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종주 [아홉번째구간]




백두대간종주 [아홉번째구간]


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초점산)-대덕산-덕산재


 


일시 : 2002년 9월 28일 (토요일)


날씨 : 오전에는 맑았으나 오후부터 비가오기 시작하여 저녁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종주자 : 이대명 혼자서


 


종주 경로 : 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초점산)-대덕산-덕산재


위치별 고도 :   빼재 : 해발 920m


                     삼봉산
: 해발 1254m


                     소사고개
: 해발 약 660m


                     삼도봉(초점산)
: 해발 1248.7m


                     대덕산
: 해발 1290m


                     덕산재
: 해발 약 640m


 


구간별 거리 : 빼재-4.2km-삼봉산-2.5km-소사고개-약 2.5km-삼도봉(초점산)-약
1.5km-대덕산-3.2km-덕산재


[전체 종주 거리 : 총 13.9km (+α)]  '사람과 산' 측정거리


[전체 소요된 시간 : 13시간 50분 (산행시간 8시간 50분 + 식사와
휴식 약 5시간)]


 


시간대별 정리 :


 


9월 28일 (토요일)


01:20 경부고속도로 판교 톨게이트 통과, 무주 가까워지면서 심한 안개


03:05 무주 톨게이트 통과, 무주-설천간 30번 국도 심한 안개


03:35 라제통문 휴게소 도착, 주차


04:02 택시타고


  :30 빼재도착


05:40 빼재출발


06:05 능선으로 진행


  :33 작은 봉우리


  :53 작은 봉우리


07:40 오른쪽으로 낭떠러지를 두고 한사람 겨우 지나갈만한 아슬아슬한 길


08:05 정상 못미쳐 전망 좋은 바위에서 휴식...아침김밥...


  :50 출발


09:00 덕유삼봉산 정상


  :05 출발


  :40 마지막 암봉구간


  :52 안부에서 우측으로 꺽어 가파른 내리막길로


10::25 휴식공간...바위


  :40 출발


  :55 묘


11::07 넓은 배추밭


  :30 소사고개 도착


  :33 소사마을 표지석 뒤의 가게 마당에서 휴식


13:54 소사고개 출발


  :57 농로에서 왼쪽 샛길로 들어서니 묘역


14:10 왕둥굴레차 농장 팻말


  :16 밭을 가로질러 다시 농로


  :17 시멘트 포장길을 건너 다시 농로


  :21 세 개의 하우스를 지나 '대덕산 등산로' 팻말


  :39 숲 속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휴식


15:00 출발


  :04 다시 넓은 임도


  :07 임도가 갈라지는 곳에서 숲속으로...소사고개에서 출발후 본격적인
오름


  :30 비 시작...약 10분간


16:09 묘1기


  :30 삼도봉(초점산) 도착...김밥...


  :55 출발 ...본격적인 비 시작


17:40 대덕산 통과


18:08 얼음골샘터


  :26 산사태지역


19:30 덕산재 도착


20:10 택시타고 죽음의 덕산재 탈출


 


 


 


 


종주기 ---


 


9월 28일 (토요일)


 


새벽 4시 30분.


택시도 돌아가고 홀로 선 캄캄한 빼재고개.


신풍령 휴게소의 마당 한 귀퉁이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있자니 전에 없이 어둠이
무서워진다.


표지기들이 나부끼는 들머리를 확인하고서도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서성대며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를 한시간여...


새벽 여명이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하자 산으로 들어선다. (05:40)


풀과 나뭇잎에는 밤이슬 흠뻑 맺혔다가 옷깃이 스치는 틈을 타서 스며 들어온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다보니 금방 땀이나서 방수재킷을 벗고 능선으로
오른다. (06:05)


헤드렌턴을 끄고 완만하게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태양이
구름을 뚫고 용솟음치고 있다. (06:33)


좀 더 진행하여 다른 봉우리에 오르니 아래로 운해가 펼쳐지고 구름이 조금씩
솟구친다. (06:53)


구름과 함께 아침햇살을 받으며 고요히 누워있는 먼 산들은 자연이 빚어낸 한폭의
동양화다.


