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리산이여! 백두 대간이여!





 


아! 지리산이여!  백두 대간이여!



백두 대간 제 1 구간   지리산 종주기


 


지리산 종주 일정표



일시 : 2001년 11월 9일 (금) - 11일 (일) [2박 3일]



대원 : 김갑수 박종필 김영훈 이대명





전체 종주 운행 경로와 구간별 거리



중산리 매표소 - 5.3km - 장터목 대피소 - 1.7km - 천왕봉 - 1.7km - 장터목 대피소
- 3.4km - 세석 대피소 - 6.3km - 벽소령 대피소 - 3.6km - 연하천 대피소 - 4.2km
- 뱀사골 대피소 - 6.3km - 노고단 - 2.5km - 성삼재 [전체 종주 거리 35km]





중산리 - 장터목 - 천왕봉의 구간별 거리와 고도



중산리 매표소(해발 620m) - 1.3km - 칼바위 - 0.5km - 홈바위 - 1,9km - 유암폭포(해발
1240m) - 0.6km - 병기막터교 - 0.1km - 명성교 - 0.8km - 산희샘 - 0.1km -장터목
대피소(해발 1750m - 장터목 관리인이 알려준 실측해발1653m) - 1.7km - 천왕봉(해발
1915m)





11월 9일

[중산리-칼바위-유암폭포-장터목대피소]

[하루 운행 거리 5.3km 운행 시간 6시간]



07:30 중산리 매표소 출발

13:30 장터목 대피소 도착 [운행 거리 5.3km 6시간]

21:00 취침





11월 10일

[장터목-천왕봉-장터목-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

[하루 운행 거리 13.1km 운행 시간 8시간 35분]



04:00 기상 (죽으로 새벽 요기)

05:20 천왕봉으로 출발

06:30 천왕봉 도착 [운행 거리 1.7km 1시간 10분]

06:50 일출

07:05 천왕봉 출발

08:10 장터목 도착 (아침 식사) [운행 거리 1.7km 1시간 5분]

10:20 장터목 출발

12:20 촛대봉 도착 (세석 대피소에서 커피, 휴식) [운행 거리 3.4km 2시간 + 20분]

13:50 세석 대피소 출발

17:50 벽소령 대피소 도착 [운행 거리 6.3km 4시간]

21:00 취침





11월 11일

[벽소령-형제봉-연하천-명선봉-토끼봉-화개재(뱀사골대피소)-삼도봉-노루목-임걸령-돼지평전-노고단-성삼재]

[하루 운행 거리 16.6km 운행 시간 11시간 10분]



03:00 기상 (새벽 산책)

04:00 일행 전체 기상 (아침 식사)

06:10 벽소령 대피소 출발

09:10 연하천 대피소 도착 (휴식) [운행 거리 3.6km 3시간]

09:40 연하천 대피소 출발

13:20 화개재 도착 (뱀사골 대피소에서 라면, 휴식) [운행 거리 4.2km 3시간 40분
+ 10분]

13:55 뱀사골 대피소 출발 (258계단 + 550계단)

17:30 노고단 도착 (노고단 대피소에서 커피, 휴식) [운행 거리 6.3km 3시간 35분]

18:15 노고단 대피소 출발

19:00 성삼재 도착 [운행 거리 2.5km 45분]





[전체 종주 거리 35km]

[전체 운행 시간 25시간 45분]


 


 


종주기---


 


  이 산행기를 전문 산악인이나 산을 많이 다닌 분들이
읽는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산행기가 되겠지만, 두려움에 선뜻 산행에 나서지 못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조그만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이
글을 쓴다. 구간별로 자세히 안내하는 산행기는 많이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초보자로서
지리산종주의 전체적인 느낌을 쓰고자 한다.





11월 8일 (목)



  그날은 아침부터 청명한 가을 하늘을 느꼈다. 낮 12시에 분당의 우리
집에서 일행들이 집결하기로 되어있었지만 1시 반경이 되어서야 4명이 모두 모일
수 있었다. 의정부에 사는 박종필(우리는 그를 JP라고 부른다.)이 가장 먼저 분당에
도착했고, 그 다음은 분당 이매촌의 김갑수(우리는 그를 수가비라 부른다.)가 도착하고
일산에 사는 김영훈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였다. 차 한잔으로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고,
대충 점검을 마친 뒤 영훈의 코란도 패밀리 차량에 큼직한 배낭들을 싣고 탑승하여
드디어 대망의 백두대간 제 1 구간 지리산 종주를 위하여 출발하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내를 뒤로한 채...



