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 자 : 2002년 3월 22일~24일(1박 3일)
2. 장 소 : 전북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재
3. 준비물 : 스틱,장갑,여벌 옷,스패츠,오버복(上,下),우모복,행동식,김밥(3줄),지도,나침반,소주1,식수1,
건전지(3set), 텐트(2인용), 토지 1부3권
4. 비 용 : 영등포~남원역(무궁화호 14,700)
동문사거리~매요리(버스 1,700)
함양~서울(14,900)
김밥(3,000), 3/23 조식(콩나물국밥 - 3,500), 맥주&새우깡(2,200), 음료수(1,000)
계 : 41,000

5. 일 정
22:40 영등포역
24:00~3/23 04:30 영등포역~ 남원역
05:10~05:30 아침식사
06:00~07:00 동문사거리~매요리
07:05 산행시작
08:00 사치재
08:47 697고지
10:40 아막성터
11:10 복성이재
~ 12:30 점심식사
15:05 봉화산(해발919.8m)
18:00 저녁식사
19:30 취침

3월 24일
09:30~10:40 기상 및 아침식사
11:20 월경산
12:00 중재(3구간 종료)
13:30 중기마을
13:15 함양시외버스터미널
14:10~15:00~18:40 함양-거창-서울 남부터미널

6. 산행기

영등포역

고모부와 이마트에 쇼핑하러 갔다가 영등포역에서 내려줘서 평소 버스에서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과 버스의 작은 흔들림에 심하게 요동치지 않고 무사히 역사안으로 들어올수 있었다. 예약해둔 표를 찾고 커다란 배낭을 두고 쉴곳을 찾으려니 적당한곳이라곤 흡연실 근처에 모여있는 걸인들이 있는 장소외에는 없다. 할수없이 그곳 벤치에 베낭을 놓고 소설 토지를 펴고 cd-player를 켰다. 우이찌! 근데 이게 모야. cd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 고장이 난것보다 괜한 것을 들고와서 무게가 늘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그리고 낼 밤을 무슨 낙으로 아니 뭘로 귀를 막지? 대충 베낭에 cd-player를 쑤셔넣고 책을 폈다. 책에 슬슬 빠지기 시작하고 있을 때 술에 취한 걸인들끼리 쇼를한다. 괜히 그 쇼에 휩쓸렸다가는 시비의 대상이 될것같아 급히 그 자리를 떠서 기둥 한켠에 베낭을 세워두고 쪼구리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겐 나의 모습이 이상한 모양이다. 모든 사람들이 흘끔흘끔 보며 지나간다. 하긴 제몸보다 커다란 베낭을 뒤로한고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과히 볼만할 것 같다.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것보단 훨씬 났다. 특히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며 괜시리 열받는 나에겐...
박경리씨의 토지에 푸욱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11시 50분이다. 급히 베낭을 챙겨 메고 개표를 하고 곧 이어 오는 열차에 탔다. 순천까지 가신다는 아주머니와 자리를 바꾸고 베낭을 선반위로 올리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가 미안했던 모양인지 도와주려하는데 되려 베낭의 중심을 잃어서 베낭을 바닥에 떨어뜨려버렸다. 모든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거 같다. 으구 쪽팔려~ 사람들이 머라 그럴까? 지 몸도 못이기는 베낭을 가지고 다닌다고 얼마나 비웃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베낭을 불끈 들어 선반위로 올리고 내 자리에 앉았다. 부끄러움보단 걱정이 앞선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힘들어서 버벅거리면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책을 몇장 읽다가 잠이 들었다.