 


이후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이미 온몸이 이슬에 다 젖어버렸고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무릎 보호를 위해 착용한 보호대도 다 젖어버렸지만 귀찮아서 그냥 놔두고 계속
진행한다.


숲으로 들었더니 조망이 사라지고 잡목과 조릿대와 억새가 우거져 진행을 어렵게
한다.


나무에 맺혔던 이슬은 부딛칠 때마다 머리위로 비처럼 쏟아진다.


다시 전망이 트이는 곳으로 나와보니 눈앞에 바위가 툭 튀어나온 높은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그곳으로 오르기 전에 먼저 꽤 가파른 내리막이 기다리고있다.


길게 내려가다보니 올라갈 일이 또 걱정이다.


이슬이 머리위로 너무 많이 쏟아져서 커버를 씌울려고 배낭을 내려보니


뒤에 매달아놓았던 썬캡이 잡목에 쓸려서 도망가버렸다.


복성이재 못미쳐 엄청난 철쭉구간을 내려오면서 억센 가지들이 얼굴을 찌르는
통에


그 다음 구간부터 썬캡을 장만하여 키를 넘는 잡목지대가 나올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해 왔었는데


저도 고생이 되었든지 도망을 가 버리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돌아가 찾을까 하다가 누군가 주워서 요긴하게 쓰겠지 생각하고
그냥 간다.


 


다시 오름길로 접어드니 또다시 이슬 맺힌 엄청난 잡목숲이다. (07:30)


오른쪽으로 낭떠러지를 두고 겨우 한사람 지나갈만한 곳을 통과하니 큰 바위사이로
길이 나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왼쪽 바위위로도 표지기가 달려있는데 이쪽이 마루금인듯 하여
바위를 오른다.


20여분동안 땀 흘리며 올라서니 전망이 탁 트이고 넓은 바위가 쉬기에 딱 좋아보인다.


시간상으로 삼봉산인듯한데 정상석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08:05)


어쨌든 여기서 쉬기로 하고 따스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김밥으로 아침요기를
한다.


발 밑으로 산메뚜기가 한 마리 나타나서 김밥을 먹고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물을 마시면서 문득 발 밑을 내려다보았는데 식물의 씨앗같은 까만것들이 바위틈에
수북히 쌓여있다.


뭔가하고 자세히 보니 날개달린 개미가 집단으로 죽어있는게 아닌가...


그러고보니 바위틈새마다 여기저기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아직 숨이 붙어 꿈틀거리는
놈들도 더러 보인다.


아직 살아서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개미들도 있고...영문을 모르겠다.


혹시 여왕벌과의 교미를 끝고 장렬하게 산화한 수개미들인가? 책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이슬에 젖은 옷을 말리려고 바위 위에 널어놓았는데 집어서 보니 개미시체가 새까맣게
붙어있다.


대충 털어서 다시 입고 출발. (08:50)


10분 후에 도착한 다음 봉우리에서 '덕유삼봉산'이라는 정상석이 반긴다. (09:00)


정상석 아래쪽에는 철판에 새겨진 '진달래'라는 시가 바위에 붙어있다.


 


진달래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하였다.


 


연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는


眞眞이


 


이제 너만 그리워하기로


사나이 눈감고 맹세를 하고


 


죽어서도 못 잊을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랴.


 


온 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과문하여 누가 쓴 시인지 알 수는 없으나 홀로 걷는 대간꾼의 마음을 저미는 뭔가가
있는것같다.


삼봉산을 출발(09:05)한 뒤 암봉이 여러번 나타난다.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이지만 전망은 더없이 좋다.


오른편 앞으로는 삼도봉과 대덕산이 손에 잡히고...왼편으로는 장엄한 덕유능선과
향적봉...


