼부을 기세처럼 들리는 소리는 연속해서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바람마져 비바람인 듯 끈적하니 마음만 급해진다.
자연스레 조금은 빨라진 발걸음으로 이정표[↑하늘재 2.7km ↓(…/부봉 삼거리 1.9km]가 있는 능선 구릉을 넘고(18:23)
삼 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길은 능선 구릉으로 넘어가는 길이고 좌측길은 우회하는 내리막길이라 짐작되어 좌측길로 내려간다.
잠시 후 예상대로 두 길이 다시 합류되어 서너 번 더 오르내리고 나서야 나즈막한 능선 구릉인 탄항산(856m) 정상에 오른다(18:35).
월항삼봉으로도 불리는 탄항산의 정상석과 이정표[↑하늘재 1.9km ↓(…/부봉 삼거리 2.7km]를 사진기에 담고서 하늘재로 향한다(18:38).

 

[탄항산]
탄항산의 탄항(炭項)은 아마도 변방·국경 등을 지킨다는 의미의 수자리 '수(戍)'자와 지키기에 알맞은 '목'이라는 의미의 '항(項)' 자가 합성되어
'수항'이라 일컫던 것이 '숫항→숯항'으로 전음되어 숯 탄(炭)자의 훈을 빌리어 뜻옮김 하여 불리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의하면, 이미 조선 초기부터 이 산정에 봉수대가 시설되어 있었던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월항삼봉의 월항(月項)도 여지도서 문경조의 조령산성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음과 훈이 혼용된 달항(達項)으로 불리었음을 살필 수 있다.
달항은 다시 '달목→달매기'로 전음되어 속칭되다가 현대에 이르러 다시 뜻옮김하여 월항이라고도 칭하게 된 것이다.
이의 본래 이름 달항은 아마도 '큰 목'이라는 의미에서 일컫던 큰 고개의 목이 되는 곳, 곧 평천재(월항재) 부근 959m 안부에서
한 줄기는 백두대간 줄기로서 서쪽으로 뻗어가고, 또 한 줄기는 남쪽으로 뻗어가 주흘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크고 중요한 산줄기의 목을 지칭하던 땅이름으로 추측된다.


잠시 후 고사목 한 그루가 있는 전망 암릉에 올라서니 주흘산 영봉과 960봉이 멀리 보인다.
하늘재를 향해 조금씩 고도를 낮추는 산길은 이정표[↑하늘재 1.5km ↓(…/부봉 삼거리 3.1km]를 만나고(18:44)
입석바위처럼 선 이단으로 된 바위를 지나 조금은 경사진 내리막길이 나오는가 했는데 다시 살짝 올라서니 국립공원 표시용 시멘트 기둥과
측면에 도근점이라고 음각된 표주석 두 개가 있는 능선 구릉이다(18:55).
잠시 잠잠하던 마른천둥 소리가 또 들려오지만 이제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내리막길은 그리 깊게 이어지질 못한 채 모래를 쌓아 놓은 듯한 능선의 우측길로 올라서는데
정면으로 보이는 이정표[←하늘재 0.6km ↓(…/부봉 삼거리 4.0km]에는 모래산이라 적혀 있다(19:02).


지도에도 없는 모래산이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좌측 방향으로 내려간다.
난간 역할을 하는 안전 로프가 서 있는 나무계단의 내리막길은 짧지만 다소 경사진 내리막으로 이어지다가 완만해지면서
나무목책과 나란히 내려가다가 개인농장이므로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현수막을 지나 임도같은 길로 내려선다(19:08).
계곡능선 방향으로 내려가던 산길은 우측 3시 방향으로 다시 올라가는데 마룻금 상의 물탱크 때문에 잠깐 우회를 한 것이다.
포암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하늘재 표석이 있는 넓은 공터를 가로 질러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하늘재공원지킴터가 있는 하늘재이다(19:12).


