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1차 구간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1. 1 ~ 1. 2
2.산행구간 : 지리산 천왕봉 ~ 성삼재
3.산행동지 : 나홀로
4.산행여정
• 2001. 12.31
23:35 울산 출발 - 02:10 중산리 도착

• 2002. 1. 1 (제1소구간 : 천왕봉~벽소령대피소)
06:35 매표소 출발(산행시작) - 07:04 칼바위 - 07:43 망바위 - 08:15 법계사 도착(08:45 출발) - 09:30 개선문- 09:53 천왕샘 - 10:13 천왕봉 도착 (10:25 출발) - 11:17 장터목 도착(12:15 출발) - 13:10 촛대봉 - 13:23 세석대피소 - 14:10 칠선봉 - 14:55 선비샘 - 15:40 벽소령대피소(1박)

• 2002. 1. 2 (제2소구간 : 벽소령대피소 ~ 성삼재)
07:00 벽소령 출발 - 7:41 형제봉 - 08:32 연하천 - 09:55 토끼봉 - 10:18 화개재 - 10:48 삼도봉 - 11:31 임걸령 - 12:54 노고단(13:30 출발) - 14:00 종석대 - 14:36 성삼재 도착

5.산행기

• 백두대간을 꿈꾸며

작년(2001년) 12.15-16일 덕유산 적설기 종주를 마친후 전혀 생각지도 않은 백두대간이라는 단어가 불현듯 찾아왔다. 그리곤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 가자. 백두대간으로 가자. 이 나이 되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는 내가 아닌가. 2002년 새해의 밝음을 시작으로 백두대간으로 나아 가자. 백두대간종주를 새해 제1의 목표로 삼아 반드시 종주를 하고 말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해 보았다. 그래서 새해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겠다.
집에 전화를 해서 백두대간 종주 지도를 사게하고 며칠간 그 지도위에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그어 나갔다. 지도를 타고 지리산에서 태백준령을 넘어 수없이 종주를 하고 지도위 진부령에서의 진한 감동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실제 종주를 마친 것 같은 가슴 벅차 오름을 느꼈다.
자세한 백두대간종주 자료는 시간 나는대로 정리하기로 하고 우선 신년 해돋이를 지리산 천왕봉에서 맞고 신년포부와 백두대간무사종주기원을 그곳에서 하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겠다 싶어 종주의 시작은 1월1일로 정하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듯이 매 격주 휴무일에 구간종주를 하여 진부령까지의 백두대간 종주를 2002년 하기 휴가기간까지 완주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몇가지 모자라는 장비를 보충하고 며칠전부터 배낭을 packing하고 풀었다 하면서 백두대간의 서막을 기다려 왔다. 완주의 기쁨도 함께하기를 기원하면서......

• 1차 구간종주

- 울산에서 중산리로

퇴근을 하고 바로 집으로 달려가 마지막으로 식료품과 비상식을 챙기고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한다. 저녁 8시에 자본적도 없을뿐더러 설레임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12시에 출발 예정인데 오질 않는 잠을 억지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혼자 이리저리 뒹굴러 보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11시30분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집사람은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옷갈아 입고 신발끈 메고 배낭지고 스틱집고 일어나 출발한다. 백두대간으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신정연휴라 다들 가족과 함께하는 신정휴가 계획을 생각했을 텐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미리 다 얘기한터라 흔쾌히 잘 다녀 오라고 하면서 원재는 전에 없던 주차장까지 동행을 한다. 애가 다 컸는 모양이다.