그런 가운데 향적봉 오른편 아래로 파헤쳐진 무주리조트의 슬로프는 참으로 눈에
거슬린다.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훼손의 현장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마지막 암봉구간을 지나고 (09:40)


좀 더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꺽어져서 가파르게 내려간다.
(09:52)


경사가 매우 급해서 미끄러져 뒹굴기도 하면서 바위 쉼터에 이르러 쉬어간다.
(10:25)


10여분간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여 묘지를 지나서 내려서니 임도가 나타난다. (10:55)


드디어 숲을 벗어나니 삼도봉을 마주보고 넓은 배추밭이 자리잡고 있다. (11:03)


소사고개의 도로가 보이고 채소밭을 지나 시멘트 포장길로 내려선다.


시원한 소나무 숲을 지나 소사고개 도착. (11:30)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표지기들이 걸려있어서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소사마을'이라는
돌기둥이 있다.


작은 가게의 앞마당에는 원형의 나무 탁자 두 개와 파라솔이 있어서 그곳에 앉아
다리를 쉴 수 있다.


파라솔 그늘에 앉아 지도를 보다가 인기척이 있어 뒤돌아보니 대간 종주자인 듯한
사람이 오고있다.


한계령까지 진행한 상태이며 봄철경방기간에 빠진 구간을 보충하러 오셨다는 염문섭님이시다.


지리산이나 덕유산같은 국립공원이 아니면 대간길에서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다.


대간 시작한 이래로 같은 길을 걷는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한 것은 처음이라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드는 차에 가게로 들어가 맥주를 들고 오셔서 한잔을
권하신다.


시원한 맥주를 보는 순간 갈등이 생긴다.


 


대간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지켜야겠다고 약속한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산행 중에 술과 담배를 멀리하자는 것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터질듯한 가슴으로 산에 올라서 담배를 피운다면


거친 호흡과 함께 담배의 나쁜 성분이 폐부 깊숙이 침착하여 건강에 더욱 치명적일
것 같아서이고


이런 기회에 왕성한 폐의 활동을 통하여 그동안 쌓인 나쁜 놈들을 내 보냄으로서


담배로 인해 찌든 폐를 조금이나마 살려보고자 하는 얄팍한 기대감에서이다.


또, 산행 중 마시는 한잔의 술도 매력적인 유혹이지만


하루의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여 들이키는 막걸리의 맛을 알기에


가능하면 자제하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차가운 거품이 넘치는 한잔의 맥주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반가운 만남도 축하할 겸, 오늘은 예외로 하고 한잔 쭉 들이킨다.


너무 반가운 탓에 내가 정해놓았던 룰도 깨트려가며 마신 맥주는 나중에 결국
화근이 되어


대간 시작한 이후 최악의 사태를 겪게되는 단초를 제공하고야 말았다.


 


이후 맥주를 몇 병 더 마시며 한참 산행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보니 어느새 한시간이
지나간다.


1시쯤 출발하기로 하고 잔을 비우는데 반갑게도 내가 잃어버렸던 썬캡을 손에 든 또 한사람의 대간꾼이 도착한다.


빼재에서 늦게 출발하신 최훈봉님이시다.


최훈봉님은 6월에 대간을 시작하여 벌써 이곳까지 오셨단다.


다시 이야기가 길어지다가


염문섭님이 먼저 빼재쪽으로 출발하고, 뒤이어 최훈봉님을 배웅한 뒤에


술이 좀 깨기를 기다렸다가 나도 출발한다. (13:54)


2시간 반 정도를 소사마을에서 보낸 셈이다.


 


막상 출발하고 보니 술기운이 올라와 다리가 풀려 걷기가 어렵다.


완만한 길임에도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쉬기를 반복하다보니 진행속도가 매우
느리다.


농로에서 왼쪽 샛길로 드니 묘지가 나오고 (13:57)


왕둥굴레차 농장팻말을 지나 밭을 가로질러 다시 농로로 이어진다. (14:16)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서 다시 농로로 올라가니 하우스 세채가 지어져있고 (14:21)


그곳에서 '대덕산 등산로' 팻말을 따라 오른쪽으로 꺽어 오르니 개가 몇 마리
매어져 있다.


다시 왼쪽으로 밭을 두고 올라가다 보니 힘들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숲 속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숨을 돌리는데 수풀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있어 자세히
보니 토끼가 아닌가! (14:39)


야생 상태의 토끼를 본 것이 처음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아쉽게도 달아나
버린다.


