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4차 구간 종주 산행기(3)

1.산행일정 : 2002. 8.24 - 8.26(2박3일)
2.산행구간 : 무너미고개-마등령-미시령-진부령(26.3 Km)
3.산행친구 : 끝까지 혼자
4.산행여정 : 3일차(반토막 백두대간 완주의 날)
- 8/26 : 제36소구간(미시령-상봉-신선봉-큰새이령-마산-진부령 : 14.3 Km)
03:30 기상
04:38 속초 출발
04:55 미시령 도착
05:15 미시령 출발
05:57 샘터
06:38 상봉(1,239m)
07:24 화암재
07:42 신선봉(1,204m)
09:05 큰새이령(大間嶺)
10:54 1,058봉
11:35 마산(1,052m)
13:25 진부령
(총 산행 시간 : 8시간 10분)

5.산행기

- 미시령에 서서...
모닝 콜로 예약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가 제자리에 놓는다. 새벽 3시30분이다. 한동안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서 있다. 오늘은 내가 갈수 있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을 마감하는 날이다. 어제는 밤늦도록 철인3종경기로 시끄러웠지만 오늘의 유종의 미를 위해 치성을 드리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정리 한다. 빨래도 하고 몸도 씻고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하고 싶었다.

햇반 두개를 데워 하나는 먹고 하나는 배낭에 넣어 모텔 로비로 나온다. 텐트와 침낭 그리고 침낭커버는 비닐봉지에 넣어 카운터에 맡겨 둔다. 무거운 것을 끝까지 짊어 지고 갈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이다.

택시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미시령으로 오른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지다가 만 새벽달은 구름속을 들락거리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미시령휴게소 오른편 대간 들머리 입구에 서서 속초를 내려다 본다. 동해로부터 불어 오는 새벽 바람이 시원하다. 속초 시내의 불빛이 떨리듯 반짝거린다. 잠시 상념에 젖는다. 눈보라 치던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이 땅의 등줄기를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밟고 어루만지며 이곳 까지 왔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미치도록 이곳으로 향해 달려 왔는가? 애시당초 백두대간은 나의 관심 대상은 아니었다.

인생의 절반을 넘긴 그동안의 생활이 개미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의 연속이었고, 난 내가 누군지 뭐 하는 놈인지도 잘 모르고 그 쳇바퀴속에서 타성과 관성으로 헤어 날줄 몰랐다. 보이는 것은 개미와 쳇바퀴 뿐이었다. 쳇바퀴를 돌더라도 거꾸로 돌아 보고 싶었고, 그것을 대신하여 찾은 것이 바로 백두대간이었다.

- 남아 있는 대간을 위하여!
랜턴을 켜 들고 숲속으로 들어 선다. 조금 올라 서니 걷기가 수월한 평평한 능선 길이다. 길가 풀섶은 이슬이라기 보다는 빗물이 그대로 묻어 있어 스틱으로 털고 지나 가지만 옷은 금방 젖어 버린다.

숲속길을 헤치며 오르다 보니 좋은 야영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맑은 물이 졸졸 나오는 샘터에 닿는다.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긴 해도 야영은 좀 힘들겠다. 사실 어제밤을 이곳에서 잘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다 젖어 버리는 바람에 편한 속초를 선택한 것이었다. 목마른 길손들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바로 이러한 샘터이다. 물통에 남은 물을 비우고 샘물로 가득 채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여름 산행은 물없인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넉넉한 시간과 가벼운 등짐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상봉으로 가는 길에 전망 좋은 바위 봉우리를 지난다. 3일만에 비로소 멀리서 나마 설악을 본다. 황철봉과 1,318봉의 너덜지대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뒤로 대청, 중청봉이 위엄있게 자리 잡고 있다. 미시령 낮은 고갯마루를 따라 아침 안개가 낮게 드리운다.

평평한 산허리를 돌고 너덜바위를 건너 상봉(1,239m)에 오른다. 제법 큰 돌탑이 아침해를 맞이하고 서 있다. 신선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솟아 있고 저 멀리 향로봉은 머리만 내 놓은 채 온 몸을 구름으로 휘감고 있다. 언젠가 가야 할 이 땅의 백두대간이다.

