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직지황악 봉화눌의, 그 북사면의 빙판 대간길 (20회차 10구간. 우두령-추풍령)


● 일시 : 2003년 2월 15일 ~2월 16일
● 날씨 : 맑음.
● 동행 : 이찬영. 유병길
● 구간 : 백두대간10(우두령→바람재→황악산→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

● 산행시간

- 2월 15일 토요일
20:40 = 집 출발
21:40 = 동대문 도착
22:05 = 동대문 주차장 출발(승용차)

- 2월 16일 일요일 (총 산행시간 : 10시간 30분. 도상거리 24㎞)
02:15 = 우두령 도착
03:20 = 우두령 출발. 산행시작
05:25 = 바람재
06:42 = 황악산(1,111.4m)
08:35 = 궤방령. 아침식사(15분)
09:00 = 궤방령 출발
11:03 = 가성산(710m)
12:45 = 눌의산(743.3m)
13:35 = 포도밭 임도
13:45 = 고속도로 통과
13:50 = 추풍령 당마루. 산행 끝.

16:20 = 추풍령 출발
19:51 = 수원역 도착
20:40 = 집 도착

● 산행기

한달에 2번하는 장거리 산행을 1월달에 한번 건너뛴 관계로 설날 이튿날 의정부 안골을 출발하여 사패산, 도봉산 주능선을 거쳐 우이동으로 하산한 다음 다시 도선사 백운매표에서 부터 북한산 성곽 능선을 따라 한바퀴 돌아 승가봉으로 해서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10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다.
힘든 산행의 순간에는 바보같은 짓을 한다고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하산 순간부터 다시 기다려지는 산행. 왜 그럴까? 산행 중독증인지? 아니면 몸부림인지? 그도 아니면 일상의 탈출인가? 생활의 일부인가? 생활의 일부라고 자문하면서 산행준비를 한다.
이번 산행 구간은 작년 5월 18일에 통과 했어야 하는 구간이다. 초등학교 총동창회 참석하느라 빼먹은 구간, 작년 10월에 땜방을 하려 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아 날이 풀리기만 기다려 왔던 터이다.

동대문에 도착하니 차량에 자리가 없단다. 낭패다. 그런데 산악회 등반대장이 자신의 승용차를 선뜻 제공한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몸둘 바를 모르겠다. 대장의 손수 운전으로 산행 기점인 우두령까지 간다. 원래 체질적으로 버스에서도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승용차에 실려서 가려니 더 더욱 잠을 잘 수가 없다. 우두령에 도착하니 새벽 2시 15분. 3시 30분 부터 산행을 한단다. 간신히 눈을 붙여 본다. 겨우 잠이 들었을까 싶은데 산행준비를 하란다.

승용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 산록으로 올라가면 대단할 것 같다. 둥그런 보름달이고즈녁하게 서산의 나무가지에 걸쳐 있다. 달 그림자 사이로 간간이 구름이 스쳐가면서 정월 보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신발끈을 단단히 여미고 스패츠를 착용한다. 아이젠은 상황을 봐가며 착용하려고 손이 잘 닿는 배낭의 바깥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바람을 막기 위한 모자와 윈드쟈켓을 추스려 입고, 그리고 커다란 철대문이 열려져 있는 매일유업 김천농장으로 들어가 간단히 실례를 하는 것으로 산행준비를 마친다.
자! 이제 출발 신호만을 기다린다.

계획보다 10분 앞당긴 3시 20분에 출발한다. 700고지가 넘는 고개마루에서 북쪽의 절개지를 따라 올라 붙는다. 백두대간 중에서 무참히 대간 능선이 망가졌다고(화주봉에서 내려오다가 우두령 못미쳐) 자연훼손에 대한 참회의 묵념을 하라고 설치되어 있던 안내판이 갑자기 생각난다. 작년에 우두령으로 내려오다가 그냥 덤덤하게 읽어보기만 하고 내려왔었지.....

고도를 완만하게 높여가며 오르는데 등로에는 눈이 거의 녹아 있어 아이젠 없이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산등성이에는 하얀 백설이 아직도 수북히 쌓여 있고.... 내려다 보이는 저 아래의 민가 불빛만이 대간꾼의 마음을 낭만적이게 한다. 능선의 등로가 북사면으로 놓이게 되면 바람은 거세어져 날아갈 듯만 하고 능선 날등을 남동 사면으로 조금 비켜서면 바람이 막아지는 절묘한 바람맞이 산행을 계속한다.

