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6구간(지름티재→이화령) : 한여름 같은 무더위에 지친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산행일시] 2015. 05. 25(월) 06:20~15:13(8시간 53분)
                (산행시간 : 6시간 43분 / 휴식시간 : 1시간 28분 / 헛걸음시간 : 0시간 00분 // 대간 접근시간 : 0시간 42분)
[날      씨] 맑음 / 한여름 같은 무더위
[산행인원] 성봉현
[지형도명] 월간 '사람과 山' 1대간 9정맥 종주지도(2009년 20주년 특별부록) 11구간, 영진5만지도(영진문화사, 2011년판)
[대간접근] 은티마을 주막집(은티주막)→지름티재 : 도보
[대간이탈] 이화령→문경시외버스터미널 : 택시(13,000원) / 문경→서울(동서울) : 시외버스
[산행시간] 은티마을 '주막집'(은티주막, 06:20) → 지름티재(07:02~07:12) → 희양산 갈림길(07:48~08:26, 희양산 왕복)
                → 은티마을 갈림길(배너미평전, 09:10~09:15) → 이만봉(10:12~10:25) → 사다리재(10:52~10:54)
                → 981봉(뇌정산 갈림길, 11:32~11:45) → 평전치(12:00) → 백화산(△, 12:42~12:57)
                → 황학산(13:34~13:37) → 연못(물 웅덩이, 14:12) → 조봉(14:26) → 667봉(14:45) → 이화령(15:13)
[산행지도] 영진5만지도(영진문화사, 2011년판)

[구글 어스]

[산행기록]

어제 은티마을의 '주막집'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반주로 마신 막걸리 두 잔에 취해 곤한 잠을 들었다가 주인장 목소리에 깨고서는
나이드신 산꾼 한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밤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할 수 없이 중간에 말을 끊고서야 다시 잠을 잘 수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후로도 깊은 잠을 잔 듯 하다.
새벽녘 휴대폰의 알람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옆자리에서 주무시던 산꾼은 벌써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로 삼십 분이 지난다.
산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적당히 눈치를 주니 알아보셨나 보다, 짐을 정리하고서는 산성 갈림길의 정자에서 식사를 할 것이라면서 준비하신다.
오늘 산행 즐겁게 하시라고 인사하고 세면장에서 얼굴을 씻고 올라오니 그새 짐을 정리하고 출발하였는지 보이질 않는다.
스타렉스 차량에 오토바이와 숙박용 짐을 실고 다니신다는 산님이시다.
어제 저녁에 챙겨온 공기밥과 볶음김치로 아침을 먹고 하룻밤 편히 쉬었던 '주막집' 2층에서 내려와 이화령까지 가는 산행을 시작한다(06:20).


희양산과 구왕봉 사이의 지름티재를 가리고 있는 은티펜션을 지나 시멘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의 삼거리에 도착하고(06:36)
어제 내려온 길을 따라 좌측길로 올라간다.
상큼한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발걸음은 이제 걷기 시작해서인지 가볍게 정자가 있는 성터 갈림길에 이르지만(06:46)
이곳에서 아침을 드시겠다던 나이드신 산님은 차 안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흔적이 없다.
마지막 농경지가 있던 곳에 주차된 차량에서 수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계곡 능선을 따라 지름티재에 도착한다(07:02).
물 한모금 마시면서 이화령까지 무탈하게 갈 수 있기를 내 자신에게 스스로 기운을 불어넣고 희양산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로 올라간다(07:12).


출가한 스님들의 청정도량인 봉암사와 속세의 경계를 그리는 목책은 대간 능선을 따라 희양산을 향해 같이 동행한다.
목책은 커다란 바위를 만나면 그 바위에 자신의 역할을 인계한 후 다시 흙길에서 인수 받기를 반복하면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반면 고도를 급격히 올려가는 산길을 가는 산꾼은 줄이 내려진 암릉지대를 조심스럽게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비탈진 암릉길에 뿌리를 내리고 강인한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에 묶여진 줄이 없다면 어떻게 올라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산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틈도 없이 오르다보니 어느새 가파른 암릉길이 끝나고 해발고도 구백 미터를 훌쩍 넘긴 능선에 올라선다(07:48).


