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시 : 2002-12-8,일요일

2.날씨 : 눈

3.산행개요 : 올겨울 처음맞는 본격 눈산행
삼봉산 하산길에서 표지기를 놓침,약 1시간여 알바
소사고개에서 약 3시간여 알바,역종주

4.산행기 :

정말 오랜만에 대간길에 나선다.대개 종주시기를 놓치면 원래의 계획이 틀어져 버리기 일쑤인데 모처럼 시간이 난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왜냐면 보기에는 낭만적인 겨울 산행이지만 곳곳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몸소 확인하게 된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차가 빼재에 올라서니 발아래 느껴지는 ABS작동음과 감촉이 예사롭지 않은데 신풍령 휴게소 앞마당에 주차를 하고 라이트를 끄니 암흑천지에 광풍이 사납다.

주섬주섬 장비를 점검하고 하늘에서 쏱아지는 눈을 맞으며 들머리에 서니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하는 작은 고민과는 이젠 안녕이다.(1.33)내린 눈으로 미끄러운 절개지 사면을 오르고 나면 이제는 나무 사이로 빼꼭이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르게 된다.마주치는 산죽이나 나뭇가지들은 눈을 이고있는데 차가운 날씨에 얼어 붙은 갑옷같은 조직은 제법 거칠게 갈길을 막고있고 표지기는 눈에 잘 띄이지 않는다.

산행후 얼마 되지않아 장갑이 곧 젖어버리고 축축함에 익숙해지자 이젠 바람에 손가락이 얼어오기 시작하는데 바삐 손가락을 움직이니 조금 낫다.여벌로 장갑을 몇컬레 준비하지 못한 준비성을 탓해봐야 여기는 산중이니 아무 소용이 없지만 원래 `후회`란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때로는 싸락눈으로 때로는 샌드머신처럼 퍼붓는 눈가운데 이 야밤에 움직이는 나는 대간길에서 과연 무엇을 위해 또 무엇을 느끼려 이자리에 섰는가?

아상(我相)이 강한 나로써는 아상을 깬다는 이외에도 대아(大我)와 소아(小我)를 조화시키는 노력을 하는셈인데 두발과 의지로 걷는 대간길에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해본다.문득 지나는 기척에 놀랐는지 얼어붙은 산죽밭에서는 어떤 생물의 움직임이 잠시 부산하였고 밟히는 길바닥의 돌부리가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다.얼마뒤 도착한 산정에는 비석같은 표지판이 서있고 여기가 `덕유삼봉산`이다.(2.58)

눈발이 세차게 휘날리는 표지판 뒷쪽으로 급경사를 돌아내리며 `소사고개`로 향하는데 계곡길처럼 흐르던 길이 희미해지며 표지기가 보이질 않는다.아하불사!!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야 했는데.. 한참을 내려도 길이 아닌듯한데 눈이 쌓여있어 길이 전혀 구분이 되지않는다.발밑으론 소사고개의 불빛이 등대처럼 보이지만 길은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희미해지고..발밑이 위태롭더니 급기야 나뭇뿌리에 걸려 몸이 뒤집어진다.

스틱 하나가 맨 앞단이 구부러졌지만 몸은 심하게 부댄곳도 없고 아프지도 않았지만 실실 웃음이 나오는 것은 웬 이유일까?다시 거슬러 올라가기엔 제법 내려왔고 내 자존심이 있지 새길로 개척해 가야지 하며 오른쪽을 보니 뱀그물이 쳐있기에 그쪽을 따라 한참을 트레버스 하다보니 눈앞에 표지기가 보이고 내려가는 길이 잘 나있다.운이 좋은게지.적어도 계곡을 건너지 않았고 또 길에 나오자 바로 눈앞에서 표지기를 만났으니 말이다.

엉덩방아를 수없이 찧어가며 길을 내려와서 작은 산하나를 넘자 앞에는 말로만 듣던 배추밭이 시작된다.왼쪽 가장자리를 따라가다가 숲으로 들어가는 길을 못찾고 배추밭 가운데 난 길로 터벅터벅 내려오니 포장도로와 만났고 능선을 이을 요량에 약 이백미터를 걸어 올라가 절개지로 오른다.(05.00)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자 갑자기 개활지가 보이고 능선이 없어지면서 이어갈 길이 애매해지므로 주변을 왔다 갔다 몇 차례 한 끝에 길 왼쪽에서 표지기를 찾았다.

