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종주 칠구간(첫날)

종주일자 : 2002년 3월 19∼20일)
종주구간 : 개기재 ∼ 두봉산 ∼ 천운산 - 서밧재
날 씨 : 맑음

종 주 자
김종국, 류민형,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 함철호, 김종범(11명)

도상거리 : 19.9km
개기재 - 0.8km - △458.6m봉 - 2.4km- 두봉산(△630.5m) - 1.6km - 촛대봉(△522.4m) - 2.2km - 말머리재 - 1.7km - 성재봉(×519m) - 0.7km - 노인봉(△529.9m) - 2km - 태악산(×530m) - 2.5km - 돗재 - 1.7km - 천운산(△601.6m) - 1.3km - 568봉 - 2.6km - 서밧재

종주일정
06:50/개기재 -- 07:15/486.6봉 -- 07:55/590봉 -- 08:10/두봉산 -- 08:44/말머리재 -- 10:20/성재봉 -- 10:44/노인봉 -- 11:35(11:55)/태악산 -- 12:50/돗재(822번 군도) -- 13:30/능선삼거리 -- 13:45/천운산 -- 14:15/568봉 -- 14:58/교육원 갈림길 -- 15:15/ 서밧재(15번 국도)

산행시간 : 8시간 25분(휴식시간 포함)

3월 10일
호남정맥을 품에 안은 화순군은 동쪽은 곡성군과 순천시, 서쪽은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과 장흥군, 북쪽은 담양군과 접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무등산(1,187m) 줄기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북동쪽으로 뻗은 줄기에는 백아산(804m)을 비롯하여 구봉산(320m), 천운산(608m), 태악산과 종암산, 우봉산을 일으키고, 순천시와 보성군의 경계에는 모후산(919m)이 솟아 있다. 북서로 뻗은 줄기에는 만연산, 종괘산을 이루고, 남서로 뻗은 줄기에는 화학산(613m), 천대산, 해망산 등이 있는데 대부분 견고한 화강편마암류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

지석천은 이양면에서 발원하여, 26개의 지류가 합치면서 남평으로 흘러 영산강에 합류한다. 동복천은 북면 백아산에서 발원하여, 21개 지류를 합치고 보성강에 합류한다. 화순천은 동면 청궁리에서 발원하여 8개 지류를 합친 뒤 능주면 원지리에서 지석천에 합류한다.

화순천 유역의 능주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야가 없는 화순군은 석탄을 비롯한 석회석, 고령토, 규석, 납석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단다. 그러나 석탄공사 화순광업소의 석탄 생산은 반세기 동안 산업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근래 채산성이 악화되어 사양길이다.

한 달만에 나서는 호남정맥으로 가는 길은 늘 같이 이어온 정맥꾼들과 오랜만에 참석한 이영주, 함철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을 출발한다. 서산마루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달리는 서해안고속도로, 김제에 내려섰다가 다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에서 너릿재 터널을 통과하면서 화순읍내에 들어선다. 그리고 다시 들어선 능성모텔 406호에서의 밤은 깊어간다.

3월 20일
06시 50분 개기재에서 왼쪽으로 임도를 따르다가 밭을 통과하면서 오른쪽으로 산길이 열린다. 어느새 정맥의 봄은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와 진달래꽃이 수놓고 있다. 10분 정도 숨을 헐떡거리면서 올라서니 평탄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제주 양씨 묘를 뒤로 참나무숲길을 올라선 곳이 468.6봉이다.

07시 15분 삼각점이 있는 능선분기점인 468.6봉에서 진달래군락을 헤치며 잠시 내려서는 듯하다 안부를 통과하고 10여분 후에 죽산 안씨와 나주 나씨의 묘를 통과하며 가파르게 4분 정도 올라선 능선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이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연이어 넘는다.

07시 55분 능선분기점인 590봉이다. 많은 날들을 보성군과 했는데 이제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정맥은 왼쪽으로 좌측으로 화순군 이양면과 우측의 한천면을 사이에 두고 이어나간다. 산죽밭을 헤치고 내려선 옛 헬기장터인 듯한 좁은 공터를 지나고 올라선 곳이 두봉산(△630.5m)이다.

08시 10분 맑은 날의 두봉산 정상,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 남으로 지나온 계당산 그리고 서북방향으로 이어나가는 정맥의 능선... 발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야, 에워싸고 있는 병풍 같은 산자락들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넘어야 할 손에 잡힐 듯한 촛대봉을 향해 능선분기점인 두봉산에서 정맥은 왼쪽으로 이어지면서 한차례 뚝 떨어진다. 긴 내리막길에 한층 푸르러 보이는 산죽밭,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긴 내리막길은 안부를 내려섰다가 올라선 밋밋한 봉을 넘으면서 올려다보는 촛대봉은 그 이름답게 유난히 뾰족해 보인다.

08시 38분 흐드러지게 핀 생각나무와 진달래꽃,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는 능선 날 등, 촛대봉인줄 알고 올랐는데 촛대봉은 건너편에서 정맥꾼들을 부르고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듯하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틀며 올라서는 좁은 날 등의 오름길, 허허한 공간에 울러 퍼지는 종달새의 지지배배...

08시 44분 촛대봉(522.4m)이다. 삼각점이 있던 자리엔 흔적만 남아있고, 잠시 다리 쉼을 하는 정맥꾼들... 방향을 왼쪽으로 틀며 내려서는 길에 만나는 파란색의 야생화,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좁은 날 등으로 이어가는 정맥길은 죽음의 갈색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연초록으로 바뀌고 있다.

09시 21분 우측으로 58번 군도를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 나그네를 싫고 고향을 향하는 경전선의 기적 소리, 우측으로 임도가 내려다보인다.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목에는 좌측엔 참나무군락, 우측엔 왜소나무 군락이다. 경사길을 도로를 빤히 내려다보며 내려선다.

09시 35분 말머리재를 통과한다. 돌무더기 흔적이 보이는 이양면의 용반리와 한천리의 고시리를 넘나들던 고개, 인적은 끊겼지만 예전에 많았던 통행을 말해주듯 넓기도 하다. 좌측으로 푸른 지붕의 커다란 건물... 숲 사이로 성재봉이 손에 잡힐 듯 하다.

09시 50분 한차례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길을 올라 능선분기점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연이어 봉을 넘으면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며 이어나간다.

10시 18분 또 다시 나타나는 코가 닿을 듯한 오름길이 힘겹기만 하다. 그리고 만나는 능선분기점 왼쪽은 용암산(544.7m)으로, 정맥은 오른쪽이다. 용암산은 멋진 암릉과는 달리 개발이란 명목으로 산자락을 파헤쳐 놓아 보기 흉하다.

용암산에는 금오산성 이라고 하는 자연암벽과 작은 계곡을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이 있다. 내부활동 공간이 넓지 못한 약점이 있지만 성을 방어하는데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길이가 약 1,650m나 되는 성벽은 능선이나 암벽을 이용한 협축성으로 정형성을 갖추지 못하지만 대체로 마름모꼴을 띠고 있다고 한다.

해발 275∼525m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성벽은 주변에 있는 자연석을 가공하여 축조했으며 서남쪽에 위치한 예성산성과 함께 북쪽의 능주를 방어하는 것이 주목적인 성이라고 판단된다나... 금오산성의 유래를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금오산성은 옛날 몽고 침입당시 축조한 것이라고 하며 '몽고성지'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올라 선 봉우리가 성재봉(×519m)이다. 잡목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는 글씨가 음각 된 콘크리트로 된 표석인 듯 쓰러져 있고, 잠깐 다리 쉼을 하고 이어지는 완만한 내림길과 오름길에는 철쭉이 성가시게 옷깃을 붙잡는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뾰쪽한 노인봉, 안부에 내려서면서 때 마쳐 불어주는 세찬 골바람이 땀을 드리기에 안성맞춤이다.

10시 44분 자그마한 입석바위을 통과하면서 한차례 올라선 봉우리가 노인봉(△529.9m)이다.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 아스라이 잡힐 듯 보이는 산과 봉우리들... 지나온 성재봉과 가야할 태악산을 확인하며 정맥은 오른쪽으로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한차례 가파르게 떨어지다 완만해지며 암릉지대가 연이어 나타나면서 바위 벼랑으로 나 있는 능선길을 통과할 때는 조망도 즐길 수 있다. 억새밭을 지나 철망으로 된 울타리가 잠시 나타나더니 이어지는 암릉지대는 우회길이 나있고, 곧이어 만나는 전망대에 서서 우측으로 내려다보는 가천리와 동가리의 마을과 농경지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11시 05분 전망대바위를 뒤로 수직의 바윗길을 내려섰다 넘어서면서 마치 지진이 지나간 흔적처럼 땅이 갈라지고 내려앉은 정맥 능선, 완만한 오름길에 만나는 의성 김씨와 일동 장씨의 합장묘지를 통과하며 오른 510봉, 이어 만나는 오랜 세월 정맥을 지켜온 듯한 아름드리 산벚나무 한 그루, 오른쪽으로 틀며 이어지던 정맥이 잠시 내려섰다 올라선 곳이 높이가 530m의 태악산(太岳山)이다.

11시 35분 큰 바위산이란 이름과는 달리 바위는 찾아 볼 수가 없고, 바람에 날리는 억새밭의 묘지가 지키고 있는 정상에서 허기를 채운다. 20여분의 휴식시간, 태악산에서 내려서는 정맥은 아름드리 참나무 숲의 완만한 능선길이다.

벌목을 하고 그대로 방치해 놓아 거치적거리는 오르막길을 한차례 올라서면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밋밋한 능선길에는 앞서가는 정맥꾼들이 시야에 잡히고, 돗재로 오르는 차도가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정맥길은 명감넝쿨과 싸리나무가 옷깃을 붙잡는다.

12시 20분 능선분기점인 463봉에 오른다. 낙엽이 수북한 경사길로 내려선 안부에서 5분 가량 올라 너덜지대의 바위봉에 올라서니 발아래 돗재 고갯마루에 자리잡고 있는 한천산림욕장의 시설물이 빤히 내려다보인다. 오른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며 내려서는 내리막길이다.

12시 50분 돗재에 내려선다. 돗재 도로는 1976년 5월 착공, 77년 9월30일 준공된 총 연장 6km의 한천면 오음리와 반곡리를 잇는 산악도로로 산이 험준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곳을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하면서 당시 한천면과 인근 지역주민 연인원 4만 5천 여명이 동원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중장비가 부족하여 각종 건설사업에 많은 인력이 삽과 괭이를 들고 투입되었다고 한다. 도로 가에 기념비가 서있다.