'입산통제 알림' 글자만 위태롭게 남아 있는 안내판에 기대어 있는 이정표는 좌측길이 백두대간 시루봉 방향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또한 지금 올라온 방향이 구왕봉이라고 되어 있지만 희양산 정상 방향으로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다.
하지만 오늘이 봉암사 및 희양산 산길이 일 년에 한 번 풀린다는 석가탄신일이므로 조용히 희양산 정상부를 향해 우측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흙길과 암릉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능선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희양산 정상부에 이를 것이다.


어제 지나온 구왕봉을 보느라 잠시 멈춘 발걸음을 이어가는데 정상부 바로 전에 두 명의 등산객이 보인다(07:58).
커다란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촬영해주니 고맙다면서 참외를 건네주신다.
울산에서 오셨다는 동서지간 분으로 수안보에서 먼저 출발하여 희양산에 오른 후 봉암사에서 11시에 가족들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봉암사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와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하니
이만봉 방향의 암릉길로 내려갈 수 없냐고 반문한다.
나 역시 1980년대 말 늦겨울에 등산학교 동기들과 함께 이곳 희양산의 정상부에서 길을 잘못 들어 오십 미터 줄 두 동을 사용하여
정면벽으로 하강하니 봉암사는 깊은 정적에 파묻힌 야심한 시간이었고 원북리 이장님 댁으로 기억되는 곳에서 하룻밤을 신세진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지름티재에서 봉암사로 내려가시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면서 양해를 구한 후 먼저 일어난다(08:18).


그러고 보니 나에게 희양산은 여러 가지 아픈 기억으로 남는 산이다.
처음이 희양산 정면벽 탈출사건이었고, 두 번째는 2003년 여름으로 기억되는 친구의 대간길 동행 시 친구가 바위구간에서 추락한 사고이다.
그리고 두 달 후 친구의 대간길 구간 잇기 산행에 같이 동행하였는데 그때는 내가 백화산에서 이화령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오른쪽 무릎의 통증(아마도 '장경인대염'으로 생각된다)으로 다섯 시간 이상 힘들게 내려갔던 하산길이었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산행을 위한 액땜이었나 보다.


희양산은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그 자태가 우뚝하고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데다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 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산이다.


희양산(曦陽山)은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돌산으로, 암봉들이 마치 열두판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봉암사를 창건한 신라 헌강왕 때의 고승 지증대사가 전국 명산을 둘러본 뒤 희양산 한 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펴보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다"고 지세를 평하며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하였다.


지름티재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희양산 갈림길에 다시 도착한다(08:26).
대간 마룻금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산죽지대를 지나 성터가 남아 있는 은티마을 갈림길 안부에 이르는데
은티마을 주막집을 출발하여 지름티재로 오르면서 만났던 정자가 있는 성터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오는 길이다(08:33).
성터라 해서 서울성곽처럼 큰 돌로 쌓은 석성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작은 돌들을 포개어 쌓은 돌무더기가 길게 남아 있는 것으로
이정표[←은티마을 3.2km ↓희양산 1.0km ↑시루봉 2.2km]와 국가지점번호[라바 45055813 / 희양산 4지점]판이 서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에는 '희양고성은 가은현 북쪽 15리에 옛 성이 있으니 삼면이 모두 석벽(石壁)이며
옛 군창(軍倉)이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약 1300m가 되는 이 산성은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로 929년 경순왕 3년에 쌓은 성터로 전해진다.


성터를 따라 좌측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이만봉을 보면서 구릉에 올라서니 제법 힘겨울 것 같은 봉우리가 맞은편에 버티고 있다(08:47).
보기와는 달리 그리 힘들지 않게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는데 80리터 쯤 되어 보이는 배낭을 매고 올라오는 홀로 산꾼을 만난다.
아마도 단독 연속종주를 하는 것 같은 산꾼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몇 번의 오르내림을 하고나서 제법 깊게 내려가는가 싶더니만 이정표[←은티마을(50분) ↓희양산(40분) ↑시루봉(20분)]가 서 있는
너른 안부의 은티마을 갈림길을 만나는데 선답자들이 이야기 하는 배너미평전일 듯 싶다(09:10).
지도마다 배너미평전의 위치가 제각각이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산행기들을 읽어 보면 이곳을 배너미평전이라 하는 듯 하다.
아직 산행 초반인데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하니 이화령까지 남은 거리가 걱정되지만 잠시 멈춘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09:15).


