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 11구간
(산줄기 148일째)

일 자 : 2002년 12월 11일
구 간 : 구치재 ∼ 535.9봉 ∼ 말치고개 ∼ 갈목이재
날 씨 : 맑음

참석자
김종국, 나종학, 장성인, 류민형, 조삼국,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윤정길, 허문선, 한용수, 김수남, 우종수, 이영주, 김호택, 김재정, 선종한(17명)

도상거리 : 14.9km
구치재 - 4.6 - 수철령 - 1.0 - 구룡치 - 2.6 - 새목이재 - 2.1 - 말치고개 - 2.9 - 화엄이재 - 1.7 - 갈목이재

종주일정
10:30/구치재 -- 10:51/십자로안부 -- 11:07/423봉 -- 11:17/백석리고개 -- 11:51/능선분기점(623봉 전위봉) -- 12:02/530봉 -- 12:15/539.9봉 -- 12:23/수철령 -- 12:33/554봉 -- 12:38(12:53)/중식 -- 12:58/구룡치 -- 13:16/586봉 -- 13:41/591봉 -- 13:56/새목이재 -- 14:35/580봉 -- 14:51/말치고개 -- 15:23/550봉 -- 16:00/회넘이재 -- 16:23/547.8봉 -- 16:35/능선분기점 -- 16:50/갈목이재

산행시간 : 6시간 20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얼음장같이 창백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대는 아침이다. 대설이 지나면서 영동지방에 큰 눈이 내리더니 드디어 서울의 날씨도 영하 9℃를 가리킨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우리의 산줄기를 이어 온지 148일, 마루금에 발자국과 추억을 남기려고 간다.

10시 30분 거북이처럼 느리게 엉금엉금 굽이돌아 올라선 구치재 고갯마루에 서니 파란하늘아래 온통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마중 나온다. 정맥의 마루금을 향해 절개지 좌측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이어 잡목 숲을 헤치며 녹색의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 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는 하얀 능선길에는 먹이를 찾아 헤매었을 토끼 한 마리의 발자국만이 선명하게 나있다.

10시 51 작은 오르내림 끝에 십자로안부에 내려선다. 좌측으로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못골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십자로안부를 뒤로 정맥꾼들의 발걸음이 빠르게 진행된다. 오늘로써 한남금북정맥 마루금 잇기가 끝나는 날. 도상거리 14.9km,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 겨울철 당일 종주로 조금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뒤돌아볼 틈도 없다. 땅거미지기 전에 내려서야 할 터인데...

11시 07분 아쉬움으로 남는 탁주봉을 보며 유난히 노간주나무가 많이 눈에 띄는 능선길은 423봉 오르기 직전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정맥길이 나있다. 잠시 올라보는 423봉은 잡목으로 들어차 있어 시야가 막혀있다. 되돌아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서니 산판길이 나타난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의 산판길을 따르다 보니 묘지군락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흐르는 능선이 정맥능선이 아닐까? 생각하며 632봉을 향해 묘지군락과 밭을 가로지르며 내려선 2차선 포장도로가 백석리 고개다.

11시 17분 도로를 뒤로 정맥길은 백석리 마을을 끼고 온통 경지로 바뀌어 있다. 백석리는 '흰돌'이라고 부르는 마을로 마을 뒷산 장구봉 줄기의 유방혈의 젖무덤에서 하나씩 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믿는 두 개의 큰 샘이 있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샘물이 한번도 마른 적이 없어 마을의 풍요와 발전의 근원이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늘 이웃마을의 시샘을 받아왔다고 한다.

밭으로 이어가던 정맥의 마루금이 억새풀이 초라한 능선에 올라서니 이내 계단식 천수답이 가로막는다. 그리고 졸졸 흐르는 물길이 정맥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은 농사를 짓기 위해 인위적으로 마루에 뚝을 쌓아 632봉 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넘기는 것 같다.

