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페이지 관리자님 자리를 차지 해서 죄송 합니다.
허락 하신다면 앞으로 계속하여 1회 부터 36회 진부령 종주 까지 글을 올리겠습니다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번 첫회는 허락 없이 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드디어 "백두대간 종주" 大長程에 오르다

1. 백두대간 종주 대장정에 오르다 (1회차 3구간 / 주촌리-매요리)

"백두대간 종주" 大長程에 오르다

내 나이 올해로 쉰넷, 살아온 세월 보다 살아가야 할 삶이 적은 것은 결코 부인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만큼만 더 살수 있다면 무엇이던지 하고픈 것이 인간 이라면 나도 여기에 속할 수 있겠지,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쉰넷의 빚 바랜 세월 동안 오직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내 인생 그 삶을
뒤돌아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빈 수레의 요란한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빈곤 하거나 권위가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살아온
인생사에 대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한가지 가지고 있었던 꿈이 있었다면 민족의 정기가 살아 숨쉬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산과 강을 동과 서로 양분하는 한반도의 험한 준령
精氣의 대동맥(척추)인 백두대간의 흙을 직접 발로 밟아 보고 한번 정복 해 보고 싶었던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장장 807km의 험준한 도상거리, 결코 만만찮은 여정이며 지리산 천황봉은 최대 14시간의 산행 도보,
태백준령의 험한 山勢들, 총 372시간이나 소요되는 기나긴 여정,
이것이 지금까지 망설이게 한 것이다.

언젠 간 흙으로 가야할 劫을 가지고 태어 낳건만 그 장엄하고 고귀한 한족(一足)의 흙을 밟지 못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슬픈 일 일까 ?

그런데 마음만 있었지, 수 차례 계획을 세웠으나 계획으로만 끝나고 또 독한 마음으로 한번 해야지
하면서도 실행 하지 못하였던 그 준엄한 大長程, 이름하여 백두대간 종주 !

이번에는 반드시 종주 해야지 하면서 굳은 마음으로 긴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지난 세월 중동 동남아 각국과 한반도 구석구석을 출장 하면서 모아둔 많은 교통편 영수증들을 토대로 준비 중인 자서전에도 백두대간의 일부분을 붙여 넣고 싶다.

그렇게 하여 지나온 것에 대한 자취를 남기고, 후회를 씻고 여정의 공백을 차곡차곡 메워 나갈 것이며 소리없는 수레 바퀴로 묵묵히 살아 갈 것이다.

그 때는 하늘을 보고 마음껏 외치며 이렇게 살아 왔노라, 그리고 또 이렇게 살아 가겠노라고 하면서...

그리고 이번 대간의 장정에 오르게 많은 배려를 해준 우리 가족들에게 이제야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산행회차 : 1회차 3구간 고남산 출정식
2)산행기간 : 2002. 3. 2 (21:20)~ 3. 3 (19:20)
3)산행구간 : 3구간 주촌리 -수정봉-여원재- 매요리 20km
주촌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리 (남원 운봉)
4)접근구간 : 3/2 자댁(21:10-신대방-교대-양재역(22:40-판교인터체인지(11:11)-천안휴게-덕유산휴
게소-남원인터체인지-주촌리도착(03:50)
5)산행여정 : 3/3 산행시작(03:55)-노치마을(04:00)-우물(04:05)-수정봉-봉승 황토마을(여원)(05:30)
-고남산 정상 팻말(08:20)-통신대통과(08:25)-매요리 도착(10:00)-전심식사
6)복귀구간 : 매요리 출발(15:00)-덕유산휴게소-죽암 휴게소-죽전 휴게소-양재도착 하차-양재역-교대
역-신대방역-자댁(19:20)
7)산행 준비물 : 등산복(폴라텍 상의, 바지), 등산화, 28리터배낭, 비옷, 아이젠, 손전등, 2단 스틱,
칼, 방한모, 방한장갑
8)조식 및 행동식 : 팥떡1봉지, 귤5개, 영양갱1개, 팥영양갱1개, 밀크쵸코랫1봉지(팥 음식은 한의학적
피로회복제)
9)산행 협조처 및 교통편 : 가고파 산우회, 두레관광
10)산행 후기

-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까지 -
갈까 말까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느 영작문에 나오는 구절 같다.토요일 오후 퇴근 시간이 임박하여 머리에는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이리저리 딩군다.
갈까 말까 예이 다음 기회에, 아니지 또 나이를 더 먹게 되는데 아니다, 이번에 반드시 가야지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쉼 없이 떠 오른다.