돗재를 뒤로 한차례 급경사의 오름길이 시작된다. 15분 가량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선 능선분기점인 430봉에는 쉬었다 가기 좋은 쉼터인 팔각정이 기다리고 있다. 시원한 그늘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던 정맥꾼들이 길을 재촉한다.

밋밋한 너덜지대의 봉을 넘으면서 참나무 숲에 군데군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선을 보이며 한동안 평탄하게 이어지던 정맥길이 쉼터를 지나며 능선길은 바위 벼랑 위로 나 있어 조망을 즐길 수 있고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들이며 간다. 자연의 무한한 힘과 오묘한 조화,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산에 오를 수 있는 건강을 지녔음에 감사하는 마음...

13시 30분 능선 삼거리 이정표(정문주차장, 전망대, 천운산 등산로를 가리키는)가 서있는 임도에 내려서서 임도를 따르다가 가파르게 오름길이 시작된다. 힘겨운 오름길 10여분, 묘 1기가 지키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조금 올라선 곳이 천운산(△601.6m) 정상이다.

13시 45분 정상에는 규모가 적은 통신시설과 시설물에 밀린 산불감시초소로 쓰였던 자재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다.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멀리 구름이 걸친 무등산과 화순읍내의 빌딩 숲, 용트림 치듯 뻗어 가는 정맥을 바라보노라면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가슴 벅차 오른다.

13시 55분 정맥은 오른쪽으로 명감넝쿨을 헤치며 낙엽이 수북히 쌓인 내리막길에 이어 올라선 억새밭의 능선분기점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군데군데 금속팻말의 이정표를 만날 수가 있다.

14시 15분 힘겨운 오르막 끝에 올라선 568봉은 잠시 뒤 만나는 금속팻말이 말해주듯 천운산 제2봉임을 알 수가 있고, 바위들이 한가족을 이루고 있는 봉에 오르면서 드디어 서밧재로 오르는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맥은 다시 오른쪽으로 틀며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다. 긴 내리막길, 샘터 갈림길을 통과한다.

14시 40분 능선분기점인 390봉이다. 왼쪽으로 경사길의 내리막길은 무릎의 통증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지쳐온다.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설치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나고, 이어 새들의 지저귐 속에 솔밭길은 더없이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가 있다. 흙무덤이 있는 290봉에서 정맥은 훤히 뚫린 콘크리트포장길을 보며 내려선다.

14시 58분 천운산 등산안내판이 있고 좌측으로 광주시 학생 교육원 건물이 보이는 콘크리트포장도로에 내려선다. 이어 자갈이 깔린 비포장 길을 따르다가 정맥은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숲길로 들어서야 한다. 자칫하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다. 묘 이장 터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꺾으며 내려서고 이어 큰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가파르게 떨어진다. 시야에는 푸른 수면의 벽송제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가시넝쿨을 헤치다가 내려선 곳이 15번 국도가 지나는 서밧재다.

15시 15분 화순군 동면과 남면을 가르는 서밧재, 좌측으로 파래스 모텔과 민속가든이 자리잡고 있다. 걷기도 많이 하고 땀도 많이 흘렸으나 몸도 가뿐하고 마음도 흔쾌해서 기분이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호남정맥 종주 칠구간(둘째날)

종주일자 : 2002년 3월 21일
종주구간 : 서밧재 ∼- 천왕산 ∼ 오산 ∼ 둔병재
날 씨 : 황사

종 주 자
김종국, 류민형,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 함철호, 김종범

도상거리 : 15.8km
서밧재 - 1.7km - 구봉산(320m) - 1.8km - 천왕산(△424.2m) - 1.6km - 주라치 - 0.8km - 385.8봉(△385.8m) - 1.1km - 묘치 - 1.6km - 593.6봉(△593.6m) - 2.4km - 오산 - 1.4km - 622.8봉(△622.8m) - 1.7km - 둔병재

종주일정
06:55/서밧재 -- 07:30/구봉산 -- 08:20/천왕산 -- 08:52/주라치 -- 09:10/385.8봉 -- 09:50/묘치 -- 11:00/593.6봉 -- 11:25(11:40)/중식 -- 12:05/오산 -- 12:57/570봉 -- 13:00/어림마을 차도 -- 13:57/622.8봉 -- 14:40/둔병재

산행시간 : 7시간 45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아침 무지개는 비가 올 징조이며 저녁 무지개는 갠다고 했다. 햇무리나 달무리가 나타나면 비가 올 징조이고, 천둥이치면 날씨가 추울 징조라고 한다. 그리고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올 징조 등등, 예전부터 바람이나 구름 등의 상태를 관찰하여 일기를 예지 하려는 관천망기법은 농민이나 어민들의 관찰 경험에서 얻어진 법칙으로서 일기속담의 형식으로 전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그의 저서 "Meteorologica"에서 자연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였으며 구름의 분류나 기후대의 구분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 이전에 벌써 관천망기에 의한 일보예보가 행하여지고 있었다나...

새벽녘에 창문을 때리는 비바람이 불어 제킨다. 연이어 종주 때마다 두 번째 날은 어김없이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린다. 마치 우리가 구름나그네 인 것처럼... 조금은 일정을 늦추며 짐을 챙긴다. 오늘 내리는 비는 흙비라고 했지 걱정이 태산같다.

06시 55분 서밧재 고갯마루에서 절개지 왼쪽으로 절개지 상단을 타고 정맥에 접어들면서 가족 묘지인 듯한 잘 정돈된 해주 최씨 묘지... 하늘은 잔 듯 화가 난 모습으로 바람을 토해내고 있지만 내리던 비는 기세가 꺾이고 있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억새밭에 키 작은 소나무 군락이 이어지고, 완만한 오르내림은 묘지군락을 만나 왼쪽으로 밋밋한 장송 숲의 봉우리를 넘는다.

07시 30분 구봉산(320m) 능선분기점이다. 정맥은 구봉산의 여러 봉우리를 버리고 첫째 봉에서 왼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선다. 그리고 만나는 4개의 통신탑, 씁쓸한 마음... 잠시 콘크리트포장길을 따르다가 왼쪽으로 참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봄은 정녕 종달새의 계절인가? 능선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아름다운 사랑싸움...

07시 51분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창녕 조씨와 전주 이씨의 묘지를 통과하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정맥길, 다시 만나는 십자로 안부에서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길을 올라 능선마루에 붙고 이어 산불 흔적이 있는 봉을 살며시 넘어서면서 다시 한차례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름길이다.

08시 20분 낙엽마저 수북히 쌓여 미끄러운 돌밭길을 가파르게 올라 선 곳이 삼각점이 있는 천왕산(△424.2m)이다. 전망이 탁 트이는 천왕산이건만 조망의 즐거움은 조랑말 구용회가 잘 부르는 최무룡의 꿈은 사라지고, 잠시 다리 쉼을 한 정맥꾼들이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아름답던 진달래꽃마저 흙비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정맥길, 낙엽을 가르며 완만한 솔밭사이로 내리막길이 평탄하게 이어지고, 잠시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다시 조금 더 왼쪽으로 틀면서 내려섰다가 바위지대를 통과하면서 바위봉을 넘는다.

08시 52분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한차례 가파르게 떨어지다가 중키의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주라치, 옛 산판길인 듯 좌우로 여러 갈래로 넓게 나있다. 이어지는 정맥 역시 넓은 산판길로 완만하게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나가며 연이어 나타나는 묘지, 오늘은 유난히 많은 묘지를 만나는데 특이한 것은 돌 판에 새긴 무궁화를 안고 있다는 것, 마치 한자리 한 분들 같이...

09시 05분 넓은 공터에 2기의 흙무덤, 정맥은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내림길이 장송 숲 사이로 잡목들이 성가시다. 5분 뒤 밋밋한 묘지를 통과하며 올라선 봉우리가 삼각점이 있는 봉(△385.8m)이다. 벌목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정맥은 왼쪽으로 한차례 가파르게 떨어지다가 묘지를 만나면서 오른쪽으로 틀며 내려선다.

22번 국도를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이 뿌연 황사를 뚫고 들려온다. 진주 이씨와 하동 정씨 묘지가 있는 묘지군락을 만난 정맥꾼들이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며 올라선 곳엔 찔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백색의 콘크리트 푯말엔 '상수도 보호지역' 라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서 자칫하면 헤매기 십상, 정맥은 왼쪽으로 능선을 버리고 팍 꺾으며 뚝 떨어지는 잡목 숲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잡목지대만 조금 벗어나면 괜찮은 편...

09시 50분 20여분 걸려 내려선 묘치 삼거리, 22번 국도가 지나는 묘치는 8년 전 잠시 화순에 내려와 있을 때 동복면 한천리와 화순읍을 오가던 길이다. 도로를 가로지르면서 곧바로 능선에 붙는다.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 장송 숲의 봉에 오르고,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 군데군데 잡목들이 빼곡이 들어선 묵은 묘들...

10시 16분 능선분기점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잠시 내려서는 잡목들이 가득한 안부에도 역시 묵은 묘가 자리하고 있다. 2분 정도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으로 소나무 숲길이다.

10시 40분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바위들이 널려있는 오름길은 소나무 숲이 슬그머니 참나무 숲길로 바뀐다. 오른쪽으로 꺾으며 잠시 내려서는데 시야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단풍나무 군락을 통과한다.

10시 55분 한차례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르막길을 땀께나 흘리며 능선분기점인 마루턱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보상이라도 해주듯 땀을 식혀준다. 오른쪽으로 틀며 키다리 참나무 숲 사이로 산죽밭을 헤치며 잠시 내려섰다 바위지대를 통과하면서 올라선 봉이 삼각점이 있는 593.6봉이다. 술래잡기나 하듯 산죽밭에 꽁꽁 숨어 있는 삼각점...

11시 16분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T자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뿌연 하늘아래 겹겹이 늘어 선 봉들 맨 뒤쪽이 오산인 듯 하다. 비를 뿌린 기압골의 뒤를 이어 중국 북부 내륙지방에서 편서풍을 타고 이동한 황사먼지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더니 점점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어제와는 달리 황사에 가려있으니 눈뜬장님과 진배없다.