11시 26분 아쉬움을 뒤로 숲길로 바뀌는 정맥길이 가파르다. 고령박씨 묘지에 이어 문화유씨 묘지를 통과한다. 십자로안부를 가로지른다. 이어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름길로 한동안 올라서다 만나는 능선갈림길, 오른쪽으로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다니 다시 경사길이 쌓인 눈과 합세하여 힘겹게 한다.

11시 51분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632봉 전 봉우리에 오른다. 잠시 왼쪽으로 632봉으로 향해 보지만 정상 직전 높고 가팔라 여유를 부리다가 후회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눈만 맞추고 발걸음을 돌려버린다. 정맥은 여기서 남쪽방향인 오른쪽으로 향한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이 조금은 거치적거리지만 장송숲길이 제법 여유롭다.

12시 02분 안부를 뒤로 오름길로 두꺼운 하얀 이불을 덮은 묘지를 지나 올라선 530봉에서 오른쪽(남서)으로 꺾어 내려선다. 정맥은 오르내림 끝에 안동장씨 묘지를 지나 올라선 봉우리가 544m봉이다. 우측으로 문암리의 마을과 도로가 정겹게 다가온다.

문암리의 문암이란 지명은 곱냉이 동남쪽에 있는 성문처럼 생긴 문바위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문암리에는 옛날에 한 아주머니가 치마폭에 싸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는 마당바위가 있다. 그 모양이 마치 마당과 같이 생겼다하여 마당바위로 불리는데 그 크기가 20명이 앉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큰 바위라고 한다.

12시 15분 능선분기점인 535.9봉이다. 삼각점은 찾을 염두도 못한다. 우측으로 힘겹게 지나온 능선들이 정겹게 보이고, 좌측으로 속리산 연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맥은 왼쪽으로 눈과 뒤범벅이 된 낙엽길이 미끄럽다.

12시 23분 수철령이다. 돌밭 위에 여러 식구를 거느린 참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나무는 별로 없고 바위만 있는 곳이라 무수목고개라고도 불리는 수철령을 뒤로 미끄러운 가파른 오름길이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가팔라진다. 이어 좁은 날등의 눈 덮인 바위길이 나타난다.

12시 33분 554봉에 오른다. 우측 아래로 종곡리의 마을과 구룡저수지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종곡리는 보은읍의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흔히 북실이라 부르는데 종곡은 마을 뒤에 북산이라는 작은 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 산에서 북소리가 은은히 들리면 이 마을의 경주 김씨 문중에서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소리가 들리는 산을 '북산'이라 하고 마을이름도 북실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조 중엽 때 이 마을에 시주를 왔던 젊은 중이 마을의 선비에게 쫓겨나 앙심으로 야밤에 산에 올라가서 마을의 지혈을 끊고자 산봉우리를 파헤치니 학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그 뒤부터 북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정맥은 오른쪽(남서) 방향으로 틀며 참나무숲으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12시 53분 바람을 피해 정맥식 중식을 끝내고 이어가는 정맥길은 잣나무가 군데군데 보인다. 505봉 직전 왼쪽으로 사면길을 따르다가 참나무 숲으로 내려선 곳이 종곡리에서 내속리면 하판리로 넘나들던 고개, 구불구불함이 용이 움직이는 것 같다는 구룡치다.

12시 58분 구룡치를 뒤로 허물어진 묘지는 눈으로 덮여있고, 작은 오름은 하얀 능선을 스치는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가 560봉이다. 좌측으로 주홍색의 지붕이 눈길을 끄는 마을과 들녘의 겨울풍경, 늘근이 마을과 황새가 노를 저어 날아가는 모양을 했다 하여 '노자비'라 했다는 노재비골도 보인다. 내내 좌측에서 따라오는 속리산 연봉...

13시 08분 560봉에서 정맥은 오른쪽(남)으로 잠시 경사길로 내려선다. 좌우로 급사면을 이루고 있는 정맥의 능선길, 이어 눈길을 헤치며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름길로 잠시 올라선다.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제법 보기 좋다. 능선분기점인 586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내리막길은 양지바른 곳이라 눈이 녹아 더욱 미끄럽다. 안부에서 우측의 허리길을 확인하면서 가파르게 오른다.

