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속의 초행길 백두대간(주촌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유치재)

"주촌리-수정봉-입망치-여원재-고남산-통안재-유치재-임리"산행기(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운봉읍/2002년 1월 26일/날씨 : 하루종일 눈/ 총 산행시간 : 4시간 12분)

◎ 참석자 : 바랭이, 아차산, 행복나누기, 이사벨라. 윤종하, 준치외 토요 백두대간 종주대원(92명)

◎ 차량이용 : 고려고속관광버스 2대

◎ 산행코스
주촌리-산신당-수정봉(804.7m)-입망치-여원재-561.8m-고남산(846.4m)-통안재(704m)-유치재-임리

◎ 개 요
▶ 수정봉 : 이 산에서 수정이 나므로 "수정봉"이라 함. (804.7 m)
▶ 여원재 : 이 태조가 왜적 아지발도를 토벌하러 갈 때, 이 곳에서 한 여인에게 황산을 물었다 함.
▶ 유치재 : 이 고개에 유지향소라는 명당이 있다 하여 유지재라 하였는데, 속칭 부르기 쉽게 "유치재"라 칭함.

◎ 산행일정
07 : 08 동대문 야구장 출발
09 : 30 금산 인삼휴계소(22분 휴식)
12 : 08 주촌리 노치부락입구 도착 12 : 55 수정봉(804.7m)
13 : 10 입망치
13 : 27 바위지대
14 : 02 여원재(점심 : 22분)
15 : 40 고남산(846.4m)
14 :20 유치재