 


그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출발. (15:00)


또다시 넓은 임도로 나와서 오르다보니 길이 좌우로 갈라지고 가운데 숲속으로
표지기가 나부낀다. (15:07)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어 다시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비오듯 한다.


하늘에는 서서히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비를 뿌리기 시작하고 갈 길 바쁜
산꾼을 조바심 나게 한다.


열기를 식혀주는 차가운 빗줄기는 차라리 시원하다. (15:30)


비가 많이 내릴까봐 걱정도 되었지만 10여분만에 그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잠깐의 비는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고행을 예고하는 복선이었던
것을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힘겨운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뎌 중턱을 조금 넘어서니 묘가 있고


삼도봉 왼편 옆으로 멀리 대덕산인 듯한 봉우리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뒤돌아보니 오전에 넘어온 삼봉산의 웅장한 자태를 병풍 삼아 소사마을이 그림처럼
누워있다.


구름을 헤집고 마을위로 내리 비치는 두 줄기 햇살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16:09)


허기진 배를 안고 마지막 힘을 내어 삼도봉 정상에 도착한다. (16:30)


삼도봉 정상석에는 초점산이라는 표시가 함께 새겨져있다.


 


무릎통증에 도움될까하여 착용한 무릎 보호대는 새벽 이슬에 바지가 젖으면서
벌써 젖어 버렸지만


귀찮아서 그냥 두었더니 관절 접히는 부위가 따갑다.


벗어보니 무릎보호대는 물이 흥건하고 접촉되는 부위의 살이 짓물러져서 벌겋게
벗겨져 있다.


미련곰탱이가 따로 없다.


아예 벗어서 배낭에 집어넣고 하나 남은 차가운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전망을
바라보니


멀리 향적봉을 중심으로 먹구름이 점점 넓게 퍼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가 지기도 전에 구름에 가려 곧 어두워질텐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린다면 낭패인지라 서둘러 배낭을 둘러매고 출발한다.
(16:55)


 


왼쪽 표지기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꽤 가파르게 내려간다.


잡목과 갈대가 어우러져 진행을 막는데 조금씩 비가 시작되고 있다.


어떻게든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 하다보니 무릎에 통증이 심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조난 당하지 않으려면 1분 1초라도 무조건 빨리 가야한다.


다시 대덕산을 향하여 오름길로 들어서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온 몸이 이미 젖어버린 상태이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방수재킷을 꺼내어 입고 본격적인
비에 대비한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완만한 봉우리를 몇 번 넘어 정신 없이 수풀을 헤치고 걷다보니
대덕산 정상의 헬기장이다. (17:40)


쉬어 가고도 싶고 사진도 찍고 싶지만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고 갈
길도 먼지라


바로 출발하여 내림길로 들어선다.


무릎 때문에 내림길은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질 못하니 서두를
수밖에 없다.


복성이재와 중재를 지나면서 심각했던 무릎통증이 덕유산을 지나 빼재까지 오는
동안 많이 좋아졌었는데


두 달을 쉬었다가 오랜만에 나선 산행에서 이렇게 무리하다니


아무래도 이번 산행이 끝나면 무릎이 크게 망가질 것 같다.


 


감로수같은 얼음골샘터의 유혹도 뿌리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18:08)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숲 속 길은 이미 어두워 졌지만 비는 잠시 그친 상태라 큰
어려움은 없다.


어둠 속에서도 길은 비교적 뚜렷하고 표지기도 잘 달려있어서 빠른 속도로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아래를 보니 태풍 루사로 인해 산사태가 났는지 나무와 바위가 뒤 엉켜 산자락이
엉망이 된 곳이 보인다.


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에서 다시 꺽어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길이 끊어지고 아까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산사태 지역이다.


 


어두워졌지만 산사태지역은 하늘을 가리는 나무가 다 쓰러져 있어서 숲속보다는
밝은 편이다.


