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깨진 자존심의 봉합, 그리고 약한 대간능선(12회차 12구간. 갈현 - 신의터재)

● 일시 : 2002년 8월 17일 ~ 18일
● 날씨 : 비. 맑음
● 동행 : 이찬영(단독산행)
● 구간 : 백두대간12(갈현 - 용문산 - 국수봉 - 큰재 - 회룡재 - 백학산 - 지기재 - 신의터재)

● 산행시간
- 8월 17일 토요일
23:05 = 집 출발
23:45 = 영등포역 부산행 열차 탑승

- 8월 18일 일요일 (총 산행시간 : 13시간 20분. 도상거리 30㎞)
02:07 = 충북 영동군 영동읍 영동역 도착
02:35 = 영동에서 추풍령 이동(택시)
03:15 = 추풍령 도착
03:25 = 추풍령에서 김천시 어모면 도치랑 마을 이동(택시)
03:45 = 도치랑마을 도착

04:15 = 산행시작
04:40 = 갈현 도착(구간연결 기점)
05:25 = 헬기장
05:52 = 용문산
06:30 = 국수봉(763m). 휴식(15분)
07:45 = 큰재. 아침식사. 휴식(45분)
08:30 = 큰재 출발
08:55 = ① 임도(시멘포장)
09:35 = ② 회룡재
10:20 = ③ 개터재
11:45 = ④ 윗왕실 임도(동물통행로). 휴식(20분)
13:00 = 백학산(615m). 점심식사. 휴식(40분)
13:40 = 백학산 출발
13:50 = ⑤ 임도
14:40 = ⑥ 임도
15:07 = ⑦ 개머리재(천왕봉 기점 216.5㎞). 휴식(30분)
15:30 = ⑧ 임도
16:07 = ⑨ 지기재
16:45 = 급경사 암릉 우회전
17:15 = ⑩ 쑥밭골재
17:35 = ⑪ 신의터재 도착

18:50 = 신의터재 출발
23:35 = 강남역 도착
00:25 = 집 도착

●산행기

지난번 용문산을 오르다가 양다리에 쥐가나기 시작하여 산행을 포기하고 탈출을 한 사건이 나를 무기력하게 할 줄이야. 탈출 구간을 연결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꽤나 상해 있었던 자존심의 만회는 물론 무기력에서 벗어날 것 같다.
이번 산행은 단독산행을 하려고 마음 먹는다. 이번 구간은 대간 구간중에서 솔직히 이야기 하면 제일 별볼일 없는 구간이다. 가장 완만한 고도를 보이는 구간으로 중화지구대의 중심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구간, 그래서 과수원이 많이 밀집해 있기도 하다. 그러하니 사위의 경관은 애당초부터 보잘 것이 없다.
먼저 내려가 산행후 가고파와 합류하여 그 차량편으로 귀경하면 되리라고 나름대로 계획을 하고 떠나기로 작정을 한다.

기차표를 예약하고 산행계획을 아내에게 이야기 하니 펄쩍뛴다.
혼자, 그것도 밤에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연결 기점으로의 이동 등 동행자도 없이 홀로 밤에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다 위험하니 탈출 구간 연결은 후일 낮에 하라고 성화다.
성화야 당연한 것이나 내 마음은 탈출구간을 연결하지 않고는 조급증을 벗어날 수 가 없다.
아내와 아이들의 근심을 뒤로 하고 밤 11시가 넘어 영등포 역으로 출발을 한다.

영동역에 도착하여 대합실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자 눈을 부치려 하니 잠이 오질 않는다. 바깥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차라리 산행지로 이동하자. 마침 김천 가실 분 안 계시냐고 바깥에서 택시기사가 소리를 지른다. 합승을 하고 추풍령까지 간다. 추풍령에서 산행기점인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 도치랑 마을로 이동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니 김천택시다.