11시 25분 바위들이 울타리하고 있는 파헤친 묘지 앞에서 허기를 메꾼다. 황사 속에서도 먹어야 갈 수가 있기에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일어서는 정맥꾼들, 정맥은 바위지대가 이어진다. 바위 날 등에서 내려서면서 무너지는 묘 1기...

11시 56분 바위손이 붙어있는 커다란 바위를 통과하면서 완만한 정맥길은 헬기장을 만나고 이어 내려선 안부에는 좌우로 내려설 수 있는 산판길을 가로지르며 억새와 가시덤불을 헤치며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선다.

12시 05분 통신시설이 있는 오산에 오른다. 억새밭에 묘 1기가 자리잡고 있고 조금 더 위쪽으로 바위 꼭대기가 정상인 듯 싶다. 정상에 선다. 황사만 없다면 멋진 조망을 선물로 받으련만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정상 바로 밑으로 억새밭의 넓은 구릉지대...

바위길을 내려서서 임도에 내려선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정맥능선을 확인 할 수도 없다. 임도를 버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팍 꺾으며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내려서다 다시 만나는 임도를 가로지른다. 긴 내리막길 그리고 한차례 올라선 능선분기점이 570봉이다.

12시 37분 570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한번 더 내려섰다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다시 왼쪽으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 얼마정도 내려서다 정맥은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사면길을 따르다가 내려선 곳에는 두 사람이 마주잡아야 될 정도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13시 어림마을 차도에 내려선다. 좌측은 동면 청궁리, 우측은 이서면 갈두리인 고갯마루에는 대보석재로 들어설 수 있는 길이 나있다. 정맥은 곧바로 대나무 밭을 끼고 오르다가 두릅나무 재배 지를 만나고 이어 팔뚝만한 칡뿌리를 캐는 동네주민도 볼 수 있다. 한차례 오르다가 뒤돌아보는 520봉과 570봉, 여전히 뿌연 황사 속에 희미하게 모습만 드러낼 뿐...

13시 23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곧이어 송전탑과 해주 최씨 묘지를 만나면서 산판길로 정맥은 이어나간다. 한동안 따르던 산판길은 대보석재에서 올라오는 임도에 내려선 후 왼쪽으로 조금 올라서다가 다시 산판길로 이어지는 정맥에는 호화 무덤이 정맥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위를 울타리 삼고 넓게 자리잡은 해주 최씨와 창녕 조씨 묘지...

13시 40분 묘지를 뒤로 산판길이 끝나면서 아름드리 장송 숲, 커다란 바위들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정맥은 서서히 622.8봉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열린다. 8분 뒤 능선분기점인 밋밋한 봉에서 오른쪽으로 키 작은 참나무 숲을 뚫고 이어나간다.

13시 57분 삼각점이 있는 622.8봉에 오른다. 역시 눈뜬장님과 진배없는 정맥꾼들, 안양산 자연휴양림이 가까워졌는지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산죽밭을 가르며 간다. 참나무숲길을 따라 한차례 뚝 떨어지다가 올라선 능선분기점...

14시 15분 밋밋한 봉을 넘고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데 수직에 가까운 칼등 능선을 타고 간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희미하게 떠오르는 안양산과 안양산 자연휴양림의 시설물들, 내림길이 길게 이어진다. 편백나무군락이 나타나면서 산판길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왠지 정맥꾼들을 환영이라도 해주는 듯...

팔각정이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백의 시가 걸려있다. 이제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둔병재와 안양산 자연휴양림의 시설물,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정맥꾼들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계단길을 따라 내려선 곳이 둔병재다.

14시 40분 휴양림이 조성된 둔병재는 근대화되기 전 곡성, 화순과 광주를 잇는 주 교통로 였으며 요충지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시 의병들이 주둔지였던 곳으로 지금도 옛 성곽, 참호등의 흔적이 남아있고 병기를 만들었던 곳(쇠메기골)에서는 쇠 찌꺼기가 나오고 있으며 물을 넘겨오던 물목재, 장군대, 쇠메기골 등의 옛 이름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김삿갓의 이야기도 남아있는 둔병재...

둔병재에 자리하고 있는 안양산 자연휴양림에는 조용히 숲 속을 산책하며 주변에 함께 하는 나무, 풀, 새와 작은 돌멩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존재를 느끼면서 자연의 오며함과 소중함을 깨우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나...



호남정맥 종주 팔구간 (첫날)

종주일자 : 2002년 4월 23일
종주구간 : 둔병재 ∼ 무등산 ∼ 유둔재 ∼ 노가리재
날 씨 : 흐림(오전 안개 비)

종 주 자
김종국,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 조삼국, 함철호, 김종범, 김영철(12명)

도상거리 : 22.1km
둔병재(405) - 1.5 - 안양산(△853m) - 2.9 - 장불재(905) - 1.4 - 무등산(△1186.8m) - 2.4 - 북산(△782m) - 1.8 - 백남정재(375) - 1.7 - 447.7봉(△447.7m) - 1.7 - 유둔재(275) - 2.2 - 456.5봉(△456.5m) - 1.0 - 새목이재(375) - 3.1 - 까치봉 갈림길 - 1.6 - 429.4봉 (△429.4m) - 1.1 - 노가리재(325)

종주일정
06:50/둔병재 -- 07:35/안양산 -- 08:12/930봉 -- 08:40/장불재 -- 09:12/규봉암 -- 10:00 (10:50)/광일목장 삼거리 -- 11:10(11:30)/신선대 -- 12:17/백남정재 -- 13:02/447.7봉 -- 13:40/유둔재 -- 14:30/어산이재 -- 14:40/456.6봉 -- 14:53/새목이재 -- 15:50/500봉 -- 16:07/까치봉 갈림길 -- 16:24/479.4봉 -- 16:41/ 429.4봉 -- 17:10/노가리재 (산행시간 :10시간 20분)

4월 22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인간의 능력이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 절대자를 찾고 그 대상을 숭배하고 신앙하며 이로 인해 선과 악을 권장하며 행복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염원을 표현하는 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앙하는 대상이 모두 절대자인가 또는 염원하는 방법이 모두 옳은가 하는 것은 우리 삶의 평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죽음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종교라고 일컫는 많은 것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간의 길흉화복과 생노병사를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어떤 신을 설정해 놓고 그 신에게 인간의 불행스러운 요소들을 다행스러운 것으로 바꾸어 주도록 빌고 신앙하는 종교와 다른 하나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불행을 이겨내거나 초월해 버리는 종교 등이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종교형태는 인간만을 위한 종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해서 의지할만한 종교는 참으로 없을까요?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호남정맥이야 정말 못 말려, 종주 첫날인 23일 전국적으로 비 올 확률 100%, 내가 구름나그네도 아닌데 목요일은 어김없이 비가 오지 않으면 황사가 괴롭히기에 하루 앞당겨 계획을 세웠더니 이번도 해보라는 식으로 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비를 뿌린다니 거기에다 제주도와 남부지방에는 호우주의보가 예상된다고...

신도림역에서 우리의 첨병 이영주와 최경섭씨, 서초구민회관에서 박덕주 선배부부, 그리고 새로 참석하는 조삼국선배와 김영철씨 등 모두 합하여 12명, 호남정맥 8구간은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닌 채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한가지 우리의 지리학의 대가 류민형선배는 사진 없는 정맥은 사절이라나...

4월 23일
04시 30분을 알리는 알람시계, 이변이 일어나 하늘이라도 개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면서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본다. 비가 오던 말던 태평하게 밤늦게까지 초를 치다가 자정을 훨씬 넘겨서 잠자리에 든 경주 말들과는 달리 지난번까지만 해도 술 없이는 못살아하던 조랑말 구영회는 술 사절, 그리고 고놈에 72번... 그래저래 여섯시를 넘겨서야 숙소인 능성각을 출발한다.

휴향림이 조성되기 전 곡성, 화순과 광주를 잇는 주 교통로였으며 임진왜란시 의병들의 주둔지였던 요충지로 지금도 옛 성곽, 참호등의 흔적이 남아있고 병기를 만들었던 곳(쇠메기골)에서는 쇠찌꺼기가 나오고 있으며 물을 넘겨오던 물목재, 쇠메기골 등의 옛 이름이 남아있는 둔병재...

둔병재 고갯마루에는 안개비가 내린다. 오늘구간이 만만치가 않은데 시작부터 들머리는 꽁꽁 숨어있어 정맥꾼들은 마음이 조급한데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안양산휴향림의 출입문은 이른 아침이라 굳게 잠겨있다. 울타리를 넘는다. 사실 정맥을 종주하면서 나쁜 버릇 하나 얻었는데 망설이지 않고 남의 울타리 넘나드는 것과 도로 무단횡단 하는 것, 이거 큰병 이지요...

06시 50분 이래저래 아까운 10여분을 그냥 보내다가 편백나무연수원 건물 좌측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잠시 오르던 정맥꾼들이 산책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조금 내려선 공터에서 절개지를 올라 가시넝쿨을 헤치며 잡목 숲에 들어선다. 산안개 가득한 정맥길, 가파른 오름길은 철조망을 이리저리 만나면서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20여분 가량 가파르게 오르던 급경사의 오름길은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안양휴양림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만나면서 넓게 나있는 등산로로 변한 정맥길은 군데군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보기 좋다. 다시 10분 후 숲길을 벗어나면서 새로 돋아나는 연록의 억새풀밭에는 군락을 이루고 활짝 핀 빗물에 젖은 철쭉이 정맥꾼들을 반긴다.

07시 35분 이정표와 화순군에서 세운 표지석이 서있는 넓은 공터의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는 안양산(853m) 정상에 선다. 5월이면 수 만평 찰쭉꽃 군락지가 장관이라는 안양산, 탁 트여 있는 정상인데 그것을 시샘이라도 하듯 안개가 가득하니 눈뜬장님이나 진배가 없다.

정맥은 서쪽방향으로 내려선다. 연록의 새잎이 돋아나는 억새밭과 키 작은 철쭉군락을 따라 15분 가량 헬기장을 지나 평탄한 능선길은 소나무숲길을 내려서다 만나는 이정표(장불재:2.3km, 만수리2구:1.2km, 안양산:1.3km)가 서있는 갈림길이 있는 능선삼거리를 통과한다.

08시 12분 철쭉꽃 피어있는 아기자기한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이어지는 정맥길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930봉에 선다. 비에 젖은 구슬픈 산새 한 마리, 잠시 다리 쉼을 하며 후미를 기다린다. 10분 정도의 휴식을 하는 동안 한자리에 모이는 정맥꾼들...