◎ 산행일기
간밤에 잠이 안 와서 흰초를 한병 마시고 자니 잠이 잘 온다.
눈을 뜨니 06 : 20이다.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나서려니 기도원에 갔던 집사람이 들어선다.
집사람에게 운전을 하고 오라하고 집사람 차로 내리달려 동대문 새벽시장 두산타워 앞에 도착하니 06 : 52 늦지 않게 도착했다. 집사람에게 조심하여 들어가라 하고 야구장 앞으로 가니 차가 자그만치 3대나 세워저 있다. 대간차가 2대이고 선자령 차가 1대이다.
그동안 보지 못하였던 많은 얼굴들을 보니 굉장히 반가웠다. 김종성고문, 박융언 부회장, 박동성대장, 김미숙총무, 우연희대장등등------.
차에 오르니 아차산과 어부인이 일찌감치 오셔서 좌정하고 계시다.
첫날의 어수선함 때문인지 제시간에 차는 출발치를 못한다.
우리 sbs회원의 자리는 가운데에 나란히 6좌석이 이름표가 붙어있다.
8분 늦게 차는 출발하여 양재동 서초 구민회관 앞에 당도(07 : 30)하니 바랭이, 이사벨라님이 타신다. 그곳에서 박민화 회장은 선자령으로 가는 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톨게이트에서(08 : 10)도 손님을 태우고 차는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흘러간다.
꾸득꾸득 하던 일기가 마침내는 터저서 눈이 내린다.
차는 대전에서 30번 고속도로로 집입하여 좌측으로 통신탑이 있는 산을 경유하여 달린다.
모든 산하는 머리에 흰머리가 난 것 모양 눈에 덮히어 희끗희끗하여 보인다.
단풍에게서 전화가 와 지금 성삼재를 향하여 가는데 아마도 눈이 무척 많이 오고있어 성삼재 차량을 통제할 것 갔단다.
걱정이 되는지 오늘의 아나운서 광인님에게서도 전화가오고 뒤이어 청계산님의 전화가 울린다.
폭설로 인하여 계획된 산행을 못할것 같다고 전하여 준다.
금산 인삼휴계소에 도착하여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바랭이님, 이사벨라님과 육계장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차에 오르니 시간이 촉박 하다.
눈으로 인하여 성삼재 차량 출입을 통제하여 어쩔 수 없이 주촌리에서 2회차 산행을 먼저 시작한다는 산악대장님의 방송이 있었다.
아! 난감하다.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인데 오늘 산행계획을 성삼재에서 여원재까지만 준비하여 왔으니 이거 지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어찌하여야 할 줄을 모르겠다.
하는 수없이 집행진을 따라서 산행계획을 잡아야 할것 같다.
30번 고속도로에서 88고속도로를 들어서 오름길을 오른다. 눈이 무척 많이 쏟아지고 있다.
기어코 바라지 않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트레일러가 오름길에 정차하여있고 그것을 피하던 트레일러 한 대가 그 옆을 막고 정차하고 있어할 수 없이 우리 버스도 정차를 하니 오르지를 못하고 뒤를 쫓아 오던 차들이 모두 서있다.
내려오는 차들을 정리하고 하행선 쪽으로 올라서 차는 다시 출발한다.
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 차는 노치부락 입구에 도착하여 하차를 하고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모두 스패치와 아이젠들을 착용한다.
대간 출정 사진을 찍는다고 밭으로 들러서니 눈은 발목을 넘게 차 오른다.
함박눈이 쏟아지며 온 세계는 하얀 면사포를 둘러쓴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세멘 포장 도로를 사박 사박 눈을 밟으며 따라가니 어려서 시골에서 볼 수가 있었던 정겨운 우물이 마을 어귀 왼쪽 모서리에 잘 정비 되어 있어 정감을 느끼게 한다.
바가지로 퍼서 사용하는 흘러 넘치는 우물이다.
중학교 이후에 아니, 군에서 사용하여 보고 많은 세월 속에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을 아련히 떠오르게 하여 주고 있 는 것이다.
우물을 지나서 우측으로 돌아 뒷동산으로 오른다. 이건 산이 아니고 어릴 때 뛰어 놀던 뒷 동산이다.
여러 가지들이 추억이 머리를 휘몰아치며 사라저 간다.
멋있는 소나무 2그루가 서있는 산신제를 지내는 터를 지나면서 고도를 서서히 높히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니 100여명이 줄지어 오는 200여m 붉고 검은색, 푸른색의 행열이 참으로 장관 이었다.
완만한 숲속 길 등로를 러셀을 해가며 앞으로 치고 오르기 시작한다.
거인의 리더가 앞에서 러셀을 하며 오르고 내가 바짝 뒤에서 따라 올라간다.
숨소리가 가빠지며 눈길을 헤치며 오르는 산행 길은 참으로 신선했다.
어느덧 능선에 올라서 방향을 좌측으로 틀면서 완만한 능선길을 콧노래와 함께 흘러간다.
온 천지는 은막의 세계로 변하여 졌다.
한 차례 눈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서고 다시 올라서 5분간의 짧은 장비 점검 휴식시간을 취한 뒤 다시 오른 편으로 내려선다.
가슴 설레이는 심설의 산행에 즐거움이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산행이다.
내려서며 올라서며 숨을 헐떡거리며 올려치니 수정봉(804.7m)이다.
많은 사람이 오다 보니 그래도 선두가 8명으로 압축 된다.
숨도 돌릴 틈도 없이 좌측으로 방향을 틀며 미끄러지듯이 내려선다.
산판도로가 있는 입망치를 가로 질러 오르니 묘가 있고 조금 더 오르니 묘를 한기(13 : 15) 또 지나가게 된다.
계속 진행을 하면 등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낮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가면 행정리로 내려서는 등로이고 좌측으로 가파르게 올라서는 등로가 대간 등로 이니 여기가 독도를 주의하여야 할 곳이나 지도를 볼 줄을 알면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지역이다.
좌측으로 올라서니 다시 방향은 북쪽으로 꺽이며 바위지대를 오르기 시작한다.
바위 지대를 올라서 내려서는 등로는 눈에 덮히어 발을 헛 디디면 눈에 허벅지까지 빠지며 중심을 잃고 넘어저 발을 다치기가 쉬운 곳이니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이 위험한 바위지대에 있는 묘를 지나서 너덜을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30여m 내려서다 우측의 소나무 지대로 붙어 올라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어느덧 작은 소나무의 밀림 숲속을 빠져들 듯이 들어가 요리요지 휘저으며 완만하게 내려서니 임도와 마을이 나온다.