야영을 했던 팀이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는 권유를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로 대신하고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 진행한다.
넓고 평평한 안부에 남겨진 선답자의 발자국을 쫓아 좌향으로 올라가는 너덜의 오름길을 걷는다.
너덜길이 끝나면서 푸른 초지가 길 양 옆으로 펼쳐지는 은근한 오름길은 좌향으로 휘어지면서 능선 구릉을 만나는데 962봉으로
우측편 참나무에 '희양산 사선봉 해발 964m'라고 적힌 이름표가 매달려 있다(09:36).
이제 산길은 우향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완만하게 내려가고 나뭇가지 사이로 희양산의 거대한 암벽이 하얗게 보이는가 싶더만
작은 돌들이 깔린 평지에 이정표[←시루봉(20분) ↑이만봉(40분)]와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6435888]이 있는 시루봉 갈림길을 만난다(09:45).


짙은 녹음의 터널을 지나는 듯한 대간 마룻금은 도막 분기점[←도막 2.3km ↓시루봉 1.7km ↑이만봉 0.8km]을 지나고(09:50)
편안하던 능선길에 줄을 잡고 올라서는가 하면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6745837]을 지나자마자 전망바위가 나오는데 마당바위이다(10:01).
이만봉이 바로 앞에 있고 그 너머로는 곰틀봉도 함께 보아달라 한다.
마당바위를 지나 줄이 있는 암릉길을 내려간 후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석과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6965804 / 이만봉 5지점]이 있는 이만봉(989m)이다(10:12).


이만봉(二萬峰)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옛날 만호라는 벼슬을 한 이씨가 이곳에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만호골이 시작되는 도막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 권율이 군막을 쳤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경계선에 있으며 괴산군에서 최고봉인 백화산과 희양산의 중간에 위치한다.
독립된 산이기보다는 황학산, 백화산, 시루봉,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능선으로 표시된다.


아침이 부실했던 것인지 아니면 때이른 무더위에 지치는 것인지 몸은 천근만근이고 속이 허전하여 양갱 하나를 먹고 다시 출발한다(10:25).
나무에 가려졌던 시야가 트이면서 바로 앞의 곰틀봉과 그 뒷편 멀리 뇌정산 갈림길의 981봉 그리고 백화산과 함께
이화령을 향해 좌측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대간길이 왼쪽 건너편에서 빨리 오라고 한다.
이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바뀐 산길을 가는데 갑자기 별이 번쩍하더니 나도 모르게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굵은 소나무 가지를 이마로 받은 것인데 그나마 모자를 쓰고 있어서 직접적인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으며
암릉길이라 밑만 보고 가다가 미처 소나무 가지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내리막길이 끝나고 올라선 전망바위에서 방금 지나온 이만봉과 지금까지 걸어온 대간 마룻금을 조망한 후(10:36)
짧은 숲길을 지나 올라가니 '곰틀봉개미봉'이라고 쓰인 겉껍질이 벗겨진 고사목이 서 있는 곰틀봉이다(10:39).


저 멀리 백화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암봉의 곰틀봉을 내려가는데 한켠에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7455805 / 이만봉 4지점]이 방치되어 있고
연속되는 내리막길은 이정표[←분지안말 1.9km ↓이만봉 1.2km ↑백화산 4.8km]와 국가지점번호판[라바 47825767 / 이만봉 3지점]이
서 있는 안부인 사다리재에서 끝난다(10:52~10:54).
사다리재는 분지리 사다리골의 뒤편 고개로 오르내리는 경사가 급하여 마치 사다리를 타는 것과 같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숨 한번 고르고 조망이 막힌 경사진 너덜의 오르막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힘들어진다고 느껴질 즈음 능선 구릉에 이르고(11:00)
살짝 내려섰다가 올라가는 산길은 완만한 흐름을 유지하다가 다시 한 번 오르막으로 바뀌어 뇌정산 갈림길인 981봉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닥 급하지 않은 오름길임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워지는 탓에 싱각보다 늦은 시간에 981봉에 도착한다(11:32).
이정표[←(백화산 2.1km / 이화령 9.1km) ↓(이만봉 2.6km / 희양산 6.5km) →뇌정산 2.6km]를 보니 이만봉에서 2.6km를 왔을 뿐이다.