다시 키 작은 산죽군락과 칼등 능선을 벗어나면서 만나는 헬기장에 이어 넓은 억새밭의 안부, 오름길은 암릉을 끼고 뻔뻔한 바윗길이다. 말잔등 같다고 해서 애칭을 붙여준 백마능선의 초원지대, 가을철에 이 능선 위에 피어난 억새꽃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면 마치 백마의 말갈기 같다고 한다. 백마능선이란 아름다운 이름의 주인공도 안개 속에서는 맥을 못쓰는 법...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날들을 저 하나보기 위해 열심히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무등산, 지지리도... 자욱한 안개를 가르며 내려선 길은 넓은 자갈길이다. 안개 속으로 시커먼 시설물이 서서히 들어 나고 있다. 한국방송 무등산 송신소와 한국통신의 통신탑, 어디가나 저놈이 말썽이야, 우측으로 철조망을 끼고 이어간다.

무등산은 마한 백제시대에는 무돌. 무당. 무덤산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이후 무진악 또는 무악, 고려시대 때 서석산이라 불리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무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무등산에서 사람의 발자취는 선사시대 에서부터 시작된다. 충효동 지역에 분포되어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은 이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했단다.

그리고 백제시대에는 무등산에 성을 쌓았는데 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수 있다고 즐거워하면서 무등산가를 지어 불렀다는데, 오늘날 무등산에는 여러 곳에 성터가 남아 있고, 충효동 성안마을도 돌을 인공으로 쌓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어 대대로 성이 존재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무등산 산기슭에는 증심사, 원효사, 약사암, 규봉암등 여러 사찰이 산재해 있는데 절마다 천년의 세월 과 더불어 숱한 전설과 소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난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구국의 의병장들이 무등산에서 호국의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호남정맥의 산 그런데 산안개 가득하니 우리는 그림의 떡이니...

08시 40분 장불재다. 문헌비고에는 장불치, 동국여지승람에는 장불동이라 적혀 있으나 이 고을 사람들이 이 고개를 장불재라고 부른단다. 장불재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해발 905m의 고갯길이다. 이 고개를 따라 곧장 산 아래로 내려가면 화순군 이서면이다. 옛날 이서, 동복 사람들이 광주에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던 지름길이기도 하다.

무등산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는 공군 제 0000-3부대의 1산 1하천 보호지역으로 정성을 다해 보호하겠다는 안내문이 설치된 장불재, 쉼터와 공중전화 BOX가 있다. 정맥꾼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오른쪽으로 정맥을 벗어난다. 그리고 넓게 뚫려있는 등산로, 너덜길이 계속된다. 비 안 맞는 것만도 다행이지...

09시 12분 규봉암 이정표(꼬막재:3.1km, 장불재:1.8km)가 서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왼쪽으로 잠시 올라선 곳에 규봉암이 자리잡고 있다. 기암절벽을 이룬 규봉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산사, 이름모를 들꽃과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면서 떠날 줄 모르는 정맥꾼들...

한동안 너덜길과 군데군데 키를 넘는 산죽밭, 가끔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적한 정맥꾼들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 흐린 하늘을 가려주고 있다.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면서 입었던 우의를 벗어버린다. 그 바람에 어느새 보이지 않는 정맥꾼들을 따라 부지런히 따르다가 광일목장 이정표를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이 고액의 괴외비를 물어주는 동기가 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지요...

10시 광일목장 이정표와 신선대입구라는 표석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르거나 조금 더 오른 다음 오른쪽으로 억새밭의 광일목장 개활지를 내러 서야 하는데 안개 속에 북산을 보지 못하고 또한 벗어났던 정맥능선을 잘 읽지 못한 죄로 갈팡질팡 하다가 부근에 꼬막 같은 자갈이 무수히 깔려 있어 이름이 붙여지고 일대에는 풍치 좋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한 꼬막재(640m)까지 다녀와야 했다.

50분의 아르바이트,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임도에 들어서니 꽁꽁 숨어있던 리본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삼거리 안부에서 임도를 벗어나면서 철선을 넘고 목장을 통과하며 오르는 길이 가팔라진다.

11시 10분 암릉길로 신선대에 오른다. 규모는 작지만 깎아지른 입석들이 볼만하다. 바위를 끼고 작은 언덕을 이룬 묘지(?) 옆으로 마당바위가 제법 널찍한 식탁이 되어주어 정맥꾼들은 둘러앉아 허기를 채운다.

11시 30분 중식을 끝내고, 다시 목장지대를 2분 정도 올라서니 작은 규모의 통신시설과 돌탑 그리고 삼각점(복산 450, 96년 재설)이 있는 북산(△782m) 정상이다.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진 무등산, 정맥은 오른쪽(동)으로 옛 산성 터인 듯한 축대를 내려서면서 길도 없는 급사면이 불이 난지 얼마 안 되는 듯한 산불지역이다. 역시 목장의 철선이 이어지고 있다.

20분 정도 미끄러지듯 내려선 초원의 넓은 안부에는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고,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잡목을 헤치며 올라선 능선분기점(11:55)에서 정맥은 왼쪽(동북)으로 또 다시 산불지역이 이어진다. 15여분의 길고 긴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선 안부에는 장송이 하늘을 가로막고 있다. 사랑싸움을 벌리고 있는 산새들...

12분 17분 시야가 가린 솔잎 냄새가 가득한 봉우리를 넘어선 곳이 옛 성황당터인 듯한 백남정재다. 다시 5분 정도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올라선 430봉, 1분 정도 밋밋한 능선길은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팍 꺾이고 한차례 내려서면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지는 능선길에는 산죽군락이 나타난다.

산죽과 철쭉군락을 헤치며 올라서며 만나는 장송숲에 길을 막는 쓰러진 나무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이어지는 정맥길, 송전탑을 통과하면서 다시 키다리 참나무가 서있는 오름길을 올라서니 그렇게도 애를 태우던 안개가 슬며시 사라지며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13시 02분 447.7봉에서 삼각점(독산 445, 85년 복구)을 확인하고, 왼쪽(북서)으로 가시넝쿨을 헤치면 한차례 미끄러지듯이 가파르게 떨어진다. 측백나무가 간간이 눈에 띄는 긴 내리막길의 10여분, 잔디밭에 커다란 묘지를 지나 예전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 길인 듯한 십자로 안부를 통과한다.

13시 25분 한차례 힘겨운 급경사에 오름길로 올라선 420봉 직전 정맥길은 오른쪽(동)으로 팍 꺾이고,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다가 왼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면서 십자로 안부를 지나 작은 언덕을 넘으면서 산판길을 따라 내려선 곳이 유둔재다.

13시 40분 887번 지방도가 지나는 유둔재에 고갯마루에는 교통표지판(광주:21km,담양:26km)이 서있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정맥꾼들...

13시 50분 유둔재를 뒤로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 대나무 밭을 통과하고 한동안 장송지대로 이어지던 정맥길은 잔디밭의 커다란 묘지를 올라 숲길로 들어서며 가파르게 오르다가 능선분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으로 틀며 완만하게 이어나간다. 참나무숲의 평탄한 능선길,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상승하는지 손수건이 손에서 떠날 줄 모르고, 술에 찌들은 정맥꾼들은 그 효력이 나타나는지 몹시 힘들어한다.

14시 20분 446봉 능선분기점이다. 오른쪽(북서)으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름길에는 거미줄이 성가신데 10분 후 밋밋한 봉을 넘으며 내려선 곳이 십자로 안부가 어산이재인 듯하다. 다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456.6봉(14:40)이다. 여기서 정맥은 왼쪽(서)으로 방향을 바꾸며 이어나간다. 노송군락지 아래 잡목을 헤치며 평탄하게 내려서면서 옛 헬기장 터에는 중키에 소나무숲이 들어서 있다.

14시 53분 십자로 안부인 새목이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우측으로 시야에 가려있지만 외동저수지가 인접해 있고 좌측으로 유둔재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887번 지방도가 지난다. 뒤쳐졌던 정맥꾼들이 모인다. 밋밋한 봉에 이어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평탄하게 이어나가던 정맥은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또 다시 만나는 산불지역이 정맥꾼들은 마음 아프다.

15시 17분 능선분기점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팍 꺾으면서 아름드리 장송숲으로 한동안 평탄하게 이어나가던 정맥길이 가파르게 오르며 능선분기점을 만나고 연이어 바위지대의 좁은 날등을 통과하고 만나는 능선 잡목숲에 숨어 있는 삼각점은 지적 측량점이다.

15시 50분 웅덩이가 있는 능선분기점인 500봉이다. 정맥은 왼쪽(서)으로 키다리 참나무숲길로 잠시 완만하게 내려서는 듯하다 올라선 봉에 이어 다시 올라선 480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서남)으로 이어나간다.

16시 07분 까치봉으로 갈라지는 400봉 능선분기점이다. 잠시 다리 쉼으로 힘을 얻은 정맥꾼들이 북서 방향으로 팍 꺾으며 낙엽 아래 숨어있는 돌길을 조심하며 내려서다 보니 야영장으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뻥 뚫린 정맥길이 펼쳐지면서 4번 야영장 등산로 표지기를 확인하며 바윗길로 올라선 봉이 야영장 최고봉이란 표지기가 부착된 479.4봉이다.

16시 24분 돌탑이 있는 479.4봉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서)으로 쉼터란 표지기가 부착된 공터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또 한차례 팍 꺾으면서 내려선다. 힘겨운 산행이었지만 이제 목적지도 가까워지고 호젓한 솔발길은 정맥꾼들을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16시 34분 450봉을 통과한다. 2분 뒤 예전 많은 통행의 흔적이 남아있는 넓은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한차례 올라선 곳에서 429.4봉인 삼각점(복산 401, 85년 재설)을 만날 수 있다. 키다리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정맥길은 능선분기점인 450봉에서 오른쪽(동)으로 이어나가면서 좌측으로 노가리재로 오르는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완만하던 정맥길이 북동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7시 10분 송전탑을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1차선 콘크리트포장도로인 노가리재다. 안개비 속에 시작한 종주길, 힘겨웠지만 그래도 보람찬 하루였지, 숙소인 신상표씨가 주인인 상표농원(담양군 창평면 외동리 185번지 (061)381-5600)에는 멧돼지 구이가 정맥꾼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음 착한 안주인이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돌미나리 무침은 도심에서는 먹을 수 없는 별미였다.