가랑비는 약하지만 계속 내린다. 마을 어귀 가로등 전등불이 환하게 켜있는 차부집 처마밑에 앉아 산행준비를 한다. 우의는 집어치우고 배낭 커버만을 사용한다. 처량한 생각과 이렇게 대간을 하여야만 하는 가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온동네 개가 비상이라도 걸린듯 짖어대는 비오는 새벽.
탈출 연결지점인 갈현까지 정신없이 오르는데 아마 간밤에 비가 제법 온 것 같다. 산행길이며 흐르는 빗물이 제법이다. 한시간여 오르니 잘 만들어진 헬기장이 나타나고 손전등은 건전지를 바꾸어 달라고 벌써 소진하여 꺼져 버린다. 사방은 약한 가랑비가 안개비를 바뀌어 조망이 없다.
잡목으로 우거진 용문상 정상(추정)을 통과하고 다시 떨어지는 급사면을 내려온다. 용문산 기도원 방향인듯한 희미한 임도가 보인다.

국수봉을 오르는 길은 제법 경사를 이루면서 한차례의 땀을 요구한다. 얼핏, 숲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뱀의 꼬리부분이 보이고 손전등을 끄고 운행한다. 국수봉 정상 인근에 있는 돌로 쌓아 시멘트로 발라 놓은 구조물을 본다. 아마 기도장소 인 듯 싶다.

국수봉(국水峰 763m) !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세운('93. 3. 7) 정상 표지석만이 백두대간 국수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하나. 한자로 국자는「움켜뜰 국」자이다. 즉 음절 단어의 뜻은 「물을 양손에 움켜뜸 또는 움켜뜬 물」이라고 사전적 정의가 되어있다. 아마도 국수봉을 중심으로 해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양손에 물을 움켜뜬다 함은 왼쪽으로는 금강을 오른쪽에는 낙동강을 국수봉이 움켜쥐고 있지 않은가?
국수봉을 내려오다 또 다시 금방 배설이 된 듯한 배설물을 본다. 모양과 크기로 보아 노루가 아닌 가 싶다. 안개비가 걷히기 시작한다.

금강과 낙동강이 분수령을 이루는 큰재에 도착한다.
이렇게 하여 탈출구간을 땜방 해놓고 나니 여간 개운한 것이 아니다. 지난번 산행시 들렀던 폐교된 옥산초교 인성분교 앞.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들러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하고 난 후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식수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다. 출발에 앞서 가고파 산악회 회장님에게 전화를 한 통화 한다.

큰재를 출발한다.
학교 울타리 끝에 서있는 전봇대에 부적처럼 달려있는 리본을 따라 인성분교 나무울타리 옆을 지나 대간 들머리로 들어선다. 잡목 숲으로 들어가 얼마를 진행하니 목장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타난다. 숲을 빠져 나오면서 맨먼저 만나게 되는 시멘트 도로①. 느낌상으로 시멘트 도로를 넘어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대간 능선일 거라 생각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멘트 길을 따라 7~80여m 우측으로 전진하여 다시 우측능선 진입로로 접어 든다. 잠시 독도에 혼선이 온다. 능선으로 접어들어 잡목숲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를 거치니 옛 고개길이 완연한 회룡재에② 이른다. 누군가 회룡재라고 아스테지에 써 붙여 놓았다.

회룡재에서 오르막 길로 접어들게 된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 평평한 지형의 능선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밭이 나타난다. 그리고 간간이 철사줄로 만든 목장 울타리가 보인다. 다시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선 후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 내리막으로 접어들게 되고 내리막이 끝날 즈음 쌍분묘 2기가 나란히 계단을 이룬 지점에 이르게 된다. 무덤 오른쪽 잡목을 빠져 나가니 개터재에③ 이른다. 개터재는 주위 지명을 따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개터재를 출발하여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두 번째 봉우리에 이르니 505봉이다. 505봉에서는 방향을 북으로 전환하여 소나무와 잡목이 빼곡한 구간을 거쳐 윗왕실 임도④에 도착한다. 넓은 임도 절개지에 황토흙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어 보기 흉하다. 천만 다행인 것은 동물 통행로 다리를 연결해 놓아(아직 공사중) 그나마 자연보호, 환경보호를 관청에서 조금은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져 백학산으로 오른다. 약간 가파른 경사가 있고 햋빛은 어느덪 강렬하다. 백학산(615m) 정상도착.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세운('99. 5. 16) 표지석 만이 백두대간길을 지키고 있다. 사위를 조망해 보나 경관은 사실 보잘 것이 없다. 점심식사 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산악회 대원과의 합류를 위해 의도적으로 휴식시간을 길게 잡는다. 양말을 갈아 신고 출발한다.

