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종주 십이구간 (세째날)
(산줄기 142일째)

종주일자 : 2002년 10월 25일
종주구간 : 회봉리 안부 ∼ 만덕산 ∼ 주화산(주줄산)
날 씨 : 맑음

종 주 자
김종국, 나종학, 류민형, 조삼국,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11명)

도상거리 : 11km
회봉리 안부(마치) - 3.2 - 만덕산(△762m) - 2.5 - 곰치재 - 4.7 - 모래재 - 0.6 - 주줄산(565m)

종주일정
06:50/회봉리 상회마을 -- 07:10/회봉리 안부 -- 07:26/600봉 -- 07:41/650봉 -- 07:58/750봉 -- 08:25/761봉 능선분기점 -- 08:30/만덕산 -- 08:55/761봉 출발 -- 09:13(09:38)/알바 -- 09:44/조두치 -- 10:19/530봉 -- 10:30/곰치재 -- 10:47/600봉 -- 11:00/임도 -- 11:20/곰티재 옛길 -- 11:34/563봉 -- 12:12/충전치 -- 12:21/540봉 -- 12:44/모래재 터널위 -- 12:58/주줄산 -- 13:20/모래재휴게소

산행시간 : 6시간 30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섬진강 하구 외망마을에서 망덕산을 오르며 호남정맥 종주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호남정맥 졸업하는 날이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아득하게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졸업식장이 순간 스치고 지나간다. 파란 하늘이 정겨운 회봉리 상회마을 길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을 한아름씩 안아보며 정맥꾼들은 새벽공기를 가른다..

07시 10분 가파른 계곡길과 산허리길을 돌아 20분만에 올라선 회봉리 안부(마치)의 고목 한 그루, 정맥은 북동쪽으로 완만하게 오름길이 되면서 어느새 건너편 산등성이에 떠오른 아침해가 유난히 눈부시다. 참나무 숲의 오름길이 누그러지더니 옛 무덤이 자리잡고 있는 봉에 오르고 연이어 봉을 넘으며 내려다보는 하룻밤을 보낸 상회마을 계곡으로 어디서 왔는지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평탄한 오름내림 속에 사랑싸움을 벌리는 새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꾀꼬리 사촌인가, 정맥길이 한차례 가팔라지더니 좌측으로 희미한 하산길이 보이고 이어 올라선 봉이 600봉이다. 만덕산의 암릉들이 어느새 시야에 가깝게 다가온다.

07시 26분 참나무숲의 600봉을 뒤로 가파른 내리막길은 좌측으로 벼랑을 이루고 있고, 지그재그로 내려서던 길이 평탄해지면서 좌측으로 아침을 여는 깊은 계곡이 각가지 옷으로 갈라 입고 있다. 더욱 가까워지는 만덕산, 특히 솟대바위 봉의 모습이 만만찮게 보인다. 날 등에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이 완만한 오름길이 되더니 정맥길은 바위지대가 앞을 막는다. 우회길로 간다.

07시 41분 능선분기점인 650봉에 올라 정맥은 왼쪽(북)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좌측은 수직의 가까운 벼랑, 완만하게 오르던 봉에서 뒤돌아보는 지나온 정맥능선들, 무엇을 얻으려고 저 험한 길을 달려왔던가, 쓰러진 나무들이 여전히 성가시다. 한차례 올라서다가 우측으로 내려다보는 햇빛에 반사된 은빛 수면의 저수지가 너무 아름답다.

07시 52분 능선분기점이다. 왼쪽으로 바로 앞에 나타난 750봉의 솟대바위을 바라보며 내려선다. 작지만 너럭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잠시 내려섰다가 750봉을 향해 오르는 길은 오른쪽으로 나있다. 수직의 가까운 바위벽을 밧줄에 매달리고 다시 네발로 기어오른다. 짜릿한 느낌...

07시 58분 750봉이다. 탁 트인 시야, 먼저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좌측 아래로 정수사 골짜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지나온 정맥능선은 마치 용트림치는 듯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멀리 경각산, 고덕산과 모악산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750봉을 뒤로 아기자기한 암릉은 조심해서 내려서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상황 끝이다. 진달래 군락을 헤치며 간다. 그리고 좁은 암릉을 타고 오르는 또 하나의 짜릿한 순간, 먼저 올라선 김대장이 열심히 순간을 남기고 있다. 뒤돌아보는 750봉의 멋진 절경,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다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우회길을 따르다가 밧줄에 매달려 봉에 오른다.