호남정맥 종주 팔구간 (둘째날)

종주일자 : 2002년 4월 23일
종주구간 : 노가리재 ∼ 만덕산 ∼ 연산 ∼ 무이산(삼봉재)
날 씨 : 맑음

종 주 자
김종국,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 조삼국, 함철호, 김종범, 김영철(12명)

도상거리
노가리재(325) - 3.7- 국수봉(△557.6m) - 1.2 - 선돌도로(320) - 2.2 - 450.9봉(△450.9m) - 2.0 - 만덕산(575m) - 1.9 - 방아재(285) - 1.1 - 연산(505.4m) - 2.2 - 호남고속도로 - 0.1 - 과치재(26번 국도) - 2.4 - 무이산(△304.5m) - 0.4 - 삼봉재(임도)

종주일정
06:30/노가리재 -- 07:38/468.3봉 -- 08:08/국사봉 -- 08:34/선돌도로 -- 09:00(09:17)/ 수양산 능선분기점 -- 09:58/450.9봉 -- 10:35(11:00)/만덕산 -- 12:15/방아재 -- 12:50/ 연산 -- 13:47/호남고속도로 -- 14:56/무이산 -- 15:10/군봉재(임도)
산행시간 : 8시간 40분

후 기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국화 옆에/서정주)

우리 조상들은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을 점쳤다. 봄철에 '소쩍당 소쩍당'하고 우는 소리는 솥이 적으니 더 큰솥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알고 우리 조상들은 그 해의 풍작을 기대했고, '소탱 소탱'으로 울면 솥이 텅텅 비었다는 의미로 그 해 농사는 솥이 텅텅 빌 정도로 농사가 안 되어 흉년이 될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국화 술이 좋아서, 멧돼지 구이가 좋아서 연신 마시더니 코쟁이들 코를 골면 비틀어버리겠다고 공갈에 협박까지 그러더니 깡통 뚜드리는 소리가 저녁잠이 많은 나를 괴롭힌다. 새벽녘에 잠시 잠이 들었었나, '소쩍당 소쩍당'하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눈을 뜨니 코쟁이들은 조용하고 되래 코를 안 곤다는 안 코쟁이들이 더 시끄럽게 코를 골고 있다. 어젠 정말 피곤했나봐...

구수한 된장찌개에 맛깔스러운 김치 이래서 음식 중에 전라도 음식이 제일이나 보다. 다시 한번 찾아오라는 상표농원 안주인과 작별하며 가까운 거리에 노가리재 고갯마루에 서니 어제와는 달리 산뜻한 아침공기와 솔잎냄새가 가슴에와 닿는다. 아! 좋은 거...

06시 30분 노가리재 고갯마루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선 곳에서 오른쪽으로 밧줄이 매어있는 뻔뻔한 오름길을 5분 정도 올라서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의 마을들이 아침을 열고 있다. 뒤돌아보니 어제 힘겹게 내려서던 정맥능선이 언제 그랬냐는 듯...

06시 48분 정맥길은 철쭉꽃밭을 헤치며 동쪽방향으로 한차례 가파르게 오르면서 만나는 패러그라이딩 점프대와 안내판, 다시 왼쪽으로 틀며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게 이어진다. 식물박사답게 열심히 약초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걸음을 재촉하는 김종범씨, 앞으로 수명산 자유게시판에 시리즈로 연재하겠다는 약속...

정맥은 좌측으로 급사면을 이루고 있고 북동방향으로 이어진다. 다시 완만하게 봉을 넘으며 이어지는 오르내림, 좌측으로 능선길 조금 벗어난 곳에 시야가 탁 트이는 전망대 바위(07:00)가 정맥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07시 05분 바위들이 전시회장을 차리고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팍 꺾으며 경사길로 1분 정도 내려서며 만나는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르고, 한차례 수북히 쌓인 가파른 오르막길을 철쭉밭을 헤치며 오르내림은 방향을 바꾸어가며 이어지다가 소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고 좌측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 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철쭉꽃 마을인 외동리와 쪽빛 수면의 외동제를 만날 수가 있다.

07시 18분 목장울타리가 기다리고 있는 안부에 내려선다. 정맥은 목장울타리를 따라 봉을 하나 넘으면서 임도를 만나고 밋밋한 봉우리를 넘으면서 우뚝 솟은 봉을 향해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서니 또 다시 패러그라이딩 활공장이다. 이곳 사람들은 패러그라이딩을 좋아 하나...

07시 38분 산불초소가 있는 468.3봉 활공장에서 내려다보는 조망 또한 일품이고 지나온 정맥능선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정맥길은 산판길을 따르다가 다시 만나는 목장철조망, 한동안 철조망을 끼고 잡목들과 씨름하며 진행하다보니 왜 이걸 몰랐지, 쉽게 가려면 울타리를 넘어야지 바로 그게 정맥능선이기고 하지만...

07시 48분 넓은 초원에 목장길을 따르다보니 넓은 잔디밭에 전주 이씨 묘지를 만나고, 이어 목장문을 빠져 나오면서 옛 임도를 따라 한차례 오르다가 인동 장씨 비석이 서있는 가족묘지를 통과하며 가파른 경사길로 바위봉(08:02)에 오른다. 아! 그렇게도 정맥꾼들이 두려워선 지 가리고만 있던 무등산이 구름 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민다. 사실 명산에 떡 버티고 자리잡은 무슨 시설인지 그거 잘못된 거 아닙니까...

08시 08분 정맥꾼들은 바위봉에서 동쪽으로 얼마 멀지 않은 국수봉에 오른다. 판독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고 조망이 뛰어나다. 지나온 정맥능선 그리고 가야할 정맥줄기가 한차례 돌아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진행방향으로 몇 발자국을 옮기다가 왼쪽(동북)으로 경사길의 내리막길을 한동안 내려서며 만나는 바위손이 가득한 넓은 바위지대, 한차례 뚝 떨어지며 걱정하는 정맥꾼들...

08시 18분 안부 장송숲, 골짜기바람이 왜이리 고마울까, 언덕을 넘어서 다시 한번 내려서는 정맥길,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수양산을 바라보며 가파르게 내려서다 만나는 산판길을 따른다. 선돌도로에 내려서기 직전 뒤돌아보는 정맥능선에는 천수답이 층층이 들어서 있다.

08시 34분 선돌도로에 내려선다. 범죄 없는 마을 표석이 서있는 선돌과 보호수가 멋진 입석(선돌)리 마을을 만날 수가 있다. 임도를 따르다가 왼쪽으로 묘지를 만나면서 오름길이 시작된다. 7분 가량 올라선 곳에서 수양산으로 오를 수 있는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한차례 경사길을 치고 오른다.

08시 56분 가파른 오름길이 동쪽으로 누그러지며 이어지던 정맥이 4분 뒤 능선분기점을 만난다. 정맥은 왼쪽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10분 거리에 수양산을 다녀올 수가 있다. 산불초소가 있고 삼각점(복산 407, 85년 재설)이 있는 수양산...

09시 17분 능선분기점에 다시 돌아와 북동방향으로 한차례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선 8m 정도의 임도를 가로지른다. 조금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팍 틀면서 이어나가는 능선길은 평탄하고, 장송숲이 보기 좋은 길, 호남정맥 중간지점이란 표지기가 있는데 사실은 서밧재가 중간쯤 된다.

09시 37분 다시 내려선 임도에는 벌목한 나무들을 차에 실으면서 조용한 숲 속을 한차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임도 가로지르며 만나는 묘지 앞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며 허기를 채우는 정맥꾼들...

09시 58분 삼각점(복산 408, 85년 재설)이 있는 450.9봉이다. 삼각측량을 하며 주위에 나무들을 베어놓고 방치해 놓아 어지러운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서북)으로 팍 꺾으면서 이어나간다. 소나무 숲 아래로 잡목들이 옷깃을 붙잡는데, 3분 뒤 다시 만나는 임도를 가로지르고, 돌이 쌓여있는 봉을 통과하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어나가는데 만덕산이 가까이서 어서 오라 재촉한다.

10시 13분 장송아래 철쭉터널을 뚫고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북쪽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보기 좋은 안부를 가로지르고 돌로 축대를 쌓은 전주 이씨 묘지를 지나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만나는 적송지대, 능선길에서 내려다보는 조망 또한 뛰어나다. 참나무를 베어놓은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섰다가 왼쪽으로 완만하게 올라선 곳이 만덕산이다.

10시 35분 아름드리 소나무와 잡목들 꼭 집어 여기가 정상입니다. 할 수 없는 만덕산 정상, 조금 내려선 곳에 헬기장이 있고, 한쪽으로 무덤 없는 비석 하나... 때 이른 점심식사, 항상 먹는 순간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 군대시절에는 먹고 돌아서면 곧바로 배가 쑥 꺼지는 보리밥이지만 얼마나 그 시간을 기다렸던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먹음만큼 간다며 항상 강조하던 김종국대장,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따라 올 때가 되었는데...

11시 식사를 끝내고 동북방향으로 잡목을 가르며 내려선다. 신록의 합창소리가 정맥의 골짝을 울려 퍼지고 있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선 500봉 능선분기점, 후답자들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서 고액 과외비를 치렀기 때문이 아닌가...

500봉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가파르게 떨어지는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길, 거침없이 내려설 수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될 줄이야, 정맥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정맥꾼들은 누구나 긴 한숨뿐... 거의 매달리다 십이 올라서면서 나타나는 리본들은 다 믿을 만할 것인데 건건산악회, 한배움산악회, 광주하늘소 등등...

묘지까지 올라와도 갈림길을 찾을 길 없다. 다시 되돌아 내려서면서 리본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내려서며 좌측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희미하게 집히는 것이 있다. 들어서 보니 희미한 길이 나타나고 이어 백두산 가는 길의 거인산악회의 빛 바랜 리본 하나, 아! 이 길이 구나, "아군 발견", 특히 여름철에 정맥꾼들이 걱정이다. 광인님, 그리고 강산에 아우님 조심하세요, 지난 백이산에서 석거리재 구간이 생각난다.

11시 47분 깬 자갈이 깔린 임도를 가로지르고 묘지를 뒤로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나뒹구는 산불지역의 가파른 길을 기어올라야 한다. 봉에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좁을 날등으로 연이어 오르내리는 정맥능선은 민둥산이 되어 강렬한 태양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그런 길이다. 손에 잡힐 듯한 연산이 정맥꾼들을 부르건만 대답한 힘이 없다.