  사실 아내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은 몸무게
85kg에 배가 나와서 허리 사이즈는 36인치이며 술과 담배를 즐기고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게으름의 화신이었다. 게다가 무릎이 아파서 특히 계단을 내려올 때는
자주 통증을 느끼는 관절염증세도 있는 터였다. 중학교 때 골절되어 수술을 받아서
지금도 자주 아프고 불편한 왼쪽 팔꿈치 관절도 걱정되는 부분이었고, 몇 년 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접질러서 인대가 늘어나 지금도 가끔씩 뻐근해지는 오른쪽발목도
그렇고... 자연히 가까운 산도 올라가기를 꺼리게 되었는데 지리산을, 그것도 종주를
한다니 걱정이 안될 리가 없었다.



  그런 내가 지리산 종주를 결심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온
40이라는 나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40세의 나이가 어느새 나의 나이가
되어있었고, 아직은 만으로는 39세라고 아무리 우겨봐야 곧 찾아올 만 40세의 나이는
더욱더 나를 옥죄어왔다.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만 40세가 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의 머리 속에 항상 맴돌았고, 그래야만 그 나이를
자신 있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지리산 종주를 결심하고 나니 겁이 났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래선 안되지... 그래서 주변에 종주계획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두자는 것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세 사람과도
의기투합이 되었다. 함께 종주할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를 거의 매일 들어가서 연구를 하고 자료도 얻었다. 책도 사보고,
지도도 구해서 벽에 붙여놓고 코스를 익혔다. 체력훈련도 약 한 달간 하면서 몸무게도
81kg으로 줄였다. 저녁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무릎운동도 하면서 가까운 산에도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우리 일행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구례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에
차를 놓고 버스로 중산리로 갈 작정이었지만, 터미널에 알아보니 중산리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하동을 거쳐 진주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마지막 버스가 떠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단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한시간 반이나
걸려서 10시가 가까웠다.



  중산리 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지리산 산꾼의 집 식당' 민박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일행들과 삼겹살에 간단히 소주 한잔으로 내일의 산행에 대한 각오들을 다졌다.
지리산의 밤하늘에는 서울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별이 맑았다. 내일 날씨가
맑을 징조였다. 내일 산행은 첫 날이라 무리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장터목 대피소로
잡았고, 일정상 큰 무리가 없는 만큼 오늘 잠을 충분히 자두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다른 일행들도 대체로 잠을 못 이루는 듯하다. 설레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방이 너무 뜨겁고 더워서 그런 것 같다.





11월 9일 (금) 산행 첫 날  


[중산리-칼바위-유암폭포-장터목대피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 5시경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공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매표소 입구에는 몇몇 산꾼들이 벌써 와서
입산을 기다리고 있다. 입산은 6시부터 허용한단다. 체조를 좀 하고 난 뒤에 다시
들어가 일행들을 깨웠다. 내일부터는 잘 씻지도 못 할 것이므로 각자 원 없이 세수하고
머리도 감았다. 아침식사는 준비해 간 죽으로 대신하고 배낭을 매고 나서니 7시 30분이다.
멀리 천왕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를 배경으로 각각 기념사진을 하나씩 찍고 드디어
출발이다.



[중산리 매표소 - 칼바위]

  
생 초보에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으므로 기본적인 운행시간은 지도에
나와 있는 구간별 평균 운행시간보다 한 두 시간씩 길게 잡았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샛길이 나오는데 이 길이 장터목 대피소방향이다. 그 길로 들어서니
드디어 숲 속의 향기가 느껴지고 산 속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오르막길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어깨에 맨 배낭의 무게는 점점 더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배낭의 무게와 등산조끼에 들어있는 잡다한 소 장비들, 그리고
거기다 내 몸무게를 더하니 100kg이 넘는다. 불쌍한 발과 무릎이여... 주인을 잘
못 만나 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면서 고행의 길을 가는구나... 좀 걷다가 쉬고, 좀
걷다가 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칼바위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갈래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법계사방면이다. 이제 겨우 1.3km를 걸었는데 숨이 턱까지
붙었다. 시작부터 힘들어서 큰일이다.