계속 배추밭 왼쪽 가장자리로 이어지던 길이 밭을 몇개 넘고나서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당도하였다.말이 밭이지 하얗게 눈을 이고있는 주변은 눈을 크게뜨고 찾아보아도 표식이 될만한 지형지물이 없고 지표가 없으니 계속 주변을 맴도는데 개를 키우는 집앞에도 가서 개들에게 합창도 시켜보고 또 이쪽 저쪽의 불켜진 비닐하우스 곁에도 가보지만 인기척도 없고 또 눈내리는 이 새벽에 누가 나와줄리도 만무하다.얼마간을 헤메다가 겨우 눈앞에서 표지기를 확인하고 이를 따르다가 또 다시 흔적을 놓쳤다.

계속 두시간여를 야산에서 헤메면서도 처음 소사고개 밑의 가게에서 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으니 역시 머리가 따르지 않으면 몸은 고생복이 영그는 가보다.겨우 표지기를 찾아 더듬어 가니 내려가는 느낌이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그래 가는데까지 가보자 하며 묘지 몇개를 돌아 큰길로 내려오니 올라오는 몇명과 마주친다.안녕하세요!수고 많습니다.어디서 어디까지 가세요?빼재에서 와서 덕산재쪽으로 가는데요.

어!그쪽은 소사고갠데...역종주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데는 선문답처럼 몇마디 말이 필요치 않았다.ㅠ.ㅠ오 마이 갓!그리고 이들은 빼재에서 3시에 출발하였다는데 필경은 삼봉산 내림길에서 내 발자국만 믿고 따라오다 길을 헤맸다고 하니 미안하다고 해야할지 아님 지금 내가 위로를 받아야 할지?밤새 세시간 가까이를 헤메고도 모잘라 역종주라니 게다가 역주행은 중재에 이어 두번째가 아닌가!암튼 이들과 어울려 널찍한 묘앞의 상석에 이것저것 펴놓고 아침을 먹는 가운데 껴서 요기를 하고 뜨거운 커피도 한 잔 얻어마시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7.49)

이제 사위는 밝아있고 내리던 눈도 잦아들어 한결 여유롭게 지금껏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삼도봉 오름길 초입은 가파르게 올라치기 시작하며 열지어 가는 발걸음에 다져진 눈은 미끄러워 한걸음에 두걸음 미끄러지기도 한다.계속 숨가쁘게 이어지는 오름길.길이 좁아 쉴자리가 없어 계속 밀려 오르다가 조금 터진곳에서 잠시 비껴 쉬면서 요기를 하고 물을 마신다.쉴때마다 몰려오는 수마는 이렇게 추운날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차가운 눈조차 포근하게 느껴지니 이러다 아주 가는게 아닌가?싶어 퍼뜩 깨어나 뱃속을 채운다.

하의는 겹폴라 방수니 걱정이 없고 상의는 안에 반팔 쿨맥스,밖에는 윈스토퍼 스트레치 티하나인데도 춥지 않게 느껴졌지만 음식이나 물이 먹히는 정도로 봐서는 체력소모가 큰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오름길 주변에는 완전한 모습의 빙화들로 가득차 있고 바람이 불어준다면 기막힌 화음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오는것은 칼바람 뿐이며 내쳐 도착한 삼도봉은 대리석 표지하나 덩그라하여 오름길에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별 느낌이 없다.(9.30)

정상에서 돌아서 대덕산으로 향하는 길 역시 빙화에 싸여있어 거대한 겨울 궁전안을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다.모든게 얼어붙은 겨울산과 그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려면 부지런히 움직이는것 뿐이리라.몇번의 오르내림 끝에 도착한 대덕산!(10.27)이렇게 너른 정상은 본적이 없었는데 과장하면 공설운동장만하여 국제규모의 경기를 치뤄도 되겠다.양끝의 표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새하얗게 보이는 주변외엔 멀리는 부옇게만 보인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미끄러지지 않으려 온갖 자세를 잡으니 몸근육이 특히 엉덩이쪽 근육이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도중의 얼음골 약수에서 물을 보충하고 내리다보면 사태지역 비슷한 장소가 나오고 오른쪽으론 계곡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내리는데 길은 계곡을 넘을듯 하다가 목전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게 된다.작은 언덕을 몇개를 넘어야 덕산재에 도착하는데 제법 너른 공간에 빈건물만 남은 휴게소가 볼성사납다.(11.55)

다음 들머리를 확인하고는 무주리조트에서 가족을 보기위해 일찍 내려가려고 히치를 시도한다.마침 무주쪽에서 와서 고개를 넘으려다 되돌리는 승합차의 뒷좌석에 운좋게 앉아서 내려간다.오늘은 운이 참 좋다.알바를 거진 네시간이나 하고도 오전중에 이렇게 일찍 내려갈수 있다는 것이...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