13시 28분 능선분기점인 576봉이다. 우측 아래로 구룡저수지, 그리고 종곡리와 성족리의 마을들, 여기서 성족리를 소개하고 넘어가자. 성족리는 1894년 우리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학농민전쟁으로 얼룩진 곳이다. 장안 집회를 마치고 모여들었던 농민군이 최후의 접전을 벌였던 불실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은 영혼들이 바로 이곳 성족리 가마실의 수렁에 잠들었다고 한다. 왼쪽(남동)으로 좁은 날등으로 평탄하게 이어간다. 좌우로 수직의 가까운 절벽을 이루고 있는 참나무 숲의 능선길...

13시 41분 591봉에 오른다. 참나무와 잡목으로 가득하다. 정맥은 591봉을 오르기 직전 오른쪽(남서)으로 이어간다. 평탄한 소나무아래 잡목들이 거치적거리는 능선길을 따르다가 만나는 하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묘지와 비스듬히 누워있는 소나무 한 그루, 이어 넓은 공터에 옛 묘지 터, 여기서 정맥은 왼쪽(남동)으로 한차례 미끄러지듯이 내려선다.

봉우리를 하나를 우회하고 내려선 안부에는 우측 급사면 아래로 마을 집 하나가 내려다보인다. 우회길을 버리고 잠시 올라선 봉우리에는 누워서 새로운 가지를 탄생시킨 작은 참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이곳이 525봉인가? 정맥은 왼쪽으로 간다. 진달래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이어 눈 덮인 바위 날등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절개지 아래로 임도가 희미하게 내려다보인다. 여기가 지도상에 새목이재, 그저 좁은 날등의 안부일 뿐이다.

13시 56분 새목이재를 뒤로 코가 닿을 듯한 오름길이 잠시 누그러지더니 정맥길은 10분 뒤 592봉 직전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가야한다. 잠시 밋밋한 능선 상에 특징이 없는 592봉에 올랐다가 내려선다. 우측으로는 세종대왕이 병을 치료하러 속리산에 왔다가 임시로 대궐을 지었다는 장재리 대궐터 뒤로 장재저수지와 굽이진 말티가 내려다보인다. 완만한 내림길이다. 중키의 푸른 소나무 터널 숲, 이내 우중충한 소나무 숲으로 바뀐다. 겨울을 슬퍼하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

14시 16분 534봉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급경사로 내려서면서 서백룡의 묘지를 만나고 이어 내려선 안부가 진짜 새목이재가 아닐까?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한차례 고비가 될 것 같다. 가파르게 오른다. 몇 번을 무릎을 꿇을 뻔하며 오른다. 전주이씨 묘지를 통과한다. 이어 허리길로 고도 580m 정도 되는 봉을 통과한다.

14시 35분 중키의 소나무숲에 들어서니 주위가 어느새 어둡고 컴컴한 느낌이다. 잠시 내려선 안부에서 보는 우측으로 수직의 그림 같은 암벽, 장재저수지와 장재리 마을들, 그리고 올라선 560봉에서 정맥은 봉우리를 잠시 내려서면서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급경사로 내려서야 한다. 과외지역이다. 장송숲을 통과한다. 이어 암릉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그리고 완만하게 내려선 곳이 말치(티)고개다.

