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종주 일구간 (첫날)

종주일자 : 2001년 6월 28일
종주구간 : 섬진강 외망마을 ∼ 국사봉 ∼ 불암산 ∼ 토끼재
날 씨 : 흐림/맑음

종 주 자
김종국, 김태웅, 나종학, 임웅규, 박덕주, 허문선, 구용회, 류민형, 최경섭, 이영주, 윤정길, 김종범, 함철호, 김현숙(14명)

도상거리 : 15.5km
섬진강변(외망마을) - 0.7km - 망덕산 - 0.8km - 2번국도 - 1.25km - 190봉 - 0.9km - 천왕봉 - 0.6km - 남해고속도로 - 2km - 뱀재(869번지방도) - 1.1km - 상도재 - 2.5km - 국사봉 - 2.65km - 탄지재 - 1.35km - 불암산 - 1.65km - 토끼재

종주일정
6월 28일(종주 첫째날)
05:30/섬진강변(외망마을) -- 06:07/망덕산(△197.2m) -- 06:50/2번 국도 -- 07:30/190봉(×190m) -- 08:05/천왕봉(×225.6m) -- 08:35/남해안고속도로 -- 09:30/뱀재 -- 10:15/167.2봉(△167.2m) -- 10:25/상도재 -- 11:50/413봉(△413m) -- 12:18/국사봉(△447m) -- 13:55/헬기장(×249) -- 14:10/탄지재(2번국도) -- 14:50/탄지재출발 -- 15:48/불암산(△431.3m) -- 16:55/토끼재 (11시간 25분 휴식시간 포함)


호된 신고식을 치른 종주 첫날
밤새 달려와 순천에서 별미 콩나물해장국으로 배를 채운 정맥꾼들이 섬진강 하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4번지 외망 마을 포구에 도착하면서 조용한 아침이 열리고 있다.

호남정맥의 출발점인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하여 남해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 212.3km, 유역면적 4896.5km²로 한국에서 아홉 번째로 긴 강으로 본디 모래가람, 다사강, 사천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며 대체로 강 너비가 좁고 강바닥에 암반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1385년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 때문에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발원지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금남호남정맥에 있는 팔공산(1151m) 상추막이골의 머리 부분(근처에는 고랭지채소와 약초가 재배되는 평원이다)에서 시작하여 이곳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에서 합수되는 호남정맥에 속하는 대표적인 강이다.

05시 30분 덕산사로 오르는 콘크리트계단을 따라 호남정맥 첫발을 내딛는다. 덕산사 창건 공적비가 서있는 경내에서 김종국대장의 간단한 호남정맥 자료 보충설명을 들은 후 대원들은 완주를 다짐한다.

05시 50분 덕산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에 덕유산악회 산이 좋은 사람들의 노란색 리본이 반기고 새들의 지저귐 속에 억새풀들이 가득한 산길은 산안개가 자욱하다. 4분 가량 가파르게 오르던 잡목과 중키에 소나무숲길이 완만해 지며 잡풀이 무성한 묘1기를 지난다.

05시 56분 사거리 갈림길에 서있는 정상까지 410m라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고 곧이어 안동 권씨 묘지를 통과하는 넓은 등산로는 소나무숲길을 따라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06시 07분 화평 윤씨 쌍무덤이 있는 펑퍼짐한 망덕산(△197.2m) 정상이다. 삼각점은 찾을 수 없고 북동쪽으로 조금아래에 산불초소 밑으로 사선대가 보이지만 짙은 안개로 시야가 가려있다.

뒤돌아 오르던 길로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산허리 길을 돌아서니 체육시설이 있는 옛 절터(06:25)가 나타난다. 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대나무 숲을 지나 키 작은 소나무 숲에 야트막한 능선을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산허리 길로 이어지던 정맥은 파헤쳐진 산길을 내려서면서 2번 국도를 만난다.

06시 50분 도로를 가로지르면서 1m 높이에 도로 분리대를 넘어 급경사에 절개지를 오른다. 명감덩굴이 옷깃을 붙잡는 오름길에는 잡목들이 엉켜있고 반바지로 시작한 박덕주선배에 다리는 어느새 상처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06시 16분 110봉을 지나 완만한 중키의 소나무숲길로 정맥은 이어진다. 이름 없는 무덤 옆에서 잠시 다리쉼(06:20)을 하며 뒤돌아보니 잿빛하늘 아래지만 처음으로 우리 앞에 펼쳐져 그 모습을 드러낸 섬진강 하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190봉으로 오르는 바윗길에서 좌우로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길따라 정맥따라' 부산 건건산악회의 노란색 리본은 호남정맥에서도 우리의 길 안내자가 되어준다.

07시 30분 190봉 암봉에 오르니 단숨에 가슴속까지 확 트이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다. 왼쪽(서쪽) 수어천 건너 광양 아파트단지가 빤히 내려다보이고 그 위로 가야산이 구름에 걸려있다. 남쪽으로 검게 다가오는 광양제철의 시설물들, 광양만 너머로 여수 영취산도 조망된다. 망덕산 뒤로 섬진강대교가 보이고 섬진강하구 뒤로 남해 망운산(758.9m)도 보인다. 우리가 가야할 백운산도 그 모습을 드려낸다. 정맥은 북릉을 타고 이어진다.

07시 40분 확 트인 190봉을 뒤로 바위길을 내려서니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능선길이다. 한결 운치 좋은 소나무숲길을 따라 봉우리 하나를 넘어 천왕봉을 향한다. 철망 울타리를 통과하여 울타리를 끼고 이어지는 솔잎 가득한 내리막길엔 독버섯이 즐비하다.

07시 55분 안부에서 철망 문을 통과하고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을 커다란 바위를 끼고 오른다.

08시 5분 암봉으로 된 천왕봉에 서니 다시 한번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북으로 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푸른 들녘과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려 다 보인다. 되돌아보니 망덕산에서 이어온 정맥능선이 선명하게 이어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름 위에 떠있는 백운산 이 한 폭에 그림 같다.

08시 15분 천왕봉에서 수어천을 내려다보며 누어있는 전주 최씨와 진양 조씨 합장 묘를 뒤로 너덜길을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소나무와 잡목들이 빽빽이 들어찬 잡목지대를 통과하여 과수원 울타리(그물망)를 넘는다.

08시 35분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여 다시 능선에 붙는다. 대나무 숲을 끼고 고구마 밭을 따라간다. 밀양 박씨 무덤을 지나 정맥은 큰바위가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키 작은 밤나무밭을 지나는데 어느새 산딸기가 대원들을 유혹한다. 아름드리 노송 숲을 통과하여 참깨, 가지, 고추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밭 한쪽으로 피어있는 보라색의 도라지꽃이 아름답다.

08시 55분 소로 길을 가로질러 오르는 길 왼쪽으로 잘 가꾸어 놓은 가족묘를 통과하는데 부산의 준과 희, 언제나 정맥에서 만나는 주홍색 리본이 대원들은 반갑다. 자갈이 깔린 임도를 만나면서 정맥은 임도를 따른다.

09시 30분 진월면과 진상면 표지판이 서있는 869번 지방도 상의 뱀재 고갯마루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에 붙어 밤나무 밭 아래에서 다리쉼을 한다.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바람은 여행을 떠났는지 소식이 없다. 매화나무 밭을 끼고 밤나무단지를 지나면서 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로 키 작은 아카시아나무와 참나무가 길을 메우고 있고 완만한 오르막길에는 풀벌레 소리가 정맥꾼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10시 15분 국립건설연구소에서 설치한 소삼각점이 훼손된 167.2봉(△167.2m)에는 비석 없는 묘가 자리잡고 있다. 167.2봉을 뒤로 10분 가량 뚝 떨어지다가 안부에서 밭을 끼고 소나무숲길은 3분후 소로를 만나고 대원들은 송전탑을 향해 잠시 내려선다.

10시 30분 상도재를 통과한다. 상도재를 뒤로 임도을 따르던 대원들은 산길로 들어서면서 힘겨운 오르막이 시작된다. 송전탑(10:43)을 통과하여 키 작은 소나무와 잡풀이 무성한 정맥에는 뻐꾹새 울음소리가 능선에 울러 퍼진다. 진달래나무가 잡목과 엉켜있어 헤쳐나가기 조차 힘에 겨운 오르막에서 우회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잡목을 헤쳐가며 올라선 봉우리가 고도가 270m 정도에 봉(11:00)인데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서 평탄한 능선은 키 작은 잡목들이 즐비한 십자로안부를 통과하여 정맥능선을 뚝 잘라서 평지를 만들고 들어선 묘 5기를 지나 힘겹게 언덕을 올라서니 시야가 터지며 섬진강을 내려다 볼 수가 있다.

11시 14분 한차례 다리쉼을 하고 올라서는 길이 진달래가 들어차 있어 길조차 희미한데 명감덩굴이 옷깃을 붙잡는다. 억새군락도 이어지고 바닥에 깔린 잡목들 사이로 소나무 몇 그루와 참나무가 서있는 밋밋한 봉우리(11:32)를 오르면서 413봉이겠지 하지만 아니다.

11시 50분 한번 더 속은 후에야 413봉(△413m)에 올랐다가 억새풀이 가득한 능선을 따라 내려선 안부에서 허기를 채우고 안부를 뒤로 완만하게 이어지던 오름길이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가 국사봉이다.

12시 18분 삼각점(하동 15, 1989년 재설)이 있는 국사봉에 올랐을 땐 대원들은 모두다 지쳐 있었다. 2시간 이상을 빽빽이 들어선 진달래와 잡목들로 길조차도 희미하고 때론 그늘도 없는 능선을 헤치며 오르다보니 애꿎은 물병만 바닥이 들어 나 버렸다. 옛 산성인 듯 흔적이 남아 있다.

12시 35분 국사봉을 내려선다. 완만하던 내리막길이 3분쯤 뒤 가팔라진다. 다시 3분 가량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내려서던 길이 다시 잡목들이 길을 막는다.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넝쿨들이 길을 막는 잡목지대를 지나 안부에 내려섰다 올라서는 길 역시 진달래와 잡목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헤쳐 나가기가 힘에 부친다. 나지막한 봉을 연이어 넘는다. 바위지대도 나타난다.

13시 3분 왼쪽으로 나있는 갈림길을 지나면서 탄지재로 오르는 2번 국도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수어지와 비평리 마을들의 평화로운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지만 대원들 모두가 물이 떨어져 힘겨운 모습들이다.