점심 때도 되고 해서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은티마을 주막집에서 비닐봉지에 담아온 밥만 보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체력에 한계가 오거나 지나치게 힘들 때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하필이면 이번 산행에서는 먹을 간식거리마저 준비가 제대로 되질 않아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찰떡파이 한 개와 양갱 두 개,
그리고 사탕 몇 개만 있을 뿐이니 이화령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먹은 만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지만 오늘은 찰떡파이 하나를 먹는 것조차 역겨운 것이 내 몸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나보다.
누워서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랬다가는 못 일어날 것 같아 앉아 쉬면서 고도표를 살펴본다.
백화산까지 비탈을 한 번만 올라서면 이후 이화령까지는 큰 기복 없이 꾸준한 내리막이라 하니 힘내자고 하면서 다시 출발한다(11:45).


이정표 앞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능선을 따라 몇 번의 얕은 오르내림 후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밋밋한 안부가 나온다(12:00).
좌측의 분지리로 내려가는 길목의 이정표[←분지리 2.2km ↓(이만봉 3.5km / …) ↑(백화산 1.2km / …)]가 평전치라 알려주고 있다.
이제 백화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은 돌길로 이어지나 싶으면 줄을 잡고 내려가라고 하는 짧은 암릉구간의 내리막길을 만난다(12:06).
하지만 내리막길도 잠시 뿐 다시 올라가는 길은 너덜의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더니 울창한 나뭇잎들로 조망이 막힌 1012봉에 이른다(12:25).
올라왔으니 다시 내려가는데 바로 만덕사 갈림길의 이정표[↑(백화산 0.4km / …) ↓(이만봉 4.3km / …) →만덕사 1.2km]가 나오고(12:27)
줄이 내려진 암릉을 올라선 후 또 다른 암봉을 좌사면으로 우회하여 올라서니 지나온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12:36).
거칠었던 암릉길이 다소 부드러워지면서 올라가는 산길이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빛나는 하늘선을 만나는데
오늘 구간 산행의 최고 높은 봉우리인 백화산(1064m) 정상이다(12:42).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들이 널려 있는 백화산에는 작은 정상석과 번호 판독이 어려운 삼각점이 매설되어 있다.
(국가기준점성과발급시스템 홈페이지(http://nbns.ngii.go.kr/ncp)에서 검색한 결과 삼각점의 번호는 [문경 21]이다.)
분당(?)에서 왔다는 대간꾼 한 명이 조망을 즐기고 있다가 인증사진을 촬영하고는 먼저 내려가 다시금 혼자가 되어 조용한 휴식을 취한다.
분지천에 의해 바로 앞의 이화령을 보면서도 크게 우회하는 산줄기가 이제 정점을 찍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이화령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그 산줄기를 따라 나 역시 휴식을 끝내고 북서향으로 마룻금을 쫓아 내려간다(12:57).


이화령 방향으로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이정표[옥녀봉 갈림길 ↑(… / 이화령 6.9km) ↓(백화산 0.1km / …) →(마원리 3.4km / …)]가 나오고
고도를 조금씩 낮추는 대간길은 암릉을 만나는데 우측편의 바위 사이로 내려진 줄이 갈 길을 알려주고 있다(13:07).
줄을 잡고 내려가 몇 걸음 걸어가면 다시금 바위가 길을 막으면서 이번에는 줄을 잡고 올라가라 한다(13:09).
암봉을 직접 오르지 못하고 우측으로 내려갔다가 우회하면서 좌측으로 다시 올라서는 것인데 백화산이 잘 가라고 손짓하고 있다.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사용이 불가능한 헬기장을 지나면 (13:16) '흰드메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13:19).
이제 부드러운 흙길로 바뀐 산길은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슬며시 능선 구릉으로 올라서지만 부담이 없는 오름길이다(13:24).
지금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화령까지 계속하여 고도를 낮추는 산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의 지친 발걸음은 힘들기만 하다.
2003년경 가을에 친구와 은티마을을 출발하여 산성터를 경유하여 백화산에 도착하였다가 이화령으로 내려가면서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백화산까지는 정상적으로 도착하였는데 이화령으로 내려가는 도중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발생하였고
그 통증은 내리막길에 극심한 고통을 주어 아마도 네다섯 시간 정도 걸려 이화령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된다.
반면 오늘은 무릎의 통증은 없지만 여름의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먹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체력마저 바닥난 상태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그때처럼 악몽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니 더욱 더 힘들어진다.