남원역

갑자기 옆 사람이 내 자리를 비켜 나가려고 한다. 습관적으로 다리를 오무리는데 차장이 지금 정차하는 역이 남원역이란다. 허걱! 이게 뭔일이랴! 지금까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으으... 급히 베낭을 메고 뛰어나왔다. 다행히 제 시간에 내릴수 있었다. 아직까지 열차에서 자다가 지나친적이 없었는데 잘못했으면 오늘 그럴뻔했다. 담부터는 시계 알람도 해놓고 자야겠다. 도착해서보니 4시 반. 아침을 먹으려하니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저번에는 짜장면을 푸짐하게 먹을수 있어 좋았는데... 역사안 대합실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택시기사가 와서 시비조로 어디가냐한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그런 종류의 택시기사는 정말 싫다. 전라도에 모든 것들을 통달한것마냥 무어라 궁시렁거리다가 제풀에 지쳐 그냥 가버린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이 여러 사람들이 질문하는 이것 저것을 물어보시더니 자기와 함께 버스를 타면 되겠다한다. 가뜩이나 이곳 지리에 서툰 내겐 무척 잘된 일이다. 생각해보니 아침을 안먹으면 산행에 무리가 많을듯하여 남원 역 근처를 배회해보니 조그마한 국밥집이 문을 열어놨다. 혼자 사시는지는 몰라도 어르신 한분이 방금전에 식사를 마친모양이다. 여주인이 없음에 내심 걱정이 되긴 하지만 마땅히 먹을곳도 없길래 이곳에서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역사안에서 날 기다릴 어르신이 생각되어 급히 밥을 먹었다. 뜨아! 왜 이렇게 뜨거운거야. 결국 입을 또 디었다. 어떻게 된게 대간 할때마다 입이 데인다. 산에서야 추우니까 따뜻한걸 먹으려다보니 그렇다지만 이번엔 급히 먹으려다 또 데였다. 그러고보면 내 입이 어지간히 약한 모양이다. 군에 첨에 입대했을 때 덕이 많은(?) 고참들덕에 입안이 홀라랑 허물을 벗었었는데... 개인접시를 따로 받아서 후후 불어가며 급히먹고 나니 5시반이다.
역사 대합실에 들어가니 어르신께서 마침 출발한다고 하신다. 함양으로 가신다는 분과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눈 모양이다. 금새 친해져있다. 남원역 바로앞에 버스를 타는줄 알았더니 안쪽으로 좀더 들어간 동문사거리에서 버스를 타야한다고 한다. 곧이어 온 매요리방향 버스.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가는데 터미널내 기사식당이 즐비하다. 우찌! 저기서 먹는건데... 담에 오면 그곳에서 먹을 것을 다짐하는데 발 아래에서 따스한 바람이 나온다. 내 자리가 마침 온풍기가 있던 자리였다. 바닥에 놓인 베낭으로인해 따스한 공기가 베낭을 타고 내 얼굴에 와 닿는다. 스르르 내 눈이 감긴다.

매요리 - 사치재(07:00~08:00)

졸다가 눈을 떠보니 어디서 많이 본곳이다. 여기가 어디지? 왓! 매요리다. 급히 내리고보니 버스가 한번 지나갔다가 회귀하여 가는길이었다. 잘못했으면 지나칠뻔했다. 새벽에도 잠 때문에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런다. 산신령의 보살핌이 있는걸까? 초행길인데도 이렇게 제때에 하차를 하게끔 해주니...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나의 큰 배낭을 보고 젊은 사람이 고생이 많다며 측은한 눈길을 보낸다. 언제나 그렇듯 환한 미소로 답할뿐...
스틱과 장갑을 꺼내들고 베낭을 메고 이곳 저곳을 꽉 조인다. 산행시작이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힘들지 않아야할텐데, 힘에 부쳐 포기를 생각하는건 아닐지, 왜 나는 이런 고행을 하려고 하는지 등등의 생각을 하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몇봉의 묘가 나온다. 그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난 것 마냥 꾸벅 인사를 건네며 오늘 산행이 무사하길 바란다. 옆에 사람이 있었으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처음의 시작이 상당히 가볍게 시작되고 있다. 해발 600여미터네 능선이 완만하다. 아직까지 동장군의 기세가 남아있긴하지만 바람은 따스하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봄을 알리고 있다. 거기에 길에는 뽀송뽀송한 솔잎들이 깔려있어 기분이 좋다. 아쉬운게 있다면 황사현상의 여파가 아직까지 미쳐서 서울에서 스모그현상을 보는듯하다. 뿌연 산의 모습들이 유쾌하지가 않다. 설마 매년 봄마다 이러진 않을테지? 제발...
유쾌한 발걸음으로(여전히 아무 생각없이...) 618고지를 지나치고 나서 내려가다보니 88고속도로가 나온다. 그런데 88고속도로가 2차선이었나? 아직까지 몰랐었다. 2차선밖에 되지 않았구나. 다행히 차들이 별로 지나가지 않아 후다닥 차로를 넘어간다. 2차선이니까 망정이지 고속도로를 건너는 맘이 썩 편치가 않다. 대간의 마루금을 찾고 있는데 도로 아래쪽에 터널이 있다. 이론! 어쩐지 대간 표식지가 아래로 되어있어 이상하다 했더니만 아래에 걱정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무식하게 도면만 보지말고 주위도 둘러보면서 갔어야하는데 내가 너무 생각없이 가는가보다. 바보같은 나의 머릴 쥐어박으며 다시 오른다.