13시 25 고도 290m을 가리키는 봉우리를 넘어 가랑잎이 가득한 내리막길에서 경전선 철길도 확인 할 수 있다. 급경사에 내리막길을 지나 나리꽃이 피어있는 송전탑을 통과하며 임도를 만나지만 1분후 다시 숲길엔 중키에 누렇게 잎이 말라버린 소나무가 꽉 들어차 있고 넝쿨들이 정맥꾼을 괴롭히고 있다.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무덤이 지키고 있는 봉을 넘는다. 다시 완만한 내림길 뒤에 가파른 오름막을 오르면서 늘 정맥에서 듣기 좋았던 산새에 지저귐도 오늘은 다 시끄러운 소리로 들릴 뿐...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서 열차의 기적소리가 탄지재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13시 55분 넓은 헬기장이 있는 249봉에서 다시 잡목숲길로 급경사에 내리막을 내려서면서 벌 때에 공격을 받는다. 다행이 나는 괜찮았지만 대원들 대부분이 벌에 쏘여 통증을 호소한다. 임도에 이어 2번 국도 탄지재에 내려선다. 모두가 탈진 직전에 모습들이다.

14시 10분 조그마한 표지석이 서있는 해발 100m에 탄지재 고갯마루는 진월면과 진상면 경계 표지와 성원산업(주) 레미콘 공장 입관판이 서있다. 탄지재에서 대원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호남석해공업(주)를 찾아가 직원에게 물을 좀 얻자고 부탁을 했더니 들어오면 안 된다고 나가란다. 사정을 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여서 정맥꾼들은 돌아서고 말았다. 세상에 인심도 고약하지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되었나 눈물이 날 정도다. 다시 탄지재로 되돌아서다 산장 입간판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산장 마당에 수도꼭지가 대원들은 반갑다.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셨는지 모른다. 떨어져 있는 살구 열매로 허기를 채운다.

14시 50분 탄지재를 뒤로 임도를 따르다가 감나무밭을 통과한다. 진달래나무과 중키에 소나무가 이어지는 정맥길은 고도를 높이면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름길에 왼쪽으로 갈림길을 통과하고 320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2분 가량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오르고 내림이 이어진다. 힘이 떨어져 자연히 휴식도 잦아지고 불암산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졸음도 밀려온다. 싸리나무, 억새풀이 엉켜있는 오름막길엔 명감덩굴도 덩달아 지친 정맥꾼을 붙잡는다.

15시 48시 불암산(△431.3m)정상에 오른다. 삼각점(1985 재설 ,하동 452)이 있고 주위로 억새풀과 싸리나무가 둘러쳐진 최고의 전망을 선사하는 곳이다. 북동쪽으로 지리산 능선으로 시작하여 섬진강 하구며 가깝게는 서쪽 아래로 수어댐에 이르기까지 그 멋진 광경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난 지금 너무나 지쳐있었다. 대원들은 저 많은 봉우리를 발로 걸어서 이곳까지 넘어왔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며 다리품에 대가를 신기하게 여긴다.

하산길이 시작된다. 하루종일 잡목을 헤치느라 진을 뺀 대원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10분 가량 내려왔을 때 선바위(?) 모습의 바위를 통과하고 다시 얼마를 걸었을까? 거대한 바위가 두 개 우뚝 솟아있는 능선을 지나면서 철조망을 넘는다.

16시 50분 고도가 230m을 가리키는 마지막 봉에 올랐다가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다. 임도를 만난다.

16시 55분 다압면계 표지판이 서있는 2차선 포장도로 토끼재에 내려선다. 손톱만큼 남은 체력으로 차에 오른다.

호된 신고식을 끝낸 호남정맥 일구간 종주 첫날을 끝내고 진상면 소재 거북장에서 하루 밤을 보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자야하는데... 잠을 자야지... 자정을 넘긴다.


호남정맥 종주 일구간 (둘째날)

종주일자 : 2001년 6월 29일
종주구간 : 토끼재 ∼ 쫓비산 ∼ 백운산 ∼ 한재
날 씨 : 안개/비

종 주 자 :
김종국, 김태웅, 나종학, 임웅규, 박덕주, 허문선, 구용회, 류민형, 최경섭, 이영주, 윤정길, 김종범, 함철호,(13명)

도상거리 : 15.25km
토끼재 - 2.5km - 쯫비산 - 2.5km - 갈미봉 - 2.4km - 헬기장(511.1봉) - 2.35km - 매봉 - 1.9km - 1030봉 - 1.35km - 백운산 - 2.25km - 한재

종주일정
6월 29일
05:30/토끼재(×210m) -- 05:57/330봉(×330m) -- 06:00/380봉(×380m) -- 06:23/490봉
(×490m) -- 07:06/쯫비산(△536.5m) -- 08:35/갈미봉(△519.8m) -- 09:02/천황재 -- 09:49/헬기장(△511.1m) -- 10:16/중식후출발 -- 11:36/매봉(△867.4m) -- 12:31/헬기장
(×960m) -- 12:40/1030봉(×1030m) -- 13:10/백운산(△1218m) -- 13:35/신선대삼거리 -- 14:15/한재(×860m) -- 14:40/연습림입구
산행시간 : 9시간 10분(휴식시간 포함)


'비'가 주는 보이지 않는 무게까지 짊어진 정맥꾼들
눈을 감고 있지만 잠을 포기한지는 오래다. 다행히 코고는 대원은 없어도 간간이 이를 가는 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헤드램프를 몇 번 켜서 시간을 확인하다보니 일어날 시간인 새벽 3시 가 다가 왔다. 20여분은 나만의 시간, 3시 30분 대원들을 깨운다.

05시가 좀 넘어 하룻밤을 보낸 거북장을 출발하여 토끼재에 오르니 안개가 자욱하다. 다압면과 진상면 경계인 토끼재에는 느랭이골 자연휴향림이 7월 개장한다고 21세기 환경동호회에서 설치한 현수막이 고갯마루에 가로 걸려있다.

05시 30분 고도 210m에 토끼재에서 느랭이골휴향림으로 오르는 진입로 왼쪽으로 절개지를 기어올라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은 잡목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파른 오르막이다. 선명한 산길이지만 아직 정맥꾼들의 리본을 확인하지 못한 채 가파르게 오르던 오르막이 펑퍼짐한 묘지를 만나면서 산길이 순해지는 장송 숲에는 가시거리가 30- 40m 정도의 산안개가 능선을 메우고 있다.

05시 57분 펑퍼짐한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에 만나는 감나무 몇 그루를 지나 1분 뒤 다시 완만한 오름길에 철망으로 이어진 울타리를 따라간다. 뒤에서 누군가가 "어젠 쌍놈길이고 오늘은 양반길이네" 하긴 이정도면 양반길이지 어젠 너무했어 키 작은 진달래밭과 잡목들 틈에 명감덩굴이며 칡넝쿨이 늘어져 있어 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정맥길을 헤쳐나가야 했고, 찜통 더위에 물까지 바닥이 났으니 지난 일이지만 지금 이 대열에 끼어 있는 내가 신통하기만 하다. 잠시 가팔라지는 듯하다가 완만해 지는 장송숲길은 마치 솔잎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다.

06시 380봉을 넘어서는데 오른쪽으로 계곡이 가까이 있는지 물소리가 새벽공기를 타고 청아하게 들려온다. 쉼 없는 물소리에 마음 투명하게 가라앉히고 정맥꾼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가지가 축 늘어진 소나무 한 그루의 멋진 폼을 감상하며 이어지던 정맥길이 가파르게 오르다가 새끼 두꺼비 한 마리가 눈에 띄는 고도계가 430m을 가리키는 봉우리(06:15)에서 오르내림이 이어지다가 갈림길을 만나 오른쪽(북동쪽)으로 서서히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오늘은 철쭉군락이 자주 나타난다. 숲속에 사랑싸움을 벌이는 아름다운 산새소리에 대원들에게 즐거움을 더한다.

06시 23분 능선분기점이다. 꽁꽁 숨어있던 리본을 처음 만난다. 덕유산악회 '산이 좋은 사람들'의 노란색 리본과 박성태씨 리본 그런데 분기점 오른쪽 방향으로 우리가 항상 믿고 따랐던 부산 건건산악회 리본이 선택을 요구하게 한다. 우린 왼쪽길을 선택하고 내려선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부산 건건산악회에 구간 하산지점인 것 같다.

지금까진 양반길이 이어졌는데 490봉을 내려서면서 안면을 바꾼다. 거미줄까지 합세하여 정맥꾼들을 괴롭힌다. 능서분기점인 또 하나의 490봉(06:47)은 암봉이다. 보고싶은 마음의 준과 희에 리본이 눈에 띤다. 그렇다면 건건산악회 + 준과 희 (?) 진달래군락을 헤쳐가며 오른다.

07시 6분 쯫비산(△536.5m) 정상이다. 삼각점을 확인한다. 쪽빛으로 물든 섬진강에 비친 쪽빛봉이 부르다보니 쫓비봉이 됐다나?) 그러나 안개 속에 숨어있으니 눈뜬장님과 진배없다.

좁은 쫓비산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 역시 진달래와 잡목들이 길을 막아 헤쳐나가며 때론 허리까지 꾸부린 채 걸어야 한다.

07시 16분 안부에 내려섰다 5분 가량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정맥은 다시 6분쯤 지나 비스듬히 누어있는 넓은 바위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가 형성된 정맥능선이 이어지는데 이후 군데군데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시야가 가린 정맥길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08시 9분 바위봉을 넘으면서 전망대바위에 서지만 역시 그림에 떡... 수직에 가까운 바위 지대를 조심조심 내려서니 다시 바위들이 이곳 저곳 널려있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안부에 내려섰다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에 모처럼 쭉쭉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숲길을 지난다. 정맥길에 버려져있는 영산 신씨와 창원 황씨 합장 묘에는 잡목들의 세상이다.

08시 35분 건설연구소에서 설치한 소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갈미봉(△519.8m)에 오른다. 갈미봉을 뒤로 내려서다가 서쪽 방향으로 뚝 떨어지는 철쭉과 참나무숲길은 돌을 쌓아놓은 흔적도 보이고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바위지대를 지나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정맥에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놀란 까마귀 때들에 울음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있다. 깊숙한 산속에서 듣는 까마귀 울음소리는...

09시 2분 천황재 인지 확인할 수 없는 소로길을 가로질러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잠시지만 모처럼 풀밭을 만나게 되고 옛 묘지 터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09시 32분 고만고만한 봉 여러 개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아름드리 소나무숲을 통과하는데 왼쪽으로 검게 올려다 보이는 봉이 아마 매봉 인 듯하다. 정맥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차례 뚝 떨어진다.