능선 구릉을 넘어 완만히 내려간 안부에서 백화산에서 만난 산꾼을 다시 만나지만 쉬었다 간다고 하여 먼저 황학산(912m)에 올라선다(13:34).
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그저 그런 밋밋한 능선인 황학산에서 물 한모금으로 속을 채우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13:37).
완만한 능선길은 이정표[←(분지안말(50분)←흰드뫼) ↓백화산(80분) ↑이화령(백두대간)]가 서 있는 황학산 삼거리를 지난다(13:43).
잠시 후 짧지만 다소 경사진 오르막을 올라 나뭇잎이 무성하여 조망이 막힌 능선 구릉에 이른다(13:50).
이후 별 기복없이 흐르는 대간 능선길은 푸릇푸릇한 초지를 가르면서 이어지는데 내리막 능선 상에서 잠시 멈추어
고리에서 풀린 등산화 끈을 다시 묶느라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간다(14:02~04:06).


평탄한 산길은 과연 대간길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기복이 없는데다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연못)을 만난다(14:12).
2003년에 지날 때에 신기하기만 했던 곳인데 오늘은 이화령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로 다가선다.
(이곳이 백화산에서 이화령까지 거리 중 절반 정도 진행한 지점이지만 산행 당시에는 이삼십 분 정도만 더 걸으면 이화령이구나 생각했었다.)
기분상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낙엽송 숲길을 지나 경사진 오르막을 올라 폐 헬기장에 도착한다(14:18).
그리고는 오 분 후 사용 가능한 넓은 헬기장을 지나 짧은 오르막길이 끝나면서 조봉 정상석이 있는 둔덕같은 능선 구릉에 이른다(14:26).
정상석 주위는 군부대 개인호 같은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조봉의 해발고는 617m이지만 고도계는 817m를 나타내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고도계가 기압식 고도계로 기압에 따른 편차를 보정하지 않아 50m 정도 있다해도 너무 터무니 없는 차이이다.
지도의 능선은 740능선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상석을 세운 산악회의 실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야트막한 능선 구릉으로 올라선 산길은 잠시 다소 경사진 내리막으로 바뀌어 사 분여 내려간다.
그리고서 다시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이어가는 대간 산길은 우측편에 특이한 지질의 바위 직벽으로 움푹 패인 웅덩이가 있는 곳을 지나(14:41)
잠시 후 지도 상 조봉으로 표시된 지점의 능선 구릉을 만나는데 우측 아랫편으로 가옥이 보인다(14:45).
높낮이의 차가 별로 없는 능선은 알게모르게 고도를 낮추어 가다가 다시 한 번 경사진 오르막으로 능선 구릉에 올라서고
일 분여 후 높아만 보이는 681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14:59).
좌직진하는 오름길은 군부대가 있는 681봉으로 올라가는 길로 대간 능선길이지만 모두들 우측의 사면길로 우회한 듯 하다.
하여 나도 우측의 사면길로 마음 편히 우회하기로 하고 681봉을 가로 질러가다가 군부대의 계단길과 조우한다(15:11).
군부대 계단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 연풍에서 이화령을 넘어 문경으로 내려가는 도로에 내려선다(15:13).
이화령 고갯마루에서 문경 방향으로 이십여 미터 내려온 지점으로
고갯마루에는 일제에 의해 끊어진 백두대간의 혈맥을 상징적으로 복원한 생태연결통로가 본래 높이인 해발고 548m 높이로 연결되어 있다.