08시 25분 다시 한차례 암릉길을 내려섰다 올라선 곳이 능선분기점이 761봉이다. 전북산사랑회에서 만덕산이라 표기된 금속팻말에는 이정표(정수리:3.3m, 슬치:13.2km, 곰치재:2.5km)를 가리키고 있다. 작은 통신 시설물, 정맥은 오른쪽이다. 5분 거리에 있는 만덕산을 향한다. 한차례 바윗길을 내려서고 다시 올라선 곳이 만덕산(761.8m) 정상 이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과 상관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육산과 암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만덕산은 한자로 일만만(萬), 큰덕(德)을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푼다고 하여 지어졌다는데, 숲이 울창하고 골짜기가 깊고 험해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전란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은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다른 설은 고구려 때 보덕화상이 이 산자락에다 만덕사를 개창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주민들은 부처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만가지에 달하는 덕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는 것이며, 또는 삼신사상에서 유래되었다나...

동쪽 산기슭의 암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미륵사와 그 아래의 높이 50m의 암벽을 타고 내리는 만덕폭포의 장관은 주변의 시원한 계곡물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여름철의 피서지로서 겨울철은 산악인들의 빙벽등반 장소로 애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좁은 공터의 대삼각점, 조금 떨어진 전망대에 서니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발 아래로 드넓은 분지를 이룬 완주군의 들판지대, 북동쪽으로 원등산 너머로 운장산과 연석산이 하늘금을 그으며 넘실대는 파도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이 순간 정맥꾼들은 산줄기를 타는 보람을 느끼고, 능선분기점인 761봉에 되돌아온다. 그리고 충분한 휴식시간...

08시 55분 761봉을 뒤로 2분 정도 내려서다 만나는 암릉길을 타고 넘는다. 두 번째 만나는 암릉은 오른쪽으로 우회길이 나있다. 그리고 정맥꾼들은 왼쪽의 정맥길을 찾아야 하는데 우측 사면에 신경을 쓰다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동안 엉뚱한 곳으로 뚝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통나무계단을 타고 내려선다.

병풍처럼 휘두른 암릉 때문이라 우회길로 나있는 줄 알았는데 파란색의 벤치를 만나고 왼쪽으로 산허리길의 산죽밭을 가르며 계곡을 건너서 정맥능선에 올라서서야 잘못된 길로 내려선 것을 알았다. 되돌아선다. 그리고 역으로 가파른 오름길, 8분 정도 내려왔다고 생각이 드는데 오름길은 17분 걸려서야 잘못 내려섰던 갈림길을 찾을 수 있다.

09시 30분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우회길과 암릉길 중, 암릉길로 잠시 넘어서면 통나무계단이 나타난다. 통나무계단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다 만나는 전망이 트이는 바위, 다시 바위길로 급하게 떨어지고 급경사의 통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뒤돌아 섰던 장소인 뻔뻔한 능선길, 마치 인생길 같은 정맥길, 순간의 방심이, 과외비를 25분 정도 치른 폭이다. 'NO,55' 라 표기된 콘크리트 설치물이 있는 작은 봉을 넘는다. 내리막길이 급경사로 한차례 뚝 떨어진 곳이 지도에 표기된 조두치다.

09시 44분 5분 정도 휴식을 하며 안도에 한숨을 쉬는 정맥꾼들, 허기를 메꾸고 한차례 오르는 길이 가파른 돌밭길이다. 연이어 봉을 넘으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간다. 오름길은 넓게 나있는 산죽밭을 가르다가 바위 등에 오르고 이어 조금 더 올라선 곳이 능선분기점이다.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 허리길로 내려서다 만나는 인삼밭, 정맥 넓은 안부가 온통 인삼밭이다.

10시 06분 날 등에 붙으며 오른쪽으로 간다. 2분 뒤 조그만 돌탑이 눈길을 끄는 봉에 오르고 바위지대를 벗어나면서 다시 봉을 넘는다. 지나온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 힘들었었지만 재미도 있었어, 조계산을 넘던 날, 별랑면사무소 정문 앞에 있는 동백식당 욕보할매집에 찾아갔을 때, 첫인사가 "×같은 놈들 왔네"하던 욕보 할매 그런데 소문과는 달리 맛대가리는 하나도 없었지, 연이어 봉을 넘는다.