[칼바위 - 유암폭포]

  
일행은 그곳에서 숨을 좀 돌리고 왼쪽 장터목 대피소방면으로 들어섰다.
무리하지 말고 페이스를 늦춰서 천천히 걸으라는 수가비의 충고를 받아들여 한발한발
천천히 옮기니 가쁜 숨이 한결 낫다. 땀이 이마위로 흘러내려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묶으니 제법 산꾼 같기도 하고 투지도 생긴다. 작은 소(沼)를 만나서 세수를
하고 좀 쉬었다가 다시 거북이처럼 걸어서 유암폭포(해발 1240m)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줄기가 좋다. 뒤를 돌아보니 벌써 산 아래가 아득하다.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제 장터목 대피소까지 1.6km 남았다.



[유암폭포 - 장터목]

  
경사는 조금씩 더 급해지고 숨은 더욱 가빠져, 온 몸이 땀에 젖고
배낭은 천근같이 내 몸을 짓눌러 어깨가 아파온다. 급한 대로 여분의 양말을 어깨에
덧대었지만 계속 아프다. 장터목까지 1km 남은 지점에 있는 병기막터교를 건너서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비슷하게 생긴 다리가 나오는데 명성교라고 적혀있고 여기서부터
장터목 대피소까지 0.9km 남았단다. 깍아지른 경사면을 기다시피 올라가는데 경치
감상이고 뭐고 없다. 경사가 급할수록 계단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고, 도대체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려 스틱에 무게 중심을 싣고 계단을 한칸
한칸 올라가는데 스틱이 휘어질 정도로 팔에 힘을 주니 이제 온몸이 다 부서질 것
같다. 윤회하는 중생의 그것처럼 길은 영원히 이어지고 머리 속은 점점 무념무상이
되어간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은 한발한발 올라가야할 계단뿐이고, 아무 감각없이
나도 모르게 내 딛는 두 발과 스틱뿐... 그렇게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르기를 얼마나
했을까...



  멀리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장터목 대피소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환호성인가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해지는데 발은
떨어지지 않는다. 드디어 사람이 만든 인공물의 한 자락이 보인다. 대피소 지붕의
처마 끝인가 보다. 힘을 내자! 하나 둘 하나 둘! 조금 더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100m정도 아래쪽에 있다는 산희샘인
모양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통에 물을 채우고 실컷 들이키고 나니 정신이 좀 든다.
뒤를 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첩첩산중의
능선들만 보이고 까마득하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호흡을 가다듬고 내려놓았던
배낭을 다시 매고 출발했다. 이제 장터목 대피소까지 남은 길은 100m. 힘이 좀 생기는가
싶더니 금방 또 후들거린다. 지쳐서 흐느적대는 모습으로 도착하기는 싫어서 짐짓
씩씩한 걸음으로 마지막 고비를 오른다.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 도착. 시계를 보니
1시 반.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지도에 나와 있는 평균 시간이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이고 보통 사람들이 쉬는 시간까지 합쳐서 5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거의 한 시간이나
더 걸렸다.



  장터목 대피소! 여기가 바로 그렇게 갈망하며 올라온 장터목 대피소!
목조 건물로 새로 지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험산고지 능선 위 평평한 곳에 구름을
헤치며 당당하게 서 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수가비와 함께 대피소에 들어서니
앞서 올라갔던 JP와 영훈은 벌써 침낭을 꺼내서 누워있다. 1시간 정도 차이가 났던
모양이다. 깨우려다 말고 우리도 대충 침상에서 좀 쉬기로 했다. 몇몇 다른 산꾼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어서, 우리도 조용조용 한쪽으로 쓰러져 누웠다. 등산화를
벗은 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땀이 식어 가면서 갑자기 추워진다. 감기에
걸리면 낭패이므로 탈의실로 가서 내의를 껴입고 다시 누우니 온 몸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다. 좀 쉬었다가 일어나 일행들과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들어와서
4시 반경에 침상 배정을 받았다. 제석봉실 2층 47번부터 50번까지가 우리 자리다.
한사람에게 배정된 공간은 폭이 약 50cm정도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갈수록 늘어나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예약을 하지 않아서 침상 배정을 못받고 복도바닥에서
쪼그리고 밤을 샌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종주가 아니더라도 천왕봉의 일출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지리산 대피소 중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이곳 장터목 대피소란다.
지리산 종주시 예약 필수라고 충고 해 주신 '한국의 산하' 여러 선배 종주자들께
감사...