사치재 - 복성이재(08:00~12:30)

능선을 따라 천천히 오르는데 지리산휴게소가 보인다. 그리고 지리산 전적비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씨가 욕한 그 탑이다. 뾰족한 그 모습이 내 가슴에 칼을 들이대는것같은 섬뜩함을 느낀다. 우리의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게 뾰족하다. 전두환때 만들어진거던가? 이런 저런 세속적인 생각을 하며 욕을하며 오르는데 입에서 또 욕이 나온다. 인근의 능선이 황토빛이다. 겨울에도 푸르른 우리 산의 모습이 아니다. 잠시동안 일본의 아소산 생각이 났다. 산불이 나서 인근의 산들이 모조리 타서 이제는 잡목밖에 자라지 않고 있다. 그래도 저번 2구간에서의 을씨년스럼은 좀 덜하다. 하지만 녹색이 보이지 않는 산의 모습에 기운이 빠져버린다. 거기에 길을 따라 늘어선 싸리나무들이 내 눈을 거슬리게한다. 자세히 기억 나진 않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뾰족한 것을 보지 못한다한다. 내가 그런지는 몰라도 싸리나무들의 가지들 때문에 눈이 어지럽다. 고개를 숙이고 길만 보면서 진행한다. 잡목숲에선 이상하게 눈이 어지러워 산행하기가 정말 힘들다. 예전 지리산 왕시리봉에서도 싸리나무들 때문에 적잖히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듯하다. 거기에 반팔을 입은 나의 팔은 긁히면서 흰 줄기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피가 안맺히는걸 보면 껍질이 어지간히 두꺼운 모양이다. 그다지 고운 피부는 아니지만 나는 우리집안의 이런 피부에 대단히 만족한다. 벌에 쏘여도 까딱하지 않는 피부. 우리 할배는 뱀에 물려도 붓지도 않는다. 나는 아직까지 뱀에 물려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긴 내가 이무기인데 어설픈 뱀들이 내게 덤비겠어? 697고지의 싸리밭들을 겨우 지나고 지도에 표시된데로 새맥이제에서 식수를 보충하려고하는데 농지를 개간하려고 한 모양인지 엉망이다. 물맛도 영 좋지도 않고해서 그냥 진행하기로했다. 차라리 남원역 화장실에서 물을 떠올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발 770여미터의 시리봉으로 향하는 길이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요 몇일 소화상태가 불량한듯하더니 체력이 떨어진모양이다. 하긴 2구간을 다녀온 뒤로 운동을 한게 전무하니까. 서울로 돌아가면 이번에 받은 자전거로 모자란 체력을 보충해야겠다. 가끔 시간날때면 한강 종주를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같다.
능선을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내리고... 힘들다.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거지?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하는걸까? 갑자기 요사히 생각지 않던 의문이 생긴다. 누구처럼 자신이 가고싶은 산들만 골라가며 갈수도 있고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넌 왜 이렇게 끝없는 오르내림을 하고 있는거지? 그냥 집에 가버려! 그리고 이러저러한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포기했다고할까? 잡념... 내 가슴에 마가 들어온 모양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라 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고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끊임없는 자신감과 젊음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치밀어 오르는 나의 잡념들을 짓밞으며 또 오른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바람이 세진다. 서풍! 황사현상이 좀더 심해지는듯하다. 바람이 많이 부니 체감온도또한 떨어진다. 현재온도는 8.5℃ 풍속이 30~40은 되는 것 같으니까 체감온도는 4℃정도 될듯하다. 저체온증의 방지를 위해 긴팔옷을 다시 입었다. 군대에 있을 때 그 모진 추위를 버티면서 민감해진게 온도다. 온도를 알아맞추는건 거의 귀신급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일본 가서 생전 처음으로 비싼돈주고 마련한 시계가 있어 정확한 온도와 고도측정이 가능해졌다.