12시 15분 60번 군도인 방아재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왼쪽으로 대나무 숲을 뚫으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정맥은 역시 산불지역이라 온통 나무를 베어낸 뻔뻔한 길, 한나절 태양열을 받으며 오르는 불쌍한 정맥꾼들, 느릅나무 묘목을 심어놓아 머지않아 느릅나무 세상을 만들 것 같은 좀 힘겨운 오름길이다.

소나무숲길이 나타난다. 그 순간 방아재로 급히 내려서는 김대장 발견, "잔디" 여기서 잠깐 소개하자면 김종국대장은 우리를 들머리에 내려준 후 도착지점에 차를 두고 다시 돌아와 산행을 시작하다보면 대개 1시간 30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부지런히 달려와 만날 때는 항상 반가울 수밖에...

12시 50분 밋밋한 흙무더기의 묘지가 있는 봉에서 정맥은 오른쪽(동북)으로 틀면서 한차례 올라선 연산 정상은 잡목 숲 속에 꽁꽁 숨어있었다. 한참을 숲을 뒤지다가 삼각점(독산 22, 91년 복구)을 찾는다. 그리고 조금 내려선 곳에서 전주 이씨 쌍무덤을 만날 수 있다. 횡재를 만난 정맥꾼들...

우리 전권사가 알면 한마디 할 것 같아 이 것만은 입에 지퍼를 채우려고 했는데, 입이 근질근질 해서 해버려야지, 사실은 어제부터 산불지역과 묘지를 지날 때마다 고사리가 널려있어 틈틈이 허리운동을 하는 바람에 조금은 내가 여유가 있었는데 정맥꾼들 특히 경주말 이영주, 오늘 집에 가면 사랑 많이 받겠어...

skkim과 최중교 흉내낸다고 디지털카메라 들고 사진 찍다보니 그게 그리 쉬운 일 아니었어 성질 급한데 동작은 왜이리 더딘가 답답하다 답답해,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 하여튼 묘지에서 내려서다 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소나무 옆으로 정맥길이 열려있다. 긴 내리막길이 잡목 숲을 뚫어야한다.

13시 08분 안부에 내려서고 다시 커다란 멋진 바위들이 지키고 있는 능선이다. 마이산에서 본 시멘트와 자갈을 반죽해 놓은 것 같은 그런 바위들... 봉을 하나 넘는다. 호남고속도로가 가까워지는지 소음이 들리더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13시 20분 뻔뻔한 길을 가다가 좌측으로 능선을 타야되는데 우회 길을 따르다보면 자칫하면 길을 놓칠 수 있는 지점이다. 방향을 북쪽으로 이어지던 정맥은 솔잎 가득한 봉을 넘으면서 평탄한 길로 한차례 뚝 떨어지다 다시 평탄해지고 다시 뚝 떨어지면서 한껏 고도를 낮추다가 누그러지면서 오른쪽으로 수로를 타고 내려선다.

13분 47분 김대장의 돌격 명령, 롱 다리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강산에 아우님은 괜찮습니다. D1200mm 하수관을 통과한다. 여유 있는 정맥꾼들은 오른쪽으로 1km 정도 돌아 다시 정맥에 붙으면 되지만, 중간에 낀 채 꼼짝없이 오리걸음으로 전진 또 전진 백두대간에 이어 잔디밭 특공대의 지하하수관 통과작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못 말리는 박덕주선배 부부...

26번 국도가 지나는 담양군과 곡성군을 가르는 호남정맥 상에서 가장 낮은 고갯길 과치재, 산촌주유소가 있고 전남과학대학 입간판을 볼 수가 있다. 능선에 붙으면서 우회길을 버리고 능선길을 따라 장송숲의 밋밋한 봉을 통과한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틀면서 내려선 십자로 안부, 다시 왜소나무군락을 따라 올라선 바위 몇 개가 늘어 서있는 봉우리가 능선분기점인 240봉 같다. 정맥은 왼쪽으로 급경사에 내리막길로 십자로 안부에 내려선다.

14시 37분 밋밋한 봉을 넘어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앞에 솟아있는 봉이 무이산 이겠지 하며 올랐는데 다시 시야에 높게 솟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요놈이 260봉인가, 조금은 실망을 하며 안부에 내려섰다 묘지를 통과하며 평탄하게 이어지는 정맥길, 다시 한차례 내려섰다 오르는 길엔 노간주나무들이 줄을 잇는다. 긴 오르막이다. 지칠 대로 지친 정맥꾼들에게는 힘겨운 오르막이다.

14시 56분 나무들이 무참히 베어진 채 쓰러져 있어 혹시나 하고 삼각점을 찾다가 다시 조금 더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삼각점(순창 458, 81년 복구)을 만나면서 무이산 정상에 선다. 시야에 더 가까워진 괘일산의 한껏 뽐내는 암봉과 호남정맥능선, 또 한 구간을 해냈구나 생각하니 끝냈다는 기쁨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땀 흘린 자기극복과 인내에 대한 성취감이 새롭다.

15시 10분 작은 봉을 넘으면서 내려선 임도가 이곳 주민들이 군봉재라 부른다는 이번 구간 종착점, 오른쪽으로 넓게 뚫려있는 임도를 따르고 다시 10분 후 삼거리인 콘크리트포장길을 만난 곳이 안내판이 서있는 괘일산 일반산행 들머리다. 왼쪽으로 조금 더 내려선 곳엔 성림청소년수련의 집이 있다.

2박 3일의 종주 마치기까지 걷기도 많이 하고 땀도 만이 흘렸으나 몸도 가뿐하고 마음도 흔쾌하여 산행 뒤에 기분이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훌쩍 떠나오기 아쉬워하며 서로의 가슴에 또 하나의 호남정맥 추억거리를 묻어둔다.



호남정맥 종주 구구간 (첫날)

종주일자 : 2002년 5월 21일 ∼ 22일
종주구간 : 무이산(삼봉재) ∼ 괘일산 ∼ 서암산 ∼ 평창마을 지릉
날 씨 : 비 후 맑음

종 주 자
김종국, 나종학, 류민형,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윤정길,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 조삼국, 김종범, (13명)

도상거리 : 17.9km
삼봉재 - 1.2 - 괘일산(440) - 1.0 - 설산 어깨(400) - 2.3 - 군도 서흥부락(215) - 1.1 - 서암산(450) - 2.6 - 봉황산(235.5) - 1.8 - 88고속도로(165) - 0.9 - 315봉 - 2.0 - 88고속도로 시목리(145) - 0.9 - 24번 국도 영월부락(125) - 1.1 - 덕진봉(380) - 3.0 - 평창마을 지릉

종주일정
06:30/무이산(삼봉재) -- 07:03/괘일산 -- 07:25/380봉 능선분기점 -- 07:30/임도 --08:30/ 설산 -- 08:30/능선분기점 -- 09:06/민치 -- 09:30/시라태골 -- 10:09/서암산 -- 10:31/ 340봉 -- 10:49/ 상신기마을 -- 11:02/일목리고개 -- 11:04(11:24)/중식 -- 11:53/봉황산 -- 12:23/ 88고속도로 -- 12:59/314.5봉 -- 13:21/88고속도로 -- 13:57/24번 국도(방축) -- 14:50/ 덕진봉 -- 15:50/250봉 -- 16:05/평창마을 지릉 -- 16:20/평창마을

산행시간 : 09시간 50분

5월 21일
24절기 중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드는 소만은 양력으로는 5월 21일경부터 약 15일 간이며, 음력으로는 4월중이다. 태양의 황경이 대략 60°에 있을 때로,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에 접어들어, 농촌에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 베기로 한참 바쁜 시기인데 옛 중국에서는 소만을 5일씩 3후로 나누어 초후에는 씀바귀가 고개를 내밀고, 중후에는 냉이가 누렇게 마르며, 말후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이 시기에 가뭄이 들기도 해 예로부터 이때를 대비해 물을 가두어 두고 모내기 준비를 하였고, 지난 해 가을에 심은 보리를 베고, 또 웃자란 잡초를 제거하거나 밭매기에 바쁘다.

소만이 되면, 산야가 온통 푸른빛을 띠는데 유독 대나무는 새로 솟아나는 죽순에 모든 영양분을 집중 공급하느라 누렇게 변하는데 대나무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이때 나온 죽순을 채취해 고추장이나 된장에 살짝 묻혀 먹거나 찍어 먹으면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구수해 계절식 가운데 별미로 친단다.

오늘은 산경표에 따라 호남정맥을 답사하려 가는 날, 여러 능선 가운데 그 흐름이 바다에서 끝나는 것이 대간, 정간, 정맥이다. 따라서 이들 대간, 정간, 정맥에 의해 나뉘는 지역에는 반드시 하나의 강줄기가 흐른다.

무이산 삼봉재를 시작으로 광덕산을 넘어가는 정맥의 능선은 서쪽 계곡의 물은 담양호를 거쳐 영산강이 되어 목포로 흘러 내려가고 동쪽의 물은 강천제, 순창읍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오묘한 자연의 힘, 인생만사 접어버리고 좋은 생각만 하며 걸어야지...

생각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사람은 무엇을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한다. 마치 건물을 지을 때 먼저 건축 설계사에 의하여 도면이 그려지는 것과 같이, 건물은 설계사가 구상한 설계도에 따라 그대로 지을 뿐이다.

생각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 생각이 구체화된 것을 계획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적인 생각을 말하고 행동에 옮길 때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계획적인 것도 있는 것이다.

좋은 것을 생각하면 좋은 것을 말하고 선한 행동을 하게되고 그 결과는 축복을 받지만 악한 것을 생각하면 악한 말과 행동을 일으켜 죄를 짓고 결국에는 불행에 빠지게 되는데 짧은 세상 우리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고속도로를 달려와 지난번 하룻밤을 묵었던 인심 좋은 상표농장에서의 밤은 깊어간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고단했던지 이방 저 방에서는 코고는 소리 요란한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5월 22일
06시 30분 가랑비 조용히 내리는 임도인 삼봉재에서 호남정맥 아홉째 구간 첫발을 내딛는다. 임도를 따라 8분 정도 오르다가 임도가 끝나고 흙무더기를 통과하며 어둠침침한 숲길은 바윗길을 만나면서 급경사의 오름길을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올라 능선에 붙는다.