  침상을 배정 받고 침낭을 펴서 영역표시(?)를 확실하게 해 둔 뒤에 옷을
든든하게 입고서 일행들과 밖으로 나갔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대피소에
도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신 김치와 꽁치 통조림으로 찌개를 끓여서 취사장 밖의
야외 테이블로 나갔다. 영하의 날씨에다 북쪽 계곡에서 구름이 몰려와 능선 위를
휘몰아치고는 남쪽 계곡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치닫고 눈발도 흩날리고 있어서 몇미터
앞이 잘 안보일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이 지리산 천왕봉아래 장터목이 아닌가!
구름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소중하게 가져온 소주를 한 모금씩 마시니 날아갈 것
같다. 아내와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놀라면서도
남편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데 감격한 목소리다. 내일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갈
계획이었으므로 8시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산꾼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에 귀가
점점 예민해진다. 한 40분을 누워서 뒤척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껴입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영훈과 JP도 잠이 오질 않는 모양인지 뒤따라 나왔다. 밤하늘을 보니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별이 쏟아진다.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진주 시내의 야경이 그야말로
진주처럼 영롱하다. 내일 장엄한 일출을 기대하며 다시 자리로 들어와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몇해전 내설악의 백담대피소에서 산꾼들이 내 뿜는 대포소리(?)에 밤을 꼬박
샌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미리 귀마개를 준비해왔다. 9시 소등하면서 귓구멍에
끼우고 나니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소리와 대포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메아리
같아서 한결낫다. 덕분에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다.





11월 10일 (토) 산행 둘째 날


[장터목-천왕봉-장터목-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



  얼마나 잤을까... 소리 때문이 아니라 더워서 잠에서 깼는데, 다들 더운지
자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귀마개를 살짝 빼 보았더니 옛날 어린 시절의 전자오락실
같다. 얼른 귀마개를 다시 끼고, 침낭 지퍼를 열고 속옷만 입고 다시 누웠는데 영훈은
아예 하나만 달랑 입고서 자고 있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이 피로회복에는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4시에 일어나서 일행들을 깨우고 햇반으로
만든 죽으로 대충 요기를 한 뒤에 짐은 산장에 그대로 두고 가벼운 몸으로 5시 20분에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장터목 - 천왕봉]

  일출 예상 시간은 6시 50분경. 헤드램프를 켜고 서둘러 출발하자마자
급격한 오르막 경사다. 숨을 헐떡이며 가다 쉬다 하는데 일행은 벌써 한참 멀어졌다.
천왕봉 정상에서 추울 것에 대비해 옷을 많이 입었더니 영하의 날씨인데도 올라가는
길은 땀이 나고 덥다.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길인데다 헤드램프의 성능도 시원찮아서
징검다리하듯 가기가 더 힘이 든다. 몇번의 난코스를 지나자 완만하고 평탄한 능선길이
나타나는데 제석봉의 고사목지대다. 뼈만 남은 고사목들이 능선길의 양쪽에서 새벽의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마치 유령처럼 서있다. 오싹하는 기분을 느끼며 길을 재촉한다.
헤드램프를 꺼도 좋을 만큼 주변이 밝아지면서 드디어 천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바라보니 먼저 오른 산꾼들이 개미처럼 한줄로 정상을 향해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이렇게 뒤쳐지다 일출을 놓치면 안되겠기에 힘을 낸다. 통천문을 지나 정상을 향해
돌아서니 어느듯 동쪽하늘에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마음이 급해져서 뛰다시피 하는데
천왕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고비가 장벽처럼 나를 밀어내고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었다. 한발 한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올라갔다. 가파른 길이 끝나고
정상 부근에 이르러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아! 붉디붉은 동녘하늘을 배경으로
장엄하고 당당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서있는 검은 실루엣... 천왕봉이었다.