[하늘재]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사이를 이어주는 도의 경계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하늘재'는
525미터로 이름처럼 높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신라시대부터 북방의 문화를 영남지방에 전해주던 관문으로, 지금도 성벽이 남아 있다.


신라 제 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했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 거점이다 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신라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한다.
충청북도는 자연환경명소 100선의 하나로 선정했고,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하늘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갯길 1.5km 구간을 '역사 생태관찰로' 로 조성했다.


또한 불가의 불성이 깃든 관음세계에서 미륵세계로, 현세에서 미래로 가는 희망의 상징.
지명처럼 미륵리에는 마이애미 미륵불상과 문화재급 다수가 있으며 불가의 요람으로 되어 있다.


1. 겨릅산, 계립령
겨릅은 겨릅대의 준말로, 껍질을 벗긴 삼대를 일컫는 순 우리말로, 계립(鷄立)은 겨릅을 소리 옮김한 것이다.
하늘재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권2 「신라본기」로 거슬러 오른다.
이 기록에는 아달라 이사금 3년 "여름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했다.
아달라왕 3년은 156년이니 죽령 길의 개척보다 2년이 앞선다.
같은 책 권41 「열전」의 김유신 조에 등장하는 이름은 마목현(麻木峴)이다.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간 김춘추에게 보장왕이 말하기를,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한 같은 책 권45 「열전」의 온달 조에는 "계립령과 죽령 북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온달의 출사표로 등장한다.


2. 대원령(大院嶺)
『고려사』에는 대원령(大院嶺)이란 이름이 보인다.
고려 고종 42년(1255) 10월에 몽고 장수 차라대(車羅大)가 이끄는 "몽고군이 대원령을 넘자 충주에서 정예군을 보내 천여 명을 죽였다"고
기록하였다.
대원령이란 바로 미륵대원에서 시작되는 말이다.
연구가들은 미륵사지의 창건 연대를 대략 10세기로 어림잡고 고려시대의 절 이름을 대원사로 보는 견해에 거의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역참이 전국적으로 체계를 갖추는 것 역시 고려시대이니 본래의 절에 원(院)을 두고 대원,

혹은 미륵대원이라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늘재 또한 이 무렵에 대원령이란 이름을 얻는다.


3. 마목(痲木), 마골(麻骨岾)
마목이나 마골은 겨릅을 한자로 뜻옮김 한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는 마골점(麻骨岾) 봉수를 기록에 남기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면 비로소 이를 정리하여

"계립령을 사람들은 마골점이라 한다"거나 "속칭 마골산이라 한다"는 기록으로 발전한다.
한편으로 궁금한 것은 미륵대원에 관한 기록이 사라지는 일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이미 새재 길이 새로 개척되고 하늘재 길은 점점 그 쓰임새를 잃게 되지만
가령, "관음원은 계립령 아래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처럼 여전히 하늘재 길의 역원이 등장하는 반면
유독 대원과 미륵사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길이 없다.


4. 한원령(限院嶺)
한원령이 음과 훈이 혼용되어, '한원령→한월령→한월재→하늘재'로 전음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大院의 院을 훈독하여 에운담, 곧 '울'로 읽으면 '한울'로 읽을 수도 있으므로, 한울재→하늘재로 전음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늘재공원지킴터가 있는 좌측은 비포장의 흙길로 미륵사지가 있는 미륵리 방향이며 아스팔트로 포장된 우측길은 문경 방향이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12분 늦게 도착한 문경 방향에 있는 하늘재산장에 들어서니 산장지기 부부와 울산에서 온 대간꾼 부부가 반겨준다.
울산의 대간꾼 부부는 진부령에서 지리산 천왕봉 방향으로 남진하고 있는 중이라 하며
오늘은 연속산행 18일차로 벌재에서 출발하여 이곳 하늘재까지 9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빨리 걷는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나에게 18구간인 하늘재에서 벌재까지 구간 소요시간을 대략 11~12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가뿐하게 9시간 만에 주파하는 속도라면
내일 하늘재에서 이화령까지는 7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누다가 산장지기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오늘도 무더위로 땀에 찌들고 지쳐서인지 저녁밥이 껄끄럽기만 하여 대충 먹다가 절반 정도 남은 밥은 물에 말아서 넘긴다.
그렇게 힘든 저녁식사를 끝내고 내일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쯤에 하늘재를 출발할 예정이라고 산장지기와 말을 나눈 후
문경 방향으로 이십여 미터 정도 내려가면 있는 가옥에서 땀을 씻은 후 내일 산행을 준비한다.