07시 오른쪽으로 잠시 후 밧줄에 매달려 올라서면서 돌아보는 무이산과 지나온 능선들, 비에 젖어 있지만 모두다 정겹게 다가온다. 지난번 내려섰던 성림청소년수련원과 저수지, 4분 정도 올라서며 괘일산 정상 바위 벼랑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뛰어나고, 분재와 같은 노송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적벽을 이룬 그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아름답다. 자연의 무한한 힘과 오묘한 조화, 정맥을 이어갈 수 있는 건강을 지녔음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정맥은 괘일산 정상을 뒤로 아기자기한 암릉길은 한차례 미끄러운 바위길을 내려선 다음 암릉을 이리저리 우회하다가 만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며 소나무숲길이 한동안 이어나가는데 5월로 접어들며 정맥꾼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산새들 중에 금남정맥 종주시 오도균선배가 들려주던 쪽박새의 전설,'쪽박 바꿔져 쪽박 바꿔져'...

07시 25분 능선분기점인 380봉에서 오른쪽(북동)으로 5분 정도 떨어지니 임도가 나타난다. 이정표에 주렁주렁 매달린 리본들, 임도를 가로지르면 10여분 정도 잡목 숲을 헤쳐나가다가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북서)으로 팍 꺾이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08시 30분 설산까지 오를 생각은 없었는데 걷다보니 어느새 설산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할 수가 있어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 는 속담처럼 멀지 않은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표지석이 서있는 설산에 오르니 설산 또한 시야가 탁 트여 갈 길은 멀지만 조금은 여유를 부려본다.

곡성팔경에 동악조일(動樂朝日)이요, 설산낙조라는 말이 있다. 동악산의 일출과 설산의 낙조를 곡성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승으로 꼽은 것이다. 또 옥과팔경에는 설산귀운(雪山歸雲)과 사자앙천(獅子仰天)이라 하여 설산에 드리운 구름과 괘일산의 형상을 함께 경승으로 꼽고 있다. 곡성의 10대 산을 꼽을 때도 동악산 다음으로 설산을 꼽는다. 설산은 낮지만 그만큼 곡성 땅에서는 꼽아주는 명산이란다.

설산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이자 곡성이 담양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눈이 쌓인 것처럼 정상부 바위벼랑이 하얗게 빛나(규사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부처가 수도한 여덟 개의 설산 성지의 하나인 성도를 따서 붙였다고도 한다.

수질이 좋지 않은 옥과 땅에서 물맛이 좋은 금샘이 이 산자락에서 솟고 임진란 당시 의병장군 이었던 유팽로(1564-1592)가 쌓았다고 추측되는 설산고성의 성터가 남아있다. 유장군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사망했는데 그의 말이 고향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죽자 그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옥과면 합강리에 무덤(의마총)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되돌아 내려서며 숲길을 더듬어 찾아낸 능선분기점은 전망이 좋은 바위봉 이지만 정맥길은 임도에서 오르다가 바위봉 조금 못미처 희미한 갈림길을 찾아야 한다. 정맥길은 마치 우리가 살아온 인생사와 흡사하다. 전망대 바위에서 확인한 서암산과 송전탑, 북서방향을 한동안 내려서서 안부를 가로지르고 이어 밋밋한 봉을 넘으며 잡목 숲을 뚫지 못하고 임도에 내려서니 산딸기가 정맥꾼들을 유혹한다.

09시 06분 임도를 따르다가 왼쪽으로 잡목 숲을 헤쳐야 하고 다시 임도를 만나 우측에 있는 송전탑을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민치다. 이어지는 정맥은 묘지를 통과하며 가파르게 올랐다가 평탄하게 이어지면서 유난히 많은 담쟁이넝쿨이 줄기를 타고 숨통을 조이고 있어 시들어 가는 소나무들이 애처로운데 밋밋한 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한동안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나가다가 십자로 안부를 통과한다.

09시 30분 억새밭을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좌측으로 전라남도 담양군과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과 경계를 이룬 고갯마루에는 서흥리 쪽으로 콘크리트 포장을 하며 절개지가 형성되는 바람에 선답자들의 리본이 공중에 매달려 시선을 끈다. 잠시 다리 쉼을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잡목을 헤치면 들어서니 선명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버티고 있는 정맥길을 따라 류민형선배가 땅의 주인이 될 뻔한 한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른다. 아침나절과는 달리 숲 사이로 밀려드는 햇볕, 바람은 먼 곳으로 휴가를 떠나버렸나 보다.

완만한 긴 오름길을 오르다가 만나는 바위와 개복숭아 한 그루, 이곳에서 왼쪽으로 잡목을 헤치며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름막길을 올라야 한다. 9개 정맥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지 3년째,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최고로 교만한 사람은 프랑스의 황제를 지냈던 나폴레옹이라고 한다. 그는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쟁에 승리하고 황제의 자리까지 찬탈하였던 그가 외친 말이지만 그는 얼마 안되어 세인트 헬레나 섬에 귀양가서 최후를 마쳤는데 그는 불가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을 절감하면서 최후를 마쳤을 것이다.

반대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고백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한 나폴레옹의 말과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을 살펴본다면 사실상 정반대의 뜻이다.

10시 09분 능선에 올라서서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선 곳이 조그만 공터의 서암산(450m)이다. 소나무 숲의 서암산에서 다리쉼을 하고 올라서던 곳으로 되돌아 한동안 내려서며 능선분기점을 찾아야 한다. 선답자들의 리본이 없으면 고생께나 했을 이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북)으로 정맥길을 다시 한차례 내려섰다가 올라선 곳이 산불초소가 있는 봉이다. 다시 한번 정맥꾼들의 가슴 벅차게 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 추월산, 산성산, 광덕산, 여분산이 시야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정맥의 흐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내려선다. 왼쪽(북서)으로 상신기마을의 주홍색 민가를 겨냥하며 내려서며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정맥능선은 한차례 고도를 낮추고 있다. 수직의 가까운 내리막길이 뚝 떨어지다가 임도에 내려서며 복숭아 과수원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에는 분홍색의 이름 모를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농장표석이 서있는 상신기마을 민가를 돌아 다시 임도를 따른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상신기마을 고개를 통과하며 정맥꾼들은 대나무죽순으로부터 유혹을 받으며 밋밋한 봉을 넘는다. "저녁식사는 담양의 명물인 대나무죽순을 초고추장에" 먹는 타령을 하니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허기가 진다. 비닐하우스를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계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2차선 아스팔트포장길이 지나는 일목리 고개다.

11시 02분 일목리고개를 뒤로 조금 올라선 대나무 밭에서 둘러앉아 허기를 채우며 20분의 시간을 보낸 정맥꾼들은 대나무의 고장답게 대나무가 무성한 사잇길로 이어진다. 흔하고 흔한 죽순, 이어 단풍나무 조림지를 통과하며 봉을 넘는다. 정맥은 채소밭을 지나 고도가 220m을 가리키는 봉으로 통과하며 만나는 아름드리 소나무숲, 이어 잡목들이 거치적거리는 내림길이 시작된다.

11시 53분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르며 장비가 지나며 넓게 만들어진 산판길을 따르다가 4기가 자리잡고있는 묘지 뒤로 다시 잡목 숲을 헤치며 올라선 곳이 봉황산(235.5m)이다. 이름과는 달리 밋밋한 공터의 보잘 것 없는 정상에서 삼각점(순창 453, 81년 재설)을 확인한다. 뒤돌아보는 서암산과 우측으로 뽀쪽한 봉우리, 그리고 좌측으로 내려서던 정맥능선...

능선분기점인 봉황산에서 오른쪽(북)으로 노간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한차례 내려서며 잡목숲을 헤치고 밋밋한 묘를 통과하여 안부를 가로지르며 오르는 길에는 사랑싸움을 벌이는 산새 소리가 정맥꾼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12시 04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산판길을 따라 내려서다 만나는 온통 밭으로 변한 정맥능선, 따가운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밭일을 하고 있는 부부가 이목마을이라 귀뜸을 해준다. 이어지는 산판길, 이목마을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며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대나무밭을 끼고 오른다.

군데군데 밭과 묘지들, 서씨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만나는 개활지, 정맥은 민둥능선으로 이어지며 시야에 펼쳐지는 더욱 가깝게 닿아서는 추월산과 산성산,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언제부터인가 묘지 좌우로 중국 수입품을 세워 놓았는데 모양이 우리의 고유의 것이 아니라 씁쓸한 마음 버릴 수 없다.

12시 23분 산판길을 따라 조림지를 통과하고 숲길로 들어서서 잡목숲을 헤치며 내려선 곳이 전라남도 담양군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표지판이 서있는 2차선 고속도로인 88고속도로다. 그렇게 많은 통행이 아니라 눈치를 보며 가로지를 수가 있고, 덕유산악회의 초록색 리본이 반기는 수로를 따라 오르다가 오른쪽 수로로 방향을 바꾸며 올라서니 넓은 잔디밭의 묘지가 나타난다.

지나온 능선을 더듬어 보며 잠시 다리 쉼을 끝내고 이어지는 정맥은 잡목 숲을 헤치며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다가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른다. 넓게 나있는 가파른 오름길이 완만해지면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묘지와 둥근 바위를 통과한다.

12시 59분 중키의 소나무 숲의 314.5봉에 오른다. 글씨를 판독할 수 없는 삼각점(1990년)을 만날 수 있다. 내려서는 길은 잡목 숲이 정맥꾼들을 괴롭히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뚝 떨어지다가 밋밋한 봉을 넘어 평탄하게 이어지던 정맥이 한차례 급경사의 내림길이다. 넓게 자리잡은 묘지를 통과하며 이어나간다.

13시 20분 굴다리가 있는 88고속도로 경사면을 올라 갓길을 따라 줄지어 걸어가는 정맥꾼들, 뒤에서 누군가의 군가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온다. 15분의 고속도로 행진, 왼쪽으로 정맥능선에 올라서니 누렇게 시들은 소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고, 잔디가 잘 가꾸어진 묘지를 뒤로 임도를 만나면서 찔레꽃 향기가 그윽한 정맥길에는 뻐꾸기소리가 능선에 울려 퍼진다.

특색 있는 울음소리의 뻐꾸기는 5월에서 8월까지 볼 수 있는 여름새로 단독으로 생활할 때가 많으며 자신이 둥지를 틀지 않고 다른 작은 새의 둥우리에 한 개씩의 알을 낳아 위탁하는 기생성 조류라 한다.