[천왕봉 일출]

  
정상에 올라서니 세찬 바람이 얼음처럼 옷 속을 파고든다. 이번에
큰맘먹고 장만한 고어텍스 재킷의 지퍼를 턱까지 올리고 모자를 조여 눈만 남기고
다 가렸다. 멀리 동쪽을 바라보니 숨이 막힌다. 장엄한 일출을 예고하는 붉은 띠가
길게 늘어져 있다. 일출 10분전. 세상을 덮고 있는 태초의 구름위로 붉은 기운이
점점 더해지면서 천지가 개벽하고 있다. 그 붉은 띠의 한 가운데가 갑자기 밝아지더니
이제 막 용광로에서 나온 듯 빨갛고 영롱한 태양이 불쑥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본다는 지리산 일출을 첫 지리산 산행에서 보게
되다니 감격스럽다. 지금 여기 함께 올라와 있는 누군가가 삼대 덕을 쌓았나보다.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기 그지없다. 한참을 넋을 잃고 눈이 부시게 바라보다 해가
뜬 뒤에 천왕봉 표지석에서 일행들과 기념사진으로 증거를 남기고 드디어 본격적인
백두대간의 제 1 구간인 천왕봉-성삼재 구간의 지리산 종주를 시작한다. 과연 백두대간
전체를 다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천왕봉에서부터 일출을 보고 나니 느낌이
좋다.



[천왕봉 - 장터목]

  
장터목으로 돌아오는 길은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길보다는 한결 수훨하다.
며칠전에 내렸다는 눈이 녹지않고 능선의 북쪽면에서 낮게 자라는 나무의 가지마다
눈꽃으로 아름답게 피어있다. 맑은 날이어서 운해가 짙지는 않지만 멀리 바라보이는
봉우리들 주위의 옅은 운해가 장관이다. 고사목지대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운데, 그
곳을 지나 내려오면서 놀라운 모습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의 젊은 여성 산꾼이 산같이 높은 배낭을 메고 그것도 혼자서 보무도
당당히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리산 정도는 산도 아니라는 듯 사뭇 대단한
기세에 기가 죽어 혀를 두르며 바라보다 허우적대는 내모습이 창피하기도 해서 얼른
지나쳐 내려왔다.



[장터목 - 세석평전]

  
장터목으로 돌아와서 배낭을 정리하고 느긋하게 식사를 끝낸 뒤에
커피까지 마셨다. 종주기념 스탬프를 찍어준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여서 관리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얼마 전에 누군가가 스탬프도장을 가져 가버려서 찍을 수가 없단다.
오늘 목적지는 벽소령대피소로 잡았고 거리는 9.7km이므로 충분할거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다 10시 20분에 출발했다. 산행 초반에 힘드는 체질이지만 연하봉으로
가는 길은 체질에 딱맞다. 완만한 흙길로 주로 이어져 기분도 좋고 경치도 좋다.
능선길에 홀로 서있는 고사목이 있어 그 풍경에 반해 일행들은 각각 사진을 찍었다.
장터목에서 촛대봉까지는 3.4km. 약 두시간에 걸쳐서 촛대봉에 도착하니 12시 20분이다.
삼신봉은 어느새 지났나보다. 촛대봉에 서니 눈앞에 세석평전이 광활하게 펼쳐져있고
그 가운데 대피소가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일행은 벌써 암봉위에 올라 쉬고 있다.
양말을 벗어서 발을 말린 뒤에 마른 양말로 갈아 신고 촛대봉 표지목에서 기념촬영.
깨끗하게 단장된 길을 따라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여 종주기념 스탬프를 중산리 매표소에서
사온 지리산 등산지도의 세석평전위치에다 찍고 커피를 한잔하고 쉬다보니 벌써 1시
50분이다.



[세석평전 - 선비샘]