하지만 표지기를 찾기가 어려워 두리번거리다가


산사태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바위와 나무를 타고 넘어 사태지역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내려와서 숲으로 드니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표지기는커녕 희미한 길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젖은 손으로 손전등을 꺼내어 건전지를 끼워 켜들고 헤드렌턴도 머리에 착용한


다시 사태지역의 바위를 기어올라 마지막 표지기가 있던 곳까지 돌아갔지만


그곳에 이르러 갑자기 손전등이 '퍽' 소리를 내며 꺼져버린다.


눈앞이 캄캄하다.


LED 헤드렌턴은 발 밑은 밝지만 빛이 멀리 나가지 못해 길 찾기가 어려워


길(표지기) 찾기용으로 따로 빛이 멀리나가는 손전등을 함께 가지고 다니는데
그만 생명을 다한 것이다.


겁이 나기 시작한다.


젖은 손으로 전지를 끼운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방수기능이 있는 렌턴을 준비하지 못한게 뼈저리게 후회된다.


하지만 이미 터져버린 전구를 놓고 아쉬워 해 봐야 소용없는 일...


하나 남은 헤드렌턴이라도 비에 젖지 않게 잘 간수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 마저 잘못되면 정말 큰 일이 아닌가!


어느새 주변은 가까이 있는 나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졌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하늘이 번쩍번쩍하더니 천둥소리가 귀를 때린다.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에서 혼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보니
공포가 밀려든다.


과연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침착하게 생각을 해 보자.


산사태가 나기 전이었다면 길이 어떻게 이어졌을까?


곧장 앞으로 나아가서 반대편 숲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주저 없이 사태지역을 트래버스한다.


사태지역을 건너 맞은편으로 넘어가서 이곳 저곳을 살피니 희미하게 표지기가
하나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희미한 길을 따라 진행한다.


진행은 맞는 것 같은데 어두워서 보이질 않는다...


조심 조심 한걸음씩 내딛다보니 표지기가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옆으로 새는 길이 있었나 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


미끄러져 뒹굴기를 또 몇 차례...


 


월경산에서 중재 하산길에도 해가 져서 어두웠지만 비는 오지 않아서 그래도 괜찮았는데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천둥 번개가 번쩍이니 정말 무서워진다.


침착해야한다...침착해야한다...


살아야한다...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속으로 몇 번씩 다짐하면서 희미한 렌턴 불빛으로 더듬더듬 가다보니 모래 지대도
나오고


그곳을 지나서 또 가다보면 길이 보이지않고...


한참 가다보니 길은 외길 같은데 바위가 가로막고있어서 주변을 보니 길이 없다.


되돌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길 몇 번한 끝에


바위를 넘어가면 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 미끄러지며 겨우 넘어서니
역시나 길이 보인다.


마음이 급한데다 표지기도 보이지 않으니 그 단순한 이치도 늦게서야 깨닫는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서 마치 양동이로 퍼붓는 듯 하다.


생명과도 같은 렌턴이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머리에 두른다음 모자를 쓰고 그위에
다시 후드를 덮었다.


옆으로 들이치는 빗물을 막으려고 두손으로 감싸고 애지중지 보살피며 가다보니
서글퍼진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김밥을 싸서 넣어주면서도 늘 걱정스러워 하던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고 아이들이
보고싶다.


번개가 번쩍일때마다 소름이 돋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가 또 일어서서 살아야 한다는 일념에 부지런히 길을
찾는다.


어둠속에서 생명과도 같은 표지기가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눈물겹도록 감사하며
어루만져본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비까지 내리는 숲 속에서 리본을 찾지못해


헤메기를, 뒹굴기를 수십차례...


갑자기 주변이 넓어지더니 도로가 보인다....덕산재다!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캄캄한 가운데 비내리는 덕산재는 차량 통행도 거의 없어서 적막하고 으스스하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린다.


도로를 건너가니 어둠속에 굳게 닫혀진 휴게소 건물은 으시시하지만 문명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마당에 주유기가 있었음직한 시설물이 비를 그을수 있는 처마를 제공해준다.


 


그곳에 앉아서 먼저 전화로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면서 담배를 한 대 꺼내어 불을
붙였다.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 뿜는 연기속에 덕산재의 어둠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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