09시 38분 안부에서 소나무와 참나무 숲 사이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옛 무덤 터를 지나면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장송숲길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 나간다.

09시 49분 넓은 헬기장이다. 삼각점(1985년 복구 하동 305)을 확인한다. 삼각점이 있다면 표고가 511.1m란 말인가 매봉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았던 대원들의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다. 내친김에 이르지만 점심식사나 하고 가자고 둘러앉는다.

10시 16분 헬기장에서 왼쪽(서쪽)으로 내려선다. 뚝 떨어지던 내리막길이 안부에서 한차례 가파르게 오르다가 완만해 지면서 호남정맥 단독종주자로 보이는 심원기의 주홍색 리본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대단한 사람이야? 정맥은 백두대간 종주보다 갑절에 힘이 드는데...

10시 36분 고도를 높여가던 정맥은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서쪽)으로 잡목 숲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데 아름드리 참나무가 보기 좋다.

10시 45분 매봉이 아닌가 하고 올라서 보지만 실망 뿐 능선에는 멋쟁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빗속에 청승맞게 울어대는 매미는 정맥꾼 마저 서글픈 마음 어쩔 수가 없다. 한 발 한발 힘겹게 고도를 높이며 밋밋한 봉에 오르지만 또 매봉은 아닌 것 같다.

11시 밋밋한 봉인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북서쪽)으로 가파른 오르막이다. 다시 한 발 한발 오르는 힘겨운 오르막을 오르면서 "매봉아 어디에 있는지 나와 보렴" 하지만 그 후에도 30분을 더 올랐을 때 매봉은 슬그머니 우리 앞에 나타났다. 능선분기점에서(11:25) 왼쪽으로 한번 더 방향을 틀며 한동안 완만한 오름길 뒤에 올라 선 곳이 진짜 매봉이란다.

11시 36분 헬기장이 있는 매봉 정상은 억새풀이 가득하고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둘러친 867.4m에 막힘이 없는 봉우리지만 여전히 시야가 가려있다. 삼각점(1986년 재설 하동 421)을 확인한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잠시 다리쉼을 하면 허기를 메운다.

11시 46분 한차례 뚝 떨어지다 평탄한 능선길에서 만나는 썩어 부러진 참나무는 대원들을 각개 전투 훈련장이 되어주는데 이젠 그만 좀 내려갔으면 하지만 또 뚝 떨어지고 다시 올랐다가 뚝 떨어지더니 안부에서(12:00) 길고 긴 오름길이 이어진다. 변함 없이 길 안내자가 되어주는 부산 건건산악회에 노란색 리본을 따라간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지 "부산 건건산악회 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그리고 금북정맥에서도 고마웠는데 이번 호남정맥에서도 역시 부산 건건산악회가 최고란 말이야...

12시 20분 헬기장이다. 범위가 좁은 헬기장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는데 산안개가 물밀 듯이 계곡을 밀고 피어오른다. 장관이다. 다시 10여분간을 힘겹게 올라서니 완만한 능선길이 기다린다. 빗줄기가 약해졌지만 나무에서는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고 산안개가 가득히 머물러있는 오름길을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는 대원들의 '비'가 주는 보이지 않는 무게까지 짊어진 뒷모습을 보며 꼭 이렇게 해야되나 반문하지만 답변은 "해야지"

12시 31분 960봉 헬기장에 오른다. 960봉에 서면서 구름에 가려있던 백운산이 조금 그 모습을 들어낸다. 능선분기점인 960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빽빽이 들어차 있는 싸리나무를 헤치며 걷는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산허리를 휘어 감고 흘러가는 구름, 억새풀과 싸리나무, 이런 것들이 오늘 정맥을 지키고 있는데 스치듯 지나가는 정맥꾼들은 누구인가? 잔디밭 특공대...

12시 37분 왼쪽에서 올라오는 일반등산로와 만난다. 다시 3분 뒤인 12시 40분 1030봉 헬기장이다. 하얀꽃을 피운 나무에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한차례 또 뚝 떨어졌다 또 다른 헬기장에 발을 올려놓는다. 1115봉인가 보다. 억새풀과 잡풀들에 세상이다. 오른쪽으로 원을 돌 듯이 오른다. 먼저 올라간 대원들의 정상에서의 환희 소리, 아니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 걷는다.

13시 10분 백운산 정상에 선다. 높이가 1218m, 이정표에는 억불봉까지 6km, 상백운암까지 2.3km, 용소까지 5.2km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각점(1991년 재설 하동 13)이 있다. 다시 왼쪽으로 바위를 기어올라 진짜 정상에 선다.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다.

한반도의 남단 중앙부에 우뚝 솟은 백운산은 봉황, 돼지, 여우의 세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한 영산 이란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 벌을 힘차게 뻗어 내리는 호남정맥을 완성하고, 섬진강 550리 물길을 갈무리한다. 또한, 900여종이 넘는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 식물의 보고로서 주목을 받고 있단다.

백운산에는 3가지 정기가 있다 한다. 봉황의 정기, 여우의 정기, 돼지의 정기가 그것인데 봉황의 정기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초계 최씨 시조 최산두(崔山斗.1483-?)가 받았고, 여우의 정기는 몽고의 지배를 받던 고려조 때 옥룡 부락에서 태어난 월애라는 처녀가 받았다 하는데 월애는 13세기 중엽 몽고로 공납(貢納)당하여 몽고 왕의 총애를 받고 권세를 누리면서 친정 고려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다. 한데 나머지 돼지의 정기만은 아직 받은 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백운산의 고로쇠 약수를 말해야지, 도솔봉 새재 아래 계곡 성불고랑을 비롯한 곳곳에 폭넓게 고로쇠나무가 자생하고 있어서 지리산, 조계산과 함께 고로쇠 약수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백운산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도 주목받는 곳이다. 1983년에는 정상 주변 10㎢가 자연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백운산은 10여km에 달하는 4개의 능선이 남과 동으로 흘러내리면서 4개의 깊은 계곡(성불(成 佛), 동곡(東谷), 어치(於峙), 금천(錦川))을 만들어 놓고 있고 한라산 다음으로 가장 다양한 식물의 종류를 보유하고 있으며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900종의 식물이 천혜의 기후 여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른봄이면 신비의 약수인 백운산 고로쇠가 흘러내리고 백년묵은 산삼이 종종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며, 백운란, 백운배, 배운쇠물푸레, 백운기름나무, 나도승마, 털노박덩굴, 허어리 등 희귀식물을 품고 있는 백운산에 올랐으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둘러 정상을 내려선다. 체온을 빼앗기지 말아야지 어서 내려가자, 밧줄이 기다리고 있다. 바윗길이 미끄럽지만 조심하면 되겠지, 밧줄지대를 벗어나면서 우의로 갈라 입는다.

13시 35분 신선대 삼거리에서 정맥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바윗길 또 철계단, 산죽길도 나타나는 선명하게 나있는 길을 따른다. 빗길이라 미끄러워서 그렇지 정말 멋진 정맥길인데 아쉽다.

14시 2분 헬기장을 통과한다. 새소리가 남다른 능선길은 급경사에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듯 멋 자랑을 하는 숲길은 끝일 줄 모르고 비는 내린다.

14시 15분 이정표가 서있는 고도 860m의 한재에 내려선다. 해냈어 어제는 정말 힘들었는데 아마 산을 타기 시작하고 처음이었지 그렇게 힘들기는 그러나 이겨냈어 이제 차를 만나는 일만 남았지...

한재에서 왼쪽으로 이영주씨가 부착해 놓은 분홍색 잔디밭 리본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부른다. 잘못했으면 반대방향으로 내려갈 뻔했지...

임도를 따라 내려선다. 비가 오면 어떠냐! 물소리와 빗소리가 어느새 벗이 되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앞서가는 임웅규선배와 윤정길씨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후미도 거리 차이가 있는지 몇 번이고 "잔디"하고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14시 40분 서울대학교 부속 남부연습림 입간판이 붙어있는 출입구를 빠져나오면서 호남정맥 1구간을 마친다.

힘들었던 시간도 지금 이 시간 소중하고도 즐거운 추억거리를 남겨 놓은 채... 서울가면서 잠이나 푹 자야지...


호남정맥 종주 이구간(첫날)

종주일자 : 2001년 8월 28 ∼ 29일
종주구간 : 한재 ∼ 도솔봉 ∼ 죽정치
날 씨 : 맑음

종 주 자 :
김종국, 김태웅, 나종학, 구용회, 류민형, 최경섭, 이영주, 윤정길, 김종범, 함철호,김호택(11명)

도상거리
한재 - 0.9 - 따리봉 - 0.85 - 참샘이재 - 1.15 - 도솔봉 - 2.35 - 새재 - 0.62 - 형제봉 - 3.13 - 월출재 - 860봉 - 1.75 - 미사치 - 2.25 - 갓꼬리봉 - 1.5 - 마당재 - 1.5 - 수리봉 - 0.75 - 죽정치 (18.5.km)

종주일정
8월 29일
06:00/한재 -- 06:50/따리봉(△1127.1m) -- 07:30/참샘이재 -- 07:47/도솔봉(△1123.4m) -- 08:27/890봉(×890m) -- 08:50/새재 -- 09:01/형제봉(△861.3m) -- 10:00/865번 지방도 -- 11:16/859.9봉(△859.9m) -- 12:32/미사치 -- 13:00/708봉(×708m) -- 13:43/갓꼬리봉 (△687.6m) -- 14:38/마당치 -- 15:17/수리봉(△508m) -- 15:55/죽청치 (9시간 55분)

거미줄 같은 인연을 엮으며
8월 28일
‘보여주는’소리와 '들려주는’소리(동편제, 서편제)를 동서로 나누어 놓은 산줄기 호남정맥, 오늘은 그곳을 찾아 떠나는 날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호남정맥은 풍광이 수려하고 사람들의 삶과 뿌리가 있는 곳,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의 산줄기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우리가 정맥을 만나 거미줄 같은 인연을 엮으며 목적지를 향해 힘겨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내리고 거친 바윗길을 매달리며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가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사는 인생의 여정이 아닌가? 끝없는 여정, 길은 멀지만 우리는 가야할 곳이 있기에 아무리 먼 길이어도, 아무리 거친 길이라 해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정맥을 걷는다는 것이 고행과 고난의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머님의 포근한 품속이기도 합니다. 힘겨운 오름길이지만 봉우리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통쾌함은 그리고 목적지에 닿았을 때에 정맥꾼들은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가슴속 깊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드는 것입니다.

2박 3일간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챙깁니다. 떠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정맥꾼들이 모여들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가야지, 보고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얼굴을 들어내겠지...