781고지에 들어서니 아막성터가 보인다. 듣기론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경계지역으로서 중요한 요지를 차지하는 성이었다한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승현이 성을 보니 힘이 난다. 어떤 타입일까?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에 속도가 붙는다. 30여분을 걸어 도착한 아막성터는 생각보다 훼손이 덜하다. 좌측은 전라도 장수군 우측으로는 좀 떨어진 능선 너머로 경상도 함양군이 내 발아래로 펼쳐있다. 성의 크기도 제법 크다. 삼국시대의 규모를 생각하면 상당히 큰 축에 속한다. 하긴 여기가 뚫리면 그 여파가 꽤 컸을 것이다. 1,0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아막성!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내고 상처 받았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왠지 성터가 핏빛을 띄는것같은 느낌이 든다. 한쪽 구석에 세워진 돌탑은 아마도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탑인듯하다. 그 탑에 조용히 목례를 하고 나 엮시 작은 돌을 얹어본다. 흔히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부디 그 영혼들이 극랑왕생하길 그리고 그네들의 후손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레 살수있도록 보살펴주길 빌어본다.
아막성터를 지나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워낙에 새벽에 아침을 먹어서인지 일찍 배가 고프다. 복성이재가 아니면 식수를 구하지 못할 것 같아 식수도 구하고 점심도 먹을겸해서 복성이재에서 짐을 풀었다. 수낭을 들고 마을로 내려가는데 가깝게만 보이던 집이 꽤 멀다. 괜히 내려왔나 싶어 뒤돌아보니 내려온 거리 엮시 만만치가 않다. 들일을 하시던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해 식수를 얻었다. 생각보다 꽤 젊다. 사근사근한 억양과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개의 모습이 맘에 든다. 갑자기 개를 보면 앞다리를 붙잡고 들어올려 암놈인지 수놈인지를 확인하던 칠부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었는데... 복성이재 이곳은 흥부전의 시작이 되었던 마을이라 한다. 온통 산이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을텐데도 흥부전, 춘향전등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뉘어 풍류를 할줄 알았던 선인들의 모습에 감읍할 수밖에 없다. 이 생각도 잠시 베낭을 풀어둔 곳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멀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계속 바보같은 내 자신을 욕하며 오른다. 왕복 1.5km는 되는것같다. 식수를 구하기 위해 움직인 양이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했다. 11:10분에 도착한 복성이재에 50분이 되어서야 다시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뭐 먹을 때 전화가 오면 정말 짜증난다. 더욱이 업무와 관련된 전화다. 여기까지 와서 업무 때문에 전화라니... 이마에 핏줄이 솟는것 같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이것 저것 소상히 얘기하고 끊었다. 점심을 먹고 준비해온 디져트까지 싹쓸이를 하고 12:30까시 푹 쉬었다.

