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종주기 10


 

                                               *정맥구간:물편고개-백월산-공덕재

                                               *산행일자:2006. 6. 6일

                                               *소재지  :충남 청양/보령

                                               *산높이  :백월산571미터

                                               *산행코스:물편고개-스무재-백월산-공덕재

                                               *산행시간:10시45분-16시43분(5시간58분)


 

  충남 청양의 백월산 정상에서 선명한 역암의 큰 바위를 보게 되어 금북정맥을 종주하는 기쁨이 한층 더해졌습니다. 

역암이란 바다로 흘러 들어간 자갈사이에 모래나 진흙이 채워져 함께 굳어져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마치 자갈콘크리트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암석입니다만, 저로서는 이토록 크고 분명한 역암을 만나보기가 이번이 처음이어서 무척 반가웠고 그래서 이 역암들을 정성들여 카메라에 옮겨 담아 왔습니다. 시간과 압력이 빚어낸 이 역암의 원래 자리는 분명 바닷가일 터인데 해발 571미터의 백월산 정수리에서 역암의 암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습곡작용으로 횡압력을 받아온  바다지각이 서서히 융기해 백월산의 정상을 이룬 덕분일 것입니다. 세월이 압력이라는 공을 들이면 이토록 훌륭한 걸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되자 1995년 개봉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의 산물이라고 한 주인공 앤디의 한마디가 참이다 싶었으며 이 높은 산꼭대기까지 솟아올라 수 만 년 전의 바다소식을 전해주는 이들 역암과 한참동안 옛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어제는 잔돈푼을 아끼려다 돈은 돈대로 더 들고 산행은 산행대로 늦어져 멍청하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산본 집을 조금 늦게 나왔어도 안양 역까지 택시를 잡아탔더라면 5시49분 첫차를 충분히 탈 수 있었고 대천역에 9시전에 도착해 9시20분발 시내버스를 타고 물편고개로 이동해 아무리 늦어도 9시50분에는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을 택시비를 아끼고자 첫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타는 바람에 10시를 갓 넘어 대천에 도착했고 11시에나 물편고개 행 버스가 출발한다 하여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물편고개로 가 10시45분에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택시비는 8천원이 더 들었고 시간도 한 시간 가까이 늦어져 여주재까지 가겠다는 계획을 접고 중간에 찻길이 닿는 공덕재에서 산행을 마쳐야 했습니다.


 

  아침 10시45분 물편고개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610번 지방도로에서 길가 타이어를 짚고 오른 밭을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56번 송전탑을 지나 오솔길을 걷다가 내려선 임도사거리에서 가파른 산 오름이 시작됐습니다. 둥굴레 군락지를 지나고 몇 개의 바위도 지나 물편고개 출발 반시간이 조금 못되어 첫 번째 봉우리인 287봉에 올랐습니다. 밤나무와 참나무가 훌륭하게 그늘을 만든 287봉에서 직진하는 중 5-60미터 앞에서 누런색의 보통 개만한 산짐승이 잽싸게 길을 가로질러 숲 속으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짐승이 혹시 작은 멧돼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멀찌감치 도망가라고 스틱으로 나무를 두드리며 소리를 내서인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나무 간벌지사이로 난 편안한 길을 걸어 은고개에 도착하기 까지 물편고개를 출발하여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은고개에서 10분가량 걸어 무명봉에 오른 다음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를 걷다가 짐을 내려놓고 부글거리는 속을 비우느라 8분을 까먹었습니다.


 

  12시37분 스무고개에 도착해 알바를 끝냈습니다.

8분을 쉰 후 12시에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얼마고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야 했는데 속력을 내고자 서두르는 바람에 갈림길을 지나치고 직진을 했습니다. 표지리봉이 보이지 않고 좀 이상하다 싶어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나뭇잎들이 시야를 가려 판단하기 쉽지 않아 뒤늦게 왼쪽 길로 접어들어 산 능선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시야가 트여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갈림길을 지나쳐왔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다시 되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내쳐 내려가다 밭에서 일하시는 한 분에 여쭈어 스무고개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동리로 내려선 후 오른쪽 시멘트길을 따라 36번 국도를 향해 계속 걸었습니다. 얼마 후 오른쪽의  국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난 논둑길을 걷다가 도로로 올라서 스무고개에 다다랐습니다.


 

  12시41분 고개마루에서 청양쪽으로 조금 내려가 백월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올랐습니다.