임도를 건너 철책담이 처있는 곳을 지나니 우렁찬 개짖는 소리가 우리를 반긴다.
철책을 따라 진행하다 내려서니 24번 국도 여원재에는 우리를 태우고 온 2호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옷은 눈이 내려서 녹으며 모두 젖기 시작이다.
버스에서 콩 통조림과 아차산이 끓여준 컵라면으로 점심을 하니 먹기도 전에 출발들을 한다.
14 : 15에들 출발을 하고 점심을 모두 먹고 22분에 팩을 둘러메고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쁘다.
완만한 능선을 바삐 좇아 오르니 쌍묘가 나온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90도를 꺽어 밭 옆으로 난 농로로 내려서다가 다시 솟구치며 올라서기 시작한다.
아! 점심을 하는 시간에 모두들 그냥 쉬지 않고 올라서 많은 사람들이 앞에 가고 있었다.
반팔에 열심히 걷고 있는 모습이 보여 이거 바랭이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앞으로 질러가니 용감하고 씩씩한 바랭이 님이시다.
여장부다. 아무리 추워도 반팔T에 쉬지않고 끊임없이 걷는 모습에 기가 꺽힐 것 같다.
바쁜 걸음으로 선두를 쫓는다. 뒤에 가니 내려서는 길은 다져져 있어 보통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어떻든 앞에 가야만 그래도 쉽다. 눈은 약 30cm 정도가 쌓여 있고 계속하여 눈은 내리고 있다.
올라서는 대간 등로 변에는 묘가 쉬지 않고 나오며 이곳부터는 쌍묘가 많이 출몰한다.
백두대간의 능선상에 있어 그자손의 기가 백두산 까지 다다르라고 대간 줄기에 해둔것 일까!
숨을 한 것 몰아쉬며 선두를 쫓아 잡으니 6명으로 압축되어 있다. 앞에서 러셀을 하며 가던 젊은 친구가 힘이 들던지 잠시 쉰다.
우대장이 형님 럿셀맨이 앞으로 서세요.
야, 젊음 놈들은 뒤에 있고 노인네 앞세우냐 하면서 앞을 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눈이 발에 달라붙고 장단지까지 파 묻혀 가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나무마다 흰눈으로 목화꽃과 같은 하얀 눈꽃들이 둥글 둥글하게 피여 있는 지경을 아! 감탄사 한마디로 다 표현하고 만다.
정말 아름 다운 풍경이다. 본전이 생각나는 산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경으로 본전을 다 찾은 것이다.
몇차레의 오르내림 끝에 바위 지대를 만난다. 우측으로는 미끄러저 떨어지면 큰 사고가 날만한 곳이다. 정면으로 올라 슬려고 눈을 헤치니 바줄이 보인다.
바줄을 잡고 돌려서 눈을 털어 내어 길을 내고 올라서니 이번에는 뚝 떨어지는 곳에서 등로가 보이지를 안는다.
좌측의 등로를 찾아 내려 섯다가 올라서니 또 바줄이 매여진 곳을 잡고 올라선다.
드디어 이동통신 중계탑과 고남산(846.4m) 표시목이 있고 이정표가 유치재 4km를 가르킨다.
그곳을 내려서니 산불초소가 있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헬기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앞을 바라보니 우뚝 솟아 있는 엄청난 철탑으로 이루어진 중계소가 딱 가로막고 있다.
혼자서 중계소 좌측으로 가파른 곳을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려서니 통안재 도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서야 되는데 좌측능선으로 올라서더니 계곡으로 내려선다.
내려가다 보니 등로도 없고 표시기들도 없어서 다시 Back하여 올라서 도로로 내려간다.
김영민씨와 아차산, 나 셋이서 대간 등로를 따라서 계속 진행을 한다.
등로는 잘 나 있지만 이곳이 처음이고 지도도 없는 상태에서 불안한 마음을 떨처 버릴 수가 없었다.
눈쌓인 등로를 헤치며 완만한 등로를 한참을 내려서니 유치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농로를 찾아 올라 길을 따라 한참 가니 임리에 도착한다.
이곳의 산하는 강원도와 달리 굴곡이 완만하고 하여 힘이 덜 들고 뛰어서 산행을 할 정도 이나 눈이 와서 그나마 재미 있는 산행을 하게 되었다.
완만한 평야에 마을과 논밭을 지나는 재미가 없는 코스이나 눈으로 인하여 심설 산행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임리에서 차 있는 곳을 몰라서 지도도 없고 하여 매요재를 물어서 그곳으로 가다가 운봉쪽으로 방향를 잡아 계속 도로를 따라 가다가 무전기로 이구 대장에게 물으니 권포로 찾아오란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 들판 한가운데서 권포가 어디란 말인가?
숲말재 방죽 뚝에서 눈썰매를 타는 사람에게 권포를 물으니 오신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란다.
지도가 없으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온 길을 되돌아가는데 1톤 화물차가 와서 세워 도움을 청하니 흔쾌히 허락하며 일부러 권포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셨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호차는 출발하였고 2호차가 대기하고 있다. 아차산은 마눌님에게 점수를 따야 겠다며 마중을 나간다. 나는 그사이 동네를 다 뒤집어 문을 닫아 있는 공판장을 찾고 주인을 찾아 참초를 8병이나 구매를 한다. 버스 맨 뒷 좌석에 앉아서 김영민, 윤종하, 나 셋이서 초를 깐다.
초장부터 안주도 없이 깡초에 가 아차산이 차에 오르지도 안았는데 차를 출발 시켰다.
1km 정도 가니 아차산이 전화를 하여 나를 버리고 가면 어떡하냐고 한다.
뛰어 오라고하고 기다렸다 태우고 오는 버스 뒷 좌석을 오랜만에 만나는 회포의 장소로 삼아 참초를 8병이나 해치 웠다.<서울에 도착하여 양재에서 내리는 아차산도 몰랐고, 버스에서 내려서 가는데 윤종하님이 불러서 쟈켓도 챙겨 주셨고 막가파의 하루였었다.
2틀이 지난 지금에도 몸 조시가 안좋고 죽을 지경이다.
나이 먹어 가면서 몸을 추수리는 산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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