가자! 지리산으로! 지난 6월,8월 10년만에 다시 종주를 하고 11월 천왕봉에 올랐던 지리산. 참으로 가고 싶었던 겨울 지리산 아니던가. 집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구간별 종주를 모아 모아 짜집기완주를 하는 것 같은데 나보고 지난번 많이 가보았으니 다른 산 부터 해도 되지 않느냐고 은근히 만류하는 눈치다. 겨울 지리산 단독종주를 내심 걱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늘부터 종주를 마치는 1월2일까지 지리산에는 눈이 온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중부지방부터 전국적으로 눈이 오겠단다. 남해고속도로 냉정분기점에 이르니 작은 빗방울이 차창에 떨어진다. 함안을 지나자 굵은 빗방울까지...... 지리1경 천왕일출은 또 포기해야 할까 보다. 남강휴게소에 들러 우동 한그릇 먹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1월1일 02:10이다. 비가 오는 가운데 수십대의 관광버스와 수백대의 승용차가 불야성이다. 사람들은 배낭을 매거나 우의를 입은채로 우왕좌왕이다. 길을 뚫고 저만치 나아간다. 바리케이트가 보이고 경찰이며 군인이며 하얀복장의 적십자구조대며 그 바리케이트 옆에서 모든 사람과 차를 통제하고 있다. 내차가 다가가자 경찰이 다가 온다. 악천후라 입산을 통제한단다. 이미 산에 있는 사람도 내려 온단다. 비에 젖어 하산하는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를 지나 이쪽으로 내려 온다. 정말인가 보다. 아! 이게 웬일인가. 백두대간 첫단추도 꿰지 않았는데... 다음으로 미루고 내려 갈까? 아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도 날이 새면 가자. 차를 돌려 정보통신부 연수원에 주차를 하고 엊저녁 못잔 잠을 청한다. 자다가 몇 번인가 밖을 보니 상황은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네시, 다섯시 마찬가지다. 여섯시에 차를 돌려 올라가니 바리케이트가 치워져 있다. 비는 그쳤는데 하늘은 어둡다. 매표소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니 군인 아저씨가 도와준다. 밖을 나왔다. 춥다. 억수로 춥다. 매표소를 보니 사람들이 올라간다. 제길헐! 상황이 바뀌었으면 알려나 주지. 배낭을 매고 매표소로 가다가 발길을 돌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해장국 한그릇 비우고 매표소로 갔다. 국립공원 직원이 악천후라 법계사까지만 입산을 허락한단다. 해가 뜨면 어떨는지 모르지만 올라가 보란다.

- 宇天 허만수 선생

산행깃점인 법계교옆에 지리산 산신령으로 불리웠던 우천 허만수 선생의 추모비가 있다. 잠시 서서 머리를 숙여 낯 익은 추모비에 인사를 한다. 지리산이 좋아 30여년간을 지리산을 지키다가 1976년 6월 어느날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긴채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우천 허만수 선생. 선생은 살아 생전 “아무도 찾지 못하는 칠선계곡으로 들어가 묻힐 것이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한다. 몇몇 그를 추모하는 산악인들이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칠선계곡을 찾아 흔적을 찾아 보려 했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단다. 그후 진주의 산악인들은 고인의 높은 지리산 사랑을 기려 중산리 등산로 입구인 이곳에 추모비를 세워 매년 철쭉제행사때마다 이 곳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추모비를 뒤로 하고 등산로를 접어 든다. 아직도 해가 뜰려면 제법 있어야 한다. 등산로는 비에 젖어 흙길이다. 내려 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전진하는데 애를 먹는다. 비옷을 뒤집어 쓴사람, 아직도 아이젠 찬 사람 모두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다. 희미한 랜턴불만큼이나 지쳐 보인다. 그러나, 모두들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말은 잊지 않는다. 정말 기분 좋은 산행의 시작이다. 30여분만에 칼바위를 지난다. 법계사로 향하는 구름다리를 지나는데 텐트 한동이 쳐져 있다. 국립공원안에 왠 텐트? 텐트 앞엔 비상 랜턴이 깜박이고 지나치는 나를 향해 빨간 십자마크가 선명한 하얀 복장의 아저씨가 좋은 산행이 되라며 인사를 한다. 이름하여 합동구조본부. 우리는 놀러가는데 정말 고생이 많구나. 망바위를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천둥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것 같다. 눈길이 제법 미끄럽다. 천왕봉은 구름속에 얼굴을 숨기고 있고 구름 가장자리는 바람이 머리를 휘감아 올린다. 정말 춥다. 예비로 가져온 털모자가 땀에 젖어 있는데 흐르는 땀이 꽁꽁 얼어 모자가 딱딱해졌다. 오른쪽 능선위로 해가 보인다. 주위의 구름이 빨갛게 물들어 사진에서 본 오로라 같다. 문장대에 올라 사진 한컷하고 로타리산장에 도착했다. 새단장을 해서 겉모습이 많이 좋아 보였다.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남?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천왕봉을 향한다. 법계사는 무슨 불사를 하는지 온 사찰이 연등으로 꾸며져 있다. 개선문까지 눈길은 힘든줄도 모르고 오른다. 고도차를 느끼면서 나뭇가지에 핀 눈꽃을 볼 수가 있다.남사면이라 햇빛이 따사롭게 비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맑다. 개선문은 언제 벼락을 맞았는지 옛날의 개선문이 아니듯 싶다. 앞으로 천왕봉 800미터. 천왕샘을 지나 급사면을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언제나 그렇지만 정말 힘든 구간이다. 좁은 철계단을 오를려면 내려오는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추워서 콧물을 한바가지나 흘렸다고 한다. 콧물 한바가지라. 엄청 흘렸구먼. 그 좋은 바가지가 한국사람에겐 별로 좋지 못한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뭐, 욕을 한바가지나 먹었다는둥, 물건사고 바가지 썼다는둥, 마누라에게 바가지 긁였다는둥, 똥바가지까지. 지나가는 나그네가 우물가의 아낙에게서 버들잎 하나 뛰운 물 한 바가지 얻어 먹었다는 옛날 얘기를 이런 좋지 못한 비유를 생각하면서 들으면 정말 그 바가지에 콧물빠지는 격이 되고 말거다. 고개를 들어 천왕봉을 올려다 본다. 사람들이 많다. 신년을 천왕봉 정상에서 맞는 것은 의미있는 것이다. 땀과 숨가뿜으로 천왕봉에 올랐다. 갑자기 쏟아지는 바람.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지리산 표지석에는 그래도 기념사진 찍을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일찌감치 사진 찍는 것을 포기했다. 법계사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일단의 군인들이 전투식량을 꺼내 요기를 하고 있다. 나도 많이 먹었던 특전식량아니던가?

