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 10구간
(산줄기 147일째)

일 자 : 2002년 12월 4일
구 간 : 19번 국도 ∼ 구봉산 ∼ 시루산 ∼ 구치재
날 씨 : 맑음

참석자
김종국, 나종학, 장성인, 엄중오, 류민형, 조삼국, 김태웅, 구용회, 윤정길, 허문선, 김수남, 최경섭, 우종수, 이영주, 김호택, 김재정, 선종한(17명)

도상거리 : 12.1km
19번 국도 - 3.0 - 구봉산 - 1.3 - 시루산 - 5.9 - 8번군도(구치리) - 1.9 - 구치재

종주일정
10:10/19번 국도 -- 10:21/419봉 -- 10:32/2차선포장도로 -- 10:43/375봉 -- 11:07/십자안부(벼재?) -- 11:27/구봉산 -- 12:00/시루산 -- 12:12(12;32)/430봉(중식) -- 12:21/중티재 -- 13:02/404봉 능선분기점 -- 13:12/질골고개 -- 13:28/390봉 -- 13:53/430봉 -- 15:00/작은구티재 -- 15:18/능선마루 -- 15:27/456.7봉 -- 15:40/능선분기점 -- 16:00/구치재(575번도로)

산행시간 : 5시간 50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은혜를 갚는다는 아름다운 명칭을 가진 보은군은 오랜 옛날 삼국시대만 해도 삼년산군 또는 삼년군이라 했다. 서기 470년 신라 제20대 자비왕 13년 보은읍 동쪽 4Km 지점에 백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산성을 쌓고 삼년산성이라 이름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삼년만에 쌓았다고 삼년산성으로 칭하였다고 한다.

보은군 내북면 대안리, 19번 국도가 지나는 서낭고개가 10구간 들머리가 된다. 서낭고개는 예전 안 대안에서 바깥 대안으로 넘나들던 큰 고개로 서낭당이 있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없어지고 자동차의 흐름과 함께 정맥꾼들의 다리쉼터가 되어 대안리고개로 추억 속에 남는 곳.

10시 10분 낙엽이 밤새 내린 비에 촉촉이 젖은 정맥길은 제법 넓게 나있다. 안동김씨 묘지를 시작으로 묘3기에 이어 넓은 공터에 자리잡은 평산신씨 묘지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낙엽송 묘목단지와 우측의 장송 숲 사이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서니 묘지 5기가 또 줄줄이 나타난다.

10시 21분 소나무 숲 아래 진달래군락을 헤치며 오름길이 서서히 가팔라지더니 코가 닿을 듯한 오름길로 올라선 곳이 제단이 있는 419봉이다. 정맥은 여기서 오른쪽(남동)으로 꺾으며 험난한 길을 예고라도 하듯 벼랑길이 나타나나면서 시작부터 공들여 쌓아올린 벽돌을 헐어 내듯 한없이 뚝 떨어지다 누그러지는 정맥길...

10시 32분 절개지를 만나 왼쪽으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내려선다. 좌측에 있는 벼재 밑이 되므로 벼재, 비재 또는 성티라고 부르는 성티리에서 19번 국도와 연결되는 도로를 가로지른다. 성티리의 토질은 편마암 계통의 검은 돌이 많이 있어 밭이며 심지어 무덤까지 토질이 온통 검은 빛을 띠고 있다. 밭은 끼고 간다.

10시 43분 375봉 오르기 직전 정맥은 오른쪽(남)으로 솔잎을 부드럽게 밟히는 정맥길을 따라 펑퍼짐한 안부에 내려선다. 이어 장송숲 사잇길로 가파르게 올라선 좁은 날등에서 왼쪽(남)으로 다시 좀더 왼쪽으로 틀며 올라선 공터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봉에 올라 왼쪽(북동)으로 이어간다. 오른쪽으로 한참은 달려가다가 되돌아오는 경주마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렸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봄 날씨로 변해 비 오듯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어느새 나타나 어서 오라 손짓하는 구봉산, 연이어 올라선 또 다른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가파르게 내려선다.