  
세석에서 벽소령까지는 6.3km.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야 할텐데
너무 여유를 부렸나보다. 1시간 반이나 쉬면서 라면이라도 먹었으면 좋았을걸 후회하며
세석평전을 뒤로하고 영신봉을 향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는
동안 한가지 아쉬운 것은 봉우리마다 이름이 표시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아서 봉우리
하나를 넘을 때마다 무슨 봉인지를 몰라 남은 거리를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돌과 바위길(너덜길)이 무릎을 아프게 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지치기 시작한다. 오전에 장터목을 출발할 때의 상쾌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어제
중산리에서 올라올 때처럼 어느새 다시 고행의 길이 되어버렸다. 무릎이 아프고,
내리막이 겁난다. 영훈과 JP는 한참을 앞서가고 수가비는 걱정이 되는지 조금 가다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오르막은 무릎이 아파도 그런대로 가겠는데 내리막을 만나면
속도가 느려진다. 스틱 두 개를 이용해 한발 한발 옆으로 겨우 내려오는 시간이 남들보다
다섯배이상 걸리는 것 같다. 너무 경사가 깊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로프를
잡고 유격하듯이 뒤로 내려가니 차라리 수훨하다. 나도 어릴때는 바위 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통통 튀어다닌 기억이 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봉우리 옆을 돌아 나오는데 꽤 넓은 평지에 식수대가 설치되어있다.
덕평봉 아래에 있다는 선비샘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힘들었던 암봉이 칠선봉이었나보다.
배낭을 내려놓고 목을 축이고 있는데 내 등에서 김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올라온다고
수가비가 웃는다. 이제 여기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힘들지 않을 거라고 지나는 스님이
일러주신 말에 조금 안심이 되지만, 새벽에 천왕봉에서 보았던 바로 그 태양은 여기까지
오는동안 내내 머리위에서 미소지으며 따라오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는지 서둘러
형제봉 너머로 숨고 있다.



[선비샘 - 벽소령]

  
배낭을 메고 잠깐동안 오르막을 오른 뒤에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다리를 심하게 절며 지팡이를
짚고서 내려가고 있다. 배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행이 매고 먼저 앞서 갔나보다.
얘기를 들어보았더니 형제봉을 내려오면서 다리에 무리가 왔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벽소령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란다. 대피소에 도움을 청하려고 서둘러 내려오는데
앞서갔던 친구인 듯한 사람이 뒤에 오는 다친 친구가 추울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옷을
들고 돌아오고 있다. 벽소령 헬기장으로 나오니 그 두사람의 것인 듯 배낭 두 개가
주인을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있다. 여기서부터는 평지로 이어진다. 공비토벌을 목적으로
만든 도로였는데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없는 상태다. 해는 져서 어두워 졌지만 헤드램프를
켤 정도는 아니어서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왼쪽 아래로는 계곡이 깊고 천길 낭떠러지다.
멀리 벽소령대피소의 불빛이 보이고 사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5시 50분에 대피소에 도착하니 영훈과 JP가 이미 침상을 배정받아 놓았다.
1층 침상은 다 찼는지 지하방이다. 관리인에게 조난자 신고를 하고 지하방으로 내려가니
영훈과 JP는 짐을 풀고 쉬고 있다. 잠시 쉬다가 취사장으로 가니 탁자는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서 구석자리 바닥에 대충 앉아 참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소주를 한
모금씩 하고나니 온 몸이 노곤해진다. 내일은 산행 마지막날이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아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모두 잠자리에 드는데 혼자 다시 나왔다. 휴대폰 통화가
되는 곳을 찾아 별빛에 의지해 아까 지나온 평탄한 길로 한참 걸었다. 몇 번 시도한
끝에 아내와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장터목에서도 그랬지만 일단 통화가 연결이 되니
통화상태는 좋게 이어진다. 통화를 끝내고 대피소로 돌아와 보니 다들 잠들어 있는데
지하방에는 빈자리가 많다. 어젯밤 장터목에서 더웠던 생각이 나서 미리 속옷만 입고
침낭속으로 들어가 누워서 귀마개를 끼고 눈을 감았다. 오후 산행이 힘들어서인지
금방 잠이 들었다.





11월 11일 (일) 산행 셋째 날  


[벽소령-형제봉-연하천-명선봉-토끼봉-화개재(뱀사골대피소)-삼도봉-노루목-임걸령-돼지평전-노고단-성삼재]



  잠결에 깨어보니 춥다. 초저녁에만 난방이 들어오다 꺼진 모양이었다.
벗어놓았던 옷을 다시 껴입고 자다가 깨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는데, 새벽공기가 차갑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 주변을
산책하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4시에 일행들을 깨워 아침 식사를 하고 6시 10분에
마지막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성삼재까지의 종주거리는 무려 16.6km. 중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거리지만 오히려 투지는 불탄다. 아직 주위가 어두운 상태라 헤드램프를
각자 미리 켜고 힘차게 출발한다.