캐나다 록키산맥 트래킹을 다녀와서 여독이 풀리지 않은 박덕주선배 부부와 임웅규선배가 빠지고 1구간 종주를 회사 일로 참석 못했던 김호택씨가 모습을 보인다. 출발시간, 돈버는 것 외에 못하는 것이 없는 산꾼 중에 산꾼 김종국대장이 직접 운전하는 21승 소형버스는 서울시가지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8월 30일
04시 전라남도 구레군 간전면 운천리에 있는 나룻터산장(782-0833)에서 내려다보이는 강 건너 가로등이 비치는 곳이 그 유명한 경상남도 화개면 탐리에 있는 화개장터다. 조영남씨의 화개장터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아침밥을 기다린다.

05시 나루터산장 주인 서인석씨의 도움으로 한재를 향해 굽이굽이 돌아 중한치마을을 통과한다. 중한치마을은 조선 중엽(1670년경) 나주 임씨와 파평 윤씨가 현 중대천을 거슬러 오르다 윤씨는 지금의 거석에 머물고 임씨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점차 마을세가 번창하게 되자 후손들이 인근으로 이주하여 삼한재, 도장동 등의 별촌을 형성하였으나 동일 마을로 운영되어 오고 있으며 재에 오르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중한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1948년 여순 반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을이 전소되고 공비의 침입으로 주민이 소개되었다가 1954년 복원되었으며 1969년 독립가옥집단화로 상한치는 폐촌되고 평지 마을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05시 55 백운산 준령을 넘어 광양과 왕래되어 오던 유일한 육로인 이 재(치) 표고(860m)가 높고 북향으로 되어 있어 추위가 심하다 하여 추운 고개란 뜻에서 한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한재에 도착한다.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갱신조사구 표지기가 달린 잣나무 조림지인 한재에는 광양 백운산 생태계 보호지역이란 영산강 환경관리청에서 세운 금속 안내판과 이정표(백운산:2.7km, 다압하천:8km)가 있다. 북쪽으로 지리산이 능선이 아침을 열고있다.

06시 한재를 뒤로 아름드리 적송군락을 따라 이어지는 넓은 등산로에는 분홍색의 이름 모를 야생화가 대원들을 맞는다. 정맥은 참나무숲을 만나면서 가팔라지고 산길은 군데군데 바위지대를 통과하여 서울대학교 남부연습림 위치표가 있는 작은 언덕을 넘어 오르내림이 이어지면서 동녘에 어느새 태양이 솟아오르고, 지리산 연릉이 시야에 들어온다. 천왕봉, 반야봉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06시 36분 가파른 산죽군락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인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잠시나마 싸리나무를 헤치며 과외공부를 하고 되돌아와 오른쪽(북서)으로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올라선 봉우리가 따리봉(△1127.1m)이다.

06시 50분 백운산 금속안내판에 서있는 따리봉 암봉에 올라서면서 느끼는 시원한 맛! 얼린 맥주 맛에 비할까? 북쪽으로 지리산이 하늘금을 긋고 있고, 지난번 빗속에 내려섰던 백운산이 그리고 가야할 도솔봉이 너무나도 우뚝 솟아 보인다. 참나무숲 사이로 진달래와 억새가 어우러진 따리봉을 내려서면서 뚝 떨어지는 바윗길 군데군데에 철계단이 설치되어있다. 야생화가 꽃길을 열고있는 내리막길을 내려와 산죽군락의 날등을 통과하며 철계단 앞에서니 다시 한번 지리산 연봉이 다가와 정맥꾼들을 즐겁게 한다. 군데군데 산허리를 감사고 있는 구름바다 역시 보기 좋다.

07시 13분 급경사에 내림길 뒤에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국수나무, 떡갈나무, 철쭉군락을 따라 억새밭에 헬기장에서 잠시 내려선 곳이 참샘이재다. 다시 오름길 싸리나무와 억새군락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어느새 따리봉이 너무나 멀어진 느낌이다.

07시 17분 980봉 헬기장이다. 시야가 좋은 980봉에서 보는 백운산의 바위봉과 연릉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산마을, 키가 넘는 싸리나무를 헤치며 내려선다. 물푸레나무군락과 고로쇠나무 옆으로 큰 물통도 보이는 힘겨운 오르막을 정맥꾼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쉬어가며 오른다. "산사랑 인간사랑"이란 글귀가 쓰여진 하얀색 리본이 눈에 띈다.

07시 47분 규모가 적은 헬기장과 백운산 안내도가 서 있는 도솔봉(△1123.4m)에 오른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북쪽으로 지리산 연릉이 동쪽으로 지나온 따리봉과 그 옆으로 백운산, 남쪽으로 광양제철소의 굴뚝도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가야할 호남정맥 연릉들이 용트림 치듯 뻗어나간 모습에 정맥꾼들은 환호성을 친다. 삼각점(하동, 308 1985년 재설)을 확인한다.

07시 55분 도솔봉을 뒤로 한차례 뚝 떨어지다가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잡목에 가려 희미한 헬기장을 통과하며 시원한 바람은 정맥꾼들은 반갑다. 바람 한 점 없는 정맥길을 내내 걸었던 지난 여름을 생각해 보니 오늘은 이게 웬 떡이냐 싶다. 잡목을 헤치며 내리막길은 길게 그리고 오르막길은 짧게 연이어 이어진다.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바위지대를 내려선다. 참나무 숲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놀란 새들이 야단들이다.

08시 27분 리본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능선분기점 890봉이다. 왼쪽으로 일반등산로가 선명하다. 성불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으며 비교적 아담한 규모에 속하는 성불계곡은 곳곳에 평평한 바위가 많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수림이 어우러져 좋은 경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는 성불사, 형제의병장사당, 백운저수지, 드림원관광농원이 있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오른쪽(서)으로 내려서는 길은 한차례 뚝 떨어지다가 정맥 상에서 다시 만나는 철계단을 통과하며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08시 50분 새재(810m)에 내려선다. 왼쪽으로 성불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는 길이 선명하게 나있다. 새재를 뒤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서 야생화의 천국이다. 보라색, 분홍색 정맥에서 만나는 그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7분 후 형제봉 인줄 알고 올라선 푸른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 무명봉...

09시 1분 잠시 내려섰다 올라선 곳이 첫 번째 형제봉이고, 오른쪽으로 급사면을 내려섰다 철계단을 올라선 곳이 바위봉인 두 번째 형제봉(△861.3)이다. 시력만큼 볼 수 있는 조망, 앞으로 가야할 859.9봉이 잡힐듯하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은 가야 된다는 것도 잊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자연에 빠져 있었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내려서는 길에 왼쪽으로 갈림길을 통과하고, 곧이어 능선상에서 삼각점(하동, 426번 85년 재설)을 만난다. 넓은 구릉지대를 통과하여 내려선 곳이 십자로 안부다.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노랑색, 분홍색, 주황색, 흰색, 보라색의 야생화가 서로 뽐내며 정맥꾼들을 맞는다. 한쪽엔 엉컹키도 선을 보이고, 원추리도 꽃잎을 들고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웃고 있다.

09시 22분 금남정맥에서도 본 듯한 부부팀의 종주리본을 보며 진달래와 잡목을 헤치고 올라선 무명봉에셔 서북방향으로 내려서는 평탄한 내림길을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산죽군락과 진달래며 철쭉이 성가시게 하는 산허리길을 지나 1분 가량 키가 넘는 조릿대숲을 가르며 헤쳐나가야 한다. 다시 쓰러진 나무를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고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지면서 왼쪽으로 월출재로 오르는 비포장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바위봉을 우회한다.

09시 56분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북서)으로 다시 구불구불 노송들이 푸른 모습을 잃어 가는 봉을 넘어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잡목에 고문을 당하는 801봉에 오른다. 801봉을 뒤로 내려서는 길은 미끄러지듯이 내려서면서 이어진다.

10시 1970년 865번 지방도 개설공사로 구례군 간전면에서 용수동을 경유 월출봉을 넘어 광양과 교통이 이어졌다는 월출재(700m)에 내려선다.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임도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엄연한 비포장 지방도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맥꾼들은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도로를 따르다 내려선 곳엔 계곡에 물이 흐른다. 물을 건너 진행하다가 리본을 만나면 리본을 따라 역으로 따르기로 하고 능선에 붙는다. 머지 않은 곳에서 정맥을 만나고 반대 방향으로 따라 올라서니 월출재로 오르는 도로가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우리가 내려섰던 곳에서 뒤돌아 정맥길을 이어가지만 찜찜한 마음 버릴 수가 없다. 도로와 능선이 맞물려 너무나 독도가 까다로운 구간이다.

10시 35분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한차례 뚝 떨어졌다 가파르게 올라 봉을 넘으면서 이어지는 평탄한 정맥길엔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처량하게 들린다. 억새밭의 헬기장(표고 710m)에서 평탄한 날등을 타고 이어지고 철쭉군락과 싸리나무 숲을 헤치며 힘겹게 올라선 830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평탄하게 정맥길은 이어간다.

11시 16분 삼각점(하동, 24번 91년 재설)이 있는 859.9봉이다. 좁은 공터에 시야가 가려있다. 허기를 메우기 위해 그늘을 찾는다. 20여분간의 식사를 마치고 올라선 능선분기점인 봉우리엔 "환영 잔디밭산악회 호남정맥 종주대"라고 쓰여져 있는 빛 바랜 분홍색의 리본이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굴까? 대원들은 반갑기도 하지만 궁금하다. 우리보다 앞서가며 부착해 놓은 산우는 누구일까?

11시 45분 능선분기점에서 이다. 그대로 직진하면 계족산과 비봉산(555.3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정맥은 좋은 길을 버리고 오른쪽(서)으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을 철쭉군락을 헤치며 뚝 떨어지다가 다시 분기점(12:00)에서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북서) 비탈길을 내려서야 한다. 몇 개의 봉을 오르내리며 층층나무와 철쭉군락을 지나 도로공사를 하면서 임시로 설치한 측량점을 만나고 철사에 걸려 넘어질 번하며 내려서면서 송전탑을 통과한다. 갓꼬리봉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너무나 가팔라 보여 걱정이 앞선다. 억새풀이 가득한 헬기장이다. 여기서 보는 708봉이 너무나 당당해 보인다.