화암재로 가는 길은 곳곳에 미끄러운 바위길로써 밧줄이 있긴 해도 수월치가 않다. 전방이 가까이 있어서 일까? 유난히 군사용 참호가 많이 보인다. 화암재를 뒤로하고 신선봉을 돌아 큰새이령으로 향한다.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를 반복한다. 물을 머금은 잡목덩굴의 진로방해가 예사로 성가신게 아니다. 싸리나무는 작은 꽃이 피어 있고 잎에는 온통 물을 머금고 있다. 이미 옷은 다 젖어 버렸고 신발 안까지 물이 차 올라 발을 내 디딜 때 마다 물소리가 난다. 큰새이령을 도착할 때까지 안개비가 내린다.

투박하지만 정성이 깃든 이정표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소간령과 마산봉 그리고 신선봉가는 길을 표시해 놓았다. 선채로 빵 하나를 먹는데 어떻게 알고 다람쥐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 온다. 야영을 하면 좋은 자리에서 젖은 양말을 짜 신는다. 이제는 젖어도 그만이고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겠다. 얼마 남지 않은 대간길이라 마음 편히 걷고 있다. 오르막인데도 크게 힘들지 않다.

1,058봉에 올라 선다. 진부령이다. 눈앞에 진부령이 보인다. 크게 고함을 질러 본다. 마산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대간 능선이 뚜렷하다. 갈수 없는 반토막을 제외하고 갈수 있는 나머지 반토막 백두대간을 36구간으로 나누어 35일동안 걸어 올라 온 종점인 진부령이다. 지도를 활짝 펴서 바로 놓고 갈 수 없는 대간의 봉우리를 바라다 본다. 종착지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덤덤하지만 거침이 없다.

마산(1,051.9m)에 올라 선다. 깃대를 세우는 지주에 ‘마산 1,051m'라고 적혀 있고 군사용인지 빨간 파이프 종이 달려 있다. 남아 있던 물 한병을 머리에 붓는다. 물은 온몸을 타고 내려 온다. 마지막 봉우리인 바위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 참만에 일어 선다.

진부령을 향해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면 갑자기 대간 마루금은 잘려 나가고 길은 위태롭게 절개지 위 가장자리로 지나 간다. 알프스리조트 스키장이다. 마지막 하나 남은 당나귀 표지기를 그물망에 걸어 놓고 스키장으로 들어 선다. 흘리 초등학교가 앞에 보인다. 혼란 스러운 마루금 찾기가 시작된다. 알프스리조트 정문에서 어렵게 어렵게 길을 찾으며 나아가 군부대 초병에게 길을 물어 철조망이 쳐진 산길을 돌아 흘리보건소까지 와서 길을 따라 걷기로 한다. 더 이상의 마루금 찾기는 의미도 없겠다 싶어서이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길을 따라 내려 와 진부령에 닿는다. 큰 진부령 표지석에 손을 얹어 본다. 뒤에는 향로봉 전적비가 서 있고 입산금지라는 작은 간판이 서 있다. 코끝이 찡해 오지만 담담하다. 그렇게 갈망했던 진부령에서의 진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반토막 백두대간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도상거리 690Km, 이름있는 50여개의 산과 80여 봉우리, 그리고 이름없는 200여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고, 넘나 드는 고개만도 100여개가 되는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의 백두대간 종주의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진부령에서 간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젖은 옷이라 엉거 주춤 앉아 간다. 속초에서 맡긴 짐을 찾아 목욕을 하고 양양 공항에서 부산행 비행기를 탄다. 숱한 날 들의 밤을 지새며 걸었던 길을 되돌아 오는데는 채 한 시간이 안 걸린다.(終)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강릉(기차 19,600),강릉-속초(버스 6,000),속초-설악동(9,000)
속초-미시령(택시 15,000X2)
- 복귀로 : 진부령-간성(버스 2,100),간성-속초(버스 2,100),속초-양양(택시 21,000)
양양-부산(항공 63,000),부산-울산(버스 6,700)

7.제25차 구간 종주 계획
- 일정 : 미정
- 구간 : 진부령-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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