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라

2014년 9월 17일

큰재 : 경북 상주시 공성면 옥산리

지기재 : 경북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19km 8시간49분

24시간 사우나장​의 온탕에 앉아 오늘 하루 여정을 잠시 반추해 본다. ​사우나장도 하루의 여독을 풀듯 청소를 말끔히 끝낸 상태다. 온탕 열탕 욕조의 물도 새로 갈아 놓았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다. 이 큰 사우나 장 안에 나홀로 벌거벗고 앉아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일 백두대간 한개 구간을 주행하는데 통상 20여시간 10여만원이 소요되는 것 같다. 어찌하여 이처럼 쌩돈 들여가며 쌩고생을 자청해서 할까. 누가 물으면 자신있게 그럴 둣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 스스로 자문해 보면 그냥 백두대간이고 다른 사람들이 다들 종주하기에 나도 종주한다라는 자답을 하게 됨을 느끼게 된다. 무엇 때문에 종주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종주를 하니 무엇을 느끼게 된다. 이런 뜻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의 컨셉을 '따라 하라' 로 잡았다.

새벽 4시 20분 집을 나서서 서울역행 광역버스 첫차로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6시 10분 부산행 ITX-새마을 열차를 타고 8시51분 정시에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역전 승차장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큰재를 가자고 하니 토박이 기사분이면서도 처음 듣는 지명이란다. 지도를 보여 주었으나 감이 잘 안잡히는 듯 동료에게 전화를 하여 확인한다. 

20분여분 달려 큰재에 도착하였다. 큰재 들머리는 상주시가 운영하는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내부를 가로질러 주행하도록 되어있다. 기사분과 오후 7시에 오늘의 날머리인 지기재에서 PICK UP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출발지점 Waypoint(좌표)를 찍기 위해 잠시 GPS위성수신대기중인데 생태교육장 관계자가 접근해와 방명록에 기록을 부탁한다. 어제는 3명이 서명을 했다.

 

 



 

 

나는 백두대간 들머리를 들어설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그 느낌의 강도는 강약 및 고저가 일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가슴에서 일렁거림을 느낀다. 완주시까지 이 느낌이 계속 될 것인가. 들머리 아우라가 두팔 벌려 감싸안듯 나홀로 대간꾼을 맞이한다. 잔잔한 물결 처럼 굽이 치는 등로가 시작된다. 흙길이다. 짙은 녹음으로 가득찬 숲길은 자연을 발산하고 있다. 오늘도 마치는 시간까지 인간들과는 등로간에서 한번도 마주치지를 못했다. 완만히 오르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등로 양옆으로 잡목들의 잔가지 잎사귀들이 어깨와 빰을 스친다. 버프 마스크로 얼굴을 감쌌다. 장갑도 끼어야 할 상황인데 그러면 사진 찍을 때나 GPS지도로 대간 마루금을 벗어나지 않도록 확인할 때 불편할 것 같아 망사장갑을 그냥 호주머니에 넣은채로 나두었다.

 

회룡목장이 왼편으로 나무 숲 틈으로 얼핏 조망된다. 이정표가 없다면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는 인지를 못하고 지나칠 것이다.

 














회룡목장으로 진입하는 임도로 내려섰다. 건너편 등로에서 종주리본이 마루금을 숲터널로 안내하고 있다. 조금 가파른 등로를 올라서 지그재그로 물결치듯 숲터널 등로가 이어진다. 쌍스틱을 쥔채로 양손을 얼굴 높이로 들고 앞을 헤치며 걷는다. 좁은 등로에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 이 고목 보다는 수령(樹齡)이 더 해 보이는 거목들이 많은데 이 고목은 어찌하여 벌써 생을 마감했을까. 어린 나무도 고목이 되어 등로를 가로질러 누워있다. ​다른 수종들은 왕성한 생명력을 발산하는데 왜 이들은 고목이 되었는고. 생존 경쟁에서 루저가 되어서 그런 것인가. 가해를 받아 고사(枯死)를 당한 것인가. 아니면 병충해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어린 수종들의 생명력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인가.



앞서간 ​대간 마루금 선행자들의 노고덕분에 나같은 후행자들은 대간 종주가 수월해지는 것 같다.  백두대간 종주지도가 그렇고, 산행기가 그렇고, 대간길 종주리본이 그렇다. 사실 눈썰미만 좀 있다면 지도 안보고도 잦은 알바 없이 주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알바의 경우 들머리에서 잠시 헷갈리는 경우, 지쳐 걷다가 잠시 한 눈 팔아 종주리본을 놓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지도와 나침판은 안보더라도 꼭 배낭속에 넣고 다녀야 할 것 같다. 나침판은 전문가용보다는 사방팔방만 확인할 정도면 된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에 나침판이 내장되어 있지 않은가. 혹 2G폰 사용하시는 대간꾼은 나홀로 주행시 반드시 지도 나침판 종주리본 유념하시면 알바를 피하거나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도 한번은 임도길에 내려서서 어리버리하며 걷다가 잠시 종주리본을 놓치기도 했다.