절개면을 따라 걸어 얼마 후 165봉에 올랐다가 묘지를 지났습니다. 대나무 밭 옆으로 난 임도를 걷다가 오른 쪽 산길로 올라서자 빽빽하게 들어선 잘 자란 대나무 숲을 헤집고 걸어야해 길 찾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대나무 숲을 빠져나온 후 여러 기의 묘들을 지나 시온산수양원의 표지석이 세워진 시멘트도로를 만났습니다. 밭을 지나 임도를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서 본격적인 산오름을 시작했습니다. 15분을 더 걸어도 429봉이 나타나지 않아 산 중턱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알바로 진행이 늦어져 여주재까지 진출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중간에 마루금이 차도와 만나는 공덕재에서 이번 산행을 마치기로 결정하고 나자 시간이 넉넉해져 모처럼 느긋하게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13시51분 점심을 들면서 취한 23분간의 긴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바위봉에 올라 오른쪽 능선길로 접어들자 산 밑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람이 삽상했습니다. 429봉을 지나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 돌기둥이 세워진 안부로 내려서자 백월산 봉우리로 직등을 한다면 경사가 가팔라 엄청 힘이 들겠다 싶어 선채로 잠시 심호흡을 했습니다. 얼마 후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로 들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능선에 올라서 왼쪽으로 꺾어 백월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이 꺾음 점이 바로 서산의 은봉산에서 시작한 남하 행진을 끝내고 안성의 칠장산으로 북상하는 전환점이었으며, 14시44분에 이 꺾음 점을 지났습니다.


 

  14시56분 해발 571미터의 백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전환점을 지나 12분 동안 쑥색의 바윗돌 길을 걸어올라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표지석이 두 곳에 세워진 정상에서 휴일인데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해 과연 백월산은 아직 세태에 때 묻지 않은 산으로 소개될 만 하다 싶었습니다. 북서쪽으로 오서산이 흐릿하게 보이는 등  전망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역암이 눈에 뜨여 기뻤습니다. 해맑은 차돌은 물론 달걀 모양의 자갈이 여기 저기 박혀 있었고 더러는 자갈이 떨어져 나간 자취도 남아 있어 이 역암의 암괴가 오랜 세월 갖은 풍상을 다 겪은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15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5분을 걸어 다다른  줄바위 안내판 바로 옆에 큰 몸집의 역암 암괴를 만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몇 분을 쉬면서 주위 산을 조망했습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2년 전에 오른 성주산이 바로 남서쪽에 자리 잡은 고봉일 것이고 정남방향으로 보이는 산은 성주산이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성주산과 만수산의 들머리인 성주산자연휴양림 입구의 시공원에 시가 새겨진 비석들이 세워져 이채로웠는데 그 중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로 시작해 “오늘도 어둠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라고 끝을 맺어 자식들을 진주로 키워내는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노래한 정 한모님의 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16시9분 간티고개로 내려서기 직전의 무명봉에서 마지막 쉼을 가졌습니다.

줄바위를 출발하여 배문을 조금 지나 왼쪽으로 꺾어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20분 가까이 낙엽이 소북이 쌓인 내리막길을 걸어 삼거리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이어서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숲 속을 빠져나와 정면으로 보이는 다음에 오를 오봉산과 방금 전에 올랐던 뒷자리의 백월산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잡목을 헤치며 마루금을 이어나가다 무명봉에 올라서자 바람이 정말 시원했습니다. 배낭을 등에 대고 편안한 자세로 쉬면서 되새김을 하는 우공들이 느끼는 여유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한껏 평안해지자 두 눈이 스르르 감겨왔습니다.


 

  16시42분 공덕재로 내려서 약 6시간 동안의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무명봉에서 십자안부인 간티고개로 내려섰다가 다시 282봉에 오르자 구불구불한 아스팔트길이 보였습니다. KTF 안테나를 지나 절개면을 타고 60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공덕재 고개마루에 내려서서 다음번에 오를 오봉산 들머리를 확인한 후 왼쪽으로 내려서 화성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하루에 아침 8시와 오후 4시 두 번 버스가 들른다는 정자리 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 36번 국도와 만나기까지 공덕재 출발 약 30분이 걸렸습니다. 36번 국도에서 5분을 더 걸어 오른쪽의 화성면소재지로 옮겨 버스를 타고 대천역으로 나왔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짧은 거리를 느긋하게 산행을 해 두 다리가 편했을 것입니다.

300개가 넘는 높고 낮은 산들을 오르내리며 이 산하의 아름다움을 두루 보는 기쁨도 누렸겠지만 주인을 잘 못 만나 매번 고생을 마다않는 저의 두 다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벌써부터 이 고마운 두 다리를 위해 한번은 느릿느릿 산행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오전의 알바로 코스를 당겨 잡은 덕분에 어제는 모처럼 두 다리가 편안했을 것입니다. 매번 이러다가는 어느 명년에 정맥종주를 끝낼지 몰라 다음 산행부터는 어쩔 수 없이 서둘러야 하겠지만 두 다리를 아끼고 보호하는 일은 제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금북정맥 종주를 마치기까지 앞으로도 몇 번은 이번처럼 한가하게 산행을 해 볼 생각입니다.


 

  두 다리를 걱정하는 제 마음이 아무려면 저를 진주로 키우고자 오랫동안 힘들게 세월과 맞서 싸웠을 어머니의 자식사랑만 하겠는가 싶어지자 17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귀가 길의 기차여행은 어머니와 함께 했기에 적적하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