산장지기와의 의사 소통이 제대로 통하지 않은 것인지 휴대폰의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산행준비를 하였지만 아무런 기별이 없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 다섯 시 삼십 분을 넘겨 여섯 시가 지나고 나서 삼십 분 후 산장지기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출발시간이 넘었는데도 하늘재산장으로 오질 않아 내려왔다고 하는 산장지기의 말씀에 내가 실수하였음을 느낀다.
13구간의 피앗재산장에서처럼 기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벌재에서 하늘재까지 오면서 단 한 장의 표지기도 못 보았다는 울산의 대간꾼 말도 있고 하여 어차피 늦은 산행시간,
오늘은 산행을 접고 하늘재~벌재 간 주의해야 할 지점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다음 산행하기로 결정하였지만
산장지기 내외분에게는 몸이 피곤하여 산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면서 준비해주신 주먹밥으로 아침을 먹고 하늘재산장을 떠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칠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니 십 분이 소요되었고
문경읍에서 출발하여(06:50) 포암에서 회차한 후 문경시(점촌) 시내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하는 첫 차를 타고 문경 버스터미널로 향한다(07:25).

 

 

[교통정보] ※ 대중교통별 운행시간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해당 교통편 홈페이지나 또는 전화로 재확인을 요함
서울(동서울)→문경 버스터미널 시외버스 운행시간(동서울종합터미널 ☎ ARS 1688-5979)
   [2시간 소요] 06:30 07:20 08:20 09:20 10:20 12:20 13:10 14:20 16:20 17:50 18:10 19:20 20:00
   동서울종합터미널 홈페이지(https://www.ti21.co.kr) '운행정보 → 배차조회' 참조


문경→이화령 : 대중교통편이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해야 함[편도 10분 내외 소요, 2015.06.13 현재 요금 12,000원]
   문경 개인택시 #1 김성진 010-3533-4954 / 054-571-7171
   문경 개인택시 #2 서석영(경북 16바 3187) 010-3533-2821 / 054-571-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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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암→문경(점촌, (문경읍 버스 터미널 경유)) 시내버스 운행시간(문경 공용버스정류장 ☎ 054-571-0343, 문경여객 ☎ 054-553-2230~2)
   [40분 소요, 괄호 안의 시간은 문경→포암 출발시간] 07:25(06:50) 09:20(08:20) 13:10(12:05) 16:15(15:30) 19:20(18:50)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bmg.go.kr) '시내버스 시간표 → 문경읍(각방면) → 갈평방면' 참조


문경읍→서울(동서울종합터미널) 시외버스 운행시간(문경 공용버스정류장 ☎ 054-571-0343)
   [2시간 소요] 06:50 07:50 08:50 09:20 10:50 13:00 14:10 14:50 15:50 17:00 17:50 18:50 19:40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bmg.go.kr)에는 점촌(문경시)에서 출발하는 버스만 있어 문경 버스 터미널의 시간표를 기록하였음

 

 

[산행기 원문]  http://blog.daum.net/sungbh98/821

[산행사진 #1]  http://blog.daum.net/sungbh98/822

[산행사진 #2]  http://blog.daum.net/sungbh98/823

[산행사진 #3http://blog.daum.net/sungbh98/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