[벽소령 - 형제봉 - 연하천]

  
호기있게 출발은 했지만, 어제 장터목을 출발할 때와는 달리 오늘은
초반부터 힘든 바위길이라, 금방 숨이 차고 땀이 쏟아진다. 어두운데다가 헤드램프의
불빛도 만족스럽지 못해 한발 한발 내 딛기가 어렵다. 조금씩 주위가 밝아지면서
걷기가 좀 나아지자 헤드램프를 아예 끄고 배낭을 내려놓고 옷을 가볍게 갈아입었다.
출발할 때 추워서 많이 껴 입었는데 이젠 거추장스럽다. 옷을 갈아입고 나니 걷기가
한결 났다. 벽소령에서 연하천까지는 3.6km이지만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형제봉은
경사도 급하고 길이 험해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어제 지나온 칠선봉보다도 훨씬
거친 바위길이다. 어제 젊은 친구가 내려오다 다리를 다친곳이리라고 짐작이 되는
가파른 곳을 이제 내가 조심조심 기어서 오르니 이번에는 영훈이 기다리고 있다.
두 개의 커다란 암봉사이로 올라서니 멀리 천왕봉쪽에서 비친 태양빛이 반대쪽 반야봉을
밝히고 있다. 뒤돌아보니 제석봉의 황량한 고사목지대 덕분에 멀리서도 천왕봉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일행 넷이서 잠시 조우한 뒤에 다시 출발한다. 계속되는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다가 뒤에서 비치는 햇볓이 따사로와 수가비와 잠시 앉아 멀리 운해를
바라보며 숨을 돌린다. 힘겹게 계단도 오르고 돌길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멀리 연하전 대피소가 반갑게 맞이한다. 음정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들어서서 완만한 경사를 끈기있게 올라가니 수목보호지대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가니
연하천대피소다. 9시 10분에 도착하였으니 딱 3시간 걸렸다. 영훈과 JP는 도착한지
30분 정도 지났다며 먼저 출발하고 같이 도착한 수가비는 출출하다며 죽을 끓인다.
어제 세석에서 점심을 못하고 출발하는 바람에 벽소령까지 배고파서 고생했다며 오늘은
틈만 나면 먹겠단다. 빈 물통에 마실 물을 채우고 간식삼아 육포랑 초콜렛을 먹고
화장실 볼일도 보고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니 9시 40분이다.



[연하천 - 명선봉 - 토끼봉 - 화개재 - 뱀사골]

  
연하천을 뒤로하고 출발하자마자 계단이 나타나는데 예사롭지가
않다. 명선봉 정상까지 계단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사실 걱정되는 것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필연적으로 이어질 내리막길이다.
철계단과 돌길을 힘겹게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진땀이 흐른다. 자칫 발이라도 삐끗하면
일행들에게 큰 짐이 될것이 염려되어 늦더라도 더욱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그런 나를
수가비는 끈기있게 기다려준다. 항상 든든한 산행의 동반자다. 명선봉의 험한 내리막은
연하천에서 올라온 것보다 훨씬 더 길게 이어지는데 능선을 타는게 아니라 마치 지리산을
하산하는 느낌이다. 명선봉을 내려가는 우리 눈앞에 엄청난 높이로 버티고 선 토끼봉은
내려가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많이 내려갈수록 많이 올라가야 하고 또 많이
내려가야 할테니...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형제봉과 함께 종주중에 만나는 몇 번의 힘든코스중에
하나라는데 새벽에 지나온 형제봉과 비교되는 면이 있다. 형제봉은 바위투성이의
거칠고 가파른 구간인 반면 토끼봉은 흙과 돌과 계단으로 끝없이 오르는 인내의 길이다.
오르는 중에는 내려오는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말에 대답하기도 힘들만큼 숨이 차고
진이 빠진다. 몇 번을 쉬었다가 겨우 토끼봉에 올랐다. 앞으로는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뒤로는 멀리 천왕봉이 아득하게 솟아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걸어
온 것도 대견스럽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것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느낌인데
나중에 알았지만 지리산 주능선 중에서 표고가 가장 낮은 곳이란다. 흐느적흐느적
힘겹게 1시 20분이 되어서야 내려선 화개재는 넓은 분지같은 곳인데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시원하다.