11시 01분 넓은 공터의 안부에서 오름길로 바뀌며 만나는 은진송씨 합장묘지, 4분 정도 가파르게 올라서니 무너져 내린 묘지가 정맥꾼들을 반긴다. 소나무 한 그루가 유혹하는 선명한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진달래군락을 헤치며 간다.

11시 07분 좌측의 성티리에서 이원리를 넘나들던 벼랑이 있어 벼재라고 불렀다는 고갯길인 듯한 십자로안부를 가로지른다. 우측의 이원리 도장골은 옛날 원님이 청주 왕래도중 쉬어가면서 이곳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물도 또한 맑아 산수가 좋다고 칭찬하던 살기 좋은 곳이란다.

11시 27분 정맥은 오름길이 서서히 가팔라지면서 코가 닿을 듯 힘겹게 능선마루에 오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을 잠시 벗어나 오른쪽으로 푸른색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구봉산(506m) 정상에 오른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막힘이 없다. 속리산 연봉이 하늘금을 이루고, 보은이 자랑하는 충북알프스의 능선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삼가저수지도...

11시 30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와 정맥길로 접어들면서 좁은 날등을 따라 또 다른 하얀 산불초소가 자리잡고 있는 봉을 향해 간다. 우측으로 이어가는 정맥능선 그리고 시루산, 시야가 탁 트이며 지나온 정맥의 능선과 가야할 능선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좌우로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는 마을들...

키 작은 떡갈나무군락과 암릉길로 이어가던 정맥은 연이어 두 개의 봉을 넘고 올라선 483봉에서 바윗길로 내려선다. 우측 벼랑 너머로 도로와 고려 말 최영장군이 이곳을 지나가다 항상 구름에 덮여있는 곳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라는 백운동마을이 보인다. 안부에서 다시 봉에 올랐다가 급경사로 내려서면서 절벽지대, 옛 광산의 흉터가 정맥꾼들을 가슴아프게 한다.

이 흉터는 이원리 구봉산일대 천연슬레이트 채석장의 하나였는데 채석광에서 생산되는 채석 잔여물로 인하여 보은읍 상수원의 상류인 보청천 바닥에 흰색앙금이 생기면서 채석허가를 연장 받지 못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12시 가파르게 올라 482.4m 높이의 삼각점(314, 79. 8 재설 건설부)이 낙엽에 쌓여 있는 시루산에 오른다. 시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시루산 중턱에 큰 지네가 살고 있었는데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중티리는 이 지네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성황당을 세워놓고 정월 보름날과 칠석날에는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예전 제사를 지냈던 산지당 자리가 지금도 남아있는 시루산은 수호신으로 주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나...

12시 시루산을 뒤로 두 개의 고만고만한 봉을 넘고 올라선 능선분기점인 430봉에는 돌탑 하나가 정맥길을 지키고 있다. 먼저 도착한 경주마들이 어느새 도시락을 비우고, 김수남씨의 맛깔스런 김장김치가 오늘의 특별메뉴다.

12시 32분 능선분기점인 430봉을 뒤로 오른쪽(남동)으로 돌밭길로 가파르게 떨어지다 누그러지면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앞을 막는다. 그리고 거목 아래 제단과 엎어놓은 시루 하나...

12시 41분 이원리 곰쟁이에서 산외면 중티리로 넘나들던 제법 넓은 중티재를 가로지른다. 우측으로 곰쟁이로 이어지는 지픈 골은 '깊은 골'이 변하여 '지픈골'이 되었다고 한다. 이장한 묘지 터를 지나면서 가파르게 올라선 371봉에서 왼쪽(북동)으로 꺾이며 내려서는 정맥길은 빼곡이 들어서 있는 잡목 숲을 헤쳐야 한다.