임도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좌측으로 철망이 잠시 나타나고 이어 만나는 버려진 두 개의 컨테이너와 승용차(전남 34 가 1665)가 볼썽사납다. 임도를 따라 한동안 내려선 곳이 금과동산 입간판이 서있는 24번 국도다.

13시 57분 도로를 가로지르고 이어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보지만 잘려나가 논으로 변해버린 정맥은 장애물로 통과하기가 힘에 겹다. 다시 돌아와 방축마을 민가를 통과하며 오르다가 확인해 보는 정맥능선은 또 한차례 논으로 변해 끊겨있었고, 이어지는 밋밋한 야릉은 밭으로 변해 있었다.

우뚝 솟아있는 덕진봉을 다가서며 숲길로 들어서니 길이 뚜렷하지가 않아 한차례 이리저리 찾다보니 산길이 열린다. 지루한 오름길, 그런데 오름길이 온통 불개미의 세상이다. 또 볼만한 커다란 개미성을 만날 수 있다. 조그만 놈들이 이렇게 커다란 성을 쌓다니, 100여m 정도 길게 이어지며 열심히 일하는 불개미들이 구경거리가 된다.

불개미는 몸은 암적황색이고 전체 황색인 연한 털로 덮여있다고 한다. 땅속의 흙을 파내어 쌓고 나뭇잎, 마른풀잎, 나뭇가지 조각 등을 모아 무덤 모양의 집을 짓고 구멍들을 속으로 연결하며 안에는 여러 기능의 방을 만든다고 한다.

14시 50분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덕진봉에 오른다. 아니 개미봉에... 숲으로 가려져 음침한 덕진봉을 뒤로 오른쪽(북동)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선다. 한차례 뚝 떨어지는 경사길이 다시 완만해지면서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서는 능선은 온통 어지럽게 장비가 지나간 흔적이 나타나는 정맥길이다.

안부에서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이어지던 장비가 짓밟은 정맥길이 끝이 나고 소나무숲길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정맥길에는 숨어 있던 바람도 불어와 땀을 드리며 간다. 능선분기점인 329봉(15:18)에 올랐다가 북서쪽으로 뚝 떨어진다. 빨리 오라 부르는 듯한 정맥의 능선들, 밋밋한 능선은 좁은 날등으로 이어진다.

바위지대와 아름드리 소나무군락을 지나며 가파르게 오르다가 보니 묘지 주위를 쌓아올린 돌담이 나타나고, 이어 올라선 곳이 350봉(15:35)이다. 북동쪽으로 한차례 떨어지면서 10분 가량 내려선 십자로 안부에서 이어지던 정맥은 우회길의 유혹을 버리고 잡목숲을 헤치며 올라선다.

15시 51분 고도가 250m 정도 되는 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다 만나는 안부에서 오늘 내려설 평창마을을 확인한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따르다가 십자로 안부에서 1분 정도 올라선 곳이 오늘 종주의 끝점인 평창마을로 내려설 수 있는 지릉길이다.

16시 05분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지릉을 따라 내려선다. 소나무 한 그루가 보기 좋은 묘지를 뒤로 조금 더 내려선 곳에는 먼저 도착한 정맥꾼들이 반겨준다.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 평창마을, 조금 떨어진 구룡리의 구룡모텔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호남정맥 종주 구구간 (둘째날)

종주일자 : 2002년 5월 23일
종주구간 : 평창마을 지릉 ∼ 산성산 ∼ 광덕산 ∼ 용추봉
날 씨 : 맑음

종 주 자
김종국, 나종학, 류민형,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윤정길, 허문선, 최경섭, 김호택, 이영주, 조삼국, 김종범, (13명)


도상거리 : 16.4km
평창마을 지릉 - 0.7 - 560봉 - 2.2 - 산성산(486) - 5.0 - 광덕산(583.7) - 2.2 - 510봉 - 1.8 - 오정자재 792번 지방도(245) - 2.9 - 508봉 - 1.6 - 용추봉(580)

종주일정
05:50/평창마을 -- 06:10/능선분기점 -- 06:28/578봉 -- 06:43/안부(헬기장) -- 07:30/ 산성산(시루봉) -- 07:38/동문 -- 07:49/북바위 -- 08:03/598봉 -- 08:08/연대봉 -- 08:20/ 북문 -- 08:34/490봉 -- 08:51/495봉 능선분기점 -- 09:28/505봉 -- 09:44/왕자봉 갈림길 -- 09:48/왕자봉 -- 09:59/능선분기점 -- 10:42(10:57)/중식 -- 11:11/522봉 -- 12:00/ 오정자재 -- 12:32/능선분기점 -- 13:20/480봉 -- 13:38/508.4봉 -- 14:20/용추봉 -- 14:35/밤재도로

산행시간 : 8시간 45분

후 기
땅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 전북을 대변하는 속언이 있다. 살아서 부안, 죽어서 순창, 이 말은 곧 죽음과 삶을 가르면서 땅 이 갖는 생명력을 암시해 주는 것 같다. 영원히 살 수 있는 땅인 순창의 정기에 대해 그 깊이와 가치는 풍수 학자들이 교과서로 여기는 각종 비결서 중 도선국사가 남긴 유산록(遊山錄)에 무려 100여 개나 되는 순창의 명당을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05시 50분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 평창마을을 뒤로 정맥꾼들 앞에 산뜻한 아침이 열리고 있다. 구름사이로 한 폭의 그림을 그리며 얼굴을 들어내는 태양, 밤새 내리 이슬이 등산화를 적시는 오름길은 10분 가량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마루금에 붙으며 시작부터 급경사의 코가 닿을 듯하다.

15분 가량 가파른 오름길은 바위지대를 만나고 잠시 경사가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힘겨운 오르막길이 이어지며 층층나무 군락지다. 아침을 노래하는 산새들, 5월이 시작되면서 유난히 정맥의 능선에는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가 특이하다. 백두대간 종주를 같이한 오도균선배는 쪽박새의 전설로 아야기 해주었는데 쪽박새 아닌 검은등뻐꾸기는 "홀딱 벗고 홀딱 벗고"의 주인공이다.

06시 28분 583.7m이다. 강천산군립공원에서 광덕산이란 금속표지판과 안내판을 세워놓은 583.7봉에 오른다. 시야에 펼쳐지는 산성산을 돌아 광덕산(강천산 군립공원에서는 강천산 왕자봉으로 표기)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뒤돌아보는 지나온 정맥의 능선과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농촌의 들녘이 정겹게 다가온다.

능선분기점인 593.7봉에서 다시 되돌아 가파른 바윗길을 밧줄에 매달려 내려서고 계속되는 경사길을 10여분 정도 내려서다 만나는 이정표가 서있는 안부에는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밋밋한 봉을 넘으면서 만나는 낯익은 강산에의 리본 하나, 님 부르는 산비둘기의 구슬픈 소리가 능선에 울려 퍼진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은 능선을 지나며 또 다른 모습의 고사목지대, 바윗길을 내려서며 조망이 탁 트이는 능선길에는 유난히 사랑싸움을 벌이는 산새들로 소란스럽다. 밋밋한 능선길이 한차례 떨어지면서 시야에 다가서는 산성산의 시루봉이 파란 하늘아래 푸른 숲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밧줄에 매달리며 올라선 전망대바위에서 보는 담양군의 산과 들녘 또한 정맥꾼들의 가슴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07시 30분 산성을 만나면서 바윗길을 올라 산성산(강천산 군립공원에서는 시루봉으로 표기)에 오른다. 탁 트인 조망, 추월산과 담양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찬란한 5월의 파란하늘아래 펼쳐진 푸른 우리의 산야를 생각해 보라 무엇으로 표현해야 적절할까...

시루봉을 내려설 때는 올라설 때보다 조금은 겁이 난다. 좁은 암릉의 비탈을 조심하며 내려서며 이어지는 산성길, 이정표가 서있는 동문이다. 안내판과 잘 복원된 성곽의 문, 동문을 통과하면서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 사이로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북바위의 특이한 모습, 북처럼 생겼다나... 이정표를 통과하며 서서히 산성길은 오름길이다.

07시 49분 북바위에 오른다. 노송 한 그루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북바위는 2000년도 여름 한번 올랐던 곳이다. 서쪽 산성리 쪽으로 넓은 초원을 이룬 평탄한 지역으로 산성마을 터가 보인다.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이때 성안에 남아 있던 건물들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역시 시원하게 트여있는 조망,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정맥꾼들의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워 보인다.

08시 05분 삼각점(순창 446, 81년 재설)이 있는 598봉을 오른다. 발아래 경치가 절경을 이루는 골짜기 절벽 사이에 76m 길이의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고, 산중 협곡을 막은 인공호수와 계곡 양쪽으로 산봉우리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강천계곡이 너무나 아름답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연대봉(603m)에 오른다. 산성산의 최고봉인 듯하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 경계 상에 솟아있는 산성산은 능선과 암봉 등을 이용하여 축조한 높이 2-5m, 폭 2m에 산성으로 이어져 있으며 이성을 금성산성 또는 연대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왕조의 말기까지 중요한 진영으로 경영되었으나 이후 폐허화되다시피 방치되었다고 하는데 금성산성의 축조시기는 삼한시대 또는 삼국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나 희박하고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에 대비해 개축하면서 금성이라고 했으며 고종 43년(1256) 몽고의 차라대군이 담양에 주둔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이미 13세기 중엽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옛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외성, 내성, 성문, 옹성, 망대 등 갖추고 성내에는 사찰, 민가, 우물등과 그 위용은 대단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산성의 전체길이는 7,345m 이며, 외성이 6,486m, 내성이 859m이다. 연면적은 1,197,478㎡(362,237평), 내성의 면적은 54,474㎡(16,478평)이라고 한다.

08시 20분 안내판과 담양산악회에서 세운 이정표가 서있는 북문에 내려선다. 북문에서 내려다보는 추월산과 담양호의 파란 수면이 아침햇살에 더욱 눈부시고, 정맥은 이곳에서 오른쪽(북서)으로 북문을 통과하며 잡목숲을 헤치다 보니 슬며시 마중 나오는 낯익은 산죽길...

우회길을 버리고 정맥꾼들도 꺼려하는 잡목을 헤치다가 490봉을 오른다. 바위지대 아름드리 소나무, 전망대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담양호, 능선분기점인 490봉에서 오른쪽(북서)으로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495봉으로 오르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