- 발원문

산행계획을 세울때는 천왕일출을 바라보며 백두대간무사종주기원제를 올리려고 했었다. 그래서 술과 포와 과일을 준비하고 왔었는데, 서있기도 힘든 이 바람앞에서 기원제를 올리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여기서 출발하기로 하고 바윗덩이 천왕봉을 내려선다. 스틱을 짚고 서서 준비해간 발원문을 읽어 내려 갔다. 바람이 엄청세다.

維歲次,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는 양력 2002년 1월 초하루
한반도 한수이남에서 제일 높은 땅 이곳 지리산 천왕봉에
당나구라고 불리우는 정욱근. 여기 무릅꿇고 앉았습니다.

어리석음이 하늘을 꿰뚫고
약은 꾀에 제 목숨 경각에 달린 것도 모르기 때문에
불혹의 나이를 넘기도록 제대로 한 것 하나 없고
철들어 4반세기 동안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 없습니다.

때론 눈앞에 보이는 것 조차도 모르고
닦여진 길따라 거저 앞만 보고 걸어 왔습니다.
이제 고개들어 앞을 보니 빈수레 뿐입니다.

이제 부터라도 마음의 눈 크게 뜨고
빈수레 요란하지 않게 그 빈 공간을 채울려 합니다.

이제 모든 유혹으로부터 떨쳐 일어 나게 하여
사랑과 너그로움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하고자 하는 일들을 열정으로 하게 하시고
가족이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항상
얼굴에는 웃음으로
마음에는 사랑과 열정으로
손에는 일이 떠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또,
전 오늘부터 이 나라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위하여
이곳 천왕봉을 출발합니다.

온갖 역경이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고
아무런 사고없이 완주하여
설악산 진부령에서
눈물로써 종주의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십시오.

또한,
모든 하고자 하는 일들의
어려움을 알게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2002년 1월 1일
DONKEY 정 욱 근

지금까지 기도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바람에의한 눈물인지, 기도에 의한 눈물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핑 돈다. 태어나 처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 같다. 가슴이 후련하다. 바람을 안고 서 본다. 가야할 방향을 바라다 본다.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노고단까지 지리 연봉들이 줄지어 도열해 있다. 함성을 크게 한번 지르고 천왕봉을 떠난다.

- 아픈 역사속으로

장터목까지 가는 길에는 지리산 산신은 꼭 이문을 통해야 하늘로 갈 수 있다는 통천문과 제석봉의 고사목 군락의 풍광이 특출나게 아름답다. 통천문은 북사면에 위치하여 바람은 여전하고 미끄럽기 그지 없다. 천왕봉을 오른 사람들이 조심조심 가는 바람에 전진하는데 애을 먹고 있다. 해장국 한그릇 먹은지 꽤나 되었는지 배가 고파온다. 제석봉 가기전 양지 바른 곳에서 비상식으로 가져온 떡을 꺼냈다. 반은 얼었다. 그냥 입으로 가져가 꾸역 꾸역 먹는다. 어떤 아주머니가 반갑게 ‛떡이네요‛한다. 입으로 가져 가다가 칼로 조금 베어준다. 뒤따르던 남편같은 분에게 ‛좀 드실래요‛ 묻는다. 떡줄 사람은 생각치도 않는데... ‛누군 입이고 누군 주둥인가‛ 하는 바람에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먼저 건넨다. 할수 없이 또 잘라준다. 곡기가 들어가니 살만하다.
제석봉에 올라서니 또 그 바람이다. 제석봉의 눈이 하늘로 휘감아 돌면서 눈보라를 일으킨다. 볼탱이가 따갑다. 고개를 숙여 일단 피한다고 피해 본다. 바람이 뼈속 깊숙이 파고 든다. 어느 도벌꾼의 횡포에 의해 제석봉의 그 아름드리 나무들이 저렇게 죽어 고사목이 되었단다.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고사목사이로 거센 바람이 불면서 울부짓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얼마나 원통하게 죽었으면 죽어도 쓰러지지 않고 저렇게 서서 날이면 날마다 울부 짓는고.