내리막길을 20여분 내려서자 새로 개설된 임도⑤가 나타난다. 이 임도는 96년 개설된 것으로 원산마을과 함박골을 연결한다. 임도 건너 계곡 아래로 물소리가 들리고 임도를 따라 50m 정도 내려가 표시리본이 걸려있는 건너편 능선 진입로로 접어든다. 어디서 갔다 놓았는지 쇼파가 한개 놓여져 있다. 아마 임도 개설시 그늘과 물이 있어 휴식장소 였던 듯, 휴식용으로 갔다 놓은 듯하다.

드디어 일군의 산행인파를 만난다. 「반갑습니다」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오늘 산행중 처음 만나는 인파이다. 완만하게 오르 내리는 능선을 따라 가다 임도⑥ 하나를 지나친다.

인삼밭을 지나고 잡풀로 무성한 수풀지대를 통과한다. 고추밭이 나타나고 이어서 개머리재⑦에 도착한다. 사과 과수원과 길건너 포도 과수원 그리고 민가가 한채 보인다. 비포장 도로인 개머리재는 개의 머리형태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분명 풍수적인 내용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고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평탄한 지역이다. 소나무가 있는 우측 능선으로 진입한다. 누군가 나무에 매달아 놓은 프랭카드에는 천왕봉 기점 216.5㎞ 라고 씌어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한다.

오르막 길을 올라서니 무덤 2기가 자리하고 있고 이후 임도⑧가 나타나게 되는데 임도에 내려선 후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포도밭과 사과밭을 왼쪽에 끼고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인 지기재⑨에 도착한다. 지기재 또한 고개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평탄한 지형이다.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룬다는 표지판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지기재 마을 입구에는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성진항"의 묘비가 위엄있게 서 있다. 마을 진입로 시멘트 길을 따라 500m 쯤 진행하다가 민가를 앞에 두고 우측 능선길로 접어 들려다 식수를 보충하기 위해서 마을로 들어간다.

능선에 진입하여 얼마 되지 않아 금은골마을 뒷산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급선회 한다. 조그만 임도를 하나 지나쳐 암릉 오름길을 올라선다. 암릉을 올라선 후 방향을 오른쪽으로 급하게 꺽는다. 암릉을 올라선 후 약간 진행하니 좌우로 논을 끼고 논뚝길을 따라 걷게 된다.

쑥밭골재⑩를 지나 다시 숲길로 접어들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지나니 고압 송전탑이 나타나고 주변에 나무를 베어낸 곳이 나타난다. 내리막을 따라 얼마를 내려가니 신의터재⑪에 도착한다.

임진란때 의병을 일으켜 누란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의연히 일어선 의사 김준신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최근 고개를 새로 단장하고 지명도 옛지명을 쫓아 신의터재로 다시 태어난 고개.
節谷 金俊臣 유적비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역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 표시판이 서있다.

이로서 탈출에 따른 미완성의 11구간을 마무리 지었고 깨진 자존심을 나름대로 봉합하였다. 그러나 12구간의 경우 대간 능선이 희미하여 지루한 산행이 아니었나 한다. 단독산행의 장점으로 산행의 묘미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였으며 기록에 철저를 기할 수 있었던 점이다. 그러나 구간 자체가 고도가 낮아 평지와 같은 느낌이 많았고 때문에 자주 나타나는 임도와 고개가 구분되질 않아 약간의 혼동이 있었다. 그리고 산악회 대원들과의 합류를 위하여 너무 널널하게 시간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와 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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