복성이재 - 광대치(12:30~18:00)

다시 산행이 시작된다. 치재를 가기전 봉우리로 오르는데 인기척이 있다. 산불감시원이 매서운 바람을 피해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 조심히 산행하고 산불조심하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산불 난 구간을 보고 오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산불의 무서움과 그들의 노고를 감사하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배가 무겁고 힘이 들다. 거기에 물까지 얹어진 나의 배낭은 나의 피로를 더욱더 극대화시킨다. 또다시 마가 들어오는 내 가슴을 억누르며 산행을한다.
해발 600에서 920미터의 봉화산까지의 능선은 힘들긴 한데 철쭉들이 쭉 늘어서있다. 지금은 내 눈을 상당히 성가시게 하지만 봄에 오면 정말 좋을것같다. 남원시에서 봉화산의 철쭉으로 철쭉제를 할정도이고 철쭉의 양도 그 어느 산보다도 많은것같다. 대간종주를 하지 않으면 몰랐을 산들을 앎에 내 속을 괴롭히던 마를 물리칠수가 있었다. 나중에 좋은 님과 봄에 꼭 다시 와야겠다.
봉화산 정상을 겨우 올라오니 치재에서 본 산불감시원이 또 있다. 염장을 지르는것도 아니고 2시간을 기를 쓰고 올라온 내게 왜 이렇게 늦게 오냐한다. 쳇! 자기내는 좋은 길에 오토바이 타고 왔음시롱... 힘들어서 그냥 가타부타 별 말없이 그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바로 이동하는데 바람의 세기가 태백산급이다. 부피 큰 배낭 때문에 자꾸만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걸음도 엊박자가 난다. 바람만 안불었다면 멋진 모습을 나타냈을 갈대들이 나를 괴롭힌다. 2m정도의 갈대가 바람이 불면서 자꾸만 내 얼굴을 할퀸다. 갈대가 이렇게 억센지 몰랐다. 겉보기엔 부드러워 보이는데 그 잎은 무척 억셌다. 한때 대나무와 갈대를 비교하며 나는 대나무가 되겠노라고 했는데 그토록 우습게 봤던 갈대도 그 나름의 억셈으로 버티고 그런 나를 꾸짖듯 내 얼굴을 자꾸만 할퀸다. 피곤함이 극대화가 되고 식곤증이 몰려오면서 무척 졸립다. 애라 모르겠다 싶어 베낭을 둘러맨체로 주저앉았다. 갈대가 많고 커서인지 주저않으니 바람을 피할 수가 있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자꾸 누군가가 내게 무어라고 하는 것 같다. 산신령님이 깨우는 모양이다. 눈을 확 뜨고 시계를 보니 10여분 잤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달고 졸렸던 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힘을 내어 걷는다. 체력 상태를 보아하니 광대치 근처에서 오늘밤을 보내야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인게 지도상 잠을 잘수 있는 자리가 보이지가 않는다. 바람이 이렇게 드센날은 깊은 잠을 자기가 힘든데 걱정이다.
갈대. 갈대. 이놈의 갈대는 끝이 없다. 투덜이 스머프 버전으로 "난 갈대 싫어!"하니까 갑자기 바람이 멎는다. 후후 이상일 일이쥐? 기회는 이때다 싶어 부지런히 속도를 낸다. 바람이 멎은 것도 잠시 다시 바람이 거세게 분다. 자꾸만 오늘 밤 어떻게 잠을 청해야할지밖에 생각이 안난다. 바람이 안불었으면 정말 기분좋게 산행했을 코스가 바람 때문에 망쳤다. 내가 모르는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뒤돌아보면 속상하다. 난중에 다시 꼭 와야지하는 맘을 새기며 광대치로 향한다.
광대치는 거의 다 와가고 해는 뉘엿뉘엿 지면서 자꾸만 늦은 걸음을 재촉한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는듯하지만 광대치에 도착하더라도 적당한 안식처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좀더 빨리 빼서 좀 늦더라도 중재에서 휴식을 취할까 하다가 문득 대간종주중 빈집에 들어갔다가 도깨비불 때문에 무척 놀랐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그곳이 아마도 중재였듯싶다. 실재로 중재엔 폐가도 있으니까.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그다지 크지 않은 나이지만 피할수 있으면 피하는게 좋으니까... 좀더 오르다보니 산 중턱에 누군가가 텐트를 친 흔적이 있다. 바닥이 평탄하지는 않지만 정리가 비교적 잘 되있다. 베낭을 내려놓고 광대치까지 적당한 쉼터가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그곳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 잠자기에 최고는 누가 뭐래도 묘 옆인데, 이노므 산에는 묘도 없다. 산이 무척 깊은곳인가 보다.