10시 19분 좁은 공터의 530봉이다. 바로 아래가 곰치재가 된다. 고도 100m 정도, 가파르게 떨어져야 한다. 5분 뒤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이다. 완만하던 정맥길이 2분 뒤 급경사로 뚝 떨어진다. 곰치재 전적탑이 보이고 한차례 올라설 봉이 너무 높아 보인다. 길이 누그러지더니 작은 언덕을 넘어 묘 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한창 바닥을 정리하는 장비가 먼지를 내고 있는 진안군 주귀면 경계표지판과 웅치 전적비 안내판이 서있는 곰치재다.

전주와 진안을 넘나들던 옛길, 곰웅(熊)자를 써서 웅치(熊峙)라고도 한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상도를 석권하고 호남 땅을 침공하려고 금산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이 2진으로 나누어 1진은 대둔산 이치로 침공하고, 2진은 진안에서 전주로 침입하기 위해 곰티재로 접근해 오자,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웅정, 나주판관 이복남이 이끈 의병들은 치열한 접전 끝에 적을 격파하였다.

특히 정담은 3일간의 격전 속에서 포위되어 백병전으로 무찌르다가 순직하였다. 이리하여 웅치수비는 왜군의 조총과 아군의 중과부적으로 한때 무너졌지만 왜군은 여기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고 전주성을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이름 모를 영혼이 담긴 웅치대첩의 현장에는 10m 높이 하늘을 찌를 듯이 전적비가 우뚝 서 있다.

10시 30분 콘크리트포장길을 따라 4분 정도 올라 전적비 앞에서면서 역사의 장지에서 인생은 덧없는 존재임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다. 정맥길은 전적비를 뒤로 도로를 버리고 김해 김씨와 천안 전씨 합장묘를 지나 약간 왼쪽으로 완만하고 넓던 오름길이 좁아지면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선택을 요구 당할 때 늘 안내자가 되어주던 1대간 9정맥 완주을 이룬 빛 바랜 거인산악회의 리본 하나...

10시 47분 능선분기점이다. 왼쪽으로 다시 조금 더 올라선 600봉에서 역시 왼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진다. 좁은 날등으로 떨어지던 정맥길이 누그러지는 듯 하더니 다시 한차례 미끄러지듯이 떨어진다.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길, 연이어 봉을 우회하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간다.

11시 임도가 나타난다. 2분 뒤 철망문이 설치된 임도 안부에 내려서고 정맥은 철망 울타리를 따라 오름길이 된다. 철망을 따라 오르내림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선 고갯마루에서 또 다른 사실을 발견한다.

11시 20분 진안군 문화원에서 설치한 곰티재 전적지 안내판이 진짜 이 곳이 곰티재임을 가리켜주고 있다. 조금 전 지나온 곰치재가 뚫리기 전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넘나들던 옛 고갯길이란다. 이 고개는 1592년 왜군이 태평연목을 꿈꾸고 있던 우리나라를 침략해 이리떼처럼 쳐들어 온 격전지로서 골짜기의 초목과 물이 피로 물들었던 곳이라고 한다. 나무에 그들의 장사 조상하는 제문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 기록을 남긴 전쟁터이기도 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563봉을 향하여 고도 80m 정도 한차례 올라서야 한다. 철조망을 끼고 이어지는 정맥의 오르내림, 우측으로 임도가 내려다보인다. 우측에 있는 묘지를 통과하며 뒤돌아보는 걸어온 정맥능선, 오늘따라 뒤돌아보는 회수가 많아진다. 미련 때문일까? 날등을 넘고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11시 34분 바위길을 통과하며 올라선 곳이 능선분기점인 563봉이다. 선답자 신원기의 리본 하나가 눈길을 끈다. '1대간 9정맥, 혼자 걷자니 길은 멀고 힘은 들고...' 정맥은 왼쪽으로 팍 꺾이면서 뚝 떨어진다. 좁은 날등으로 급경사로 떨어지던 정맥길이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급경사에 바위길이 나타난다.

11시 46분 키다리 참나무숲의 봉을 넘고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팍 꺾이며 떨어진다. 희미한 길이 보이는 안부, 작은 오름이 있은 후 드디어 금남호남정맥을 시작하며 올랐던 산불초소가 있는 620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아래 정맥꾼들의 졸업식장인 주화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얼마나 애태우며 달려왔던가....

11시 53분 다시 오름길이 가팔라지더니 좁은 공터에 봉에 오르자마자 다시 좁은 날등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서야 하는 정맥길,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간다. 정맥꾼들에게 마지막 시련을 안겨주려는 듯 잡목들과 가시넝쿨이 대단하다. 싸리나무 군락지,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산죽밭을 헤쳐나간다. 겨울채비준비에 한창인 참나무들....