12시 32분 칡넝쿨과 싸리나무를 헤치고 내려선 곳이 잔디가 곱게 깔린 십자로 안부 미사치(440m)다. 왼쪽으로 계족산에서 발원한 정혜사 계곡을 비롯하여 갓꼬리봉, 수리봉 등에서 뻗어 내린 계류가 모여 이루어진 계곡이 청소골이다. 약3Km의 말굽 같은 능선에 둘러싸인 골짜기 청소골계곡은 물이 맑고 주위환경이 깨끗하여 많은 시민들의 하계 휴양소가 되고 있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보물 제804호가 소재하고 있는 정혜사가 있으며, 오른쪽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은 최근 산림청으로부터 산촌 종합개발 사업 대상 마을로 확정되어 버섯, 산채등 지역 특산물 개발 및 산촌 휴양지 조성 등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생활 환경 개선은 물론 소득 기반이 조성되는 산촌으로 가꾸어 질 예정이란다. 전남 순천시와 광양시의 경계인 계족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정혜사는 신라 시대에 혜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서 고려 때 원감국사 충지(1266~1292년)가 참선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때는 대찰로서 이름났지만 여러 차례의 난을 겪으면서 규모가 즐어들었으며 귀중품들도 많이 잃었다. 정혜사는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을 끼고 있어서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가을 단풍도 매혹적이다. 그러나 상류 쪽 계곡은 철조망으로 막아 놓아 접근할 수 없으며 정혜사 진입로 중에 550m쯤은 일반차량의 통행이 제한된다. 조용히 수도하는 사찰이기 때문이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오르는 길이 너무나 가파르다. 키를 넘는 싸리나무와 잡목을 헤치며 코가 땅에 닿을 것 같은 오르막을 오르는 길은 바람도 불지 않아 땀은 비 오듯하고 멈추기라도 하면 다시는 못 오를 것 같은 오르막을 한 발 한발 힘겹게 오른다.

12시 55분 전망대 바위에 올라선다. 859.9봉에서 지나온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잘못 내려설 번했던 능선분기점도 선명하다. 지리산 연릉 그런데 채석장인지 산허리를 파헤쳐 놓아 보기 흉하다. 다시 힘겹게 올라선 봉우리가 708봉이다. 시야가 가려있다. 갓꼬리봉을 향한다.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선 곳엔 싸리나무, 으름나무, 쥐똥나무, 억새 천국이고 잡목을 헤치며 오른다.

13시 10분 610봉이다. 이제 머지않아 갓꼬리봉에 오를 수 가있다. 갓꼬리봉만 넘으며 오늘 종주도 무난히 마칠 것 같아 모두들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5분 뒤 올라선 봉우리가 갓꼬리봉 이겠지 하고 열심히 걸었는데 갓꼬리봉이 아니란다. 정매꾼들은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다시 내려섰다 암릉지대를 넘어서며 평탄한 능선길에 들어서니 숲에 가려있던 시야가 터진다. 수직의 암릉을 걷는다. 바위에 붙어사는 부처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가며 바위지대를 통과하여 봉에 오르지만 또 다시 내림길, 내림길은 다시 오름을 뜻하기에 내림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13시 43분 산불초소가 보인다. 갓꼬리봉(△687.6m)에 오른다. 갓꼬리봉은 사료에 처음 보이는 서면의 명칭은 '승평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야가 가려있다. 삼각점(구례, 313번 85년 복구)을 확인한다. 정상에는 목포 푸른산악회, 광주 교육대한산악회, 전주 산벗들의 마르금잇기, 포항제철 덜타산악회, 나도산우회등 호남정맥 종주리본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마치 리본들의 전시회장을 방불케 한다. 차라리 군데군데 필요한 구간에 달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에 순천시가지의 삘딩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순천시를 남북으로 가르며 용트림 치듯 뻗어나가는 정맥능선이 시야에 펼쳐진다. 송치로 오르는 도로상의 콘크리트 구조물도 확인할 수가 있다.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내리막길을 지나 수직에 가까운 암벽구간엔 밧줄을 설치되어있어 잡고 내려설 수가 있다. 금북에서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칡넝쿨이 보라색 꽃을 피우고 꽃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미운 놈이 잘 보아달라는 것인가? 한길이나 넘는 싸리나무와 억새밭을 헤치다보니 엉뚱한 길로 들게되어 확인하며 진행한다. "앞 잔디", "뒤 잔디" "금잔디" 우리는 모두 잔디가족...

14시 10분 안부에 내려섰다 조망이 트이는 바위봉을 넘어 630봉 헬기장을 통과한다. 630봉을 내려서는 길도 역시 싸리나무와 억새가 시야를 가린다. 거기에다 미운 놈이 또 발목을 잡는다. 힘겹게 방해꾼들을 뿌리치고 나서니 모처럼 길이 트이기 시작하며 한차례 뚝 떨어지는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잡목들이 성가시게 한다. "아이쿠"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른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김종범씨가 "어떠세요"하고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다시 뚝 떨어지며 내려서는 길에 능선 좌우로 임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의 종착지 죽청치 같다.

14시 38분 마당재(430m)를 통과한다. 측백나무군락지다. 다시 오르는 길에 부산 명승산악회 리본이 반긴다. 금북정맥 은봉산 침투 작전시 보았던 리본이다. 백두대간과 정맥 종주일지가 기록된 리본이다. 작은 언덕을 넘어 한차례 철쭉터널을 헤치며 가파르게 올라서서 넓은 반석을 지나 고도계가 500m을 가리키는 봉에 오른다.

14시 53분 500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면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모처럼 푸른 소나무 숲을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정맥엔 여전히 제 버릇 남 못 주는 명감덩굴과 산딸기 가시까지 가세하여 정맥꾼들을 괴롭힌다.

15시 17분 수리봉(△508m)에 오른다. 온통 칡넝쿨에 덮여있는 수리봉에 오르니 갈매봉(468m)라는 표지판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갈매봉(?) 468m(?)' 이상하다는 대원들, 그러나 또 다는 양철판에 "윤춘병 작사 박제윤 작곡의 어머니의 은혜' 가사가 적혀있어 대원들 모두가 노래를 부르며 동심으로 돌아가 본다. 뒤쳐졌던 대원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15시 40분 긴 휴식을 끝내고 수리봉을 내려선다. 발걸음이 가볍다. 참나무숲에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서있는 능선길이다. 완만한 구릉지대 오늘 힘겨웠던 종주길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정맥길이다.

15시 55분 죽정치 임도에 내려선다. 순천시 황전면 죽청리에서 서면 운평리를 잇는 임도로 공사가 준공 된지 얼마 안 되여 보인다. 죽청치 정상까지 올라온 소형버스로 청소리까지 내려서는 임도는 너무나 위험하다. 구불구불 이어지고, 패어나간 곳도 여러 곳이나 나타난다. 내일 어프로치 할 일이 걱정된다.

17시 30분 순천시 황전면 괴목리에 있는 오목회관(754-0048)에 짐을 내린다. 황전면은 '누랏'이라 부르던 본황과 황학하전의 명당이 있다고 전하는 황학에 황전이란 이름을 얻은 것 으로 생활권이 구나무장과 구례장으로 나뉜다. 구례구역에 있는 용림을 비롯한 몇 마을이 구례 생활권이어서 삶이 다양하고 문화도 다양하다고 한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1994년 행정구역 통폐합의 의논이 들끓을 때에 섬진강 연안에 있는 구례 생활권의 주민들이 구례로 통합되었으면 하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단다. 17번 국도와 전라선이 지나는 괴목리에서 푸짐한 전라도 음식으로 저녁상을 받는다.


호남정맥 종주 이구간(둘째날)

종주일자 : 2001년 8월 30일
종주구간 : 죽청치 ∼ 송치 ∼ 바랑산 ∼ 노고치
날 씨 : 비 후 맑음

종 주 자 :
김종국, 김태웅, 구용회, 류민형, 최경섭, 이영주, 윤정길, 김종범, 함철호,김호택(10명)

도상거리 :
죽청치 - 1.25 - 장사굴재 - 1.35 - 농암산 - 0.65 - 550봉 - 2.5 - 송치 - 2 - 바랑산 - 4.75 - 문유산 갈림길 - 0.75 - 660봉 - 2.25 - 노고치(16.25km)

종주일정
8월 30일
06:05/수련원 -- 06:30/죽청치 -- 07:55/농암산(△476.2km) -- 08:55/병풍산 갈림길 -- 09:25(09:45)/ 송치 -- 10:45/바랑산(△619.6m) -- 11:36/임도 -- 12:28/두번째 임도 -- 13:15/660봉 -- 13:55/570봉 -- 14:25/노고치(8시간 20분 소요)

힘이 되어주는 지리 능선
깊은 잠에서 깨어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며 창문을 때린다. 구름만 낀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걱정이 앞선다. 죽청치로 오르는 어프로치가 문제다. 비포장 임도로 21승 소형버스가 접근을 해야하는데 비가 오다니 오늘은 마루금에 접근하다가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아 궁리 끝에 순천시 서면 운평리에 있는 승주청소년수련원을 확인하고 가장 어프로치가 가까울 것 같아 청소년수련원으로 향한다. 다행히 수련원 안내판에서 3등산로를 따라 죽청치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찾아낸다.

06시 05분 청소년수련원 뒤편에서 축청치까지 어프로치가 시작된다. 항상 그랬듯이 어프로치는 공짜로 산행해주는 것 같아 그리 기분이 좋은 편이 아닌데 비까지 내린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을씨년스러운 등산로를 따라 15분 가량 올라 제2베이스 지점을 통과하며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름길이 가팔라진다. 목포 노적봉산악회의 호남정맥 종주리본이 눈에 띈다.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힘을 얻은 대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06시 30분 죽청치(370m)에 올라 왼쪽으로 마루금에 들어서며 오르는 길목에 산불조심 표지와 등산로 표지가 부착되어있는 소나무숲길이다. 젖은 억새풀이 옷깃을 스치며 오르는 오르막길은 굵은 밧줄이 설치되어있는 바윗길을 만나며 '자연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들 자신을 속이는 자는 언제나 우리들이다.'라는 명언이 정맥길을 지키고 있다.

06시 40분 가파르게 능선에 올라서며 왼쪽으로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5분 가량 평탄하게 이어지던 정맥길은 봉우리를 오르기 직전 등산로를 버리고 오른쪽(북)으로 90도 각도로 방향을 바꾸며 오르는 듯하다가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덕유산악회 리본이 반기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터널 숲길이다. 어려움이 많았을 단독 종주자 남국철의 리본도 얼굴을 드러낸다. 선두에 서다보니 거미줄이 성가시다. 늘 그것도 마다하고 선두에 서던 이영주씨가 어제 너무 과음을 했는지 힘겨운 모습이다. "술하고 무슨 웬수가 졌나 조금만 마시지" 참지 못하고 늘 앞서던 이영주씨가 안쓰러워 보인다.

