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여만에 동대문에 나섰더니 산에 가려는 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단풍 철이라서 그런지..... 몇몇 분의 낯익은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3시30분 서울을 떠나 일행이 도착한곳은 건의령. 콧속으로 스며드는 상큼한 공기에 잠은 멀리 달아나고 올망졸망 펼쳐져 있는 별들이 한아름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안전 산행을 위하여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간 지방출장에서 한달여간 과로한 탓에 제대로 산행을 할지 의문이었다. 대장 나으리는 여러 사람의 산행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초보로 출전한 네분을 이끌고 피재에서 출발하기로 하고 버스에 다시 타셨다.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으로 선두에 서서 오늘 산행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당집을 뒤로하고 나지막한 산을 오르고 내리고, 얼굴을 긁어대는 잡목을 피해가며, 또 쓰러져 있는 나무를 피하다가 바지가랑이가 나무 옹이에 걸려서 큰 나무와 박치기도 해가며, 그렇게 어둠속을 헤집고 다녔다.

5시45분 피재에 도착. 이곳에는 삼수령이라는 비(碑)가 있는데 한가족의 빗물이 삼척의 오십천과 낙동강, 한강으로 각기 이별했다가 아주 먼훗날 바다에서 해후한다는 글이 씌어 있다. 그리고 피재라는 이름은 삼척쪽에서 난리를 피해 넘어오던 고개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 한다. 일행은 간단히 요기를 한후 다시 매봉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매봉산까지는 포장된 길을 따라 가게되는데 도로 경사치고는 아주 가파르고 대간 길치고는 아주 밋밋한 그런 곳이다. 매봉산 바로 아래까지는 모두가 고랭지 채소밭이며, 간간이 보이는 커다란 바위나 나무 뿌리가 있는 것은 예전에 그곳이 산이었음을 말해준다.

6시37분 매봉산(1,303m) 정상. 마침 동쪽 하늘에서 한 떼의 구름을 뚫고 솟아나는 해돋이는 언제 보아도 가슴을 들뜨게 한다. 다시 오던 길을 60여미터 내려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대간길이 다시 이어진다. 밭과 산이 경계를 이루는 아주 묘한 곳이 대간 길이며 이것도 조금 가다보면 밭으로 변해 있어서 수확철이 끝난 지금에는 밭을 가로질러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밭둑을 빙글빙글 돌아서 가야한다.

여기가 바로 강원도 고랭지 밭의 최대 집산지라 한다. 그 규모가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작년 이맘때는 배추 값이 폭락하여 밭에 배추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모습이 별로 없었고, 다만 아래로 내려오니 뽑지 않은 양상추가 밭에 가득 있었다. 거기에는 쓰라린 농심이 가득 배어 있는 듯 했다. 특히 이 양상추는 샐러드로 많이 이용되며 장을 찍어 먹어도 맛이 그만 이란다. 또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양상추는 7,8천원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마다 한, 두개씩의 양상추를 배낭에 넣고 있었다.

고랭지 채소밭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하며 그 꼭대기에 다다르면 그곳이 바로 비단봉(1,279m)이다 (7시20분). 여기서 20분 정도 가볍게 내려가면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쑤아밭령이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완만한 능선을 따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식곤증인지 아니면 지난 일의 과로 탓인지 졸립고.... 나른하고.... 또 두 번째 세 번째 이정표를 통과 할쯤엔 허벅지 근육까지 뻐근해옴이 느껴졌다. "아이고∼ 완존히 맛이 갔군...."

그렇게 낑낑대며 금대봉(1,418m)에 올라서 한숨을 돌렸다. (8시45분) 이곳 나무 팻말에는 양강발원지라는 글이 씌어 있었는데 즉, 이 산자락에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가 위치한곳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피해서 돌무더기에 곤한 몸을 기댄 후 멀리 내다보니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잡힌다. 이곳 능선에는 이미 낙엽이 지고 없지만 저 아래에는 아직도 울긋불긋 고운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왠지 모를 편안함이 몸속 가득해진다. 이곳의 넉넉함이 세상 곳곳에 두루두루 전해저서 쌈박질좀 하지 않았으면.....

금대봉에서 30여분 남짓 밋밋하게 내려오면 싸리재(두문동재)이다. 여기서부터 다시 헥헥거리면서 올라야 은대봉에 도달할 수 있다. 9시43분에 헬기장이 있는 은대봉(1,142m)을 통과하여 제1쉼터에서 간식과 목을 축였다. (10시)

이제부터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마음은 엄청 빨리 움직이는데 다리는 게걸음이다. 참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다. "허허∼" 나도 모르게 절로 탄식이 흐른다. "왜? 맛이 갔응께!"

중함백(1,505m)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11시43분 오늘의 고지인 함백산(1,573m)을 점령하였다. 뒤돌아 서서 보니 오늘 걸어온 대간 능선이 굽이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이 구간은 북진보다 남진이 1.3배 더 힘들다. 그 이유는 북진을 살펴볼진대 함백산을 정점으로 낮은 봉우리를 향하고 있으며 또한 내리막길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반대로 오기가 더 힘이 드는 것이다. 오늘의 종착지인 만항재가 멀리 손에 잡힐듯하다. 이곳도 다왔다고 방심하면 곤란하다. 능선 옆으로 도로가 있지만 마루금을 밟기 위해서는 나지막한 능선을 30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12시40분 만항재 도착. 총산행시간 9시간10분. (후미 14시10분 도착)
양상추에 삼겹살은 맛이 아주 왔땀다! 여기에 하산주로 동동주를 곁들이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사람들은 모두 힘든 산행을 서로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분들 얼굴에는 넉넉함이 햇살처럼 넓게 번져 있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