  배가 고픈데 점심을 먹을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화개재는 취사가 금지되어 있어서 뱀사골대피소로 가야하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길고
가파른 계단을 약 200m 정도 내려가야 한다. 수가비는 무슨일이 있어도 밥은 먹고
가야 한다며 앞서 내려가고, 나는 못가겠다고 버티다가 배가 고파 하는 수 없이 한발
한발 뒤따라 내려간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내려가다가 계단이 몇 개인지 궁금해져서
나중에 올라올 때 세어보리라고 다짐하며 겨우 뱀사골로 내려서니 사람들이 많다.
영훈과 JP가 그들 가운데 섞여 식사를 다 끝내고 쉬고 있다. 연하천에서 헤어진 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다.



[뱀사골 - 화개재 - 삼도봉 - 노루목 - 임걸령 - 돼지평전- 노고단]

  
우리도 얼른 식사를 끝내고 좀 쉬었다가 영훈과 JP는 먼저 출발하고
곧 뒤따라 출발하니 1시 55분이다. 뱀사골에서 노고단까지는 6.3km인데 우선 눈앞의
계단부터 해치워야한다. 머리속의 잡념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계단만 생각하며 하나
둘 올라간다. 화개재까지 무려 258계단을 다시 올라서서 한 숨 돌리는데, 방금 올라온
계단보다 훨씬 긴계단이 삼도봉쪽에서 기다리고 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주저앉고싶은
마음이지만 가지 않고는 도리가 없는지라 이번에도 계단만 생각하며 올라가다 중간에
몇번을 쉬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계단이다. 이런식으로 계단으로만 이어진다면 63빌딩과
지리산은 주변경치를 빼고 나면 닮은 점이 많다. 550계단을 다 오르니 먼저 왔던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가 세어본 계단 수를 마지막 기둥에 새겨놓았다.



  삼도봉에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가리키는 삼각뿔모양의
표지석이 있는데 그 곳을 한바퀴 돌면 삼도를 순식간에 돌게 되는 셈이다. 이곳을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재미 삼아 한바퀴 돌고 갈거라고 짐작하며 우리도 그렇게 경상남도에서
전라남도를 돌아 전라북도로 들어섰다. 멀리 노고단이 바라보이는데 까마득하다.
길은 완만하고 편하다지만 거리가 멀어서 마음이 조금씩 급해진다. 반야봉과 노고단으로
갈라지는 노루목의 바위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다가 다시 출발하여 넓은 임걸령으로
내려오니 잘 가꾸어놓은 샘터가 있다. 돼지평전과 노고단에 해가 가려져서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마실 물이 남았으므로 샘터를 그냥 지나쳐 돼지평전을 향해 길을
서둔다.



  임걸령에서부터는 멀리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능선이 장관이다.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돼지평전에 올라서니 노고단 뒤로 해가 숨어버려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 서둘러 노고단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니 어느덧
노고단의 돌탑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힘을
내서 씩씩한 모습으로 도착해야한다. 종주자답게...



  5시 30분에 드디어 노고단에 도착하니 바람이 심하게 불고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장관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참으로 엄청난 붉은 노을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천왕봉의 일출에서 느꼈던 천지개벽의 순간을 노고단에서 느낄 줄이야...
그 붉은 노을을 종주자들에게 선물하기위해 해는 그렇게 서둘러 노고단 뒤로 숨었었나보다.
뒤를 돌아보니 천왕봉이 아득히 먼 곳에서 수가비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잘 가라는 듯이... 그 노을은 정말 힘들게 완주한 종주자에게 주는 천왕봉의 선물이
틀림없었다. 수 천 수 만년동안 말없이 그곳에 서있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한 천왕봉! 그 지리산, 그 천왕봉이 우리의 산행을 허락해주고 감싸주고
안아주고 무사히 종주를 끝낼 때까지 보살펴준 뒤에 이렇게 큰 선물까지 안겨주다니...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노을을 감상하다 노고단 대피소로 내려와서 종주 스탬프를 찍고 커피를
한잔씩하고 쉬었다가 성삼재를 향해 출발하는데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몹시 춥다.
옷을 꺼내 입고 헤드랜턴을 켰다. 7시에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하니 영훈과 JP는 이미
구례로 내려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택시를 타고 구례로 내려가니 반갑게 맞이한다.
뱀사골에서 헤어진지 약 8시간만에 합류한 것이다. 일행은 함께 부근 삼겹살 집에
들어가서 거지같은 몰골을 서로 보고 웃으며 막걸리 한잔씩으로 완주를 자축하고
종주를 마쳤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