07시 15분 376봉에 올랐다가 다시 완만한 내림길에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고 능선에 유난히 측백나무가 많은 가운데 정맥이 이어지다가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섰다가 410봉으로 오르기 직전 밤나무 단지 뒤로 운해가 볼만하다. 왼쪽으로 벌목지대를 끼고 오르는데 벌목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는다. 대나무가 군데군데 하늘을 치솟아 보기 좋은 가파른 오르막은 바위지대를 통과하여 돌로 쌓아 넓게 자리잡은 묘지에 올라서면서 뒤돌아보니 멀리 순천시가지의 빌딩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철쭉군락을 헤쳐나가는데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린다.

07시 55분 가파르게 올라선 곳이 농암산(△476.2m)이다. 삼각점(구례, 464번 85년 재설)을 확인한다. 연이어 봉을 넘어 급경사의 내림막길에 만나는 층층바위(?) 정맥길이 완만해 지면서 참나무숲길이 꽉 들어찬 날 등을 타고 간다.

08시 18분 500봉을 넘어 550봉을 오르는 정맥길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 같은 바위지대를 오른다. 550봉을 오르기 직전 능선을 벗어나 왼쪽으로 우회로가 나있다. 550봉을 내려서는 길이 암벽이라 자연히 우회로가 형성된 것 같다. 언덕을 넘어서며 시야에 들어오는 멋진 운해에 정맥꾼들은 발걸음이 늦어지고 다시 단풍나무 군락을 가파르게 올라 좁은 날등으로 이어진다.

08시 26분 570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뚝 떨어지는데 한동안 리본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럴 때 정맥꾼들은 혹시나 길을 잘못들 지나 않았나 당황하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 다시 되돌아 갈림길에서 확인해보지만 역시 길은 하나뿐, 몇 십 분을 소비하고야 병풍산 갈림길을 찾을 수 있었다.

08시 55분 道자가 음각된 사각 작은 표석이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뚝 떨어지며 참나무가 가로 누어 길을 막는 정맥길엔 달리는 자동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며 이제 송치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가 있다. 을씨년스러운 고사목이 군데군데 서있고 멋진 노송들도 멋을 자랑하는 내리막길엔 낮은 포복을 원하는 쓰러진 소나무를 통과해야 한다.

09시 15분 임도와 숲길을 따라 8분쯤 걸어 깬 자갈을 깔아놓은 임도 삼거리를 만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마루금이 순천시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표고버섯 재배 교육장'이 차지하고 있어 출입금지구역이라 임도를 따라야 한다. 어느새 깨끗하게 목욕을 끝낸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높아만 보이고 정맥을 넘어가는 띠를 형성한 구름이 피어오르며 잠시나마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09시 25분 아스팔트도로를 만나면서 내려선 곳이 터널이 뚫려 지금은 버려진 옛길 송치다. 송치는 서면 학구에서 황전면 송치로 넘어가는 재로, 사람들은 '소련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소련재 동쪽 산봉우리에서 황전면 쪽에 있는 묘비엔 솔연치(率燕峙)로, 고갯마루에는 송치(松峙)라 새겨져 있는데 황전면의 마을을 송치(촌로들은 산골내기라 부름)라고도 한다. 재는 하나인데 그 이름은 여러 가지다. 난중일기에는 "정유년(1597) 4월 27일에 순천 송원에 이르다."란 기록이 있으며, 이수광은 승평지에 송현원(松峴院)이라 기록하였다.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 송원리(松元里)와 와요리(瓦要里)가 보인다. 재의 이름이 '솔재'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뜻 옮김을 해 송치와 송현으로 적었고, 좌측 서면 계곡에 나라에서 경영하던 원(院)을 설치하고 송원과 송현원으로 이름했지만, 사람들은 한자대로 부르지 않고 '솔원'이라 불렀던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솔원이 있는 재'란 뜻으로 '솔원재'라 부르면서 옛 이름인 '솔재'는 잊어버린 것 같다. 다만 문헌에 송치라고 기록되어 있어 도로를 확 포장하며 송치라 새겨 세운 것이란다. '솔원재'가 '소련재'로 바뀌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어째서 '소련재'라고 하였을까? 한국전쟁 때 소련군이 이 재를 넘어왔다고 '소련재'라고 하였을까 하고 무척 궁금해했다고 한다. 송치 아래로 전라선이 지나가고 있다.

09시 45분 정맥꾼들은 고갯마루에서 밧모섬 기도원에서 들려오는 찬송가를 들으며 허기를 채운다. 긴 휴식을 끝내고 칡넝쿨과 가시덩굴을 헤치면 숲길을 올라 콘크리트 참호를 가로지르면서 넓은 잔디밭에는 김해 김씨 묘를 시작으로 연이어 묘지들이 정맥을 지키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있는 가파른 오르막길에는 정맥의 꽃들이 오랜 가뭄 끝에 단비로 활기를 찾은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밧줄이 매어져 있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라 묘비 없는 묘 2기가 지키고 있는 억새밭 능선을 따라 콘크리트 참호를 통과하며 헬기장을 만난다.

10시 06분 송전탑이 서있는 안부에서 빼곡이 들어서 있는 참나무 숲엔 몇 그루에 소나무가 푸른빛을 잃어가고 있고 바위지대를 만나면서 이영주가 배가 허기가 진다고 바위에 주저앉는다.

10시 20분 거인산악회의 빛 바랜 리본이 눈에 띄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남동)으로 방향을 바꾸며 이어지다가 5분 후 다시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평탄한 정맥길은 꾼들이 말하는 양반길이다. 낙엽도 수북히 갈려있고 바람도 간간이 불어와 몸도 마음도 가볍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참나무와 소나무를 신기해하는 정맥꾼들은 봉을 하나 넘어 완만하게 내리막이 시작되면서 오른쪽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시커먼 봉우리가 바랑산 정상인 것 같다.

10시 32분 안부에 내려섰다 다시 완만한 오름길이 시작되며 극성을 부리는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왼지 서글프게 들려온다. 바위벽을 돌아 갈림길에서 조금 더 올라선 곳이 삼각점(구례, 28번 91년 재설)이 있는 고도가 619.6m 바랑산이다.

10시 45분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북으로 지리산 연릉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하늘금을 긋고있고 지나온 정맥능선 끝으로 도솔봉과 구름에 가려있는 백운산 저 멀고도 먼길을 어떻게 걸어왔나 대원들은 신기하기만 하다. 남쪽으로 향하던 정맥이 휘어지며 돌아 북쪽으로 뻗어 가는 정맥을 내려다 볼 수가 있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 뭉게 구름이 두둥실 떠돌고 있다.

10시 55분 정상을 되돌아 내려선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리막이 시작된다. 한차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다가 쉴만한 그늘을 만나 때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아내가 싸주던 도시락과는 달리 식당에서 준비한 점심은 불량이 적어 선지 15분만에 털고 일어나면서 바랑산을 오르면서 주저앉았던 류선배 일행과 합류한다. 헬기장을 통과한다. 싸리나무와 억새가 틈을 안주는 정맥길은 술래잡기나 하는 것처럼 앞선 대원들을 찾는 술래가 되여 길을 재촉하다가 참나무숲길이 나타나며 뚝 떨어지며 내려서는 길에 류선배가 빙 돌아가는 정맥길을 말 발톱에 비유한다. 중키의 소나무들이 비를 맞아 선지 더욱 푸르러 보인다.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고 류선배가 소리친다.

11시 18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서)으로 향하며 완만한 정맥길은 어느새 단풍으로 물들어오는 참나무를 만나면서 그것이 서러운지 울어대는 매미들... 진달래군락이 길을 막는다. 다시 갈림길이다. 왼쪽길을 선택한다. 평탄하게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많은 가지로 바람 잘날 없을 박달나무 한 그루를 뒤로 한차례 뚝 떨어지며 쓰레기 밭을 통과하여 임도에 내려선다.

11시 36분 임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미끄러운 절개지를 올라 잡목들이 빼곡한 오름길이 묘지를 지나며 가팔라진다. 류선배의 이율곡선생과 이항복과의 만남을 이야기로 들으며 힘겨움을 잊으려는 대원들은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내리막길이 완만해지며 소나무군락을 지난다.

12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리본을 확인하며 들어선다. 왼쪽길은 임도에서 오르는 길인 것 같다. 정맥길엔 밤송이가 군데군데 떨어져있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며 장송과 참나무가 어우러진 완만한 능선길이다. 펑퍼짐한 능선에는 바람도 불어와 한결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12시 17분 가파르게 좁은 680봉에 올라섰다 내려서면서 길은 넓지만 키 큰 참나무와 소나무가 시야를 가린 평탄한 능선길에서 앞섰던 구용회씨와 김호택씨가 그 넓은 땅을 독차지 한 채 편한 자세로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세 명씩 짝이 되어 정맥길을 찾아가는 잔디밭 특공대원들...

12시 28분 또 다시 임도를 가로지른다. 류민형선배가 허리가 잘린 산줄기가 안쓰러워 "산줄기도 두 동강, 나라도 남과 북"... 몇 그루의 소나무가 별난 모습으로 서있다. 오르막길이 아름드리 장송숲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소나무를 많이 볼 수가 있다. 각가지 모양을 한 소나무의 전시회장 같은 능선길이다.

12시 40분 희미한 갈림길이 나타나는 능선을 버리고 왼쪽으로 내려섰다 오르는 펑퍼짐한 능선길은 멧돼지의 군데군데 파헤쳐져 있고 다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잠시 지리산 연릉이 숲 사이로 지나간다. 정맥 능선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문유산(687.6m)을 다녀오려고 왼쪽으로 갈림길을 확인하며 오르지만 길이 나타나지 않는다. 문유산 갈림길을 놓쳐 버렸나? 갈림길을 못 보았는데...

13시 15분 돌로 쌓은 묘지를 만나며 조금 더 올라선 곳이 660봉이다. 한동안 리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혹시나 문유산인가 하고 뒤돌아 섰던 대원들을 부른다. 리본들이 보이지 않아 대원들을 애태울 때가 종종 있다. 당황할 때 만나는 리본은 정말 반갑지, 선답자들의 고마움을 모른다면 사람이 아니야... 뒤돌아보니 길을 놓쳐 오르지 못한 문유산이 빤히 내려다보인다. 660봉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지리산 연봉은 물론 북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이 용트림 치듯 이어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노라면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가슴 벅차 오른다. 616봉에서 570봉으로 활처럼 휘어지며 이어지는 정맥을 확인하며 내려선다.