첫 출정 산행이 지리산이나, 진부령이 아닌 고남산이라서 더더욱 망설이게 한다, 아니다 이것 저것 구미에 맞추다간 허송 세월만 다 보낸다.

지리산이면 어떻고 고남산이면 어떼, 산불방지 기간이라고 입산 금지를 하였는데 입산 금지 구역은
가지를 말아야지. 어디서 시작한들 어떠냐 백두대간의 기와 맥은 같은데 자꾸만 중복적인 질문을 얻게 된다. 어떻던 오후에 결정을 해야 한다 시간은 지체 없이 자꾸만 간다.

오후4시 전화기를 들고 주어진 다이얼을 돌린다 상대방에서 공손히 전화를 받아 준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늘 백두대간 첫회 출정 하는 날이지요 하니까 그렇단다. 그 때에도 확실한 마음을 굳히지 못하고 갈까 말까 하는 반신 반의였다.

- 先親의 암시 -
그 때였다 반짝하는 생각이 떠 오른다 무엇이냐 하면 돌아가신 선친이 지어주신 우리 집 가훈 "용기" 그래 바로 이것이야 하고 "저 오늘 백두대간에 참여 하고 싶은데요" 하고 결정한 시간이 오후 4시였다
이제 출발해야할 시간이 5시간 남았다. 결정 을하고 나니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평소 읽어 둔 등산 용품들과 기본 지식들을 총 동원하여 준비 하기 시작 하였다.
동네 슈퍼에 가서 이것 저것 행동식 하며 조식에 필요한 음식물을 구입하고 배낭을 꾸리기 시작 하였다.

가족들에게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상태인지라 특별히 알리고 할 필요는 없었다.
이리 저리 준비하다가 보니까 금방 시간은 밤9시가 넘어 서고 있었다.저녁은 간단히 먹은 상태이고
매일 밤 빠짐없이 보는 저녁9시 종합 뉴우스를 하고 있는데도 눈과 귀에 들어 오지 않는다.

-가자 백두대간으로 -
저녁9시20분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잘 갔다 오라는 가족들의 인사 그리고 설레이는 마음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 하지만 필요없는 질문을 한다.

신대방역에서 전철을 타고 교대역에서 다시 갈아타고 양재역으로 간다.양재역에서 7번 출입구로 나왔는데 어디인지 금방 거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잘 아는 길도 지하에서 금방 지상으로 올라서면 헛갈리듯이 구민회관을 지척에 두고도 길을 물었다.
빵집 아저씨가 저어기 라고 한다 아마 충청도 분이신가 보다.

구민 회관 앞에 도착하니 여러대의 관광버스가 있는데 첫 번째 버스에 다가가서 가고파 산우회 입니까 하니까 맞다고 한다 어쩐지 처음부터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차에 오르니 좌석 번호가 22번 창쪽 인데 21번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분이 먼저 타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사이인지라 늦게 온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까 서로들 반가워 하였고 우리는 금방 친구 인냥 가까워 졌다 역시 기분이 좋았다.