첫날 밤

해가 지면서 바람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동풍이 휘몰아 친다. 해가 바뀌면 바람의 방향이 바뀔 것을 예상하고 친 것이 효과가 있다. 허나 바람의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자꾸만 텐트가 날라가버리려고 한다. 버너도 불이 붙지 않고 자꾸만 꺼져버린다. 어쩔수 없이 텐트안에 들어와 물을 끓이고 저녁을 준비했다. 금일 저녁과 낼 아침의 메뉴는 햇반에 곰탕. 김치는 귀찮아서 준비하지 않았다. 김치 국물이 흐르면 업무상 후각이 비교적 예민한 나는 상당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김치없이 음식을 먹을줄도 알아야 할 듯 싶어서... 김치가 없어서 밥이 잘 안넘어갈줄 알았는데 배가 고파서인지 꾸역꾸역 잘 넘어간다. 밥 한공기를 후딱 헤치우고 기분조흔 트름을 해본다. 9℃였던 텐트안이 밥을 먹고나니 15℃가 넘는다. 바람도 없고 텐트안에서 음식을 하니 공기온도가 많이 올라갔다. 바깥의 바람 때문에 휠이 약한 내 텐트가 자꾸만 기울어진다. 그래도 돔형이라서 그럭저럭 버틸수 있을것같다. 몇 년전에 산 하계용 텐트지만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잠을 자려고 하니 예전에 TV에서 본 산에서 죽은 연인이 생각났다. 산에서 길을 잃어 죽게 된 연인. 허나 죽어서도 상대방이 추울까봐 혼령이 낙엽으로 몸을 덮어줘 지나가는 사람들이 못봤다는 얘기. 소름이 오싹 돋는 얘기긴 하지만 참 슬픈 얘기기도 하다. 그 생각을 하니 밖에 나가기가 싫다. 밖에 나갔는데 짐승의 파란 눈과 마주친다거나 진짜 귀신이면 어떡하지? 조용히 짱 박혀서 잠이나 자야겠다. 소주를 한모금 들이키고 잠을 청하니 스르르 잠이 든다. 바람이 불어도 무섭다는 생각도 안든다. 확실히 간이 배밖에 나온 거다.
잠을 자고 있는데 시계 알람이 운다. 5시인가? 아직 하늘은 어둡군. 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플라이가 바람이 불면서 펄럭거리는게 곧 날아갈듯하다. 나가서 고정을 할까 하다가 괜시리 바깥에 나가면 무서운게 있을것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5시니까 그냥 자려고 하니 플라이가 날라가서 텐트의 한쪽 귀퉁이에 걸려 더욱더 맹렬하게 소리를 낸다. 날이 어두워 나가긴 싫고 이데로 있다가는 구하지도 못할 플라이는 날아가 버릴 것 같고 시계를 보니 이게 모야! 12시 48분이다. 으으 시계 알람을 잘못 맞추어 놓은 모양이다. 어쩔수 없이 눈에 힘을 빡! 주며 바깥에 나간다. 설마 이 양승현이를 해꽂이하려는 것은 없겠지? 주위를 둘러보니 밝은 달 사이로 엄청난 바람이 내 귀를 가를뿐이다. 우이띠! 내가 달을 무척 좋아하지만 이런때는 별루다. 플라이를 다시 치고 돌을 괴고 비상용 비너와 끈을 풀어서 주위 나무에 고정을 시키고 나니 제법 튼튼하다. 진작 이렇게 할걸 결국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몸이 또 고생하게 되는구나. 따스할거라 믿었던 침낭안이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우모복을 꺼내어 입고 나는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담날 아침!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귄다. 멀리서 딱따구리의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온 산에 퍼진다. 그리고 어디서인지 까마귀가 까악! 까악!하고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좋은 새소리를 깨버린다. 날이 밝아오면서 바람은 멎었다. 바람이 멎어서야 나는 깊은 잠을 들수있었던 모양인지 일어나기가 무척 싫다. 시계를 쳐다보니 9시다. 어차피 3구간의 80%를 종료했으므로 그다지 시간의 조급함도 느끼지 않는다. 느그적 느그적 일어나 아침을 바라본다. 평화롭고 조용하다. 법정스님은 이런 산사의 조용함을 즐겨서 홀로 사시는걸까? 아직까지 난 어려서인지 지금은 좋지만 평생을 하라하면 못할 것 같다. 밤새 분 바람탓에 코펠이 흙 범벅이다. 수낭에서 물을 받아 대충 씼고 물을 끓여 밥먹을 준비를 한다. 어제에 이어 곰탕 국에 어제 저녁에 미리 끓여놓은 햇반을 넣어 곰탕밥을 만들어 입속에 퍼 넣는다. 아래에서는 절대 이렇게 못 먹을테지만 생존을 위해서일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 먹는다. 한그릇을 후딱 처리하고는 배를 두드리다가 베낭을 정리한다.