철쭉밭으로 시작된 급경사에 내리막길은 헤쳐가며 내려서기조차 힘에 겹다. 빼곡이 들어찬 철쭉밭은 키를 넘고 때론 시야가 가려지며 대원들을 괴롭힌다. 뚝 떨어지며 철쭉밭을 빠져나오니 넓은 구릉지대, 616봉 갈림길에서 왼쪽(북서)으로 다시 뚝 떨어지다가 희미한 길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서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작은 봉을 넘는다. 묘지를 이장한 것 같은 공터를 지나 내려서는 바위길은 이끼가 끼어 미끄럽다. 희미한 길을 봉우리를 향해 방향을 잡으면서 쓰러진 나무들이 발목을 잡는다.

13시 55분 570봉이다. 능선분기점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정맥길을 내려서면서 노고치로 오르는 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머지 않았구나! 이번 구간도 무사히 해냈어... 왜 그럴까? 발길이 점점 무거워진다.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뚝 떨어진다. 사정없이 떨어지는 참나무와 소나무의 터널 숲길이다. 간혹 숲 사이로 푸른 하늘도 볼 수가 있지만 하루종일 힘들게 쌓아놓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헐어내는 기분이다. 대원들을 앞서 보내며 천천히 한 발 한발 조심하며 내려선다.

익산 백두산악회의 정맥따라 백두까지의 코팅한 표지기를 만나면서 경사길이 완만해지며 목장지대에 내려선다. 초원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철선을 따라 이어지는 정맥은 구슬픈 풀벌레가 가을의 길목에 서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가시넝쿨을 헤쳐가며 언덕에 서니 노고치를 오르는 도로가 가깝게 내려다보인다. 앞에 내려다보이는 덕암사에서 염불소리가 허허한 공간에 울려 퍼지고 멋진 소나무들을 울타리 삼아 철선을 고정시키기 위한 박힌 못이 왠지 아플 것 만 같아 너무하다는 생각아 든다. 사나운 개 가 달려들 듯이 맹렬히 짖어대는 농장 건물을 통과한다.

14시 25분 승주군에서 세운 표고 350m 표지석이 있는 857번 지방도 노고치에 내려선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분명 또 한 구간을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슴 가득히 뿌듯한 만족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호남정맥 종주 삼구간 (첫날)

종주일자 : 2001년 9월 25 ∼ 26일
종주구간 : 노고치 ∼ 오성산 ∼ 조계산 ∼ 굴목재
날 씨 : 맑음

종 주 자 :
김종국, 김태웅, 구용회, 류민형, 최경섭, 윤정길, 김종범,김호택(8명)

도상거리 : 14.5km(접속거리 : 2.2km)
노고치(350m) - 2.25 - 베틀재 - 0.75 - 740봉(×740m) - 1.4 - 닭재고개 - 0.35 - 유치산 (△530.2km) - 0.5 - 한방이재 - 2.85 - 오성산(△606,2km) - 1.35 - 접치(22번 국도) - 2.75 - 865봉 (×865m) - 0.75 - 조계산(△884.3m) - 1.5 - 굴목재(선암사)

종주일정
05:55/노고치 -- 06:49/베틀재 -- 07:18/740봉 -- 07:58/닭재고개 -- 08:11/유치산 -- 08:23/한방이재 -- 10:08/오성산 -- 10:45(11:15)/접치 -- 12:25/865봉 -- 12:45/조계산 (장군봉) -- 13:50/작은굴목재 -- 14:10/굴목재 -- 15:10/선암사
산행시간 ; 8시간 15분 (접속시간 : 40분)

9월 25일
정맥은 대부분 이를 에워싸고 있는 강줄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1정간 13정맥 중 함경북도 땅을 이루는 장백정간, 황해도 땅의 근간인 해서정맥, 그리고 전라도 땅을 지탱하는 호남정맥 이렇게 세 산줄기만 강줄기에서 이름을 따오지 않았을 뿐이다. 장백정간의 장백 이라는 말은 장백정간이 시작하는 봉우리인 장백산에서, 나머지는 그 정맥이 주로 지나는 지방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장백정간은 두만강 남쪽에, 해서정맥은 대동강 남쪽에, 호남정맥은 섬진강 서쪽에 있는데도 이렇게 별칭으로 부른 것은 대별되는 산줄기가 없어 서기도 하거니와 해서와 마찬가지로 호남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힘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정맥꾼들이 모여들 시간인 오후 10시 덕숭궁 앞은 예나 다름없이 전조등 불빛이 길을 가득 메우고,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도 분주하기만 하다. 다들 집으로 들어갈 시간에 우리는 이렇게 어딘가를 떠나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첫 구간을 14명으로 시작한 호남정맥 답사 팀이 한 두 명씩 빠지더니 오늘은 8명만이 승합차에 몸을 의지한 채 서울을 출발한다. 시가지는 밤이 깊었는데도 정체된 채 흐름이 더디더니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야 속력을 올릴 수가 있다. 피곤한 가운데에도 대원들을 위해 핸들을 굳게 잡은 김종국대장, 그리고 잠을 청해 보려는 대원들, 어느새 하루가 넘어간다.

9월 26일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조계산
순천시 승주읍과 월등면 경계 지점인 표지석이 서있는 해발 350m 노고치 고갯마루에는 지난번 이곳에 내려설 때도 목장집의 개 한 마리가 그렇게 짖어대더니 오늘도 여전히 정적을 깨며 허공을 가르고 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잠시 차에서 잠을 청하지만 여전히 잠을 잘 수가 없다.

05시55분 1m 높이의 옹벽을 넘어 절개지를 오르니 작은 소나무 사이로 비스듬히 길이나 있다. 아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맥은 장송 숲으로 구불구불 능선길이 이어지며 완만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옆 동네에서 새벽닭이 울고있고 흙무더기를 통과하며 길을 재촉한다.

06시 05분 413.2봉(△413.2m)에 오른다. 삼각점 (구례 458, 85년 재설) 확인하며 정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는 완만한 오름길에는 공터가 보이고 잡목 숲을 헤쳐야하는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5분 뒤 싸리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숲길을 만나며 희미한 임도를 가로지르고, 숲으로 빽빽한 정맥에는 새벽잠에서 깨어난 산새들이 아침인사를 한다. 펑퍼짐한 묘지를 통과하면서 한차례 내림길이다.

06시 25분 낙엽이 물들어오는 작은 계곡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580봉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서)으로 잠시 내려서는 길은 진달래밭 사이로 구절초가 얼굴을 내밀고, 진달래밭을 가르며 완만한 오름길은 가팔라지다가 허리길이 되면서 완만하게 정맥이 이어진다.

06시 35분 진달래밭이 가득한 620봉을 통과하고 이어 참나무 숲 아래로 억새가 무성한 630봉에 오르니 어느새 태양이 능선 위에 떠있다. 5분 가량 싸리나무와 억새밭을 헤치다가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 길로 진달래밭을 헤치면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내려서는데 삼나무군락지와 측백나무군락지가 연이어 나타난다.

06시 49분 희미한 십자로 안부 베틀재(550m)를 통과한다. 흙무더기 2기를 뒤로 완만하던 정맥길이 한차례 가파르게 바위지대를 오르는데 거대한 암벽이 가로막는다. 왼쪽으로 트래버스한다. 거대한 암벽을 우회하다가 암벽을 기어올라 바위 전망대에 서니 지나온 능선 좌우로 구름바다를 이루고 있다. 표고가 690m정도 되는 전망대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는 암릉을 우회한다.

07시 18분 한차례 암벽을 기어오르고 이어 완만한 능선길을 싸리나무와 진달래밭을 헤치며 올라선 곳이 헬기장이 있는 740봉이다. 768.8m의 희아산 남쪽봉인 740봉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정상을 오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 멋진 구름바다가 펼쳐져 마치 다도해 한가운데 올라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동쪽으로 문유산(687.6m)을 너머 가는 호남정맥, 서쪽으로 모후산(918.8m), 운월산 그리고 남으로 이어지는 정맥이 오성산을 세웠다가 조계산으로 치닫는 거대한 산줄기가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넓은 헬기장 주변으로 구절초와 들국화가 지천을 이루고 있고, 야생화들이 제각기 멋을 부리며 정맥꾼들을 붙잡는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왼쪽으로 뚝 떨어지듯 내려서는 길엔 복분자 넝쿨이 길을 막는다. 다시 억새밭을 헤치고 내려선다. 정맥에는 들국화가 만발하고 작은 꽃을 피운 참취꽃도 아름답다.

07시 36분 680봉에서 한차래 뚝 떨어지며 뒤돌아보는 검은 실루엣, 너무나 멋진 광경이다. 몇 번이고 뒤돌아보아도 여전히 나를 유혹하는 검은 실루엣을 뒤로 미역취꽃 군락을 지나고 나니 조릿대군락이 나타난다. 우산나물도 제멋에 겨워 하늘거리는 정맥길은 한차례 사정없이 뚝 떨러지다가 완만해 지면서 잡목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한결 걷기가 수월한 길이 나타난다.

07시 58분 들국화가 지천을 이루고 있는 닭재고개를 가로지른다. 중키에 소나무 숲은 간벌 하지 않아 누렇게 변해 가는 숲이 보기 흉하다. 한동안 완만한 능선길은 오르고 내림이 이어진다. 명감덩쿨이 붉은 열매로 유혹을 하는 능선엔 이슬을 먹은 솔잎들이 옷깃을 적신다. 세상은 그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쟁은 터지지 안았는지, 웃고만 살아도 풀 끝에 이슬 같은 사람평생인데 왜 싸움들만 하려고 하는지...

08시 11분 야생화의 전시회장을 통과하고 다시 칡넝쿨의 심술꾼과 만나기도 하며 조릿대숲을 가르면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한차례 다리에 힘을 주며 올라선 유치산(△530.2m)에서 삼각점(구례 453, 85년 재설)을 확인한다. 나무들을 베어놓고 방치해 논 상태여서 지저분하고 시야가 막혀있다. 금북정맥에서 보았던 종지일지가 적혀있는 부산명승산악회의 노란색 리본과 광주교육대학 리본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소나무숲길을 내려선다.

08시 23분 십자로 안부인 한방이재에 내려선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면서 시작되는 능선길은 평탄하게 이어지며 군데군데 참호가 보이고 한차례 허리길을 돌아서면서 다시 펑퍼짐한 정맥이 이어진다. 잠시 능선 상에 왼쪽에 있는 갈림길을 확인 못하고 5분 여를 과외공부를 하지만 꾼들은 역시 잘못 들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뒤돌아 선다. 정맥은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내려서면서 장송숲에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08시 53분 멋진 소나무 군락을 따라 봉에 올라섰다가 뚝 떨어지는 길이 쭉쭉 뻗은 장송 숲이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터지며 봉을 휘감으며 몰려가는 구름이 너무나 아름답다.