밤11시 차는 출발 하였고 드디어 백두대간의 대 장정에 올랐다.
나와 같이 처음으로 온 왕초보 대간꾼, 여러번을 같이 한 손님들 잠시 무언의 시간이 흐르고 차내 안내 방송으로 간략한 인사를 하고 푹 주무 시란다.
그런데 잠이 올리가 있나 그냥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준비한 발원문의 말꼬리를 이어 가다가 옆 사람에 대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또 잠을 청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천안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여 덕유산 휴게소를 경유하여 남원에 도착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다 -
드디어 기다리던 목적지 주천리 첫 백두대간 코스에 발을 내린다.
전라북도 남원읍 주천리 음식점 앞에 도착하니 새벽 3시55분 우리는 공식적인 산행을 시작 하였다.
늦은 겨울 보름달이 기울어 스무날 하현달이 희미한 시골길 벌판을 밝힌다 전설 속의 의좋은 형제가
벼 짚을 나르는 장면을 연상 시킨다.
주천리에 도착한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서 노치마을 입구에 닿는다.
마을 입구에는 돌로 만들어진 이정표가 손전등 불빛에 먼저 눈에 들어 온다.마을 이름도 특이 하다
무슨 슬픈 전설 이라도 있는 건지, 돌에 새겨진 노치마을을 우측으로 잘 포장된 길을 따라 마을을 가로 질러 들어 간다.

- 노치마을(가재마을) -
마을길 들어서려니 새벽녘 시골집 개들이 짖어 대는데 온 동네가 떠나 가는 것 같다. 소리를 줄였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꼭두새벽에 잠을 자고 있을 농부들에게 미안한 것 같아서 조용히 하였지만 귀 밝은 개들을 어떻게 감당하랴.

시멘트 포장 도로를 조금 가면 동네 한 복판에 이름하여 대간상에서 제일 물맛이 좋다는 우물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물을 한잔씩 떠서 마셨다 그런데 물맛은 ?
우물을 연상하면 이런 구절이 생각 난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또 이런 생각이 든다 도회지에서는 물도 사 먹는데 이런 곳에서는 누구든지 아무나 물을 마음대로 먹을 수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여기서도 물을 팔면 될 텐데 말이야, 공연히 헛된 생각을 가졌나 하고 위를 보면, 바로 위 향나무 가지에는 온갖 백두대간 꾼 들이 달아 놓은 형형 색색의 꼬리표 들이 손전등으로도 쉽게 보인다.

- 수정봉(804m) 정상에 서다 -
다음에는 나도 준비를 하여 후배 대간 꾼 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있는 자취를 남겨 놓아야지 하면서 우물을 뒤로 하고 드디어 수정봉(804m)산행을 시작한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동네 뒷산 같은 기분으로 묘 2기를 우측으로 지나고 한참을 오르다 보니 수정봉
정상에 오른다.
여기서 발원문을 낭독 해야지 하면서 준비한 발원문을 마음 속으로 한참 동안 읽기 시작 하였다.

三神님께 고 합니다,

술과 떡 그리고 포를 준비 하여 자리를 펴고 곡간 대제 제례를 하여야 도리 이오나 자리와 환경이
여의 치 않으니 굽어 살펴 보소서 하고 다음과 같이 읽는다

發願文

維歲次 壬午 3월 3일 敢召告于

산의 기(土)와 정기(風)를 주실 산신령님 !
우주 공간의 삼라만상님 !
그리고 여기까지 있게 해주신 우리 조상님 !

저는 오늘 백두대간 종주에 길고 긴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우리 조상님 !
오늘까지 아들 딸 잘 낳아서 건강하고 잘살게 해 주신 우리 조상님, 또 건강하게 백두대간의 대장정에 늦게나마 오르게 해주신 조상님에게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삼라만상님 !
눈보라 치는 매서운 겨울이 가면, 꽂 피고 새가 우는 봄이 오고, 또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은
변함없는 우주공간의 삼라만상이 우리 인간에게 준 대 원칙이라 생각하고 매 구간마다 변함없이
四季를 주실 것을 고하며 무사한 백두대간 종주에 큰 힘이 되어 주실 것을 고 합니다.