14시 51분 말치고개는 말티에서 외속리면 장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세조가 속리산에 올 때 연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어왔다고 하여 불리어졌다고 한다. '말,은 '높다,의 고어로 말티고개는 '높은고개'를 뜻하는 것이다. 말치고개의 다른 이름은 박석티다. 고려 태조가 속리산에 올 때 고개길에 넓고 얇게 뜬돌을 깔았으므로 '박석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4시 53분 도로개통기념비와 안내판이 서 있는 말치고개를 뒤로 서둘러 눈길을 헤치며 오른다. 정맥길에서 만나는 전주와 콘크리트 구조물, 연이어 묘지를 뒤로 암릉길을 따라 올라선 암봉이 560봉이다. 좌측으로 속리산의 우람한 모습이 보기 좋다. 우측 아래로 장재리 뒤쪽으로 오심불, 장자불, 암소바위 등 3개의 자연마을이 있는 오창리가 내려다보인다. 오창리는 세조 대왕이 속리산에서 요양한 후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다가 이 마을 앞에 이르러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연이어 오르내림으로 이어지다가 만나는 넓은 바위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봉우리다. 그러나 정맥꾼들에게는 그림의 떡, 왼쪽(남동)으로 내려선다. 완만하게 내려선 안부에는 우측으로 하산길이 보이고 그리고 평탄하게 이어지던 정맥길이 오름길로 바뀌며 올라선 봉우리가 550봉이다.

15시 23분 능선분기점인 550m봉에서 남으로 달리던 정맥이 왼쪽(동)으로 꺾으며 간다. 이어 만나는 바위봉에서 좀 더 왼쪽으로 틀며 간다. 공터가 있는 530.7봉을 넘는다. 발 아래로 여전히 넉넉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마을과 들녘, 서원리는 거인이 속리산을 안기 위해 달려온 흔적에 물이 흘러 서원계곡이 되고 그 세 번의 발자국이 서원말, 황해동, 안돌이의 부락을 이룬 형상이라나 믿거나 말거나...

15시 43분 긴 내리막길을 회넘이재겠지 하고 내려섰지만 회넘이재가 아니다. 연이어 봉우리를 넘는다. 내리막길에 연신 땅주인이 되는 정맥꾼들, 벌목된 나무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우측으로 505번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이제 고비가 될 545.7봉의 바위봉이 눈길로 지친 정맥꾼들을 더욱 지치게 한다. 경주이씨 묘지를 만나면서 내려선 곳이 회넘이재다.

16시 구름도 쉬어간다는 회넘이재 고갯마루에는 성황당 돌무더기가 있다. 회너미재는 갈목리에서 서원리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속리절 중과 구병절 중이 이 고개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허행(헛걸음)하고 되돌아 갔다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름길에 만나는 순천김씨 묘지, 소나무숲을 따라 오른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봉을 넘는다.

우측으로 전망이 트이며 경주김씨 묘를 지난다. 수직의 절벽 아래로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505번 도로와 서원리 마을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바위벼랑에 서있는 소나무들이 정말 멋지다.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좋으련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콘크리트 말뚝이 나타나고 이어 눈 속에 꽁꽁 숨은 삼각점을 찾아낸 곳이 547.8봉이다.

16시 23분 547.8봉에서 추억도 많이 남기고 싶었는데 발자국만 남긴 채 길을 재촉한다. 조금 내려서다 왼쪽(북동)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는 미끄러운 눈길은 고통스러운 길이다. 안부에서 다시 봉우리를 넘는다. 이어 암릉을 따라 오르고 봉우리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연신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지는 모자, 조금 더 허리를 굽혀야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 정맥길...

16시 35분 능선분기점이다. 평탄하게 이어지던 정맥길이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북)으로 팍 꺾이는 수직에 가까운 벼랑길이 기다린다. 여기서 선두에 섰던 정맥꾼들은 비싼 과외비를 치렀다는 이야기, 잠시 목을 추이고 있자니 추위가 몰려온다. 한동안 뚝 떨어진다. 그리고 내려선 곳이 갈목이재다.

16시 50분 2001년 6월 6일 금북정맥을 시작으로 한남정맥에 이어 한남금북정맥을 마무리하면서 또 하나의 3개 정맥 마루금 잇기가 끝나는 순간이다. 어둠을 기다리는 갈목이재 고갯마루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끝을 마련하는 양보와 아름다움이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지는 순간이다.

종주 사진첩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