장터목대피소 취사장은 발디딜틈도 없다. 배낭을 바깥 의자에 놓고 코펠에 물을 뜨려 식수터에 갔다. 수도꼭지에서 실날같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라면물 하나 받는데 꽤나 오래 걸린다. 취사장으로 발을 비집고 겨우 들어가 떡라면을 끓여 먹는다. 광주에서 오셨다는 아줌마가 김치 어딨어요?하고 묻는다. 라면안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자 김치를 조금 퍼 준다.산에 오는 사람들 모두가 이래서 이웃이고 마음이 넓은가 보다. 세상살이 모든 것이 산에서와 같았으면. 장터목이란 옛날 백무동 사람과 중산리 사람들이 만나 물물교환했던 장소라는 것 아니냐? 정말 시장통 같다. 빨리 떠나자.
촛대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많이 가벼워졌다. 같은 방향의 사람들도 없다. 이제부터는 나홀로산행이다. 바람은 불지만 연하봉의 햇살은 너무 아름답다.

촛대봉에 오르니 세석평전의 멋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석이 남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바람도 없고 햇살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영화속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촛대봉 사면에서 영신봉 사면으로 이어지는 세석평전의 눈은 남쪽의 햇살을 보듬기라도 하듯 비스듬히 누워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주인공이다. 가만히 길을 따라 대피소 쪽으로 내려간다. 고함을 질러 보기도 하고 콧노래도 불러 보기도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나홀로 산행의 꿀맛이 아닐까? 정말 멋지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대피소를 왼쪽 아래에 두고 영신봉으로 향한다. 지난 11월에 세석대피소에서 1박을 한적이 있었다. 영신봉에 올라 반야봉을 배경삼아 보는 일몰에 넋을 잃은 적이 있다. 저녁 먹고 다시 올라와 천왕봉을 배경삼아 본 월출 또한 벽소야월에 뒤질것이 없어 보였다. 이튿날 촛대봉에서 본 일출은 정말 장광이었다. 내가 본 일출중에 최고 였다. 천왕일출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 같다.

칠선봉에 닿으니 학생인듯한 일단의 젊은 남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았다. 왼쪽의 삼신봉능선 오른쪽으로 대성골이 훤하게 보인다. 대성골.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 대성골. 빨치산의 무덤이 된 대성골이다. 1952년 1월 중순 빨치산을 토끼몰이 하듯이 이곳 대성골로 몰아 넣은 뒤 무려 10여일 동안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겨울 추위는 혹독 하다. 세가지 각오가 있어야 빨치산이 된다고 한다. 첫째가 총에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가 두 번째요 세 번째는 얼어죽을 각오가 그것이라고 한다. 총에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으면서 이곳 대성리 골짜기로 몰려 들었을 빨치산. 참으로 생각만 해도 비극이다. 이데올로기가 뭔지. 이 골짜기가 10여일 동안 불바다가 되었을 것은 너무 뻔한 상상인지. 그래도 이곳 사지(死地)에서 살아 남은자 있었다 하니 바로 마지막 빨치산의 주인공인 여자 빨치산 정순덕이다. 그녀는 중상을 입고 삼신봉 너머 거림골 산죽밭 움막으로 도망쳐 5일간을 초인적으로 버티어 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저 대성리에는 사람의 뼛조각으로 보이는 뼈들이 간혹 보인다고 하니 그 해 겨울 그 비극이 눈에 선하여 고개가 흔들어 진다. 양갱이 하나를 먹고 딱딱하게 얼어 버린 핫브레이크 하나를 더 먹었다. 속이 니글거린다. 이때 먹을려고 가져온 짭짤한 치즈는 어디에다 넣었는지 기억도 없다.