12시 55분 간벌한 나무들을 헤치며 올라서니 청주한씨 묘지가 정맥을 지키고 있고, 조금 더 올라선 봉우리는 고도 350m를 가리킨다. 1분 뒤 밋밋한 돌무덤 2기를 만나면서 서서히 오른쪽으로 틀며 간다. 키를 조금 넘는 소나무숲길이다. 좌측으로 마을과 들녘이 시냇물과 산으로 둘러 쌓여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솔잎이 덮여있는 암릉길이다. 그리고 지나온 시루산의 일곱 봉우리가 정맥꾼들을 보내고 있다. 칠봉산의 주봉인 시루산은 보은의 4증8항(四甑八項)의 하나로 북증(北甑)이라고 일컬어 왔다나...

13시 02분 가파르게 묘 2기를 지나 펑퍼짐한 능선분기점인 404봉에 올랐다가 이어 왼쪽(남동)으로 넓고 평탄한 능선길은 잡목 숲을 헤치며 작은 오름 뒤에 청주한씨와 전주이씨 합장묘를 통과한다. 정맥은 뾰쪽한 봉을 보며 왼쪽으로 꺾으며 급경사에 내림길이다.

또 다른 뾰쪽한 봉우리를 우회하며 산허리길로 빼곡이 들어서 있는 참나무 숲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서니 잡초가 우거진 십자로안부가 된다. 좌우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 이 고개를 예전에 질골 고개라고도 했는데 이 고개는 우측으로 질골은 북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길어서 '길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 질골이 되었고, 북상골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뒷편에 복숭아나무가 있어 '복상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북상골'이 되었다고 한다.

13시 12분 안부를 뒤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길탕리의 교량을 내려다보며 오른다. 힘이 세어 장군이라 칭하고 앞뒤로 펼쳐진 봉우리를 도술로 뛰어다녔다고 전해오는 호장군의 전설이 전해 오는 전설의 고장 길탕리는 한강 상류인 속리천이 마을 앞을 감싸 흐르고 있다.

경주김씨 묘지를 뒤로 한차례 작은 오름이지만 가파르게 오른다. 390봉 오르기 직전 왼쪽으로 급경사에 내림길이 되더니 잡초가 무성한 안부에는 '국유지'라고 표기된 말목이 나타난다. 다시 한차례 가팔라지면서 흙무더기를 지나 올라선 봉이 소나무 한 그루가 눈이 띄는390봉이다.

13시 28분 능선분기점인 390봉에서 오른쪽 길을 버리고 직진한다. 커다란 웅덩이가 있는 안부를 지나 우측의 잘 정리된 묘지군락을 보며 올라선 또 하나의 봉우리, 여기서 오른쪽(남동)으로 제법 푸른 소나무 숲을 보며 완만하게 이어간다.

완만하던 오름길이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419봉, 정맥은 여기서 오른쪽(남동)으로 잣나무 묘목단지를 보며 수북히 쌓인 낙엽을 가르며 가파르게 내려서면서 연달아 땅 주인이 되는 김수남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웃음으로 답하는 김수남씨, 안부에서 잣나무 묘목단지를 끼고 가파른 오름길은 내려선 만큼 한차례 힘겹게 올라야 한다.

13시 53분 능선분기점인 430봉이다. 왼쪽(북)으로 우측의 넓은 들판을 보며 간다. 연이어 오르내림으로 이어지는 정맥길, 수많은 봉우리를 힘겹게 넘어왔건만 정맥꾼들의 표정에서 주춤거리거나 서성거리는 마을을 읽을 수가 없다. 오직 목표를 향해...

14시 13분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빼곡이 들어서 있는 진달래나무를 헤치며 고도 450m를 가리키는 봉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속리산 연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맥꾼의 목표가 보이기 시작하니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설레는 마음 진정키가 어렵다.

5분 정도 다리쉼을 끝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왼쪽으로 연이어 높낮이가 조금씩 다른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14시 30분 능선분기점에서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선다. 오르내림으로 이어지다가 시야에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7분 뒤 410m 정도 되는 봉우리, 여기서 오른쪽(동)으로 이어가다 보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탁주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한동안 쌓아온 벽돌을 하나 하나 헐어내야 할 시간이 다가 온다.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동안 헐어내다 만나는 뭉개진 묘지를 뒤로 작은 오름이 있고, 이어지는 정맥길은 마치 트위스트를 추는 것처럼 꼬불꼬불 이어진다. 드디어 자동차의 흐름이 들려온다.