도로에 의해 끊어진 대간 마룻금을 인위적으로나 연결한 생태이동통로가 있는 좌측의 이화령으로 올라간다.
고갯마루에 조성된 전망대는 문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유안진 시인의 '문경새재는 귀사랑고개'라는 커다란 시비가 눈길을 끈다.
다음 구간 들머리인 이화정은 눈으로만 보고 생태이동통로 터널을 지나 이화령휴게소로 가니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이화령' 표석이 있고
'백두대간 이화령을 잇다!'라고 시작하는 비문이 적힌 비석이 우측에 자리잡고 있다.

백두대간 이화령을 잇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 이화령(梨花嶺)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단절된 후 87년 만에 다시 연결되어
민족정기와 얼을 되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큰 뜻을 발의한 행정안전부가 주관하여 산림청이 지원하고 괴산군이 사업을 맡아 2012년 2월부터 동년 11월까지
길이 90m, 폭 46m의 마루금을 복원하여 본래 높이인 해발 548m로 백두대간을 연결하였다.
아울러 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시비를 세워 온 국민이 공감하고 지속적으로 계승∙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영남과 중부지방의 연결 지점인 이화령 복원은 단절된 생태계와 국토혈맥의 연결이요
나아가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세운 최초 복원사업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그 뜻을 머릿돌에 새긴다.
2012년 11월 15일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 / 산림청장 이돈구 / 괴산군수 임각수


이우릿재로도 불렸던 이화령(梨花嶺)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지금의 한자로 쓰인 배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화현(伊火峴)'이라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梨花嶺' 표기는 조선총독부에서 1914~1918년에 걸쳐 조사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서 잘못 표기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 표기다.
1929년에 김유동이 저술 간행한 팔도명승고적 문경군조에도 '伊火峴'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또는 이화령은 아득하다, 희미하다의 옛말 '입다'의 고형태인 '이블다(이울다)'에서 '이블'을 취하여 아득한 고개라는 뜻으로
이블재(伊火峴)라 일컫던 것이 전음되어 이울재→이우릿재라 일컫던 고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문경과 연풍을 잇는 이화령은 조선 말기까지만 해도 그다지 큰 고개는 아니었지만 일제 때인 1925년 현재 3번 국도의 모체인 신작로가
뚫리면서 통행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휴게소로 들어가 시원한 음료수로 더워진 몸을 식히고 주변을 대충 둘러본 다음 복장을 정리하면서 문경개인택시를 호출한다.
이번 산행 전 버리미기재에서 이화령까지 한 구간으로 하여 약 11시간 정도 산행하면 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두 구간으로 나누어 산행한 것이 다행이라는 판단이 든다.
한 구간으로 산행하였다면 무더위에 지친 기력으로 아마도 이화령에 제대로 도착이나 할 수 있었을련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호출한 택시가 도착하여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면서 땀을 씻을 수 있는 목욕탕을 물어보니
문경공용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5분 이내의 거리에 문경종합온천이 있다고 하여 바로 온천으로 간다.
택시 이용요금은 미터기로 계산되며 이화령휴게소에서 문경종합온천까지 13,000원이 계산되었다.
이틀간 산행에 지친 몸과 더위로 흘린 땀을 간단히 씻고 문경공용버스정류장에서 17시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교통정보] ※ 대중교통별 운행시간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해당 교통편 홈페이지에서 재확인을 요함
이화령→문경 공용버스정류장 : 대중교통편이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해야 함[편도 10분 내외 소요]
문경 개인택시 #1 서석영(경북 16바 3187) 010-3533-2821 / 054-571-7171
문경 개인택시 #2 010-3522-0925


문경→서울(동서울종합터미널) 시외버스 운행시간(문경 공용버스정류장 ☎ 054-571-0343)
[2시간 소요] 06:50 07:50 08:50 09:20 10:50 13:00 14:10 14:50 15:50 17:00 17:50 18:50 19:40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bmg.go.kr)에 표시되는 버스 시간은 정류장의 시간표와 틀려 정류장 시간표로 기록하였음

 

[산행기 원문]  http://blog.daum.net/sungbh98/814

[산행사진 #1]  http://blog.daum.net/sungbh98/815

[산행사진 #2]  http://blog.daum.net/sungbh98/816

[산행사진 #3]  http://blog.daum.net/sungbh98/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