덕평봉 아래 선비샘을 지나 산등성이로 돌아가니 나뭇잎 하나 없는 나무 사이로 오늘의 종착지인 벽소령 대피소가 보인다. 신록이 우거져 있을 때는 전혀 볼수 없었다. 예정 보다 좀 빠른 산행속도다. 벽소령대피소 앞에 도착하여 주저 앉아 아이젠과 스패츠를 벗는다. 공단 직원이 문안으로 들어오라고 성화다. 따끈한 우롱차 한잔을 건낸다. 추운바람을 피한 것 만도 좋은 데 차까지 대접 받으니 정말 좋다. 오늘은 예약한 등산객이 30여명 밖에 안돼 일찌김치 널찍한 침상을 배정해 준다.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국립공원안에서는 담배피는 것을 금하고, 설거지는 반드시 화장지로 할것이며, 취사용 물은 필요한 만큼 배급하며, 이곳 대피소의 취침소등은 아홉시로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탐방에 정말 수고가 많았다며 내일의 일기가 고르지 못해 햇살이 퍼지는 8시 이후에나 산행을 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얼굴에 웃음까지 머금은 그 친절은 이튿날 아침까지 이어져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 나그네와 나그네..

벽소령의 새벽은 여지없구나. 지난 여름 새벽 안개에 휩싸인 이곳 대피소를 삼킬듯한 안개바람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도 바람 때문에 현관으로 눈이 들어와 쌓여있다. 제일 먼저 일어나 배낭정리하고 담요 갖고 나오다 계단 아래도 뒹굴러 떨어졌다. 통제구역이라고 쓰여진 펜스가 부서져 버렸다. 다친 데가 없어 다행이다. 밥하러 가기 위해 신발을 찾았다. 아! 감탄사가 나왔다. 모든 신발이 대피소 휴게실 신문지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고 깔창은 모두가 혀를 내 밀고 있었다. 산행의 피곤함에 지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을 이렇게까지 해 놓은 분이 도대체 어느 분인가. 신발은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 성취 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침밥으로 210그램짜리 햇반 하나 물에 말고 가래떡 몇 개 넣어 죽을 만들어 마지막 따뜻한 한방울 물까지 다 마셨다. 출발 준비 완료! 7시다. 계획보단 늦었지만, 문을 열고 나갈려는데 누가 부른다. 어제 그 아저씨. 따끈한 우롱차 한잔을 또 권한다. 정말 고마워 눈물이 났다. 그 따뜻함 이번 종주 끝까지 가져 가리다. 아직 해 뜰 시간은 멀어 랜턴불로 길을 찾으며 연하천을 향해 간다.
그 억센 바람이 밤새 눈을 또 가져와 길을 메워 놓았구나. 새벽 바람은 정말 무섭게 불어 제낀다. 나무들이 흔들리면서 언 몸체에서 쩡쩡 소리를 낸다. 길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계속된다. 보통때는 쳐다 보지도 않았던 산행리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북사면의 오르막길은 바람으로 인해 공짜로 올라간다. 형제봉을 지나 오르막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아침 등산로에서의 사람과의 만남. 너무 반갑다. 5명이 훌쩍 지나 간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연하천 까지는 산죽밭의 연속이다.