야생화가 피어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마루금에서 마주치는 야생화들은 멀리서도 확연하게 눈에 잘 띤다. 잡풀이 우거지고 관목들이 빼곡한 속에서 야생화의 자태는 군계일확이다. 최근 산림청에서 '백두대간의 산림생물다양성' 책자를 발간했다. 식물, 동물, 곤충, 버섯, 토양, 식생 등 6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자를 일독을 한후 대간 마루금을 걷는다면 우리 강산을 더욱 잘 알 수 있고 더 재미있는 종주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사진속 야생화 이름은 아직 확인을 못했다. 상주시에서는 대표적인 야생식물 소개 입간판을 백두대간 등로중에 간간히 세워놓았다. 간판 주변을 두리번 거려보았다. 군락지라서 세워 놓은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대표적 식물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다.


 

 

임도에 내려서니 재배단지가 조망된다. 대간길은 다시 터널 숲속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부드러운 흙길이 계속되어 머리와 어깨를 스치는 잔가지 잎사귀들의 성가심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도시민의 경우 산을 찾지 않는다면 흙길을 걷는 기회가 그리 잦지는 않으리라. 백두대간 등산로라는 표지판을 이 구간에서 유독 많이 만나게 된다.  

 




 




비탈진 숲터널을 벗어나 옛고개 길로 내려선다. 비포장 임도에는 자동차나 경운기 바퀴로 파인 자국위로 잡풀들이 임도를 덮고 있다. 이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늙으막에 아내가 고생이다. 이른 새벽 보온통 밥통에다 국물텀블러 커피텀블러 오이 과일 등을 준비를 해준다. 보온통을 사용하다보니 배낭무게가 좀 된다. 24시 김밥집에서 준비할 수도 있으련만 집밥만 고수를 해오고 있다. 과거보러 한양길 떠나는 낭군 챙겨주듯 하니 그저 미안할 뿐이다. 막말로 백두대간 종주한다고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가끔 내가 생각해 봐도 부질 없는 일 같기도 하다. 이런 잡생각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어서 백두대간종주를 마쳐야 겠다. 고시레 한후 군대식으로  '부모님 은혜에 감사 드리며' 감사히 먹었다.

 

 

어제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었으나 가면상태로 있다 기상한 관계로 한 숨을 못잤다. 잠을 보충하려고 임도위에 판초우의를 펼치고 주변에 혹 뱀을 경계하여 가지고 다니는 백반을 뿌린 후 하늘을 보고 벌렁 들어누워 한 20분 잠을 청하려 하였다. 그러나 파리모기가 같이 놀자고 자꾸 달라 붙는다.  5분도 안돼서 벌떡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다시 등로로 올라섰다.

 


 

 

편안한 흙길 능선이 완만한 경사로 굽이치며 이어지고 있다. 이 구간 등로에는 도토리가 널려 있다. 어느 구간은 젖먹이의 주먹 만한 밤도 널려 있다. 떨어진지 오래되어 탈색된 도토리가 더 많이 눈에 띤다. 밟히면 뽀도독 소리를 낸다. 비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가끔 흐리다 구름 낀 맑은 날씨가 오후 내내 계속 되었다. 주행중 우수수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데 ​이는 도토리 밤떨어지는 소리이다. 가끔 나무 가지 꺽이는 소리도 난다.





도 위로 구름다리가 이어진다. 여기는 대한민국 대간꾼들의 종주리본이 다 모여 있는 듯 하다. 유럽각지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걸어서 또는 자전거 타고 순례를 완주하면 증명서를 준다. 나도 몇년전 그곳 한 구간 808km를 27일동안 걷고 왔다. 증명서도 받았다. 백두대간 완주를 인증해주고 축하해주는 무슨 방법이 있을 법도 한데 생각이 잘 안난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튼 백두대간 종주를 완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깨달음이나 이득은 과연 무엇일까.