지도상의 870봉, 985.6봉이 어디메뇨. 바닥은 눈으로 덮여 있어 삼각점 조차 볼 수가 없다. 어디쯤의 봉우리일까? 중계탑의 모습이 어둠속에 흐릿하게 나타나면서 얼마 후 이윽고 1030봉 봉우리 정상에 선다. 조망이 좋을 것 같으나 아직 여명이라 사방의 시야가 좁다. 다만 보름달만이 줄기차게 대간꾼의 뒤를 따라오면서 길을 비춰줄 뿐이다.

봉우리에서 우측 통신중계소 쪽으로 내려선다. 조금 내려오니 헬기장인 듯한 공터가 자리하고 있고 아래로 임도가 보인다. 헬기장에서 50여 미터 진행하니 임도가 나오는데 이 임도는 바로 아래의 바람재에서 이곳 중계소까지 올라온다. 임도에 내려서니 중계소 관리인이 사용하는 듯한 간이화장실이 덩그만이 서있다. 그리고 임도 건너편에 중계탑이 설치되어 있다.

임도를 타고 내려 오다가 왼쪽 능선으로 진입하여 눈길을 내려서니 헬기장이 반듯한 바람재가 내려다 보인다. 바람재 동쪽사면이 아마 초지인듯 광활하게 눈이 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재 까지 곧바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 눈은 쌓여 있으되 미끄럽지가 않아 정신없이 내려선다. 해발 810미터에 이르는 바람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황악산을 오르기 위하여 선두대장의 뒤꼭지를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바람재를 출발하여 계속 오르막을 올라선다. 아직도 날이 밝지 않아 주변 조망이 희미하다. 얼마쯤 진행을 하였을까? 시야가 확보되어 헤드랜턴 불을 끄고 앞을 응시하니 숨막힐 듯이 떡 버티고 있는 산이 황악산의 모습이 아닌가?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운행하다가 접하는 산의 모습에 가끔씩 당황할 때가 있다.

여명의 황악산! 대단한 위용으로 다가온다. 학이 날아들어서 황학산이라 했다기도 하고, 먼옛날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阿道)가 황학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라 하여 직지사 유래했다는 전설과 아울러 산세가 범속치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직지사 현판에 황학산을 황악산으로 표기하고 있단다.

운행 속도가 나질 않는다. 오름길은 그런대로 보행에 문제가 없는데 내리막길은 쌓인 눈과 함께 상당부분이 빙판이 나 있어 속도를 더디게 한다. 황악산 쪽으로 진행하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능선길은 신선봉(944m)을 거쳐 직지사로 이어지나 백두대간상의 황악산은 왼쪽(북쪽)방향으로 진행한다.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 1020봉에 이른다. 그리고 바람재를 출발한지 1시간 17분 만에 황악산 정상에 오른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황악산 비로봉(1111.4m) 정상, 백두대간의 정기를 마셔 보고자 크게 심호흡을 하나 전망이 생각보다 시시하다. 정상에는 김천 고성산악회에서 설치한 표지석은 서있고 그 밑에 표지판이 누워서 대간꾼을 맞이한다.

황악산 정상까지 아이젠 없이 잘 왔으나 에그머니나, 하산길을 내려다 보니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을 뿐만아니라 엄청난 급경사 구간이다. 갑자가 왼쪽눈의 핏줄을 터지게 했던, 조령산 신선암봉 구간을 통과할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바싹 긴장한다. 다행인 것은 황악산 자체가 육산인 관계로 암릉은 없을 것이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어 보아도 위험 구간이 있단 기록을 접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아이젠을 착용하고 서서히 황악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저수지는 어촌저수지인 것 같은데 오른쪽에도 저수지가 하나 있다. 그리고 갈림길이 있고 가로,세로 20㎝ 정도 크기의 흰색 아크릴판에 황악산 2,350m라고 쓰인 안내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이 우측 갈림길이 아마도 직지사 운수암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인 듯 하다. 갈림길을 지나 조금 오르니 3번 지점(하산하여 확인해 보니 운수봉임)으로 표시되어 있는 김천소방서 119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계속되는 하산길, 오른쪽으로 쓰러진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마 초지를 조성했던 곳인 듯한데 지금은 휴경지인지, 방치하는 폐허인지 알 수 없으나 둘레를 쳤던 철조망이 발길에 채인다(선답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이 두레박 식품 농장이라 함). 아이젠을 제거하니 발걸음이 가벼웁다.
축사로 보이는 건물이 여러동 보이고 추풍령 방향에서 올라오는 산행 인파와 조우를 한다. 그리고 바로 앞에 불쑥 솟은 가성산을 바라보며 97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궤방령에 이르자 등반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막걸리를 한잔 권한다. 권하는 막걸리를 한잔 들이키니 시원하다.