연하천 산장은 정말 조용하다. 눈위로 몇몇 발자국이 나 있다. 저 만치 왼쪽의 명선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까지 한 사람의 발자국이 나있다. 누군가 앞서 간 것이 틀림 없다. 드디어 친구가 생길런지도 모른다. 명선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은 다져진 눈으로 스키장 슬로프 같다. 앞서간 나그네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찍어 가며 산행친구처럼 혼자 속삭이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면서 따라가고 있다. 눈 깊은 곳에서는 러셀까지 되어 있어 편하다. 너덜지대를 따라 내려 가니 총각샘 팻말이 보인다. 이제 총각샘 제대로 찾게 생겼구먼.
지난 여름 이곳 등산로 주위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지리산 능선 길은 그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좋다. 더욱이 아름다운 눈꽃길을 걸을 때의 즐거움이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토끼봉 안부에서 드디어 나그네를 만났다. 스틱이 돌을 찍는 소리 때문에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다 본다. 추위 때문에 눈썹엔 하얀 성에가 끼여 있다. 영락없는 토끼봉의 토끼같다. 먼저 미소를 띄어 친구임을 알린다. 그제서야 눈인사로 답한다. 토끼봉을 오르면서 내가 앞선다. 사실 난 나그네를 따라 잡을 생각은 없었다. 러셀용으로 그대로 두고 뒤 따를 생각이었다. 토끼봉 오르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길이 없다. 무릅 빠지는 것은 예사다. 나그네는 뒤를 바짝 따라 온다. 두발 오르면 한발은 뒤로 미끄러 지고 그럴 때 마다 힘이 쭉쭉 빠진다. 넘어 지면 일어 나기 싫다. 토끼봉 정상에서 쉬는 척하고 뒤로 빠진다. 날씨가 험상 궂어 옆에 있는 반야봉도 안보이고 온통 안개바람 뿐이다. 토끼봉 전망도 괜찮았는데...앞서 간 나그네를 따라 간다. 숲속 길을 따라 이리 저리 잘도 간다. 화개재 못 미쳐 또 만난다. 또 눈인사만 한다. 서로 말 한마디 않고 지금까지 왔다. 화개재에서 잠시 쉬다가 삼도봉으로 오르는 끝없는 나무계단을 오른다. 지리종주 코스중 신(新)난코스다. 오르다 뒤를 보니 그 나그네가 없다. 몇 계단씩 오르다 계속 돌아다 봐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말없이 뱀사골로 빠졌는가? 어디 가는지 물어나 볼걸.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또 혼자 만의 산행이 되겠는 걸. 오늘은 햇볕 한번 본 적이 없고, 바람 한번 자는 걸 못 봤다.

삼도봉이다.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경계지점에 있는 봉우리라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일명 날라리봉이라고도 부른다. 인적도 없고 온통 진눈개비 섞인 바람 뿐이다. 노루목에서 젊은 남녀 한쌍을 만났다. 여자가 앞서 오르고 뒤따르는 남자는 배낭이 키보다 훨씬 크다. 임걸령으로 향하면서 걱정이 생긴다. 중산리에 두고온 차 때문이다. 성삼재에 도착하면 차도 없을 테고, 종석대까지 갔다가 늦으면 어떡하리, 차라리 종석대는 다음에 하고 빨리 화엄사로 내려 갈까? 날씨가 추운데 부동액이 모자라 차가 얼어 터지는 것은 아닌지. 온통 그런 고민이다. 늦으면 택시타고 모든 걸 해결 하기로 마음 먹고 종석대는 반드시 간다고 다짐해 본다. 임걸령의 물은 여전하다. 반갑게 한 모금하고 마지막 구간의 길을 재촉한다. 날씨가 점점 심상찮아 진다. 돼지평전으로 가는 길에 눈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배는 고파 오는데 배낭은 풀기가 싫다. 점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 무게. 다리에 힘도 점점 없어진다.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눈속의 숲길이 멋지다. 멋진길에서 비상식이라도 먹고 가자. 배낭을 풀고 먹다 남은 떡을 입에 문다. 완전히 얼었다. 칼을 댈 필요도 없다. 이빨로 으깨어 먹으니 아이스케키 맛이다. 내가 즐겨 먹던 팥이 듬뿍 든 비비빅 바로 그맛이다. 먹으면서 환상적인 숲속의 나를 발견한다. 정말 멋진 풍광이다. 이런 곳에 나 혼자 있다니. 꿈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꿈을 꾸는 것 같다. 지난 6월 송차장이 다리 아파 쉬던 곳이 이쯤이던가.

눈으로 덮힌 숲속 터널을 지나니 통나무 울타리가 보인다. 노고단이다. 황량하다. 진눈깨비만 어지러이 날릴 뿐 인적 끊긴 노고단은 너무나 썰렁하다. 지난번 종주 기념으로 발모아 사진을 찍었던 지리약도가 그려진 동판은 눈으로 덮혀 보이지 않는다.
되돌아 서서 지나온 쪽으로 바라다 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왕봉은커녕 반야봉도 능선도 보이질 않고 다만 오른쪽의 노고단 정상부만 안개에 휩싸여 있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떡라면 하나 끓여 먹고 종석대를 오른다. 지리종주에서 항상 뒷켠에 있었던 곳이다. 날씨가 좋아져 전망도 좋다. 남쪽으로는 섬진강, 북쪽으로는 다음번 구간인 만복대가 하얀 고깔을 쓰고 있다. 소리를 마음껏 질러 본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나의 백두대간종주도 이젠 절반만 남은 셈이다.(終)

6.2구간종주계획
• 기간 : 2002. 1.12~13
• 구간 : 성삼재-여원치-복성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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