화려한 얼룩 카키 색의 뱀 한마리가 등로 변 낙엽위로 비켜 앉는다. 등로에 나와 있다 내 발걸음에 놀래 비킨것 같다. 나도 순간 움칠했다. 잠시 서서 자태를 관찰했다. 움직이다 내가 서니 저도 멈춘다. 내가 지나가면 다시 등로로 나와 앉을 요량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예의가 있는 녀석일세. 외지인이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선 셈이니. 일전에 한번 마을 뒷산에서도 뱀과 조우를 한적이 있다. 사람 발길이 거의 없는 희미한 등로길을 택해 걷고 있었다. 비가 멎고 햇볕이 비치는 한낮이었다. 제법 덩치나가는 뱀 한 녀석이 등로 중간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일광욕을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다가서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헛기침을 ​몇번 해보아도 미동도 없다. 이 녀석이 일광욕하다 낮잠이 들었나. 할 수 없이 내가 등로 밖으로 비켜서 지나친 적이 있다. 몇년전 한남 정맥길을 걷다가 송아지만한 개 두마리가 뒤에서 나타나 내 앞에서 한참을 얼쩡대다가 사라진 경험이 있다. 어찌 놀랬던지 그 날 오후내내 주행을 하면서 앞은 안보고 혹시 이 들개놈들 쫒아오지 않을까 염려되어 뒤만 돌아보고 주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산을 내려와서 그 두마리의 목에 목줄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 아 들개는 아니었구나하는 생각했었다. 언제가는 멧돼지와도 마주칠 것같다.




















백학산 가는길. 흙길이 이어지는 등로에 암릉길이 짧은 구간으로 나타난다.  급경사 주의 표지판이 있지만 가쁜 숨 내뿜으며 부드러운 흙길 안부 능선으로  올라선다. 봉우리가 셋인데 북진 마지막 봉우리가 백학산 정상이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615m 백학산 정상이다. 동(東)향 저 아래 계곡으로 조망되는 곳이 내서면 백골 마을이​렸다.





 

 

 

 

 



계단길을 내려서고 터널 숲을 지나 임도에 내려서다. 함박골로 이어지는 임도이다. 이정표지판에는 지기재 2.8km 1시간으로 되어 있는데 어째 이상하다. 시간 및 거리계산을 임도 기준으로 한 듯하다. 주행을 마치고 GPS괘적을 확인해 보니 백학산 정상에서 지기재까지 7km 2시간 40분 정도의 기록이다. 농장을 왔는지 타이탄 차 한대가 주차되어 있다.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터널 속으로 뛰어든다. 잠시 후 비탈진 암릉길이다.  계속 흙길을 걷다 암릉길을 만나니 낯설어 뵈는 느낌이다. 그 만큼 이 구간은 흙길이다. 수확을 마친 비닐 하우스 농장길을 걷어서 개머리재에 다가선다. 포장도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2대의 승용차가 지나가고 있으니 시골길 치고 차량 통행량 꽤 있는 듯.

 







 

 

 

오늘 여정의 종착지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그러나 대간길은 가파른 가풀막길로 이어지고 있다. 상주시가 흔하게 설치해 놓은 경사도 30% 표지판의 수치보다는 가파르게 느껴진다. 안부길이 길게 이어진다. 중천에 떠있던 해는 일몰을 앞두고 있다. 오늘 주행길에서는 산소를 10기 이상 마주친 것 같다. 대간 마루금인지를 알고 고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것인가. 어느 기(基)는 묘봉 중앙선과 대간 마루금이 일치되어 있다. 묘 병풍 둔덕중간이 사람들의 발길로 뻥 뚫려있다. 마루금을 밟는 모든이들이 발로 밟고 지나 간 것이다. 나도 옆으로 비켜 가지를 못하고 그 뻥뚫린 곳을 밟고 지나왔다. 영 기분이 아닌 것 같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오늘의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한다.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가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임을 알려주려는 듯 하다.  오늘 지나쳐온 농장도 그렇지만 지기재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만난 포도 비닐 농장도 포도가지가 정갈하게 다듬어 진 것을 보니 포도작황이 괜찮았을 듯하다. 도토리가 많이 열리면 흉년이란 말도 있던데 농부들의 손길이 이런 옛이야기를 무색케 만들고 있음을 본다.

 

지기재 도착하여 샌달로 갈아 싣고 쌍스틱을 줄여 배낭에 부착했다. 등로에 떨어진 도토리와 밤을 몇개 주어 담았는데 양이 꽤 된다. 산중 짐승들의 일용할 양식을 취한 것 같아 좀 거시기 하다. 약속 시간에 맞쳐 택시가 당도하였다. 40분 정도 달려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기사분이 잠시 길을 헷갈려 김천오는길을 약간 우회하였다. 김밥집에서 라면 한그릇 먹고도 시간이 좀 남아 서울행 열차표를 37분 앞당겨 8시 10분 새마을호로 바꿨다. 서울역에 10분 연착. 구간 구간 서행하는데 대부분 KTX지나가게 양보하느라 그런 것 같다. 철도공사 돈벌이에 등급낮은 열차타는 사람들이 연착이라는 피해를 입고 있다. 승무원들이 인도열차 승무원처럼 무뚝뚝하다. 예쁜 얼굴에 미소를 띠우면 어디가 덧나나.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아들이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여 뒤따라 도착한다. 배낭을 부리고 동네 24시간 사우나 장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