야트막한 고개 궤방령, 바람이 막아지는 오막한 자리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궤방령을 지나서 부터는 가성상까지 줄곳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경부선 지나가는 소리다. 추풍령이 가까워지고 있음이야. 안부를 지나 힘있게 올려 친 거기가 가성산인가 했더니 능선마루, 갈림길에 닿는다. 마치 지능선에서 주능선으로 올라붙는 마루금의 모양이다.
능선마루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크게 꺽어 좀 지루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른다. 한참 후에 비교적 정돈된 무덤 1기(누가 이 높은 곳에 무덤을 조성했을까? 무덤의 외양을 보아 지금도 관리되고 있는 봉분임이 틀림없다)를 지나 오르막으로 진행하니 해발 710m의 가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바로 앞에 장군봉과 눌의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김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 체육회에서 설치한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가성산 정상에는 여나므평이 될까?
간이 헬기장인 듯 시멘트로 동그랗게 포장을 해 놓았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박고 다시 하산길을 내려다 보니 급경사, 눈이 무릎 정도는 쌓여 있는 듯 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온다.

워낙 급하게 떨어지는 급사면에다가 눈과 빙판으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가성산에서 내려오니 장군봉 안부에 닿는다. 다시 아이젠을 풀고 천천히 장군봉으로 오르다 양지바른 언덕에 조성된 무덤 옆에서 휴식을 취한다. 간식과 뜨거운 물 한 모금 마신다. 식수가 부족하여 보온병의 온수를 겨우 목만 축일 정도로 마신다.

장군봉(606m)을 지나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 올라서 663봉에 이르러 우측으로 도니 헬기장이 있는데 아마도 관리를 안하는지 잡목이 듬성듬성 있다. 우렁찬 기계음의 기차 소리가 들려오고 차량소리도 멀게 들려온다. 눈짓으로 눌의산이 조망되는 지점이다.

내려섯다 올라서니 처음 맞는 것은 움푹 패인 웅덩이. 정상 헬기장의 축대를 쌓으려고 흙을 파낸 듯 한데 축대를 쌓은 헬기장이 눌의산 정상(해발 743.3m)이다. 조그만 나무막대에 눌의산이라고 씌여진 표지목과 삼각점(영동22, 1981년 제설)이 보인다.

옛날 한양으로 올라가는 긴급연락 수단의 봉수대가 자리했던 눌의산, 이름값 그대로 사방의 전망이 확 트여 시원하다. 게다가 남한의 중심점에 위치하고 있는 눌의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가히 일품, 오늘의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멋지다. 김천, 영동 황간, 추풍령, 그리고 계속 북으로 올라가야 할 대간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눌의산에서 보이는 남쪽의 황악산과 가성산의 모습, 그리고 산군을 이루는 일대의 연봉들이 파노라마 처럼 장엄하다. 동쪽 아래로 경부선을 달리는 철마, 그리고 고속도로가 보이고 추풍령 노래비가 있는 당마루가 멀리서 보인다.

다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하고자 하산 준비를 한다.
하산길은 북서쪽 헬기장으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만나게 되는 두 번째 헬기장에서 교통호를 건너 뛰어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급사면으로 내려선다. 오늘의 산행은 오르면 내리막은 예외 없이 급경사가 기다리고 있다. 무릎도 시끈하고 보행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얼마를 내려오니 완만한 능선이 나타난다. 능선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서니 포도밭이 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포도밭 임도를 지나 잘 정돈된 묘지 앞에서 아이젠을 풀고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송라마을을 지나 고속도로 밑을 통과한다. 철도 건널목을 통과하여 마을을 지나 4번 국도로 진입후 오른쪽으로 올라서니 추풍령 노래비가 오늘도 변함없이 서있다. 대간 종주하면서 4번째 오게 되는 인연이 깊은 추풍령이다.
당마루에서 올려다 본 눌의산의 거대한 모습과 멀리 황악산의 웅자가 한없이 나의 모습을 작게만 느끼게 하고 있다.

오늘의 산행은 오름길은 문제가 안되었으나 내리막은 눈과 빙판으로 보행을 무척이나 괴롭힌 산행이었다. 대간길 한 구간을 연결하면서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또 한가지 첨언하면 점심으로 메기 매운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밥 말아서 소주 한잔과 먹으니 아! ~~ 정말이지 그 맛을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끝.

에필로오그

식수를 좀 부족하게 준비한 실수로 눈을 뭉쳐 먹는 고생을 한 이번 산행에 종주구간 내내 앞에서 선도해준 병길이의 파트너쉽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그리고 본인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산행지와 귀경까지 정성을 기울여준 산울림 산악회의 등반대장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