09시 송전탑을 통과하며 곧 만나는 십자로 안부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오르는데 큰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다. 너구리굴이란다. 너구리란 놈은 굴을 뚫을 때 출입구를 두 개나 만든다나(?) 그렇게 못생겼어도 약은 놈이란 말이야, 완만하게 올라서는 봉에서 너무나 우뚝 솟은 오성산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09시 30분 390봉이다. 한차례 다시 뚝 떨어지면서 올려다보는 오성산은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6분 뒤 잡목이 무성한 안부에 내려선다. 임도를 만들다가 그대로 방치했는지 정리가 되지 않은 절개지가 흉물스럽다.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조릿대 숲이 군데군데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은 코가 닿을 듯하고, 힘겹게 올라선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신기마을에 누렇게 익어 가는 들녘과 마을집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멀어 보이는데 개 짖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09시 55분 암릉구간이 이어지다가 전망대바위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는 지나온 정맥능선이 너무나 아름답다. 한차례 조릿대 숲을 헤치며 가파르게 오르다가 암벽을 우회하며 키에 가까운 조릿대숲을 이리저리 헤치며 올라선 곳이 산불감시초소가 잇는 오성산 이다.

10시 08분 억새풀이 가득한 오성산(△606.2m)에서 삼각점(구례 309, 85년 재설)을 확인한다. 억새풀 정상에서 기록을 남기고 왼쪽으로 싸리나무와 억새풀을 헤치며 내려서니 억새풀에 가려있는 헬기장과 넓은 잔디밭에 묘지를 만나고, 정상을 출발하여 5분쯤 내려서면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틀면서 이어지다가 다시 5분 후에 직선길을 버리고 정맥은 오른쪽으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야 한다.

한차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오른쪽으로 바위지대를 보며 내려서는 희미한 정맥길은 역시 애매한 길엔 리본이 없듯이 여기도 리본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 희미한 길이나마 확인하며 내려서야 한다. 경사가 자주 바뀌고 조릿대숲 도 자주 나타나는 한없이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서면서 조계산을 올려다보니 걱정이 앞선다.

떨어진 만큼 다시 올라야하는 정맥은 호남고소도로가 가까워지는지 차소리가 들리고 완만하던 정맥길이 다시 가팔라지더니 한차례 뚝 떨어지다가 작은 언덕을 넘으면서 다시 가파르게 떨어진다. 비석이 없는 묘 2기를 만나면서 장송숲에 들어서고 흙무더기를 묘를 지나면서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10시 45분 묘 6기가 있는 묘지를 지나고 다시 잔디밭이 잘 가꾸어진 김해 김씨 묘지를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22번 국도 상에 접치(370m)다. 2차선 국도를 가로지르며 호남고속도로 위로 길이가 83.13m, 교폭이 17.2m인 두월육교가 가로놓여있다. 철계단을 오르기 직전 공터에서 김호택씨와 허기를 채운다.

11시 15분 접치에서 시원하게 호남고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내며 절개지에 설치한 철계단을 한 발 한발 오른다. 노란색의 조밥나물꽃이 어여쁘고, 오르막길은 가파르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에 뒤돌아보지 말아야한다. 철계단이 끝나고 가파른 절개지를 오른다. 오늘은 산이 좋은 사람들 덕유산악회의 노란 리본이 자주 눈에 띈다.

절개지를 올라서니 잘 정돈된 묘지와 송전탑이 서있고 조계산 장군봉이 너무나 멀어 보인다. 능선길은 길이 잘나있어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도립고원임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정맥길 같지 않은 정맥길이다. 철모르는 매미 한 마리가 신나게 울어대고, 사랑싸움을 벌이는 새들이 유난히 시끄러운데 정맥꾼들은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11시 25분 봉하나를 넘는다. 묘가 있던 자리 같은 공터를 지나며 산허리길을 돌아나간다. 송전탑을 지난다. 송전탑 주위에는 큰 달맞이꽃이 곱게 피어있다. 다시 가팔라진다.

11시 38분 530봉을 지난다. 다시 허리 길을 돌아 정맥은 한 발 한발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끝임 없이 올라야 하는 길, 조릿대 군락이 자주 나타나고 가파른 듯하다가는 완만하고 다시 가파르게 반복되는 정맥길이다.

12시 05분 공터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한다. 높이 올라 멀리 보자 순천교도소산악회의 리본 눈에 띈다. 그 순간 문 듯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인 염상진의 결의에 찬 눈빛이 번득이는 것 같고 어디선가 하대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2시 25분 조릿대와 싸리나무를 헤치며 용담꽃이 피어있는 능선분기점 865봉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연산봉으로 이어지는 일반등산로가 잘나있고 정맥은 왼쪽으로 범바위 능선을 지나 한차례 잔돌들이 깔려있는 오르막을 올라선 곳이 조계산 장군봉(△884.3m)이다.

12시 45분 커다란 바위 위에 표지석이 서있고 삼각점 (순천 11, 91년 재설)과 이정표(송광사 7.45km, 굴목재 1.5km, 선암사 2.55km)가 있다. 유명한 대사찰 선암사와 송광사를 동서에 거느린 조계산은 전체적인 산세는 웅장하지는 않으나 질펀히 널 벌어진 산자락은 그 산역이 넓고 온 산을 뒤덮은 수림과 맑고 그윽한 계곡은 불교 성지다운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하는 이산의 이름은 원래 송광산으로 불리다가 고려 희종때부터 조계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하는데 산 가운데 남쪽으로 조계수를 사이에 하고 그 동쪽의 산을 조계산(주봉:장군봉)이라 하고 그 서쪽의 산을 송광산 (주봉:연산봉)이라고 구분 지어 부르기도 한단다. 이산은 1979년 12월 도립고원으로 지정되었다. 조망이 뛰어나다. 멀리 파도치듯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시설물이 서있는 고동산을 지나 뾰족한 봉우리의 백이산이 이어지며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대원들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13시 28분 장군봉에서 키 작은 잡목과 억새풀 그리고 들국화가 여기저기 피어있고,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선암사와 상사호가 그림 같은 풍경이다. 잡목 터널 숲을 들어서며 너덜길을 내려서는데 배바위가 가로막는다. 길은 오른쪽으로 잔돌들이 깔려있는 내리막길이 가파르다.

13시 50분 작은 굴목재에 내려선다. 조계산 등산 노선도의 금속안내판과 나무의자들이 놓여있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굴목재를 뒤로 작은 오르막이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은 어느 등산보다도 편안하고 호젓한 능선길이다. 나무계단을 내려선 곳이 굴목재다.

14시 10분 이정표에 선암사 굴목재라 표기되어 있다. 거리가 송광사가 4.4km, 선암사 2.2km인 굴목재에도 쉬어가라고 벤치가 놓여있다.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는 길목인 이곳으로 줄지어 올라서는 여성 등산객들을 만날 수가 있다. '순천 가서 인물자랑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역시 순천 아줌마들은 예쁘기도 하다.

14시 20분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이어 돌계단이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계류를 만나며 쉼터를 만난다.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고 있고 하늘로 치솟은 멋진 편백군락지 정말 보기 좋다. 이어 대각사(서암)로 갈리는 비포장 도로를 만나 왼쪽으로 조금 내려선 곳이 선암사다.

15시 10분 종주는 끝이 나고, 경내를 두루 돌아본다. 조계산 동남쪽 기슭인 승주읍 죽학리에 자리잡은 선암사는 백제 성왕7년인 529년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고 그 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선암사라는 이름으로 정식 건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선암사 입구에는 먼 옛날 아름다운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계곡이 길게 이어져 있다.

이 계곡에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쌍무지개다리가 있다. 이름하여 승선교. 물소리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돌다리인 승선교의 반달형 홍예를 통해 바라보는 강선루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38개동으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선암사는 다소 좁아 보이긴 하지만 그런 만큼 볼거리가 많고 또 아기자기한 멋이 돋보인다. 특히 대웅전 앞의 수령 4백년이 다된 연산홍과 산철쭉을 비롯하여 사찰 곳곳에 자목련, 동백나무, 수국, 부용 등이 있어 봄철이나 여름철에는 절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꽃동산을 방불케 한다.

또한 선암사에는 사찰의 유서 깊음만큼이나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고려 선종이 송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비단으로 만들었다는 용문탁의가 있고 또 선종이 송으로 유학을 가서 받아온 대각국사 법복도 그대로 남아 있다. 도선국사가 인도 유학을 가서 나뭇잎에 씌어진 글을 선물로 가져왔다는 범패경도 보존되어 있다. 이외에도 보물 2점, 345점의 귀중품, 천연기념물 1점이 있다.

선암사의 특이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우소라고 불리는 측간이다. 즉 오늘날의 화장실을 말하는데 이 해우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고 말해질 정도다.

선암사를 빠져나와 낙안읍성을 향한다. 순천시 낙안면에 자리잡은 살아있는 낙안읍성을 내려다 볼 수가 있다. 높이 4m에 직경이 1m 남짓한 돌들로 둘레 1천3백84m에 이르는 성이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낙안읍성 마을엔 지금도 1백8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임경업장군이 하룻밤새 쌓았다고 하는데 어쨌든 낙안군수로 있었던 임경업장군이 축조한 것만은 사실일 듯 싶다.

옛날 민초들이 살아왔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제주의 민속마을이나 용인의 민속촌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친근감이 절로 든다. 성안에는 1450년 처음 건립되었다는 낙안 객사와 해자가 거의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옹성과 낙풍루 쌍천루등이 복원되어 있다. 전통가옥 아홉 채도 우리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음력 정월대보름이면 임경업장군의 비각에서 제를 올리고 널뛰기 그네타기 성곽돌기등 민속행사가 열린다. 또 5월에는 낙안민속문화 축제가 벌어진다.

저녁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는 별랑면사무소 정문 앞에 있는 동백식당 욕보할매집(742-8303)을 찾아간다. 산지 2000년 10월호에 소개된 이정남(68)씨가 주인인 동백식당에 들어서니 첫인사가 "×같은 놈들 왔네"하며 쳐다보지도 않는다. 황당한 일이지만 간판에 욕보할매집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이미 소개받을 때 욕쟁이 할매집에 대한 소문을 들은지라 대원들은 서둘러 짱둥어탕을 주문한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물론 외지 사람들까지 낮에는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다는 짱둥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