산 신령님 !
산의 기와 정기를 주실 산신령님, 이제 막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저에게 앞으로 구간 구간마다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산의 기 와 정기를 주시어 무사히 마지막 진부령 구간까지 당도 하여
환희의 눈물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 하여 주시고,
특히 야간에 길을 잃을 떼에는 바른길로 인도 하여 주시기를 고 하오며, 또 하루 빨리 남북 통일이
되어 갈 수 없는 백두산에도 살아갈 인생 동안에 종주 할 수 있도록 산신령께 고하오니 깊이
헤아려 주시고,

이제 마지막으로 三神님께 특별히 고하오니 같이한 회원들과 그 가족들 저를 알고 있는 모던 분들과
같이 하고 싶고, 또 우리 가족들에게도 건강과 행복을 주실 것을 여기 수정봉 정상에서 三神께 告
합니다.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

2002년3월3일 04시10분
Chari Killo 장채기

발원 후 수정봉에서 내려다 본 시야는 옛날 역사 책에서 배운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던 황산마을과
황산벌이 자리하고 있고 계백장군의 넋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였단다. 그리고 흘러간 옛날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떠 오른다.

- 여원재(470m)고개마루를 넘어 -
수정봉을 뒤로 하고 나즈막 한 봉우리를 여러번 오르내리면 여원재(470m)에 도달한다.여원재는 남원에서 함양간 24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마루로 길옆 마을 입구 돌에 새겨진 글씨는 봉승 황토마을 이라고 적혀 있다. 아마 이 곳에는 황토가 유명한 곳인가 보다 또 여기는 마을 입구마다 마을 이름을 돌에
새겨서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에 이정표를 만들어 둔 것이 특이하다 돌도 많은가 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바로 길 옆 밭두렁으로 올라선다.

- 고남산(847m) 정상 팻말 앞에서-
밭을 지나고 논을 지나고 또 허물어진 시골집을 지나 1시간 정도를 가다가 산중턱 이름 모를 묘지에
않았다. 묘지 지하에 계시는 조상님은 어느 조상인지는 모르지만 죄송 합니다 여기에서 식사를 좀
하겠습니다. 하면서 업 을하고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래야 준비해간 떡과, 귤 2개로 아침을 대신한다.
땀이 마르기 전에 바로 이어서 돌밭과 급경사를 비오듯 땀을 흘리며 숨차게 오르면 고남산 정상(846)
에 오른다. 고남산 정상에서 들어온 시야는 남으로 바라본 지리산의 주능선이 웅장하고 장엄하게 건너다 보이고 서쪽으로는 남원시가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문득 남원이 고향인 친구의 얼굴이 떠 오른다.

-매요리 마을을 찾아서 -
고남산 정상에서 내리막길 길을 따라서 통신대를 우측으로 끼고 시멘트 포장 길을 넘어서 다시 솔밭으로 내려선다.낙엽으로 腐土화 된 솔밭 길, 가늘지만 쭉쭉 뻗은 소나무 하며 향기로운 송진 냄새가 나를 반기는 듯 하다.
우측 다리에서 근육통이 일어난다 평소에 걸음을 많이 걷고 준비를 하였는데도 척 구간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본다 계속 이러면 문제인데 걱정이 된다 그래도 가야한다.
자그마한 봉우리 여러개 오르내리기를 여러번 도착지인 매요리에 도착하니 산행에 지친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이 교회 종소리가 예배 시간을 알리는 확성기에서 요란한 성가를 울린다.
매요리에 도착하니 매요 휴게소 할머니도 우리를 반긴다. 7남매를 잘 키워서 도회지로 내 보내고 혼자서 장사를 하신단다. 시골 촌노의 움푹 페인 주름살 밑으로 때묻지 않은 인심을 보는 것 같고 너무
친절 하시어 우리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매요 휴게실 할매집 전화 : 634-1844)

- 1차 3구간 종주를 끝내고 -
우리는 간단한 전심 식사를 하고 피곤한 몸을 차에 싣고 서울로 향했다.

또 다음의 여정을 준비 하면서...

2. 2회차 4구간 종주 계획
1)산행일정 : 2002. 3 .16 ~ 3. 17
2)산행구간 : 매요리-복성이재-봉화산-중재-중재마을 (전북 운봉면, 경남 함양군)
2002년03월05일 씀
Chari Killo 장채기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