12시 12분 미끄러지듯이 낙엽을 헤치며 내려선 곳이 대한광업진흥공사의 네모난 콘크리트 표지가 있는 충전치다. 마음은 급한데 다시 내려선 만큼 또 올라야 하는 정맥길, 아직 얼마나 오르고 내려서야 하는 것일까? 오름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넓게 다듬어진 급경사의 오름길을 한동안 따르다가 왼쪽으로 날등에 붙는다.

12시 21분 능선분기점인 540봉이다. 정맥은 왼쪽이다. 참나무숲 아래 진달래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거치적거리고, 한차례 미끄러지다가 교통호를 통과하며 펑퍼짐한 안부를 다시 가로지른다. 정맥꾼들을 축하하는 단풍잎의 꽃다발이 능선에 가득하고 한차례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고 있다. 하얀 선을 그으며...

모래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올랐던 봉에서 다시 가파르게 떨어지더니 우측 아래로 모래재 휴게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완만한 오름길, 드디어 주화산(주줄산)이 바로 앞에 보인다. 한번 만 내려섰다 오르면 된다. 오른쪽으로 다시 떨어지는 내리막길, 빨리 주화산(주줄산)에 안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발걸음이 엉망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 발에 신경을 써야한다.

12시 44분 모래재 터널 위다. 호남정맥 수많은 오름 중에 마지막 오름 길이 시작된다. 마지막 오름길도 예외는 아니다. 잡목과 가시넝쿨, 그리고 쓰러진 나무들, 한 발 한발 발걸음을 옮기면서 지나온 순간들을 되새겨 본다. 호된 신고식을 치르던 불암산 오르내림길, 토끼재에 내려설 때 남은 체력은 손톱만큼 밖에 없었지...

비속에 넘던 백운산, 비가 주는 보이지 않는 무게까지 짊어졌던 정맥꾼들, 거미줄 같은 인연을 엮어가며 올랐던 도솔봉에는 지리연릉이 물밀 듯이 닿아왔지, 지독한 철쭉밭을 헤치고 내려서서 노고치에 도착하는 순간 집에서는 둘째 딸 희은이가 교통사고로 아! 생각하기조차 싫다 싫어...

몇 번이었던가 오르내림 끝에 찾았던 백이산 하산길, 그리고 빼앗긴 존재산에서 천지고개까지 난도질당하며 잡목숲을 뚫던 임도, 모두다 물이 떨어져 힘들었을 때 목을 축이게 했던 돌배나무 한 그루의 이드리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철쭉밭의 일림산과 억새밭의 사자 제암산, 어둠 속에 내려서던 큰덕골재 밤하늘에는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의 향연이 아름다웠지. 예재 가시밭길은 유난하더군, 오산에서 만난 황사바람, 정상을 비껴나가던 무등산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기에 얼굴마저 가려버렸지...

호남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멋모르고 들어섰던 D1200mm 하수관, 괘일산, 설산, 산성산, 그리고 무더위와 한판 승부를 벌렸던 추월산과 여름의 내장산, 가을에 다시 만난 가을고개, 대단하던 산죽밭의 고당산 오름길, 왕자산, 성옥산의 잡목 숲, 그리고 묵방산 오름길이 왜 그렇게 힘겨웠을까...

내가 해냈어 호남정맥 완주했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름길이 누그러지며 서서히 오른쪽으로 틀며 가는 평탄한길, 이제 순간이 다가 온다. 좌우로 키다리 참나무들이 마치 박수를 보내는 듯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주화산 정상인 헬기장이다. 그리고 졸업의 순간..

12시 58분 분기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이 순간을 위해 그 멀고 험한 길을 잡목과 가시넝쿨에 찌기고 할 키며 피투성이 된 채 왔단 말인가, 한동안 금속 표지팻말에 안은 채 눈을 감아본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아내에게는 먼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인간은 3대 전쟁과 싸우고 있다. 첫째 자기와 자연의 싸움, 둘째 자기와 사회와의 싸움, 그리고 세 번째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이다. 세 가지 싸움 중에서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싸움이다. 정맥을 완주하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기와의 싸움은 시간과 노력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13시 30분 모래재 휴게소가 다가온다. 꽃다발을 들고 달려오는 푸른잔디 선종한 총무, 순간 또 다시 목이 메인다. 우리의 산줄기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3개 정맥을 끝맺음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많은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회원여러분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이한 잔디밭특공대,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12월 17일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 여덟 번째 낙동정맥 종주, 변함 없이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종주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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