광대치 - 중재(10:40 ~ 12:00)

또 다른 하루의 출발이다. 남은 구간이 그리 길지 않기에 부담감이 적다. 만약 5시에 일어났다면 4구간을 종주하려고 도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워낙 늦게 일어나서 종주는 가능해도 담날 출근하는데 상당한 무리가 있을듯하여 여유롭게 움직인다. 광대치까지 가뿐하게 올라 능선을 따라보니 멀리 월경산이 보인다. 월경산? 이름이 좀 특이하군... 한자어로 뭐지? 뭘까? 혼자서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며 거닌다. 그다지 이른 아침은 아니지만 휴일이어서일까? 조용한 아침이다. 속세에서도 멀리 떨어진 모양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무언가가 대굴대굴 굴러간다. 뭐지? 한참을 자세히 보니 토끼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놀라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려다가 긴 뒷다리탓에 대굴대굴 굴러가는 것이다. 훗! 바보같으니라고... 하긴 꿩은 궁지에 몰리면 풀 숲에 자기 머리를 쳐박아버리니까...
월경산을 지나 조용한 산길을 지나고 있노라니 화산이 폭팔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지형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산사태지역이란다. 산사태가 나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첨 알았다.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제법 큰 짐승인 것 같다. 발놀림 소리가 약간은 무거운거 같은데 멧돼지? 혹시 곰? 짧은 시간동안 두려움을 느끼며 돌아보니 다행스럽게도 사람이다. 나에 비해 가방을 1일산행차림으로 준비해서 가벼이 산행을 하시는 분이다.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게 일요일을 맞이하여 구간종주를 하는 모양이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길을 비켜선다. 도저히 그 발걸음을 따라갈수 없다는걸 알기에... 산사태지역을 조심스럽게 지나 조금 가다보니 길이 나온다. 중재. 드디어 3구간의 종점이다. 근데 3구간의 종점에 왔다는 반가움보단 4구간을 할수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계속 진행해? 아냐, 시간이 너무 늦었어. 결국은 계획대로 하산한다.

