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 천왕봉→장터목→촛대봉→칠선봉→선비샘→벽소령
※ 일자 : 2002. 9.28~9.29 (무박산행)
※ 구간별 소요시간
o. 03:58 - 중산리 매표소 출발 o. 09:24 - 영신봉
o. 05:30 - 로타리산장 o. 10:45 - 선비샘
o. 06:47 - 천왕봉 o. 11:19 - 구벽소령
o. 07:43 - 장터목산장 o. 12:23 - 음정마을
♣ 총소요시간 : 8시간 25분(후미:9시간50분)

푸르던 산이 붉게 물들어가고, 한층 높아진 하늘은 바야흐로 전형적인 가을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길가에 활짝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 시골 담장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누런 호박, 입을 크게 벌린 밤송이 등이 가을의 향수를 물씬 담아내고 있다. 며칠간 청명했던 날씨는 주말이 되자 심술 굳게도 성난 얼굴로 바뀌어, 급기야는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한다. 오늘은 백두대간 마지막 산행이라 간단한 행사라도 하려면 날씨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3차 백두대간은 작년 5월19일 진부령을 출발하여 1년4개월간 긴 여정 끝에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렀으니, 완주하는 분들에게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버스가 덕유산 지역을 지날 무렵 번쩍번쩍 번갯불이 일어나더니, 다시 세찬 빗줄기가 차창을 때린다. 저 비를 맞으며 산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차가 중산리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친 것이 아니라 아직 그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에는 구름사이로 달까지 보일정도로 맑았다.
매표소에서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는데, 공단에서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야간산행을 자제시키는 것 같았다. 창문에 5시부터(얼마 전까지 4시출발) 출발할 수 있다는 공고문이 붙어있는데, 오늘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1시간정도 지체한 4시가 다될 무렵 공단직원에게 안전산행을 다짐하고 매표소를 출발한다.

자연학습원 갈림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든다. 나무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은 대간 완주자들을 축하라도 하듯이 앞길을 훤하게 밝혀주고 있다. 비가 올까봐 얼마나 고심을 했는데 비 걱정은 사라지고, 이제는 일출 볼 욕심이 생긴다. 인간의 욕심이란(쯧쯧쯧).... 이구간은 초반부터 등장하는 계단과 바위를 넘나드는 아주 고약스런 길이다. 천왕봉까지 제일 가까운 곳인 만큼 경사 또한 험하다.

5시30분 로타리산장에 도달하니 법계사에서 들리는 청아한 목탁소리가 심신을 경건하게 해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가파른 능선을 따라 한발 한발 이어간다. 지나가다보니 계단을 새로 만든 곳도 있고, 앞으로 만들기 위한 자재가 길옆에 듬성듬성 놓여있기도 하다. 다리가 뻐근해져올 무렵 천왕샘에 이르자 저 멀리 한 떼의 구름위로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지리산에 수십 번 왔지만 천왕봉에서 해돋이를 본적이 없었는데, 오늘 그 숙원을 풀게 됐다. (비 온다는 날씨에)
6시47분 천왕봉에 도착하니 바람이 몹시 불어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진부령에서 예까지 왔는데 그냥갈수가 없어서 홍원장님, 박교수님과 함께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과 다소 완만한 능선이기 때문에 편한산행이 될 듯싶다. 통천문 위에서 멀리 능선을 바라보니 나무들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곱게 단장하는 그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마음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가을을 타는 것도 아닌데.... 제석봉 가기전, 앞서가던 일행들이 가을 풍경을 배경삼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오늘 같은 날씨에 이런 멋진 풍경을 놔두고 급히 서둘러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7시43분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는다. 이곳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시끌벅적한 것이 장터답다.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주변 풍광을 두 눈에 가득 담으며 이동한다. 촛대봉을 넘어 세석산장 옆을 지나는데 산장 지붕에 동판을 씌우는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아마도 태양열을 이용한 난방시설이 아닌가 싶다.

칠선봉을 지나서 선비샘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5분. 목도 축이고 땀도 씻어내니 참으로 개운하다. 30여분 남짓 능선을 걷다보면 구벽소령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로써 백두대간 672km(실거리 1,240km)를 완주하게 되는 것이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 편으로 능선을 따라 30여분 내려가면 음정 마을이 나타난다.

식사를 마치고 완주자 들에게 기념패가 전달되니 저마다 기쁨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중독이 되어서 도저히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드니 무슨 약이 있어 이를 고치랴. 이중 몇 분은 4차 백두대간을 또 한다니 이를 어찌 해석해야할지, 결박 지어서 병원으로 끌고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50여명 가까이 출발한 인원이 15명이나 완주했으니, 그 많은 날들 중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산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한두 번 정도는 개인사정이 있으련만, 어떻게 피한건지.... 그런 것들은 모두 포기한건지, 아니면 집에서 버림 받은 건지.....

어쨌든 그 먼 거리를 오랜 시간동안 무사히 백두대간을 완주하신 여러분들께 축하를 드리는 바이다. 앞으로도 산을 벗 삼아 즐거운 산행하시길 기원한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