14시 55분 가파르던 내리막길이 누그러지며 간 벌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서 정맥꾼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절개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왼쪽으로 2차선도로가 모습을 들어낸다. 그리고 내려서면서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반가운 구름나그네...

15시 구름나그네와 정맥에서의 만남, 가끔 산행기 답글에서 예고는 했지만 이렇게 먼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아우 구름나그네, 반가움에 선뜻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배낭 가득히 먹을 것을 짊어지고 가파른 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와 길목에서 기다리고있는 구름나그네, 이 시간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5시 6분 구치마을에서 산대리로 이어지는 정맥의 봉우리 사이로 뚫린 작은 구티재를 뒤로 절개지 좌측으로 올라 가파르게 이어지는 정맥의 오름길은 그저 정상을 향하여 낙엽송 조림지를 통과하며 코가 땅에 닿을 듯한 낙엽이 수북한 사면을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올라야 한다. 뒤따르는 구름나그네, 오늘 종착지인 흰돌마을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15시 18분 능선마루에 오른다. 정맥은 오른쪽이다. 430m봉이다. 중키의 소나무숲을 따라 암릉을 내려선다. 조심하라는 구름나그네의 다정한 목소리, 좌측으로 탁주봉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하건만 탁주봉과의 만남은 무산될 것 같다. 탁주봉은 속리산 법주사에 큰 부처님을 향하여 노승이 절을 하고 있는 형국을 하고 있다나, 이 탁주봉은 산외면에서는 3번째로 높은 산이 되고, 봉우리 아래 동네가 탁주리가 된다.

15시 27분 능선분기점인 삼각점이 있는 456.7봉에 오른다. 그러나 삼각점은 누구에 소행인지 파손되어 안타깝게 버려져 있다. 측량용 폴을 세우며 철사줄이 설치되어 있어 자칫하면 또 하나의 훈장을 달 뻔한 456.7봉을 뒤로 왼쪽(북동)으로 쓰러진 소나무가지를 가로지르며 한차례 내려선 안부에서 오름길은 소나무숲길로 이어진다.

15시 42분 쌍묘를 만나면서 정맥길은 탁주봉으로 오르는 선명한 등산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허리길로 이어진다. 조금은 미심쩍은 길이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능선길을 확인해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마 잡목이 심해 정맥꾼 거의가 다 이 길을 걸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낙엽송군락을 따라 급경사의 정맥길을 내려서니 왜소나무 숲 사이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한 때는 하늘을 치솟은 푸른 낙엽송군락을 좋아했는데 지난여름 장마 때에 낙엽송과 왜소나무가 수해의 원인을 제공한 주범이란 소리를 들은 후 그리 반갑지가 않다. 하긴 키가 크다보니 바람과 비에 약할 수밖에...

묘지군락을 통과하면서 내려선 곳이 57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구치재다.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구티리는 마을 입구에 있는 산이 거북이와 흡사한데다가 거북이가 산에서 마을을 향해 엉금엉금 걸어 내려오는 듯해 구티라고 부르다 구티고개 아홉고개라 하여 다시 구티리라 했다나, 하지만 마을주민들의 속설에는 거북구자(龜)가 쓰기가 힘든 한자이기에 아홉구자(九)를 써 현재의 구티(九峙)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흰돌마을까지 가려고 했었는데 겨울이란 두 글자 앞에서 이제 욕심을 버려야 할 것 같다. 구치재 고갯마루에 탁주봉까지 열심히 올랐던 정맥꾼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첫 만남이 아닌 것처럼 스스럼없이 반가워하는 구름나그네와 잔디밭 특공대원들, 즐거웠던 순간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종주 사진첩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