중재 - 함양(12:00~14:10)

중재에서 조그마한 농로를 따라 중기쪽으로 하산한다. 중기 마을에서 함양가는 버스가 하루에 세 번밖에 없어서 멀리 백전면 향초마을까지 가야할 것 같다. 도면상 5km는 족히 될 것 같다. 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구간종주를 선택하면서 각오한거다. 중기마을까지 가는길에 옆에 작은 시내가 흐른다. 이 시내는 점점 커지는데 물이 참 맑다. 중기 마을에 도착하니 작은 시내가 모여 작은 하천을 이우었는데 물이 너무 깨끗하다. 오염이 전혀 되지 않아서인지 하천의 바닥에 조그만한 부유물조차도 없다. 깨끗한 공기에 깨끗한 물 여기에 노랗게 핀 산수유가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이쪽으로 하산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들어 이곳에서 산다면 정말 좋을거란 생각이 든다. 너무도 깨끗한 주위의 환경에 들뜬 나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의 피로감도 느끼지 못하고 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작은 봉고트럭이 멈추면서 타라한다. 우와! 이게 왠 떡이냐! 아주 즐거이 감사하다하며 차에 탔다. 향초마을까지 태워주면 된다했더니 친절하게도 함양까지 태워주신단다. 하하! 돈 굳고 시간도 굳었다. 나를 태워주신 어르신은 그다지 말이 없으신 분이다. 뭐에 관심을 가지신지 갖가지 유도심문을 해도 몇마디 하지 않는다. 그져 함양 칭찬에 호응을 해주실뿐... 속성격이 나와 비슷한듯하다.
함양은 중개 근처만 깨끗한게 아니고 함양읍 외쪽 모두가 무척 깨끗하다. 여기에 조용한 휴양도시를 만들어봄도 괜찮을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조용한 휴양 도시가 가능할까? 함양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벼이 태워주신 아저씨는 답례인사만 남겨놓은체 홀연히 떠나간다. 그다지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지만 참 좋은 분이다. 지나가는 할머니께서 내 베낭을 보더니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무척이나 측은해한다. 아마도 보부상같은 그런 사람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래도 그 맘 씀씀이가 고마워 웃음을 짓는다. 서울에서는 힐끔 한번 쳐다보고 마는 개인적인 의식이 팽배한데 시골은 상대방을 걱정해주는 그런 맘들이 있어 힘들기는 하지만 정말 기분이 좋다. 29개 구간중 아직은 3구간밖에 종주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좋은 분들을 생각하면 맘이 들뜬다.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오니 방금전 13:10분에 서울행 버스가 출발했다한다. 우띠! 좀만 시간있었으면 되는데... 14:10분발 서울행 버스를 끊고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고 어지러운 내 얼굴을 씻었다. 시골 화장실이어서 인지 관리가 엉망이다. 냄새도 많이나고 씼는시설도 남녀화장실 출입구에 어설픈 배관 하나만 삐죽이 나와있을뿐이다. 냄새가 하도 심해서 바깥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서울행 버스가 들어온다. 베낭을 버스 아래 트렁크에 집어넣고 기다리고 있자니 갈증과 배고픔이 생긴다. 뭔가를 먹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냄새나는 화장실 덕에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래서 시원한 맥주와 새우깡을 하나 사서 다 먹고 나니 버스가 출발한다. 술기운을 빌어 잠이 들었다.

~ 서울까지

자고 있으니 버스가 정차를 한다. 우이쒸 아무래도 여기저기 들려가며 버스가 갈 모양인가보다. 하긴 함양에서 버스를 탄 사람이 10명이 채 안되니 도져히 채산성이 안되는거 같다. 거창이란다. 잠결에 순창과 착각하여 이곳이 고추장으로 유명한곳인가보다 하는 착각을 하게된다. 잠시 정차해있던 버스는 이내 출발하고 거창 시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도 물이 무척 깨끗하다. 거창 시내를 도는 개천의 물이 무척 맑다. 아직까지 계발의 때를 입지 않은 곳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대간종주를 하면서 많은 도시를 경유하고 그곳을 알것이란 생각을 하니 또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번 4구간때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런데 다음달에는 한번밖에 갈 시간이 없다. 한달에 두 번 가려고 하던 계획에 차질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올해안에는 아무래도 힘들것같은 예감이 든다. 체력상태도 그 다지 양호하지가 않는듯하고... 그래도 잘 할수 있겠지? 난 쥬신다물 양승현이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다시 잠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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